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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東京'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2.16  도쿄 산책 - 그때의 시작과 지금의 끝 10
  2. 2013.02.08  도쿄 산책 - 나는 어디 여긴 누구 18
  3. 2013.02.04  도쿄 산책 - 오다이바의 건담 14
  4. 2013.01.30  도쿄 산책 - 시오도메의 거대 시계 14
  5. 2013.01.25  도쿄 산책 - 삿포로 라멘 스미레 18
  6. 2013.01.20  도쿄 산책 - 요코하마 라멘 박물관 20

 

새벽에 갑자기 호텔 전화기에서 벨이 울리길래 깜짝 놀랐다.

프론트 직원이 '손님 오늘 콜택시 예약하셨는데요' 하고 말하길래 더욱 깜짝 놀랐다.

예약은 체크아웃 당일인 내일 새벽에 해 놓은거라고 하니까 자기는 'Tomorrow' 라고 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내일이라고 확인한 후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시간은 4시 45분쯤.

 

콜택시를 4시 반에 예약했으니, 택시기사는 15분 혹은 20분쯤이나 도로에서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프론트를 불렀을 터.

본의는 아니라고 해도 괜한 수고를 하게 해서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새벽 불시에 잠이 깬 터라 전화기에 제대로 응수를 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직원쪽의 미스라는 확신이 생긴다.

내가 외국인인걸 알고 있으니 직원은 자꾸 자기가 'Tomorrow' 를 들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썼듯이 난 일본에 왔을때는 머릿속 생각조차 일본어로 떠올리는데 익숙해 있다.

나하고 얼굴 맞대고 이야기를 해도 내가 일본사람이 아니라는걸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그런 내가 호텔 직원한테 영어를 이야기 할리가 있나? 한국어는커녕 일본어보다 더 못하는게 영어인데 말이다.

 

어느 쪽이든 변명은 필요했을테니 직원에게 악감정을 가질 것까지는 없지만

이런 일이 있고나니 잠은 완전히 깨어버리고, 두시간동안이나 침대에 파묻혀서 당시의 잘잘못에 대해 끊임없이 되짚어보는 고행만이 남을 뿐.

 

조식 먹고나서 문득 네거티브한 생각이 든다. 여행중에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생겨난 방어기재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무튼 직원에게는 좀 미안한 가정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호텔은 새벽시간중엔 프론트가 휴무를 하기 때문에, 이 직원은 괜히 근무시간 외에 잠이 깨서

내 뒷수습을 해 준 셈이다. 그래서 슬그머니 든 짜증일런지, 아니면 순수한 착각의 산물로 인해

내일 새벽의 콜택시 예약을 그만 잊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

 

그다지 바람직한 추측은 아니지만, 어쨌든 오늘로 착각한 콜택시가 그만 취소되어버려서 내일 오지 않는다면

나는 비행기도 타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버릴지도 모르니, 이런 경우엔 재차 확인해 두는것도 나쁘진 않다.

 

프론트 직원분한테 다가가자 그쪽에서 먼저 웃으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줘서 한결 기분이 풀린다.

내일 콜택시 다시한번 정확히 확인하고, 어제 직원이 내 이야기 받아적던 종이를 다시 펼쳐들었는데

거기엔 분명히 내일 날자가 프론트 직원의 손으로 정확히 적혀있었다. 동그라미까지 친 상태로.

여기서 '이거 봐요. 분명히 내일이라고 적혀있네' 라고 확인사살을 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입다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해만 풀린다면, 굳이 이 친절한 직원에게 면박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웃으며 괜히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내일 예약시간을 정확히 확인해 두었다.

나같은 사회부적응자 치고는 꽤나 스무스한 일처리였다는 만족감에 조식도 한층 더 맛있게 느껴진다.

 

내일은 새벽 4시 반에 공항으로 출발하니 사실상 오늘이 여행 마지막날.

닛코를 다녀오지 않은 이번 여행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행선지는 미리 정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콘크리트 정글인 도쿄에서 숨막히게 돌아다녔으니 마지막으로 숨 좀 돌리는 의미로, 일본식 정원에서 산책이나 하기로 한다.

 

 

단지, 지갑속에 남은 현금을 탈탈 털어보니 불안감을 떨칠 수 없긴 하다.

남은 금액이 5천엔쯤 되니, 예정에 없었던 선물까지 계산에 포함하더라도 그리 흥청망청 쓴 것은 아니고

귀국 하루 남겨두고 이 정도면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그 모든 계산을 무시하고 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내일 새벽의 콜택시 요금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요금 비싸기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의 택시인데, 콜택시 추가요금까지 붙으니 얼마나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우에노 역에 도착해 거기서 공항까지 전철요금은 약 1천엔쯤.

그러니 콜택시 요금이 거진 2천엔쯤 나오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해 본다면, 오늘 맛있는거 사먹을 돈은 1천엔밖에 없다는 셈이다.

점심, 저녁, 그리고 간간히 먹을 간식을 생각하면, 1천엔으로 하루 버티는건 사실상 편의점 컵라면과 주먹밥 정도가 전부.

 

오늘 산책할 정원 리쿠기엔(六義園)의 입장료와, 거기까지 왕복 차비를 계산하면 1천엔도 남지 않을 가능성마저 있고.

그놈의 새벽출발만 아니었어도 5천엔은 느긋하게 즐길거 다 즐기고 책한권까지 사도 될 금액인데.

 

이렇게 머리 쥐어뜯던 내 고민은 사실, 맥이 풀려버릴 정도로 너무나 손쉽게 해결되었다.

돈이 없으면 ATM에서 뽑으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해 버렸기 때문에.

시티은행 카드를 갖고 온게 아니라 저렴한 수수료는 기대할 수 없지만

4~5천원 정도의 수수료를 지불하면 편의점에서도 엔화를 바로 인출할 수 있다.

 

조식 먹고 옆의 편의점 가서 몇초만에 1만엔 한장을 뽑아내니, 이제껏 한 고민은 무엇인가 마음이 허전해진다.

외국 신용카드로는 1만엔 단위로밖에 인출이 되지 않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1만엔 뽑은게 조금 아쉽긴 했다.

몇분 전까지 돈을 어떻게 세이브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갑자기 소지금이 3배로 펄쩍 뛰어버려 돈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차피 남겨서 돌아가봤자 환전수수료때문에 손해밖에 못 볼 것. 여행 마지막날을 컵라면으로 때워야 하나 고민했던 나는

한순간에 '오늘은 사고싶은 책이나 사고 먹고싶은거 막 먹고 호탕하게 놀아보자' 라고 자신만만해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바보같긴 하지만.

 

목표지인 리쿠기엔은 우에노역에서 야마노테선 전철을 타고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또다시 무료 셔틀버스의 힘을 빌어 공짜로 우에노역세 도착한다.

일부러 할 것까진 없지만,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셔틀버스나 조식같은거 많이 먹고 많이 이용할수록

왠지 이득봤자는 기분에 뿌듯해진다. 이런게 소시민의 소소한 기쁨이려나.

 

 

야마노테선 코마고메(駒込)역에 내려서 조금 걸으면 이곳 리쿠기엔에 도착한다.

도쿄에는 중앙에 큰 연못을 중심으로 돌길이 형성되어 있고, 그 주변을 잔디와 초목이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일본의 '회유식 천수정원'이

접근하기 좋은 곳에 꽤나 여러군데 흩어져 있다. 과거엔 쇼군이나 지역 유지들의 개인 소유 정원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국가에 귀속되어 문화재나 명승지로 등록되어 있다. 덕분에 이렇게 일반인들도 구경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도쿄 내부의 여러 회유식 정원중 이 리쿠기엔이 특별히 더 훌륭하거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현존하는 도쿄의 모든 회유식 정원은 지진, 화재, 전쟁등으로 오리지날이 사라진지 오래고, 모두 전후 재건된 것들이니까.

 

그런 것들 재쳐두더라도, 이곳 리쿠기엔에 비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경치와 매력을 가진 정원 역시 없지 않다.

구 시바리큐온지 정원(旧芝離宮恩賜庭園) 역시 경치가 빼어나고, 코이시카와 코라쿠엔(小石川後楽園) 같은 중국식 감각이 남아있는 정원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도쿄가 콘크리트 정글임에도 서울보다는 낫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큰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들 회유식 정원이 곳곳에 가동중이기 때문.

복잡한 빌딩숲에 둘러쌓여 있어도, 전철 조금만 타면 도쿄 어디에서든 자연 가득한 정원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요소가

도시로서의 가치에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다 주는지, 직접 다녀보지 않으면 실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정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와본곳인 이곳 리쿠기엔을 다시 찾은것은

새로운 정원을 탐미하는 즐거움보다, 예전의 추억을 다시 곱씹어 보는 즐거움이 더 클 것이라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이곳은 생애 첫 자전거여행을 시작한 2008년, 도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간 정원이기 때문에.

첫 자전거 여행으로 짐 40kg 가까이 싣고, 장거리 여행전용 자전거를 사고, 막 발매된 니콘 D700 과 렌즈군을 들고

도쿄에서 홋카이도 최북단까지 약 2000km 정도를 달릴 생각에 흥분도 되고 불안도 하고 정신없는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아늑한 정원이나 산책하면서 마음을 좀 다스리자고 생각하고 찾아온 곳이 여기 리쿠기엔이었다.

그때는 9월이라 도쿄는 아직 한창 더울때였고, 마음을 다스리는데는 훌륭하게 성공했다고 자신할 만큼

고즈넉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모습에 매우 만족했었는데, 문제는 모기가 창궐하기 딱 좋은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터라

산책하고 사진찍는동안 정말 미친듯이 모기에 물어뜯겨서, 팔다리에 근육이 불어난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음은 편안해지고 몸은 가려워지는 이면적인 성과를 안고 출발한 자전거여행은 나름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긴 여행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곳 리쿠기엔이니

이번엔 오랜만에 찾은 도쿄 산책의 마지막 코스로 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것이다.

 

지금은 겨울이니 더 이상 모기의 습격에 벌벌 떨 필요는 없을테고

반대로 숨막힐 정도로 생명력을 뿜어대던 이곳의 초목들은 지금 꽤나 느긋한 겨울잠 중일 듯 하다.

실제로는 벚꽃과 낙엽으로 도쿄 내에서 가장 유명한 명승지라서

봄과 가을 시즌이 되면 지금처럼 느긋하게 둘러본다는 건 꿈도 못꾸는 호사가 되어버리니

멋진 풍경도 인파에 치여가면서는 보고싶지 않은 나에게는 지금같은 시기가 어울릴 법도 하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맨 먼저 보이는 빨간 의자와 양산.

자연적인 붉음과는 다른 강렬함이 항상 첫 번째로 눈길을 끈다. 나름대로 괜찮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입구 지나치자마자 지칠 일은 없으니 항상 이곳은 텅 빈채로 담게 된다.

이곳은 입구와 출구가 같은 곳이라, 정원 산책을 한바퀴 끝내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 그때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아직 제대로 된 정원 내부엔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기분은 굉장히 좋다.

2008년 첫 장거리 자전거 여행때문에 잔뜩 긴장해서 심히 우울했던 나에게

아주 훌륭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준 곳을 다시 한번 찾게 된 즐거움이기도 하고.

 

이번 도쿄 여행중 제대로 된 산소 한번 들이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상쾌하기도 하고

의도치않게 매번 해질녘이나 해가 지고나서 카메라 셔터를 누를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제야 화창한 날씨아래서 마음껏 카메라질좀 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고.

 

입구 언저리에 아직 단풍이 남아있는걸로 봐서, 완전히 황량한 리쿠기엔을 상상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본인은 그런 황량한 정원도 얼마든지 좋아한다. 자연의 모습은 활기차던 숨죽이던 모두 빠트릴것 없이 멋지니까.

 

 

요즘들어서는 카메라를 꺼내는 일이 좀 줄어들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이번 도쿄 여행사진을 봐도, 외국에 여행까지 와서 최고급 카메라 장비 들고 고작 하루에 50~60장 찍은게 전부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미러리스나 컴팩트나 휴대폰 사진에 비하면야 꺼내들고 조준하기 여간 힘든게 아니니

셔터 수가 줄어드는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행사진이 하루에 50~60장이라는 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

 

하지만 오늘같은, 정원을 산책하는 날에는 유난히 셔터횟수가 늘어나는게 내 성격인가보다.

입구에서 10m 밖에 걸어들어가지 않았는데 벌써 사진이 4장째다. 어제까지는 4장 찍으려면 30분 정도 걸렸는데.

사실 도쿄라는 콘크리트 정글속에서 뭘 더 찍어야 할지 난감했던 것도 있고

리쿠기엔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지닌 곳이라, 평소보다 더욱 반갑고 기분이 들뜬 탓이라고 생각하는게 좋을 듯.

 

 

구름 한 점 찾아보기 힘든 청명한 날씨다. 도쿄에서 이정도로 맑은 날을 보는건 드문 일.

물론 서울보다는 확률이 조금 높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맑은 날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 때가 12월 초였는데, 한국과 일본 동북부 전선이 묘하게 정체되어 있는 바람에

한기류가 정체된 곳에서는 눈도 어마어마하게 오고 날씨도 매우 매섭고 그랬던 시기다.

도쿄는 그런 전선의 바로 밑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날씨도 따뜻했고 아주 깨끗한 하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단지, 구름이 전혀 없는 탓에 오전부터 아주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이고 있는 실정이라

이곳 정원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상당히 강하고 진한 모습으로 고정되어 버리는게 살짝 아쉽다.

이런 곳은 은은한 풍취가 어울리는데, 지금은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보다 대비가 좀 더 강해보인다.

 

물론 흐리멍텅한 날이나 비오는 날보다는 나으니, 분에 겨운 투정할 필요없이 줄기차게 셔터를 누를 뿐.

 

 

자전거 여행 도중에도 도쿄는 몇번이고 거쳐갔지만

이곳 리쿠기엔을 찾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 곳이었으니

여행이 끝나기 전까지 다시 찾고픈 생각이 없어서였을까.

 

지금에 와서는 그때의 흥분과, 여행 직후의 무기력 상태도 많이 호전되었고

도쿄에서의 도시냄새나는 여행을 마무리짓기엔 역시 이곳의 힘이 필요하다는 기분이 든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별도 예약과 요금을 주고 들어갈 수 있는 차실로

일반 관광객들이 산책하는 도중에 차 마시는 가게가 아니다.

건물이나 좀 직어볼까 싶어서 다가갔는데, 사실은 저 위의 대나무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저 차실 예약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다.

 

제대로 돈을 내고 집회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니 납득은 가지만

오늘은 저곳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슬쩍 들어갔다 나와도 뭐라 할 사람 없다.

애초에, 정말로 나이 지긋한 단체 몇몇을 빼면 저기를 이용할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고.

일단 도쿄의 주요명승지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은, 대실을 한다고 해도 흡연, 음주 불가, 음악 등의 큰 소리 불가등의 제약이 있고

말 그대로 차분하게 차와 간단한 식사를 즐기며 정원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곳이니까.

내가 애늙은이 소리 자주 듣는 편이지만, 젊은층이 이런 곳에서 모임 가지지는 않을거라 본다.

 

 

언제 찾아와도 뭐라 그리 겁나는지 새파란 얼굴로 맞아주는 소나무 덕분에

정말 한적한 겨울의 리쿠기엔도 생명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겨울 오전중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산책은 거의 혼자 하는 수준이라 다행이다.

오후부터는 날씨도 풀리고 하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듯 하다.

그래봤자 꽃놀이 단풍놀이 하는 시기에 비하면 텅텅 빈 것이나 마찬가지니 별로 신경쓸 건 없고.

 

 

저기 수용인원이 총 25명이고, 전실을 하루 통째로 빌리면 12만원쯤 하던데

6개월 전부터 이용할 수 있으니 아마 시즌 무렵은 이미 꽉 차있을듯 하다.

 

단풍구경은 둘째치고, 벚꽃구경에는 술자리가 빠지면 섭섭한 일본사람들이라서

음주가 금지되는 이곳 리쿠기엔은 조금 아쉬운 생각 드는 사람도 많을 듯.

눈처럼 깔려있는 낙엽의 파도들이, 화려했던 시기의 이곳이 남긴 조그마한 여흥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난리치고 난 뒤의 모습은 별로 보기 좋지 않지만

자연의 잔치는 그 뒷모습도 여윤을 남기곤 한다.

 

 

사실 입구에서 제대로 된 루트를 밟으면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게 이 모습이다.

도쿄에 와서 5일동안 나무다운 나무, 숲다운 숲, 공기다운 공기를 접한 적이 없다가

이렇게 이곳에 오고 나니 왠지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도 별로 없어서, 멀리 담 너머 들려오는 도시의 잡음조차도

이곳에서는 적당히 자극을 주는 일종의 리듬으로 들리는 듯 하다. 시각적 풍요로에 청각 역시 너그러워지는 기분.

 

이렇게 보면 겨울이라도 충분히 푸르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지금 이 풍경은 1년중 가장 쓸쓸한 모습이다. 겨울이라서 이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것 같아서 2008년 9월에 비슷한 위치에서 담았던 리쿠기엔의 모습을 풀어본다.

봄엔 벚꽃, 가을엔 낙엽으로 색이 풍부해지지만, 여름부근까지는 그런 거 없다.

산책하고 있으면 마음도 잔잔해지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의 폭발하는 듯한 생명력의 향연은

도쿄 시내에서 없어서는 안될 오아시스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물론 요즘엔 에어콘 있는 곳이 더 편하겠지만.

 

 

지금은 겨울에다가 오전이고 해서, 정원은 아직 잠이 덜 깬듯한 차가움을 보여준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단풍이 조금 더 남아있다고 해야 할까.

반대로 생각하자면 한창 가을무렵의 단풍이 너무도 대단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원이란 곳이 그렇다.

어느 계절에 오던 모습이 워낙 달라서, 눈 앞의 풍경에 즐거워하면서도

다른 계절의 모습은 또 얼마나 다른 매력을 보여줄 것인가 궁금해져서, 또 다시 찾게 된다.

내 입장에서는, 리쿠기엔은 늦여름과 초겨울의 모습을 감상했으니 이제 봄과 가을이 남았는데

꽃놀이 무렵의 도쿄는 사실 내 상성과 심히 맞지 않는 곳이라 꺼려지긴 한다.

 

뭐, 평일날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구경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쿄가 아닌 한적한 시코쿠의 정원에서는 인파가 꽤나 붐볐음에도 불구하고 꽃구경 실컷 했으니까.

 

막 걷기 시작했을 뿐이라 지치진 않았는데, 벤치에서 낙엽 감상이라도 할까 싶어 잠깐 앉는다.

2008년의 리쿠기엔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지만 주위를 둘러볼수록 그 때의 모습이 조금씩 머릿속에 그려지는 기분이 든다.

 

 

갖고 간 렌즈가 35mm 와 70-300mm 라서, 중간화각이 조금 비어버리는 느낌이다.

망원렌즈를 사용하려니 전신 담기가 힘들어서 발품을 팔아 뒤쪽으로 물러나 찍는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사진 찍는 풍경이 좀 바뀐 듯 한데

컴팩트 카메라 갖고 다니는 사람은 물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상당수의 관광객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대부분 화각이 넓은지 사진 찍으려고 뒤로 물러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예전 사하라 사막 마라톤 당시엔 절대로 DSLR 급의 장비를 들고 달릴수가 없었으니

고르고 골라서 코닥의 이너줌 컴팩트 카메라를 들고 갔었는데, 내 실력에 비하면 훌륭한 사진을 남겨줬지만

그래도 역시 장비의 아쉬움은 있어서, 여행갈때는 어깨 부서지더라도 좋은 장비 갖고 다니려고 노력한다.

요즘엔 휴대폰 사진도 너무 잘나와서 딱히 카메라 갖고 다닐 필요가 없는걸까?

 

스마트폰을 가지고는 있는데, 그 녀석으로 사진 찍은건 열손가락으로 꼽아도 남는다.

스마트폰으로도 이 정도를 척척 찍어낸다면, 쓸데없이 크고 비싼 카메라 들고 다니는 꼴이 되니 걱정도 된다.

 

 

 

일본쪽 유머사이트에는, 2009년 진도 6 정도의 지진에 이녀석이 쓰러졌는데

혼자서 스윽 일어나더니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 서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밤에 관람객들이 없어지면 가슴의 해치가 열리면서 조종사가 나오는 모습도 봤다는 둥의 이야기도 있다.

 

물론 1:1 스케일의 로봇이라는 특징때문에 만들어진 소문일 뿐이지만

정해진 시간에 손이나 팔이나 머리가 살짝살짝이라도 움직이는 모습 보면

사실 이녀석은 겉모습만 아니라 실제로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는 병기가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드는것도 사실.

 

여기까지는 그냥 뜬소문이지만, 2009년 당시 전시를 마치고 해체작업을 시작할 무렵에

머리부터 차례로 해체하다 보니 건담 애니메이션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라스트 슈팅' 장면이 재현되고 말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디테일에 신경쓰는 일본인 특성에 건담 매니아들이 집대성되어 만든 모형이다 보니

2009년 해체했다가 이번에 다시 세우면서도 나름 애니메이션의 설정에 들어맞는 이유를 만들어 냈다.

주인공 아무로가 이 건담 타고 활약하는 도중에, 그의 반사신경을 기체가 점점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관절부의 운동성을 높히는 마그넷 코팅이라는 신기술을 채용해서 업그레이드를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

이번에 새로 세워진 이 녀석은, 자세히 보면 2009년 버전과 비교해 팔다리의 관절부분이 미세하게 다르다고 한다.

고증에 대한 이런 집착이 때로는 관람객들에게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기도 한다.

 

 

 

건담 모형 옆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에 따라 화려한 치장을 한 다이바 시티의 단면이 보인다.

건담을 마음껏 즐긴 아이들은 이 빛으로 가득한 계단을 마구 오르내리면서 여운을 만끽하고 있다.

 

계단에 조명 설치하는것도 괜찮은 선택인데, 매끈한 벽면을 스크린 대용으로 사용해서 프로젝터로 글씨는 비추는 시도 역시 훌륭하다.

물리적인 공사를 요하는 것도 아니고, 묘한 조명과 어우러져서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준다.

옆에 초현실적인 크기의 건담도 서 있으니 더욱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도 들고.

 

 

 

건담이란게 일본에서는 국민적인 브랜드로 자리잡기도 했고

요 근래 들어 만화나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의 소비자 충성도가 상당한 장사가 된다는걸 실감한 기업들이

저 건담까페같은, 완벽한 매이나지향 프렌차이즈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게 요즘 현실이다.

 

일단 인구와 소비층이 두텁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라서, 한국의 경우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케이스지만

어쨌든 부럽긴 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프렌차이즈의 다양화는 선택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을 주니까.

 

어릴때는 프라모델에 빠져서 건담을 참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냥 전시된 프라모델 구경하면서 감탄정도 해 주는 레벨이라서

괜히 음료값 비싼 저런 까페에 들어갈 일은 별로 없다. 만약 건담 좋아하거나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과 함께 왔다면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들어가 봤겠지만.

 

그리고 자금이 간당간당한 지금 상황에서 자칫 들어갔다간 쓸데없는 기념품에 손을 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기도 하고.

건담까페 대문 왼쪽에 세워져 있는 현수막에는 하로만(ハロまん)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하로' 라는건 건담에 나오는 마스코트적인 캐릭터로, 대강 이렇게 생긴 녀석이다. 애완동물같은 포지션.

'만'이라는 건 한국의 호빵과 같은 간식이라고 생각하면 되니, 하로만은 아마도 이 녀석 모양을 한 호빵을 의미하는 듯.

어릴적만큼의 애정이 있었다면 꼭 한번 사먹어 봤을법한 녀석이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건담에 크게 흥미가 없다.

 

 

 

건담만 주구장창 담다 보니 아무래도 사진에서는 크기가 잘 실감나지 않을 듯 해서

죄송하지만 동의없이 한 커플의 뒷모습을 비교대상으로 담아버리고 말았다.

 

여행같은거 가면 특히 좀 더 용기를 발휘해서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렇게 새가슴이어서야, 담고싶은 모습도 제대로 못 담는 사태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인도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사진 찍히는걸 너무 좋아해서 막 덤벼든다는데

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도여행이 필요한 것일까.

 

이렇게 한바퀴 돌아가며 건담을 담고, 잠깐 카메라 꺼둔 채 눈으로 감상을 하고 있으니

아마도 좀 전에 열심히 기념사진 찍고 있었을 법한 젊은 여행객 무리가 나한테 다가온다.

맛폰으로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자유의 여신상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적당한 아시안 엑센트 영어로 물어보는데

1초 정도 되는 짧다면 짧은 시간 속에서 내 머리가 너무 많은 요소를 복합적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잠깐 말이 헛나가 버렸다.

 

외국사람이라면 그렇구나 착각할수도 있지만 왜 한국사람이 내가 한국사람이란걸 알아차리질 못하는가.

다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분위기좋은 커플이나 일행도 아니고, 시커먼 옷에 덜덜한 덩치에 눈매 사납게 혼자 카메라 잡아든 나를 골라서 물어보는가.

지금 이 사람들한테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밝히게 되면 자신들의 착각에 대해 부끄럽고 미안해 할 것인가.

이 사람들의 착각을 너그러이 눈감아주려면 그들의 생각에 맞춰서 일본사람인 것처럼 반응을 보여줘야 예의에 맞는 것일까.

 

사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고 해서 놀랄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내 머리를 휘젓는 탓에

적정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반사적으로 일본어가 입에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사실 자전거 여행때부터 반드시 지키고 있는 사항인데, 일본에 도착하는 순간부터는 머릿속을 완전히 일본어 OS로 바꿔놓고 있다.

머릿속 생각도 한국어를 일본어로 변환하는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일본어로 나오도록 연습을 했고

그게 지금은 꽤나 익숙해 진 탓에, 일본서 술 마시고 한국에 전화 걸었을 때는 한참동안 한국말이 안나와서 고생하기도 했다.

 

그런 고로, 머릿속이 멀티태스킹으로 정신없을 때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본어가 나와버린 것.

건담에서 자유의 여신상까지는 바닷가쪽으로 쭈욱 일직선이었기 때문에 길을 잊을 염려는 결코 없었지만

내가 일본어로 대답하자,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한국인 일행은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묻는다.

이제 한국어로 대답하는건 불가능. 지금와서 대답한다면 내가 젊은이들을 갖고 논거나 마찬가지가 되니까.

 

일본어로는 머릿속 생각도 돌릴 수 있을 정도지만, 일본사람처럼 영어 발음 하는건 한 번도 시도해 본적이 없어서

그냥 배운대로 말해줬는데, 일본사람치고는 발음이 좋구나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네들 발음이나 내 발음이나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그냥 쭉 가라고 말해주니 이번엔 레인보우 브릿지는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는다.

자유의 여신상 보이는 곳에서는 레인보우 브릿지도 보인다고 대답해주자 고맙다고 밝게 인사하며 멀어져간다.

 

결코 악의가 있어서라거나 장난끼 같은 감정은 전혀 없었지만, 이래도 되는 것일까 살짝 생각에 잠기게 해 준 여행길의 에피소드.

사실 여행가서 한국사람에게 한국어로 말하지 않게 된 것에는 아주 사소한 이유가 있기도 하다.

2008년 자전거 여행때, 페리를 타고 홋카이도에 발을 들여 삿포로 맥주 박물관으로 향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징기스칸과 삿포로 생맥주 무한 뷔페였지만, 개장시간 전에 오는 바람에 남는 시간동안 맥주박물관 견학을 하기로.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데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길래

여행 떠나고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라,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한국어로 '여행 오셨나봐요' 하고 말을 거니

마치 호러영화 사이코에 나오는 샤워실 마리온의 비명소리와 버금갈 정도로 '어머낫!!' 하고 깜짝 놀라길래 내가 더 놀랐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나 싶어서 걱정될 정도였는데, 물론 그쪽은 바로 웃으면서 '한국사람이신줄 몰랐어요' 하고 설명해 주긴 헀다.

 

하긴 살은 흑인 못지않게 탔고, 머리에 버프 뒤집어쓴채 다떨어진 넝마같은 옷 걸쳐입고 (훗날 알았지만 실제로 바짓가랑이가 걸레가 되어있었다)

혼자서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짐작하는게 힘들법도 하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내가 외국에서 한국사람한테 먼저 말 거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먼저 걸지 않는다만.

 

 

 

건담을 실컷 구경했으니 이제 오다이바에는 별 볼일 없다.

레인보우 브릿지 야경이라도 한번 감상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지금 가면 방금전 그 한국사람들하고 또 마주칠까봐.

죄지은 건 아니지만, 두번 세번 만나서 친해지다가는 결국 한국사람인거 밝혀야 할것 같아서 부담된다.

참 쓸데없는 걱정도.

 

문득 생각해보니, 오늘은 낮에 아키바에서 물건 사고 일기쓴다고 KFC에서 샌드위치 하나 먹은것밖에 기억나지 않아서

내부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서 다이바 시티안으로 들어가 본다. 본인하고는 한참 인연이 없는 곳이지만

외국에까지 와서 그런지 이런 거대 쇼핑몰 모습도 나름 신기한 구경거리라고 자기암시를 걸지 못할것도 없어 보인다.

 

물론 아무리 외국이라고 해도 사람 붐벼터지는 대형 쇼핑몰에 들어가는건 나로서는 극히 드문 일이지만

이번엔 번듯한 이유가 있다. 뭐라도 배좀 채우고 싶었고, 지난번 의뢰받은 헬로키티 파우치를 여기서도 한번 찾아보기 위해서.

아키바 같은 곳은 전자제품이나 게임같은 매니아의 천국이지만 아무래도 헬로키티같은 샤방샤방한 아이템은 좀 드물다.

 

다행히도 1층 광장 주변이 푸드코트라서 가볍게 둘러보는데, 유명한 타코야키 체인점인 긴타코(銀たこ)가 있어서 그리로 갔다.

이 블로그 자주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번 오사카 킨키지방 여행때 급성 통풍의 습격을 받아서

타코야키 하나 못먹고 간신히 살아돌아온 뼈아픈 추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뭐라해도 타코야키를 먹어보려고 벼르고 있던 중이다.

괜히 이런데서는 용기가 솟아나서 직원에게 만들고 있는 모습 한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직원이 조금 망설이길래 아차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는데, 친절하게도 남들 모르게 한장 찍어가시라고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타코야키 다 먹고나서야 안 사실인데, 직원의 그 망설이는 태도는 긴타코의 제작과정이 비밀스러웠던게 아니라

다이바시티 전체가 원칙적으로는 카메라 촬영 금지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다들 휴대폰으로야 아무렇게나 찍고 다니지만

본인 카메라는 누구에게나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거대한 DSLR 이라서 직원이 당황했던 것. 세삼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긴타코는 창업 초기인 1990년대엔 정말 고급스러울 정도로 빼어난 맛이 특징이었는데

전국적인 체인점이 된 후로는 그냥 대충 골라도 기본은 간다는 믿음을 줄 정도의, 하지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릴 정도는 아닌 그런 가게가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개업 초기의 긴타코는 아시아 최대의 수산시장인 츠키지(築地)에서 매일새벽 직접 공수한 신선한 문어로 만드는 타코야키를 내세웠기 때문.

실제로 맛이 훌륭하기도 했거니와, 칸사이 지방 사람들의 프라이드라고 할 만한 간식인 타코야키를, 동쪽 지방에서도 맛있게 만들수 있다는 묘한 경쟁심리가 더해져

긴타코는 짧은 시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타코야키 전문점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긴타코의 '긴'은 일본 최대의 번화가 긴자(銀座)의 '긴'으로, 창업시 목표가 긴자에 가게를 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 실제로 긴자에 본점이 있다.

 

지금은 항상 일정수준 이상의 타코야키를 제공한다는 정도로만 인식되는 녀석이라서

매니아들에게는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추운 바깥에서 건담 찍느라 얼어버린 몸에는 타코야키가 제격이다.

한국에서 끝장나게 추운 날 포장마차에 서서 오뎅과 국물 한잔으로 행복의 절정을 느끼는 것처럼

일본도 추운날 간식으로 이 타코야키가 몇 순위 안에 들어간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이나 1위는 단연 오뎅이지만.

타코야키는 바삭바삭한 겉에 비해 속이 흐물흐물하고 매우 뜨겁기 때문에

겨울날 밖에서 이녀석을 씹어먹으면 속에서 퍼지는 어마어마한 입김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래서 붙여진 이미지일까.

 

배도 고프고 지난번 오사카에서 타코야키를 못 먹은 한도 있고 해서, 한알 한알 입에 집어넣을 때마다 행복감이 밀려온다.

누구나 그렇듯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코야키를 먹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콱 씹는 바람에

그 뜨겁기 그지없는 걸죽한 액체에 입천장을 완벽하게 태워먹었던 추억도 있지만

지금은 워낙 요령이 생겨서, 만든 즉시 내놓은 타코야키도 아무 문제없이 잘만 씹어먹는다.

 

먹으면서 항상 하는 생각인데, 일본은 미각에 까다로운, 혹은 까다로운 척 할뿐인 매니아들이 워낙 많아서

타코야키 역시 가이드북까지 만들어가며 어디가 맛있고 하면서 열을 올리곤 한다.

 

다들 날카로운 송곳으로 절묘하게 회전시키면서 만들어내는 이런 제작방식에 익숙하겠지만

이렇게 제품화 되기 전의 타코야키는 지금처럼 겉은 바삭 속은 흐물이 아니라 그냥 바삭하게 구워낸 문어구이였을 뿐이다.

재료와 도구를 갖추고, 어느 정도의 요령만 익히면 그렇게까지 만들기 어렵지 않은 B급 요리 혹은 간식이기 때문에

이녀석 가지고 미묘한 맛의 차이를 가린다느니, 눈돌아갈 정도의 황홀한 맛이라느니 하는 수식어는 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물론 타코야키의 성지 오사카의 구석구석을 잘 뒤져보면, 정말 맛의 레벨이 틀린 가게가 몇군데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타코야키를 좋아하고 여러번 먹어본 사람에게나 통용될만한 이야기.

 

 

 

좀 비싸긴 했지만 만족스럽게 타코야키를 청소한 후, 헬로키티가 있을 법한 가게를 찾아서 다이바 시티 내부를 방황한다.

몇 군데 찾긴 했지만 역시 싼 것들은 너무 어린애틱하고, 비싼 건 아무리 못줘도 10만원은 넘는다.

부탁받은 3천엔 정도의 좀 덜 어린애틱한 파우치는 아무래도 찾을수가 없어서 의뢰인한테 문자로 연락을 넣어보니

그럼 그냥 사오지 않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헬로키티 파우치는 물품 리스트에서 지워버렸다.

 

조금 피곤해진 몸을 이끌로 마지막으로 레인보우 브릿지의 야경 감상하러 걷기 시작한다.

후지TV 앞에는 상당히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주변을 둘러싼 은하수같은 행렬이 눈길을 잡는다.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실 레인보우 브릿지보다 이 녀석이 더 볼만한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트리를 감싸고 있는 야광 필름에는, 아무래도 후지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 사진을 모아놓은 듯.

 

 

 

해변가까지 거의 다 왔는데, 이곳에 올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고급 호텔들이 보여서 한 장 담아본다.

오다이바 내부의 호텔들은 두 곳으로 나뉘어 밀집된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유람선 선착장과 함께 레인보우 브릿지를 바로 감상할 수 있는 이곳 다이바(台場)역 근처에는

4성급 호텔이 주를 이루며 꽤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5성급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탠다드가 20~30만원쯤 하는 호텔이고, 좀 좋은 객실로 가면 200만원대를 넘는 곳도 있어서

가뜩이나 여행중 숙박업소에는 돈쓰고 싶지 않은 나에게는 그림의 떡같은 곳.

 

이곳과 반대편, 그러니까 레인보우 브릿지가 보이지 않는 아리아케(有明)역에도 호텔이 많은데

그건 아시아 최대의 컨퍼런스 타워 빅 사이트 (Big Sight)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각종 회의와 전시회가 1년내내 열리는 곳이라서

호텔도 관광 중심의 고급보다는 10만원 초중반대의 납득할만한 가격을 가진 녀석들이 많다. 물론 그래도 나한텐 비싸다.

 

 

 

레인보우 브릿지의 야경이 보이는 장소에 도착.

역시 이제까지의 도쿄여행중 가장 많은수의 DSLR과 삼각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일단은 35mm 단렌즈로 화각을 넓게 잡고 담아본다.

아무리 조명을 밝혔다고 해도 상당히 어두운 곳이라서 삼각대 없는 촬영은 실패 확률이 높다.

 

원거리 야경이다보니 조리개를 마냥 개방할수도 없고 해서, 이 정도가 손으로 담을 수 있는 한계가 아닌가 싶다.

물론 RAW 촬영이다보니 노출 조절의 범위가 커서 어렵지 않게 되살릴 수 있었지만, 이 경우는 최대한 덜 떨리는 사진을 담는게 관건.

F1.4 의 단렌즈로 이 정도지, 70-300mm 의 어두운 줌렌즈를 손으로 들고 촬영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려면 감도를 12800 까지 올려야 하는데, 그건 니콘이나 캐논의 플래그쉽 D4, 1DX 정도가 아니면 힘들다.

 

 

 

물론 손으로 들고 찍는 야경사진이란 건 결국 감도를 올릴 수 밖에 없고

본인 노이즈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라서, 사실 마음가는대로 감도를 올려도 아예 못봐줄 사진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감도를 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는건, 아무래도 위화감 때문일까.

필름 써 본 사람들은 아마도 나처럼 '감도 1600, 3200 정도는 껌처럼 여기는' 지금의 디지털 센서들에 이런 위화감을 느낄거라 생각한다.

해상력을 유지한다는 전제를 달때, 필름은 많이 봐줘도 400 정도가 한계다. 800 이상의 필름은 해상력과는 다른 표현을 위해 사용하니까.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감도가 400 정도라고 한다면, 증감 현상을 통해서 1600 정도까지는 뻥튀기를 할 수 있다.

이제는 증감 해주는 가게도 별로 없고, 이건 요즘 디지털 사용자들이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아무튼, 그런 의미로 본인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감도는 최대 1600 정도, 많이 봐줘도 3200 까지다.

그래서 요즘 6400 까지도 잘만 찍어대는 디지털 센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3200 이상은 손이 가질 않는다.

 

이렇게만 보면 영락없는 삼각대 사용자인것 같지만, 사진보다 여행이 중요한 본인에게 삼각대는 너무나 먼 존재.

 

 

 

 

 

손으로 들고 찍어봤으니 이제는 여행중 몸에 익은 스킬인 '적당한 삼각대 대용 찾아보기'를 시도해 본다.

자전거 여행중에 DSLR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인데, 삼각대까지 넣고 다닌다는건 좀 미친 짓이다.

그렇다고 어두워지고나서 아예 사진을 안찍을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짜내다 보니 대강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요는 카메라를 얹어놓을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된다는 것.

다행히도 적당히 평평한 난간이 있어서 카메라를 얹어놓는다.

그리고는 렌즈때문에 앞으로 넘어지는걸 방지하기 위해 수첩이나 지갑 등을 바디와 렌즈 사이에 끼운다.

높이 조절을 위해서는 지갑 내용물을 다 비워야 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 수고야 삼각대 들고다니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극단적으로 수평이 맞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나중에 크롭해서 수평을 맞출 수 있으므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삼각대에 비해 극단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촬영중 손으로 잡고 있어도 안된다. 손의 떨림에도 금새 결과물에 영향이 나타나기 때문.

당연하게도 셔터 누를때의 진동 역시 감지될 정도로 불안불안한 지지대라서 타이머 기능은 필수.

 

삼각대 촬영의 꽃인 벌브촬영은 불가능하다. 바람만 불어도 결과물이 흔들릴 정도니까 많이 버텨도 30초 정도.

그렇게 해서 찍은 30초 노출 사진이 위의 결과물이다.

 

저 위의 야경사진은 감도 3200 에 1/30초 촬영이고, 이 장노출 사진은 감도 100에 30초 노출시킨 녀석.

사실 원본크기로 봐야 감도에 따른 해상력의 감소 같은걸 느낄 수 있지, 이런 작은 사진으로는 그런거 구별하기 힘들다.

눈에띄게 차이나는건 역시 노출시간의 변화에 따른 해수면의 모습이랄까.

고정된 빛은 노출값만 동일하면 어차피 똑같은 모습이지만, 항상 출렁이는 바다 표면의 경우엔 단노출과 장노출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든든한 삼각대와 ND 필터를 이용한 극단적인 벌브촬영이라면 그 결과는 더욱 극대화되어, 그럴 경우의 바다는 마치 안개속에 파묻힌 듯한 몽환적인 모습이 된다.

 

물론 알고는 있고, 지인거 빌려서 찍어보기도 했지만 본인은 삼각대를 쓸 일이 정말로 드물기 때문에

그냥 그런 멋진 사진은 그렇게 나오는구나 감탄만 하고 말 뿐이다.

여행 사진은 어디까지나 여행 당시의 내 시선과 감각을 따라가는 이정표일 뿐이지, 황홀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 그런 점에서 현실과 점점 동떨어져가는 야경 장노출 사진을 별로 찍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물론 지금은 거의 반 장난 형식으로 사진을 담고 있다.

그때는 정말 장난치는 기분이었으니까 여행의 기록으로서도 가치가 있을 듯.

 

적당한 삼각대 대용을 찾았으니 이제는 좀 전까지 찍지 못한 어두운 망원 줌렌즈로 야경을 담아보려 한다.

삼각대는 렌즈의 조리개값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아이템이니까.

 

낮에는 고층빌딩에 가려서 힘을 쓰지 못하던 도쿄타워도, 밤이 되니 온몸에 빛의 은총을 받아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레인보우 브릿지에 가리는 형국이라서, 높은 곳에서라면 다리와 타워를 동시에 간섭없이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역시 해변가 4성급 호텔의 수백만원짜리 객실이 필요한가 싶어서, 역시 세상은 돈이구나 하고 한숨 한번 쉬어본다.

 

 

 

야경을 담은 후엔 다시 유리카모메를 타고 시오도메 역으로 돌아왔다.

오다이바는 관광객들만 가서 노는곳이 아니고, 제대로 된 주거시설과 수많은 회사들이 들어서 있는 상업지구라서

출퇴근 시간의 유리카모메는 만만히 볼 녀석이 아니다. 앉을 자리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꽉꽉 눌려가며 갈 정도는 아니었다.

 

날씨가 매우 매서워지고 있지만 길을 빙 둘러서 다시 한번 지브리의 거대한 시계탑 앞으로 걸어왔다.

대낮 사진도 찍었으니 밤 사진도 한번 찍어볼까 싶어서.

 

특별히 유명한 관광 스팟이 아니지만, 역시 지브리의 디자인은 둥글둥글하고 온화한 느낌이라서 기분이 좋다.

특정 장소의 조명이 유난히 밝은것을 보니, 아무래도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는 인형들이 나오는 곳인가 보다.

 

 

 

시계의 조명 역시, LED를 직접 밖으로 내놓지 않고 숫자 뒤를 비추는 식으로 표현한게 마음에 든다.

디자인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도쿄에서 이 녀석 감상해 보는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에 잘 안드러나서 그렇지 상당히 큰 녀석이라서, 작정하고 세부적으로 사진을 담으면

굉장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뜯어볼 수 있다. 솔직히 질감이 참 마음에 들어서 직접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동판을 직접 망치로 두들겨서 이어붙인 녀석이라고 하니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지나친 샤프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와 비슷한 느낌일까.

아쉽지만 두 번의 시도 전부, 인형들이 움직이는 시간대와는 많이 떨어진 때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녀석들의 공연은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시오도메에서는 지하철로 숙소 근처까지 바로 갈 수 있으니, 넓직하게 조성된 통로를 걷는다.

예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이곳은 도쿄의 비즈니스 중심단지에 속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는, 그 인파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가 될 정도로 이 광장같은 통로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다.

 

남아공에서 너무 느긋하게 생활하던 모 지인 여성은, 한국 와서 그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력에 굉장히 감동했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이라면 출근시간대의 이곳 모습도 한번 소개해주고 싶다. 도시라는 짐승의 혈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소.

 

 

 

지하철 쪽으로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길래 뭔가 싶었다.

카렛타 시오도메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취급하는 장르는 좀 다르지만 테크노마트 같은 구조의 복합단지라고 할까.

47층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의 지하와 지상 몇층, 그리고 최상층 몇군데는 각종 쇼핑거리와 까페가 들어서 있지만

중간의 40여층은 그냥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비즈니스 센터다. 이런 구조의 건물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하고는 일고의 인연도 없는 곳이라서 한 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었는데, 그 카렛타 정문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입구쪽 벽면 전체에 프로젝터용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화를 상영하듯이 동영상을 재생중이었다.

아마 앞쪽에 프로젝터 장비가 있을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인파가 가득해서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기술적으로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만큼 큰 벽면에 이렇게 선명한 화질을 뿌려내는 모습은 좀 놀랍다.

 

기술적인 쪽으로 관심이 살짝 가긴 했는데, 이럴때는 그냥 어린애처럼 이론같은거 다 잊어버리고

앞에서 펼쳐지는 뮤지컬같은 분위기에 취하는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시선을 집중하기로 했다.

 

 

 

춤과 노래가 이어지는 전형적인 뮤지컬 방식인데

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거리는 멀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신데렐라가 아닌가 싶다.

영사 방식이나 작품 내용이나 묘하게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드는게 오히려 마음에 든다.

요즘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매체는 좀 지나치게 디지털을 강조하는 듯 해서 좀 식상하던 참이라.

 

5분쯤 감상하고 있는데 10명쯤 되어보이는 일행이 사진좀 찍어줄 수 있느냐고 부탁해 온다.

예순은 되어보이는 부부와 좀 더 젊은 부부, 아무래도 친구 가족들과 함께 놀러나온듯 싶다.

설정을 이리저리 만지고 건네주는 카메라는 리코의 컴팩트 카메라. 적어도 카메라에 어느 정도 관심은 있는 분인가 보다.

 

한국에서는 그닥 인지도 없지만, 컴팩트 카메라계의 리코는 상급자 지향의 고급기로 정평이 난 회사.

카메라는 그냥 장난으로 만들고, 원래는 일본 유수의 광학회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유명한 신도리코의 '리코'가 그 '리코'다.

한국에서 오히려 훨씬 인지도가 높은 카메라 브랜드 펜탁스를 이 회사가 인수해버려서, 이제는 리코 산하의 펜탁스 카메라가 될 정도니까.

 

뒤의 저 벽면이 나오도록 찍어달라고 해서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해서 낮은 각도로 프레임을 만들어본다.

오토모드니까 역광보정 정도는 카메라가 알아서 할거라고 믿고 흔들림에만 주의해서 셔터를 누른다.

한장 담고나서 예비용으로 한장 더 찍어드린다. 이건 남에게 사진 찍어줄 때의 불문율같은 것.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는 할아버지 일행과 헤어졌는데, 왠지 미소가 아주 자연스럽고 기분좋은 사람이었다는 인상이 남는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지만, 그 할아버지 역시 나를 외국인으로 보진 않았나보나 싶다.

반나절만에 두 번이라는 숫자는 나름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이긴 하다.

 

편의점에서 컵라멘과 뼈없는 후라이드 치킨 한조각 사들고 와서 먹는데 생각보다 훨씬 남은 자금이 빠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냥 여행자금으로 생각한다면 내일 하루 충분히 버티고도 남는 금액이지만

부탁받은 선물이 중간중간 급작스럽게 늘어난 탓도 있고, 특히 돌아가는 날이 아주 이른 새벽이라

콜택시를 사용할 수 밖에 없어서, 거기에 대비해 일정 이상의 금액을 남겨놔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내일 식사비조차 아껴야 하는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일단 그건 그거고, 어쨌든 굶어죽을일은 없으니 걱정은 내일부터 하기로 한다.

라멘과 치킨을 뜯으며 TV 보고, 한국보다는 확실히 추운 일본 숙소덕에 좀처럼 가동하지 않는 히터 스위치도 넣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모노레일 유리카모메를 탄다면 오다이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스미다가와 강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고 이곳에 도착한다면

필수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오디이바의 상징적인 건물, 후지 TV 본사의 모습.

 

해도 짧고,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늦다 보니 주광사진이라고 우길 수 있을만한 녀석이 몇장 되지 않는다.

한국의 방송국과는 다르게 일단 여러가지 관광객용 스팟이 있는 곳이라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는 곳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TV 프로를 모르는 한국사람이 여기 가서는 별로 볼게 없다는 게 중론.

 

상단 중앙의 저 거대한 구형 구조물은 까페와 전망대를 겸하는 곳. 사실 저기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이 후지TV 투어중에서는 제일 마음에 든다.

착공시기가 한창 버블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라서 그런지, 건축가의 이념이 녹아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 구형 구조물은 무려 그 비싸디 비싼 티타늄으로 외벽을 도배한 녀석이다. 직접 가서 유심히 살펴보면 그 질감이 예사롭지 않다는걸 느낄 수 있다.

 

 

 

본격적으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시간. 사실 아직 저녁이라 부르기에도 뭣한 시간.

해질녘 풍경이라도 한번 담아볼까 싶어서 좁은 바다 건너를 몇장 담아보는데

담고나니 멀리 보이는 건물이 카메라계의 양대산맥 캐논 본사였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왠지 마음이 가지 않는 카메라가 캐논이라서 써 본적은 없는데

1위를 굳건지 지키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돈이 남아돌면 한번 써보고 싶은 생각은 든다.

 

 

 

후지 TV 본사 앞에는 꽤나 큰 쇼핑몰이 위치해 있고, 그 앞에는 방금 지나온 레인보우 브릿지를 감상할 수 있는 해양공원이 있다.

그곳 해양공원에서는 한가한 길고양이들을 몇번 볼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해가 질 무렵이라서

일부러 찾기엔 힘들듯 하다. 자전거 여행 전날에 이곳에 와서 고양이를 보면 그래도 좀 우울함이 가시곤 했다.

 

해양공원 앞에는 자유의 여신상 축소판이 나름 명물 스팟으로 꼽힌다.

재현도는 상당하지만 사실 꽤나 작은 녀석. 일본에서 이걸 구경하고 싶은 사람의 심리는 뭘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 녀석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지만, 자전거 여행 전 이곳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나한테 와서 서툰 일본어로 인사하던 미국인 몰몬교도 두명이 생각난다.

그들에게는 외국에서 전도활동하는게 필수 의례인 듯, 한국서 왔다고 하니 전도할 생각도 않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교리와 신념이 다를 뿐, 워낙 사교성 좋고 사회적으로 문제 일으키지 않는 종교라서

서로서로 이방인 신분으로 타국에서 만나니 그냥 오랜만에 영어 회화나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게 있어 오다이바의 자유의 여신상은, 몰몬교 친구들과의 가벼운 한때를 의미한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서 레인보우 브릿지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벌써부터 나이 지긋한 분들은 좋은 자리에 삼각대 펴 놓고 사진 촬영을 하고 계시던데

아무리 성능좋은 최신 카메라라고 해도, 역시 야경 제대로 찍으려면 삼각대는 필수다.

 

물론 이동성을 중시하는 본인은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강 감도 높여서 찍거나 난간을 삼각대 대용으로 이용해서 장노출 사진을 찍는다.

물론 난간을 사용해서 찍어도 벌브샷을 버틸만큼 완전히 떨림을 잡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의 범위는 줄어들지만, 상업적 의뢰가 아닌 이상 내가 뭘 더 신경쓰리.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오다이바의 고급 고층 호텔의 창문에서 바라보는 본토의 빌딩숲 야경을 보면서

모종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발전했구나 하면서.

오다이바의 호텔들은 대부분 상당한 고급이라서, 돈이 남아도는 상황이 아니면 내가 하룻밤을 즐길 수는 없다.

 

 

 

사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는 표현이 옳을 듯 하다.

이번 구경 목표인 건담같은 녀석은, 환한 대낮보다는 조명빨 받는 밤이 더 볼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 시점까지 그 건담이란 녀석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별로 걱정할건 없다.

오다이바에서 유명한 장소 몇군데만 돌아다니다 보면 저절로 찾을 수 있을테니까.

 

망원으로 갈아끼웠으니 후지 TV의 중앙 스피어부분을 담아본다.

물론 사람도 많고 가격도 비싸고 해서, 다시 갈 일이 있을까 싶은 곳인데

나중에 자금 널널한 사람과 함께 간다면 살살 꼬셔서 가볼까 싶긴 하다.

 

저녁이 되면 밑에서 조명이 구의 하단부를 비추는데, 역시 티타늄의 특징을 어필하기 위해서인가 생각해 본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오다이바의 명소는 사실 찾기가 어렵지 않다.

모노레일은 오다이바 각지를 전부 이어야 하기 때문에 섬을 'ㄷ' 형태로 빙글 도는 루트이지만

실상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해양공원, 후지TV, 비너스 포트 등의 건물은 거의 직선으로 쭉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유리카모메 레일 따라가지 않고 그냥 직선으로 주욱 걸어가기만 하면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일본에 온 후로 가장 추운 저녁이라서 오히려 힘이 나는 기분.

이제까지는 너무 더워서 괜히 이 옷 입고 왔다고 후회하곤 했는데

거진 2~3도까지 떨어지고 바람도 많이 불기 시작하자 비로소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

 

오다이바는 유명 관광명소 몇군데를 빼면 아직도 허허벌판인 곳이 많고

거주지역, 호텔지역은 물론이고 물류창고 역할을 하는 부두도 많기 때문에

해가 지고나면 도쿄 시내 중심부에 비해 상당히 어두컴컴한 편이다. 요즘 절전운동때문에 더더욱 그렇기도 하고.

 

건널목 몇개 지나니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쇼핑몰같은 곳이 나타난다. '다이바 시티'라는 곳.

쇼핑에 하등 흥미가 없는 본인이라서, 몇 번이고 찾아온 오다이바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기억이 없다.

오다이바라는 단어는 영어하고는 전혀 관계없지만 'Diver' 라는 단어를 씀으로 적당히 중의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굉장히 큰 몰인데, 위에 뭔가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녀석이 떡하니 서 있어서 사진찍는 사람들이 많다.

쪼그만 녀석을 보니 아무래도 대인기 코믹스인 원피스 캐릭터 같다. 본인은 그 코믹스 읽어본지 10년도 넘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거대한 쇼핑몰이 딱히 애니메이션 상품만 파는 곳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저런 캐릭터들을 정면에 떡하니 전시해 놓는 곳이니, 어쩌면 이곳 어딘가에 건담이 놓여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큰 곳이라, 천천히 한바퀴 둘러보면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을것 같아 시계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는분도 있고 건담이 뭔지도 모르는 분 역시 있겠지만, 요즘 오다이바의 명물로 자리잡은 건담 모형은

무려 1:1 스케일, 즉 전고가 18m 나 되는 로봇이기 때문에 건물 안에 위치하긴 힘들다.

전시되어 있다면 지금쯤 해도 저물었겠다 조명이 빛나고 있을 터이니, 돌다 보면 눈에 쉽게 들어올 듯.

 

 

 

걷다가 고개를 돌리니 후지 TV 의 뒷모습이 보인다. 쌍둥이 빌딩 사이를 사다리로 연결해 놓은듯한 구조라서

가끔 왜 저렇게 낭비 심한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묘한 모습덕분에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으니까.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이 건물을 만든 건축가도 일본 최고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건물에도 나름대로의 철학을 담아넣었고, 그 결과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겠나 싶다.

 

다이버 시티 건물을 돌고 있으니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주위 사람들도 명백하게 어느 한 곳으로 몰리고 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쉽게 건담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건담을 찾으면 저 멀리 비너스 포트까지 잘 수고를 덜 수 있어서 좋다.

비너스 포트는 쇼핑하거나 연인들끼리 맛있는거 먹으며 산책하기엔 좋은 곳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니까.

 

 

 

운이 좋았는지, 역시 건담을 이곳 다이버 시티 광장에 위치해 있었다. 원피스 캐릭터가 놓여있었던 입구 반대편.

그런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이 건담 모형도 정해진 시간에 뭔가 이벤트를 벌이는가 보다.

 

막 도착했을때는 팔과 고개가 조금씩 움직이면서 가슴을 비롯한 몇몇 부위에서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뭐, 사람처럼 움직인다기 보다는 그냥 까딱까딱 장난감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이 거구가 움직이는 모습이니 볼 만은 하다.

아쉽게도 그게 끝물이었는지, 간신히 사진 한장 찍자마자 건담은 두번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들 알고있을 건담.

내 나이또래의 대부분은 사실 애니메이션을 본게 아니라 프라모델을 통해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때는 라이센스 개념이 아예 없던 시절이니, 정체불명의 짬뽕 캐릭터도 참 많았다.

 

그런만큼 품질도 꽤나 조악해서, 가끔은 쓰이지도 않는 부품이 사출되어 붙어있는 경우도 있었고.

8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 그 조잡한 카피품에 실증난 아이들, 특히 나같은 아이들은

동네 문방구가 아니라 RC 카 등의 좀 더 제대로 된 장난감을 다루는 전문점에 비치된

일본 직수입 프라모델을 떨리는 손으로 구매한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해 본다.

 

초딩이 사기엔 꽤나 비싼 탓에 부모님 데리고 가서 한시간을 고민해서 몇개 고르던 추억도 생각난다.

그 프라모델과 함께 놀던 아이들이 이젠 사회 전반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꿈과 희망의 프라모델이었던 건담이 이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설정 그대로 전장 18m 에 이르는 녀석으로 등장하게 되었으니

한번 어른이는 영원한 어른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결과물이 이 녀석 아닌가 한다.

 

 

 

물론 실제 애니메이션이 방영된지 30년도 넘었기 때문에, 오리지날 건담은 이렇게 멋있진 않다.

30년의 세월동안 끊임없이 갈고 다듬어져 대충 로봇처럼 보이는 지금의 모습이 완성된 것이지

오리지날 버전은 팔다리가 사람처럼 움직이는, 갑옷 둘러쓴 사람과도 같았다. 그 시절 애니메이션의 한계이긴 하다.

 

오리지날에 이상하리만큼 집착하면서도 시대에 따른 이미지의 변화를 꾸준히 양산해 가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은, 태권브이로 대표되던 한국의 캐릭터 시장이 몰락한 상황과 대조해서 더욱 두드러진다.

 

비교하기엔 좀 뭣하긴 한게, 당시 한국의 애니메이션이란 일본쪽에서 하청받은 셀 원화중 에러난 것을 몰래 빼돌려서

짜집기 한 후에 제멋대로 상영한 것이라서, 시작부터가 표절과 무단 도용의 씨앗을 갖고 있었으니 그 힘이 다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어두운 단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을테니 넘어가기로 한다.

 

 

 

거대한 건담을 직접 바라보는 것도 물론 한때 열렬한 프라모델 매니아였던 본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지만

그 앞에 놓여진 크리스마스 특집 캐릭터들이 워낙 귀여워서 무심코 이쪽에 더 관심이 가버렸다.

 

건담에 산타 수염을 그려넣은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이긴 했는데

양족에 입체 눈사람 모양을 한 녀석들이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빨간 외눈녀석은 건담 주인공인 아무로의 라이벌 샤아가 타는 '3배 빠른' 자쿠인데

원래 디자인이 단순무식의 극치를 달리다 보니,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놔도 적응력이 빠른 장점이 있다.

 

만약 여기 홀려서 관련 기념품샵을 뒤져 봤다면, 아마도 저런 눈사람모양 자쿠를 손에 넣을수 있었을거라 생각도 해보지만

선물을 많이 산 탓인지, 요코하마에서 너무 지출이 많았던 건지, 지금 손에 남은 자금이 너무 부족해서 아예 생각을 접는다.

사실 많이 간당간당한 상태라서, 내일은 맛있는 것은 커녕 세끼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수준.

 

과거로부터의 경험상, 이런 모형 기념품은 사들고 가 봤자 대부분 별 의미없이 방치되곤 해서

순간의 기분에 휩쓸려 구매하는건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무튼 크다. 정말 크다. 단지 크기때문에 이곳의 볼거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1:1 크기로 재현하는 건 이곳만의 특징은 아니다.

 

 

 

1:1 건담 모형은 2009년 건담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는데

코베(神戸) 시의 외곽에 위치한 이 철인 28호 모형도 거의 같은 시기에 착공되어 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지난 자전거 여행때는 코베에서 좀 휴식을 취하려던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코베에 도착한 날이 코베 대지진 추모 + 재건 기념으로 매년 벌어지는 루미네이션 축제날이었다.

오후부터 경찰인력이 동원되어 도로를 통제하고, 어마어마한 인파가 코베 시 전체를 가득 메우는 통에

어디 한적한 공원에서 텐트친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하다못해 비지니스 호텔마저도 완벽하게 만실이 되어버렸다.

 

텐트를 치기는 커녕 자전거에 탄 채로 이동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서 간신히 시를 빠져나와 무작정 달렸는데

그 앞에 우연히 도착한 마을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철인 28호 모형이었다.

한국에 알려진 철인 28호는 아마 이 녀석이 아니고 리메이크 버전의 말쑥한 녀석일듯 한데

세월의 흔적은 느껴지지만, 전고 15m 의 거대한 이 녀석의 박력넘치는 포즈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건담이 세월의 흔적을 끝없이 수선하며 매끈한 디자인을 자랑한다면

이 녀석은 60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별다른 수정 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아련함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만화 삼국지의 작가로 잘 알려진 요코하마 미츠테루 화백의 1956년 작품 '철인 28호'는

일본 최초의 거대로봇 만화로, 사실상 로봇만화의 선구자인 셈.

 

한신 대지진 복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조성된 이 모형은, 제작비 1억 3천 5백만엔을 들여 2009년 9월에 완성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보조금과 기부금을 이런거 만드는데 쓰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높으신 분들이 싹 갈라먹고 입닦아 버리는 행태에 비하면야

이 녀석은 꾸준히 관광객과 관련 상품을 팔아주고 있으니 나름 성공한 이벤트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한국돈으로 계산해도 17억 정도인데, 한국의 각 지역에 세워놓은 홍보용 동상들 예산 찾아보면

대체 그 돈을 다 어디로 처먹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건담도 볼거리지만, 꾸준히 울려퍼지는 음악 역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박자는 분명 '징글벨'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는데, 밝고 활기한 음이 아니라 뭔가 음침하고 어두운 음계로 내려가 있다.

건담이 어쨌든 로봇 전쟁 만화다 보니,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 리메이크한 음악인 듯 한데

묘하게 이 박력넘치는 모형과 매치가 잘 되어서 듣기가 좋다. 특히 밤에 들으면 더욱 음산한 느낌이라서.

 

이 건담은 2009년에 제작되어 잠깐 전시된 후 철거되기도 했는데

기간한정 전시였던 탓에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렸다는 신문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거대한 녀석을 그렇게 잠깐 전시하고 해체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다음해 도쿄 옆인 시즈오카현(静岡) 의 역에 다시 전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건담 프라모델을 만드는 회사 반다이(BANDAI)의 본사가 시즈오카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라고들 하더라.

역앞에 전시된 후에는 반다이 본사 앞에 전시될 거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의외로 다시 오다이바로 돌아오게 되었다.

역시 관람객 끌어모으는데는 오다이바 만한 곳이 없어서였을까.

 

 

 

35mm 단렌즈로 몇장 담고, 70-300mm 줌렌즈로 갈아끼운 후 세부를 감상하는데

이 줌렌즈는 조리개값이 상당히 어두워서, 감도를 3200 까지 올려도 아주 간신히 사진을 건질 수 있을 정도.

손떨림 방지기능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 정도 이미지를 얻을 수 없었을 듯 하다.

 

이미 79년 원작의 투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꼼꼼한 성격의 일본인들 답게 만화 캐릭터임에도 리얼리티가 폭발하는 디테일을 보여준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정말로 사람 들어갈 수 있게 만든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밤이라서 피사체가 부각되는 장점은 있는데

조명이 생각보다 강한 색이라서 아무래도 원래 건담의 색깔과는 다르게 나와버린다.

다행히도 사진촬영은 항상 RAW 파일로 하기 때문에, 이 한장은 건담의 원래 컬러를 그대로 복원시켜봤다.

 

물론 실제로 이 당시 눈에 보이는 색깔은 이렇지 않았지만, 원래 건담은 이런 색이다.

색온도를 맞추다 보니 원래 밝은 주광색인 옆 건물 전등색깔이 녹색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긴 했다.

 

 

 

건담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흥미가 있던 없던

이 정도로 거대한 모형은 확실히 즐거운 구경거리임에 틀림없다.

 

이 건담은 건담 시리즈중 최초의 모델이라서 퍼스트 건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본인은 이 건담을 즐기던 세대가 아니라서, 좀 더 후기의 건담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건담' 하면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이 녀석이다 보니

놀란 표정으로 거대한 발 근처를 뛰어다니는 두 아기의 모습에서 '세대간의 끈'을 느낄 수 있는듯 하다.

 

얘네들이야 이게 뭔지 알리 없겠지만, 이 애들 부모는 아마 나하고 거의 비슷한 나이대일테니

30년 전의 추억을 자기 자식들과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되는 건담 모형이, 그 덩치만큼이나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망원렌즈를 마운트 중이라 슬그머니 도촬을 해버렸는데

얼굴을 완번히 드러낸 건 아니니, 이 정도라면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좀 더 용기가 있었다면 이걸 찍고나서 부모한테 다가가 사후 허락을 구하고

메일 주소라도 받아서 훗날 이 사진을 보내주었다면, 이 쓸데없는 죄책감도 사라졌을텐데 하는 후회도 없잖아 있다.

다음엔 명함이라도 좀 들고가서 이런 사진 찍은 후에는 정중하게 말을 거는게 좋으려나.

 

아무튼 이 애들은 이제 '건담'이라는 단어 하나는 평생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을거라 본다.

 

 

 

도쿄 여행 4일째.

막상 생각해보면 어제 요코하마에서 이시다씨 만난 것 말고는 별로 관광다운 행동에 나선적이 없는듯한 기분이 든다.

이번 여행의 메인 목표는 이시다씨와의 만남이었고, 시간과 자금이 좀 널널하다면 버스타고 닛코(日光)에 가보려고 했는데

왕복 4시간은 걸리는 곳이라서 아무래도 하룻만에 다녀오기 아까운 느낌이 들어서 포기.

 

매번 포기에 포기만 계속해서, 열 번이 넘는 도쿄 방문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 닛코인데

거기에도 사실 여행에서 항상 일어나는 혼돈의 이벤트가 존재한다.

 

2008년도 최초의 일본 자전거 여행때, 홋카이도 최북단을 목표로 도쿄를 출발한 후 너무 들뜬 나머지

우츠노미야(宇都宮)의 갈림길에서 예정에도 없던 닛코를 즐겨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페달을 밟았었다.

닛코라는 관광지가, 그냥 버스에서 내려서 모여있는 사찰 구경하고 후다닥 돌아오는 곳인 줄 알았으니...

 

사실 닛코는 유명한 곳만 둘러보더라도 관광지 안에서 버스를 40분 이상 타고 움직여야 할 만큼 문화재가 산재한 곳이고

범위당 문화재 밀도가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나라와 쿄토를 구경하지 못해도 닛코만 잘 둘러보면 일본 문화재는 다 본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빡빡한 곳.

킨키지역의 코야산과 같이 선 정상 즈음에 사찰이 들어서 있고, 해발 1000m 가까이 된다.

 

이제 막 자전거 여행 시작한 초짜가 도쿄를 떠난 첫날부터 닛코 가겠다고 겁도없이

40kg 가까운 짐을 자전거에 실어놓고 6시간동안 계속 오르막길만 올랐으니 뭐.

그래도 올라가는 도중 정말 다른곳과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풍경들이 계속 이어져서

힘은 들었지만 쉬어가며 열심히 오르긴 했다. 중간에 타이어 펑크나는 바람에 때우느라 막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도 훼손 방지를 위해, 하코네와 같은 갓길도 없는 좁은 2차선 도로밖에 없었던 터라

자동차한테 미안해서 도저히 도로로 달리지 못하고, 옆에 만들어져 있는 반쯤 비포장 도로인 산책길로 주행했는데

아프리카에서나 볼 법한, 그냥 나무판자 몇개 얹어놓은 듯한 개울가 다리에서 미끄러져 자전거째로 개울에 처박혀 버렸다.

 

 

 

자전거와 함께 떨어진 본인 몸은 아예 안중에도 없고

산지 며칠밖에 안된 따끈따끈한 여행용 자전거와, 가방 안에 든 수백만원짜리 카메라, 렌즈들이 너무나 걱정되어

떨어지는 순간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놀라운 괴력으로 40kg 짜리 짐이 실린 자전거를 그대로 훌쩍 들어 다시 길 위로 올려놓았다.

 

후다닥 가방을 열고 카메라를 꺼내서, 방금 미끌어진 따끈따끈하고 빌어먹게 미끄러운 다리를 한장 찍어보니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니콘은 카메라 하드웨어 하나는 딱딱하게 잘 만드는구나 싶었다.

 

몸은 여기저기 멍이 들긴 했지만 피는 별로 나지 않는다. 어제 비가와서 축축해진 이런 다리는 조심했어야 했다.

본인 책임이니 어쩔 수 없었지만 자전거는 브레이크쪽에 약간 문제가 생겼고, 몇시간 전 펑크 때운 타이어는 또 상태가 좋지않다.

 

6시간동안 끙끙거리며 해방의 기회만 노리고 있던 불만과 분노가 한꺼번에 표출되는 바람에

입에서는 연신 Shit 을 연발하면서 짐을 챙기고 그대로 방향을 돌려 닛코행을 포기해 버렸다.

일본에 있을때는 머릿속 생각도 일본어로 하는데, 욕은 별로 마음에 드는게 없어서 항상 욕은 다채로운 영어의 힘을 빌린다.

 

언제까지 더 올라가야 할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특히 이 닛코로 가는 길은 이상할 정도로 다운힐이 없어

6시간동안 꾸준히 오르막만 나타났기 때문에 이미 참을성은 한계에 달해있었다.

조금 아쉬운 생각은 들었지만 개울가에 처박히고 나서부터 폭발해있는 짜증덕분에 망설이지 않고 왔던길을 내려가기 시작.

 

 

 

그래도 첫번째 자전거여행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게 해 준 코스였기도 하다.

내려갈때는 자신이 실력도 경험도 없는 무능한 패배자가 된 것 같아서 우울하기 그지없었지만

6시간 걸려 올라온 길을 2시간도 안되서 시원하게 내려올 때의 쾌감이 우울한 기분을 날려준다.

 

페달 한번 밟지않고 이렇게 시원 깔끔하게 달려 내려갈 수 있다는 건, 왜 자전거 매니아들이 생겨나는지 납득이 갈 만하다.

 

거기다 도중에 사과 파는 할머니가 계시길래 하나 먹어볼까 하고 다가갔는데

한국서 자전거 여행 왔다는 말을 듣고 '손자가 한국 농대에 교환학생으로 들어가 있다'면서 매우 반가워 하셨다.

자기들이 연구와 노력을 거듭해서 만든 우츠노미야산 사과라고, 한 개만 사먹어 보려고 했던 나에게

돈도 받지 않고 5개쯤 든 사과봉지를 그냥 건네주셨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즉석해서 하나 깎아서 건네주기도 하셨고.

 

떨어진 체력과 흘린 땀이 갈증을 푸는 반찬이 되었겠지만, 그걸 고려하고라도 사과는 놀랄 정도로 맛있다.

대구 경북이 이제는 사과의 고장이라고 불리기에 질이 많이 떨어진 편이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사과를 밥처럼 먹어온 본인이라서, 사과 맛에는 상당히 깐깐한 편이다.

할머니가 주신 사과는, 포장만 멋들어지게 하면 한 박스 15만원이 넘는 선물용 최상급 사과로 들어가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당도는 말할것도 없으며, 시원하게 한입 씹으면 마치 싱싱한 야채가 와삭하고 입안에서 부서지는 듯한 깔끔함이 느껴진다.

 

사과 한봉지를 넣을 공간마저도 아쉬운 여행이라서 조금 난감하긴 했지만

역시 시골인심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어서 감사히 받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기념사진에는 슬쩍 우츠노미야 사과 선전도 해주시고.

 

구경하지 못한 닛코를 등지고 내려오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리에서 굴러떨어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돌아가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이 할머니를 만나서 사과맛을 보지도 못했을 테고

여행중 만나는 소중한 인연이 하나 없어졌을 것이라고. 물론 닛코로 향했다면 거기서 또 다른 인연을 만들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여행이란 이렇게 선택 하나하나가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만들어 내며

거기에는 바쁘고 매마른 경쟁사회에서처럼,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지도 모르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선택이라도 거기에 맞춰서 앞에는 새로운 길이 펼쳐지니, 여행중에는 후회라는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훗날 2010년 자전거 여행때도, 확률적으로는 기적에 가까운 몇 번의 우연을 거치고 거쳐서 여러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니

여행의 가장 큰 매력중 하나는 '마이너스가 없는 선택'이 아닐까 하는 지론을 갖게 된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실패란게 없으니까.

 

 

 

이야기가 완전히 딴 길로 가버렸는데,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나서 닛코는 나에게 상당히 의미깊은 곳이 되었고

도쿄에서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볼거리로는 쿄토에 버금가는 곳을 당일치기로 갔다온다는데 저항감이 있어서

이번에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닛코는 나중에 자금 두둑하게 가지고 괜찮은 여관 하나 잡아서 며칠 즐겨볼 생각이다.

 

어제 이시다씨와의 미팅, 평소 안마시는 술도 2잔이나 마셨고, 바로 라멘박물관에 가서 신나게 돌아다닌 후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오는 바람에 좀 피곤했나보다.

무료 조식 먹으려고 아침 8시에 알람을 설정해 놨는데, 분명히 알람소리는 듣고 직접 해제까지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제 일어나야지 하고 고개를 들자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으니, 이런 불가사의한 사건이 또 있을까.

 

조식 시간을 놓쳐버린 것도 아쉽긴 하지만, 잠을 꽤나 옅게 자기때문에 알람에는 쉽게 반응하는 나로서는

알람 끄고 잠깐 숨 한번 들이쉰 후 일어나니 1시간 40분이 지나있었다는 이 사실이 매우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4일째 월요일, 원래라면 닛코 갈까말까 고민하던 날이지만 닛코는 어젯밤 포기했기 때문에 잠깐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남아도는게 시간이지만 할 일은 미리 끝내놓는게 좋을듯 해서, 오전중에는 아키하바라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에서 전철로 10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책이나 게임 소프트 사려면 최적의 장소.

지난번 잠깐 들렀을 때, 인파때문에 카메라와 가방이 매우 거치적거렸던 기억을 떠올리고

오전 외출시엔 아예 카메라 장비를 놔두고 가기로 결심한다. 텅텅 빈 카메라가방엔 어지간한 책 7~8권은 들어간다.

 

아키하바라는, 메이드 복장을 하고 아슬아슬한 스커트로 호객행위하는 젊은 처자들 도촬할거 아니면

별로 사진 담을만한 풍경은 없어서, 카메라가 없어도 그닥 아쉬울 것 없다.

여행중 카메라를 어깨에 메지 않고 나가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그 행동 자체가 신기하다는 점을 빼면.

 

여행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찍어오면야 볼거리는 늘겠지만

'물건 구입'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출발하는 아키바 행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과는 관계가 없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예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서점 'K-Books' 도 점포를 이전해서 영업중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해서

책을 구입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노후된 라디오 회관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넓어서 둘러보기도 편했다.

원래는 같은 층에서 나뉘어져 있던 신품 코너와 중고 코너가, 새로 옮긴 건물에서는 1층과 2층으로 나눠지는 바람에

신품 코너에서 확인후 중고 코너를 찾아보는 동선이 길어진 것은 조금 아쉽긴 하다.

 

친구한테 부탁받은 게임소프트도 구입했고, 선물로 줄 책도 좀 구입하고 해서, 부탁받은건 대부분 구매 완료했다.

남은것 몇가지는 이곳 아키바에서 구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라, 내일 구입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2시쯤 돌아와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에 대해 고민좀 해 본다.

저가항공의 단점이기도 한데, 귀국편이나 출국편 둘중 하나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늦은 편이 있다.

 

이번 출국편은 아침 일찍이라서 시간낭비 없이 첫날부터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결국 귀국편이 아침 8시 출발이라는 최악의 형태가 되고 말았다.

8시 출발이면 공항엔 적어도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도착해야 하는데, 우에노역에서 나리타 공항까지 일반 전철로 1시간 40분이나 걸린다.

여기서 우에노역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5시까지 우에노역에 가서 첫 전철을 타야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셈.

 

물론 새벽 4시에 버스나 전철이 운행할리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우에노까지는 택시를 타는수밖에 없다.

택시조차 길거리에서 그냥 잡아탈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니라서, 호텔 프론트에 콜택시를 예약하기에 이른다.

가뜩이나 택시요금 무지하게 비싼 일본인데, 콜택시 예약요금까지 추가되면 몇만원 깨질 각오 해야한다.

사실 택시타고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지만 어쩔수가 없다. 부탁받은 물건이 너무 많아서 이걸 다 들고 걸으려면 우에노까지 1시간은 걸릴 듯.

 

에어아시아 측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아침편 비행기를 준비한건가 싶어

일본쪽 홈페이지 들어가 봤더니, 이곳이 아니라 신쥬쿠과 도쿄역 부근에는 새벽에도 운행하는 리무진 버스가 있었다.

물론 버스요금이 상당히 비싸고,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아사쿠사 부근보다 신쥬쿠쪽 숙박비가 더 비싸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계획을 세워도 결국 최종적으로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는 비슷해지게 되어 있었다.

 

그것도 싫다면 그냥 한밤중에 공항으로 가서 로비에서 하룻밤 보내는게 제일 경제적이긴 하다.

 

이래저래 교통편 확인한 후, 프론트에 가서 이틀 뒤 체크아웃 날짜 새벽 4시 30분에 콜택시를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다.

4시 30분에 객실로 전화를 드릴테니 그때 짐챙겨서 나오면 된다고 한다.

또 이 호텔은 새벽에 프론트가 문을 닫기 때문에, 객실 키는 프론트에 놔 두고 가란다.

 

돌아가는 루트 확인을 마치고 오늘의 메인 여행코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도쿄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은 대충 생각해서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이틀 전 구경한 스카이트리, 그리고 오늘 보러 가는 오다이바의 건담이다.

 

어차피 오늘 포스팅에서 건담이 나올 일은 없으니 거기 대한 설명은 때려치우기로 하고.

오다이바로 가려면 신바시(新橋)역이나 시오도메(汐留)역에서 무인 모노레일 유리카모메(ゆりまもめ)로 갈아타야 한다.

숙소에서는 시오도메 역으로 환승없이 갈 수 있으니 그곳으로 이동.

 

역에서 내려 바로 유리카모메를 향하진 않는다. 이곳에도 나름 볼만한 녀석이 있기 때문에.

걸어가는 길에 문득 멀리 보이는 도쿄타워가 이제는 굉장히 초라해 보인다.

같은 거리에서의 스카이트리라면 빌딩숲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불쑥 솟아나와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을텐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제 도쿄타워 정도의 높이는 이 도시의 숲속에서 별다른 이정표가 되지 못한다.

 

 

 

요 며칠간 계속 햇빛 쨍쨍한 대낮에 촬영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기분이 묘하다.

의도하는 바는 아니지만, 요코하마 이벤트때에는 낮에 카메라 들 시간이 없었고

오늘은 아키바 갈 때 카메라를 놔두고 갔기 때문에, 오늘의 첫 셔터는 해가 슬그머니 기울어지고 있는 시간대에서 시작이다.

 

오다이바로 향하기 전, 이곳에서 공짜로 즐길 수 있는 볼거리는 단연 이 녀석.

척봐도 느껴지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전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지브리사단의 작품인 거대 시계(大時計)다.

이 시계가 붙어있는 건물은 일본 TV, 줄여서 닛테레(日テレ)라고 하는 방송사 스튜디오로

이 녀석 명칭도 별 특색없이 닛테레 오오도케이(日テレ大時計) 인데, 그 디자인만큼은 거대 빌딩의 존재를 망각시켜버리는 듯 하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5년간의 계획과 제작끝에 완성한 거대한 시계는

폭 18m, 높이 12m, 두께 3m 의 거대한 구조물로, 1228매의 동판을 한장한장 망치로 두들겨서 만들어 낸 예술품.

총중량이 28톤이나 되는, 시계탑이라고 부르기도 힘들고 그냥 시계라고 부르기도 뭣한 묘한 모습을 한 녀석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모티브로 한 건지, 양쪽 옆에는 다리처럼 보이는 지지대가 내려와 있다.

확실히 그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라면, 이 녀석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시계 내부에는 32군데의 작동부위가 있어서,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한 편의 인형극을 보는 듯 캐릭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동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기 때문에 굳이 그걸 보려고 기다리진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도 감상하는 재미는 충분하니까.

 

아이들 대상으로 했다고 해서 어설프게 만든 느낌도 없고, 동판의 디테일과 색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부식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나우시카나 라퓨타 등의 애니메이션에서도 충분히 드러났지만, 이런 녀석들 표현하는데는 도가 튼 지브리 사단이라서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발걸음을 멈추고 즐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는 느낌.

 

 

 

상당히 거대한 녀석이라서, 시간만 맞으면 이 구조물 곳곳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거진 2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아무래도 무리. 이번 목적은 어디까지나 오다이바의 건담이니까.

 

이곳에서 진득하게 이 시계를 바라본 것은 두세 번 정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이곳에 올때마다 항상 정신병자가 되는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생애 처음으로 일본에 놀러갔던 1994년의 겨울, 그때도 이 녀석을 본 기억이 난다는 점 때문에.

오후 9시쯤에 종이 울리면서 뭔가 이리저리 움직이던 것을 구경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실은, 이 시계가 2006년 만들어진 녀석이라는 점.

 

2008년 일본에 갔을 때만 해도, 이 시계를 보면서 1994년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그만큼 일말의 의심도 없이 94년에 이 시계를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010년에 와서야 이 녀석이 2006년 만들어진 녀석이라는 사실을 접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분명 이 녀석을 본 것 같은데, 어째서 2006년에 만들어 졌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는 친구 강군과 함께 갔었으니 강군은 혹시 기억이 날까 싶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상 아마 94년 여행에 대해서 강군이 나보다 더 잘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명백한 사실 앞에서 초라하게 발가벗겨진 내 94년의 기억은 한참동안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요즘 들어서 조사에 조사를 계속한 결과, 물증은 없지만 94년에 내가 본 거대한 시계라는게 어떤 것인지 살짝 감을 잡게 되었다.

 

시부야구의 에비스(恵比寿)라는 역 앞에 위치한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라는 복합 쇼핑단지가 있는데

그곳에도 정해진 시간에 인형들이 나와서 춤추는 시계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는 유명한 맥주회사 에비스에서 조성한 복합단지로, 쇼핑이나 먹거리 즐기는 부분에서는 유명한 곳이라

많은 일본 관광객들에게 친근한 장소이겠지만, 그런 류의 여행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완전히 미지의 장소였던 셈.

 

아마도 94년도엔 거기서 인형들이 나와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본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좀 더 확신을 하려면 이곳 닛테레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안내데스크에 '94년즈음의 이곳에도 비슷한 시계탑이 있었는지'를 물어보고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 가서 그곳의 시계탑을 다시 한번 확인해가며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려 봐야 할 듯.

 

이번 여행에서는 에비스역 쪽으로 갈 일이 없어서 확인하지는 않았다.

뭐랄까, 이 감정은 궁금하다기 보다는 일종의 아쉬움을 간직한 추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서 기억의 진위여부를 구별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왜곡될 수 있구나 하는 결론을, 스스로를 피험체로 삼아 재빨리 결론내릴 필요는 없으니까.

 

아마 언젠가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서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94년의 기억을 다시 되살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지브리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시계는

도쿄 안에서도 비즈니스 단지로 유명한 이곳 신바시 부근에서 가장 이질적인 건축물임에 틀림없다.

사실 왜 이곳에 이런 모습의 시계가 있는지조차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로

이 시계가 위치한 닛테레 스튜디오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고층 빌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위에도 뭔가 지브리스러운 곡선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으며

콘크리트 광장과 콘크리트 고층 빌딩, 수트케이트와 롱코트 넥타이의 셀러리맨들이 바삐 움직이는 이곳은

어딜 봐도 지브리식 동판 시계와 어울리는 점이 한군데도 없는 삭막하고 차가운 도심부 안의 도심부.

 

닛테레 스튜디오는 각종 버라이어티 쇼,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 녹화하는 곳이라서

건물 1층과 그 주변엔 각종 캐릭터 상품 등 쇼핑몰이 형성되어 있으니, 거대 지브리 시계로 눈길을 끄는건 나쁘지 않은 선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선택이 너무나도 뜬금없어 보이고, 주위와의 조화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되려 눈에 띈다는게 특징이기도 하고.

 

  

 

 

좋게 생각하면 해석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삭막한 곳에야 말로 판타지 세계에서 걸어나온 듯한 움직이는 시계성이 어울린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니까.

사무적인 빌딩 숲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셀러리맨들에게, 이 녀석이 플라즈마 이온 공기청정기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겠나.

 

잔업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며 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앞에

종소리와 함께 마법에 걸린듯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동판인형들의 모습이

기분을 시원하게 하는 허브 캔디같은 역할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언밸런스한 풍경도 납득이 된다.

 

 

 

도쿄에 도착한 뒤로 생각보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던 탓에 묘하게 더운 옷이 부담되었는데

오늘은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의외로 찬 공기가 얼굴을 자극하고 있어서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다.

 

30분쯤 시계 주위를 돌면서 이것저것 셔터를 누르다 보니 손가락의 감각이 점점 옅어진다.

몸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장갑 없는 촬영은 역시 오래 버티기 힘들다.

이제부터 이동할 오다이바는 도쿄 만 앞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섬이라서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매섭다.

 

워낙 추위를 타지 않는 몸이다 보니, 적당한 점퍼 하나에 쿨맥스 소재의 반팔 셔츠만 입고 있어도 겨울을 날수 있다.

그러고보니 이번 겨울동안 한 번도 긴팔 셔츠를 입어본 적이 없다.

 

자전거 여행의 경험때문에 더 심해진 기분인데

영하의 날씨에서 아스팔트 위에 텐트치고 침낭속에 들어가서 덜덜 떨며 밤을 지새고 나니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11월까지 쿨맥스 반팔 셔츠 한벌로 밖을 돌아다니는 체질이 되어 버린듯 하다.

 

하지만 항상 카메라와 함께 하는 손가락만큼은 워낙 빨리 얼어버려서

겨울 촬영때는 역시 괜찮은 장갑이라도 있어야 하나 고민중이다. 촬영용 장갑은 쓸데없이 비싸서.

 

 

 

도쿄와 오다이바를 연결하는 무인 모노레일 유리카모메는 '붉은부리갈매기' 라는 뜻. 도쿄만에서 흔히 보였던 바다갈매기다.

 

모노레일이란게 제대로 성공하기에 매우 어려운 복권과도 같은 녀석인데

거의 사장될 뻔한 오다이바라는 인공섬이, 거대 쇼핑몰과 상업단지로 성공적인 정착을 이루어 내면서

유리카모메 역시 일본 전체에서 가장 성공한 모노레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도심에서의 모노레일은 한순간 반짝하고 난 뒤에 똥만 남기는 녀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한국에서 시도중인 몇몇 경전철이 심히 걱정될 따름이다. 하긴, 이제 도시가 부도나던 말던 내가 신경쓸 바가 아니긴 하지만.

 

대중교통이 대부분 그렇듯이, 진행 방향과 수직방향의 창가 풍경은 질리도록 보는 녀석이니

무인 전철인 유리카모메에서는 맨 앞뒤 진행방향을 감상할 수 있어서 그곳이 명당자리로 꼽힌다.

앞자리 잡을 수 있을까 기대하며 미끄러져 내려오는 유리카모메에 탑승하는데, 승무원 두 명이 앞좌석에 앉아있어서 깜짝 놀랐다.

유리카모메를 수십 번 타면서 승무원이 앉아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신선한 충격.

 

두 사람이 조를 이뤄서 군대 사격훈련때 하는 구호처럼 '브레이크 확인! 브레이크 확인!, 선로 이상없음! 선로 이상없음!' 하고

반복 복창을, 그것도 꽤나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전철은 점검용 유인전철인듯 하다.

앞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결국 정면 샷은 이 한컷밖에 찍지 못했지만, 유인 유리카모메도 새로운 경험이니 나쁠 것 없다.

 

 

 

유리창의 반사때문에 의도한 만큼 깔끔한 사진을 남길수는 없어도

대강 레인보우 브릿지 정도는 담아본다. 인공섬인 오다이바와 육지를 연결하는 이곳의 랜드마크.

 

상층부는 자동차용 도로이고, 하층부는 유리카모메와 자동차가 모두 달리는 구간인데

걸어서는 갈 수 있어도 자전거로 통과할 수 없는 곳이라서, 자전거 여행에서는 쉽게 소외되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전거로 갈 수만 있다면, 인공섬의 널널한 공간 덕분에 적당히 텐트치고 잘 만한 곳은 널리고 널렸는데 말이다.

 

걸어서 가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최소 2km 는 걸어야 하니까.

 

낮에는 별 특색없는 다리지만, 이름에 걸맞게 해가 지고나면 형형색색의 불이 켜지는 덕에 사진 촬영으로 유명한 곳.

오다이바 하면 레인보우 브릿지 사진 안담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질리는 바람에, 본인은 한 번도 야경 찍은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카메라도 새로 바꾸고 했으니, 테스트라도 해 볼까 생각중이다.

 

 

 

다리를 통과중. 저 멀리 보이는 지역이 오다이바(お台場)다.

원래부터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섬은 절대 아니고,

사실은 1850년대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의 개방을 요구하며 프리깃과 범선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잠깐 시간을 달라고 해서 2년동안 그들을 미국으로 돌려보낸 후, 그녀석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포대를 설치하려고 만든 섬이 바로 오다이바.

한자나 일본식 발음을 유심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름의 유래는 '포대를 세우기 위한' 장소라는 뜻이다.

 

2년쯤 뒤에 다시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도쿄만으로 들어왔지만, 사실 그깟 포대로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니라서 강화조약을 맺어버렸고

오다이바의 대포는 단 한발도 발사되는 일 없이, 했던 일도 없고 하는 일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상태로 한참동안 방치되고 말았다.

 

지금이야 어마어마하게 면적을 키웠지만, 그 쓸데없던 인공섬이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복합산업단지로 맹활약중이니 역사는 아이러니할 따름.

 

 

 

레인보우 브릿지를 통과하는 도중, 슬그머니 카메라를 들어서 희귀 승무원들의 모습을 담아본다.

a99 카메라는 미러가 움직이지 않는 구조라서 촬영시 소음이 상당히 작다. 아마 저들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듯.

 

도촬은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타이밍도 절묘하게 앞좌석을 차지할 기회를 근본적으로 없애버린 것에 대한

사소한 장난이라고 할까. 앞얼굴이 나올 일도 없고 해서 그냥 여행의 추억거리 삼아서 남겨본다.

 

 

 

이번 여행이 얼마나 설렁설렁이었나를 이곳에 도착하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단 해안가 앞의 다이바 역에 내리긴 했는데, 그 건담이란 녀석이 어느 역의 어느 건물 앞에 세워진 녀석인지도 조사하지 않았던 것.

 

그냥 걸어다니다 보면 알아서 발견되겠지 하고 여기까지 멍하니 찾아온 것이다.

걸어서 못 돌아볼 건 아니지만, 오다이바는 상당히 넓은 곳이다. 이런 늦은 시간에 걷기 시작한다면 일주 한번 하는것도 불가능.

다행히도 각종 쇼핑몰이나 주요 빌딩들은 여기 해안가에서부터 거의 직선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발품 팔면 못갈 곳은 없다. 혹시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으니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건담을 찾아보는 수 밖에.

 

 

본인은 이런 추억에 젖을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릴적 아버지께 들었던 기억은 난다. 마을에서 누가 흑백 테레비 한대 샀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애들은 물론 마을사람 전체가 모여와서 함께 시청하곤 했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

 

지금도 서울역 안의 거대 TV 앞에서는 여전히 시대를 뛰어넘은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이곳의 이 TV는 과연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 건지 조금 궁금하다.

정말 오리지날 흑백 브라운관을 어떻게든 계속 사용하고 있는건지

요즘 TV에다가 겉만 저렇게 옛날 티나게 만들어 놓은건지.

 

영상이 반복재생 되는걸로 봐서 내부에 현대식 장치가 되어있다는 사실까지는 알겠는데

아무래도 LCD 모니터가 아닌 듯한 느낌때문에 묘하게 느껴진다. 어디까지가 오리지날일지.

 

그러고보니 시골의 작은할머니 댁에는 이만큼 낡은 TV도 있긴 했다.

프레임이 나무로 되어 있고, 양쪽 옆에 붙박이 여닫이문이 있던 TV.

없어진지 오래지만,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면 나름 가치가 있는 녀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청법이다 셧다운제다 하면서 물심양면 완벽한 독재와 겸열의 부활을 꿈꾸는 요즘 한국의 꼬라지를 생각하면

이런 저속한 옛 거리 모습의 재현이란 낯뜨겁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퇴폐적 풍경일텐데

이곳에서는 이런 풍경으로 돈 잘 벌고 있는듯 하다.

 

하긴 돈이 주머니에서 샘솟고 넘쳐서, 인터넷 따위 사용할 필요 없이

화려한 대구의 밤문화를 얼마든지 직접 즐길 수 있는 우리 국회의원 어르신들이야

자기 딸내미 나이의 여자들 껴안고 나뒹굴 수 있을테니, 이런 추한 옛 모습은 저속하게도 느껴지시겠지.

 

캬바레라는 말은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 일본은 이 단어 별로 안쓰는 것 같던데.

요즘엔 스낵바라는 말을 많이 쓰는듯 한데, 이쪽 방면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문에 붙은 찌라시는 칼립소 쇼라는걸 선전하고 있는데, 뭔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카리브해 부근의 경쾌한 전통 음악이란다.

1958년도의 허름한 캬바레라는건 의외로 국제화에 빨리도 눈을 떴나보다.

 

옆의 조그만 창문에 붙어있는 찌라시는, 호스티스 모집이라고 적혀있다.

그러고보니 청량리 롯데백화점 갈때, 그 뒤쪽의 그렇고 그런 거리를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2012년의 경험이지만, 생각해보니 1958년의 이 모습과 놀랄 정도로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역시 가장 기본적인 운동을 산업화한 업종이다보니, 50년쯤 지나도 별로 발전이 없는건가 싶기도 하고.

 

 

 

시간이 점점 흘러서, 더 지채하다간 폐점시간까지 정말 라멘 못 먹을 위험성이 있으니

서둘러 한그릇 먹으러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생각해 봤는데, 길을 잘못들어 지하 1층부터 시작한 탐험이니까

그건도 인연이다 생각해서 지하 1층에 위치한 라멘집으로 들어가 본다.

 

지난번 포스팅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라멘가게는 지하 2층에 빙 둘러서 영업중인데

좁디 좁은 1층 통로에도 영업중인 가게가 있다. 지하 2층이 왁자지껄한 시장 한복판이라면

지하 1층의 통로에 자리잡은 라멘가게는, 그 음침하고 어두운 조명만큼이나 훨씬 진득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침 팔짱끼고 즐겁게 돌아다니는 젊은 커플들과 달리 난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는 솔로니까 왠지 분위기에도 어울리는 듯 하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은 삿포로 라멘 전문점 '스미레'라는 곳.

삿포로 하면 역시 된장을 베이스로 한 미소라멘인데, 아무 생각없이 메뉴 자판기에서 미소라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순간적으로 옆에 있는 버튼에 눈길이 갔다. '옛날식 라멘(昔風ラーメン)' 이라는 메뉴가 눈에 보인 것.

 

이 옛날식 라멘이라는 이름은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자전거 여행의 여파도 있겠지만, 일본 중에서 홋카이도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단어인데, 이 단어를 다시 보는건 근 4년만이다.

 

'옛날식 라멘'이라는 건 오직 홋카이도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인데, 이것은 홋카이도가 라멘의 발상지이기 때문.

라멘이라는 이름이 정착되기 전에는 '중화 소바'라고 불린 이 음식은, 이름 그대로 중국에서 들여온 녀석.

메밀을 중심의 면문화가 발달했던 일본에서, 꼬들꼬들 쫄깃쫄깃한 중국식 면은 매우 생소하고 신기한 이미지로 다가왔었다.

 

중화소바가 가장 먼저 들어온 삿포로에서는, 생선육수 혹은 닭고기 육수에다가 간장으로 맛을 내麩고

돼지고기, 멘마, 계란, 나루토(저기 똥글똥글 말린 오뎅같은 녀석), 시금치, 후(麩) 를 넣는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사진에 나온 저 녀석이 최초의 일본 라멘의 모습이라는 뜻.

 

라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고개를 갸우뚱할수도 있겠는데,

쇼유라멘(간장라멘)과 뭐가 다른지 말이다.

 

사실 중화소바 = 쇼유라멘 이라고 생각해도 틀린게 없다. 그리고 삿포로에서만 이걸 '옛날식 라멘'이라고 부르고

다른곳에서는 그냥 중화소바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같은 라멘. 알고보면 조금 맥이 빠지는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라멘의 시작점은 홋카이도의 삿포로였고, 지금은 된장라멘으로 유명한 삿포로지만

라멘의 시대를 연 것은 간장라멘이었다는 조그마한 잡지식.

 

중화소바라고 부르는 라멘은 기본적으로 이 녀석과 거의 흡사하지만

'옛날식 라멘'이라고 따로 구분해서 부를때는 반드시 시금치와 '후'가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후(麩)는 사진의 라멘 중앙에 둥둥 떠있는 녀석. 얼핏 보면 오뎅 말린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부 말린것 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도 통용되던 때가 있었으니 먹어본 사람도 있을 듯 하다.

 

저 녀석은 밀기울, 즉 두부의 비지처럼 밀가루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에서 추출해낸 글루텐이라는 성분을 말려서

마쉬맬로처럼 만든 것이다. 단백질의 일종이고, 밀가루 가공 찌꺼기로 만들기 때문에 단가도 매우 저렴해서

전후 영양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에서 많이 사용되던 녀석. 단지 저렇게 추출해낸 글루텐 덩어리는 무미 무취였기 때문에

그냥 먹기는 좀 그렇고 해서, 저렇게 육수 위에 얹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유부덩어리처럼 국물을 흡수해서 맛이 생기니까.

 

우동위에 얹는 유부조각도 사실 저 '후'가 그 기원이다. 좀 먹고 살만해 지니 굳이 맛도 없는 글루텐 덩어리를 쓸 필요가 없었던 것.

하지만 일본의 어느 현 어느 마을에서는 아직 마을사람들 전체가 저 '후'를 국에 넣어서 맛있게 먹고 있다.

저런 조그만 녀석이 아니라, 물 빨아들이면 한국의 호빵만큼 커지는 녀석이라서, 국 안에 넣으면 거대한 건더기가 된다.

저게 복합성 단백질 덩어리라서, 물을 아무리 흡수해도 쭉 찢어지지 않고 여전히 질긴 습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국물을 잔뜩 흡수한 녀석을 쭉쭉 뜯어먹는 그 식감은 상당히 묘한 체험이다.

 

쓸데없는 콩알지식 이야기하느라 길어졌는데, 아무튼 오랜만에 옛날식 라멘이라는 이름을 듣고

비록 된장라멘이 더 맛있을지라도 후회없이 그 녀석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곳 요코하마 라멘박물관이 1958년의 모습을 이렇게도 멋지게 재현해 놨으니, 거기 어울리는 라멘은 당연히 옛날식 라멘이겠지.

 

사실 간장라멘은 모든 라멘의 베이스가 되는 모델이라서, 라멘박물관에서 굳이 이 녀석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긴 했다.

국물을 만들때 소금라멘이 가장 첨가되는게 적기 때문에 라멘의 기본은 소금라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금라멘은 간장 -> 된장 -> 돈코츠로 이어지는 일본 라멘 가계도와는 완전히 별개로 만들어진 녀석이다.

 

 

 

취향에 맞춰 후추를 조금 뿌리고 후루룩 면발을 들이삼킨 순간

혀가 뇌에 보내는 신뢰성높은 화학신호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보기에 정말 평범한 간장라멘인데, 놀랄 정도로 맛있다.

 

간장라멘이 제일 저렴한 편이라서, 자전거 여행중 380엔 정도 되는 저렴한 중화소바 참 많이도 먹었는데

이곳의 옛날식 라멘은 900엔이나 하는 고가니까, 뭔가 다르긴 다르겠지 하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되짚어봐도 이 라멘, 내가 이제껏 먹은 녀석중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맛있다.

 

면의 삶은 정도나 굵기 등을 개별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완벽한 식감에 제대로 우려난 닭육수의 가슴지리는 시원함이 나를 놀라게 한다.

사실 싫어하는 요리만 아니면 대강 맛있게 먹는 성격이라서 이런 표현은 잘 하지 않는데

이 라멘 정말 굉장히 맛있다. 간장라멘이 갖춰야 할 모든 기본기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레퍼런스 라멘이라 할 만하다.

 

챠슈의 상태, 멘마의 식감, 적당한 반숙계란, 아삭아삭 파조각과 딱 적당히 삶긴 시금치 등등...

평소 번개처럼 음식을 입안에 털어넣는 식습관을 가진 본인이라도,

이번엔 천천히 면을 빨아당기고 숟가락으로 한모금씩 국물을 떠먹으며 최대한 맛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요 근래 먹은 라멘중에 이렇게 단점을 생각해내기 어려운 녀석은 처음이다.

 

물론 간장라멘이라는 녀석의 범위도 정말 넓어서, 면의 굵기, 삶는 정도뿐 아니라 면의 구성 성분과 뽑는 방법에 따라

완전히 직선으로 뻗은 녀석, 꼬물꼬물한 파마같은 녀석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되고, 각각의 맛도 다르다.

간장 역시 무한대의 조합이 가능하다. 미림에 가까운 옅은 간장과 돼지뼈 육수의 조합도 있고

콜라만큼 시커먼 진한 흑간장과 닭육수의 조합 등등... 간장라멘의 바리에이션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 모든 바리에이션 앞에 이름을 댈 수 있는게 이 '옛날식 라멘'이라고 생각.

가장 맛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간장라멘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가이드같은 느낌에서.

 

 

 

라멘박물관에 입점한 가게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최고의 가게라는

이시다씨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확실히 사실인 듯 하다.

일단 이곳에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최상급 라멘이라는 평가는 기본으로 따 놓는 것이라고.

 

삿포로 라멘 '스미레' 에서 맛본 라멘을 생각해 볼때, 아무래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라멘의 짠맛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관광객들 입장에서야, 어디서 뭘 먹으나 그게 그거겠지만

본인은 적어도 일본 라멘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평가를 할수 있을만한 입맛을 가지고 있고

이 곳에서 먹은 한 그릇의 라멘 레벨은, 편의상 1~10 까지로 구분한다면 9 레벨 이상의 S급이라고 확신한다.

 

식사를 마친 후 지하 2층으로 내려와서, 1층과는 다른 시끌벅적한 번화가의 모습을 만끽한다.

어디 붙어있는 설명을 슬쩍 읽었는데, 이곳 2층은 1958년대 어느 역 앞에 들어선 거리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듯.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번성하긴 하지만, 어쨌든 역 앞의 에너지란 확실히 힘이 넘친다.

 

폐점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남은 시간으로 따지자면 라멘 한그릇 정도는 거뜬히 더 먹을수 있지만

스미레에서 라멘 먹은지 5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먹어봤자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다.

폐점시간이 3~4시간쯤 남았다면 느긋하게 배를 비운 다음 다른 라멘을 시험해 보겠지만.

 

여기는 또 친절하게도, 입장권 한번 끊으면 그 날은 박물관 밖을 나갔다 들어갔다 해도 관계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시다씨와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 결과, 한밤중에서야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폐점시간을 이렇게 앞두고서는 급하게 먹어봤자 라멘의 맛을 즐기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이것도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언젠가 요코하마에 제대로 숙소를 잡고 와서

한 이틀쯤 느긋하게 여유를 내서 이곳의 라멘을 차근차근히 격파해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만들게 해 주었으니 그걸로 만족.

 

어차피 오늘 아무리 용써봤자 안될일은 안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다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수 밖에.

요코하마엔 크루즈 여행 매니아분과도 안면을 텄고 해서, 다시 찾을 이유는 충분히 만들어 놨다.

 

전봇대 위에 걸린 테레비는 정말 오래된 녀석이다. 시간이 되면 누군가가 테레비를 끄고 저 문을 닫아잠궈 버리는 것일까.

당시엔 레슬링이 유행한 듯 하다. 시기상으로 역도산이 활약할 때는 아닌가, 당시 레슬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역도산이라는 사람이 한국사람이었다고 자랑스레 기억해야 할만한 인물이 아니라는것 쯤은 안다.

 

 

 

거의 끝물이라서 사람들이 적은 것 하나만큼은 참 기분좋은 일이다.

지하 2층은 1층보다는 좀 더 정리된 듯한 느낌이 들지만. 아무래도 타일이 너무 깨끗한 느낌인데.

 

타일고 그렇고 나무 벤치도 그렇고, 살짝살짝 예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녀석들이 나와서 약간 아쉽다.

자전거는 상당히 옛날 녀석이고, 뒤에 실은 녀석은 아마도 우편물인 듯.

 

지하 2층은 라멘가게들이 밀집해 있어서, 붐빌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붐비기 때문에

흐름을 위해서라도 저렇게 바닥에 표시를 해 놓을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간이 마냥 넓은건 아니기 때문에

시대 재현과 라멘가게의 원활한 흐름, 두 가지 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머리를 쓴 흔적이 보인다.

 

 

 

어디로 향하는 계단인가 싶어서 올라가 봤는데, 마지막까지 센스넘치는 표지판으로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그 위의 금간 듯한 모습은 물론 가짜겠지. 아무리 봐도 진짜 금간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설마 그러진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다음에는 정식 루트로 차근차근히 즐겨보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하다.

 

 

 

올라갈 때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마지막으로 셔터를 한번 더 누른다.

이거 한국에서 비슷한 사진 가져와 바꿔치기해도 모를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어릴때 제일 맛있었던 불량식품은 뭐였을까...

사실 학교 앞 불량식품은 엄니께서 워낙 강력하게 억압하시는 바람에 또래 아이들 치고는 별로 먹어본 기억이 없다.

 

흰색과 검은색 콩처럼 생긴 밀가루 과자가 달달하게 맛있었던 기억은 나는데.

어릴적 제일 맛있는 과자는, 당시의 나에게 혁명적인 맛을 선사해준 치토스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탄산캔디였다.

발바닥 모양의 사탕에 찍어먹던 톡톡캔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뭔가 위험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버린듯 하다.

가끔씩 혀가 얼얼할 정도로 퍽 거리면서 터지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으려나.

 

 

 

300엔이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여행도 즐거웠고

900엔짜리 '옛날식 라멘'은, 내가 왜 여태껏 이곳을 찾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코하마 방문의 원래 목적이던, 이시다씨와의 토크 라이브도 문제없이 멋지게 끝났고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여전히 어색하지만, 공감할 부분이 많은 즐거운 괴짜들과 인연도 만들고

정통 쉐프가 부지런지 만들어주는 멋진 요리도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으니

5일간에 달하는 이번 도쿄 여행은, 사실 이 이벤트 하나때문에 온 거나 마찬가지지만

오늘 하루만으로도 그 어떤 후회 한점 남지 않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것이나 마찬가지.

 

첫날부터 지금까지 별 생각과 의욕없이 터벅터벅 걸어다니기만 하던 내 컨디션을

일시에 흥분 상태로 각성시켜 준 듯한 기분이다.

 

특히 자전거 여행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는 요코하마라도

이렇게 찾아오니 여기저기 즐길거리가 산재한 곳으로 변모하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일면.

역시 어떤 형태의 여행이든 각자에게 맞는 즐길거리가 있는 법인가 보다.

 

신요코하마역 앞의 사거리는 교통량이 많아서인지, 이렇게 커다란 원형 고가도보가 만들어져 있는데

야간사진도 문제없겠다, 요코하마에는 좋은 추억도 남겼겠다, 높아진 텐션으로 여기저기 카메라에 담아본다.

 

 

 

이제 2년이나 지난 자전거 여행이라서, 정신차리지 않고 그냥 달려나간 곳의 기억은 애매해진다.

요코하마는 여행 거의 막바지에 슬쩍 통과했을 뿐이라, 기억에 남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자전거여행중이라면 어떨까 하고, 마음을 예전으로 살짝 돌린 후 육교위에서 주위를 바라보니

역시 자전거로 달리고 있었다면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콘크리트 숲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걸 보니

참 여행이란 녀석은 이렇게도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최악의 여행 타입으로 생각하고 있는 단체 투어도

뭔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굴려보는데,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무리.

 

국딩 5학년, 한달간의 미국 여행중 1주일쯤 여행사 따라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건 여행이 아니라 거의 고문이었다. 대놓고 요구하는 팁에 흔해빠진 말장난, 형편없는 중국식당으로의 안내 등등.

아무래도 어릴때의 트라우마가 인격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사실인 듯.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40분쯤. 일본 여행하면서 이렇게까지 늦게까지 돌아다닌건 오랜만이다.

오늘 잠은 잘오겠구나 싶어, 그것마저도 즐거운 기분. 오늘은 어쨌든 모든 경험이 다 만족스러웠으니까.

 

내일부터는 또 할일이 별로 없어서 대강 부탁받은 물건이나 사러가볼까 싶다.

보고싶은 것들을 하루에 한개씩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널널하다.

오늘 이벤트는 날짜가 고정된 바람에 다른 계획을 수정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냥 마음가는대로 뒹굴거리다가 어디 슬쩍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하면서도 이렇게까지 게을러질 수 있다는걸 온몸으로 보여줘야 할것 같다.

 

라멘 박물관의 구멍가게에서 구입한 100엔어치 추억의 과자들.

사탕이야 별로 변한게 없고, 중간의 저녀석은 사이다맛 가위바위보 젤리.

왼쪽은 담배모양을 한 코코아 사탕이다. 그러고보니 국딩때 애들이 저걸로 폼잡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본인은 엄니의 편집증적인 건강 염려로 인해 불량식품을 벌레보듯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냥 옆에서만 바라보던 과자였는데,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 드디어 처음으로 맛을 보게 된다.

 

일단 여행 중간중간에 천천히 먹기로 하고, 사탕 하나 빨면서 TV 보다가 새벽 2시쯤 취침.

 

 

원래는 붐볐을테지만, 9시가 다 되어가는 일요일 밤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다.

입구쪽도 옛날 방식이라 그런지 제대로 안내표시가 없어서,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는 바람에

되는대로 지하1층의 어느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예상하지 못한 골목이 나온다.

 

아마 이곳이 정식 루트는 아닌듯 한데, 그러나저러나 아무 관계없다. 여긴 그냥 구경하고 라멘먹으면 되는 곳이니까.

 

운이 좋았다고 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타나는 옛날 구멍가게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내가 어릴때는 이런 가게가 군데군데 있었는데, 정말 놀랄 정도로 재현도가 높다.

 

 

 

안에 들어가서 사진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마음껏 직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 추억과 상당부분 겹치는 이 가게 안에서 유일하게 별로 겹치지 않는 요소가 가게 주인.

이곳의 할아버지는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는 타입인데

내 기억에, 예전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렇게까지 친절한 표정을 지었던 적은 없었다.

 

이시다씨가 좀 전에 역에서 '그곳에 가면 자기도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든다'고 했었는데

과연 그럴만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학교앞 문구점에 아직 이런것들 팔고 있지 않으려나.

 

내 경우는 학교 문구점보다, 집 앞의 재래시장 귀퉁이 3~4평도 안되는 쪽방 가게에서 이런 것들 사먹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조립 로봇 장난감조차 50원짜리가 있었던 시절이니까. 500원짜리 프라모델은 각오 단단히 하고 사야 했다.

 

모양만 봐도 대충 한국의 소위 불량식품들과 다를게 없는 친근한 모습이다.

단지, 처음엔 참 정겹고 즐겁게 구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금 현실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트는 기분.

 

이 사람들의 추억과 나의 추억이 이토록 겹쳐지는 것은

결코 쌍방간의 호의나 순수한 의미에서의 교류로 인해 생성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방후 40년이 넘었던 그 시절조차 여전히 일제의 흔적은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형태로 사람들의 생활속에 녹아있었던 것이다.

 

이런 추억을 향유하는 그 감상적 즐거움조차 분노로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유년시절의 추억이고, 그저 맛있고 신기한 과자들을 싸게 먹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기억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난 지금 회상해본다면

그 정형화된 이미지의 근원에 훨씬 복잡한 역사의 흔적이 세겨져 있음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역시 내가 쓸데없이 네거티브에 꾸질꾸질한 성격인 걸까.

몇십년만에 다시 마주하는 추억의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한 켠에 침울해지는 마음이 자리잡는다.

 

 

 

얼굴은 냉정하게 유지하는데 일가견이 있지만

머릿속의 감정을 정리하는건 어쨌든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더 머리를 비우고, 그냥 순수하게 이곳 라멘 박물관의 옛 거리풍경을 즐기는데 집중하려 한다.

 

슬쩍 가게를 둘러보니, 그때 그 시절만큼 싼건 아니지만 그래도 동시대의 편의점보다는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가격대. 아무래도 입장료까지 받는 곳이다 보니 커버가 되는 듯.

추억의 불량식품에 사진빨도 잘 받고, 가격도 싸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입구에 비치된 바구니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집어갈만한 녀석을 찾아본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손이 가는대로 마구 사버리면 의외로 돈을 써버리게 되는 것이 이런 불량식품류.

이곳에 왔다는 기념 정도의 의미로 적당히 세 개 정도만 담는다.

정겨운 먹거리는 널리고 널렸는데, 가방에 넣고 갈 부피를 생각하니 좀 작은것들로만 챙기게 된다.

이런 류의 간식거리는 가격에 비해 양이 많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해서, 겉보기에 좀 큰것들이 많으니.

 

가게 할아버지는 '딱 100만엔!' 이라고 기운차게 계산해준다. 물론 100엔이라는 의미.

구입하고보니 확실히 예전처럼 싼 가격은 아니다. 요즘엔 일본 편의점에서 100엔으로도 팝콘 한봉지 사먹을 수 있을 정도니까.

 

밖에서 좀 더 주위 풍경을 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나와서 그걸로 기념사진 찍어줄까 하고 묻는다.

본인 사진은 별로 찍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완전한 수동렌즈라 촛점 맞추기가 쉬운편이 아닌 탓에

이리저리 설명을 해 드렸는데, 할아버지가 '비싼 녀석이니 맡기기 좀 그렇지?' 라고 짖궃은 말투로 장난을 친다.

 

 

 

시작부터 정해진 루트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아무렇게나 걸어다닌다.

원래 저 가게는 라멘 투어 신나게 마친 후 돌아가기전 기념품 대용으로 들러보는 곳이었으니까.

 

2층은 두 사람이 간신히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회상하며 만들어져 있다.

내가 어릴적에도 물론 여기저기 이런 좁은 골목이 있긴 했는데

어머니 연세쯤 되는 분들의 추억에 남겨져 있는 골목길은 정말 이런 느낌이었을 법 하다.

대구에 남아있는 몇몇 옛 골목들을 보며 어머니가 '예전엔 거리 곳곳에 이런 골목들이 빼곡했는데' 라고 말씀하신적이 있다.

 

방금 전 골목가게까지는 내 추억속에서 회상할 수 있는 범위지만

이 정도까지 가면 역시 나로서도 어딘가 이야기속에서만 들었던 법한 비현실감과 조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낮에 학교 가면서 이런 골목 분위기를 보지 못한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활동시기는 대부분 아침이나 대낮이었던 고로, 어둠속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이런 거리풍경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이런 박물관의 레벨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라면 뭐니뭐니해도 그 재현도를 들 수 있겠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곳 라멘 박물관의 레벨은 정말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다.

 

군데군데 불이 나간 전구, 너덜너덜해진 간판, 벗겨지고 녹물이 내려오는 콘크리트 벽 등등

지금 이 모든 요소요소들이 전부 철저한 계획아래 정교하게 재현된 녀석인지

아니면 정말 관리를 되는대로 해서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착각할 정도로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어찌보면 개장 당시엔 저 전구가 다 켜져있었는데, 개장 후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렇게 낡아버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현도가 뛰어난 이곳은, 계속 걸어다닐수록 점점 현실이라는 시공간에서 멀어져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현실과 망상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은, 망상이 현실만큼 현실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니까.

 

오른쪽 간판은 삿포로 미소라멘 '스미레' 라고 적혀있는데

그냥 옛날 거리 재현하기위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고, 진짜로 이곳에서 영업하는 라멘부스중 한곳이다.

마리화나 몇대 빨고 이곳에 들어오면 정말 과거로 훌쩍 넘어온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굉장한 리얼리티.

 

 

 

이곳의 시간대는 아무래도 늦은 저녁, 해가 거의 지면으로 넘어가며 어슴프레한 핏빛만이 지평선에 살짝 스며드는 그런 순간인 듯 하다.

거의 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어두운 곳이라서, 이때만큼은 새 카메라 갖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도 3200 까지 올리고 조리개를 F2.0 까지 개방해야 겨우 사진을 건질 수 있을 정도.

 

힘겹게 사진을 담으면서도 이 장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매번 감탄을 금할수가 없다.

이건 1950년대를 그럭저럭 흉내낸게 아니라, 정말 그 시절의 시공간을 뚝 잘라서 가져온 레벨.

건축법상 의무적으로 표기된 소화기 안내판만이 나를 2012년에 붙들어놓는 유일한 이정표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벽의 낙서, 흘러내린 물 흔적, 색바랜 나무 문과 벽보까지. 무서울 정도의 현실감에 기분이 묘해지는 느낌.

옆의 안내도는 폼으로 만들어 놓은게 아니고 진짜 지도다. 재미있는건 대부분의 가게들이 간판만 존재하는 이름뿐인 녀석들이지만

그중에는 색깔만 살짝 다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있는 진짜 라멘가게도 있다는 것.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에 잠깐 넋을 잃고 발걸음을 멈춘다.

좁은 골목길에서부터 시작한 터라 이 박물관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이곳은 지하 2층이 진짜 라멘가게였던 것. 지하 1층의 좁은 골목거리는 이 가게들의 2층 뒤에 나 있는 샛길이었다.

 

물론 폐점시간이 다가올 정도라서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고

이 정도라면 어느 가게라도 쉽게 들어가서 원하는걸 먹을 수 있을듯 하다.

 

 

 

이곳에서 제일 비현실적인 녀석이라고는 저 하늘그림 그려진 지붕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몇 번을 봐도 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인 재현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시다씨가 극찬을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국인인 내가 느끼는 완성도보다는

직접 이 시대 이 공간을 살아온 이시다씨 입장에서라면 이 정도로 완벽한 고증은 하나의 예술로 느껴질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이 곳의 시대 고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확하다.

내가 어릴 적에도, 경북 점촌이나 영천 시장골목 정도는 들어가야 간신히 남아있던 이런 담배가게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뽑아낸 듯이 재현해 놓았다. 물론 그 시절의 담배곽까지.

 

도쿄나 삿포로의 라멘 테마파크를 생각한 탓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라멘박물관이란 녀석은

실상을 알고보니 나머지 테마파크와는 비교하는게 어리석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녀석이다.

라멘을 팔아야 하는 공간에 '거만하게도' 입장료까지 받는 건가 싶었던 내 불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곳에서 친근함과 그리움을 느낄지도 모르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역사가 만들어온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흔적마저 다시 상기시키는 기분이 들 가능성 역시 있기 때문에

이곳과 마주치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런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복잡난해한 곳.

 

 

 

 

아직 지하 1층을 한바퀴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걸어본다.

원래 목적은 맛있는 라멘이었지만, 이제와서는 라멘은 그냥 마지막에 맛보면 되는, 그런 레벨로 내려가 버렸고

이곳의 풍경을 좀 더 담아보겠다는 일념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한국은 전후 일본보다 목조건물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기 때문에

이런 풍경만큼은 한국과 일본의 추억이 상반되는 결과를 도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문옆에 걸려있는 개량기 모습은 뭐, 예나 지금이나 추억거리가 되긴 하지만.

 

라멘 박물관 소개글을 보면, 1958년대 어린이들은 이런 골목길에서 이렇게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까지 놀곤 했었다고 한다.

인스턴트 라멘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쌀밥 대체음식으로 장려되는 녀석이었는데

라멘이라고 하면 딱 생각나는게 그 시절 이런 장소와 이런 시간대의 풍경이었다고.

 

 

 

정말 문열고 한번 들어가보고 싶을 정도라서 참는데 고생했다.

이 풍경이 진짜 현실이었다면, 아마 저 문 너머에서는 화려하지 않지만 맛있어 보이는 저녁이 준비되고 있겠지.

 

당시 일본은 고도성장시기에 한창 불을 붙이고 있던 시절이라

소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했지만 그래도 나라 전체가 희망에 넘치던 시절이긴 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것도 그런 이유에서일듯.

 

반대로 한국은 이런 풍경을 감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조금 더 늦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같은 젊은(?) 사람도 이런 거리의 풍경에서 조금씩이나마 향수를 느낄 수 있는것 아닌가 싶다.

 

 

 

디자인쪽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동감하겠지만

이런 식의 디테일을 살리는데 세심한 고증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다른 동식물의 차이점은 구별하기 어려워도, 같은 사람의 차이점은 손쉽게 구별해 내듯이

실제 존재했던 시대상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고증이 조금이라도 어색하다면 사람 눈에 단점으로 쉽게 들어오게 된다.

 

하늘에 홀로그램 쏴올려서 구름 만드는 하이테크까지는 구현하지 못했겠지만

정말 어디 하나 흡집을 잡고싶어도 도무지 찾을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성이다.

억지로 잡아내자면, 당시 이런 거리 곳곳에 널부러져 있던 각종 오물과, 지독한 냄새를 풍기던 절임반찬의 강렬한 인상 등등

후각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 정도일까. 그것까지 구현한다면 아마 라멘 입맛이 떨어져 버리겠지만.

 

심지어 이곳의 구멍가게나 간식파는 가게 등에서는, 맥주나 음료수마저 옛날 유리병에 담긴 녀석을 제공한다.

라멘 가게를 찾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적당히 꾸며놓은 테마 파크들, 도쿄나 삿포로의 가게들이 딱 그 정도 수준이라서

5분에서 10분정도 슬쩍 걸어다니다가 적당히 라멘집 찾아 들어가는게 전부였는데

이곳은 일본 굴지의 라멘가게들이 경합하며 내 놓은 특급 라멘의 맛에 결코 떨어지지 않을만큼

외적인 구경거리가 가득한 곳이라서, '라멘'과 '추억의 거리'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어느 한쪽에 편중되어서 나머지 한쪽을 지탱해주는, 손님 입장에서는 왠지 끼워팔기라는 느낌을 받는 그런 테마파크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시다씨를 만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요코하마에서

이런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건 개인적으로 큰 성과다.

자전거 여행때는 멈춰서기도 어려운 대도시여서 그냥 통과해 버렸는데, 그렇기에 더욱 이번 방문의 가치가 높다.

 

천천히 둘러보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보니 맨 처음 출발지였던 구멍가게 앞으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나 말고는 아무도 저 앞의 문을 들락날락 하는 사람이 없는걸 보니

혼자서 길을 완전히 잘못 든 것 같지만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좋다.

 

이제는 일본 최고라고 불리는 이곳의 라멘중 하나를 골라서 맛있게 음미해야 할 시간인데

편안하게 추억을 씹어먹으며 걸어다니던 이제까지와 달리 이건 중요하기 그지없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