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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中部'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1.14  과거로의 여행 - 마지막 만찬 10
  2. 2014.01.12  과거로의 여행 - 센트레아 스카이 덱 10
  3. 2014.01.09  과거로의 여행 - 센트레아 공항의 닌자들 10
  4. 2014.01.05  과거로의 여행 - 나고야의 사치 & 향락 6
  5. 2013.12.24  과거로의 여행 - 무인역 8
  6. 2013.12.18  과거로의 여행 - 돌아가기 15

 

 

한계에 달한 더위를 뒤로 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오니 천국이 따로 없다.

원전사고 전의 끝도없이 틀어대던 에어콘과는 전혀 다르지만, 밖에 워낙 덥다보니 이 정도만 해도 시원하다.

시간은 충분히 남았고 해서, 배는 고프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뭐라도 뱃속에 집어넣고 가 보려 한다.

 

자리가 널널하면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는것도 괜찮겠지만 이곳은 그리 넓은 가게가 없다.

지방의 민자공항이다보니 역시 한도없이 크게 확장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 듯.

 

공항 내부 가게들은 아무리 봐도 한국과 차이가 커 보이는 것이

팔고 있는 물건들의 종류가 기본적으로 좀 다른 듯한 느낌이 든다.

인천공항의 수많은 가게들은 대부분 면세의 이익을 즐기기 위한, 다시 말하면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파는 느낌인 반면

이런 공항의 가게는 남한테 선물하면 딱 좋을 만한, 그다지 비싸지 않으면서 맛있어 보이는 과자 세트같은게 많다.

 

 

 

긴 줄이 서 있길래 뭔가 싶어 가 봤는데, 원래는 광장이었을 중앙 홀에서 뭔가 행사중이다.

어린이 놀이터 같은 구조물과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은것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선 진짜 이유는 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컵라면 시식회 때문이다.

 

닛신의 고급 컵라면 제품군인 라오(ラ王)를 시식하도록 하고 있는데

내 입맛엔 컵누들(カップヌードル)이 더 맛있지만, 일본에서는 단연 최고의 컵라면으로 인기가 높은 녀석이다.

라오 라멘은 1990년대 출시된 후 나름 인기가 있다가 점차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잠시동안 제품 단종을 한 후, 디자인과 내용물을 완전히 일신해서 2010년 다시 출시했는데

당시 일본에 있던 본인은 굉장히 저돌적인 광고로 승부하는 녀석이 참 인상깊었다.

 

처음엔 광고 보고 과연 라멘의 왕이라는 칭호를 마음대로 써도 되는가 싶었는데

돼지 사골로 국물을 낸 돈코츠 라멘의 경우, 합성식품이 아닌 진짜로 말린 돼지고기 챠슈와 건조 숙주나물 등

컵라면으로서는 최고의 격식을 차린 호화스러운 내용물을 보고 나름 납득은 했다.

 

가격도 한국돈으로 3600원 정도로, 일본 컵라면 시장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가지만

인스턴트 라멘의 한계에 달하는 갖가지 제조법을 배합한 녀석이라 다들 어느 정도는 납득 하는듯.

하지만 역시 개인적으로는 컵누들이 가장 맛있게 느껴진다.

 

이 더운날 저거 시식 한번 해 보려고 줄 서고 싶지는 않아서 패스.

하지만 아이들 놀이터와 함께 전시해 놓고, 간이 식탁에서 아이들과 함께 라멘 먹도록 한 발상은 꽤나 훌륭하다.

공항 라운지에서 이런 이벤트가 펼쳐지는 것도 상당히 인상깊다. 공항은 아이들에겐 별로 재미없는 곳일텐데, 발상이 좋다.

 

 

 

한국도 이제 인천공항이라는 걸출한 녀석이 생기는 덕에 감흥이 조금 덜하지만

센트레아는 확실히 넓지 않은 공간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깔끔함으로는 오히려 새로 개장한 하네다 공항보다도 더 느낌이 좋은데

출국장과 입국장을 층별로 분류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된 공간으로 띄워놓음으로서

출국장의 즐길거리에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이 든다. 입국장은 뭐, 거기서 즐길 사람 별로 없을테니 패스하고.

 

 

 

일본의 상당수 공항은 에도시대 일본의 상가 거리를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좁에 만들어 진 골목길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 보기엔 뭔 구멍가게 골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저 사람들의 전통이고, 국제적 허브인 공항에서까지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좋은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제일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군데군데 한국의 문화를 알리려는 센터나 전통 공예점 등이 입점해 있지만

공항의 분위기 자체만큼은 넓직한 서양식 인테리어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외국 관광객이라면 사람들 행렬에 좀 귀찮아지긴 해도 이런 좁은 골목길 분위기에서 이국적인 감성을 느낄 것이다.

 

 

 

에도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는 워낙 일본의 정체성이 흔들리던 시대라 그런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통 목조건물과 콘크티르 양옥 모양의 가게가 마주한 느낌이 재미있다.

실제로 격변하는 메이지 시대엔 저런 골목이 흔하게 보이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나름 자신들의 스피릿(?)은 보존했다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 서양 주택과 혼혈의 산물인 흰색 가옥들은 풍요로웠던 메이지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

 

다들 일정 레벨 이상은 맛이 있어 보여서 어디 들어갈까 꽤나 한참동안 고민한다.

결론은 줄 서 있지 않은 곳에 들어가기로. 역시 줄서서 기다려 밥 먹는건 본인 취향이 아니다.

 

 

 

센트레아는 보기보다 큰 공항이 아니라서, 사실 상점가가 그리 큰 편도 아니다.

하지만 동선을 잘 활용해서 구역마다 느낌을 전혀 다르게 표현해 놓은 점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시끌벅적한 시장길에서부터 새하얀 근대 서양식 건물 거리, 그리고 이렇게 저녁무렵의 술집 골목길 같은 느낌을 살리는 곳 까지.

 

이미지와 디자인의 힘을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잘 살린 상점가라는 느낌이다.

공항에서 이런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출국 전 마지막 한 방울의 외화까지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간편히 한끼 때우기엔 역시 라멘이 가장 취향에 맞지만, 왠지 이번엔 변화를 좀 주고 싶었다.

라멘을 제외하고 적당히 만족감 느끼게 다양한 녀석을 맛보고 싶어서, 뭔가 굉장한 바리에이션 식품 샘플이 놓여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전망대 쪽에 위치해서 바깥구경 하며 밥 먹기 좋은 '카멜리아'라는 가게. 간이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전망대 쪽은 사람이 꽉 찼고, 나처럼 혼자 먹는 사람에게는 그런 자리 좀처럼 내 주지 않는 듯 하다.

아무래도 이 가게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장사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즉 터가 좋다.

 

메뉴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천하재패 삼매경(天下取り三昧) 이라는 종합선물세트.

1620엔이나 하는 고가 식사다. 일본에서 단품 식사를 이만한 가격에 먹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이 정도 먹어줘야 할 것 같아 큰맘먹고 시켜 본다.

막상 나온걸 보니 나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많이 배부를 것 같지도 않은 일반적인 양으로 보인다.

 

반찬 개념이 없는 일본이라, 한국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냥 다양한 요리 조금씩 먹어볼 수 있는 간이 뷔페라고 할까.

 

 

 

만듦새가 김밥천국같은 수준이었다면 분노했겠지만, 가격대가 생각보다 높을 뿐 음식은 꽤 잘 만들어 나온다.

나고야의 대표 먹거리였지만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키시멘도 여기서 접해볼 수 있었다.

우동과는 달리 넓적한 면이 특징이 키시멘은 한국의 칼국수면을 좀 더 확대한 듯한 느낌을 준다.

넘기는 맛과 씹는 맛 두 가지를 잡기 위해 만들어졌다느 설이 있는데, 그냥 나고야 지역의 향토요리로 우동과 크게 다른점은 없다.

 

그 외에 은은한 녹차를 뿌려 먹는 장어덮밥이나 숙주나물과 돼지고기를 얹은 덮밥, 새우와 돈까스 등등

다양한 종류를 맛보기 위해서는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다. 각각의 양은 매우 적어도 다 먹고 나면 나름 든든한 느낌은 든다.

라멘 대신에 선택한 녀석 치고는 가격이 2배에 가까워서 약간 아쉬웠지만

먹고 불만이 생길 정도는 아니라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먹으라면 아마 먹지 않겠지만.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여전히 입이 허전해서 스타벅스에서 녹차 뭐시기를 주문한다.

바로 앞에서 주문한 세 남자 일행은 한국 여행객들이었는데, 주문은 어떻게 손짓발짓으로 넘어갔지만

스타벅스 직원이 주문하신 음료 나왔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걸 알아듣질 못해서 그냥 앉아서 수다떨고 있었다.

 

내가 도와줘야겠다고 일어서려는 순간, 일본인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에게 손짓으로 음료 나왔다고 알려주신다.

세 명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스타벅스 직원한테도 실실 웃으면서 농담 따먹기 비슷하게 잔돈가지고 장난을 친다.

저렇게 아무 곳에서나 스스럼없이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굉장한 능력으로 보인다.

난 밖에서는 뭘 해도 얼굴이 딱딱해져서 그런 농담 주고받기는 어려운데.

 

아무튼 가벼운 소동은 금새 진정되고, 난 시원하고 고소한 녹차 셰이크로 여유를 즐기기 시작한다.

중간에 그 세 명이 나한테 와서 영어로 '의자 좀 가져가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길래 고개 끄덕여 줬다.

영어로 물어봤으니 나를 한국인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고, 그럼 굳이 한국어로 대답해 줄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고보니 공항을 떠나기 직전에야 기억이 났는데, 지금 이곳에서 뭔가 내가 흥미가 동할 만한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도착 당시 그 포스터를 보면서 '돌아갈 때 시간나면 한번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탑승시간 지연으로 인해 충분히 시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스카이 덱과 상점가, 식당 등을 둘러본다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

 

원래 예정에 없던 녀석을 얼핏 기억에 놓은 것이니, 역시 그런 건 메모라도 해 놓지 않는 이상 쉽게 잊혀지는 법이다.

여행에 그 정도 아쉬움은 있어도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느 곳이든 굉장히 깔끔해 보였던 센트레아 공항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 장 담고 여권과 티켓을 꺼내든다.

비행기 창문 밖의 하늘 풍경도 여행 시작시 카메라에 담아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집에 돌아갈 때 까지 셔터를 누르는 일은 없다.

 

그렇게도 많이 가 봤지만, 한 번도 마음에 와 닿는 적이 없었던 나고야가 이번엔 조금 더 친숙해 진 느낌이다.

다른 여러 지역과 인연의 도움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한테 찍혔던 인상이 사라져서 나고야도 더 행복해 할 듯.

 

 

날씨가 좋은 건 얼마 남지 않은 여행시간 중에서도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지만

체감온도가 38도를 넘어가는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는 맑은 하늘도 원망스럽게 바뀔 수 밖에 없다.

 

스카이 덱 300m 전망대엔 어렵지 않게 신기루가 나타나고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많이 봤던, 지면이 수면처럼 반짝이고 있다.

도시 한복판 도로에서는 그 반사되는 모양이 좀 지저분해 보여서 감흥이 없지만

이곳처럼 깔끔한 바닥면에서 보이는 신기루는 잔잔한 호숫가처럼 깔끔한 모습이다.

 

 

 

구름은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렸기 때문에 밖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망대 가장 끝 쪽, 그러니까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에만

뭔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는 라인을 쭉 따라서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게 보통이지만.

 

이곳 센트레아는 인공섬 위에 만들어진 공항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을 방해할 만한 지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날씨 덥고 햇볕 좋기로 유명한 나고야 부근이기 때문에 이런 뻥 뚫린 공항이라면 당연 태양열 발전기가 큰 역할을 한다.

이곳의 천장 지역은 거의 전부 태양열 집광판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화창한 날씨라면 시간당 1000kw 정도는 생산한다고.

 

 

 

센트레아는 비행기가 이착륙하기에는 상당히 좋은 여건을 가진 인공섬이지만

어중간하게도 도쿄과 오카사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분주한 곳은 아니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국내선 이용률도 높아서 그럭저럭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현재는 적자 누적으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듯.

 

나고야 시민에게는 매우 중요한 항공 시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공항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서 찍었던 닌자 모형이나 토쿠시마 아와마츠리 등의 콜라보 홍보도 포함해, 공항 2층에 작은 상설 전시실까지 마련해 놓고

각종 박람회나 미술전을 개최하며 공항을 좀 더 사람들과 가까운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초대형 국제 공항처럼 필수적으로 외부 수요가 필요한 공항은 아니기도 하고, 토요타가 대주주라서 잘만 하면 유지가 가능할 듯.

내 입장에서도 나고야는 키소에 들르기 위한 가장 가까운 국제선 루트인데, 이 공항이 없어져 버리면 매우 곤란하다.

실제로 8월에 에어아시아의 초저가 항공을 타고 왕복 12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나고야를 다녀왔는데

바로 다음달인 2013년 9월부터 인천-나고야 선 항공편이 운항 중지되어 버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저가항공인데, 일본의 전일본공수(ANA)와 합작에 2012년 에어아시아 저팬을 설립하고

이곳 센트레아를 중심 공항으로 삼으며 국내선, 국제선 취항을 하고 있었다.

ANA 와의 합작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기업이 해체노선을 겪으며 인천에서 출항하던 도쿄, 나고야 행 저가항공도 모두 사라졌는데

에어아시아로 부산-도쿄를 세금포함 왕복 10만원에 다녀온 나로서는 매우 애석하기 그지없는 낭보였다.

 

하지만 ANA 는 에어아시아를 대체할 제휴 저가항공사를 다시 찾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저가항공 노선이 생기리라 본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천천히 걷고 걸어 어쨌든 전망대 끝부분까지 도착한다.

돌아가려면 다시 이 땡볕 거리만큼 이동해야 하지만 어쨌든 더위때문에 센트레아의 가장 큰 볼거리를 놓칠 수는 없다.

 

사실 항공기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이런 기계적인 전망대엔 관심도 없었다.

이번 여행엔 시라카와고와 키소 마을이라는 천혜의 풍경을 둘러봤기 때문에, 이 스카이 덱은 그냥 안주거리도 안 되는 심심풀이일 뿐.

 

사진 찍는 재미는 결과물이 아니라

조리개를 상당히 조여도 굉장한 셔터스피드를 보여주는 당시의 놀라운 쨍쨍함을 즐기는 곳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조리개 F7.1 ISO100 에서 노출보정을 0.3 스탑 올리고도 셔터스피드가 1/1000 초 가까이 나오는 환경이다.

정말 끝장나게 쨍한 하늘이 아니면 좀처럼 즐길 수 없는 셔터스피드.

이런 땡볕 아래서라면 아마추어라도 우사인 볼트를 찍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아무리 더워도 관광을 목적으로 쏘다니면서 이렇게 사진이나 찍고 있는 편이니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안전 장비 다 갖추고 저 지옥같은 항공기 반사열을 얻어맞아가며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노고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비행기 한 대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드리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일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직접 바라보게 되니 실감이 난다. 이런 모습을 눈에 새기고 진상 고객이 되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인천공항이 워낙 크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센트레아는 한적해 보이지만

사실은 4~5분에 한대씩 끊임없이 비행기가 이륙중이다.

 

공항이라는 곳의 특성상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한적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300mm 망원렌즈로도 끝까지 당겨낼 수는 없으니, 카메라 매니아들에게는 별로 쓸 곳이 없는 초망원 렌즈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서 좋을 듯.

 

 

 

비행기 이륙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서 있어서 접근이 힘들다.

대충 한적한 곳으로 가도 실제 거리상 별 차이는 없기 때문에, 항공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충분하다.

자세히 보니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착륙 시에 되도록 정면이나 정후면을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 하다.

 

나처럼 대강대강 자리 잡으면 이렇게 옆쪽 모습만 많이 찍히기 때문인 듯.

항공 사진은 가능한 한 정면에서 망원으로 크게 잡아내는게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다행히도 나는 비행기 사진 잘 뽑지 못했다고 낙담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냥 술렁술렁 찍을 뿐.

친환경 비행기라고 적혀있는 저 녀석은 재미있게도 프로펠러가 달린 녀석이다.

상당히 소형이라서 국내선 전용인 듯 한데, 시끄럽지만 않으면 재미있게 탈 수 있을 듯 하다.

 

 

 

비행기들은 상당히 빈번하게 이륙하고 있어서 사진을 담을 기회는 충분하지만

명당 자리는 전부 굉장한 카메라와 굉장한 렌즈를 끼워놓고 대기중인 사람들은 바글바글하다.

양심은 있는지 삼각대까지는 아니고, 모노포드를 장착한 카메라가 많다.

 

이렇게 더운 날에 옷깃 스치며 전망대 앞까지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멀뚱멀뚱 서서 먼 거리에서 대강 몇장 담아본다. 생전 처음 담아보는 이륙 모습인데, 그냥 담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굉장한 항공 매니아인 듯 한데, 오늘 사람이 적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사람 붐빌 때 저런 삼각대 사용하면 욕 먹기 십상이다.

붐비는 곳에서 삼각대 사용하는 진상들이 늘어나다 보니 찍사가 덩달아 욕을 먹는다.

 

뭘 그리 열심히 찍는지는 모르겠지만 렌즈와 카메라만 합해도 거진 천만원 근처까지 가는 장비.

사진이라는 취미는 글자수도 적고 단순하지만 그 안의 카테고리는 사람 성격별로 천차만별이다.

 

 

 

일본에서 DSLR 에 거대한 망원렌즈 낀 사람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곳.

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에 한참 사진을 찍다 보면,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아름다움도 느끼게 될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매니아가 되기에는 부족했는지, 이 떙볕 아래에서는 도무지 버틸 제간이 없어서 신속하게 후퇴한다.

 

70은 넘은 듯한 할아버지가 필름카메라에 거대 망원렌즈 끼워서 촬영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비행기 사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스카이 덱은 원래 이렇게 한가로운 곳이 아니다.

날씨가 이렇지만 않으면 빈 의자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가을 정도만 되어도, 굳이 건물 안에서 돌아다닐 필요 없이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쪽이 더 나으니까.

 

오늘은 당연하겠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아이들은 상당수가 모자 쓰고 돌아다니고 있으며, 부모들은 물 마시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고야에 도착한 두 번째 날, 토요타 박물관을 다녀온 날이었는데

당시 기온이 34도, 일본에서 가장 더운 지역은 39도 까지 올라갔다고 뉴스에서 대서특필했다.

하루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인만 십여 명에 이르던 더위였고, 지금 이 스카이 덱을 걸어다니고 있으니

정말로 사람이 더위때문에 픽 쓰러질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인공물을 돌아볼 때 그 미적 완성도에서 느껴지는 감동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기분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이런 배려의 마음씨를 직접 나타낸 모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금껏 사진들을 유심히 보면 중간중간 빨간색으로 된 기둥이 나오는데, 그것의 정체는 바로 이 뷰 포인트였던 것.

일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설명되어 있는 이 뷰 포인트는, 휠체어에 탄 사람이나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시야를 가리는 안전 보호대를 삭제해 놓은 곳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자리를 비켜줄 것은 부탁하고 있다.

 

예전 오사카의 수족관 카이유칸(海遊館)에도 이런 뷰 포인트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다.

스카이 덱의 진정한 볼거리중 하나가 아닐런지.

 

 

 

한국은 아직 나고야행 수요가 많이 않아서, 상대적으로 한국 항공사의 모습은 적은 편이다.

물론 대기중인 비행기도 있었지만 굳이 찍어야 할 만큼 애국심으로 충만한 사람도 아니고 해서.

 

멀리서 바라보니 비행기도 그냥 장난감처럼 귀엽게 배열되어 있는데

요즘엔 비행기도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이 되다 보니 원색 배열에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쪽이 많은듯 하다.

포켓몬 그림으로 도배를 해 놔서, 뜰 때마다 셔터소리가 우렁차게 변하는 비행기도 있고.

 

항공오덕들은 항공사의 심볼 마크 가지고도 어느 항공사 것이 더 세련되고 멋있는지 토론을 벌일 정도라는데

본인은 철저하게 저가항공만 이용하다 보니 항공사 마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두어 시간만 지나면 이 무서운 더위를 지나 지원한 비행기 속으로 들어가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숨을 곳 없는 폭염 속을 지나 다시 공항 청사로 돌아간다.

스카이 덱을 한번 둘러봤다는 의의 정도는 가질 수 있겠지만

재미있게 즐겼다고 하기엔 구멍난 풍선에서 솟아나는 듯한 이마자락의 땀방울이 너무 선명하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많이 본 아침 풍경은 이 나고야의 콘크리트 빌딩숲인듯 하다.

이런 곳에는 정이 가지 않지만, 여행이 만족스럽다 보니 그냥 하늘 색깔만으로라도 용서가 되는 느낌이다.

 

여행중엔 아침부터 조금이라도 더 관광하려고 부산을 떨지 않으니, 느긋하게 일어나서 조식 챙겨먹고 10시는 넘어야 출발하곤 하는데

그러고보니 여행 일정중 가장 바쁜 아침은 귀국날 아침이 아닌가 싶다.

호텔을 비워야 하니 짐도 전부 챙겨야 하고, 무료 조식까지 챙겨먹으려면 7시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10시 45분발 비행기에 늦지 않으려면 9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다행히도 나고야에서 센트레아 공항까지는 넉넉잡아 50분이면 충분한데다가

짐이 많아서 일반 전철을 탔다간 굉장히 민폐를 끼칠수도 있기 때문에

돈 몇천원 더 주고라도 특급 전철인 뮤 스카이를 타기로 한다. 그러면 35분이면 충분.

 

출근 시간대의 나고야 역은 정말 아비규환을 방불케 한다. 한국의 신도림 정도가 아니고서는 비교할 상대가 없는 헬게이트 그 자체다.

국철, 시영 지하철, 사철까지 합해서 총 6개의 전철회사가 각각의 노선을 가지고 있는 마경같은 곳으로

오랫동안 일본 중부지방의 교통 중심지 역할을 하다보니 구조도 워낙 낡아서 복잡하기 말할 수 없다.

 

특히, 공항으로 가는 뮤 스카이는 가장 수송량이 많으면서도 1941년 완공되어 좁고 낡은 메이테츠 노선을 이용해야 한다.

 

여행중 가장 긴장했던 시간이다.

출근시간대의 메이테츠 노선은 1분 30초마다 전철이 들어오는 살인적인 스케쥴을 자랑하기 때문에 자동 안내방송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를 자랑한다.

한국의 어떤 지하철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으로, 전철이 출발하면 거의 즉시 다음 전철이 역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안내방송은 직접 육성으로 이루어지며, 여러 명의 제복 직원들이 열심히 확성기로 소리를 지르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시간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반대편 도어가 열려 승객들이 하차한 후 승차쪽 도어가 열리는 순차적 구조를 도입했기 때문에

일본인이라도 정확한 설명 듣지 않으면 타야 할 승강장을 햇갈리거나 잘못된 시간의 열차를 탈 수가 있어서, 한국인이라면 매우 조심해야 하는 순간.

 

다행히도 뮤 스카이 만큼은 공항으로 향하는 사람만 탑승하는 특급 지정좌석 열차이기 때문에 탑승만 제대로 하면 내부는 쾌적하게 앉아 갈 수 있다.

베낭과 카메라 사이드백을 짊어진 것만으로도 라인에 서 있는게 미안해 질 정도의 혼잡함 속에서 뮤 스카이 내부로 이동하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9시 10분쯤 도착해서 무리없이 도착했다고 안심하고 수속 게이트로 이동하니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저가항공의 비애랄까, 10시 45분 출발 예정인 에어아시아 비행기가 1시 15분으로 출발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 상당히 짜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기분좋은 일이다.

나고야 도착 시 중부공항을 구경하지 않고 그냥 지나왔기 때문에, 관광할 수 있는 여유가 2시간 반이나 늘어난 것이니까.

 

앞서 말했듯이 중부 공항은 일본의 공항 중 유일하게 '센트레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만큼

관광 목적으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잘 정비된 공항이다. 오죽하면 공항 구경만을 목적으로 오는 관광객도 있을 만큼.

공항 내부에 외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온천까지 존재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본인은 아무래도 이 더운 여름날 대낮에 온천을 찾고 싶진 않다.

 

책을 많이 사느라 훨씬 늘어버린 베낭 무게때문에 추가금까지 내야 했지만, 그러고도 아직 식사 한 끼 즐길 정도의 자금은 남아있어서

사이드백만을 짊어진 홀가분한 몸으로 느긋하게 센트레아 구석구석을 탐미해 보기로 한다.

10시 45분 비행기였다면 참 아쉬운 하루였겠지만, 뜻하지 않은 지연으로 인해 관광 날짜가 하루 더 추가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규모가 그렇게 큰 공항은 아니지만 깔끔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것이 디자인의 힘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동안 다녀본 여러 공항 중,  비슷한 크기의 공항 중에선 꽤나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생각보다 훨씬 사람이 많아서 요즘 일본 경기가 많이 살아나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중부 센트레아 공항은 100% 민간 자본으로 설립된 녀석이다. 물론 설립 기업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토요타.

나고야가 아무리 큰 도시라도, 오사카와 도쿄에 각각 공항이 위치한 상태에서의 경쟁은 쉬운 일이 아니라

요즘 적자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라는데, 민간 공항치고 가격 폭리 없이 이 정도 시설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은 놀라울 따름이다.

 

민간 공항이라 살짝 직권 남용이라고 생각될 만한 일도 저질렀던 일화가 있다.

드래곤 볼로 유명한 토리야마 아키라가 원고를 나고야 공항을 통해 도쿄의 편집부로 보냈기 때문에

그가 항공우편 보내는 게 귀찮아 도쿄로 이사가는 것을 막기 위해

토리야마 씨 집에서 중부 공항까지 직선으로 쫙 뻗은 도로를 나고야 시와 중부 공항에서 건설해 준 만화같은 사실이다.

 

토리야마 아키라 씨는 아이치 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 드래곤 볼이 끝난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드래곤 볼로만 버는 돈이 연간 300억이 넘는다.

현재 만화가로서는 세계 1위의 재산가이며, 일본 10대 부자중 유일하게 대기업 회장이 아닌 사람.

그럼에도 아주 내성적이고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해 태어난 시골 집에서 60년간 한 번도 이사가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다.

 

시간이 상당히 많이 남았고, 바깥은 35도를 넘어가는 폭염이 지속되어 있어 천천히 공항 내부부터 돌아본다.

역시 사람이 많아서 초상권을 가능한 한 건드리지 않으려면 광각쪽에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카운터 위쪽에 재미있는 인형들이 서 있어서 망원으로 갈아끼운다. 저 녀석들은 초상권 걱정할 것 없으니까.

 

 

 

실제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닌자라는 이미지는 거의 순수한 현대의 창작물이지만

어쨌든 서양에서 닌자 하면 다들 이런 모습으로 기묘한 체술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인식이 되어버렸고

그게 돈이 되니까 별 무리없이 일본 내에서도 닌자의 정의가 술렁술렁 바뀌어 버린 듯 하다. 역시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

 

실제로 닌자는 암살, 잠입 등에 능한 신비의 고수 집단이 아니라 타 지역의 정보 수집을 주 목적으로 하는 밀정이었다.

신분을 숨기는 일에는 뛰어났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당시에 신분 숨기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대부분 잡상인 행세를 하며 성의 동향을 살피는 수준의 초급 스파이 활동만 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중부 센트레아 공항에 왜 이런 닌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하면

센트레아 공항에서 멀지 않은 미에(三重)현에 역사상 유일하게 실존한 것으로 확인된 닌자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나 드라마를 조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 저런 두건을 쓰고 수리검을 던지는 닌자의 원형은

모두 1950년에서 70년에 쓰여진 무협 소설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으며, 그 닌자들의 본거지가 이가(伊賀) 마을이다.

 

정사에 기록된 닌자 집단이다 보니 아직도 이가 시에는 닌자 박물관이 있어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서양쪽에게는 비록 100% 창작물이긴 해도 가장 먼저 전파된 일본의 문화 중 하나였기 때문에

센트레아에 들어오는 서양인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다.

 

 

 

인형이라도 의외로 자세는 잘 잡아놓았다. 자세히 보니 손 안에 수리검까지 들려 있다.

나 말고도 이 닌자들 찍는 사람이 매우 많아서 쪽팔리진 않았지만, 카메라 크기가 본인 것만큼 거대한 녀석이 없다 보니

괜히 모자라는 실력을 덩치빨로 때우고 있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생긴다.

 

뻔히 거짓이란 거 다 알면서도 이렇게 관광 상품으로서 철저하게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 모습이 현대 문화의 본질에 가깝다고 할까.

 

 

 

 

사실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이 없는 매우 성공한 문화 중 하나인데

일본에 악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국인으로서는 그냥 배알이 꼴리고 거짓말로 치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닌자는 1950년대 소설인 '코우가 인법첩'(甲賀忍法帖)과 '올빼미의 성'(梟の城)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 작품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60년대부터 쿠로사와 아키라를 필두로 한 일본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시기와 맞물려

영화화 된 닌자 작품들이 서양의 매니아들에게 동양 문화의 환상을 심어주는 수순을 거쳐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물이라고 주장한다면야 왜곡에 가까운 만행이지만,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흥미진진한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니

자국 문화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성공적인 소재가 또 있을까. 닌자는 문화 전파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게 이상하게 서양쪽 코드에 맞았는지, 일본에서는 그냥 그런 메이저 작품인 '나루토'라는 만화가 미국, 유럽에서는 포켓몬 다음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나가는 외국 사람 붙잡고 두유노 김치 두유노 코리아 따위의 천박한 질문이나 쏟아내는 건, 한국 문화가 패배자라고 자백하는거나 마찬가지다.

외국사람이 한국 사람을 붙잡고 먼저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진짜 자랑할 만한 문화니까.

미국 청소년들은 그 나루토라는 만화를 좀 더 생생하게 즐기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에 비행기 타고 놀러온다.

 

 

 

1층엔 닌자밖에 없어서 2층으로 올라가 본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다양한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인천공항처럼 거대한 부지를 느긋하게 이용한다기 보다는, 일본 현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물샐 틈 없이 빡빡하게 늘어선 모습이

국민성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되려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토쿠시마 아와오도리(阿波踊り)를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들을 빌려 선전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저 캐릭터들이 토쿠시마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도 보이는데, 요즘 영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접하질 못해서.

 

토쿠시마 아와오도리는 흥겨움 만큼은 일본 제일이라 할 만큼 굉장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축제인데

춤을 추며 진행하는 수천 명의 행렬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모습을 직접 보면 몸이 떨릴 정도로 굉장한 박력을 자랑한다.

 

당시가 8월 6일이었으니, 직장 복귀만 아니면 좀 더 개기다가 저 축제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역시 삶에 치여 살다보니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삶에 치여 산다고 하면 콧방귀 낄 사람이 한 둘이 아니지만.

 

2013년 8월 여행기를 2014년 1월까지도 계속 연재하고 있는 지금에서야 찾아낼 수 있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오른쪽 벽면에 붙은 조그마한 포스터, 2013년 12월 25일에 한국에서 개봉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신기하게도 일본보다도 먼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개봉한 이례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인데

8월에 이미 선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사진 정리하면서야 깨닫는다.

 

전혀 융합될 것 같지 않은 문화 장르끼리의 교배는 일본 문화의 특성이기도 한데

특정 카테고리 안에서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화 되어버린 현대 문화산업의 특성상

이런 콜라보레이션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런 연계산업이 폭삭 죽어버린 허약한 구조라서 항상 걱정이다.

 

일본에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한편 발표하면, 음악 CD, 캐릭터 상품, DVD 등의 2차 매체, 소설, 지역상품과의 연계 등등

문어발을 펼치며 어떻게든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화의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인데

한국은 자기 나라 영화조차 2차 매체로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극장 관객수는 세계 최상위를 자랑하지만 2차 매체 시장은 아프리카 수준밖에 이르지 못하는 기형의 극치를 달리고 있으니까.

 

 

 

센트레아 2층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나름 구역을 잘 나눠서

팔고 있는 요리에 따라 외부 인테리어도 다름 통일성을 유지하려 힘쓴 느낌이 든다.

살짝 조잡한 것이 도쿄 비너스 포트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일단 이곳은 공항의 특성상 넓고 시원한 지붕 덕에 숨이 트인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역시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 정도는 즐기고 싶은데

비행기 지연으로 인해 시간이 남아도는 고로, 식사는 재쳐두고 건물 구경이나 좀 한 뒤에

센트레아의 가장 큰 관광 스팟인 스카이 덱을 최대한 구경하고 나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바깥이 구름 한 점 없는 폭염 속이라, 스카이 덱을 구경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릴 것 같으니까.

 

 

 

일본에서 이 공항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긴 300m 짜리 야외 전망대 스카이 덱.

 

눈도 뜨지 못하고, 카메라 뷰파인더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살인적인 햇빛 속에 드러난 스카이 덱은

항공사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치기 어려운 시원한 전망대였다. 단지 너무나도 더웠다는 점이 아쉬웠을 뿐.

 

이 정도면 화창함을 넘어서 사람 죽일수도 있을 듯한 더위다. 덕분에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덜 붐벼서 구경하기는 쉬웠지만, 스카이 덱에서의 30분은 평소 3~4시간의 체력을 소모시키기에 충분하다.

 

  

 

 

공항이 원래 큰 건물이다 보니 300m 라고 해도 수치상으론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직접 나와보니 이 정도로 길쭉하게 늘어선 전망대는 본 적이 없다. 정말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민자 공항이다 보니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 곳만의 특별함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일까.

 

날씨가 덥지만 않다면 수많은 항공기들의 모습과 푸른 하늘, 옆에 펼쳐진 바다 모습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인데

숄더백을 어꺠에 짊어지며 걸어가는 순간 드는 생각은, 언제 저기까지 왕복해 돌아오나 하는 한탄이다.

인구 밀도가 낮아서인지 문득 서 있으면 하늘 아래 나 혼자인 듯한 고립감마저 느껴진다.

땀은 닦아내는 것도 포기하고 그냥 카메라를 든 손으로 흐르지 않도록만 고쳐 잡는 것으로 타협한다.

 

어쨌든 센트레아를 둘러 볼 시간이 생긴 것만으로 고마워 할 일이니

흥미 유무를 제외하고서라도 비행기 실루엣이라도 건져서 가야겠다고 결심하며

시리디 시린 센트레아 공항 지붕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새벽부터 어렴풋이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긴 했는데 해가 뜨고 나서 보이는 창밖 풍경은 역동적이기 그지없다.

키소에서 돌아오고 난 후 살짝 우울한 채 잠이 들었다.

탄산 기포가 터지는 소리처럼 지면을 때려대고 있는 바깥 풍경이 오히려 위안을 주는 느낌이다.

내일 귀국이고, 오늘은 여행 전부터 아무런 예정도 넣지 않았다. 그냥 하루를 멍하니 보내기 위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키소에서의 추억은 인생의 큰 획을 긋는 크고 명확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추억 되짚기를 하고 난 후의 반동 역시, 즐거운 해외여행과는 아귀가 살짝 어긋날 수 밖에 없다.

이런 기분에 콘크리트 숲인 나고야 시내로 돌아와 맞이하는 첫 아침이 화창한 푸른 하늘이었다면

오히려 할 일이 없도록 해 놓은 여행의 하루가 너무 눈부셔 보여 한층 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어 줬을 터였으니까.

 

밖에 나가고픈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는

고개를 살짝 들어 건물의 경계와 하늘 사이를 미묘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볼 만한 풍경이 된다.

비와 물체가 부딪히는 모습보다는 하늘에서 총알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의 모습이 더욱 훌륭하다.

아주 강렬한 폭우가 대낮에 쏟아내려야 시야에 담을 수 있는 빗줄기라서 희소성도 있고.

 

 

 

지금 가진 카메라 장비로는 그런 풍경을 담을 수 없다.

애초에 내 실력으로 그 모습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지면의 실루엣에 들어가기 전의 묘한 컨트라스트, 정지해 있지 않음에도 장노출로는 담을 수 없는 동적인 빗줄기는

제대로 된 비디오 카메라가 아닌 이상, 두 눈에 들어오는 그대로를 정적인 사진으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다.

 

대충 이렇게 비가 신나게 왔다는 증거품으로 몇 장 남기긴 했지만

사진에 담기는 노이즈 낀 듯한 결과물 보다는 기분이 좋았다는 기억도 되살아난다.

 

한여름이라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아침에 이렇게 내려봤자 별로 겁나지는 않는다.

단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니 어디로든 쏘다니기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약간 희석시켜주는 효과는 있다.

천천히 호텔 조식을 먹고 돌아와 모닝 TV를 보면서 대충 오늘 할 일을 생각해 본다.

 

나고야 역까지 투숙자들을 배달해 주는 무료 셔틀버스는 10시 30분까지 운행하기 때문에

아무리 비로 인해 게으름을 피우더라도 그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 내 섬세한 마인드와 별개로 돈은 아껴야 하니까.

마지막 날이고 하니 부탁받은 물건들 좀 사는 겸, 서점에서 건질만한 책 좀 찾아보는 일은 필수 코스나 다름없다.

일단 쇼핑 물건을 호텔에 놔 두고 저녁즈음 다시 나가볼까 싶다. 오늘은 남는게 시간밖에 없으니까.

 

확정하진 않았지만, 나고야에서 시간이 남으면 당시 상영중이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 불다'를 볼까 생각중이었다.

한국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던 작품이었고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을 모를리 없으면서도 무리하게 실제 역사를 고집한 미야자키의 의도가 궁금했으니까.

 

역사적 고증에 따라 작품 감상의 관점에 민감한 성격이기 때문에

한국의 언론에서 그렇게 떠들어대는 포인트가 실제로 작품 속에서 내 신경을 긁는다면

미야자키가 나이 헛처먹었구나 하고 미련없이 기억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미야자키는 아무래도 그런 단순한 미화에 치우칠 리가 없다는 사전 경험 때문에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 되려 한번은 꼭 봐야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극장 가격이 그리 낮은 편이 아니라 여행중의 소비치고는 좀 사치스러운 면이 있는 탓에

보러 갈 것인지 말지의 판단은 아침까지도 내려지지 않고, 일단 쇼핑을 끝낸 후에 생각해 보기로 한다.

 

 

 

폭우는 슬슬 그쳐가지만 10분의 짧은 간격 사이에도 확 내렸다가 부슬부슬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호텔 프론트에서 우산 하나 빌려서 갖고 나간다. 필요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우산 하나만으로 굉장히 불편해지는 감각이다.

몸에 닿는 모든 소지품을 몸의 일부분처럼 상비하고 다니는 여행 중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할 일이 없는 우산이고

싸구려이긴 해도 일단 빌린 물건이다 보니 익숙해 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심코 버려두고 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때문에 더욱 귀찮아진다.

 

편안하게 나고야 역에 도착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공짜의 마력이란 이런 것인지, 무료 셔틀버스는 탈 때마다 이득본 기분이다.

 

날씨가 어떻든 나고야 역은 항상 사람으로 붐빈다.

중심가가 역 주변에서 점점 멀어지는 경향이 있는 한국의 대도시와는 달리

일본은 대도시간 거리를 자동차로 커버하기 힘들기 때문에 철도의 비중이 한국보다 훨씬 높고

그런 점에서 대도시의 중앙역 주변은 굉장한 밀집지역으로 악명이 높다.

 

나고야는 오사카와 도쿄를 반쯤 섞어놓은 듯한 도시로, 대놓고 막나가진 않아도 향략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출근시간이 넘어서 그나마 좀 한산해진 역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넘어가 본다.

나고야 역은 정문 쪽과 반대편 쪽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데

정문에서는 주욱 걸어나가기만 하면 여행 가이드에 실려있는 모든 유명 장소를 다 둘러볼 수 있는 '정석적' 코스가 보이고

후문으로 나가면 관광하고는 별 관계없는 낡은 비즈니스 호텔과 낡아빠진 상가, 어른들만의 공간 등등이 좁은 골목골목에 포진해 있다.

 

연휴 기간이 끝난 우중충한 날씨의 대도시 골목길은 관광이라는 단어와 동떨어진 기분을 주기에 충분한데

나이 지긋한 노인네들이 슬금슬금 돌아다니는 모습과, 작업복을 허리에 둘러매고 원을 이뤄 길거리에 나앉아 술 마시는 노동자들의 모습 등

서울역 뒷골목에서 볼 법한 모습이 한적하게 펼쳐지고 있다. 아마 홀로 여성 여행자라면 은근히 다른 길로 나가버리고 싶은 느낌이 들 듯.

 

밤이 되어야 활기가 돌아오는 곳이다 보니 오전의 역 뒷골목은 사막처럼 황량하다. 아침부터 28도를 넘어가서 덥기는 무지하게 덥고.

이곳 뒷쪽 어딘가에 친구가 부탁한 게임, 애니메이션, 코믹스 등등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어서 찾아온 것인데

오타쿠들에게 10시 30분이란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개점 시간이 11시라서 아직 문도 열지 않고 있다.

30분만 기다리면 첫 손님으로 혼잡하지 않은 가게 안을 마음껏 탐방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키소의 상쾌한 공기에 익숙해진 내 몸은 진득진득한 더위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어서

이곳에서 30분 동안 서 있는 것은 극기훈련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고야 역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니 역으로 돌아가서 적당히 까페 하나 찾아 들어간다.

일본도 절전운동이 활발하긴 하지만, 까페처럼 공간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에서는 훨씬 융통성이 있다.

밖에 나가기가 싫어지는 쾌적한 온도와 커피 향기가 나의 대퇴근섬유를 마비시켜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게 만든다.

양복 입은 젊은이들, 양복 입은 늙은이들, 세련된 옷을 걸친 아가씨들이 아침부터 뭐하는지 많이들 앉아있는데

회사 직원임에 분명한 수트맨들은 대체 왜 이 시간에 까페에 들어와 있는건지 모르겠다.

 

커피를 홀짝이며 메모장을 꺼내 일기를 쓴다. 남는게 시간밖에 없어서 그런지 글도 여유있게 써지는 느낌.

일반적으로 8일간의 해외여행이라면 짧다고 할 만한 길이는 아니지만, 본인에게는 그냥 잠깐 한숨 돌리고 오는 정도라

귀국 시간이 돌아오면 슬슬 아쉬움이 밀려오는게 일상적인 흐름이었는데

왠지 오늘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으니 '이번 여행은 이걸로 됐다'라는 기분이 든다.

끝내도 좋은 여행이라는 기분이 드는 것은 의외로 좋은 느낌이다. 아쉬움 보다는 만족감이 우선하니까.

 

 

 

11시 30분에 카페를 나와 오덕가게인 멜론 북스에 들어간다.

평일 낮의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특권 탓에 사람도 적어서 느긋하게 책 구경하고 부탁받은 물건도 살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발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책이나, 한국에서 발매했지만 그 전에 이미 원서를 사 버린 시리즈물 등등

눈에 불을 켜고 쇼핑을 즐기고, 그 와중에 구입하기는 망설여지지만 가게에서 서서 읽어볼 만한 책들은 탐독하다 보니

3시간 정도가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카메라를 든 가방이 슬슬 무겁게 느껴질 즈음이 되고 나서야 계산대로 이동.

 

돈을 좀 느긋하게 갖고 온 여행이라 귀국 하루를 남겨 둔 지금도 1/3 정도의 자금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귀국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구 책을 쓸어담았다.

친구에게 부탁받은 것들을 제외하더라도 근 12만원 정도 책 사는데 사용한 듯.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원서를 많이 보는 입장상 여유 자금이 있을때 쓸어오지 않으면 훨씬 더 후회할 테니까.

 

책 구경이 꽤나 지치는 일이라 약간 피곤한 몸과 뻐근한 눈을 이끌고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달라져 있다.

아침까지 쏟아붓던 비는 말할것도 없고, 모노크롬의 하늘마저 일말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공간엔

맨눈으로 바라보기에도 힘든 강렬한 푸른색이 도시 이곳저곳에 색깔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덥기는 매한가지라도 하늘이 이만큼 빛나고 있으면 기분도 밝아질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가방이 책으로 가득 차서 카메라는 이미 어깨에 걸어두고 다닌다. 허기가 진 건 아니지만 왠지 음식과 함께 자리에 앉아 쉬고싶은 기분이 든다.

 

 

 

마지막 날이라 거하게 한번 먹어볼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건 저녁식사때의 일이라

적당히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선택은 별 후회없는 요시노야가 제격이다.

 

식욕이라는 의미보다 그냥 규동을 한번 먹어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갈 때는 저렴한 규동 한그릇으로 해결을 보지만

지금은 자리에 앉아 얼음물 한잔 들이키니 순간적이지만 천국을 체험할 정도로 상쾌한 기분인 것으로 보아

좀 더 풍요로운 메뉴를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듯 하다. 규동에 비하면 비싼 편인 580엔 짜리 카레 규동을 주문한다.

 

카레가 아주 맛있는 편은 아니지만, 규동만으로는 뭔가 부족할 때 이 녀석을 먹으면 한국인이라도 나름 배가 든든해 진다.

카메라 좀 진한 편이기 때문에 규동과 카레의 남은 양을 잘 조절해 가며 먹는 편이 좋다.

너무 한 쪽에 집중해 버리면 혀가 마비되어 규동의 고소한 맛을 느끼기 힘들어 지니까.

 

점심시간이긴 해도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다. 자리가 널널하니 사진도 찍고 일기도 쓰고 하면서

에어콘 바람을 좀 더 즐겨도 눈치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후다닥 먹고 나오는 것이 제일 싫다.

 

만족감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무료 셔틀버스는 오후 5시부터 운행을 재개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아무리 공짜를 좋아한다고 해도 34도의 폭염 속에서 할 일도 없이 무거운 책뭉치를 지고 도심지를 떠돌아 다닐 수는 없으니까.

방으로 올라와서 어깨의 짐을 내려놓자 홀로 여행중 항상 쥐고 있던 가벼운 긴장이 풀린다.

바닥에 땀이 똑똑 떨어지는 걸로 봐서 확실히 짐 들고 돌아다닐 만한 날씨가 아니긴 하다. 카메라만큼은 어쩔 수 없어도.

그래도 에어콘 틀어놓고 전리품들을 꺼내서 다시 정리하는 일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기분좋은 일이다.

종류, 크기별로 구겨지지 않게 책을 정리해서 베낭에 넣고 있는데 세삼스럽게 키소에서의 하루가 마음을 움직인다.

 

이번 여행엔 52L 짜리 대형 베낭을 들고 왔는데, 본인이 사용할 짐이 많아서가 아니라 키소 사람들에게 줄 선물 부피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소에서 나고야로 돌아오는 오늘 같은 날부터는 베낭이 매우 널널해 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맨손으로 나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예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은 못 보내겠다는 듯이, 소야노 씨 가족부터 해서 카미무라 씨와 소바집 사장님까지 전부 선물을 들고 와 나에게 건내주셨다.

덕분에 텅텅 빌 것이라 생각한 내 베낭은 올 때와 다름없이 빠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책은 부피가 적어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이라, 이래가지고는 분명 내일 귀국시에 추가금을 내야 할 듯 하다.

저가항공이기 때문에 규정 무게를 조금만 넘어가도 칼같이 추가 요금을 받는다. 그래도 키소 마을의 선물이니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한다.

 

 

 

5시가 넘어 셔틀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로비로 내려가 직원에게 근처 극장이 어디 있는지 물어본다.

우연의 일치인지 나고야 역 바로 앞 빌딩에 극장이 있다고 하니 망설임없이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나고야 역으로.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역 주변은 평소대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파도처럼 일정한 진폭으로 횡단보도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극장이 있다는 건물은 단순한 극장도 아니고,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갖춘 백화점도 아니다.

상당히 비싼 고급 요리점과 층마다 위치한 회사 사무실 등등 비지니스와 서비스업이 묘하게 혼합된 빌딩이다.

젊은이들 왁자지껄하게 노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엘리베이터 타고 극장층으로 이동하는데 묘하게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극장 앞에 가니 '바람 불다'는 6시 15분 상영이라 조금 난감하다.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점도 그렇고

상영 후에는 저녁을 제대로 먹을만한 시간이 좀 아슬아슬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일본에서의 극장 관람은 역시 돈이 좀 아깝기도 하고 해서, 10분 쯤 고민하다가 그냥 다음에 기회되는대로 보기로 하고 돌아선다.

대신 극장 관람을 포기한 분 만큼의 자금과 시간은 최후의 만찬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기로 한다.

 

다시 나고야 역으로 돌아가 고층으로 올라간다. 나고야 역은 그 자체가 거대한 쇼핑몰 구조를 하고 있어서

여행이 아니라 쇼핑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역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

서울역처럼 역사 내부 음식점들이 비싸기만 비싸고 맛은 형편없는 수준이 아니고

비싸긴 비싸지만 비싼 값은 하는 그런 가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일단 '호기'를 부려보고 싶은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장소.

 

나고야는 여러 번 와 봤지만 자전거 여행 당시 나고야에서 먹은 가장 비싼 외식이라고 해 봤자 500엔 정도 하는 전골 정도였기에

역 위의 음식점들이 무엇을 팔고 어떤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물론 일본 물가에 대한 상식 정도는 알고 있는 본인 경험상 지갑속에 든 소지금이 결코 모자라는 일은 없을거라 확신하고 있고

만에 하나 소지금보다도 요금이 높을 경우엔 비상수단으로 신용카드를 쓸 수 있으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먹을거리를 찾아 본다.

 

어느 매장에 들어가도 후회할 일은 없어보이지만, 결국 여행 마지막 날 선택한 식사는 초밥이다.

그것도 싸구려 회전초밥이 아니라 제대로 된 회전 초밥집. 비상 사태를 대비해 신용카드 사용 가능 여부까지 물어본 후 입장한다.

회전초밥이란 원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저가 경쟁의 일환으로 탄생된 구조라서, 고급 회전초밥집이 무슨 의미인가 싶은데

이곳은 레일 위를 완성된 초밥들이 돌아가고 있는 상태에서 손님들이 집어가는 일반적인 구조가 아니라

모든 초밥이 터치패드를 통해 주문 받은 후, 주문한 사람에게만 자동으로 이동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즉석 초밥집이다.

'회전'이라는 요소를 순수하게 가게의 규모를 확장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고, 초밥의 질은 떨어트리지 않은 하이브리드 방식.

 

가족 단위의 손님이나, 정장 갖춰입고 비지니스식 접대를 즐기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혼자 자리 잡으니 약간 긴장도 되지만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꽤나 떨어져 있고 간이 칸막이까지 착실히 갖춰져 있어서 사진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다.

 

 

 

터치패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잘 눌리지 않는 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주문하기는 어렵지 않다.

종업원이 와서 간단한 설명은 해 주고 가는데다가, 외국인이라면 영어로 메뉴를 전환하는 항목도 있어서 문제 없다.

하지만 이럴 경우 본인처럼 일어만 잘 하는 사람 입장에서 좀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생선 이름은 전부 다 꿰고 있느게 아니다 보니 사진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데다가

영어로 바꿔봤자 내가 영어로 생선 이름을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본 한 접시에 300엔이 넘고, 고급 초밥은 600엔도 넘어가는 초밥집이라

괜히 전투 직전의 병사처럼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돈 신경 안쓰고 식사를 즐기리라 다짐하고 버튼을 누른다.

초밥이 레일을 타고 돌아와서 정확히 내 테이블 쪽으로 쪼르르 밀려 들어온다.

접시가 내 앞에서 멈추면 그 사이에 내가 집어들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테이블 앞으로 이동하는 것까지 완전한 자동.

외식 문화란 역시 자금의 차이에 따라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중요한 초밥 맛을 느껴본다.

 

나고야 역에 존재하는 어떤 초밥집도 새벽 수산물 직판시장 앞에서 장사하는 초밥집에 비할 수는 없다.

초밥은 재료의 신선함이 맛의 80~90%를 좌우하는 극단적인 요리라서, 산지에서 떨어진 초밥집은 일단 가격대 성능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 점을 제외하고서는, 이 가게의 초밥은 100~300엔 짜리 초밥이 레일 위를 굴러다니는 일반 회전초밥집과 비교할 건덕지가 없는 훌륭한 맛이다.

 

 

 

주문을 한 접시씩 할 필요도 없어서, 한꺼번에 3~4 접시를 주문하면 같은 종류별로 나눠서 도착한다.

밥의 끈기와 온도, 초대리의 배합 역시 교과서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며

생선 쪽은 부위 선정을 칼같이 지키고 있다. 맛이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발라내는 것은 초밥 요리사의 양심이기도 하고.

 

겉을 살짝 구운 다랑어 타타키(たたき)도 재료의 상태나 구운 정도 등, 가격대 이외의 모든 부분에서 상급이라 할 만 하다.

이러한 초밥을 수산시장 근처에서는 반값 정도에 먹을 수 있다는 게 항상 마음에 걸리는 일이지만

이곳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식사 환경과 아름다운 인테리어, 최상급의 접대 매너를 함께 즐기는 외식이란 것도 나름 중요한 점이라 본다.

 

애초에 나고야의 마지막 밤만큼은 이렇게 사치와 향락에 젖어 보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왠지 신분 상승한 듯한 기분으로 우아하게 맛을 음미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먹는거 가리질 않다보니 150엔 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초밥 두 점에 편의점 도시락 2개 가격이 확확 날아가는 식사를 하고 있으니 색다른 스릴과 된장남의 자뻑기분을 조금이나마 대리체험할 수 있는 듯 하다.

 

 

 

사실은 초밥에 대해서만은 그나마 조금 민감함 편이라 더욱 기쁜 탓도 있다.

일본의 저가 회전초밥집 정도라면 감탄 막 하면서 먹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맛있구나 하는 수준으로 만족할 수 있는데

한국의 상당한 대다수 초밥집은 그 정도 만족감 주는 곳도 꽤나 드물다.

 

애초에 한국에서 초밥이란 횟집에서 적당히 회 먹으면서 사이드 메뉴로 넣는 듯한 녀석들이 많고

그런 곳에서는, 생선은 그럭저럭 신선해도 초밥 쥐는 법이나 생선과의 비율 등은 그냥 엉망인 수준이다.

밥은 쥐꼬리만큼 쥐어놓고 생선은 꼬리쪽을 길게 늘어트리면서 '밥 적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따위의 헛소리를 하는 곳도 있으니까.

 

일본의 회전초밥집 정도가 마지노선이라면, 한국의 회전초밥집이나 그마트 등에서 파는 낱개 초밥같은건

사실 초밥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냥 말라 비틀어진 과자일 뿐.

 

 

 

6인 가족이 앉을 수 있을 만한 반 독실 좌석이라서 짐도 마음껏 풀어해쳐놓고 사진 마구 찍어도 전혀 거슬릴 게 없다.

얼핏 칸막이 너머를 바라보면, 회사 사람들 접대 자리인 듯 중앙에 후나모리를 떡하니 세팅해 놓고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후나모리는 익히들 알고 있는 모듬회와 같은 메인 요리로, 이곳에서는 크기 때문에 따로 주문받아 종업원이 직접 들고 온다.

 

나고야에서 다시 이 가게에 들를 확률은 한없이 낮기 때문에 아쉬울 것 없이 시험해보고 싶은 녀석은 전부 주문해 버린다.

가게의 숙련도를 가늠하는 계란 초밥은 충분히 괜찮은 편이다.

TV에 나오는 진짜 명인의 카스테라같은 계란 초밥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그 정도 계란초밥을 만드는 명인 가게에서 먹으려면 적당히 1인당 40~50만원 쯤은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일본 사람 대부분이 평생 그런 계란초밥은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간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리는 널널하고, 초밥이 레일위를 돌고 있어서 말라가는 것도 아니니

무심코 '역시 돈은 좋은 것이로구나' 하는 속물적인 감탄사까지 읊게 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인데, 여기서 이런 초밥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먹는다 해도 금액은 많아봐야 5~6만원 내외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대식가인 가족들과 함께 고기라도 굽는 날엔 20만원 정도는 훌쩍 넘겨버리는 것도 다반사였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서 가슴 졸여가면서 서민 행세하며 먹고 있는 건, 마치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자기가 걸어온 길도 돌아보지 못하는 행동이다.

한국에서 먹었던 외식의 평균 비용을 생각해 본다면 이 초밥집에서 지불할 금액은 지극히 아무것도 아닌 평균가에 가깝다.

그게 단지 소지금이 한정된 헝그리 여행중의 한 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천상의 행복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

 

해외 여행이라면 다들 자연스럽게 자국에서보다 절약하게 되니, 덜덜 떨면서 초밥을 입에 집어넣다 보면 인지부조화 상태를 느끼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를 밖으로 발산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냥 허세 한번 부려보고 싶었던 것일까.

평소엔 거들떠도 보지 않는 가지절임 초밥도 호기심에 한번 주문해 본다.

해산물 초밥 지상주의인 본인으로서는 초밥집에서 해산물 초밥 이외의 초밥을 먹는다는 것은 이단으로 간주하는데

못 먹어본 맛도 경험해 보자는 의미로 이런 것까지 한번 먹어본다. 이왕 버린 몸(?) 이것저것 시도해 보자는 심정이었던가.

 

시원한 가지의 수분과 짜지 않게 적절히 절임된 맛이 입가심으로 나쁘지 않다.

가격도 100엔대로 싼 편이라 해산물 초밥의 짠 맛에 조금씩 부담을 느낄 때 먹어주는 것도 괜찮을 듯.

물론 따끈한 녹차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초밥집에서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있을까 싶지만.

 

가지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잘 먹는 야채인데, 초밥의 다양화는 가격적 폭리만 아니라면 여러가지로 시도되어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다.

 

 

 

가게에서는 홋카이도 특선이라고, 홋카이도쪽에서 유명한 해산물로 만드는 초밥을 선전중이다.

물론 홋카이도에서 가져온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리 신선해도 거기서 나고야까지 초밥 재료를 가져올 수는 없다.

 

주문한 녀석들 중에서는 가장 비쌌던 이 녀석은 김으로 밥 주위를 둘러싼 군함말이인데

위에는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해산물인 연어알, 가리비, 게살, 성게알이 한꺼번에 올라가 있는 디럭스 초밥.

저 네가지 모두 없어서 못 먹는 최고의 재료들인데, 저걸 흘러내릴정도로 담아올렸으니 그 사치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백화점 사치품 부스에 들어가서 프라다나 에르메스 제품을 눈 앞에 했을 때의 느낌일까.

이 배덕적인 초밥의 모습을 보면서 가방에 환장하는 허영심 덩어리 여성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섞어놓으니 4배로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 초밥은 장르별로 하나씩 먹는게 낫다.

 

 

 

배가 터질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아쉬움 없이 먹었다고 생각하며 만족감 가득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먹은 금액은 5700엔. 당시 환율로 치면 6만원 조금 넘는 가격이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혼자 먹어본 적이 없는 금액이긴 하다.

자전거 여행중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고, 단기 홀로 여행 역시 자금을 넉넉히 들고 나간 적이 별로 없다 보니

마음이 가끔 동해도 좀처럼 시도하지 못했던 쾌락의 추구였는데, 시원하게 해결해버리고 나니 오히려 기분이 상쾌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 것일까.

 

왠지 키소에 있을 때보다 물질적으로 타락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냥 과한 생각이겠지.

 

초밥은 만족스러웠지만, 호텔에서의 마지막 밤 역시 그냥 보내기는 아쉬워

편의점이 아닌 나고야 역 지하상가에서 한참 떨이중인 나고야 코친을 한 팩 구입해 온다.

나고야 역 지하상가는 사실상 백화점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음식물들 수준이 장난 아닌데

어떤 지역이라도 폐장시간이 되면 병적으로 재고 소진을 위해 할인판매를 하기 때문에

이걸 잘 이용하면 식비를 절약하면서 맛있는 것들을 많이 맛볼 수 있다.

 

200엔 정도 가격으로 나쁘지 않은 코친을 사 온 덕택에 저녁이 외롭지 않다. 맥주도 한 캔 따고.

코친은 그 쫄깃함과 함께 살이 별로 붙어있지 않은 날개부분을 뜯어먹는게 재미있어서

먹을때는 열정적이지만 다 먹고 나면 허무함이 살짝 밀려오는 그런 안주거리.

 

가방에 가득 쌓인 전리품 도서를 보며 오늘 영수증을 체크해 보니, 거진 8일간 여행 경비의 1/4 정도를 오늘 하루만에 다 써버렸다.

이제 남은 돈은 3000엔 남짓. 이 정도면 공항에 돌아가서 마지막 식사 정도는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행가서는 항상 짜투리 경비를 남겨 와서, 다음 여행의 추가 용돈으로 사용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광란의 마지막 하루 덕택에 남는 예산이 거의 없다. 물론 그걸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뉴스를 보니 오늘 새벽부터 나고야에 내린 폭우는 시간당 50mm 라는 집중호우였다고 한다.

그 정도면 그냥 하늘이 뚫렸다고 표현하는게 적당한데, 그 탓에 나고야 역의 모든 신칸센이 오전 내내 연착되었다고.

오늘 하루는 그런 굳은 날씨에도 전혀 관계없는 일정이었고, 이제까지의 7일간 한 번도 날씨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었기에

이번 여행은 이 협조적인 날씨만으로 충분히 고맙고 즐거운 편에 들어간다. 35도를 넘나드는 폭염만큼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내일 귀국 비행기는 오전 10시 45분이라 더 이상 여행이라는 개념은 없다.

TV 프로를 즐기면서 이런 단기 여행으로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만족감으로 충만한 눈꺼풀 셔터를 내린다.

 

소야노 어머니가 역까지 바래다 주신다고 하셔서 시간은 널널하겠다 싶었는데

짧은 거리일수록 사실상 걸어가는 것과 자동차로 가는 것의 시간 이득차는 점점 없어진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일본에서는 장애인용 휠체어를 몇 년에 한번씩 제공해 주는데

이번에 소야노 어머니가 좀 튼튼한 녀석을 주문했더니 생각보다 의자 덩치가 커서 자동차 위쪽의 수납함에 들어가는게 아슬아슬하다.

일반인이라면 의자를 이리저리 옮겨도 보고 하겠지만, 메뉴얼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손쓸 방도가 없는 것이 장애인의 고달픈 점.

옆에서 내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덕분에 시간이 좀 간당간당한 편이다.

 

쇼야 군은 마츠모토로 가고, 난 나고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서로 반대편 정거장이다.

도착 5분 전까지는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일단 예의상으로라도 연락없이 불쑥 찾아와 미안했다고 말해 둔다.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전철을 기다리는 건 의외로 그렇게 지루하지 않다.

산골 마을이라는 걸 어필이라도 하듯, 역 옆으로 조금 걸어가면 작은 신사도 있어 구경갈 수도 있고.

 

 

 

쇼야 군이 자전거 학원을 다닌다는 건 생각지 못한 전개였는데

이것도 인연인지, 그 소식을 들으니 자전거 세계일주를 계획중인 나침반님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

 

나침반님이 자전거 제작에 들어갈 무렵이 되면, 함께 도쿄로 가서 세계 정상급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장거리 여행용 자전거는 일단 속도보다는 내구성 중심이라 제작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쇼야 군은 아직 작별이 익숙한 나이가 아니라 이렇게 역 앞에 서 있으면 조금 서먹한 느낌도 든다.

마을의 유일한 친구는 자위대 지원했다가 키가 작다는 이유로 떨어졌고, 반동으로 경찰쪽에 들어가 버렸는데

음낭친구인 둘도 이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갈림길을 걸어가고 있다.

 

일본은 신칸센이 있어도 자주 지역을 왔다갔다 할 만큼 교통요금이 저렴한 것도 아니고 해서

성인이 되어 고향이나 친구와 멀어지게 되면 그리 쉽게 만나거나 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마치 돈 없어서 새마을도 못 타고 무궁화호로 서울과 부산을 왔다갔다 하는 케이스라고 할까.

 

이곳 키소에서 도쿄까지만 해도 바로 가는 전철이 없을 뿐더러, 버스로 4시간 반이 걸린다.

지도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키소와 도쿄는 일본 전체에서 본다면 상당히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던 비가 조금 잠잠해져서 키소의 마지막 풍경을 열심히 찍어대고 있었는데

문득 마츠모토로 가던 2010년의 기억이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는 엄청 쨍쨍하고 무더웠다.

2013년 이 순간의 쇼야 군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건너편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시엔 마츠모토에 놀러가던, 좀 더 시간을 들여 나가노에 놀러가던

다시 돌아올 곳이 정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도 편안하게 순수한 관광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자전거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 나면 항상 뒤에서 무엇인가가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아마도 그 쫓아오던 것은 계절이란 녀석이 아닐까 싶지만, 그보다 더 심리적인 압박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락없이 찾아가다 보니 이번엔 소야노 집안에서 뭔가 제대로 식사를 먹질 못했다. 저녁에 치즈 조각과 함께 맥주 한 잔이 전부라고 할까.

당연히 부담갖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지만

소야노 가족들이 괜히 나한테 대접도 제대로 못했다고 미안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걸 보면

무슨 선택을 해도 항상 반대쪽의 후회는 남아있는게 삶의 갈림길이란 녀석이라는 기분이다.

 

2010년 내가 신세를 지던 당시엔, 지금 나 때문에 이렇게 해 주시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 맛있는 것만 잔뜩 만들어 주셔서 죄책감마저 들 정도였는데

쇼야 군도 원래 자기 어머니가 요리하는거 좋아한다고 말해주기도 했고

소야노 어머니도 자식들 다 떠나고 적적하던 찰나에 내가 와 줘서, 밥 만드는 보람이 있었다고 좋아하셨다.

 

그 마음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는대로 맛있게 많이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사양을 하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었나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맛 없어서 억지로 먹은 식사는 한 번도 없었다고 확신한다.

 

밥솥에 송이를 포함한 각종 야채를 조미 간장과 함께 넣고 쪄 낸 송이밥은 심각하게 맛있어서

일본 사람들이 보면 놀랄만한 크기의 그릇에 마구 퍼담아 입에 집어넣곤 했었다.

소야노 어머니는 '원래 밥이 좀 남도록 만드는데 싹 비웠네요'라고 웃으셨는데, 어디까지 분위기를 읽었어야 했을지.

 

 

 

소야노 어머니의 밥도 맛있었지만, 도로 앞 휴게소에서도 키소의 명물 먹거리를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산책하던 도중 슨키 카레(すんきカレー)라는 녀석이 있어서 신기한 마음에 하나 사들고 왔다.

 

한국에서는 일본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라 대체 슨키가 뭔가 싶었는데

소야노 어머니가 설명해 주시길, 이 지방만의 독특한 순무절임이라고 한다.

 

보통 절임이라고 하면 소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슨키는 매우 독특하게도 소금이 아니라 유산균을 이용한 발효 절임 음식.

산간지방인 키소에서는 '쌀은 빌려줘도 소금은 빌려주지 마라'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금이 귀하디 귀한 지방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유산균을 이용한 독특한 절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정말로 지역적 특색이 강한 희귀 음식에 들어가지만

내 입장에서는 잘 말린 시래기와 살짝 느낌이 비슷해서 위화감없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이걸 카레에 넣어 만들 필요까지 있었나 싶긴 했지만, 카레의 향이 워낙 강렬해서 슨키마저도 느슨해진다.

 

제작 방식상 시래기와 비슷한 맛이 나는게 당연하지만 여기는 바람만으로 건조시키는게 아니라

유산균이 든 절임물에 넣고 진짜로 삭히는 개념이라, 시래기보다 훨씬 새큼하고 쌉싸름한 산미가 입맛을 자극한다.

나이 든 한국 사람이라면 꽤나 좋아할 만한 녀석. 이걸로 시래기국을 만들어도 꽤나 재미있는 녀석이 만들어질 듯 하다.

 

실은 이후에 소바집 쿠루마야 사장님이 나와 함께 슨키 절임 받으러 건너 마을에 가자고 권유해 주기도 했다.

겨울에 따뜻한 국물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키소 지방의 고유 음식인 슨키를 조합해서

가츠오부시 국물에 슨키를 듬뿍 넣은 슨키 소바가 이곳의 겨울 특별 메뉴였던 것.

수십 년동안 이런 가게들을 위해 슨키를 만들어 온 농가에 직접 들려서 매년 구입해 온다고 한다.

 

뜨끈뜨끈한 슨키 소바도 먹어봤는데, 혀를 싸르륵 자극하는 산미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맛이 강한 시래기국을 먹는 느낌이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은 묘한 매력이 있는 음식.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로겠지만, 짠 거 싫어하는 중장년층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메뉴라고 생각한다.

 

 

 

숙련된 프로 요리사 쿠루마야의 사장님도 지지 않고 내 체중 증가에 도움을 주셨다.

창업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바집 딸내미 분께서 공교롭게도 메밀 알레르기가 있어서

점심때 딸이 집에 있으면 사장님은 항상 소바 이외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내 경우엔 소바가 질려서 먹기 싫어진다는 경우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지만

업으로 삼고 일을 해 오시는 가게 분들 몇몇은 소바가 지겹다며 밥과 반찬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한다.

내가 소바만 줄창 흡입해대고 있으니 가끔 사장님이 '가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소바만 먹는가' 싶어

다른 것도 먹어보라고 권하는 경우도 있었다.

 

난 면 종류를 원래 미친듯이 좋아하는 데다가, 이곳 소바는 결코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기에

후회 남기지 않으려고 끝도없이 소바만 먹어대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사장님의 호의를 생각해서 본의아니게

따로 만들어 주시는 식사를 즐기기도 했는데, 어느 날 만들어 주신 카레가 참 인상적이었다.

 

소바집 사장님이 왠 카레인가 싶지만, 젊을 때 오가사와라 제도까지 가서 음식수련을 했을 정도로

요리라는 행위 자체에 장인정신을 발휘했던 사장님이라서 사실 못 만드는 요리가 없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오가사와라 제도를 구글 지도에서 한번 찾아보시길.

 

딸내미 분이 먹고싶다고 말만 하면 뭐든 척척 만들어 내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본업이 음식점 치프가 아니었다면 내조 킹 남편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위인이 되었을 텐데.

 

사장님을 이 녀석을 음식점용 카레라고 불렀는데, 일반적으로 집에서 만드는 카레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

마치 한국에서 먹는 중국음식점의 전가복이나 해삼탕을 연상시킬 정도로

전분을 듬뿍 넣고 신선한 야채와 카레 소스를 강력한 식당용 화력으로 확 볶아내어 만드는 녀석인데

일본사람 취향에 맞춰서 너무 달짝지근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맛의 색다름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한국서 결코 먹어본 적이 없는 매우 독특한 카레였음에 틀림없다. 카레 소스가 물처럼 흐르는 게 아니라 탕수육 소스처럼 탱글탱글하다.

 

 

 

라면보다 짜장면보다 소바가 더 좋기 때문에, 쿠루마야에서의 점심시간은 나에겐 천국이었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하루 두 끼 정도의 소바라면 죽을 때까지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친절한 쿠루마야 분들은 내가 자신들의 가게에서 좀 더 다양한 맛을 즐겨보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어서

예약 손님의 수가 갑자기 변경되거나, 예상보다 반찬이 좀 더 남았을 때에는 그 남은 도시락을 나한테 주기도 하셨다.

 

이 도시락은 단체 예약시에만 주문 가능한 녀석으로, 일반적으로는 메뉴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소바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도쿄에서도 단체 관광버스 타고 이곳으로 식사하러 오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럴 경우 다른 메뉴로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도시락.

이런 녀석이라면 손님 오기 30분 전쯤까지 대량으로 만들어 세팅해 놓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멀리서 오는 손님한테 아무렇게나 내어 놓는 싸구려 도시락은 절대 아니다.

간 무를 머무린 버섯, 곤약 무침, 신선한 채소 등등 상당한 정성이 들어가는 밑반찬에

연한 간장을 밑에 깔아놓고 살짝 올린 메밀 두부도 그 있는듯 없는듯한 고소함이 매력적이다.

이 도시락과 함께 소바 한 자루씩 제공하는 것이 단체 예약손님에게 내 놓는 기본 코스.

 

개수가 안맞아 남은 도시락을 나보고 먹어보라고 건네줬을 때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게 내가 점심값으로 일당에서 공제하는 금액보다 훨씬 더 비싼 도시락이라서

반쯤 농담이긴 하지만 이걸 먹는다는 건 쿠루마야 직원들에게서는 제비뽑기에 당첨되는 그런 개념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아무리 비싼 도시락보다도 소바 팍팍 건져내서 흡입하는게 제일 행복했지만.

사실 소바집 메뉴 중에서 소바가 제일 싸다.

 

 

 

쿠루마야에서 떠날 날이 얼마 남지않은 나를 위해 고기집에서 회식을 열어주었다.

참가비가 있었지만 결코 나한테는 받으려 하질 않아서 고기를 넘길 때 조금 목이 매이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구워먹는 고기의 원조는 한국이며 일본은 아주 늦게서야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고기 맛은 한국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 그 이론이 통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와서는 고기값이 일본보다 더 싸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인데다가, 일본은 그 특유의 꼼꼼함 때문인지

한국의 고기집보다 훨씬 더 세세하게 부위를 분류해서 조금씩 시켜먹을 수 있어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일본에서는 고기집에 가면 한국 고기집의 메뉴와 더불어 소혓바닥, 곱창, 간 등등도 함께 주문할 수 있다.

 

이 날만큼은 고기도 신나게 집어먹고 술도 마구 들이키고 해서 광란의 하룻밤을 보낸 기억이 난다.

휴게소에 돌아와서 한국의 엄니한테 전화를 했는데, 술이 들어간 탓인지 자꾸 일본어만 튀어나와서 당황했었다.

 

 

 

식당 업무란 거의 노동집약적이라, 나이 든 여성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기업화된 대형 음식점이 아니고 전부 가족들처럼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다 보니

손님이 좀 뜸해서 가게의 저력을 100% 발휘하지 않아도 될 때에는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알아서 쉴 사람은 쉬고 일할 사람은 일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서포트가 중심이라서

굳이 쉬지 않아도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커피 마시고 쉬라고 권유를 받아서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쉬는 시간에 간식 즐겨먹는 것도 이런 일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참 다양한 과자 많이 준비해 놓았다.

그 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건 나고야 명물인 우이로(ういろう)였는데, 가끔 나고야에 가는 사장님이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난 후 꾸준히 사 오셔서 원없이 먹곤 했다. 참 지금 생각하면 낮짝 두꺼운 일이지만.

 

우이로는 양갱과 떡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녀석으로, 팥이나 쌀을 적당히 반죽해서 쪄 내는데

바리에이션이 다양하고, 양갱처럼 과하게 달지 않은 은은한 달콤함이 마음에 들었다.

 

 

 

떠날 무렵 날씨가 추워지면 소야노 가족과 함께 해 먹던 전골.

당시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녀석인데, 전골 자체보다는 그 어마어마한 편리함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준비할 것이라고는 버섯, 양배추, 얇게 썬 고기 등 전골의 기본 재료들 뿐.

물조차 필요없다. 그냥 재료를 나베(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 가열하면 끝이다.

소야노 가족들은 나에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하나 소개한다는 들뜬 마음에 꽤나 신나게 재료를 준비하곤 했다.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냄비는 타진 나베라고 하는데, 척 봐도 일본의 전통 냄비는 아니다.

이 녀석은 원래 모로코의 전통 냄비라고, '타진'이라는 단어 자체가 냄비를 뜻하기 때문에 사실상 '냄비 냄비'라는 이상한 이름이 되어버린다.

 

물이 적은 모로코에서 발달할 만한 냄비로, 중앙 부분의 파인 곳으로 수증기가 집중되어 다시 재료로 떨어지는 순환 구조를 하고 있다.

싸구려 타진은 유리나 금속 재료를 사용하지만 원래는 두꺼운 도자기로 만들어야 수분과 열기가 충분히 내부에서 순환할 수 있다.

수분이 많은 생야채만 잘 넣어놓으면 물 한방울도 넣지 않고 훌륭한 전골요리가 만들어 진다.

국물 먹으면 비만의 원인이 된다고들 하니, 이렇게 물기 별로 없이 만들어진 전골을 소스에 찍어 먹는게 유행이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물조차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찜요리라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기에 좋은 음식이다.

훗날 한국 귀국할 때 이 냄비만큼은 하나 사 갈까 고민했는데, 언제든지 살 수 있으니 그 때 바로 구입은 하지 않았다.

자취생에게도 매우 환영받을 만 하고 해서 조사해 보니 한국에도 역시 많이 들어와 있다.

 

 

 

열차를 기다리는 15분 동안 멍하니 서서 옛 추억들을 되감아 본다.

 

2010년 당시엔 다시 출발하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느낌 때문에

아쉽고 서운하면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에 흥분되었는데

이번엔 인사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아서 예전보다 더 적적한 느낌이다.

 

아예 못 만날 사람들도 아닌데 항상 헤어질 때는 묘한 기분.

 

떠나 보내는 건 오히려 낫지만, 내가 탈 열차가 쇼야 군보다 먼저 와서 배웅을 받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열차 창문에서 어색하게 손 한번 흔들고 나고야로 가는 긴 열차길에 몸을 맡긴다.

나고야까지 직통으로 가는 열차가 없어서 한번 갈아타는 시간까지 합하면 3시간 가까운 이동.

 

 

 

키소를 찾아갈 때는 오랜만에 보는 녹색 풍경의 향연에 눈이 즐거울 따름이었지만

나고야로 돌아갈 때는 풍경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의 잔향이 남아있을 때는 자연 풍경도 뇌리에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그래서 다들 인연을 만드는 것일지도.

 

 

 

기온이 키소와 거의 비슷하지만, 역시 나고야의 밤은 습하고 무덥다.

내일 하루 자유시간이 더 있지만 사실상 이번 여행은 오늘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키소에서의 하룻밤을 위해 덤으로 즐긴 8일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정을 소화해 버린 후의 여행은 잔잔한 여운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며칠 전 나고야에 도착한 날과 같은 호텔의 같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왠지 그때보다 조금 더 쓸쓸하고 아쉬운 기분만 남아있다.

과거로의 여행은 항상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남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의무감과 같은 감정이 이끄는 것이 그런 되짚어 가는 여행이기도 하고.

 

키소와 같은 곳이 내 인생에서 점점 늘어난다면 그건 그거대로 인연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 지는 고통을 초래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인연은 본인이 계획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갈 길을 가다가 나를 부르는 인연이 있을 때 거기에 응답할 뿐이다.

 

 

 

잠자리는 2층의 적당한 방에 들어가기로 한다.

에전에 언급한 적이 있듯, 소야노 집안 남자들은 정리라는 개념을 우주의 특이점 만큼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1,2층 모두 합해 70평이 넘는 상당히 큰 주택임에도 어른 한 명이 누워 잘 공간 만들기가 쉽지는 않다.

 

한국에서라면 뭐,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수준인데

예전엔 덕분에 이 공기좋은 시골집에서 눈과 코가 따가워 죽을뻔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 연락을 미리 하고 갔으면 가족들이 일부러라도 내가 잘만한 곳은 치워 놨을 테지만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딱 한 사람 누울만한 공간에 밀폐되어 자는 잠이란 것도 의외로 안락한 편이다.

자전거 여행 당시, 1인용 텐트에 누워 있으면 내가 자전거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전륜 양쪽에 2개, 후륜 양쪽에 2개의 가방을 모두 뜯어서 텐트 안에 넣으면

자전거에 달아 놓았을 때와 똑같이 누워있는 내 상체와 하체 양쪽에 위치하게 되기 때문.

거의 몸에 밀착되다시피 하는데 그게 또 홀로 자전거 여행의 적막함을 꽉 채워주는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밤에 비가 시원하게 쏟아져서 아침엔 서늘할 정도다.

소야노 아버지는 오늘도 일이 있어서 일찍 박물관에 나가신다. 2층까지 올라와서 나하고 악수한다.

 

쇼야 군은 게임이나 컴퓨터, 애니메이션쪽에 관심이 많아서 가지고 있는 장비도 어마어마하다.

사정상 소야노 부모님은 물건 사주는 데 있어서 별로 부족함이 없는 편이었고 (성인식 이후엔 어찌 될런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런 시골에서도 쇼야 군의 PC 는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최고급 사양을 자랑한다. 케이스 가격만 30만원짜리.

거의 1년 내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컴퓨터를 끄는 시간이 없으며, 토렌트나 위니 같은 공유 프로그램은 24시간 돌아간다.

쇼야 군이 2층에서 자던 곳이 이 컴퓨터 앞이고, 그 외엔 사람이 잘 만한 공간이 없었으므로 나 역시 PC 소음 들으며 잠을 잤다.

쇼야 군은 1층 소파에서 적당히 잤다고, 물론 잠자리 가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죄책감 느낄 정도는 아니다.

 

게임기도 쇼야 군과 동시대 녀석들은 전부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고, 아이폰, 아이패드, 노트북, 1080P 급 액션캠 등등 없는게 없다.

소야노 집안이 원래 가계가 부족하던 집이 아닌데다가, 어머니의 사고 이후 정부 보조금이나 세금 혜택도 많아져서

금전상 별로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겠지만 쇼야 군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지는 짦은 인연의 내가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갖고 싶은거 다 사주는 응석이 아이를 망친다는, 아주 교과서적인 해설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쇼야 군은 부모님의 이런 경제적 여유와 함께, 얼핏 보기에 과도하게 보이는 헌신적 마인드가 없었다면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에서 자전거를 탄 나와 만날 일은 영원히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사람과 가정에게는 당사자들 외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가 있고, 그건 옳던 그르던 자신들의 기준으로 해결을 봐야 한다.

 

 

 

잘 자라고 있는 논을 보니 2010년 생각이 난다.

8월부터 11월까지 생활한 키소 마을이다 보니 중간에 한창 추수철에 포함되었다.

소바집 사람들도 적지 않은 수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보니 휴일 맞춰서 일손 도와주러 가느라 바쁜 나날.

 

소야노 가족도 집 뒷마당에 자기 논이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기계를 빌려서 후다닥 끝내버린다.

원래는 이것보다 3배 정도는 컸지만, 소야노 어머니가 다친 이후로 관리도 힘들고 해서 많이 줄여버린 거라고.

이제는 이런 키소 마을이라도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집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령화가 계속되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가니, 논밭은 있어도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예전에 비해 상당수의 논밭이 메밀밭으로 전환하는 중이라고. 메밀밭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수확량을 보여주는 편이다.

다행이랄까, 나가노 현 주변엔 자연의 힘이 남아있어서 메밀은 그냥 쑥쑥 자라고, 소바로도 유명하니 그럭저럭 푼돈벌이는 된다고.

 

농기계는 한국의 농협과 비슷한 JA 에서 대여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대금을 모아서 대여한 후 날짜별로 돌아가며 사용한다.

괜히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기계를 돌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잠결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는데, 쇼야 군과 아버지는 벌써 한창 작업중이었다.

 

기계 덕분에 쇼야 군과 나는 그냥 가지런히 잘 잘린 뭉터기를 묶어서 구석에 몰아놓기만 하면 된다.

사람이 벤다면 세 명이서도 하루 꼬박은 걸릴만한 일을 1시간 30분만에 다 끝내버리고

바로 트럭에 짚단을 실어 탈곡기로 이동한다. 농촌 마을에는 여기저기 무인 탈곡기가 있어서 이제 힘쓸 일은 다 끝난 셈.

날씨가 더워서 겨우 짚단 수십 개 만드는데도 땀 좀 흘렸지만, 탈곡기에서 쏟아지는 햇쌀을 보고 있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쌀의 소중함' 이라는 말은 꺼내기만 해도 촌스러워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자기 방구석만한 공간만큼의 농사라도 직접 지어보기만 한다면

식사때 입으로 들어가는 쌀알이 얼마나 위대해 보이는지 실감할 수 있을 텐데.

거진 쓰잘데기없는 교육프로그램 몇 개 없애버리고 진짜 '자기가 지은 쌀로 밥 만들어 먹기' 프로젝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탈곡기를 사용하고 나면 온 몸에 가루가 묻어 간질간질한데, 이 날 운좋게도(?) 온수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키소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수로 시원하게 샤워 즐겼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곳 키소와 마츠모토 등지에서는 가을이 되면 추수만큼이나 바빠지는게 송이버섯 따는 일이다.

일본 최대의 송이버섯 생산지인 마츠모토 주변엔, 버섯이 나는 야산 한두 개만 소유하고 있으면

떼부자라고 할 만큼 자생 송이가 잘 나오기로 유명하다.

 

개인 소유가 아닌 산에서는 마을 진흥회 회원들이 팀을 짜서 송이를 따낸 후, 균등 분배하는 식으로 운용한다.

송이가 자라는 산이라는 게 등산로가 존재하는 그런 상냥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요즘 키소 마을도 나이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소야노 아버지 정도 되는 분이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하니 가만히 넘길 문제는 아니다.

 

물이 좋아서 밥맛도 원래 심각하게 좋은 곳인데

내가 있던 2010년엔 송이버섯의 가격 파괴가 걱정될 정도로 너무나 송이 농사가 잘 되는 바람에

시장애 내다 팔 분량을 제외하고 가져오는 송이들마저 A급 이상의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었다.

 

다듬기만 하면 거진 수백만 원 어치는 될 만한 송이를 산에서 담아와, 몇날 며칠을 송이 된장국, 송이 오곡밥, 송이 찜, 송이 구이 등으로 즐기곤 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도 참 난감했는데, 이런 것을 그냥 막 먹으려니 부담감에 위에서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돈을 지불하려니 그냥 산에서 따 와서 연례 행사로 먹는 식사라 그 분들이 받을리도 없다는 점에서 진퇴양난이었다.

 

 

 

키소는 요즘들어 많이 더워졌다고는 하지만, 험한 산세를 낀 마을이라 여전히 밤이 되면 그럭저럭 서늘해 지는 곳이다.

웅웅거리는 컴퓨터 옆에서 쪽잠을 청하니 2010년의 출발 전 추억이 떠오른다.

 

많이 추워지던 시절이라 월동 준비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소바집 쿠루마야 분들과 회식하러 고기집에 갔을 때 선물로 이걸 건내주셨다.

당시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유명했던 그 유니클로의 히트텍.

일본에서는 1천엔 짜리 싸구려라, 광고는 굉장한 첨단기술로 만든 보온 내복인 것처럼 소란을 떨지만

그냥 한겹 더 입어놓으면 조금이나마 따뜻하겠지 하는 그런 수준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나를 위해 일부러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 주셨던 기억에, 옷보다 그 마음이 따뜻했던 추억이 남아있다.

키소에서 가장 가까운 유니클로 매장은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었으니까.

 

훗날 저 비닐봉투도 곱게 싸서 한국에 가지고 돌아왔다. 엄니는 주접을 떠는구나 하고 웃으셨지만.

 

 

 

자기 전 휴게소까지 내려갔다 오는 산책길에서도 예상치 못한 여러 만남을 갖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휴게소 화장실 바닥에 이상한 녀석이 있어서, 일부러 돌아가 카메라까지 가져와 담아봤다.

소야노 아버지는 어릴 적 몇번 본 적이 있는 녀석이라고 갸우뚱 하신다.

 

여행중 만난 생물체에 대해서는 일단 알아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훗날 귀국 후 여러가지 조사를 해 보니

제대로 된 이름도 붙여져 있지 않은, 산거머리의 일종이라고 한다. 거머리종이긴 해도 피를 빠는 건 아니고.

산 속의 습한 곳에서 생활하고, 물이 더러우면 그냥 녹아버린다고 하니 보기보다는 깔끔한 녀석인 듯 하다.

 

그 화장실 앞에서는 아시아 전 지역을 여행중인 이탈리아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키소 휴게소는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 무인안내소가 있어서 헝그리 여행자들에겐 훌륭한 휴식처가 된다.

대부분의 휴게소는 저녁 이후로 안내소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야외노숙이 되기 십상이지만

겨울엔 난방까지 틀어주는 24시간 무인 안내소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곳. 이탈리아인도 행복해 하는 눈치였다.

 

 

 

비가 온 후의 키소 마을 역시 아침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이곳은 정말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해발이 높다보니 비구름이 자주 산기슭에 걸리는데, 이 풍경이 또 환상적이다. 특히 해 뜰때나 해 질무렵의 골든 타임에는.

 

소야노 군은 빡빡한 1학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터라 아침부터 꽤나 뒹굴뒹굴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슬슬 독립할 나이긴 해도 여전히 성인식 마치지 않은 소년이라

이 느긋한 키소 마을에서 빡빡한 도쿄에 상경해 전철 50분씩 타고 학원에 다니는 생활에 익숙해지기 쉽진 않을 듯 하다.

특히 도쿄같은 곳에서 만드는 인간관계는 소야노 군에게 큰 시련이 될 수도 있으니, 내색은 안하지만 조금 걱정도 된다.

 

두 달만 더 있으면 이 집앞 논마지기도 예전처럼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을텐데.

농촌의 사계절은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그 변화만 바라보고 있어도 삶이 바쁘게 느껴지는게 진짜 농촌.

 

 

 

여름날씨가 흉폭할 수록 거대 산골짜기 사이에 위치한 키소 마을같은 곳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날씨를 자랑한다. 폭우가 쏟아지고 나면 살을 꿰뚫는 햇볕이 뒤를 따른다.

기념 사진이라도 남기려고 카메라 들고 밖으로 나오니, 사진 찍기엔 최고의 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소야노 군은 자신이 배우는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마음에 드는지 여러가지를 설명해 준다.

일본이 자전거 산업으로는 세계 최강에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문적으로 자전거 지식을 가르치는 곳은 없었다고.

자기가 2회 입학생이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과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시장 선점의 효과를 볼 수 있을거라 한다.

 

자전거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자전거 공학은 넓게 봐서 우주선 제작에까지 연결되는 기술의 결정체다.

어떤 소재든 실험할 수 있고, 그 반면 재료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는 구조를 하고 있으며, 실전 테스트 역시 어렵지 않은 녀석이라

고분자 탄소강과 카본으로 프레임을 떡칠한 수백, 수천만원대의 자전거도, 실험용으로는 저렴한 편이다.

 

그 외에도 자전거는 사람 손이 여전히 기계보다 우위를 점하는 제작 분야라서, 도전할 가치가 충분한 시장이기도 하다.

소야노 아버지가 탔었고, 지금은 소야노 군이 산책용으로 사용하는 사진의 저 자전거도 60년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모델.

소야노 군은 프레임을 이리저리 분해해 가면서 형태별 강도와 저항성 등에 대해 신이 나서 설명을 해 준다.

 

자전거 이론에 대해 듣는 것 역시 나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한번 파고들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 열정을 보이는 소야노 군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흐뭇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역시 반쯤 이쪽 가족이 되어버린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낮엔 대자연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곳이지만, 대자연이 이렇게 낭만적인 녀석인 것만은 아니다.

모든것이 풍성한 여름이야 모든 것들이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지만

가을이 넘어가면 이 풍경은 점점 가혹한 경쟁의 전장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겨울이 빨리 찾아오는 이곳에서는 10월에 들어서기 무섭게 하루에 한두 번씩 곰 출몰 주의보가 내려진다.

슬슬 먹을게 줄어드는 시기라 맷돼지는 물론이고, 평소에 보이지 않던 곰까지 마을 주변에 출현한다.

 

지금 사진 찍어대는 이 풍경조차 사실 소야노 집 5m 앞의 모습인데, 이런 풍경이 마냥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닌 것은 그 때문이다.

밤에 산책하러 갈 때도 괜스레 무서워 질 정도라, 자전거 여행 할 때보다 더 스릴넘치는 시간이기도 했다.

소야노 아버지가 밤에 산책나가는 나한테 강력 렌턴과 방울 한 쌍을 건네줄 때 정말 오싹할 정도였으니.

 

 

 

내가 이 집을 찾은 2010년 당시엔, 소야노 가족도 여러가지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시절이다.

소야노 어머니가 사고로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후, 수 년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 모든 구역을 베리어 프리로 바꾸고, 장애인 혼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샤워 장비도 갖추고.

 

중간에 시공업체가 계약기간을 준수하지 않고 돈만 받아먹어서 소송까지 갈 뻔한 시기도 있었고

업체측에서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계약외의 앞마당 차고까지 하나 더 만들어 주던 시기가 바로 내가 도착했던 때다.

 

왼쪽에 슬쩍 보이는 저 차고는, 완공되는 당일 집에 놀러온 소야노 형이 그대로 갖다 박아버리는 바람에 찌그러졌지만

이번에 와 보니 박은 곳은 말끔하게 수리되어 있다.

추억이 사라진 듯 해서 약간 아쉬웠지만, 나와 소야노 가족은 멀쩡한 차고 기둥만 봐도 웃을 수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소야노 군은 나하고 닮은 점이 없잖아 있어서, 오히려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알아차리는 부분이 있어 가끔 난감하다.

단지 14년의 시간이라는 차이만큼의 연륜이 나와 소야노 군의 간격을 조금이나마 만들어 주는 갭이라고 할까.

내가 잡아낼 수 있는 것을 소야노 군은 잡아낼 수 없고,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소야노 군 역시 지금의 내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야노 군의 말투와 톤, 대화 사이의 'pause', 대화의 흐름 등 모든 요소에서 미묘한 차이점을 느끼는 것.

소야노 군이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그 의도와 관계없이 대화 깊숙히 가라앉아 있는 사실을 잡아낼 수 있다.

괜히 소야노 군을 속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가끔 우울해 지지만, 이건 내 의도대로 생각할 수 없는 반사적인 행동이다.

 

단지 이번에 만난 소야노 군은 , 여전히 자신의 앞날에 대해 그리고 자신 스스로에 대해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와 그에 따른 준비를 차근차근히 실행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생애 첫 뿌듯함을 느끼는 듯 했다.

머리가 불안하고 어지러워도 두 발을 내밀다 보면 앞으로 전진하게 되어 있다고 슬쩍 말해준다.

사하라 사막에서도 느꼈던 사실이니 그것만큼은 조언해 줄 수 있다.

 

 

 

집안은 확실히 리쿠때문에 좀 더 냄새가 나고 지저분해 진 느낌이지만

워낙 애교가 많은 녀석이라 소야노 어머니 재활에도 도움이 되는 듯 하니 나쁠 거 없다.

 

소야노 집안 가족이다 보니 이 녀석도 왠만한 강아지 저리가랄 정도로 사정이 많은 녀석.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무려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 집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토이 푸들이라 몸도 굉장히 약해 어릴적엔 죽음의 고비도 많이 넘겼다고.

지금은 뭐 이쪽 가족들을 닮았는지 엄청 건강해 졌지만.

 

머리가 굉장히 좋고 순해서 기분 나쁠때 오줌으로 항의하는 것까지 잘 익힌 녀석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소야노 아버지에게 만큼은 끊임없이 짖고 물고 난리도 아니다.

장난인가 싶었는데, 한때는 옷도 찢기고 피까지 날 정도로 물린 적도 있다고 하니.

 

유독 소야노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만 그런 현상이 심한데

아무래도 이 녀석 머리에서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건강한 아버지의 이동 루트에서 뭔가 유추를 하는지도 모른다.

교정사를 불러 고쳐야 할 만큼 큰 문제도 아니라서 그냥 애교로 놔 두고 있는데, 소야노 아버지가 이 녀석을 엄청 좋아하니까.

 

수컷이라 그런지 남자를 좋아한다는데(?) 나를 굉장히 잘 따르고, 쓰다듬어주면 배를 발랑 뒤집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소야노 어머니를 제일 좋아해서 틈만 나면 휠체어 위로 뛰어올라가지만

어머니가 자기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제서야 털털털 내 옆에 와서 풀썩 누워버리는 영리함도 보여주지만.

 

 

 

원래 엄청 깔끔한 타입이었던 소야노 어머니가 보시기에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집 남자들이 청소, 정리에 대해 초인적인 무신경함을 발휘하는 능력자들이라 사실상 포기 상태인 듯.

 

의료, 봉사쪽으로 활동을 오래 하신 분이라 생각의 전환이 빠르다는게 오히려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반신 마비 후 자신이 마음대로 청소할 수 없는 집안 현실을 앞에 두고

한탄과 분노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과, 살다보니 지저분한 것도 익숙해 지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맨날 노력이니 끈기니 포기하지 말라느니 하는 가증스러운 혀만 놀리는 소위 '멘토'라는 것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그게 스트레스가 된다면 포기하는게 훨씬 낫다. 이것은 특히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의 치료와 큰 관련성이 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포기하면 안된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건 그냥 수명만 깎는 길이다.

후천적 장애를 짊어진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고로, 2010년 당시보다 쪼금 더 어지러워져 있는 이 모습에 오히려 조금 안도가 된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하룻밤 신세 진 김에 바닥 한번 쓸고 닦아는 드렸다. 리쿠 오줌때문에 조금 찐득해 지려는 참이었으니.

 

 

 

새벽까지 비 온 후 그렇게도 화창하던 날씨가 또 한번 격변한다.

지나가는 소나기인 듯 하지만 아주 시원하게 쏟아주니 이건 또 이거대로 반갑다.

자연이 풍요롭기만 하면 어떤 상황이든 보기 싫은 모습은 없다.

 

이런 환경 탓인지 이곳 특산품인 옥수수는 진짜 맛있다.

적당히 노릇노릇 구워진 옥수수를 씹어물면 달달하고 진하게 고소한 맛과 탱탱함이 나를 즐겁게 한다.

 

옥수수는 보기와 달리 신선도가 매우 중요한 녀석으로, 수확 후 1주일만에 원래 맛의 70% 이상이 사라져 버리는 품종이다.

이곳에서 바로 딴 녀석을 찌고 구워서 먹었을 때 그 황홀함은 그 신선도의 탓일지도 모른다.

 

키소는 여름이 좀 늦은 편이라 아직 수확철이 아니라서 먹을 수 없었다.

TV에 나오는 '줄 서서 먹는 음식점'에서 30분, 한 시간씩 기다렸다가 후다닥 먹고 나오는 그런 체험보다는

차라리 옥수수 맛있는 곳에 차 타고 가서 제철 옥수수 따자마자 바로 구워먹어 보기를 추천한다. 차원이 다르다.

 

 

 

한 시간쯤 뒤에 출발해야 하는데 비가 쏟아지니 약간 난감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소야노 군이 자기도 오늘 성인식 정장 보러 마츠모토에 가야 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역 앞까지 차로 바래다 주시기로 하셨다. 아마 나름 신경 써 주신 것이겠지.

 

이럴 경우엔 극구 사양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소야노 어머니의 경우 감사의 인사 한번 하고 받아들이는게 낫다.

사고 후 4년만에 장애인용 자동차를 한 대 뽑으신 게 2010년이었는데

그 이후 연습을 많이 해서 어지간한 장거리 아니면 쉽게 운전이 가능하다고 하신다.

 

이동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동차 운전이 굉장히 즐겁고 도움되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걸어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역까지 태워주신다고 해도 내가 굳이 말릴 필요가 없다.

두 손으로 조절하는 엑셀과 브레이크의 감촉이 소야노 어머니같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뿌듯할까.

 

 

 

아침엔 산등성이를 타고 흐르는 물안개.

오전엔 풀내음 풍기는 짜릿한 여름 햇살에, 점심무렵엔 폭우로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니

한 곳에서 이동하지 않고 이렇게 셔터 눌러재끼는 재미도 참 각별한 것이다.

 

도시에서는 일 주일에 한두 번도 셔터 누르기 귀찮을 뿐이고

요즘처럼 밤에 온갖 트리와 전구가 빛나는 시기도 시큰둥할 뿐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카메라를 그냥 어깨에 걸쳐놓는게 더 편할 정도로 눈을 쉬게 할 여유가 없다.

 

이 앞에 바다만 있었다면 아마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지 몇 년은 지났을텐데.

대구 사람이다보니 역시 바다에 동경을 품고 있는건 당연할지로 모르겠다.

사실 소야노 군도 바다가 보고 싶어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니, 내륙 주민들의 생각은 이런 데서 닮아있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