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걷지 않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부분이 보인다. 아마 이곳을 찾으려면 지도 없어도 행렬만 따라가면 될 듯.

오랜만에 보는 일본의 '옛 마을거리' 모습이다. 교토에 가봤다면 비슷한 건물이나 짧은 마을거리는 볼 수 있었겠지만

규모와 완성도면에선 이 정도 거리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곳은 국가 중요 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니까.

 

옛날 일본의 마을이 전부 이런 모습은 아니고, 원래 이런 형태는 쇼군의 성이나 도시의 주요 시설 등에서 직선으로 뻗어나온

숙박 시설과 상가가 밀집한 지역의 모습이다. 바닥이 콘크리트로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약 300여년 전의 모습을 잘 간직한 편.

 

물론 부유한 도시야 이 정도로 잘 가꾸어졌지만 사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보수를 너부 잘해놔서 깔끔하기 그지없다.

나무에 옻칠을 열심히 해서 벌레를 방지하긴 했지만, 예전의 건물이 이 정도로 깔끔하진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아주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정말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해놨다간

어디 제대로 들어가 식사 한끼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고, 이곳 주민들의 거주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군데군데 슬쩍 현대식 증축이 이루어지고는 있다.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심히 하긴 했다.

 

아침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그래도 타카야마에서는 좀 도움이 될지도'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이 사진들의 결과물에 트러난다.

이런 옛 마을거리는, 원래부터 오래된 목재를 사용하는데다가 거기다 옻칠을 몇 번이고 더해서 상당히 시커먼 모습이다.

상점가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만큼 처마나 지붕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그림자도 매우 잘 생기고.

그러다보니 날씨 쨍한날에 가서 사진 찍으면, 카메라의 관용도를 훨씬 능가해 버리는 강한 명암대비가 생겨나 버린다.

 

푸른 하늘을 살리자면 건물이 전부 시커멓게 변하고, 건물의 색을 살리자면 하늘은 순백색이 되어버린다.

특히, 해의 방향이 일정한 쪽을 가리키고 있으면 한쪽 거리는 화사하게 잘 보이고 나머지 한쪽은 어둠속에 잠겨버리기도 하고.

이번 카메라의 관용도는 필름을 능가할 정도로 넓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JPG 파일만으로 암부와 명부를 살리기엔 벅차서

RAW 촬영후 좀 어색할 정도로 보정을 가해서 양쪽을 모두 살려봤다. 위의 두 장이 보정을 강하게 한 녀석과 적당히 한 녀석.

 

이런 식으로 보정하면 HDR 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본인은 HDR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다.

 

 

 

비교를 위해서 '진짜 옛 마을거리'의 비오던 날 사진을 올려본다. 화창한 날씨보다 안개낀 날씨가 더 어울리는 마을.

철도도 없이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나가노현 깊숙한 오지의 옛 마을거리 츠마고쥬쿠(妻籠宿)라는 곳이다.

 

옛날 수도였던 쿄토와 도쿄를 잇는 길은, 해안선을 따르는 토카이도(東海道)와 중앙 산맥의 골짜기를 따라서 나 있는 나카센도(中仙道)가 있었는데

나카센도는 현재 자동차로 지나가기에도 굉장히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협곡 사이에 난 길이었기에

그 긴 거리를 가는 동안 중간중간 산골 마을에 역참과 같은 장소를 지어서, 숙박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형성이 되었다.

나가노현의 이런 마을거리는 바로 그런 중간경유지의 역할을 했던 장소.

 

이런 곳을 방문해 보면, 옛날엔 대체 어떻게 이런 산길을 지나서 쿄토와 도쿄를 왕복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단순한 여행 목적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상인들이나 영주의 명을 받들어 출발하는 고관직들이 십수 명의 하인들과 함께 지나다녔는데

내가 신세졌던 작은 마을에는 1년에 한 번씩 그 관료들의 출정식을 재현하는 축제를 열기도 한다.

무사계급이 걸어서 갔을리는 없고, 말을 타고 나카센도를 넘나들었는데, 짐을 매고 따라가는 하인들의 수고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카센도의 길은 그 절경만큼이나 험하기로 유명했다.

 

이곳과 그 앞의 역참마을 마고메쥬쿠(馬籠宿)간의 거리는 8km 정도인데, 아직까지 그 두곳을 걸어서 이동해 볼수 있다.

등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한 때를 보낼수 있을만한 절경중의 절경이고, 실제로 나카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통한다.

마고메쥬쿠라는 단어는, 말조차 통과할 수 없어서 그곳 역참에다가 놔두고 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지만.

 

햇살 쨍쨍한 타카야마의 거리가 내 마음을 소문만큼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를, 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으려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타카야마의 거리로 시선을 넘긴다.

이곳은 역참마을이 아니라 성 주변으로 세워진 상가거리였고, 특히 양조장이 유명한 곳이었다.

 

타카야마가 비록 산 속의 오지이긴 해도, 사실상 면적만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게 깜짝 포인트인데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산이 포함되는 이곳 타카야마시의 면적은 서울의 3배가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이 산이고 인구는 10만명도 안된다는 점 역시 재미있다.

 

천해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서, 자연환경 역시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는 요즘엔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손길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거리의 풍경인데, 이게 이 사람들에게는 수백년간 이어온 생활의 일부분이라

손님맞이와 접대에 있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게 장점이라고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이 물이 풍부하고 깨끗한 곳이라 거리 사이엔 항상 물이 흐른다.

거리쪽이 젖어있는게 보이는데, 이건 더운 날씨탓에 가게 주인들이 틈 날 때마다 바가지로 이곳 물을 퍼서 거리를 식히기 때문.

 

그러고보니 일본을 왔다갔다 하는게 워낙 익숙해져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내게 큰 인상을 주었던 것이, 이렇게 마을 안을 흐르는 깨끗한 수로의 풍경이었다는게 생각난다.

지금은 충분히 더러워져 버린 경북 보현산 자락의 작은 마을은 아버지의 고향인데

80년대 중후반 까지만 해도 그곳 산기슭에서 내려오는 개울가에서는, 바위만 들쳐도 가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한 시간 정도만 힘좀 써도 그날 저녁엔 짭쪼름한 민물가재찜을 한솥 가득 뜯어먹을 수 있었다.

 

같은 시간이 흘렀지만 왜 보현산 자락의 개울가는 악취나는 똥물로 바뀌었고, 이곳 타카야마는 여전히 맑고 깨끗한 것인가.

이곳 타카야마가 도시 규모도 월등히 크고, 인구도 많다. 보현산 자락은 예전부터 손꼽히는 청정지역이었다.

 

철들기 전부터 시커먼 도시 먼지에 뒤덮혀 살았던 나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을 한국에서는 죄다 잃어버리고

일본의 산골 마을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자연 경관이나 사람들의 친절함이나 모두 다 말이다.

그래서 일본을 그리워하며 찾아가곤 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정신의 뿌리에 괴리감을 느끼고 씁쓸한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도쿄같은 대도시에도 남아있으니, 이런 곳에 인력거꾼이 있다고 이상할 거 하나도 없지만

이번에는 타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두 가지 의문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첫째로, 이곳 옛 마을 거리는 그렇게 길이가 길지 않다. 느긋하게 걸어서도 5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간다.

거기를 인력거에 타고 움직이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인력거꾼은 이곳 토박이라서 아주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니까 좋긴 하지만.

둘째로, 아무리 돈을 지불한다지만 36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사람이 끄는 인력거에 탄다는 것은

미안해서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임에 틀림없는데... 두 명이서 타는 관광객들은 과연 편안하게 앉아는 있을까 싶다.

 

쉬고있는 인력거꾼을 보면 정말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 60즈음 되어보이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50대 초반의 아주머니 인력거꾼도 있다.

얼핏얼핏 지나가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물 사이사이에 붙여있는 문양에 대한 설명까지 아주 세세하게 잘 설명을 하고 계신다.

이런 더위에 긴 거리를 달리기도 좀 그렇고, 이곳의 인력거란 재미있는 탈것이 아니라 실력좋은 가이드 역할이 주가 되는 듯 하다.

 

흥미가 동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확실히 비싼 편이고, 본인의 덩치를 생각하면 미안해서 도저히 앉아있을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아파트에서도 여건만 된다면 이렇게 식물 블라인드를 만들고 싶다.

전통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2008년 경부터 일본에서는 도시의 주택이나 빌라같은 곳에서도 이런 식물 블라인드가 유행했다.

자연과 가까워진다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었고, 실제로 실내온도가 꽤나 내려가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고풍스러운 거리의 덩쿨은, 한낮의 더위 아래에서도 뿌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도시에서 자란 본인이 이런 모습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되려 도시에서 태어나서 좋은 점도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길지 않은 거리지만 여관, 식당 외에도 향토박물관 고미술관 등의 볼거리 역시 곳곳에 숨어있다.

물론 입장료도 나가고 대부분이 철저하게 사진촬영 금지라서 나에게는 조금 멀게 느껴진다.

 

시간도 남고 날씨도 덥고 돈도 널널한 현 상황이라면 찻집에라도 들어가 여유를 만끽하는게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이겠지만

벌써부터 관광객이 상당히 많이 몰리고, 몇몇 가게 앞에서는 대기열까지 만들어진 상황이라서

고질적인 대인기피증이 또 발을 잡아끈다. 옛 정취 풍기는 찻집에서 사람에 치여가며 차를 즐기는 본인의 모습은 상상이 안된다.

 

 

 

30년동안 봐 왔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한자로 보이지가 않는 녀석이다.

한국어 발음도 한동안 기억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고, 일본 가서도 이거 발음 어떻게 하는가 싶어서 고심하던 글자.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반을 차지하는 이곳 타카야마인데, 아무래도 저 한자가 가운데 손가락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름이 재미있어서 한번 들어가볼까 싶었는데, 사진촬영 금지라고 딱 붙여와서 흥미가 식는다.

설사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해도, 기념품점에 저런게 붙어있으면 그냥 애정이 사라지는 기분.

어차피 기념품 살 생각도 전혀 없기 때문에, 재미있는 간판만 한 장 찍고 길을 나선다. 설마 간판은 찍어도 되겠지.

 

혹시나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데코보코'라고 읽는다.

 

 

 

나고야에서 유명한 먹거리라면 지역 토종닭인 코친이 있다고 예전에 적은적이 있는데

이곳 히다 고원 지역에서는 소가 유명하다. 히다 고원의 기후와 맑은 물이 방목에 적합하다고.

일본 3대 소고기라고 하면 보통 코베(神戸), 마츠자카(松坂), 히다(飛騨) 소고기를 꼽는다.

 

이곳의 특산품인 히다규(牛)는 한국의 한우와 비슷하게 마블링이 예술이며, 특히 지방층이 사슴의 모습처럼 새겨져 있는 녀석을 최고로 친다.

스테이크와는 안 맞다는 마블링 소의 편견을 깨고, 절묘하게 숙성된 두꺼운 고기를 세심한 타이밍으로 구워 만드는 히다규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소고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곳 히다 고원은 물이 깨끗하기로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곳이라

당연히 양조장도 발달해 있다. 좋은 술은 좋은 물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산속 마을이다보니 여전히 전통주쪽에 강세를 보이는데, 위의 거대한 덩어리가 양조장임을 표시하는 간판이 된다.

 

스기타마(杉玉)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말 그대로 삼나무 잎을 뭉쳐서 만드는데

올해의 술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처음엔 삼나무의 푸른색을 띄지만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저렇게 색이 바랜다.

당연히 술의 숙성시간도 예측할 수 있기에, 양조업자들에게는 희망과 기쁨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곳 거리에도 300년이 넘은 양조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무료 시음이 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술맛을 잘 모르니 패스.

이름만은 들어본 '귀신죽이기'(鬼殺し)라는 술도 있다. 귀신도 죽일만큼 독하고 매운 술이라고 한다.

맥주만으로도 충분한 내가 그런거 시음한다고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홀로 여행이란게 여러가지로 홀가분한 점이 있지만, 이런 점에서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조금 취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온다면, 저런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고 마셔보는 사람 옆에서 대리체험도 느껴볼 수 있을테니까.

 

 

 

기념품점, 음식점, 찻집, 여관 등으로 가득한 거리라서

자꾸 어디 한 군데 정도는 들어가서 구경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 비슷한 감정도 들지만

미관을 해치지 않는 소박한 장식들이 워낙 잘 배열되어 있어, 그것만 구경해도 눈이 즐거울 정도다.

 

대도시 한가운데니 비교하기에는 급이 맞지 않지만, 인사동의 미관이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유명해져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이런 거리의 분위기가 그저 부러워질 따름이다.

 

 

 

옛날 거리를 빠져나오니 주인 잃은 인력거가 덩그러니 구석에 놓여있다.

힘든 가이드를 마치고 잠깐 쉬러 간 걸까. 뒤에 걸린 모자가 그 고단함과 함께 휴식의 감미로움을 동시에 상기시켜주는 듯 하다.

 

애초에 이 거리는 저런 인력거가 등장하기도 전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묘하게 어색하긴 하다.

인력거가 흥행했던 건 100여년 전 메이지 시대였는데, 이곳의 풍경은 넉넉잡아 300여년 전의 모습이기 때문에.

 

정말 느긋하게 걸어도 10분이면 통과할만한 거리라서 약간 허탈한 느낌도 든다.

상기했던 것처럼 맑고 쨍한 날씨에 어울리는 분위기도 아니긴 하고.

그래서 안개낀 날이나 눈이 쌓인 겨울에 더욱 인기가 많아지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런 풍경을 즐기면서도 배가 덜 부른 불평이나 하는 자신을 살짝 힐난하면서, 방금 지나왔던 옛 거리의 뒷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상하좌우 전부다, 그것도 내부까지 수백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사실 앞서 지나온 옛 거리도 뒷부분은 평범한 근대식 주택의 모양을 하고 있다.

 

되려 타카야마 정도의 도시에서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할까.

정말 산골짜기에 위치한 츠마고쥬쿠 같은 역참마을은 겉과 속 할것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지만

타카야마에서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바로 옆의 현대식 마을과 불협화음을 이루는게 아닐까 싶기 때문에.

 

 

 

일부러 가꾸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잘 큰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풍경.

물이 깨끗하지 않은 곳 주변의 나무나 잡초들은, 자연의 일부이긴 하지만 결코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과 맞닿아 있는 자연의 건강 척도는 자정 작용의 범위를 넘어서는가 마는가가 중요한 경계선이 된다.

관리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고 썩어버리는 물. 그걸 자연이라고 개천이라고 할 수 있나?

 

별로 동하지 않는 기분으로 여행을 왔어도, 이런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일단 보람은 충분히 느낀다.

이런 곳에서는 너무 많이 자란 수풀을 가을즈음에 확 잘라내 버리는데, 그것조차 기분좋게 머리 깎는 수준으로 느껴지니

당연히 누려왔고 앞으로도 누렸어야 할 이런 풍경은 이제 관광지와 같은 희소성을 지니게 된 것일까. 즐거운 일은 아니다.

 

 

 

타카야마에는 이런 옛 거리가 세 군데 존재한다. 전부 가까워서 둘러보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

지금은 돌아가면서 코쿠분지(国分寺)라는 사찰만 구경하고, 저녁노을이 멋들어질 무렵에 다시 거기를 걸어볼까 한다.

 

여행중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냥 밖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데

역시 쇼핑이나 구경에 관심있는 일행이 함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듯 하다.

본인은 엄니가 백화점서 옷 구경하는 것도 그리 지루해하지 않는 타입이라.

 

 

 

아담하고 조그만 가게도 많은 반면 100평은 가볍게 넘어보이는 큰 건물에, 기념품과 식당 등을 모두 차려놓은 가게도 있다.

 

관광객들이 보고 돌아가는 타카야마는 사실 마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쿄토같은 본토 사람들도 무지하게 많이 찾아서 좀 어지러운 곳보다, 외국인 응대가 뛰어난 이런 산골마을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들다보니

2007년 일본 최초로 미슐랭 여행 가이드 별 3개를 획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좀 많다 싶을 정도의 가게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미슐랭 가이드란게, 가보면 황홀해서 두 다리로 서있기도 힘든 임팩트를 주는 그런 척도가 아닌 터라

동양인이 너무 기대하고 갔다가는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유후인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주위에 온천 풍부하고 공기좋고 건물 깔끔하고 음식 맛있고 사람들 인심 좋은 곳이라

하루이틀 볼거리만 찾아다니며 관광을 즐겨서는 완전히 느끼지 못할 느긋함이라는게 존재하는 곳이다.

여행경비 생각에 자꾸만 초초해지는 마음도 이해가 되는데, 이런 곳에서는 구경이라는 행위보다 감상이라는 행위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카메라 전원도 끄고, 왔던길 주변을 한참 서성이면서 멍하니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흑백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전통 가옥 너머로 보이는, 파괴적일 정도로 쑥쑥 자라나는 초목들의 조합은

그 밀도만큼은 도시의 빌딩숲과 사이사이 달리는 전철이 가지는 빡빡함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단지 향기가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