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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1.14  과거로의 여행 - 마지막 만찬 10
  2. 2014.01.12  과거로의 여행 - 센트레아 스카이 덱 10
  3. 2014.01.09  과거로의 여행 - 센트레아 공항의 닌자들 10

 

 

한계에 달한 더위를 뒤로 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오니 천국이 따로 없다.

원전사고 전의 끝도없이 틀어대던 에어콘과는 전혀 다르지만, 밖에 워낙 덥다보니 이 정도만 해도 시원하다.

시간은 충분히 남았고 해서, 배는 고프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뭐라도 뱃속에 집어넣고 가 보려 한다.

 

자리가 널널하면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는것도 괜찮겠지만 이곳은 그리 넓은 가게가 없다.

지방의 민자공항이다보니 역시 한도없이 크게 확장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 듯.

 

공항 내부 가게들은 아무리 봐도 한국과 차이가 커 보이는 것이

팔고 있는 물건들의 종류가 기본적으로 좀 다른 듯한 느낌이 든다.

인천공항의 수많은 가게들은 대부분 면세의 이익을 즐기기 위한, 다시 말하면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파는 느낌인 반면

이런 공항의 가게는 남한테 선물하면 딱 좋을 만한, 그다지 비싸지 않으면서 맛있어 보이는 과자 세트같은게 많다.

 

 

 

긴 줄이 서 있길래 뭔가 싶어 가 봤는데, 원래는 광장이었을 중앙 홀에서 뭔가 행사중이다.

어린이 놀이터 같은 구조물과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은것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선 진짜 이유는 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컵라면 시식회 때문이다.

 

닛신의 고급 컵라면 제품군인 라오(ラ王)를 시식하도록 하고 있는데

내 입맛엔 컵누들(カップヌードル)이 더 맛있지만, 일본에서는 단연 최고의 컵라면으로 인기가 높은 녀석이다.

라오 라멘은 1990년대 출시된 후 나름 인기가 있다가 점차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잠시동안 제품 단종을 한 후, 디자인과 내용물을 완전히 일신해서 2010년 다시 출시했는데

당시 일본에 있던 본인은 굉장히 저돌적인 광고로 승부하는 녀석이 참 인상깊었다.

 

처음엔 광고 보고 과연 라멘의 왕이라는 칭호를 마음대로 써도 되는가 싶었는데

돼지 사골로 국물을 낸 돈코츠 라멘의 경우, 합성식품이 아닌 진짜로 말린 돼지고기 챠슈와 건조 숙주나물 등

컵라면으로서는 최고의 격식을 차린 호화스러운 내용물을 보고 나름 납득은 했다.

 

가격도 한국돈으로 3600원 정도로, 일본 컵라면 시장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가지만

인스턴트 라멘의 한계에 달하는 갖가지 제조법을 배합한 녀석이라 다들 어느 정도는 납득 하는듯.

하지만 역시 개인적으로는 컵누들이 가장 맛있게 느껴진다.

 

이 더운날 저거 시식 한번 해 보려고 줄 서고 싶지는 않아서 패스.

하지만 아이들 놀이터와 함께 전시해 놓고, 간이 식탁에서 아이들과 함께 라멘 먹도록 한 발상은 꽤나 훌륭하다.

공항 라운지에서 이런 이벤트가 펼쳐지는 것도 상당히 인상깊다. 공항은 아이들에겐 별로 재미없는 곳일텐데, 발상이 좋다.

 

 

 

한국도 이제 인천공항이라는 걸출한 녀석이 생기는 덕에 감흥이 조금 덜하지만

센트레아는 확실히 넓지 않은 공간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깔끔함으로는 오히려 새로 개장한 하네다 공항보다도 더 느낌이 좋은데

출국장과 입국장을 층별로 분류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된 공간으로 띄워놓음으로서

출국장의 즐길거리에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이 든다. 입국장은 뭐, 거기서 즐길 사람 별로 없을테니 패스하고.

 

 

 

일본의 상당수 공항은 에도시대 일본의 상가 거리를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좁에 만들어 진 골목길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 보기엔 뭔 구멍가게 골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저 사람들의 전통이고, 국제적 허브인 공항에서까지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좋은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제일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군데군데 한국의 문화를 알리려는 센터나 전통 공예점 등이 입점해 있지만

공항의 분위기 자체만큼은 넓직한 서양식 인테리어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외국 관광객이라면 사람들 행렬에 좀 귀찮아지긴 해도 이런 좁은 골목길 분위기에서 이국적인 감성을 느낄 것이다.

 

 

 

에도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는 워낙 일본의 정체성이 흔들리던 시대라 그런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통 목조건물과 콘크티르 양옥 모양의 가게가 마주한 느낌이 재미있다.

실제로 격변하는 메이지 시대엔 저런 골목이 흔하게 보이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나름 자신들의 스피릿(?)은 보존했다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 서양 주택과 혼혈의 산물인 흰색 가옥들은 풍요로웠던 메이지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

 

다들 일정 레벨 이상은 맛이 있어 보여서 어디 들어갈까 꽤나 한참동안 고민한다.

결론은 줄 서 있지 않은 곳에 들어가기로. 역시 줄서서 기다려 밥 먹는건 본인 취향이 아니다.

 

 

 

센트레아는 보기보다 큰 공항이 아니라서, 사실 상점가가 그리 큰 편도 아니다.

하지만 동선을 잘 활용해서 구역마다 느낌을 전혀 다르게 표현해 놓은 점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시끌벅적한 시장길에서부터 새하얀 근대 서양식 건물 거리, 그리고 이렇게 저녁무렵의 술집 골목길 같은 느낌을 살리는 곳 까지.

 

이미지와 디자인의 힘을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잘 살린 상점가라는 느낌이다.

공항에서 이런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출국 전 마지막 한 방울의 외화까지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간편히 한끼 때우기엔 역시 라멘이 가장 취향에 맞지만, 왠지 이번엔 변화를 좀 주고 싶었다.

라멘을 제외하고 적당히 만족감 느끼게 다양한 녀석을 맛보고 싶어서, 뭔가 굉장한 바리에이션 식품 샘플이 놓여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전망대 쪽에 위치해서 바깥구경 하며 밥 먹기 좋은 '카멜리아'라는 가게. 간이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전망대 쪽은 사람이 꽉 찼고, 나처럼 혼자 먹는 사람에게는 그런 자리 좀처럼 내 주지 않는 듯 하다.

아무래도 이 가게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장사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즉 터가 좋다.

 

메뉴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천하재패 삼매경(天下取り三昧) 이라는 종합선물세트.

1620엔이나 하는 고가 식사다. 일본에서 단품 식사를 이만한 가격에 먹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이 정도 먹어줘야 할 것 같아 큰맘먹고 시켜 본다.

막상 나온걸 보니 나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많이 배부를 것 같지도 않은 일반적인 양으로 보인다.

 

반찬 개념이 없는 일본이라, 한국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냥 다양한 요리 조금씩 먹어볼 수 있는 간이 뷔페라고 할까.

 

 

 

만듦새가 김밥천국같은 수준이었다면 분노했겠지만, 가격대가 생각보다 높을 뿐 음식은 꽤 잘 만들어 나온다.

나고야의 대표 먹거리였지만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키시멘도 여기서 접해볼 수 있었다.

우동과는 달리 넓적한 면이 특징이 키시멘은 한국의 칼국수면을 좀 더 확대한 듯한 느낌을 준다.

넘기는 맛과 씹는 맛 두 가지를 잡기 위해 만들어졌다느 설이 있는데, 그냥 나고야 지역의 향토요리로 우동과 크게 다른점은 없다.

 

그 외에 은은한 녹차를 뿌려 먹는 장어덮밥이나 숙주나물과 돼지고기를 얹은 덮밥, 새우와 돈까스 등등

다양한 종류를 맛보기 위해서는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다. 각각의 양은 매우 적어도 다 먹고 나면 나름 든든한 느낌은 든다.

라멘 대신에 선택한 녀석 치고는 가격이 2배에 가까워서 약간 아쉬웠지만

먹고 불만이 생길 정도는 아니라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먹으라면 아마 먹지 않겠지만.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여전히 입이 허전해서 스타벅스에서 녹차 뭐시기를 주문한다.

바로 앞에서 주문한 세 남자 일행은 한국 여행객들이었는데, 주문은 어떻게 손짓발짓으로 넘어갔지만

스타벅스 직원이 주문하신 음료 나왔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걸 알아듣질 못해서 그냥 앉아서 수다떨고 있었다.

 

내가 도와줘야겠다고 일어서려는 순간, 일본인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에게 손짓으로 음료 나왔다고 알려주신다.

세 명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스타벅스 직원한테도 실실 웃으면서 농담 따먹기 비슷하게 잔돈가지고 장난을 친다.

저렇게 아무 곳에서나 스스럼없이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굉장한 능력으로 보인다.

난 밖에서는 뭘 해도 얼굴이 딱딱해져서 그런 농담 주고받기는 어려운데.

 

아무튼 가벼운 소동은 금새 진정되고, 난 시원하고 고소한 녹차 셰이크로 여유를 즐기기 시작한다.

중간에 그 세 명이 나한테 와서 영어로 '의자 좀 가져가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길래 고개 끄덕여 줬다.

영어로 물어봤으니 나를 한국인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고, 그럼 굳이 한국어로 대답해 줄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고보니 공항을 떠나기 직전에야 기억이 났는데, 지금 이곳에서 뭔가 내가 흥미가 동할 만한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도착 당시 그 포스터를 보면서 '돌아갈 때 시간나면 한번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탑승시간 지연으로 인해 충분히 시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스카이 덱과 상점가, 식당 등을 둘러본다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

 

원래 예정에 없던 녀석을 얼핏 기억에 놓은 것이니, 역시 그런 건 메모라도 해 놓지 않는 이상 쉽게 잊혀지는 법이다.

여행에 그 정도 아쉬움은 있어도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느 곳이든 굉장히 깔끔해 보였던 센트레아 공항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 장 담고 여권과 티켓을 꺼내든다.

비행기 창문 밖의 하늘 풍경도 여행 시작시 카메라에 담아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집에 돌아갈 때 까지 셔터를 누르는 일은 없다.

 

그렇게도 많이 가 봤지만, 한 번도 마음에 와 닿는 적이 없었던 나고야가 이번엔 조금 더 친숙해 진 느낌이다.

다른 여러 지역과 인연의 도움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한테 찍혔던 인상이 사라져서 나고야도 더 행복해 할 듯.

 

 

날씨가 좋은 건 얼마 남지 않은 여행시간 중에서도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지만

체감온도가 38도를 넘어가는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는 맑은 하늘도 원망스럽게 바뀔 수 밖에 없다.

 

스카이 덱 300m 전망대엔 어렵지 않게 신기루가 나타나고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많이 봤던, 지면이 수면처럼 반짝이고 있다.

도시 한복판 도로에서는 그 반사되는 모양이 좀 지저분해 보여서 감흥이 없지만

이곳처럼 깔끔한 바닥면에서 보이는 신기루는 잔잔한 호숫가처럼 깔끔한 모습이다.

 

 

 

구름은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렸기 때문에 밖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망대 가장 끝 쪽, 그러니까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에만

뭔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는 라인을 쭉 따라서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게 보통이지만.

 

이곳 센트레아는 인공섬 위에 만들어진 공항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을 방해할 만한 지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날씨 덥고 햇볕 좋기로 유명한 나고야 부근이기 때문에 이런 뻥 뚫린 공항이라면 당연 태양열 발전기가 큰 역할을 한다.

이곳의 천장 지역은 거의 전부 태양열 집광판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화창한 날씨라면 시간당 1000kw 정도는 생산한다고.

 

 

 

센트레아는 비행기가 이착륙하기에는 상당히 좋은 여건을 가진 인공섬이지만

어중간하게도 도쿄과 오카사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분주한 곳은 아니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국내선 이용률도 높아서 그럭저럭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현재는 적자 누적으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듯.

 

나고야 시민에게는 매우 중요한 항공 시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공항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서 찍었던 닌자 모형이나 토쿠시마 아와마츠리 등의 콜라보 홍보도 포함해, 공항 2층에 작은 상설 전시실까지 마련해 놓고

각종 박람회나 미술전을 개최하며 공항을 좀 더 사람들과 가까운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초대형 국제 공항처럼 필수적으로 외부 수요가 필요한 공항은 아니기도 하고, 토요타가 대주주라서 잘만 하면 유지가 가능할 듯.

내 입장에서도 나고야는 키소에 들르기 위한 가장 가까운 국제선 루트인데, 이 공항이 없어져 버리면 매우 곤란하다.

실제로 8월에 에어아시아의 초저가 항공을 타고 왕복 12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나고야를 다녀왔는데

바로 다음달인 2013년 9월부터 인천-나고야 선 항공편이 운항 중지되어 버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저가항공인데, 일본의 전일본공수(ANA)와 합작에 2012년 에어아시아 저팬을 설립하고

이곳 센트레아를 중심 공항으로 삼으며 국내선, 국제선 취항을 하고 있었다.

ANA 와의 합작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기업이 해체노선을 겪으며 인천에서 출항하던 도쿄, 나고야 행 저가항공도 모두 사라졌는데

에어아시아로 부산-도쿄를 세금포함 왕복 10만원에 다녀온 나로서는 매우 애석하기 그지없는 낭보였다.

 

하지만 ANA 는 에어아시아를 대체할 제휴 저가항공사를 다시 찾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저가항공 노선이 생기리라 본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천천히 걷고 걸어 어쨌든 전망대 끝부분까지 도착한다.

돌아가려면 다시 이 땡볕 거리만큼 이동해야 하지만 어쨌든 더위때문에 센트레아의 가장 큰 볼거리를 놓칠 수는 없다.

 

사실 항공기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이런 기계적인 전망대엔 관심도 없었다.

이번 여행엔 시라카와고와 키소 마을이라는 천혜의 풍경을 둘러봤기 때문에, 이 스카이 덱은 그냥 안주거리도 안 되는 심심풀이일 뿐.

 

사진 찍는 재미는 결과물이 아니라

조리개를 상당히 조여도 굉장한 셔터스피드를 보여주는 당시의 놀라운 쨍쨍함을 즐기는 곳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조리개 F7.1 ISO100 에서 노출보정을 0.3 스탑 올리고도 셔터스피드가 1/1000 초 가까이 나오는 환경이다.

정말 끝장나게 쨍한 하늘이 아니면 좀처럼 즐길 수 없는 셔터스피드.

이런 땡볕 아래서라면 아마추어라도 우사인 볼트를 찍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아무리 더워도 관광을 목적으로 쏘다니면서 이렇게 사진이나 찍고 있는 편이니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안전 장비 다 갖추고 저 지옥같은 항공기 반사열을 얻어맞아가며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노고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비행기 한 대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드리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일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직접 바라보게 되니 실감이 난다. 이런 모습을 눈에 새기고 진상 고객이 되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인천공항이 워낙 크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센트레아는 한적해 보이지만

사실은 4~5분에 한대씩 끊임없이 비행기가 이륙중이다.

 

공항이라는 곳의 특성상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한적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300mm 망원렌즈로도 끝까지 당겨낼 수는 없으니, 카메라 매니아들에게는 별로 쓸 곳이 없는 초망원 렌즈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서 좋을 듯.

 

 

 

비행기 이륙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서 있어서 접근이 힘들다.

대충 한적한 곳으로 가도 실제 거리상 별 차이는 없기 때문에, 항공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충분하다.

자세히 보니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착륙 시에 되도록 정면이나 정후면을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 하다.

 

나처럼 대강대강 자리 잡으면 이렇게 옆쪽 모습만 많이 찍히기 때문인 듯.

항공 사진은 가능한 한 정면에서 망원으로 크게 잡아내는게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다행히도 나는 비행기 사진 잘 뽑지 못했다고 낙담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냥 술렁술렁 찍을 뿐.

친환경 비행기라고 적혀있는 저 녀석은 재미있게도 프로펠러가 달린 녀석이다.

상당히 소형이라서 국내선 전용인 듯 한데, 시끄럽지만 않으면 재미있게 탈 수 있을 듯 하다.

 

 

 

비행기들은 상당히 빈번하게 이륙하고 있어서 사진을 담을 기회는 충분하지만

명당 자리는 전부 굉장한 카메라와 굉장한 렌즈를 끼워놓고 대기중인 사람들은 바글바글하다.

양심은 있는지 삼각대까지는 아니고, 모노포드를 장착한 카메라가 많다.

 

이렇게 더운 날에 옷깃 스치며 전망대 앞까지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멀뚱멀뚱 서서 먼 거리에서 대강 몇장 담아본다. 생전 처음 담아보는 이륙 모습인데, 그냥 담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굉장한 항공 매니아인 듯 한데, 오늘 사람이 적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사람 붐빌 때 저런 삼각대 사용하면 욕 먹기 십상이다.

붐비는 곳에서 삼각대 사용하는 진상들이 늘어나다 보니 찍사가 덩달아 욕을 먹는다.

 

뭘 그리 열심히 찍는지는 모르겠지만 렌즈와 카메라만 합해도 거진 천만원 근처까지 가는 장비.

사진이라는 취미는 글자수도 적고 단순하지만 그 안의 카테고리는 사람 성격별로 천차만별이다.

 

 

 

일본에서 DSLR 에 거대한 망원렌즈 낀 사람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곳.

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에 한참 사진을 찍다 보면,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아름다움도 느끼게 될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매니아가 되기에는 부족했는지, 이 떙볕 아래에서는 도무지 버틸 제간이 없어서 신속하게 후퇴한다.

 

70은 넘은 듯한 할아버지가 필름카메라에 거대 망원렌즈 끼워서 촬영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비행기 사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스카이 덱은 원래 이렇게 한가로운 곳이 아니다.

날씨가 이렇지만 않으면 빈 의자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가을 정도만 되어도, 굳이 건물 안에서 돌아다닐 필요 없이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쪽이 더 나으니까.

 

오늘은 당연하겠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아이들은 상당수가 모자 쓰고 돌아다니고 있으며, 부모들은 물 마시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고야에 도착한 두 번째 날, 토요타 박물관을 다녀온 날이었는데

당시 기온이 34도, 일본에서 가장 더운 지역은 39도 까지 올라갔다고 뉴스에서 대서특필했다.

하루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인만 십여 명에 이르던 더위였고, 지금 이 스카이 덱을 걸어다니고 있으니

정말로 사람이 더위때문에 픽 쓰러질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인공물을 돌아볼 때 그 미적 완성도에서 느껴지는 감동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기분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이런 배려의 마음씨를 직접 나타낸 모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금껏 사진들을 유심히 보면 중간중간 빨간색으로 된 기둥이 나오는데, 그것의 정체는 바로 이 뷰 포인트였던 것.

일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설명되어 있는 이 뷰 포인트는, 휠체어에 탄 사람이나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시야를 가리는 안전 보호대를 삭제해 놓은 곳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자리를 비켜줄 것은 부탁하고 있다.

 

예전 오사카의 수족관 카이유칸(海遊館)에도 이런 뷰 포인트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다.

스카이 덱의 진정한 볼거리중 하나가 아닐런지.

 

 

 

한국은 아직 나고야행 수요가 많이 않아서, 상대적으로 한국 항공사의 모습은 적은 편이다.

물론 대기중인 비행기도 있었지만 굳이 찍어야 할 만큼 애국심으로 충만한 사람도 아니고 해서.

 

멀리서 바라보니 비행기도 그냥 장난감처럼 귀엽게 배열되어 있는데

요즘엔 비행기도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이 되다 보니 원색 배열에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쪽이 많은듯 하다.

포켓몬 그림으로 도배를 해 놔서, 뜰 때마다 셔터소리가 우렁차게 변하는 비행기도 있고.

 

항공오덕들은 항공사의 심볼 마크 가지고도 어느 항공사 것이 더 세련되고 멋있는지 토론을 벌일 정도라는데

본인은 철저하게 저가항공만 이용하다 보니 항공사 마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두어 시간만 지나면 이 무서운 더위를 지나 지원한 비행기 속으로 들어가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숨을 곳 없는 폭염 속을 지나 다시 공항 청사로 돌아간다.

스카이 덱을 한번 둘러봤다는 의의 정도는 가질 수 있겠지만

재미있게 즐겼다고 하기엔 구멍난 풍선에서 솟아나는 듯한 이마자락의 땀방울이 너무 선명하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많이 본 아침 풍경은 이 나고야의 콘크리트 빌딩숲인듯 하다.

이런 곳에는 정이 가지 않지만, 여행이 만족스럽다 보니 그냥 하늘 색깔만으로라도 용서가 되는 느낌이다.

 

여행중엔 아침부터 조금이라도 더 관광하려고 부산을 떨지 않으니, 느긋하게 일어나서 조식 챙겨먹고 10시는 넘어야 출발하곤 하는데

그러고보니 여행 일정중 가장 바쁜 아침은 귀국날 아침이 아닌가 싶다.

호텔을 비워야 하니 짐도 전부 챙겨야 하고, 무료 조식까지 챙겨먹으려면 7시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10시 45분발 비행기에 늦지 않으려면 9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다행히도 나고야에서 센트레아 공항까지는 넉넉잡아 50분이면 충분한데다가

짐이 많아서 일반 전철을 탔다간 굉장히 민폐를 끼칠수도 있기 때문에

돈 몇천원 더 주고라도 특급 전철인 뮤 스카이를 타기로 한다. 그러면 35분이면 충분.

 

출근 시간대의 나고야 역은 정말 아비규환을 방불케 한다. 한국의 신도림 정도가 아니고서는 비교할 상대가 없는 헬게이트 그 자체다.

국철, 시영 지하철, 사철까지 합해서 총 6개의 전철회사가 각각의 노선을 가지고 있는 마경같은 곳으로

오랫동안 일본 중부지방의 교통 중심지 역할을 하다보니 구조도 워낙 낡아서 복잡하기 말할 수 없다.

 

특히, 공항으로 가는 뮤 스카이는 가장 수송량이 많으면서도 1941년 완공되어 좁고 낡은 메이테츠 노선을 이용해야 한다.

 

여행중 가장 긴장했던 시간이다.

출근시간대의 메이테츠 노선은 1분 30초마다 전철이 들어오는 살인적인 스케쥴을 자랑하기 때문에 자동 안내방송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를 자랑한다.

한국의 어떤 지하철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으로, 전철이 출발하면 거의 즉시 다음 전철이 역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안내방송은 직접 육성으로 이루어지며, 여러 명의 제복 직원들이 열심히 확성기로 소리를 지르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시간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반대편 도어가 열려 승객들이 하차한 후 승차쪽 도어가 열리는 순차적 구조를 도입했기 때문에

일본인이라도 정확한 설명 듣지 않으면 타야 할 승강장을 햇갈리거나 잘못된 시간의 열차를 탈 수가 있어서, 한국인이라면 매우 조심해야 하는 순간.

 

다행히도 뮤 스카이 만큼은 공항으로 향하는 사람만 탑승하는 특급 지정좌석 열차이기 때문에 탑승만 제대로 하면 내부는 쾌적하게 앉아 갈 수 있다.

베낭과 카메라 사이드백을 짊어진 것만으로도 라인에 서 있는게 미안해 질 정도의 혼잡함 속에서 뮤 스카이 내부로 이동하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9시 10분쯤 도착해서 무리없이 도착했다고 안심하고 수속 게이트로 이동하니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저가항공의 비애랄까, 10시 45분 출발 예정인 에어아시아 비행기가 1시 15분으로 출발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 상당히 짜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기분좋은 일이다.

나고야 도착 시 중부공항을 구경하지 않고 그냥 지나왔기 때문에, 관광할 수 있는 여유가 2시간 반이나 늘어난 것이니까.

 

앞서 말했듯이 중부 공항은 일본의 공항 중 유일하게 '센트레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만큼

관광 목적으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잘 정비된 공항이다. 오죽하면 공항 구경만을 목적으로 오는 관광객도 있을 만큼.

공항 내부에 외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온천까지 존재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본인은 아무래도 이 더운 여름날 대낮에 온천을 찾고 싶진 않다.

 

책을 많이 사느라 훨씬 늘어버린 베낭 무게때문에 추가금까지 내야 했지만, 그러고도 아직 식사 한 끼 즐길 정도의 자금은 남아있어서

사이드백만을 짊어진 홀가분한 몸으로 느긋하게 센트레아 구석구석을 탐미해 보기로 한다.

10시 45분 비행기였다면 참 아쉬운 하루였겠지만, 뜻하지 않은 지연으로 인해 관광 날짜가 하루 더 추가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규모가 그렇게 큰 공항은 아니지만 깔끔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것이 디자인의 힘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동안 다녀본 여러 공항 중,  비슷한 크기의 공항 중에선 꽤나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생각보다 훨씬 사람이 많아서 요즘 일본 경기가 많이 살아나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중부 센트레아 공항은 100% 민간 자본으로 설립된 녀석이다. 물론 설립 기업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토요타.

나고야가 아무리 큰 도시라도, 오사카와 도쿄에 각각 공항이 위치한 상태에서의 경쟁은 쉬운 일이 아니라

요즘 적자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라는데, 민간 공항치고 가격 폭리 없이 이 정도 시설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은 놀라울 따름이다.

 

민간 공항이라 살짝 직권 남용이라고 생각될 만한 일도 저질렀던 일화가 있다.

드래곤 볼로 유명한 토리야마 아키라가 원고를 나고야 공항을 통해 도쿄의 편집부로 보냈기 때문에

그가 항공우편 보내는 게 귀찮아 도쿄로 이사가는 것을 막기 위해

토리야마 씨 집에서 중부 공항까지 직선으로 쫙 뻗은 도로를 나고야 시와 중부 공항에서 건설해 준 만화같은 사실이다.

 

토리야마 아키라 씨는 아이치 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 드래곤 볼이 끝난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드래곤 볼로만 버는 돈이 연간 300억이 넘는다.

현재 만화가로서는 세계 1위의 재산가이며, 일본 10대 부자중 유일하게 대기업 회장이 아닌 사람.

그럼에도 아주 내성적이고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해 태어난 시골 집에서 60년간 한 번도 이사가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다.

 

시간이 상당히 많이 남았고, 바깥은 35도를 넘어가는 폭염이 지속되어 있어 천천히 공항 내부부터 돌아본다.

역시 사람이 많아서 초상권을 가능한 한 건드리지 않으려면 광각쪽에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카운터 위쪽에 재미있는 인형들이 서 있어서 망원으로 갈아끼운다. 저 녀석들은 초상권 걱정할 것 없으니까.

 

 

 

실제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닌자라는 이미지는 거의 순수한 현대의 창작물이지만

어쨌든 서양에서 닌자 하면 다들 이런 모습으로 기묘한 체술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인식이 되어버렸고

그게 돈이 되니까 별 무리없이 일본 내에서도 닌자의 정의가 술렁술렁 바뀌어 버린 듯 하다. 역시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

 

실제로 닌자는 암살, 잠입 등에 능한 신비의 고수 집단이 아니라 타 지역의 정보 수집을 주 목적으로 하는 밀정이었다.

신분을 숨기는 일에는 뛰어났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당시에 신분 숨기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대부분 잡상인 행세를 하며 성의 동향을 살피는 수준의 초급 스파이 활동만 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중부 센트레아 공항에 왜 이런 닌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하면

센트레아 공항에서 멀지 않은 미에(三重)현에 역사상 유일하게 실존한 것으로 확인된 닌자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나 드라마를 조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 저런 두건을 쓰고 수리검을 던지는 닌자의 원형은

모두 1950년에서 70년에 쓰여진 무협 소설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으며, 그 닌자들의 본거지가 이가(伊賀) 마을이다.

 

정사에 기록된 닌자 집단이다 보니 아직도 이가 시에는 닌자 박물관이 있어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서양쪽에게는 비록 100% 창작물이긴 해도 가장 먼저 전파된 일본의 문화 중 하나였기 때문에

센트레아에 들어오는 서양인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다.

 

 

 

인형이라도 의외로 자세는 잘 잡아놓았다. 자세히 보니 손 안에 수리검까지 들려 있다.

나 말고도 이 닌자들 찍는 사람이 매우 많아서 쪽팔리진 않았지만, 카메라 크기가 본인 것만큼 거대한 녀석이 없다 보니

괜히 모자라는 실력을 덩치빨로 때우고 있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생긴다.

 

뻔히 거짓이란 거 다 알면서도 이렇게 관광 상품으로서 철저하게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 모습이 현대 문화의 본질에 가깝다고 할까.

 

 

 

 

사실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이 없는 매우 성공한 문화 중 하나인데

일본에 악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국인으로서는 그냥 배알이 꼴리고 거짓말로 치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닌자는 1950년대 소설인 '코우가 인법첩'(甲賀忍法帖)과 '올빼미의 성'(梟の城)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 작품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60년대부터 쿠로사와 아키라를 필두로 한 일본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시기와 맞물려

영화화 된 닌자 작품들이 서양의 매니아들에게 동양 문화의 환상을 심어주는 수순을 거쳐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물이라고 주장한다면야 왜곡에 가까운 만행이지만,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흥미진진한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니

자국 문화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성공적인 소재가 또 있을까. 닌자는 문화 전파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게 이상하게 서양쪽 코드에 맞았는지, 일본에서는 그냥 그런 메이저 작품인 '나루토'라는 만화가 미국, 유럽에서는 포켓몬 다음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나가는 외국 사람 붙잡고 두유노 김치 두유노 코리아 따위의 천박한 질문이나 쏟아내는 건, 한국 문화가 패배자라고 자백하는거나 마찬가지다.

외국사람이 한국 사람을 붙잡고 먼저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진짜 자랑할 만한 문화니까.

미국 청소년들은 그 나루토라는 만화를 좀 더 생생하게 즐기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에 비행기 타고 놀러온다.

 

 

 

1층엔 닌자밖에 없어서 2층으로 올라가 본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다양한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인천공항처럼 거대한 부지를 느긋하게 이용한다기 보다는, 일본 현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물샐 틈 없이 빡빡하게 늘어선 모습이

국민성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되려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토쿠시마 아와오도리(阿波踊り)를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들을 빌려 선전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저 캐릭터들이 토쿠시마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도 보이는데, 요즘 영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접하질 못해서.

 

토쿠시마 아와오도리는 흥겨움 만큼은 일본 제일이라 할 만큼 굉장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축제인데

춤을 추며 진행하는 수천 명의 행렬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모습을 직접 보면 몸이 떨릴 정도로 굉장한 박력을 자랑한다.

 

당시가 8월 6일이었으니, 직장 복귀만 아니면 좀 더 개기다가 저 축제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역시 삶에 치여 살다보니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삶에 치여 산다고 하면 콧방귀 낄 사람이 한 둘이 아니지만.

 

2013년 8월 여행기를 2014년 1월까지도 계속 연재하고 있는 지금에서야 찾아낼 수 있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오른쪽 벽면에 붙은 조그마한 포스터, 2013년 12월 25일에 한국에서 개봉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신기하게도 일본보다도 먼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개봉한 이례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인데

8월에 이미 선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사진 정리하면서야 깨닫는다.

 

전혀 융합될 것 같지 않은 문화 장르끼리의 교배는 일본 문화의 특성이기도 한데

특정 카테고리 안에서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화 되어버린 현대 문화산업의 특성상

이런 콜라보레이션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런 연계산업이 폭삭 죽어버린 허약한 구조라서 항상 걱정이다.

 

일본에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한편 발표하면, 음악 CD, 캐릭터 상품, DVD 등의 2차 매체, 소설, 지역상품과의 연계 등등

문어발을 펼치며 어떻게든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화의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인데

한국은 자기 나라 영화조차 2차 매체로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극장 관객수는 세계 최상위를 자랑하지만 2차 매체 시장은 아프리카 수준밖에 이르지 못하는 기형의 극치를 달리고 있으니까.

 

 

 

센트레아 2층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나름 구역을 잘 나눠서

팔고 있는 요리에 따라 외부 인테리어도 다름 통일성을 유지하려 힘쓴 느낌이 든다.

살짝 조잡한 것이 도쿄 비너스 포트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일단 이곳은 공항의 특성상 넓고 시원한 지붕 덕에 숨이 트인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역시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 정도는 즐기고 싶은데

비행기 지연으로 인해 시간이 남아도는 고로, 식사는 재쳐두고 건물 구경이나 좀 한 뒤에

센트레아의 가장 큰 관광 스팟인 스카이 덱을 최대한 구경하고 나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바깥이 구름 한 점 없는 폭염 속이라, 스카이 덱을 구경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릴 것 같으니까.

 

 

 

일본에서 이 공항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긴 300m 짜리 야외 전망대 스카이 덱.

 

눈도 뜨지 못하고, 카메라 뷰파인더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살인적인 햇빛 속에 드러난 스카이 덱은

항공사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치기 어려운 시원한 전망대였다. 단지 너무나도 더웠다는 점이 아쉬웠을 뿐.

 

이 정도면 화창함을 넘어서 사람 죽일수도 있을 듯한 더위다. 덕분에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덜 붐벼서 구경하기는 쉬웠지만, 스카이 덱에서의 30분은 평소 3~4시간의 체력을 소모시키기에 충분하다.

 

  

 

 

공항이 원래 큰 건물이다 보니 300m 라고 해도 수치상으론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직접 나와보니 이 정도로 길쭉하게 늘어선 전망대는 본 적이 없다. 정말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민자 공항이다 보니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 곳만의 특별함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일까.

 

날씨가 덥지만 않다면 수많은 항공기들의 모습과 푸른 하늘, 옆에 펼쳐진 바다 모습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인데

숄더백을 어꺠에 짊어지며 걸어가는 순간 드는 생각은, 언제 저기까지 왕복해 돌아오나 하는 한탄이다.

인구 밀도가 낮아서인지 문득 서 있으면 하늘 아래 나 혼자인 듯한 고립감마저 느껴진다.

땀은 닦아내는 것도 포기하고 그냥 카메라를 든 손으로 흐르지 않도록만 고쳐 잡는 것으로 타협한다.

 

어쨌든 센트레아를 둘러 볼 시간이 생긴 것만으로 고마워 할 일이니

흥미 유무를 제외하고서라도 비행기 실루엣이라도 건져서 가야겠다고 결심하며

시리디 시린 센트레아 공항 지붕을 걸어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