지중미술관의 입구는 매우 작습니다. 실제로 입구만 보면 미술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죠.

그도 그럴것이 지중미술관이라는 이름답게 실제 미술관은 대부분 지하에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적인 구조물을 자연과 조화시키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미학과 맞물려 바깥에서는 기하학적인 문양 몇 개가 보일 뿐이지만

내부에는 별도의 인공 조명이 별로 설치되어 있지 않고 전시품의 대부분이 자연채광을 통해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죠.

 

 

 

코베의 잡지 코베코의 2013년 4월 기사 사진입니다.

 

단순히 예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미술관 자체가 예술 작품으로서 설계되어 있고

전시된 작품들 역시 자연 채광으로 인해 시간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 곳의 작품과 지중미술관은 떨어질 수가 없는 일체화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그 탓에 월터 드 마리아,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의 세 작가의 작품만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설치미술이 다들 그렇지만 설계부터 미술관과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과 떨어진 독립공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미술관 자체가 작품이기 때문에 전시작품들을 보기 위해 통로를 걷는 게 아니고

걸어다니는 행위 자체가 작품을 감상하는 수단이 되죠.

 

엄니와 저는 천천히 걸어다니며 안도 타다오 특유의 향을 느껴봅니다.

자연과의 조화에는 시간의 흐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몇 시간이고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시시각각 변하는 건물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듯.

 

 

 

안도 타다오의 작품들은 자연적으로 나타날 수 없는 무채색의 날카로운 직선 블록들로 인해 조용하고 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콘크리트에서 조금 시야를 넓혀 하늘과 주변 풍경을 함께 보게 되면 그 인공미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신기한 인상을 받게 되죠.

 

미술 작품은 글로 설명하기에 제 필력이 워낙 부족하기에 설명하기 힘드네요.

어차피 감상하려면 직접 보는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이 사람의 건축물은 사전 지식이 필요한 편도 아니라서

여행 목표로 잡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관 내부와 전시품들은 촬영 금지입니다만 이런 통로는 찍어도 관계없어서

슬금슬금 이동을 하며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미술관의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했습니다.

 

굉장한 정밀도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블럭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그것 역시 인공미를 머금고 있죠.

황량하다 싶을 정도로 통일된 회색 건물이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 탓일까요.

 

 

 

빙글빙글 돌아 내려가는 통로를 아무렇게나 찍어보면

모던 아트틱한 선의 흐름이 단편적으로나마 느껴집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계산된 블록의 구멍까지 기계적인 정교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죠.

시선에 따라서 철저하게 인공적이기도, 조화될 수 없을 듯한 자연과의 조화로움도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작품의 수는 적지만 하나하나가 놀라운 체험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촬영은 금지라서 소개해 드릴수는 없고, 마찬가지로 코베코에 실린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을 인용해 봅니다.

지중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Time, Timeless, No Time' 입니다.

 

큐브릭 감독의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오는 모노리스를 연상케 하는 완벽한 인공미로 압축된 공간이죠.

소리가 없이 자연광에 의한 시간의 변화만을 이용하여 그 시간의 흐름조차 엄숙한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실제로 보면 굉장히 압도적인 느낌을 받는데요.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영원'과 '완벽'한 공간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와닿는군요.

 

날씨가 맑았던 게 여기서는 참 이득이 되었네요. 완벽한 채광을 통해서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공간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품이 적긴 해도 시간을 들여 꼼곰히 둘러볼 가치가 충분했기에 감상은 대만족입니다.

한 작품당 입장 인원과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용히 차례를 기다려 감상하다 보니 방해가 되는 요소도 없었죠.

 

작품에서 놀라움을 얻기도 하지만 관람객 모두가 미술관의 분위기를 잘 따라서 차분하게 관람을 하니

뭔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사바세계의 고통을 잊고 성스러운 세계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것 역시 즐거움의 하나였습니다.

 

지중미술관을 나와서 매표소로 돌아가면 베넷세 하우스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자금과 시간이 널널했다면 베넷세 하우스에서 하룻밤 묵으며 이 조용한 일탈감을 조금 더 오래 만끽할 수 있겠지만.

 

멀리 보이는 해변가에도 설치작품이 몇 개 놓여있습니다. 이동수단 없이 가기는 좀 힘들고

베넷세 하우스에서 묵는다면 저기까지 산책갈 만한 여유가 생기긴 하죠.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베넷세 하우스에도 저 쪽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호텔과 미술관이 결합한 매우 특이한 장소인 베넷세 하우스입니다.

안에 들어가면 에어콘 덕분에 시원해지니 이 끝장나는 폭염도 잠시 잊을 수 있겠네요.

 

호텔에 숙박까지는 못하겠고, 기품넘치는 식당에서 조촐하게나마 식사 한끼를 떼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합니다.

지중미술관과 별개로 입장료를 받긴 합니다만 미술관의 분위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요즘 정말 폭발적으로 중국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다행히도 이 당시엔 이곳까지 중국인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네요.

거기다 날씨가 야외활동이 위험하다고 경고 나올 정도로 무더웠기 때문에 사람이 꽤나 적은 편이었습니다.

 

미술관 내부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당연히 이 곳도 블로그에 남길만한 흔적은 별로 없네요.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카메라를 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여행의 목적 달성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꽤 큰 홀에 전시되어 있는 수다떠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은

사람 모습을 한 로봇 세 대가 이상한 잡담과 때때로 엄숙한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요.

그 중 한 녀석이 고장난 상황이라 그 점만은 참 아쉬웠군요. 엄니와 함께 '너무 떠들다 보니 고장났나보다'라고 속삭이며 지나갔습니다.

 

 

 

품격이 넘치는 식당에서 우아하게 한 끼 먹어보려고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식사 마칠 때까지 손님이 엄니와 저밖에 없어서 편안하게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 조용하고 사람이 없어서 혹시 맛 없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었지만 말이죠.

 

 

 

베넷세 하우스 역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작품이라 식당 안도 예술적인 느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들고 온 짐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도록 테이블 아래마다 바구니가 놓여있는 모습도 깔끔하네요.

 

맛있는 거라면 뭐든 좋아하시지만 역시 여행와서 가끔은 이렇게 멋있는 곳에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아하시는 엄니라

지금까지는 합격점이었고, 부디 식사만 맛있게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엄니가 입고 온 옷에는 커다란 꽃이 하나 그려져 있어서 왠지 엄니 역시 이 곳의 작품 한 점이 된 것 같은 느낌이군요.

 

 

식사는 도시락처럼 찬합 형태로 나왔습니다. 평범한 찬합이 아니라 여기도 예술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네요.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해 여기서 한을 풀어보자고 마구 찍어대고 있습니다만

사실 찍기 전에 미리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보고 흔쾌히 승락을 받은 이후였습니다.

 

식당 자체도 미술관처럼 꾸며놓았기 때문에 먼저 허락 받지 않고서는 찍어도 되는지 조마조마할 지경이다보니 말입니다.

 

 

소소한 데서 꼼꼼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도시락 위에는 싱그러운 단풍잎과 함께 물까지 뿌려놓았더군요.

 

음식의 맛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데코레이션입니다만 역시 손님을 만족스럽게 해 주기 위한 배려에는 즐거워 질 수밖에 없죠.

 

 

 

엄니와 저는 각각 다른 도시락을 주문해서 서로서로 반찬을 바꿔 먹어봤습니다.

3~4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양에 비하면 확실히 비싼 편이긴 합니다만

미술관의 분위기 속에서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는 대가로는 납득할 만 하더군요.

 

나오시마가 위치한 세토 내해가 좁은 해협이다 보니 해산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합니다.

덕분에 재료들은 부족함 없이 신선하고, 한 조각 한 조각 먹을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습니다.

 

배를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의 식사를 즐기기에 딱 적합한 느낌이네요.

 

 

 

제가 일본의 계란찜인 차왕무시(茶碗蒸し)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일식을 주문할 때는 가능한 한 이 녀석이 포함된 메뉴를 선택합니다.

새우나 가리비 등의 각종 해산물이 저 고운 계란찜 속에 잠자고 있죠.

예전에 소바집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단체 손님들을 위한 세트 메뉴에는 이 차왕무시가 들어가곤 했습니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정리를 하면 가끔씩 손도 대지 않은 차왕무시가 남아있곤 했는데

이 녀석은 재활용을 하지 않고 그냥 버리기 때문에 혼자서 치우고 있을 때는 가끔 남은 녀석을 꿀떡꿀떡 삼키곤 했었죠.

 

 

 

유자즙을 이용한 살짝 달콤한 소스에 새우를 전분과 함께 갈아서 만든 경단을 넣은 요리도 참 깔끔하고 맛있더군요.

살짝 아쉬움이 들 정도의 양이지만 먹고 나면 맛있었다 하는 여운이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엄니나 저나 식사가 많이 나와도 절대로 남기지 않는 자연보호정신이 투철한 사람인데요.

이렇게 구별되는 맛을 가진 요리가 조금조금씩 나오는 메뉴는 조금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긴 해도 즐겁게 먹을 수 있었네요.

 

 

 

디저트로는 유자잼을 살짝 얼린 젤리가 나왔습니다.

입가심용으로 만들기엔 손도 많이 가는 녀석이지만 이런 걸 먹을 때면 이 식당이 그래도 정성이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죠.

상당히 비싼 요리점을 가도 마지막에 나오는 게 인스턴트 디저트이거나 별 것 아닌 매실주스 한 잔일 때면 좀 평가가 박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평소보다 조금 더 귀족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몸을 충분히 식혔습니다.

나오시마에는 이 두 미술관 외에도 마을 여기저기 위치한 볼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쪽은 대부분이 떙볕 아래를 이동해가며 구경해야 하는 것들이라 엄니에게 무리가 간다고 판단해서 패스하기로 했습니다.

 

엄니도 이 정도 구경했으면 충분하다고 하시니 무리하지 말고 일찍 돌아가야겠죠.

친절하게 인사하는 베넷세 하우스의 스탭들을 뒤로 하고 다시 버스를 타러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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