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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27  엄니와 여행 - 시코쿠무라 2편 4
  2. 2015.08.26  엄니와 여행 - 시코쿠무라 1편 6
  3. 2015.08.25  엄니와 여행 - 타카마츠 먹거리 6
  4. 2015.08.22  엄니와 여행 - 리츠린 공원 3편
  5. 2015.08.21  엄니와 여행 - 리츠린 공원 2편 4
  6. 2015.08.20  엄니와 여행 - 리츠린 공원 1편

 

 

날씨가 덥다보니 하늘 하나는 끝내줍니다.

타카마츠가 시코쿠 최대의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환경 오염이 될 만한 건덕지가 별로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하늘 구경만 제대로 해도 여행 온 보람이 있다고 느끼는 성격이라 마음이 치유되는군요.

 

지중해쪽 하늘이 그렇게 좋다는데 언제 한 번 가 봐야겠네요.

 

 

 

캉캉석(カンカン石)라는 희한한 이름이 붙어있는 돌덩이입니다.

옆에 나뭇가지도 하나 걸려있어서 엄니한테 한번 쳐 보라고 말씀드렸죠.

정식 명칭은 사누키암(巖)이라고 해서 마그마로 인해 생성된 안산암의 일종입니다.

 

나뭇가지로 이 녀석을 두드려 보면 유리처럼 맑고 높은 소리가 납니다.

 

 

 

이곳 시코쿠무라는 가을 정도로 날씨가 선선할 때 오면 매우 훌륭한 산책 코스가 될 것 같네요.

최대한 인공미를 줄이고 자연을 그대로 살려 놓은 코스는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줍니다.

 

물론 저처럼 37도쯤 되는 한여름에 찾아오면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함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나름 추억에 남을 경험이긴 하죠.

 

 

 

산 속에 위치한 민속촌이고 과도한 가공을 거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기분 좋게 산책이 가능한 분위기입니다.

 

이렇게 대나무숲 사이 흙길을 걸어갈 때가 제일 시원한 느낌이 드네요.

규모가 큰 편이긴 해도 거의 일직선으로 돌게 되어 있어서 코스만 지켜 걸으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이 한바퀴 완주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쿠노시마 등대 부근까지는 이 더위에 아무래도 무리라 판단해서 지나쳐 갔습니다.

사실 산 속에 지어진 민속촌에 등대가 있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죠.

 

 

 

얼핏 방앗간처럼 보이는 곳이지만 사실은 종이를 만드는 곳입니다.

한국의 전통 한지와 같은 닥나무를 원료로 사용하지만 만드는 방식은 살짝 다른 듯 하네요.

이렇게 삶은 닥나무를 으깨는 장치가 있는 것으로 봐서 중국식 종이 만드는 방법과 비슷한 듯 합니다.

 

한국은 불린 닥나무를 두들겨서 결이 상하지 않은 상태로 떠 내기 때문에 강도가 좋았다고 하네요.

일본 종이 역시 고급 방식으로 한국과 똑같이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만 이 곳은 중국식으로 맷돌로 갈아 만드는 방식이었나 봅니다.

 

 

 

정성들여 손질한 수국 화분이 마당 앞에 놓여있는 모습만으로 관광객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군요.

 

이 곳에 서 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이 문화재인데다 그 중 8채는 국가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접근을 엄격하게 막아놓은 것도 아니라 부담없이 사진을 담을 정도로 관객과 가깝습니다.

 

 

 

앞서 사진에 나왔던 칸칸석도 그렇고 카가와현은 화강암이 풍부해서 돌을 이용한 공예품이나 시설이 꽤나 발달한 편입니다.

특히 화강암 중에서는 세계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는 아지석(庵治石)의 산출지이기도 하죠.

그래서 시코쿠무라에는 돌을 이용한 폭포인 소메가타키 폭포라는 볼거리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기묘한 모양의 우물도 소메가타키 폭포 상층부에 위치하는 녀석이죠.

 

일본의 조각가 나가레 마사유키(流政之)씨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가레 씨는 비극적 역사를 간직한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심볼인 '눈의 성채'를 만든 작가로 유명하죠.

 

 

 

순로 표시도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세삼한 곳에 지역 특색을 세겨넣는 것이 관광 산업의 중요 요소죠.

나무와 바위로 만들어 진 시코쿠무라는 과도한 상업적 냄새가 나지 않는 점만으로도 민속촌 중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니는 이런 곳에서는 건물 하나하나의 특징 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는 성격인데

이 곳을 거닐면서 여러 번 '참 잘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봐서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평탄한 지형이 거의 없는 특성상 굉장히 이곳저곳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선 배정과 함께 단순한 이동 통로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세심히 만들어 놓았다는 느낌이 오는군요.

볼거리를 찾아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그런 민속촌은 레벨이 좀 떨어진다고 볼 수 있죠.

이 마을은 그냥 걷고만 있어도 입장료 값을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곳의 민가 건물들은 대부분 농촌이나 산촌 깊숙한 곳에 위치한 녀석들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부유층의 그것과는 다른 순박함이 풍겨나옵니다만, 이 곳처럼 나름 정갈한 느낌을 주는 집도 있네요.

 

집의 벽면 한 쪽 통채를 단순한 장식만으로 할당한다는 일본 가옥의 구조는 어찌보면 아이러니 합니다.

뭐 당시는 집의 크기나 땅값 등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말이죠. 어째 요즘 도시형 주택보다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보존 상태는 놀라울 만 하지만 이 녀석들이 실제로 이런 지형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

원주민들의 실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를 생각해 보기는 조금 힘드네요. 대다수 민속촌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타카야마나 나가노 근처의 옛 거리들 등, 여전히 주민들이 살아가며 예전 가옥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있어서

정말로 예전의 생활상을 느껴보려면 그 쪽으로 가야 합니다만 거긴 또 주택 보존 상태가 여기만큼 좋지는 않죠.

정말 300년 전의 생활상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이런 민속촌을 둘러보다 보면 묘하게 아쉬운 점이 느껴집니다.

 

 

 

밑에서 바라보는 소메가타키 폭로의 모습입니다. 그나마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이네요.

너무 더워서인지 신기하게도 이런 산 속을 한 시간 가까이 걸어다니고 있어도 모기에게 물리지 않습니다.

37도쯤 되면 아마 모기도 탈진하는 것일까요.

 

유명 조각가인 나가레 마사유키 씨가 만든 폭포라고는 하지만 어떤 예술성이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돌폭포 자체보다는 마을과의 앙상블에 촛점을 맞춰 전체 조경을 감상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니가 집에서도 하나 만들어 놓고 싶다고 하셨던 대나무 화분입니다.

고즈넉한 풍경에 과하지 않은 임팩트를 주도록 참 절묘하게 만들어 놓았군요.

 

나오시마도 가깝고, 리츠린 공원도 있어서 문화와 예술의 마을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노력하는 타카마츠라서 그런지

민속촌 안에 미술관도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이런 세심한 부분부분에서도 미적 감각을 잘 살려 놓았습니다.

 

지금은 각종 현대식 재료와 기술을 이용해, 그것도 본인이 직접 짓는 일이 거의 없어진 거주지라는 개념이지만

이런 걸 짓고 평생에 걸쳐 수리와 보수를 하며 살아갔던 예전 사람들에게 있어서 집이란 어떤 존재일런지.

아마도 자기 집에 대한 애착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현대의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감탄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가 주택생활을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고, 엄니가 시골집에서 차를 마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제 정말 시골집에서 차 한잔 마시려고 하는 것도 풀 뽑고 집 청소하고 보수하는 거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시코쿠무라의 장점은 역시 안내서에 적힌 볼거리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도 충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순로 전체가 아름다운 산책로화 되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네요.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관광지는 커녕 극히 평범한 마을 어귀의 좁은 길이라도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곳이구나 하는 신선함에 한동안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 거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데

이 곳에서도 굳이 건물 구경하려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이 그저 걷는 것만으로 감상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네요.

 

 

 

에도시대 후기의 건물인데 아마 곡물 창고로 사용하던 녀석입니다.

지금은 자료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엄니는 이미 체력의 한계에 달해 있어서 이 곳에 들어가 봤자 눈에 들어올 게 별로 없을 듯 하네요.

그냥 특이한 형태만 바깥에서 구경하고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출구 근처까지 다다르면 굉장한 옹기들이 줄줄이 서 있는데요. 처음엔 술독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간장 담는 옹기였습니다.

한국과는 묘하게 모습이 다른 것도 나름 볼거리더군요.

 

옹기도 옹기지만 펜스 역시 센스가 넘칩니다. 대나무를 줄줄이 이어 만들었는데 굵은 밑둥 끝에 다시 작은 줄기부분을 끼워넣어서 이어놨군요.

글자로 표현하자면

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화장실에 간 엄니를 기다리며 풍경 사진을 찍어봅니다.

소박한 삶의 여유라고 할까요. 시골집 툇마루에 누워 있을 때 풍경 소리가 살짝 울리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지금은 뭐 워낙 더워서 그런 여유를 느끼기도 힘들긴 하지만 말이죠.

 

이제 시코쿠무라 구경도 거의 끝나가니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야시마 산 정상으로 가야겠습니다.

 

 

둘째 날의 목표는 저 산입니다. 상당히 특이하게 생겼죠.

300m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산이지만 이곳에서는 명산으로 유명한 야시마(屋島)산입니다.

 

시코쿠에는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인 홍법대사 쿠카이(空海)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홍법대사가 순례한 88개소의 사찰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 발자취를 따라 걷는 여행이 꽤나 유명하죠.

 

자동차로 가면 며칠만에 모두 돌아볼 수 있지만 그래서는 의미가 없을 듯.

실제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걷고 있으며 외국인들에게 오히려 인기인 코스라고 하네요.

저는 자전거로 몇 군데 둘러봤습니다만 그냥 걸어서 돌아보려면 거진 한 달넘게 걸리니 쉬운 길은 아닙니다.

 

저기 야시마 산 정상에는 그 88개소 순례길 중 84번째 사찰이 위치해 있습니다. 전망도 좋고 해서 인기있는 관광지죠.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절 하나만 둘러보고 가기엔 시간과 노력이 아깝습니다.

이 곳은 야시마 사찰 외에도 시코쿠의 옛 마을 모습을 재현해 놓은 시코쿠무라(四国村)라는 민속촌도 위치하고 있어서

한 번의 이동으로 두 군데를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엄니에게 보여드리려는 의도에서 선택했죠.

 

하지만 5분 정도 걸리는 시코쿠무라까지 가는 도중 관광객이 한 명도 없었기에 오늘 혹시 휴일인가 하는 걱정까지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매표소에 직원이 상주하고 있는 걸 보니 휴일은 아니었는데 조금 더 걸어가고 나서야 오늘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가 일본 최고의 폭염이 창궐하던 때라서 아무도 이런 곳에 오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가서 입구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땀으로 절어버리더군요.

 

완성도가 매우 높아서 인기가 많은 민속촌인데 그런 만큼 에어콘이라던가가 설치된 현대식 건물이 없습니다.

덕분에 이 민속촌을 한 바퀴 다 돌아보는 동안 단 한명도 다른 관광객과 만나지 않고 단 둘이서 고독을 즐길 수 있었죠.

어찌보면 굉장한 경험이었지만 정말 이렇게 더워서는 여기 안 오는게 이해가 될 정도더군요.

 

 

 

민속촌으로 들어가려면 카츠라바시라는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하는데 이게 재현도가 쓸데없이 대단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다리 하나 쑥 빠져버리는 건 일도 아니겠더군요.

 

엄니도 매우 조심하며 건넜고, 저는 이딴 나무조각이 제 덩치를 이겨낼 수 있을까 심히 걱정을 하며 건넜습니다.

사실 그 질기다고 하는 칡덩굴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다리가 끊어질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시코쿠는 산악 지형이 많고 발전이 더딘 편이라 대도시에서 보던 민속촌과는 분위기가 좀 다른 편인데

시작부터 사람을 살떨리게 만들어 주는군요. 항간엔 이 다리가 가장 좋은 볼거리라고 하는 곳도 있으니까요.

 

물론 다리를 건너지 않고 갈 수도 있지만 여기 와서 이걸 안 건너가 보는 것도 좀 아쉽겠죠.

 

 

 

전통을 보존하려는 마음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일본이라서, 당해 본 경험이 있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좀 거북하기도 한데요.

그것과는 별개로 이 마을을 평가하자면 참 용캐로 이런 곳에 이 정도 규모의 민속촌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까지의 시코쿠 각지 민가를 재현한 마을인데

애초에 시코쿠라는 곳 자체가 타 지역에서의 접근성이 그리 좋은 곳이 아님에도

마을 전체가 산 중턱에 파묻혀 있어서 주변에서 전혀 현대적 건물의 흔적을 느끼지 않고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면 관광 상품으로서의 상업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일까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건축물의 보존 상태는 완벽에 가깝습니다.

날이 날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을 안에서는 직원 한 명 보이지 않고 적막함이 감도는군요.

엄니와 저는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을 전체를 전세낸 듯이 돌아다닙니다.

 

시코쿠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가 적고 맑은 날이 많지만 태풍 시기엔 엄청난 강수량을 보이는 편이라

집의 구조나 재료 등이 조금 특이한 편입니다. 전체적으로 넓고 평평한 거실이 많으며 바람이 잘 통하도록 설계되어 있네요.

 

 

 

코스를 정상적으로 밟으면 맨 처음 보이는 곳입니다. 카부키 극장이네요.

실제로 이 곳에서 공연도 가끔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오늘은 공연은 커녕 마을 전체에 사람이 엄니와 저밖에 없으니.

 

관광객들에게 얽혀서 복잡한 것도 싫지만 이렇게 덩그러니 둘만 거니는 것도 좀 무섭습니다.

평범한 곳이라면 모르겠는데 이곳 시코쿠무라는 시골의 산 속에 위치해 있다 보니 좀 섬뜩하다고 할까요.

 

 

 

이 곳은 시코쿠 각지에서 보존중이던 33개의 민속 가옥을 재현해서 모아놓은 곳입니다.

재현이라고 해도 단순히 다시 만든 게 아니고 그 가옥을 해체해서 전부 가져온 다음 이곳에서 재조립한 녀석들이죠.

 

나고야 근처의 이누야마(犬山)라는 곳에도 유명한 메이지무라(明治村)가 있는데

그 곳은 무려 메이지 시대 당시 하와이 같은 곳에서 일본인이 생활하던 저택을 전부 해체해서 갖고 와 재현해 놓기도 했습니다.

 

상업적인 이득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 정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현도에 신경을 쓰고 그것을 무기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니 굉장한 시도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곳도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대부분이 실제 사람이 살던 가옥을 옮겨온 것이라 이곳저곳 볼 거리가 많습니다.

한국처럼 부엌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톡특하네요. 뭐, 기본적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한국 가옥과의 차이가 커지긴 합니다.

 

 

 

엄니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친숙해 보이는 느낌이 든다고 하시네요.

엄니 어릴 적에 살던 곳도 일본식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던 집이라서 말이죠.

대구는 아직도 일본식 가옥이 조금 남아 있기도 하고, 엄니 연세라면 아마 일본식 가옥이 그렇게 특이하지도 않을 법 합니다.

 

물론 이곳 시코쿠무라는 1800년대 가옥들도 있는데다가 본토와는 꽤나 다른 양식으로 지어진 녀석들이라 엄니도 재밌게 보실 수 있겠죠.

 

 

 

가옥 구경뿐 아니라 이 곳의 자연 풍경 역시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자연의 생명력이 팍팍 느껴진다고 할까요. 시코쿠 88개소 사찰 근처에 있어서 주변에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원래 이런 마을이 있던 곳이 아니고 각지의 가옥들을 모아서 만든 곳이다 보니

실제로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형이 복잡합니다.

 

엄니는 물도 많이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하면서 휴식을 취하며 이동합니다.

기온이 너무 높아서 땀 하나는 정말 시원하게 빼고 가는군요. 다행히도 공기가 매우 좋아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하시네요.

 

 

 

가옥들은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표시가 없는 곳은 그냥 들어가 봐도 됩니다.

한국보다 나무가 풍부한 지역이라 황토를 이용하는 가옥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요.

 

에도시대 이전에는 각 지역별로 발달한 상업이 에도시대의 산킨코타이 제도로 인해 유통망이 완성되면서

1800년대를 기점으로 조직적 상업사회 기틀이 완성되고 있었는데, 시골인 시코쿠도 다르진 않습니다.

기후와 지형적 영향으로 각종 농산품과 해산물이 유명했던 지역이라서 시코쿠무라 안에도 양조장이라던가 곡물 창고같은게 드문드문 보이네요.

 

 

 

지난 번 포스팅에 아기자기한 조각품들이 많은 우동집에 나왔었는데요.

거기서 나왔던 화로와 냄비가 여기서는 실제 크기로 전시중입니다.

 

일본의 전통 가옥은 이렇게 거실 한가운데 물을 지켜서 식사를 하는 방식이 꽤나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목조 건물이다 보니 불 관리에 매우 엄격했는데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는게 의아하기도 하죠.

물론 목조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수도권에서는 집 안에서 불 피우는 행위 자체를 금지했기 때문에 이런 거 없었습니다.

 

 

 

민속촌 전체가 산등성이를 타고 만들어져 있어서 평지가 별로 없네요.

거대한 면적을 엄니와 둘이서 독점하는 건 좋아도, 왜 사람이 없는지 절실하게 느끼며 걷고 있습니다.

 

척 봐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건물이 놓여있네요.

곡물 창고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설탕을 만드는 곳이었다고 적혀있습니다.

 

 

 

일본 최초로 정제 설탕을 만들어 내던 곳입니다.

세계 어디든 동일하지만 당시엔 설탕이 매우 귀한 몸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죠.

 

소를 이용해서 맷돌을 돌리는데 이 방식은 오키나와의 전통적인 방식과도 거의 일치합니다.

그러고보니 한국은 설탕을 어떻게 만들었으려나요. 아마 이런 정제설탕보다는 엿이나 꿀을 애용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건물 주변에는 이렇게 사용했던 맷돌들이 장식품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엄니가 보시더니 참 많이도 만들었다 하셨죠.

정제 설탕은 에도시대만 해도 꿀보다 훨씬 비싼 녀석이었고, 상류층의 허례허식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뭣 때문에 이렇게 많은 맷돌을 모아놓은 건지는 모르겠네요. 정말로 그냥 장식용일런지.

 

 

 

둘이서만 주구장창 구경하고 있는데 더욱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주의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돈 내고 들어가는 민속촌 안에서 맷돼지 주의라는 표지판을 봐야 한다니.

 

공교롭게도 저는 자전거 여행 중 시코쿠에서 맷돼지와 조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저 푯말을 보면 긴장이 되네요.

시코쿠 해안선을 따라 밤 8시쯤 달리고 있는데, 멀쩡하게 도로와 민가가 주르륵 늘어선 평범한 해안가 마을 한가운데서

서로 마주보는 모습으로 딱 만나게 되었습니다. 짐까지 더해 40kg 가까운 제 거대한 여행용 자전거와 거의 비슷한 덩치였죠.

 

실제로 지근거리에서 보는 맷돼지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느꼈네요.

저는 감전된 사람처럼 자전거를 빙글 돌려서 반대쪽으로 미친듯이 도망갔습니다만 다행히도 맷돼지 역시 저한테 놀라서 저와 반대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자전거 위에 타고 있다보니 제 덩치도 워낙 크게 보인 것이겠죠. 근 5m 정도 거리였기 때문에 저한테 달려들었으면 아마 다음 날 뉴스에 나왔겠죠.

 

 

 

민속촌의 가장 위쪽에 도착하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뀝니다. 정갈한 조경수와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이 숲 속에서 맞이해 줬습니다.

딱 보니 이 건축물은 안도 타다오가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타카마츠에서 가까운 조그만 섬 나오시마가 부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섬 전체를 예술의 마을로 만들어 버렸는데

그 중심에 있던 것이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이다 보니 이곳과 안도 타다오는 꽤나 인연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코쿠무라에도 미술관이 들어선 것 같습니다만, 여긴 따로 입장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관람은 포기했습니다.

 

사실 내일 찾아갈 곳이 나오시마라서 굳이 이곳을 들를 필요가 없기도 하거든요.

엄니나 저나 미술품 자체에 크게 관심이 있는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 미술관에 들어가지는 않고 그의 예술관을 살짝 흉내내어서 사진을 한 장 담아봅니다.

가장 인공적인 재료인 콘크리트를 이용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죠.

 

건축계의 거장이라서 사실 들어가 보면 구경거리는 많겠지만

오늘은 이곳에서만 시간을 사용할 수도 없고, 내일 나오시마에서 온갖 예술품을 감상할 예정이라 그늘에서 땀만 식힙니다.

 

그나마 날씨가 이렇게 더워도 도시의 매퀘하고 찝찝한 공기가 아니라 땀을 흘려도 나름 상쾌합니다.

엄니도 땀은 많이 흘리시지만 공기가 참 좋아서 나름 견딜 만하다고 하시네요. 조금 더 힘내서 돌아보고 야시마로 올라가야겠습니다.

 

 

 

공원을 나와서 숙소로 돌아갑니다. 정오 무렵이라 햇살이 바늘로 찌르는 듯 강렬해서 좀 쉬어야 할 것 같더군요.

하지만 아직 점심을 못먹었네요. 호텔 들어갔다가 다시 식사하러 나가고 하는 것도 참 귀찮은 일이라 들어가기 전에 해결해야겠죠.

 

가는 도중 길 건너편에 재밌는 그림이 그려진 우동집이 있어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카가와현은 앞서 말씀드렸듯 우동현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우동의 본고장이기도 하고

정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어떤 우동집이든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퀄리티를 보여주기 때문에

적당히 들어가도 딱히 꽝을 뽑을 염려가 별로 없죠.

 

 

 

좌석이 10개를 조금 넘는 아주 소박한 곳이었습니다만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원한 물 한잔 들이키고 우동을 주문한 후 주위를 둘러보는데, 벽면에 재미있는 녀석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더군요.

 

직관적인 디자인에 나무를 사용한 자연적인 매력이 가득한 조각들입니다.

엄니도 보시더니 귀엽다고 감탄을 하시네요. 이 녀석들은 필시 어미를 따라가는 새끼오리들이겠죠.

 

 

 

이 정도 레벨이라면 엄니가 좋아하시는 '세상에 그런일이' 에도 나올 법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료의 특징을 최대한으로 살린 점이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가공을 거치지 않고 이렇게 특징을 잡는 것은 굉장하네요.

 

 

 

거의 나무 소재로만 만들어 놓았는데, 이건 나무 깎는 솜씨라기 보다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듯 합니다.

두 마리의 뱀을 비교해 보면 턱의 크기와 위치 조절만으로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진 뱀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별로 가공도 하지 않았는데 나무 껍질 몇 개만으로 이런 녀석들을 만들어 놓은 게 참 신통방통하네요.

 

아무래도 판매하는 녀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주인장분이 만드신 걸까요.

 

 

 

놀라운 녀석이 너무 많아서 우동 기다리는 동안 지루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진짜 이 레벨이라면 세상에 저런일이에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나뭇가지에 구멍만 몇개 내 놓은게 책이 되어버리는 것도 놀랍고, 곰방대를 물고 엎드린 캇파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여유도 놀랍습니다.

우동 먹으러 와서 뜻밖의 횡재를 한 기분입니다.

 

 

 

이 조각상에는 가격이 붙어있는 걸로 봐서 일단 판매도 하고 있는 듯 하네요.

일본의 전통 춤을 형상화 했는데, 사람 형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데포르메를 통해 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는 수준이 훌륭하네요.

 

뒤에 꽂혀있는 책들은 오래된 세계명작들이라서 저한테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달과 6펜스, 변신, 광인일기, 채털리 부인의 사랑, 대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등...

자기가 좋아하는 책, 음악, 영화등이 다른 사람의 취향과 일치하면 그만큼 친근감이 들 수가 없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니나 제가 여행 기념품을 많이 사는 성격이었다면 꽤나 구미가 당길만한 곳이네요. 평범한 우동집이었지만.

예전 일본 가옥에서 사용하던 냄비의 재현도 잘 되어 있고, 밑에 불을 지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향초를 놔 둔것도 포인트네요.

 

우동을 먹으러 온 건지 조각박물관에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시선을 뺏는 녀석들이 많습니다.

 

 

 

우동 주문한 것 치고는 꽤나 기다렸지만 조각품들 덕분에 지루한 줄 몰랐네요.

엄니에게 카가와 우동의 맛을 제대로 보여드리기 위해 선택한 붓카케 우동입니다.

 

보통 한국은 국물있는 우동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카가와현에서는 국물 우동보다 이런 우동이 더 인기입니다.

원래 우동은 국물 맛이 아니라 면 맛으로 먹는다는게 기본이라, 다른 국수와 달리 첨가되는 양념이나 소스가 적은 편이죠.

국물에 푹 담궈 나오면 면 자체를 즐기기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국물없는 면에 간장을 살짝 쳐서 먹는 방식이 보편적입니다.

 

거기다 싱싱한 날달걀을 하나 넣으면 우동의 온기 때문에 살짝 반숙처럼 익어버리고, 그게 간장의 짠 맛을 중화시켜 부드러운 맛을 만들어 주죠.

저처럼 흰쌀밥에 날계란 올려 간장에 비벼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장하는 맛입니다.

 

명성대로 이 쪽의 우동은 인스턴트 면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떡을 먹는 것 같은 쫀득함과 탱탱함이 입안을 사로잡습니다.

면 맛으로 먹는다는게 인스턴트 우동만 먹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 곳 우동을 먹으면 금새 납득이 갈 것 같네요.

 

심지어 국물 속에 담긴 우동면도 상당히 오랫동안 탱탱함이 유지된다고 하니 역시 우동에 프라이드를 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젓가락 놓는 곳마저도 일반 음식점과는 크게 차별화 된 느낌이라 먹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거의 가공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세심하게 만들어져 있으니 놀랍기 그지없네요.

만약 만든 분이 우동집 사장님이라면 이거 다른 의미로 재능의 상당한 낭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면서 조각들 정말 잘만들었다고 말씀을 드리니 왠걸 주인장분이 아니라 카운터석에 앉아있는 아저씨 한분이 씨익 웃으시네요.

이곳 주인장분은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인데 이런 게 취미라서 만들어 갖다놓는다고 합니다. 그냥 손님 중 한분이 이걸 만들었다니 숨겨진 놀라움입니다.

 

몸도 굉장히 건장하고 굵은 수염이 인상적인 육체파 아저씨였는데 웃으면서 잘 만들었냐고 물어보십니다.

재미있는 구경 잘 하고 간다고 인사하고 나오면서 참 세상에는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많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식사 후 호텔에 들어와 푹 쉽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강행군 하기엔 엄니의 체력이 걱정이니까요.

일반적인 토요코인과는 다른 거대한 방이라 쉬는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엄니는 여행 갈 때 꼭 보이차와 간략한 다기 세트를 들고 오십니다.

샤워 후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놓고 어제 편의점에서 사 놓은 군것질거리와 함께 보이차를 우려 마셨습니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중에는 이런 느긋함을 발휘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피곤해 죽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이번엔 여유가 넘쳐나니 이렇게 중간에 보이차도 마시고 하네요. 이래도 손해보는 느낌이 없는 것이 자유여행의 장점이겠죠.

 

4시까지 푹 쉬고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봅니다. 아직 덥긴 하지만 그래도 정오보다는 훨씬 낫네요.

굳이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갈것도 없이 조금만 걸으면 갈 수 있는 아케이드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여기서부터 직선으로 주욱 이어지는 아케이드는 카가와현에서 가장 큰 규모라서 꽤나 볼만하죠.

자전거 여행 때 폭우 때문에 우연찮게 하루 묵어갔는데, 리츠린 공원에서 감동을 받고 하루 더 쉬기로 했었습니다.

이곳 아케이드를 돌아다니다가 헌혈센터가 보여서 오랜만에 피도 좀 뽑아주고 간 추억이 있네요.

너무 친절하고 시설이 깔끔해서 자전거 여행으로 녹초가 된 저에게는 헌혈 센터조차도 포근한 휴식 공간이었습니다.

 

 

 

역시 거대 빌딩에 백화점이 밀집한 대도시 상점가보다 이런 아케이드가 더 볼만하고 걸어다니는 여유가 있죠.

물론 타카마츠가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다보니 아직 유지되고 있는 것이겠지만, 덕분에 관광객들은 좋은 구경이 가능합니다.

 

당시 일본에는 유루캐러가 인기몰이중이라 이곳에서도 하나 만들어 놓았더군요.

타마치라는 아케이드 이름에 걸맞게 타마지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뜻하는 오지상과 의 결합이네요.

 

 

 

타카마츠에서 가장 큰 아케이드답게 규모면에서는 오사카 아케이드와 비교해도 작지 않습니다.

물론 유동인구도 적고 해서 가게들은 모두 소박한 편입니다만.

 

엄니도 느긋하게 이곳저것 돌아보는데, 60% 할인중이라는 가방 가게에 들어가서 한참을 고민하시기도 했습니다.

유명 고가 브랜드는 아니지만 엄니가 보기에 굉장한 퀄리티여서 눈길이 간다고 하시네요.

악어 가죽같은 백이 60% 할인해서 한국돈으로 30만원 정도엿습니다만 엄니 생각으로 한국에서 이 정도 사려면 백만원은 할 거라 하십니다.

할인가가 진짜라면 원래 가격이 100만원쯤 하는 편이니 틀린 건 아니겠죠.

 

그 정도라면 제가 선물로 사드릴 수 있다고 옆에서 바람을 넣었지만 한참을 고민하다가 역시 그냥 나오시네요.

여행 중에 먹을거리 말고는 쇼핑이란 걸 거의 하지 않는 성격이라 결국 매번 빈손으로 돌아오십니다.

 

이럴 때는 그냥 제가 아무 말 없이 덥석 구입해 버려야 하는 것일지.

 

 

 

타마카츠가 작긴 해도 카가와현의 최대 도시인 동시에 오카야마로 통하는 본토와의 연결점이기 때문에

비지니스적으로 왕래가 많은 곳인 듯 합니다. 작은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캡슐 호텔 선전까지 걸려있네요.

캡슐 호텔은 짐 정리하기도 거의 불가능하고 프라이버시가 거의 없는 희한한 공간이라서

개인적으로는 거기 갈 바에 그냥 넷까페에서 눈 붙이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건널목을 몇 번 건너도 아케이드는 계속 이어집니다. 길이로 치면 이대로 타카마츠 역까지 갈 수 있어서 상당한 편이죠.

이 정도라면 타카마츠가 시골이라고 해도 못 살게 업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물론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사치품 브랜드로 치면 이 아케이드 전체를 통틀어도 오사카의 백화점 하나만도 못하긴 합니다만.

엄니는 옷가게 같은 곳에도 이곳저곳 들리며 흥미로운 눈으로 제품을 찾아보시네요.

알고보니 엄니가 입을 옷이 아니라 2살짜리 손자에게 사 줄만한 옷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제가 조카를 싫어해서는 아니고, 2살 아이는 워낙 성장도 빠르고 해서 옷을 많이 사 봤자 별 소용이 없기에

그만 좀 사라고 말씀을 드리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나 더 입히고 싶은 게 할머니의 마음인가 봅니다.

 

 

 

아케이드 전체에 지붕이 달려있긴 하지만 햇빛이 안들어오는 건 아니라서 오래 걸으면 꽤나 지칩니다.

중간중간 가게에 들어가면 시원한 에어콘 때문에 살 만 하지만 역시 정오에 나오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군요.

 

쇼핑을 즐기는 부류라면 구경할 거리가 많겠지만 엄니와 저는 기본적으로 돌아갈 때 큰 슈퍼에 들릴 생각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편의점 도시락이라면 질겁을 하시는 엄니라도 이곳의 도시락은 먹어도 배가 안 아프다고 좋아하시는 편이라.

 

물론 여기까지 와서 편의점 도시락만 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곳 아케이드에서 먹을 것도 충분히 조사해 왔습니다.

저녁까지 우동을 먹을 순 없으니 이 곳의 다른 먹거리를 알아봤는데, 닭다리가 그렇게 유명하다더군요.

 

 

 

아마도 이쪽 아케이드에서는 가장 큰 서점일 키노쿠니야가 보여서 잠깐 들어가 봅니다.

찾고싶은 책이 있었는데 혹시 팔까 싶어서 들어가 봤는데 재고가 없네요.

 

일본에 그리 자주 가는것도 아니고, 한국 서점에서 대행 주문하면 시간이 너무 걸려서 귀찮은 관계로

갈 때마다 서점에 들러보는데 역시 인구가 적은 도시의 서점은 그렇게까지 다양하게 책을 구비하진 않더군요.

 

 

 

 

철물점 모습이 재미있어서 한 장 담아봤습니다. 음식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릴법한 녀석들이 많네요.

입구에 나와있는 거대한 철판은 그냥 장식용이겠죠? 저걸 들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슬슬 저녁이 되어가니 미리 조사해 놓았던 음식점으로 들어갑니다.

 

음식점이 아니라 술집 같은 분위기더군요. 하긴 닭다리 전문점이면 맥주가 안 나올수 없겠죠.

술을 별로 마시지 않습니다만 여행 분위기라도 내 보자 싶어서 한 잔 시킵니다. 엄니도 한 모금 마셨네요.

 

술안주로 참 좋아하는 와사비문어입니다. 일본의 술집에 들어가면 꼭 이 녀석만큼은 시키게 되네요.

짭쪼름한 맛에 와사비의 찡한 향기와 문어의 탄력이 참 조화롭다는 느낌입니다.

 

 

 

술집이라 그런지 밥이 될만한 요리는 별로 없고 해서 그냥 이런 것만 먹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간식거리 많이 살 생각이라서 말이죠.

 

더운 여름에 괜찮겠다 싶어서 주문한 토마토와 가지절임입니다. 시큼한 폰즈소스가 입맛을 돋구는군요.

가지가 여름에 그렇게 좋은 야채라고 해서 일본서는 상당히 인기가 있습니다.

 

술집은 다들 그렇긴 하지만 이런 녀석도 가격이 600엔 정도 하기 때문에 싼 편은 아니네요.

 

 

 

타마카츠의 명물 요리인 호네츠키도리(骨付鳥) 입니다. 뜻 그대로 뼈가 붙은 닭이죠.

 

닭요리는 닭요리지 싶지만 지역 특산으로 구분된 만큼 먹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엄선된 닭을 후추와 마늘, 소금으로 간을 한 후 오븐에 장시간 구운 녀석입니다.

굽는 방법에도 뭔가 방법이 있는 건지 일반적인 오븐구이와는 식감이 좀 다르네요.

 

특이하게도 이 호네츠키도리에는 노계와 영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식감의 차이가 가장 큰데, 영계는 부드럽고 탄력있는 느낌이지만 노계는 사나이의 닭이라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쫀득하고 강렬한 맛이죠.

 

엄니는 영계를 시키고 저는 노계를 시켰습니다. 위 사진이 엄니가 드신 영계.

 

 

 

제가 먹은 노계는 독특함으로 치면 영계보다 더하네요.

오븐에 상당히 오래 구웠는지 껍질은 거의 쥐포처럼 되어 있고 살은 일반적인 양계장 닭에서 느낄 수 없는 쫄깃한 육질입니다.

여성분이나 노약자는 노계 먹지 말라는 말이 허투로 나온 게 아니더군요. 공을 들여 꼭꼭 씹으면 그 식감이 훌륭합니다만 엄니에게는 무리일 듯 합니다.

 

술안주라 그런지 굉장히 짭니다. 일본인이 싱겁게 먹는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와전된 것 같네요.

한국에서는 달달한 치킨이 유행이기도 하지만 짠 편으로 친다면 한국의 어떤 닭보다 짭니다.

하지만 고기 자체의 질을 속이지는 않은 게, 육즙도 굉장하고 쫄깃함에 이빨이 즐거워 질 정도로 매력이 있습니다.

 

확실히 맛은 있어서 엄니도 깔끔하게 한 조각 다 뜯으셨죠. 닭 자체의 레벨이 꽤 좋은 편입니다.

입가심 하라고 테이블 앞에는 양배추를 잘라 놓아주는데, 이건 리필이 가능하니 많이 먹어가면서 닭을 뜯는게 좋을 듯.

 

가격이 닭다리 하나에 8000원이 넘으니 결코 저렴한 편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맛이니 먹어볼 만 하더군요.

저처럼 말린 오징어도 신나게 뜯어먹는 이빨을 가진 사람이라면 노계쪽도 도전해 볼만 합니다. 씹히는 맛이 정말 강렬하니까요.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장할 법 합니다.

 

 

 

타카야마에는 호네츠키도리 집이 상당히 많은데 굳이 이 곳을 선택한 건 가게 이름이 재미있어서였죠.

 

'요리도리미도리' 라고 읽는데, 이게 원래는 저 한자가 아니라 '選り取り見取り'라고 해서

한국어로 치면 '골라골라~골라잡아~'할때 쓰는 그 단어입니다. 그걸 말장난으로 승화시킨 것이죠.

 

단순히 가게 이름이 재미있어서 들어간 곳이지만 후에 알고보니 이곳 아케이트에서도 역사가 깊은 명물 가게였다더군요.

 

 

 

아케이드 상점은 아직 옛날 향기가 많이 남아있어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오사카의 도톤보리를 가로지르는 신사이바시(心斎橋)나 센니치마에(千日前) 아케이드는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완전히 신식화되어 남아있는 건 거의 옛 걸을 흉내낸 듯한 가게밖에 없는데

이곳은 여전히 거주민들을 위한 일상용품점도 많이 남아있고, 옛날 생각나게 만드는 선술집도 있고 해서 정취를 느낄 수 있었네요.

 

가볍게 걷고 식사만 해도 3시간을 충분히 넘길 수 있는 크기라서 조금 지친 발걸음으로 돌아갑니다.

중간에 큰 슈퍼는 혹시 문 닫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영업중이더군요.

내일은 닐씨에 관계없이 조금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간식거리도 든든히 챙겨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낮에 고생 좀 하겠지만 나름 일찍 호텔로 돌아올 예정이라 쉴 시간은 넉넉할 것 같네요.

 

호텔에 돌아가 TV를 트니 연일 맥도날드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중국 맥도날드 공장에서 맥너겟 만들 때 유통기한이 지난 닭을 섞는다던가

라인에서 떨어진 닭고기 뭉치를 다시 넣는다던가 하는 영상이 공개되어 전국이 떠들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본 맥도날드에서는 당분한 맥너겟 출하를 중시하겠다고 발표하고 난리가 났었죠.

 

제가 그렇게 설명드리니 엄니는 '한국에서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하고 쿨하게 넘어가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씁쓸하네요.

 

 

연못 안에 위치한 조그만 섬에 살짝 왜가리 한 마리가 숨어있네요. 덥긴 더운가 봅니다.

옆의 거북이로 추정되는 녀석은 유유히 물 속을 유람중인데 말이죠.

왜가리는 거북이 먹지 않는건가 모르겠습니다.

 

 

 

공간 활용면에서는 참 이런 낭비도 없다 싶은 공원인데, 그게 매력으로 다가오니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겠죠.

햇살이 따갑지만 않으면 배를 한척 타고 이 연못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은데.

 

엄니가 더워 죽겠으니 그건 못타겠다고 하셔서 깔끔하게 포기합니다.

그냥 이렇게 풍경만 봐도 충분히 아름다우니 아쉽진 않네요.

 

 

 

당시엔 카메라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망원렌즈가 없었습니다.

리츠린 공원에서 유일하게 빨간 색 다리가 저 멀리 보이는데, 다리보다 높은 곳에서 담을 수 있는 위치는 여기뿐이죠.

망원으로 당겨 찍으면 색의 대비가 참 보기 좋겠다 싶었는데 그게 안되니 조금 아쉽습니다.

 

위에서 보니 확실히 느껴지는게 이 공원 크기는 참 큽니다.

엄니와 저도 모든 길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느긋하게 걸으면 2시간이 출쩍 넘어야 하기도 하고 날씨가 워낙 더워서.

 

관광객들은 관광지 한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데 일종의 조바심 같은 게 생기기 쉬우니

이곳을 마음 편하게 오랫동안 둘러보려면 조금 더 수양을 하고 와야할 듯 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환산화각 70mm 정도로 최대한 당겨서 담아봅니다. 그것도 살짝 크롭해서 이 정도.

200mm 이상의 렌즈만 있었으면 제 의도대로 왼쪽의 소나무 조금과 휴게소를 양 쪽에 끼운 상태로 다리를 담을 수 있었을텐데.

 

 

 

자전거 여행 중 늦봄에 찾아온 이 곳에서는 고양이들이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나무 밑에 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큰걸 싸는 녀석들의 사진도 찍었죠.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다가와서 그냥 귀찮다는 듯이 살짝살짝 자리를 피하는 녀석들에게서 봄의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여름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네요. 다들 어디 간 걸까요.

 

 

 

정원 산책을 마치고 입구 근처에 있는 사누키 민예관에 들어왔습니다.

카가와현의 주민들이 예전부터 사용해 오던 각종 민속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죠.

공원에 들어올 때 입장료를 내기도 했으니 이런 전시관은 전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사실 문화재라고 할 수준은 아니리 입장료를 받으면 들어올 사람이 별로 없기는 합니다.

 

엄숙하게 관리되고 있는 중요 문화재와는 달리 사람 손때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구들을 전시해 놨기 때문에 나름의 매력이 있네요.

 

 

 

엄니께서 참 마음에 들어하셨던 녀석입니다.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놓으셨다네요.

 

집에 하나 있으면 거실에서 TV보며 밥 먹을때 요긴하게 쓰일만한 상입니다.

전시품이 990점이나 되는 꽤나 규모가 있는 민예관인데,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고 소소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정도랄까요.

 

 

 

아마도 증류주를 만들 때 사용하던 가마였던 것 같습니다.

증류주 만드는 방법은 아시아지역 거의 비슷비슷하지만 그 와중에 저렇게 살짝 그려놓은 그림이 포인트를 주더군요.

어느 나라나 예전 서민들은 다들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지만 이렇게 조그만 삶의 여유는 가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나 여자들 장난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서민들의 장난감이라는 느낌이 확 살아나는군요.

표면을 봐서는 돌맹이를 적당히 깎아 색칠한 듯 보이는데, 세련되지 않은 완성도가 오히려 정겨운 느낌입니다.

 

 

 

슬슬 구경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출구 옆의 토산품점에 들어가려는 순간 제 눈에 들어온 바이크입니다.

저도 여유만 있다면 구입하고 싶지만, 사하라 마라톤 동료인 나침반님이 눈독을 많이 들이던 듀크 390 입니다.

 

원래 신뢰성이 가장 중요한 마운틴 바이크를 전문으로 만들던 회사였는데

일반 로드바이크 시장에 뛰어들어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죠.

 

400cc 이하의 저배기량 모델들은 가격 절감을 위해 부품을 좀 저렴하게 사용하는 편인데

이 듀크 시리즈는 125cc 모델에도 굉장히 고급 부품들도 도배를 해서 동급에서는 최고의 성능을 자랑합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나 자국 모델이 넘쳐나는 일본에서 유럽 회사의 바이크를, 그것도 매니아 지향 모델을 보게 되니 신기합니다.

일본에서는 가격대 성능비로 혼타나 야마하 등의 자국 모델이 훨씬 좋은데 말이죠.

바이크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한 매니아층이 많아서 이런 녀석도 잘 팔리나 봅니다.

 

 

 

토산품점은 다양한 먹거리와 선물용품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에어콘도 빠방하고 자리도 마련되어 있어서 휴식을 취하기 좋더군요.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35도까지 올라가고 직사광선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던 상황이라 엄니와 저에게는 천국같은 곳입니다.

 

가게를 둘러보니 묘할 정도로 올리브를 사용한 제품들이 많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올리브 사이다나 올리브 콜라 같은.

알고보니 카가와현의 조그만 섬인 쇼도지마(小豆島)의 특산품이라고 하는군요.

올리브 과즙 1% 함유라고 당당하게 적어놓은 사이다라서 약간 김이 빠집니다만 표지 그림도 정겨운 느낌이고 참 머리 잘 쓴 상품이다 싶어서 하나 구입해 봅니다.

 

 

 

카가와현의 각종 지역 특산품들이 아기자기하게 몰려있습니다.

캐릭터 상품 만드는데 천재적이다 못해 좀 기괴하게까지 보이는 일본이라 상품명들이 꽤나 슈르합니다.

일본어 아시는 분들은 쉽게 웃을 수 있겠는데, 설명하기는 귀찮으니 패스.

 

타카마츠의 특산품인 안마리다-(あんまりだー)는 꼼꼼한 표지가 참 인상적이네요.

머리 부분은 시코쿠 섬의 모양을 본떴고, 눈썹은 잔멸치, 코는 마늘로 표현했습니다.

제품 자체가 잔멸치와 마늘을 넣은 지역 특산 된장이니까 아이디어가 참 돋보이죠.

 

 

 

카가와현의 특산품중 하나인 마늘을 이용한 여러 상품들도 재미있습니다.

타카마츠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코토히라(琴平)라는 마을에서 만든 '갈릭 사무라이'입니다.

코토히라는 콘피라(金毘羅)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 신사가 위치하고 있죠. 13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야자만 볼 수 있는 난이도 높은 장소입니다.

 

 

 

엄니나 저나 기념품에 별 관심이 없고 여행중 짐 되는 물건은 사지 않는 주의라서

여기 앉아서 먹을 것만 구입합니다. 밀가루 뻥튀기 같은 구슬을 알록달록하게 올린 소프트크림을 한 번 먹어보기로 했죠.

맛은 그냥 달달하고 크림 수준이 그렇게까지 황홀하진 않았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좋습니다.

 

일본 소프트크림이 수준이 높긴 해도, 홋카이도와 나가노현의 목장에서 바로 짜낸 우유로 만든 소프트크림을 먹어보니

다른 지역의 소프트크림이 장난처럼 느껴지는 탓에 이곳의 크림도 그렇게까지 대단한 느낌은 아니었네요.

 

 

 

포장해가지 않고 바로 먹을 경우엔 구입증명을 대신하는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올리브 사이다는 고풍스러운 디자인과 정겨운 표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살짝 부드러운 향기와 맛이 첨가된 사이다 맛이네요.

 

사이다는 사이다니까 뭔가 대단히 특별하진 않지만 확실히 단순 사이다와는 조금 다른 향기가 느껴집니다.

제가 탄산음료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더위에 지쳤을 때 한모금 마시면 목이 시원하네요.

 

더위에 지치긴 했지만 리츠린 공원을 아침 일찍 찾은 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뒹굴거리다가 늦게 출발했으면 완전히 녹초가 될 뻔 했네요. 숙소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니 돌아가서 좀 쉬기로 했습니다.

엄니의 체력이 여행중 최고의 주의사항이기 때문에 무조건 느긋하고 천천히가 모토입니다.

 

일단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걸어가다가 뭔가 먹을만한 것을 찾아봐야겠네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라 그림같은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소나무 분재는 이미 소나무가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빛을 발하고 있더군요.

 

분재가 식물의 자연적인 성장을 배제하고 인위적으로 사육하는 형태라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좀 있지만

특이하게도 식물은 분재처럼 인위적으로 성장을 조절하면 사실상 늙어죽지 않는다고 하네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 분재는 손바닥 두 개만한 화분 속에서 500년 가까이 멀쩡히 살아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랄 건, 이곳 리츠린 공원의 분재 소나무들은 극단적으로 크기 조절을 하지는 않고 그냥 가지를 쳐 주는 정도라서

있을 수 없는 조그만 크기로 유지되거나 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 위안이 되는 듯 하네요.

 

 

 

인공적으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조그만 폭포도 있습니다.

조그만 폭포가 있는 정원도 일본 곳곳에 존재하긴 합니다만 그건 척 봐도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올려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이쪽 폭포는 정말로 산이 위치한 곳에서 떨어지고 있어서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공원 규모에 비하면 아주 작은 폭포라서 그냥 재미삼아 구경할 만 하더군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좋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예술적인 감각을 고려해 만든 정원도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이 모습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갈 지 상상이 되질 않네요.

 

나무를 관리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인데, 거의 자식을 기르는 기분으로 관리하지 않을까 싶네요.

일본식 정원에 넓은 공간이 더해지면 이런 느낌이 나온다는 것을 이 곳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엄니도 공원 풍경이 마음에 드시는지 안 찍던 사진도 한 번 찍어보라 하시네요.

우연이지만 빨간 꽃이 장식된 옷과 푸른 공원이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와서 사람도 별로 없는 터라 느긋하게 사진도 찍고 산책할 수 있었죠.

아무리 넓어도 관광객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가능하면 아침 일찍 오는 게 좋습니다.

 

 

 

 

넓은 공원이라도 한 바퀴 산책할 동안 다양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지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 다리 건널때 빠지지 않을까 조심하는 기색을 많이 보이더군요. 그럼 여유있는 어른들은 또 한 번 웃어주고.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엿보입니다.

인공적인 직선이 조화에 방해되지 않도록 대각선 형식으로 이어붙여 만든 다리는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립니다.

완전히 구불구불한 진짜 나무다리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인공미가 남아있는 공원의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할까요.

 

 

 

 

예전에 이 공원을 혼자 소유하고 있던 영주들은 참 호사스럽게도 놀았다 싶습니다.

뭐, 실제로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 일쑤라서 이런 데서 스트레스 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오카야마의 코라쿠엔(後楽園)이라는 정원은 영주가 혼자서 정원에서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해서

업무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즐길 수 있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때때로 일반인도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시도였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즐기는 한국의 정자와 달리 자기 거점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이쪽 사람들의 심리를 나타내는 곳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연못을 끼고 돌아가는 길은 어느 정원에서나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꼽힙니다.

정갈하게 세워진 대나무 펜스가 운치를 더하는군요.

 

보통 이런 길은 중간에 조그만 언덕을 끼고 살짝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울창한 나무 아래를 걷다가 서서히 밝아지며 넓은 연못의 풍경과 다시 마주하는 그 구간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이름난 정원일수록 미적 만족감을 위해 정말 온갖 정성을 쏟았다는 느낌이 확연히 드는데

그러나 보니 정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미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동선을 따라가며 감상하는 아름다움은 오카야마의 코라쿠엔이 놀랄 정도로 훌륭합니다만

이곳은 크기를 충분히 살려서인지 느긋한 기분으로 음미하며 산책하기에 좋은 느낌이 듭니다.

 

 

 

단풍과는 거리가 먼 계절이었지만 우연인지 아주 살짝이라도 단풍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리츠린 공원의 가을 모습이 매우 기대가 되는군요.

 

타카마츠는 가볍게 여러 번 가도 느낌이 바래지 않는 여행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가 생기면 가을에도 한 번 찾아가고 싶습니다.

 

 

 

회유식 정원은 걸어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들이 치밀하게 계산된 그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동선을 만들때나 언덕을 올라가는 길을 만들 때도 그 장소에서 보이는 풍경을 고려하고 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걸어가다 보면 '이 곳은 노리고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딱 들게 만드는 곳이 나타납니다.

규모가 큰 공원이다 보니 왠지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지는 풍경이 이곳저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군요.

 

 

 

성수기때는 온갖 관광객들이 저 다리 위에서 포즈를 잡느라 이런 느긋한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죠.

여름은 살짝 비수기이기도 하고 아침에 온 덕분에 그림같은 풍경을 이물질 없이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봄이나 가을, 혹은 눈이 쌓인 겨울의 모습을 이렇게 찍으면 황홀하겠지만 기회 잡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아침부터 30도가 넘어가는 폭염이라 조그만 언덕 하나 넘어오니 온통 땀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절묘하게도 언덕 넘어오면 조그만 매점이 영업중이죠. 빙수 하나 사먹으며 잠깐 휴식을 취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할까, 오카사나 쿄토 같은 찜통과 달리 이곳 타카마츠는 지형상 습도가 그렇게까지 높지 않기 때문에

햇살은 강하지만 그늘에서 쉬고 있으면 그나마 서늘한 편이죠. 시골에 속하는 곳이라 도시의 지열도 별로 높지 않고.

 

 

 

연못으로 흐르는 조그만 개천에는 굉장한 색대비를 보여주는 이끼가 보송보송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모두 계산해서 주기적으로 다듬어 주고 있죠. 이런 정성을 놀라울 따름이죠.

 

물 속에 색을 입히는 느낌이 듭니다. 한여름이지만 소나무보다 더욱 강렬히 생명력을 발산하는 듯 하네요.

 

 

 

그늘에서 쉬는 건 좋은데 일본 정원의 최대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워낙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 봄에서 가을까지 그늘에서 잠깐 멈춰서기만 하면 전투모기들이 달려들죠.

 

일반 모기가 아닌 군화 뚫는다는 그 줄무늬 모기입니다. 이 녀석들 특징은 손으로 저어도 쉽게 도망가지 않고 장렬하게 달려든다는 점이죠.

엄니도 잠깐 쉬다가 결국 몇 초만에 몇 군데 물리고 말았습니다.

 

리츠린 공원은 개방적인 곳이 많은 편이라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나는 편이고

수풀 아래 산책길이 많은 작은 정원들은 지옥과 같은 가려움을 극복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 거리는 저같은 사람들은 멈춰설 때가 많기 때문에 보통 한 바퀴 돌면 대여섯 방은 물리고 시작하죠.

 

 

 

지금 엄니와 저는 공원 내의 7개 연못 중 남쪽 연못에 서 있는데

이 남쪽 연못에서는 유일하게 연못을 한 바퀴 도는 조그만 관광선이 영업중입니다.

한 사람 600엔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지만 엄니한테 물어보니 그런 덴 관심이 없다고 하는군요.

 

걸어서 다 둘러보긴 했으니 별 의미 없다는 것이겠지만, 그게 또 물과 맞닿은 상태로 구경하는 건 나름 매력이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날씨가 너무 덥고 배 안에서는 양산을 펼 수 없으니 이 햇살을 견디는 게 쉽지 않으니 타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공원 내에는 말차와 화과자를 즐길 수 있는 정자가 몇 군데 있습니다.

날씨 탓에 꽤나 지쳤으니 엄니와 함께 저기 들어가서 좀 쉬기로 했습니다.

 

예약을 미리 하면 간단한 식사도 즐길 수 있지만 외국인이 예약해서 식사하는 걸 본 적은 없네요.

굉장히 단아한 장소였는데, 입구로 들어가니 점원 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오늘 이곳에서 결혼식이 열리기 때문에 안내할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말이죠.

대신 결혼식 전에 내부를 둘러보는 건 괜찮다고 합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안으로 들어갑니다.

 

엄니는 결혼식 사진도 좀 찍어보라고 바람을 넣으셨지만, 일본은 결혼식 날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 들어가는 회원제(?) 형식이라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죠. 특히 카메라 들고다니는 외국인이 마음대로 참가하면 제 소심한 성격이 버티질 못할 겁니다.

 

 

 

정자의 마당은 나름 일본의 방식인 카레이산스이(枯山水)이긴 하지만 약간 엉성합니다.

문화재가 아니라 공원 내 상업 정자 속에서 이 이상의 수준을 바랄 수는 없겠죠.

 

더위 때문인지 비둘기도 소나무 그늘 아래 들어가서 움직이질 않네요.

 

 

 

정자 안에서 둘러보는 풍경 역시 어디 하나 모자란 부분이 없네요.

에어콘은 커녕 선풍기도 없는 정자라서 시원하진 않지만 오늘같은 날은 그나마 그늘에 앉아있으면 숨은 쉴 만 합니다.

활동성을 가진 마당이 아니라 눈으로 음미하는 이런 분위기는 서양인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될 것 같네요.

 

 

 

조금 있으면 결혼식이 열릴 연회장입니다. 벽 부분의 이렇게 살짝 올라간 부분은 토코노마(床の間)와 비슷하지만 엄밀하게는 조금 다르네요.

토코노마는 족자나 장식품을 놔 두는 공간입니다만 원래는 창문가가 아니라 벽 한쪽에 만들어야 하죠.

이 연회장은 사방이 트인 형식이라 벽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만든 것 같습니다.

 

토코노마에 등을 지고 앉는 이 자리가 연회에서는 상석을 차지합니다. 손님이 토코노마를 보게 앉으면 주인이 토코노마를 자랑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결혼식에는 아마 신혼부부 한 쌍이 저 푸른색 자리에 앉게 되겠죠.

 

 

 

한국의 거대 예식장에 비하면 꽤나 조촐한 편이지만 사실 이 곳에서 결혼식 여는 게 그리 싼 편은 아니죠.

리츠린 공원은 특별명승지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통 정원에서 국보급 위치를 의미합니다.

그런 공원 내에서 정자 하나를 빌려 결혼식을 연다는 게 그렇게 저렴하진 않을 테니까요.

 

가장 비싼 결혼식은 유명한 이세 진구 같은 특급 신사에서 열리는 결혼식입니다만, 전 그렇게 엄숙한 종교의식 분위기보단 이런 곳이 더 마음에 드네요.

 

 

 

한국으로 치면 폐백에 쓰이는 음식과 술 등입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으니 넘어가죠.

 

엄니는 이런 거 꽤나 보고싶어 하셨습니다만, 일본의 결혼식은 그렇게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3개월동안 홈스페이를 하며 매우 친해진 분의 따님 결혼식 때도, 청첩장을 다 보내 버렸기 때문에 그걸 받지 못한 저는 참석하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멀리서 사진 찍으면 되지 않겠냐고 엄니가 말씀하셨지만 아무래도 신성한 결혼식에 그렇게 도촬까지 해서는...

 

 

 

일본식 정원은 이런 카레이산스이 구조와 굉장히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바위나 자갈 등의 자연물을 이용해 그 상징성으로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는 형태죠.

자갈의 폭은 바다의 파도로, 바위나 조경수는 육지로, 그리고 자갈로 그 육지에 부딪히는 파문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연물을 이용해 자연을 축소한다는 발상은 추상화와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인공미가 남겨진 것 역시 일본식 정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네요.

 

 

 

전망좋은 마루에 앉아서 기다리니 말차와 화과자가 나옵니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 시원한 얼음말차로 부탁을 드렸죠.

 

이런 정원에서 판매하는 말차는 기본 레벨을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마실 만 합니다.

특히 함께 나오는 화과자는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귀여운 녀석들이라 카메라를 들이대게 만들죠.

 

 

 

저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화과자 자체는 그냥저냥입니다만

워낙 앙증맞게 만들어 놔서 보고 있으면 왠지 고양이가 자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요.

 

일부러 살짝 잘라서 속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내 봅니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이렇게 세심하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것이 참 허무한 듯 합니다만

운치를 즐기는 데는 이렇게 알맞은 것도 없겠죠.

 

말차를 마신 후에 과자를 먹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는 과자를 먼저 먹고 말차를 마시는 게 올바른 순서입니다.

과자를 먹고 나면 말차의 쓴맛을 중화시켜 주기 때문이죠. 뭐, 일본 사람도 굳이 그 순서를 지키지는 않습니다만.

 

 

 

마루에 앉아서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땀을 식힙니다.

중간중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주니 더위에 찌든 몸도 슬슬 풀려가는군요.

 

말차 한 잔과 화과자 한 조각을 앞에 놓고 극도로 조경한 공원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신선놀음인 듯 합니다.

결혼식까지는 시간도 좀 남아서 서둘러 떠나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엄니와 함께 한동안 앉아서 뒹굴거리고 있었습니다.

 

 

토요코인 호텔은 일본에서 체인점 수가 가장 많은 비즈니스 호텔이고

회원 카드를 만들어 놓으면 가격 할인, 10번 숙박에 1번 공짜 등의 혜택이 있어서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조식 수준이 가장 떨어진다는 게 아쉬운 점이죠. 엄니는 그냥 배만 살짝 채운다는 느낌으로 식사를 하시네요.

 

저야 뭐 자전거 여행 도중 한번 들어가게 되면 이런 조식이라도 감지덕지라 미친듯이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만

이번 여행은 느긋하게 여러가지를 즐길 수 있으니 조식에 크게 투자할 필요는 없습니다.

 

 

 

첫 번째 관광지인 리츠린 공원까지는 걸어서 10분 조금 넘게 걸립니다.

아침이지만 햇살이 꽤나 따가웠네요. 여행 내내 날씨가 나쁜 날은 없어서 좋았지만 매일 35도 가까이 올라가는 날씨는 꽤 버겁습니다.

 

겨울 오사카 여행때 엄니께서 피로 누적으로 몸이 안좋아진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속도를 좀 늦출 예정이죠.

리츠린 공원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호텔을 잡은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걸어가다 보니 미키 부지키(三木武吉)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타카야마 출신 정치인으로 일본 정치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인 '보수합당'의 공로자이기도 합니다.

정작 본인은 보수합당 후 양당 정치인들에게 버림받긴 했지만 말이죠. 합당한 자유민주당은 현재 당수가 아베 신조이니 뭐 그럴만도 하다는 느낌입니다.

 

 

 

정오쯤엔 너무 더워질 것 같아서 일부러 오전 8시에 일찍 출발했습니다만 아침부터 장난이 아닙니다.

엄니는 양산이라도 쓰고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하지만 땀이 줄줄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정오가 되기 전에 공원을 둘러보고 간단히 점심 한끼 한 후에 호텔에 돌아가 에어콘 바람을 좀 쐬어야 겠네요.

 

 

 

자전거 여행 중 들른 여러 공원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인상깊었던 리츠린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타카마츠에 와서 이 공원을 둘러보지 않는다면 큰 손해라는 느낌이죠. 시민들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1600년대 지어진 이 회유식 정원은 현존하는 회유식 정원중에서 가장 큰 공원입니다.

타카마츠를 비롯한 카가와현이 일본 내에서도 맑은 날이 많은 조용한 지역이라는 이명이 붙어있는데

그런 곳이라서 이렇게 산책을 즐기는 공원이 발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75 헥타르, 즉 75만 평방미터의 거대한 공원으로 도쿄 돔 16개 크기입니다.

 

 

 

오사카나 도쿄 등 관광객이 접하기 쉬운 곳에 위치한 회유식 정원은 생각보다 나무가 빡빡하고 길이 좁은 느낌이지만

리츠린 공원은 그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에 굉장히 널널한 느낌이 듭니다. 여타 공원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죠.

 

그 크기 때문에 상주 관리인원만 100명이 넘고, 사무실 등 기타 관리직까지 합하면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원입니다.

날씨가 덥지만 않았다면 3시간 넘게 느긋하게 산책할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 더워서.

 

특히 봄의 리츠린 공원은 흩날리는 벚꽃 덕분에 굉장한 풍경을 자랑합니다. 시민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휴식처이죠.

카가와현 전체 인구가 100만명인데 그 중 이 타카마츠시에만 64만명이 거주중입니다.

대구의 인구가 250만명인데 이렇게 금새 이름을 댈 만한 공원이 뭐가 있을런지. 기껏해야 수성못이나 두류공원쯤 될까요.

 

 

 

일본의 회유식 정원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분이라면 금새 느끼시겠지만

리츠린 공원은 내부에 산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그 풍경이 다른 정원과 사뭇 다릅니다.

 

저도 자전거 여행중엔 거의 사전정보가 없어서 이 곳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타카마츠에서 배를 타고 본토로 넘어갈 예정이었고, 당시 어마어마한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하룻밤 묵고 가려고 숙소를 잡았는데

프론트의 아가씨가 리츠린 공원은 꼭 보고 가시라고 추천해 주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벚꽃이 살짝 남아있었던 시기라 그 아름다움은 굉장한 인상을 남겼죠.

편안히 산책하는 사람들과 고등학생들의 브라스밴드 공연 등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리츠린(栗林)이라는 말은 한자 뜻대로 밤나무 숲이라는 의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리츠린 공원은 설립 당시부터 밤나무가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소나무를 주력으로 심었는데 어째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까지는 모르겠네요.

 

리츠린 공원에는 약 1400그루의 소나무가 있습니다만 놀라운 것은 이 중 1000여그루의 소나무가 장인의 손길을 거친 분재 소나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 전국의 분재 소나무중 8할이 카가와현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로 이 곳의 분재 소나무들은 모두 국가급 장인들이 매일매일 관리하고 있죠.

 

분재라는 행위 자체가 호불호 갈리는 것이라 싫어할 사람도 있을 듯 합니다.

일본의 회유식 정원은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공의 미를 가미하기 때문에 이런 분재 소나무가 예술품처럼 장식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네요.

그 덕분인지 전체적인 공원의 분위기는 매우 단아하고 정갈합니다. 자연 그대로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매우 기묘합니다.

 

 

 

공원 안에는 6개의 연못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수면만 보이는 연못도 있고 폭포가 떨어지는 연못도 있고 이렇게 연꽃이 핀 곳도 있죠.

 

워낙 더운 날씨인데다가 직장인 학생들이 출근하는 평일 아침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는 건 좋습니다.

저는 몰라도 엄니가 너무 더워하셔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죠.

 

 

 

회유식 정원은 산책하면서 음미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러 갈래의 길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리츠린 공원은 산과 언덕, 연못까지 널널하게 포함된 크기 덕분에 그야말로 산책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죠.

 

정갈하게 흐르는 하천 주위를 거닐면 여행은 이렇게 느긋해야지 하는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저 나무들이 단풍으로 물들면 그 모습도 절경중의 절경이죠.

사실 일본의 정원은 여름이 제일 애매합니다. 온통 푸른색 뿐이라 통일감은 있는데 화려함이 좀 부족하니까요.

 

 

 

정자에 올라가진 못하지만 멀리서 바라봐도 한 폭의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일본 최고의 공원이라 하면 오카야마의 코라쿠엔(後楽園), 카나자와의 켄로쿠엔(兼六園) 등을 꼽습니다.

저는 켄로쿠엔을 빼면 왠만큼 이름난 정원을 많이 가봤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곳 리츠린 공원 역시 코라쿠엔과 맞먹는 레벨이라고 생각하네요.

 

재미있게도 미국에서 선정한 일본 정원 1위는 직접 들어갈 수 없고 바라만 볼 수 있는 시마네현의 아다치 미술관(足立美術館)이었죠.

그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한 게 이곳 리츠린 공원입니다. 코라쿠엔과 켄로쿠엔은 TOP3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도 흥미거리입니다.

 

 

 

엄니가 도시관광을 싫어하는 면도 있고 저도 복잡한 곳을 싫어하는 관계로

사실 일본 여행으로 추천하고픈 곳이 이곳 타카야마 부근입니다. 딱히 이쪽으로부터 광고비를 받은 건 아니지만.

 

이 근처엔 우동도 맛있고 리츠린 공원도 있고 건축가 안도 타다오로 유명한 지중미술관도 있고

한두 시간만 전철 타면 분위기 좋은 쿠라시키 미관지구도 갈 수 있고, 적당한 번화가인 오카야마에도 갈 수 있으니까요.

 

쇼핑과 맛집, 남들 다 가는 유명 관광지를 즐긴다면야 오사카가 제일 좋겠지만 이 곳에서는 여유가 느껴지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렇게 나무 그늘아래 앉아서 편안히 휴식중인 엄니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엄니 사진 찍고나서 그늘로 들어갑니다.

아직 시간은 차고 넘칠정도로 남아있고, 오후엔 특별히 갈 곳도 정하지 않고 느긋하게 마을 상점가 주변을 돌아볼 예정이라서.

 

오사카 여행 당시의 참사를 기억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하루에 한 곳 아니면 두 곳 정도만 목표를 정해놓고 지극히 여유롭게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볼 것을 못 보고 돌아온다는 초조함을 느낄 필요가 없는 여행이라서 말이죠. 엄니도 그런 게 좋다고 하셨고.

어차피 일본은 중국이나 미국이나 호주처럼 압박감을 느낄 정도의 거대한 풍경 같은게 별로 없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이것저것 다 챙겨봐야 할 필요 없이 좋다 싶은 곳만 선택해서 느긋하게 즐기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천 그루가 넘는 분재 소나무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장인급이고

75만 평방미터 어디에서도 쓰레기 한 점 없는 통일성을 갖춘 이 공원은 얼마나 많은 인원의 노력이 들어가는지 상상이 안됩니다.

인구 64만명의 작은 도시지만 외국인인 저만 해도 볼거리를 줄줄 늘어놓을 수 있는 이 곳이 참 부럽게 느껴지네요.

 

새삼스럽지만 엄니하고 이렇게 5박 6일 정도 머물면서 구경할 수 있는 한국의 도시란 게 대체 어디인지 떠오르질 않습니다.

여행하고는 관계없이 올해 8월에 다녀온 전주의 한옥마을은 '이걸 관광지라고 선전중인가'싶을 정도였으니.

 

 

 

연못에 잉어과 거북이 풀어놓는 것은 오랜 전통인지 모르겠네요.

이런 정원들은 대부분 영주들의 놀이터였으니 혼자 느긋하게 즐기면서 이녀석들에게 먹이나 던져주고 했겠죠.

 

요즘도 거북이와 잉어들이 사람 그림자만 보이면 몰려들어서 고개를 쳐듭니다만 일반인은 이녀석들에게 먹이 주는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마 관리인들이 밥 주는데 익숙해서 그런 것이겠죠.

 

 

 

실제로 모든 곳을 다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올라가지 못하는 언덕과 정자도 있고 저렇게 하천 건너편에서 구경만 할 수 있는 곳도 있죠.

그래도 워낙 정비를 잘 해놔서 어딜 가나 셔터가 눌립니다. 어느 곳 하나 허투로 만들질 않았네요.

 

 

 

예전엔 실제로 저기서 유람선을 띄우고 유유자적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요즘엔 그런 거 없습니다.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연못 중앙의 정자 역시 지금은 멀리서 사진이나 찍을 수 밖에 없죠.

덕분에 그런 곳은 왜가리들이 마음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 입장에서야 왜가리 사진도 찍을 수 있으니 나쁠 거 없습니다.

 

 

 

엄니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해서 셔터 누르는 저를 무시하고 막 전진을 하기 때문에

엄니와 함께 한 여행이지만 엄니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어차피 그런 거 별로 아쉬워 하는 분도 아니라.

 

보통은 엄니가 미아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땀흘리며 쫓아가지만 리츠린 공원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네요.

덕분에 걷다가 좋은 풍경이 보이면 사진도 찍고 하면서 걸어가도 어차피 앞에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들어갈 수 없는 가옥이라도 소중하게 손질해 놓은 것은 변함없기 때문에 사진찍기 참 좋습니다.

저런 소나무는 분재임에 틀림없겠죠. 그냥 놔두면 절대로 저렇게 자라지 않습니다. 하긴 1400그루중 1000그루가 분재라고 하니.

 

동양인으로서야 그냥 아름답다 할 정도지만 서양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공원의 분위기가 매우 신선할 겁니다.

자신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공원과는 전혀 다른, 걸어가면서 미를 음미하는 회유식 정원에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이 많겠죠.

실제로 이날 아침엔 일본인 관광객들보다 서양 관광객들이 더 많이 보이더군요.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일본인도 많이 들어왔지만.

 

도시 어디서든 버스타고 10~30분만 이동하면 이런 정원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게 대구 사는 저로서는 참 부럽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