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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3.29  엄니와 함께 - 코야산 단상가람 6
  2. 2014.01.28  엄니와 함께 - 오사카 14
  3. 2012.06.12  킨키 방황 - 우메다에서 마지막 화풀이 17
  4. 2012.06.10  킨키 방황 - Give Up 14
  5. 2012.05.23  킨키 방황 - 거품같은 축제의 마무리 10
  6. 2012.05.23  킨키 방황 - 류큐왕국의 눈물 18

 

여름에 왔을 때는 그래도 시야에 사람 한둘 정도는 보이곤 했는데

겨울 코야산은 시즌이 아닌지 자동차 말고는 사람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홀로 여행이었다면 매우 훈훈한 기분으로 경치를 즐겼겠지만

엄니와 함께 오니 '내가 지금 가이드를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설상가상으로 다이몬으로 향하는 버스도 승객은 엄니와 저 둘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다이몬입니다. 여전히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네요.

이 녀석은 주위에 덩치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으면 사진으로 크기 가늠하기가 참 힘듭니다.

 

사진엔 나오지 않았지만 나이 지긋한 노인 몇분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동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엄니한테 덜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흐리고 눈발 휘날리던 날씨는 잠깐동안이지만 매우 화창해지곤 합니다.

그래도 날씨는 추위서 엄니는 오래 구경하기보다는 빨리빨리 구경하고 다음 코스로 넘어가길 바라시네요.

 

엄니는 단체 관광 여행을 많이 다녀오셨기 때문에, 그 타이밍과 비교하면 확실히 제가 좀 느린 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란 건 역시 남과 리듬을 조율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죠.

 

 

 

걸어서 험한 산길을 넘고 넘어 비로소 도착한 이 코야산의 정문 앞에 도착했던 순례자들의 기분이 어땠을런지.

 

사찰과 문화유산의 도시인 나라와 비교해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별로 모자랄 것 없는 이곳이라도

이렇게 한산한 모습인 것은 역시 접근성의 차이에서 기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가 완벽히 관광지화 되었다고 한다면

이곳은 진언종의 총본산 답게 불교 문화에 대한 좀 더 깊은 성찰을 위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편입니다.

 

이곳 산길 중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키이(紀伊) 산지의 침례도라는 길이 있는데

제 대학원 교수님께서 작년에 그 침례도 투어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쪽 침례도에서는 가이드분이 특정 구간마다 시를 읊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예절이 존재하는데

그 교수님께서 고문학 전공을 하셔서 동료 교수분들께 그 시를 해석해 주셨다고 합니다.

 

 

 

키이 산지의 침례도는 짐을 수십 Kg씩 실은 여행용 자전거로는 달리기가 너무나 힘든 곳이라

제가 자전거 여행할 때는 그 밑의 일반 도로 갈림길 휴게소 앞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묵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밤에 트럭 기사분이 잠깐 주차를 해서 이야기 좀 나누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젊은 기사분은 가끔씩 여유있을 때 일부러 침레도 쪽을 트럭으로 달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다이몬 구경을 마친 후 단상가람쪽을 향해 걸어갑니다.

코야산처럼 천혜의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은 여름과 겨울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재미있더군요.

 

그것도 저처럼 여름의 코야산을 와 본 사람에게나 적용될 말이지

엄니께서는 인적도 없는 겨울 시골길을 처음 걸어보셨으니 어떤 기분이셨을지.

 

그래도 참 조용하고 아늑한 마을이라고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곳을 좋아는 하지만 그래도 도시의 편의성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도시 토박이 엄니께서는 이런 마을이 나름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죠.

 

 

 

단상가람은 눈이 거의 녹지 않았습니다.

여름의 찬란함을 더해주던 침염수가, 겨울엔 오히려 햇빛을 막아주는 바람에 눈이 그대로 쌓여 있네요.

 

2013년 1월의 대구는 눈 구경도 하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나름 이 때는 눈 구경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 달 후에 전 아예 눈 속에 파묻히는 일을 경험하게 되지만.

 

 

 

엄니는 개한테도 목도리 걸어놨네 하면서 재밌어 하십니다.

구경 포인트가 특이한 건 유전인가 싶었네요.

 

여름과 비교해서 모든 모습이 확 바뀐 느낌이지만

인공물인 토이리만큼은 홀로 더욱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색채가 약해진 코야산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실제 토리이는 이런 색깔이 아니지만 왠지 대비를 좀 더 주고 싶어서 손을 봤습니다.

사람이 보글보글하는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산 속의 고요한 사찰이라서 그런지

이 조그만 토리이가 가지는 존재감이란게 더욱 크게 다가오더군요.

 

이곳도 내년 즈음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질거라 생각하니, 문화재 덩어리인 이곳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을지 살짝 걱정도 됩니다.

 

 

 

대체 뭣 때문에 이런 모양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 거목의 뿌리 밑부분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심히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몇 그루의 나무가 얽혀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사찰 내부에 위치한 신사입니다.

 

이 녀석은 지난 여름 여행기 때 글로 설명은 했지만 담아온 사진은 한 장도 없었던 묘한 사정을 갖고 있는데

이번 여행기에서는 사진만 이렇게 담아오고, 설명은 예전 여행기로 떠넘겨 버리기로 합니다.

여름의 단상가람을 보고 싶으시면 제 블로그 검색해 보시길.

 

 

 

여름엔 자연에 둘러싸여 정진하는 수도승의 모습이 우러러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 겨울에 이곳에서 뼛속까지 시려올 걸 생각하면, 역시 수행이 쉬운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겨울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엄니도 체온 유지를 위해서인지 저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여기저기 돌고 다니십니다.

 

 

 

홀로 여행과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제가 이렇게 사진 몇 장 찍지 않고 후다닥 돌아다닌 적은 처음인 것 같네요.

여행가서 증명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고

그런 사람이라면 제가 카메라 들 때마다 찍어달라고 파인더 너머에서 튀어나오거나 그럴 텐데.

 

엄니께서는 '니 사진엔 관심 없다'는 식으로 마구 휘젓고 다니시니, 나중에 보여 드릴 사진이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사람 모습이 시야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이 풍경이 마음에 들긴 합니다.

전 여행 사진 찍을때도 가능하면 사람이 파인더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라서.

물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그래도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배려적인 면이 강하죠.

 

색채는 차분해지고 새들의 울음소리도 멈춘 겨울 단상가람이라도

사찰의 모습만큼은 변함없이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상가람의 중심 건물은 역시 이 근본대탑입니다만, 여전히 그렇게 인상적인 느낌을 주진 않습니다.

이제 다리가 아픈것도 아니고 해서 들어가 볼 수는 있지만 굳이 안 들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니께서도 그냥 밖에서 구경하지 들어갈 것 까지는 없다고 하십니다.

 

들어가면 나름 볼만한 것들이 있다는 소문인데, 사진 촬영 금지라서 더더욱 흥미가 동하지 않는 점도 있고.

 

 

 

그래도 근본대탑이고 하니 엄니 기념사진 한 장 찍어드립니다.

그런데 찍고나니 이게 엄니 기념사진인지 근본대탑 기념사진인지 모르겠네요.

 

 

 

코야산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 부동당과 함께 근본대탑을 담아 봤습니다.

결코 바래지 않는 불변성을 상징하는 붉은 근본대탑과

나무로 만들어져 사라지기 쉬움에도 800년 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부동당의 대비가 묘한 기분을 들게 하더군요.

 

 

 

1197년에 세워진 부동당입니다. 다른 사찰들이 화재로 소실되는 와중에도 이 녀석만큼은 살아남았죠.

사실 단상가람 안에서 크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물이 아닌데, 오히려 그렇기에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합니다.

 

역시 인생은 짧고 굵게 사는가 길고 얇게 사는가의 문제인 것일까요. 이 녀석들은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마을 인구당 사찰 수가 일본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보니

이게 절인지 민가인지 알 수 없는 곳도 꽤 있더군요.

 

겉으로 보기엔 문패도 달려있는 일반 민가로 보이는데, 언덕 위의 종루와 연결되어 있는 게 신기합니다.

종루로 연결된 길에는 왜 지붕까지 만들어 놓은 건지도 모르겠고.

 

 

 

오늘 하루만이라면 그렇게까지 무리한 일정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쌓인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 건지 돌아가는 곳에 도착하자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기분이 듭니다.

 

오늘은 7시 전에 숙소로 돌아갈 수 있을 듯 하니, 푹 쉬어야겠네요.

내일부터는 숙소를 옮겨서 나라에서 1박을 할 예정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올라갈 때도 그랬지만 낭떠러지같은 모습을 보니 약간 섬뜩합니다.

이 무거운 전철을 지탱해주는 로프가 끊어지는 날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게 될테니까요.

 

 

 

코야산은 관광객을 위해 전철과 버스 시간이 철저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편리합니다만

그 편리함 때문에 지난 번 여행때부터 찍고 싶었던 풍경을 찍을 시간이 없어서 참 난감했죠.

 

이번에도 이미 대기중인 전철로 뛰어들어가는 도중에 간신히 한 장 남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코야산 산자락 밑의 풍경인데, 처음 봤을 때부터 매우 마음에 들던 모습이었습니다.

자전거로라면 아마 여기가 종점이겠죠. 세계문화유산 코야산 만큼이나 정겨운 모습의 오솔길이네요.

 

 

 

엄니나 저나 거의 녹초가 되어 꾸벅꾸벅 좁니다.

다행히도 코야산부터 오사카까지는 종점에서 종점이라 앉아가는 건 별 문제가 없었네요.

둘 다 성격이 예민해서 잠을 잘 못자는 편인데, 전철 안에서 고개가 홱 넘어갈 정도로 졸아 본 것도 오랜만입니다.

 

 

 

그래도 날씨가 많이 좋아지는 바람에 졸기 전에 한 장 담아봅니다.

전철 안이라 유리창 반사는 어쩔 수가 없는게 약간 아쉬웠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목적지와 목적지를 이동하는 이런 여행은 그 사이사이의 매력을 즐기기가 어려운 게 가장 아쉽더군요.

하지만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여행이란 건 평생을 걸쳐서도 몇 번 즐기기 어려운 녀석이니

이번엔 이런 식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5시 반쯤 오사카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돌아가서 푹 쉬어도 되지만

오사카를 떠나기 전에 식사는 맛있게 한번 즐겨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백화점 식당층에 올라가 뭘 먹을까 한번 둘러봅니다.

 

엄니께서 고기나 속에 부담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셔서 결국 일식집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저녁 세트라는 게 있어서 다양하게 나온다고 하니 그걸 주문하고, 그 외에 몇가지 추가해 보기로 합니다.

 

한국에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메뉴 밑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저 펜으로 꾹 누르면 자동 주문이 되는 재미있는 방식을 사용중이더군요.

 

 

 

초밥 전문점이 아니라 극찬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불만을 표시할 정도는 아니네요.

요건 제가 세트메뉴와 따로 주문한 초밥들입니다.

 

역시 오사카 중심가 백화점 식당가여서 그런지 가격대를 생각한다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피곤한데 여기서 더 움직여 맛집을 찾아다니고 할 생각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튀김요리도 기본에 충실합니다. 따뜻하고 아삭아삭하고 재료 신선하고.

간장이 아니라 소금에 살짝 찍어먹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곳의 저녁 식사시간이 다들 그렇긴 합니다만

먹고 즐기는 걸로 유명한 칸사이 지방이다 보니, 반쯤 개별실 같은 느낌의 방 안에 있어도

사방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오네요. 엄니도 한국과 별로 다를게 없네 하십니다.

 

이게 참 맛있는 부위라고 하는데, 살은 별로 없지만 확실히 식감이 좋았습니다.

 

 

 

무슨 생선 머리를 간장에 쪄낸 녀석인데, 달달한 간장소스와 궁합이 좋았습니다.

생선의 머리부분이 맛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임에도, 전 먹을 살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죠.

역시 일정 이상의 질만 보장된다는 전제하에서 저한테 중요한 건 질보다 양입니다.

 

 

 

숙소로 돌아와 목욕을 마치고 나니 엄니께서 침대에 비닐 시트를 깝니다.

숙소가 작아서 따로 차 마실 공간이 없으니, 침대에 비닐 시트로 차 마실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제가 여행할 때는 절대로 비싼 숙소를 선택하지 않다 보니 이런 것도 꽤 익숙합니다.

 

이런 조그마한 비지니스 호텔에 들어와서까지도 차만큼은 마셔야 겠다는 엄니의 의지가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행 가방에 이런 차 도구 세트를 가지고 여행을 나오신다는 거죠.

이게 일본 같은 가까운 지역 여행뿐 아니라, 미국 갈때도 항상 가지고 가십니다.

이게 만약 술이었다면 부부 불화의 엄청난 요인이 될 만한 상황이지만.

 

초라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지만 사실 이렇게 마시는 보이차라는 게 의외로 맛있습니다.

몸이 힘들수록 차는 더 맛있어 지는 법이죠. 이렇게 보면 술이나 차나 하는 일은 별로 다른게 없어 보이네요.

 

과자봉지는 이제껏 숙박하면서 사용하지 않은 일회용 칫솔 세트를 프론트에서 교환한 것입니다.

슈퍼 호텔은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 세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과자로 바꿔 주는데, 엄니와 저는 그런 거 다 챙겨 왔으니까 말이죠.

 

 

 

식사 후 백화점 지하에서 먹을거리를 좀 사 왔습니다.

역시 여행 중에는 비타민과 식이섬유 섭취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으니 일부러 먹기좋고 보관 편한 미니토마토를 사 왔죠.

 

일본에서는 이게 야채 취급을 받으니, 그네들 시각에서 본다면 차 마시면서 생야채를 씹어먹는 모습일 듯.

 

 

 

엄니께서는 차가 참 맛있다고 홀짝홀짝 드십니다.

여행와서 들뜬 기분때문에 맛있게 느껴진다는 말을 하기엔

엄니나 저나 여행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고, 차 맛도 10년 이상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지죠.

 

사실은 이 여행용 차 세트는 집에 있는 걸 주섬주섬 꾸린 게 아니고

상비용으로 항상 꾸러미 속에 준비되어 있는 녀석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속에 들어있는 보이차는 집의 차방에서 금방금방 소비되는 녀석과 달리 오랜 시간 숙성중이었던 것이죠.

 

차 색도 매우 맑아서 사진도 한 장 찍어봤습니다. 여행 와서 술 대신 차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물론 홀로 여행에서 이런 세트 가져올 정도로 제 짐사정이 그렇게 널널한 편은 아니지만.

내일은 나라로 출발해야 하니 9시쯤 되어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엄니도 매우 피곤해 하시니 잠은 깊게 주무시겠죠.

 

 

 

엄니가 퇴직하시고 좀 심심해 하셔서 저하고 가볍게 근처 오사카 정도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일본쪽으로 가면 가이드 필요없이 저하고 다닐 수 있어서 말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엄니는 2월 초에 부부모임 동창회에서 대만여행 간다는 사실을

제가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래서 좀 있다 또 나가십니다.

 

더더욱 아이러니하게도 저 역시 작년 10월부터 2월에 홋카이도 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

눈축제 구경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거기서 취직하신 대학원 졸업생분과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니나 저나 전혀 갈 필요가 없었던 여행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뭐, 자식하고 둘이서 해외여행 나가는 건 평생 처음이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불행히도 오래 직장을 비울 만한 여력이 없어서, 그냥 2월에 대만 함께 가시는 걸로 결정했네요.

 

대구에서 부산 김해공항으로 당일 버스타고 갈 예정이라 까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니가 커피를 너무 조금 드셔서, 이럴 줄 알았으면 음료수는 하나만 시켜도 될 뻔 했네요.

 

 

 

직장생활 당시 시간에 쫓기는 출퇴근을 워낙 많이 경험하신 엄니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가서 기다리는게 낫지 늦게 가서 허둥대기는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별로 볼 것 없는 조그만 김해공항에도 탑승 2시간 반이나 전에 도착해서 미리미리 체크인을 해 버렸네요.

 

김해공항은 정말 아담해서 눈이 번쩍번쩍하는 인천공항의 면세점 물건들 구경할 수는 없지만

청사 내부에 재미있는 쓰레기통이 있어서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줬습니다.

엄니는 한참동안 '왜 여행가방이 이렇게 여기저기 세워져 있지'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는군요.

 

 

 

오사카를 기점으로 하는 저가항공인 피치항공을 사용하는 여행입니다.

첫날은 저녁 7시가 넘어야 겨우 오사카 시내에 도착할 것 같지만, 저가항공이니 감내해야 할 듯.

그래도 난바역에서 도보로 이동가능한 숙소인데다 도톤보리라는 밤의 거리까지도 걸어서 갈 수 있으니

피곤한 여행 첫날 저녁은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엄니나 저나 여행 전날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우는 성격이라

고속버스 -> 비행기 -> 전철 등 하루 5시간 정도를 이동하는데만 소모하는 첫 날 여정은

항상 머리가 지끈거리는 힘든 날입니다만, 그것도 이제는 익숙해 질 만큼 많이도 나가다녔군요.

 

 

 

피치항공은 물조차도 사 먹어야 하는 곳이라 남은 시간동안 점심식사를 합니다.

오사카에서 뭐 먹으러 나가려면 적어도 저녁 8시는 넘어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죠.

 

한국의 공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어서 심히 불안했지만

배 속에 뭐라도 넣어놔야 하니 일단 푸드코드에서 적당히 주문했습니다.

엄니는 타이식 볶음국수였나 어쩌구였나 주문하고, 저는 뚝배기 된장국 비슷한거 주문했습니다만...

역시 돈값은 거의 하지 못하는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일 뿐이었네요. 기대하지도 않긴 했지만.

 

식사 후에 도착층 쪽으로 내려가 귀국시 바로 타고 갈 버스표를 예약하고 있는데

그 쪽에는 번햄즈 버거였나 크라제 버거였나 아무튼 좀 비싼 버거집이 있는걸 봤습니다.

차라리 그걸 먹는게 좀 더 만족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했죠.

 

 

 

이륙이 연착되는건 특히 저가항공사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사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예정시각보다 20분쯤 지연되었지만, 부산에서 오사카까지 워낙에 가까운 거리라

비행기 처음 타는 사람이라면 그 첫경험의 황홀함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금새 착륙해 버릴 테죠.

 

오랜만에 딱 해가 질 무렵쯤 하늘 위를 달리는 비행기를 탄 덕에

푸른 하늘과는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은 만족할만 하군요.

 

 

 

기내 쇼핑 팜플렛을 보니, 칸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난바까지 가는 특급열차인 '래피드 a'를

원래 1500엔에서 1000엔으로 판매한다는 좋은 광고가 있어서 그거 사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1시간 15분의 짧은 비행시간동안 기류가 불안정한 곳이 많아서

기장 명령으로 승무원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게 되었더군요.

이런 경우엔 기내 쇼핑도 자연적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경험했습니다.

 

두 장만 사도 만원이나 절약할 수 있어서 언제 쇼핑이 시작되려나 매우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기류 문제로 인해 쇼핑은 시작도 하기 전에 오사카에 도착해 버렸네요.

 

 

 

일단 비행기 내리면서 구입할 수 있는지 한번 더 물어보기로 하고, 해지기 전의 창밖이나 담아봅니다.

노파심에서 적지만, 창쪽 좌석은 엄니에게 드렸고 저는 카메라를 쭈욱 뻗어서 한손으로 담은 겁니다.

 

엄니는 오사카도 외국이라고 추우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시는데

오사카나 쿄토 등의 지역은 한국에서도 따듯한 편인 대구와 비교해도 겨울 평균기온이 더 높은 곳이라

그냥 입던대로 입고 가도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별로 효과가 없네요.

 

어느 가족이나 다들 그렇겠습니다만

제가 한국의 새집증후군에 대해 설명하면서 추운 겨울이라도 환기 꾸준히 해야 독성물질이 빠져나간다고 한참 설명하면

그냥 듣고 계시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응응거리시다가, 며칠 뒤 TV에서 똑같은 내용의 방송이 흘러나오면

깜짝 놀란 얼굴로 저한테 달려와서 새집증후군이란 게 그런 거라서 우리 환기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씀을 하시곤 하죠.

 

아무튼 금새 착륙하고 내리려는데 옆좌석 밑에 면세점에서 구입한 듯한 담배 두 보루가 떨어져 있습니다.

불쌍하게도 누군가가 잊어버린 모양이네요.

 

저는 팔면 밥값 정도는 나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니는 남의 것 가져가면 밤에 잠이 오겠냐고 하시며 승무원에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저야 뭐 담배 두 보루 정도라면 밤에도 잠 잘만 하겠지만 어쨌든 얌전히 승무원에게 인계하고 내렸죠.

 

래피드 a 할인권 좀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 공항 터미널에서도 할인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거긴 1000엔이 아니라 1100엔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었습니다.

 

 

 

평일에 출발해 평일에 돌아오는 여행이라 좀 한산할 줄 알았더니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이 많은지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아주 칸사이 공항을 점령중이더군요.

 

일단 앞으로 이용할 칸사이 스루 패스를 구입한 후 래피드 a 에 탑승하러 이동하는데

광장 한편에 세계의 명화가 묘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한번 가 봤습니다. 재현도는 상당한데 대체 뭘로 만든건가 싶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건 다 쓰고 회수한 전철 티켓을 모아 만든 그림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회수권의 검정 마그네틱 부분과 앞쪽의 노란 부분을 꾸준히 이어붙여서 만든 것이 보이더군요.

 

이 작품에는 131,516장의 티켓이 사용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 전시회 너무 좋더군요. 화려함보다 친근함이 앞서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 혼자라면야 이런 특급열차 탈 필요 없지만 엄니와 함께니까 최대한 편한 이동을 선택합니다.

사실 이 시간에 혼자 온다면 첫 날은 숙소도 잡지 않고 넷까페 같은데서 새우잠이나 자고 있겠죠.

 

무사히 열차를 탔는데 앞 옆 뒤 거의 대부분이 한국 아니면 중국인 관광객입니다.

대학생쯤 되어보이는 젊은 아기들 서너 명이 즐겁게 한국어로 이야기 중이든데

남정네 여럿이 오사카 와서 뭘 즐겁게 여행하고 갈런지 궁금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전 남하고 여행간 적이 혼자 여행간 적 보다 훨씬 적어서

단체 여행의 매력이란 거 아직 이해하기 힘들긴 합니다.

 

 

 

편안하게 난바역에 도착해서 잠깐 걸어 숙소에 짐 풀어놓고

그냥 하루 보내기는 아쉬워 도톤보리(道頓堀)로 이동합니다. 대낮보단 야경이 더 괜찮은 전형적인 도심지죠.

 

인공 하천을 중심으로 조성된 상가임에도 서울의 청계천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환락의 거리입니다.

저희 집안 사람들의 특징이, 옆에서 혜성이 폭발해도 미간에 주름 하나 변하지 않고 흐음 하는 성격이라

하천 양쪽에 끝없이 늘어선 욕망의 네온사인을 떡하니 보여드려도

지금 엄니가 초상집에 온 건지 여행 즐기러 온 건지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는 보살의 은은한 표정으로 일관하시더군요.

 

제가 즐긴다기 보다는 엄니 가이드 역할로 따라온 터라 이렇게 되면 장소 선택이 잘못된 건가 고심하게 됩니다.

 

저녁이 늦었고 해서 술안주 비슷한 자극적인 먹거리가 많은 도톤보리의 음식점보다

적당히 한끼 때우고 슈퍼에서 간식거리나 사 가자고 하셔서 그냥 요시노야에 들어갔습니다.

일본 서민들의 휴식처인 요시노야인데, 어째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이 전부 한국인 관광객이더군요.

더 웃긴건 영어로 어물어물 뭔가 주문하는 한국인과, 그 주문을 어설픈 일본어로 받아드는 중국인 알바의 시트콤이었습니다.

 

매우 심란한 일본어를 어색하게 발음하고 있어서 오히려 영어와 일본어의 혼합 의사소통보다

제가 일본어로 말하고 종업원이 일본어로 대답하는 그 순간이 더 알아먹기가 어려운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네요.

 

 

 

도톤보리 요시노야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서인지

역대 제가 먹어본 백여 군데의 요시노야 지점중 단연 최악의 품질을 보여줬습니다.

규동 소스도 제대로 뿌리지 않아서 밑에 흰 맨밥이 떡하니 늘어붙은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그릇을 점장 머리에 던져주고 싶을 정도더군요.

 

워낙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규동집의 품질마저 개판이 되어버렸습니다.

밝고 해피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들에게는 밤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곳인데

인류의 미래와 진리에의 탐구에 여념이 없는 진중한 저희 모자는 그냥 밝은건 전구고 어두운건 사람이구나 하며 걸을 뿐이었습니다.

 

 

 

도톤보리가 그렇게 일자무식 먹고 마시는 곳만은 아니어서

상당히 오래된 카부키 극장이라던가, 문화 예술적인 면에서도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긴 합니다만

외국인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곳이고, 엄니께 그걸 추천할 수도 없어서 조금 아쉬울 따름이네요.

 

 

 

그래도 일본의 상가 거리는 꽤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입니다.

한국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이곳에 와서 이렇게나 번창하고 있는 개인 상점들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사진 옆의 멍청한 용이 서 있는 가게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매우 유명한 킨류 라멘입니다.

대체 어떤 멍청이들이 오사카 가이드북에 꾸준히 저 가게를 소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사카의 라멘집 중에서도 레벨이 중하 정도로 떨어지는 곳이라 일부러 갈 일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생각.

 

얼마나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면 반찬으로 김치도 내준다고 합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부산사람과 닮았다는 말이 도는 이유가 이런 도톤보리의 풍경 때문이기도 하죠.

먹다 죽다(食い倒れ)라는 말이 오사카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이듯

이곳 도톤보리는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먹거리가 다 밀집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정갈한 회 요리, 코스 요리 등과는 달리

욕망에 솔직하다는 느낌이 드는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쓰러지기 위한 식당이 너무도 많습니다.

 

성격이 그렇지 않으니 동료들끼리 어깨동무하고 한 손에 맥주병 들고 웃고 떠들며 고기집 찾아다니는

그런 드라마같은 행동은 해 본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지만

이곳 도톤보리는 그나마 일본에서 그런 모습이 제일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엄니는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사진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제가 카메라를 들던 말던 자기 갈 길을 가십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중 찍은 엄니 모습의 90%는 뒷통수만 나와 있네요.

 

엄니는 그걸로 아쉬워 할 성격이 아니니 저도 부담감은 없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저 별다방에 들어가 새벽 1시쯤까지 책이나 읽으며 시간 보내다가

적당히 넷까페 찾아들어가 잠 좀 자고 나오는 그런 여행을 즐겼겠죠.

 

 

 

오사카가 일본의 제 2 도시이긴 하지만, 도톤보리를 걷고 있으면 항상 신기한 기분입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거대한 상권을 소화할 인적 물량이 유입되고 있는지 말이죠.

 

아무래도 20여년의 불경기를 겪은 일본의 입장상, 이 정도의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할 듯 합니다.

오사카에 이 정도의 상권은 도톤보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중국의 부유층은 요즘 그야말로 자기들의 세상이라고 어마어마한 자금으로 일본 관광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죠.

 

도톤보리는 항상 그렇지만, 오늘은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인+중국인 관광객 수가 일본인보다 더 많아 보입니다.

 

 

 

도톤보리에 오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글리코 전광판도 변함없이 한 장 남겨봅니다.

이 다리가 이 다리에 대한 설명은 예전 오사카 여행기에서 언급을 했으니 넘어갑니다만

프릴이 잔뜩 달려 풍성한 미니스커트에 인형같은 차림을 한 여식들이 한 잔 하고 가라고 바람을 불어넣고 있더군요.

 

젊은 남정네들끼리 온 관광객들은 저런 것도 경험이다 하면서 한 잔 걸치러 갈 것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허세 만빵이라도 막상 현지인들이 저렇게 덤벼들면 매우 얌전하고 소심해 지는게 지금의 한국 대학생들이 아닐까 싶네요.

 

엄니는 놀랍게도 옷 귀엽게 입었다면서 저보고 사진 같이 찍어보자고 말 걸어보라 하십니다.

저도 만만치 않게 소심한 편이라, 바람잡이들에게 그런 말을 걸 자신은 없죠.

거기다 술 마시러 갈 것도 아니면서 업무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그 제안은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뭔가 신기한 표정을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는 엄니입니다만

세상 여기저기를 다 둘러보셨기 때문에 이 정도는 그냥 슬쩍 보고 넘겨버리는 레벨에 도달하신건지

이미 구경은 다 하셨다는 듯 슈퍼에서 먹을거 좀 사가자고 하십니다.

 

물론 도톤보리에는 재미있는 슈퍼인 돈키호테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습니다. 사진 정면에 보이는 거대 관람차 건물이 돈키호테입니다.

 

 

 

도톤보리 들어가기 전에, 언제 봐도 놀라운 소비의 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담아봅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원래 좀 태평하고 거친 느낌이 있습니다만

묘하게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들면서도, 여기서라면 한번쯤 타락해버려도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소비와 향락의 거리인 이곳의 모습은 조화와 부조화가 묘하게 공존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엄니도 한참동안 조그마한 하천 양쪽으로 뻗은 끝없는 건물들을 바라보시더군요.

이곳 도톤보리는 일본이 현대화 되고 나서부터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400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엔 물자 수송 하천으로 개발되었지만 에도시대부터 이미 환락하고 유명했죠.

강가에 배 띄워놓거나 하천 옆 유곽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며 경치를 구경하는 곳이었습니다.

뭐랄까, 이 정도 되면 환락가에서도 역사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단순한 슈퍼는 아니고 상당수 제품의 품질이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일본 관광 루트에도 이 곳에 들어가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을 만큼 독창성으로 넘치는 가게입니다.

 

엄니도 물건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하시더군요. 중간에 아기 장난감은 없냐고 물어보셔서 난감했지만.

손자 장난감은 이런 곳에서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있다고 설득한 후에 정상적인 구경이 이어졌습니다.

 

의외로 샤넬이라던가 루이 뷔통 같은 브랜드품 중고도 상태 좋게 전시되어 있고

보석류나 고가 시계도 많은 걸 보면, 역시 이곳은 외국인들이 워낙 많이 보다보니 상당히 특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이곳 돈키호테 만큼은 외국인 관광객이 먹여살리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맨 위에 주욱 내려오면서 일본어보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눈썰미 좋은 엄니께서도 '저기 저 아해들 우리하고 같은 비행기 탄 애들이다'라고 지적하실 정도로

다들 그 시간에 칸사이 공항에 도착해서는 생각하는 것이 전부 똑같았습니다.

 

지금 내가 한국에 있는건지 일본에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사방 천지에 한국인들 투성인데

부디 내일부터는 좀 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니와 함께하는 고로, 대충 다들 생각할만한 안정적인 루트를 짜 놓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긴 했죠.

 

돈키호테는 곳곳에 피식 웃을만한 장치를 많이 마련해 놓은 곳인데

매 층마다 멋지게 그려놓은 캐릭터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저 화풍은 일본에서 꽤나 유명한 예술 장르(?)인데, 궁금하신 분은 '저연비 소녀 하이디'를 찾아보시길.

 

 

 

동키호테는 공산품 품질이 영 엉망이지만 그걸 감안하고 구매하는 그런 곳이고

어디서나 똑같은 물, 음료수, 술 같은 경우는 편의점에 비해 꽤나 싼 편입니다.

오사카의 호텔에서는 3박을 할 예정이라 물과 음료수 빵 등을 넉넉하게 사가지고 돌아갑니다.

 

도톤보리의 화려한 모습은 많이 봤으니 돌아갈 때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돌아가 봅니다.

엄니는 혼자서는 이런 길 못걷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째 사진 찍고있는 저를 놔두고 혼자서 쑥쑥 전진하시더군요.

 

 

 

난바에서 도톤보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상권은 그야말로 절제되지 않은 소시민의 거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북쪽의 우메다(梅田)는 좀 더 고급스럽고 우아한 소비가 주를 이루고 있는 편이구요.

 

도톤보리 주변의 이런 골목길은 물론 적당한 고급 요리점이나 숨겨진 맛집 등이 존재하는 곳이긴 합니다만

난바역 주변까지는 워낙 풍속업소가 많아서 사실 엄니와 함께 오손도손 걸어가기 좋은 곳은 아니죠.

하지만 다행이라고 할까, 대부분 엄니가 봐도 풍속업소라는 걸 눈치채기 어렵게 되어 있어서 별 문제는 없습니다.

 

호텔은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 곳이라 비싼 곳 필요없다고 말씀하셔서

시장통 주변의 조그만 비지니스 호텔을 선택했지만, 예전부터 제가 칭찬하던 슈퍼호텔이라서 서비스는 좋습니다.

2명 고객을 위해 2층침대가 구비된 슈퍼 룸을 선택했는데 역시 좁긴 좁네요.

사실 엄니하고 함께 간 것이라 자금도 넉넉하게 준비해 왔는데, 좀 더 좋은 호텔로 할까 여쭤봐도 돈아깝다고 하셔서.

 

전날 잠을 못 주무신 터라 많이 피곤하신듯 했습니다. 씻고나서 금새 주무시더군요.

저는 TV라도 좀 보고싶었지만 엄니 수면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2층 침대로 올라갔습니다.

2층 침대는 1층 침대의 절반 크기밖에 안되는 작은 사이즈라서 저는 발을 쭉 펴기도 힘들었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침대를 바꿀수는 없고, 오히려 저는 예전 자전거 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해서 기분좋게 잘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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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란 건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이 조그만 자갈같은 녀석이 배 속에 들어가면 묘한 성분으로 분해되어

사람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는 건지. 어릴적에 이런 호기심이 들었다면 아마 의사나 약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누워있거나 앉아있으면 그닥 통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약효가 돌고 있다.

물론 평소처럼 걷기는 힘들고 여전히 절뚝거리지만, 이동 속도는 어제보다 조금 빨라진 느낌.

 

사실 어디까지나 응급 처치일 뿐이라, 실제로 나은 건 아무것도 없다. 염좌도 통풍도 그냥 진통제의 효과로 고통을 잊고 있는 것일 뿐

여전히 왼쪽 발은 끈 전부 풀어헤친 280짜리 신발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퉁퉁 불어터져 있는 상태.

무리하지 않으려고 아침 조식 먹으러 내려가지도 않았다.

이로서 조식 있는 호텔에 투숙한지 처음으로 3일동안 딱 하루밖에 조식을 먹지 않은 낭비의 업적을 달성하고 말았다.

돈 아까워서라도 조식은 절대 빠지지 않고 챙겨먹는데...

 

그나마 머리가 돌아갈 정도로 고통이 줄어드니 엉망이 된 여행 계획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번엔 좀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일부러 예산까지 편성해 왔고, 각종 신뢰할만한 곳을 뒤진 끝에

후회는 없으리라는 오사카의 맛집을 두루두루 조사했기 때문에, 예정대로라면 어제와 오늘의 아침, 점심, 저녁은

나름 내 기준에서는 꽤나 호화스러운 음식을 마음껏 즐겨야 했다.

 

오사카 최대의 수산 도매시장에서 새벽 5시에 문을 여는, 100년 전통의 초밥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회전초밥과는 비교도 안되고, 국내 일류급 초밥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나름 저렴한 곳이라서

이곳에서는 마음먹고 8만원 정도 소비할 각오를 했다.

하지만 수산시장에 위치해 있다보니 전철에서 내리더라도 꽤나 걸어가야 하는 곳인 탓에

지금 상태로 거기까지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어제 먹으려 했던 맛집들도 당연히 전부 캔슬. 어제 먹은건 편의점 도시락밖에 없다.

마음껏 맛집 탐방을 하려 했던 계획이 물거품으로 변해버려,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고, 돌아갈 곳 없는 허탈감을 안은 채 10시에 호텔을 나선다.

짐은 다 맏겨놓고 공항 가기 전에 찾아가기로. 어제 스루패스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도 전철은 무료 이용이다.

출국시 이어폰의 수명이 다 됐기 때문에, 이어폰 하나 구매하려고 우메다(梅田)역으로 향한다.

 

오사카의 번화가는 남쪽의 난바(難波), 북쪽의 우메다(梅田)로 나뉘어 있는데

난바는 칸사이 국제공항과 연결되어 있고, 온갖 잡다한 소비와 유흥 쪽에 촛점이 맞춰진 곳이라면

우메다는 오사카의 거의 모든 시영, 국영 전철이 모여있는 교통의 중심이지며, 금융, 기업의 중심지라서

쇼핑이나 먹거리도 난바에 비해 좀 고급스러운, 고층 빌딩으로 아득하게 둘러쌓인 곳이다.

헝그리 여행자들은 저렴한 숙소가 많은 난바역을 이용하는 경향이 많은 듯. 우메다쪽의 호텔은 꽤나 비싸다.

 

 

 

오사카 최대의 전자상가 백화점 요도바시 우메다는 전철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가기 편하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거대 전자상가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만, 지금은 일단 이곳의 회전초밥집에 들른다.

맛집 순방을 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 비록 예정했던 곳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곳이지만.

 

그래도 회전초밥 치고는 그리 떨어지지는 않는 수준이다. 한국의 동일가격대 초밥과 비교하는건 말도 안되고.

 

 

보통은 이런 저렴한 회전초밥집이라도 접시 색깔을 따져가면서 먹는 편인데

이번엔 한을 풀지 못한 나의 위장을 위로해 주는 차원에서, 그런것 따윈 신경 끄고 마음껏 집어먹기로 결정.

그래도 생선쪽에 퓨린이 많이 들어있을 위험성이 있으니 가능하면 조개 등으로 메뉴를 조정하기로 한다.

 

회전초밥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곳이 오사카라서, 나름 자존심은 있는지 가격대비로 괜찮은 성능을 보여준다.

이렇게 2점에 100엔~200엔 하는 초밥은 일본에서 가장 싼 부류에 속하지만

그래도 한국 음식점의 초밥에 진저리가 나던 내 입장에서는 먹을만한 느낌.

 

 

 

먹고 먹으면서도 결국 가보지 못했던 최고급 초밥집이 눈 앞에 떠오르는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먹으면서 분명 맛은 있는데, 이 공허함은 뭘까.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남들 눈도 신경쓰지 않고 초밥들을 마구마구 카메라에 담는다.

원래 음식점에서 이렇게까지 사진을 남발하진 않는데, 그냥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위장에 들어가지 못한 고급 초밥들이 너무 아쉬워 할 것 같은 느낌.

 

사실 여기 초밥도 즐기기엔 충분히 맛있었다.

 

 

 

초밥집의 실력을 알아보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가 되는 계란말이.

먹어보면 '역시 회전초밥'이라는 느낌이 들긴 한다.

소위 말하는 초밥 장인이 만드는 계란말이 초밥은, 생크림 가득 들어간 카스테라를 먹는 듯한 느낌.

 

 

 

찍다가도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싶다.

예정되어있던 초밥집에 갔다면 그 야들야들하고 빛나는 초밥의 자태를 즐겁게 담았을 텐데

지금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마구 담아낼 뿐이니.

 

포스팅의 대부분을 이런 초밥사진으로 도배하는 것도 참 특이한 경우.

사실 마지막날은 담아온게 거의 없으니 이렇게라도 분량을 채우려는 속셈이다.

 

 

 

점심시간 근처라서 사람들은 꽤 많았지만

어째 나보다 뒤에 온 사람들도 전부 일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슬쩍슬쩍 계산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 사람당 6~7접시 정도가 평균인 듯.

 

내 경우 보통 이런 회전초밥에서는 배가 불러서 그만둔다기 보다

더 이상 입맛이 당기는 초밥이 없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도 최소 10접시는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시 내가 많이 먹는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징어회는 대체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초보자용이라고 인식되어 있는지

원래 오징어 초밥은 그리 비싼편이 아니지만, 타계책으로 위에 연어알을 뿌린 녀석이 있다.

초밥 장인의 집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퓨전적인 방법인데,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잘 모르겠다.

오징어회는 맛과 향보다 씹는 재미가 있지만, 연어알의 짭쪼름한 느낌이 조금 보충해주는 느낌?

 

 

 

싱싱하고 두툼한 가리비도 좋지만 겉만 살짝 구운 가리비는 달달한 맛이 더욱 살아난다.

접시 색깔을 보면 알겠지만 생가리비나 구운 가리비나 가격은 같다. 취향에 따라 먹으면 될 듯.

조개류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둘다 만족.

 

 

오징어 초밥의 또 다른 바리에이션. 고급 재료에 들어가는 성게알이다.

저렇게 성게알 눈꼽만큼 올려놓고 가격을 올리니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기본적으로 오징어가 맛과 향이 옅은 편이라서 위에 뭘 올려도 괜찮은 조합이긴 한데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먹었기 때문에 이런 것도 척척 집어먹었지

생각하면서 먹기에는, 맛이 궁금하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묘한 녀석이다.

 

 

 

대충 만족했다는 느낌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온다. 계산금액은 약 1700엔 정도.

평소같으면 무리 좀 해서 먹었구나 하는 금액이다. 초밥이 아닌 경우엔 500엔 정도면 배를 채우니까.

하지만 원래 예정했던 고급 초밥집의 예산이 6000엔이었기 때문에 왠지 지불후에도 아쉬운 기분이다.

 

예상보다 돈 적게 썼다고 아쉬워하는 이 모습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도 매우 희귀한 케이스.

아픈 다리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긴만큼, 대가가 돌아오게 되는 느낌이다.

 

사실상 맛있는 거 찾으러 다니는 행동은 이걸로 끝. 더 이상 무리해서 여기저기 옮겨다닐 상태도 아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한층 내려오면서 친구에게 부탁받은 것들을 구매한다.

각 카메라 회사의 최신 플래그쉽 기종도 전부 전시가 되어 있어서, 어차피 쓰지도 않을 것들 신나게 경험해 본다.

요즘 기종들을 만져보면, 내가 쓰고있는 녀석은 확실히 몇 세대 전의 기기적 성능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1층까지 내려와서 이어폰을 골라보려는데, 예전처럼 시착용 이어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게 아니라

본인의 MP3 플레이어에 직접 꽂아서 테스트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마음에 드는데, 익숙하게 들어오던 음원으로 테스트 하는게 자신에게 맞는 이어폰을 찾기가 쉬우니까.

한국에서는 이어폰을 마음껏 테스트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 이곳에는 적당한 보급형부터 각 사의 최고급 이어폰까지 청음이 가능하니

왠지 굉장히 행복한 기분이다. 한국서는 남들의 청음기만 줄기차게 들어보고 고민고민끝에 고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고나면 항상 '다른 기종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이 남았기 때문에

 

여기서 약 2시간동안, 일단 청음용으로 준비된 녀석들은 거의 다 들어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어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약 17년 전, 20초 튕김방지 기능을 가진 휴대용 CDP가 인생의 보물이었던 시절.

그때 이후로 이어폰은 항상 7~9만원 정도의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단 귀가 길들여지니 보급형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확 나빠지기까지 하기 때문에, 한때 수십만원짜리 이어폰에도 손을 대 본 결과 그 정도 가격대가 무난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

아이팟이 등장하기 전 춘추전국이었던 한국 MP3 시장 당시엔, 몇몇 회사와 친분을 쌓아서 시중의 거의 모든 MP3P 를 사용하고 음질을 판단하기도 했다.

사용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오디오 전문회사 인켈이 출시한 오디오카드라는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가끔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요도바시 우메다에서 만난 소니의 신형 이어폰은 상당히 놀라웠다.

새로 개발한 드라이브 유닛이 1개부터 4개까지 장착된 모델이 전시중이었는데

1개와 2개 장착된 모델까지는 그냥 그렇네 정도였지만, 3개가 장착된 모델은 하위모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음질을 들려준다.

인이어 이어폰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해상력과 깔끔한 음 분리력이, 여지껏 7~9만원급에 만족해 왔던 나의 귀를 유혹한다.

중음까지는 무난하고, 저음이 조금 약한 느낌이었지만 무작정 울리는 저음보다 이런 느낌이 내 취향이다.

 

최고급 모델인 4개짜리 녀석도 청음해 봤지만, 같은 가격이라면 3개까지를 구입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저음부분이 확연히 보강된 느낌이 들긴 해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좀 먼 편이라서.

 

원래 사용하던 가격대의 제품들을 들어보면, 대강 이제껏 들어왔던 녀석들과 비슷비슷한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그냥 그걸 구입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음악생활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이 소니의 제품을 청음하고 나니, 매장을 몇 바퀴나 돌면서 청음하고 또 청음해도, 결국엔 이 녀석에게 마음이 가게 된다.

한참동안 5000엔 대의 제품 앞에 서서 '이 정도면 문제없는데'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또다시 소니 부스로 이동해서 이 녀석을 들어보는 행동이 반복되는 중.

 

한국에서는 여러 이어폰을 들어보지 못하고 물건을 고르게 되어서 불만이었는데

막상 마음껏 청음할 기회가 생기자, 내 귀의 솔직한 평가를 스스로의 마음이 부정하지 못하는 또 다른 난점이 생겨버렸다.

약 30분동안 하염없이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이 녀석을 선택해 버린 이유는

어이없게도 마음껏 먹고 마시려고 준비한 맛집 순방이 불발된 데에 대한 일종의 화풀이였다.

예정된 고급 맛집 순방을 완전히 망쳐버렸기 때문에, 그 남은 돈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구입해 버린 것.

 

위안이라고 한다면, 면세품목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혜택까지 받으면 국내 판매가보다 7~8만원 정도 저렴하는 점 정도.

그 차액조차 왠만한 사람들이 구입하지 않을 중고급형 이어폰 가격이니, 구입하면서 잠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한참 이어폰에 빠졌을 때는 이거보다 훨씬 더 비싼 녀석도 사용해 보긴 했지만, 벌써 6~7년 전의 이야기고

그 당시 45만원쯤 하던 이어폰보다 이 녀석 성능이 확실히 더 좋다. 이제껏 사용해 본 인이어 이어폰 중 단연 최고의 음질.

 

 

 

맛집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도 이걸로 후련하게 날려버리고

남은 시간은 서점에서 책이나 읽을까 하고 안내센터 직원에게 길을 물어 서점 키노쿠니야(紀伊國屋)의 위치를 확인한다.

난바 역과 마찬가지로 우메다 역도 수많은 국철, 사철, 시영 전철이 얽힌 곳이고

운영사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처럼 이어져 있지도 않고 환승도 마음대로 안된다.

날씨는 덥고 왼발은 불안불안하지만 시원한 서점을 생각하며 조금씩 발걸음을 옮긴다.

 

 

 

우메다의 키노쿠니야 서점은 오사카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빌딩 전체를 서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가장 큰 오프라인 서점의 6배는 넘는 규모다.

외국여행이란게 자금만큼이나 시간이 아쉬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널널하게 시간이 남는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왠종일 박혀있을 자신이 있는 서점.

 

유동 인구가 많은 우메다 지역에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관광객 흉내 낸다고 외계인 머리 닮은듯한 환풍구를 찍어보기도 하는 등, 일반인 행새를 하며 이동한다.

뒤에 보이는 희한한 디자인의 건물이 한큐(阪急) 우메다 역. 저런 거대한 역이 이곳 지역엔 사방팔방 존재한다.

 

 

 

키노쿠니야 서점 근처까지 도달해서 다시 안내센터에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니

'오늘 키노쿠니야는 휴무일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땀 뻘뻘 흘리며 20분을 걸어 찾아왔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그냥 웃음이 나오지.

우메다 앞의 안내센터 직원은 오늘이 휴무일이란 걸 몰랐을까. 그렇다면 안내센터로서 좀 문제있는 것 아닌가.

되려 이곳 직원이 더 미안해 하는 듯 해서, 그냥 웃으면서 돌아나온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꼬이는 곳에서는 대책없이 꼬인다.

 

이렇게 된 이상 우메다에는 볼일이 없어서 다시 난바역으로 돌아간다.

난카이(南海) 난바역 광장 앞의 조각상을 기념으로 한장 남기고, 음료수를 마시며 잠깐 휴식.

친구에게 부탁받은 물건은 전부 구입했고,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에게 부탁받은 세븐스타 담배는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예정이니

아직 공항 출발까지는 2시간쯤 남겨놓고 뭘 할까 생각중이다.

 

다리는 무리하면 할수록 통증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돌아다니기는 힘들고

그냥 이 근처 덴덴타운에 가서 한국에서 팔지 않는 코믹스나 몇권 산 뒤에 까페에서 커피나 마시기로 한다.

다리 덕분에 오카사의 명물 간식인 타코야키 등은 먹질 못해서, 내 평생 이런 여행도 해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새로 산 이어폰의 성능에 하염없이 취해있다가 4시쯤 호텔의 짐을 찾으러 출발.

 

 

 

하지만 진통제 덕분에 다리 상태를 너무 과신했는지, 30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호텔 왕복은

예상 시간을 훨씬 넘겨 50분이나 걸리고 말았다. 정상적인 몸이라면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는데.

비행기 출발이 6시 30분이라서 5시 30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하려 했고, 이곳에서 공항까지는 45분쯤 걸리니까

4시 30분까지 이곳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막상 와 보니 4시 50분이 넘어있다. 마음이 조금씩 조급해 지는 중.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플랫홈에 나가 보니 공항까지 연결되는 특급열차 '래피드-베타'가 약 5분뒤에 출발하려고 대기중이다.

이 녀석은 스루패스로 무료 승차가 안되고 추가요금 500엔을 내야 하지만, 발목 상태와 짐을 생각하니 전혀 아깝지 않아서 이녀석으로 결정.

양해를 구하고 사진도 한장 남겨본다. 일반 전철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편안한 좌석과 넉넉한 공간 덕에 아픈 발목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걸리는 시간은 40분으로 일반 전철과 크게 차이나진 않지만, 모든 일반 전철이 45분 걸리는게 아니라 정차역이 적은 특급 이상만 그렇기 때문에

괜히 그 녀석 시간 맞추다가는 몇분 더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어서 마음 편하게 래피드를 선택했다.

 

 

 

간헐적인 통증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일단 비행기가 이륙하니 이젠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나름 홀가분하다.

예정에 없던 축제도 즐기고, 예정에 없던 사고도 생기고, 예정에 없던 쇼핑도 즐기고...

어째 이번 여행은 거의 예정에 없던 이벤트들의 연속인 듯한 느낌.

 

두번다시 겪고싶지 않은 발목의 통증만 제외하면, 이런 의외성 충만한 여행도 내 취향이다.

그 의외성이란게 결국 발목 통증때문에 생긴 거라서 난감하지만.

 

 

인천공항 착륙 20분쯤 전에 대기가 불안정한지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비행기 수십 번 타본 나로서도 평생 처음 겪어볼 정도의 굉장한 흔들림. 엉덩이가 의자에서 들썩들썩 떨어질 정도로.

 

처음에 몇번 흔들릴 때는 승객들의 웃음소리도 간간히 들렸지만, 그 뒤 롤러코스터 정도의 흔들림이 발생하자

그 웃음소리도 사라지고 객실내는 음산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승무원은 괜찮다고 방송하지만 아마 다들 어지간히 긴장했을 듯.

사고 직전의 상황은 이런 것일까 상상해보며 굉장히 즐거운 기분으로 승객들의 분위기 변화를 감상한다.

 

마침내 흔들림이 진정되고나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잡담소리가 어쩐지 더더욱 흐뭇한 기분을 만들어 주더군.

오늘 밤은 남은 진통제로 어떻게든 버텨보고, 내일 서울에서 응급 처치를 받고, 대구 내려가서부터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할 것이다.

다음 여행부터는 이런 돌발 이벤트는 사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을 예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하니, 좋게 생각하면 이것도 훌륭한 계기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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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때문에 길어봤자 한 시간 정도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고 아침을 맞이한다.

 

어리석은 희망이었을까.

파스 좀 붙이고 있으면 나으려나 싶었는데, 아주 조금 통증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걸어다니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화장실 가는것도 힘들고, 의자에 앉아있는것도 힘드니, 유일한 해결책은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뿐.

무료 조식을 먹으러 가는것도 무리니까, 예정대로 새벽에 나라를 둘러보고 오는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마에다 씨 부부와 한번 더 만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이러나저러나 오후에 출판사와의 미팅만큼은 취소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최대한 회복을 해 놔야 한다.

파스는 여러 장 들어있었으니 2시간 간격으로 바꿔주면서 무조건 쉬고 또 쉬는 수 밖에.

쓰레기통과 사용후의 수건을 문 밖에 놔두면 청소하는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결국 오전 시간동안은 그냥 얌전히 누워있기를 선택한다. 나라의 호류지와 사슴을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내일 귀국시간이 오후 6시 반이니까 시간적인 여유는 꽤나 있는 편이니

혹시 운이 좋아서 발목이 회복된다면 그때라도 좀 어기적거려볼까 싶다.

 

통증, 피로, 수면부족의 삼종세트가 어우러지니 어째 어젯밤보다 아침 7시부터 잠이 더 잘온다.

파스를 붙이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통증도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오사카 도착후 거의 처음으로 달콤하다고 느껴질 만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약 2시간 간격으로 살짝살짝 깨긴 하지만 짜증날 정도는 아니고, 기분좋게 뒤척이며 TV 보고 있으면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하늘도 영 찌부둥하고, 오후부터는 강수확률이 80%에 달하기 때문에

결국 관광 하루 빼먹을만한 여러가지 제반 사정은 갖춰진 셈이니까 조금은 덜 아쉽다는 느낌도 든다.

 

오후엔 출판사에 들른 후 아무 미련없이 바로 호텔로 돌아올 예정이니까, 내일은 그럭저럭 돌아는 다닐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생긴다.

미도스지 페스타 당시부터 무리를 하긴 했는지, 엄지발톱 안쪽에 피멍이 들어있군.

이 정도 통증이면 이게 어느 부분이 아파오는지 구분도 못할 지경이 되기 때문에 피멍이 든 줄도 몰랐다.

걷는 자세도 엉망이었으니 피멍 정도는 충분히 들고도 남았을 거라고 납득.

저 피멍이 발톱 끝으로 밀려나오려면 수 개월은 충분히 걸리는데

결국 끝까지 밀려나온 피멍을 발톱과 함께 끊어버리면 꽤나 후련한 느낌이 든다.

 

오후 2시까지는 정말 편안한 느낌으로 푹 쉬었다. 슬슬 회복된다는 실감이 들 정도로.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2시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는 순간, 익히 경험해 왔던 느낌이 엄지발가락 관절에 돌연 나타난다.

작년 자전거 여행 귀국 직후, 여러가지 집안 사정과 떨어진 체력,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했던 통풍의 느낌 그대로다.

 

한동안 본인이 착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때와는 달리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통풍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전엔 근 2주일 가까이 발가락 관절 부분이 조금씩 뜨겁고 살짝살짝 욱신거리다가 결국 악화되는 순서가 있었는데

바로 한두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전혀 다를바 없던 관절이 갑자기 눈에 띄게 느낌이 오는 것은

이제껏 알고 있던 통풍에 대한 지식과는 동떨어진 현상이라서 머리가 멍한 느낌이다.

 

혹시 염좌에서 발생한 염증이 통풍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싶었는데

훗날 귀국후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는 대답을 받았다.

그래서 족구 신나게 하던 사람이 갑자기 통풍 증상때문에 병원에 실려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그저 신기할 뿐.

 

처음부터 통풍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발목의 상태는 분명히 염좌가 확실하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통풍의 지옥같은 고통은, 한번 겪어보면 염좌와 확실히 구별이 되니까.

애초에 발목의 통증이 통풍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어제처럼 코야산을 걸어다닌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

통풍의 통증은 참을성으로 걸어다닐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통증은 지속되고, 그 강도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

학문적인 신뢰성은 부족하다고 하지만, 평균적으로 급성 통풍의 관절 통증은 여성의 출산시 고통에 맞먹는다고 할 정도.

정말 심할 경우엔 스스로 관절을 잘라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지발가락 관절의 통증은 통풍이 확실했기 때문에, 한동안 패닉에 빠졌다.

좀 있다가 출판사에 가야 하는데, 염좌는 둘째치고 통풍까지 겹친다면 어제와 비교할 수 없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물론 이동거리는 훨씬 짧지만 통풍의 통증이 본격화되면 그때부터는 그냥 지옥이니까.

지금 욱신거리는 정도는 발목의 염좌와 비교해서 그리 심한 편이 아니지만, 일단 이런식으로 발병하고 나면

길어봤자 2시간 사이에 본격적인 통증이 시작된다는 것을 작년의 체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여기서 출판사와의 미팅을 캔슬시킨다면, 일본에 온 이유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서 그럴수는 없다.

 

잠시동안 멍한 눈을 하고, 현재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시뮬레이션 해 본 결과

최대한 빨리 일어나서 출판사와 미팅을 마치고 즉시 돌아오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동은 무조건 택시로. 왕복한다면 아마 한국 돈으로 8만원 정도는 깨질것이 틀림없었지만

이 상태에서 전철따위 탔다가는 중간에 그냥 주저앉아서 엠뷸런스에 실려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재빨리 파스를 잘게 잘라서 발가락 관절쪽을 한바퀴 감싼 다음, 폭발물을 다루는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양말을 신고 신발을 끼워넣는다.

 

통풍의 원인은 단백질 생성물인 퓨린 성분 때문이지만, 그 퓨린때문에 일어나는 염증이 격통을 일으키기 때문에

임시 방편으로나마 파스도 일단 진통제 역할을 하긴 한다. 통풍의 통증은 파스 정도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

왼쪽 신발은 줄을 다 푼 다음 최대한 느슨하게 해서 간신히 발을 집어넣는다. 왼발이 1.5배 가까이 부어있어서 그냥은 들어가질 않으니.

걸음걸이는 어제와 변함없이 질질 끌다시피 할 수 밖에 없지만, 최소한 걸을 수는 있는 지금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최대한 일을 보고 돌아와야 한다.

 

출판사 관련 일은 공개적으로 포스팅할 생각이 없으니 이 부분은 패스.

 

돌아와서 신발을 벗자 이제 통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감각이 느껴진다.

한번 겪어본 사람이라면 정말 치를 떨 정도의 극악한 통증.

초침에 맞춰서 바늘로 관절을 쿡쿡 찌르는 감각이다. 그런 것 같은 감각이 아니라 정말 찔렸을 때의 통증과 똑같을 정도로.

초 단위로 일정하게 바늘이 피부에 박히는 느낌을 몇 시간동안 계속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많던 파스도 거의 다 써버렸다. 발목 염좌도 치료된 게 아니라서 왼쪽 발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

발가락 관절에 파스를 붙이면 단 몇초간 시원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걸로는 숭례문 화재시 오줌 한번 갈기는 수준밖에 안된다.

 

 

 

코야산에서 느꼈던 불교의 가르침을 몸에 새기고

부처가 된 듯한 느낌으로 처연히 고통에 몸을 맞기고 있었지만

입적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성인군자처럼 폼 잡고 고통을 이겨낼 수는 없다.

 

저녁 7시쯤 일은 잘 되었냐는 엄니의 문자가 도착해서, 몸 상태를 설명했는데

단호하게 당장 나가서 진통제 사먹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가는게 아무리 힘들어도 그 상태로는 밤을 못 견딘다고. 통풍은 밤에 더 심해지는게 맞다.

 

통풍 치료제는 퓨린의 생성을 억제하는 약과, 염증을 치료하는 소염제, 진통을 덜어주는 진통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단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 심할 때에는 퓨린 억제제가 소용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진통제와 소염제를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통풍용 진통, 소염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할 수 없는 매우 강한 성분이기 때문에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 진통제는 정말 일시적인 응급 처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호사 경력이 풍부한 엄니가 강력하게 요구를 했기 때문에, 아무리 아파도 일단 나가서 진통제를 사오는게 정답이라고 생각.

밖엔 비도 오고 있고, 약국은 전철역 근처의 지하상가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지금의 나로서는 굉장한 도전이다.

호텔 로비에서 약국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한 지도와 우산을 빌려서 조심조심 몸을 옮기기 시작.

극기훈련도 이런 극기훈련이 없지만, 어쨌든 이 방법밖에는 없다.

계단을 통해 지하도로 내려갈 때, 장애인의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40분만에 약국에 도착. 8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아슬아슬했다.

일본에서는 통풍을 뭐라고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한자 그대로 읽어보니, 다행히도 이곳 역시 똑같은 병명을 쓰고 있었다.

약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통풍약은 이런 곳에서 살 수 없다고 설명해 줬지만

내일 귀국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설명을 하자, 큰 효과는 없다고 하면서도 일단 제일 강한 진통제를 하나 골라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감탄도 하시던데, 통풍의 통증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사람이 없을때

이렇게 그 고통을 이해해주는 의사나 약사를 만나면 왠지 위로받은 것 같아서 살짝 마음이 놓인다.

 

탈진상태에 가까운 몸이지만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렀다. 8시 30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은게 없었으니.

식욕이 있는건 아니라도, 뭐든 입에 집어넣어야 약효도 올라가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도시락을 두개 산다.

2L 짜리 생수도 두 통을 구입. 의학의 힘을 빌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통풍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인 수분 섭취밖에 없다.

퓨린 성분은 대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역시 많이 마시고 줄기차게 싸는 것이다.

 

호텔에 돌아오자 프론트 직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호텔엔 지금 이것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쓰시라고 파스 몇조각을 건네준다.

효과는 둘째치고 그렇게 신경 써 주는 것만으로 흡족한 기분이 되었으니, 큰 도움을 받은 셈이다.

당시는 통증때문에 여행시 빠지지 않고 쓰는 일기도 쓰지 못했지만, 훗날 그 호텔 체인점을 찾아갔을 때

고객용 설문지에 그 때의 배려에 대해 감사의 인사라도 한마디 써서 보내야 겠다고 생각.

 

 

 

커피의 카페인도 극히 미흡하긴 하지만 통풍의 통증 완화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프론트에서 염치 불구하고 커피를 세 봉지 가져왔다. 이곳 토요코 인은 몇개월 전까지 커피 수준이 별로였지만

이번에 갔을땐 커피가 꽤나 마음에 드는 즉석 드립방식으로 바뀐 덕에 나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드립 커피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몇몇 맛없는 대형 프렌차이즈 점포의 커피보다 더 낫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커피는 인스턴트 봉지커피 중에서는 꽤나 괜찮은 품질을 자랑한다. 이 녀석을 준비하는 호텔은 좀 센스가 있는 편이다.

 

하루에 두 알만 먹으라는 진통제를 6시간 간격으로 한알씩 먹는 극약처방까지 해 가며

없는 식욕에도 불구하고 도시락을 마구 입에 집어넣고 10분 간격으로 꾸준히 물을 마셔준다.

당연히 머나먼 화장실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눈물 찔끔 짜야 할 정도로 고생을 해야 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서 최대한 상태를 호전시키려고 필사의 사투를 벌인다.

그 상황을 머릿속에서 재현해 보니, 총만 안들었다 뿐이지 전쟁터 한가운데 있었던 느낌.

 

다행히도 진통제는 진통제,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관절의 통증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잠은 잘 수 있을 정도의 진통 효과가 있다.

이런 약 없이 급성 통풍 걸린 사람이 밤에 잠을 잘 수 있는 확률은 아마 로또에 버금가지 않을까 싶다.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고통은 계속되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이 싸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서 이를 악물고 왕복.

혼신의 힘을 다해 오줌누려고 화장실로 향하는 자신의 모습이 허탈해서 가끔 웃음도 나온다. 통증때문에 미쳐버린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자본주의의 노에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일본 병원에 가면 수십만원씩 깨지기 때문에

내일까지만 참으면 내가 이긴다는, 살짝 정신줄 놓은 생각 덕분에 병원을 찾지 않았으니까.

내가 백만장자였다면 느긋하게 택시 불러서 병원에 갔겠지. 그러고보니 백만장자라면 애초에 이런 식으로 여행도 하지 않을 듯.

 

진통제라는 든든한 아군의 지원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수분 보급과 호텔 직원의 정성이 담긴 파스의 도움을 받으며

타지에서 염좌와 통풍의 더블 어택이라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 고군분투하며 마지막 밤을 보낸다.

그래도 TV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 웃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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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벤트장 하나만 더 지나가면 종착지인 난바역.

마지막 이벤트장에서는 미도스지 미나코이 그랑프리(御堂筋みなこいグランプリ)가 열리고 있었다.

미나코이라는 단어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추고 있는 춤은 요사코이춤(よさこい踊り)이다.

 

요사코이란 코치현(高知県)에서 시작된 일본의 전통 집단군무인데, 서민들의 축제 전야제 의식으로 시작된 춤이라서

기본적인 몇 개의 규칙만 지키면 남녀노소, 음악의 종류, 안무의 형식, 의상 등등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절제되고 웅장한 춤에서부터, 신나게 날뛰는 춤까지 매우 다양하고 창작적인 형식을 선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본 각지에서 이런 요사코이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꽤나 자유로운 군무.

 

한일 문화 페스티발 같은 곳에서는 이런 요사코이춤의 배경음악으로 아리랑이 흘러 나오기도 하는 등, 타문화에 녹아들어가기에도 좋은 녀석이다.

 

 

 

일단 대회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출전 팀들은 꽤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응원단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깃발에 맞춰 한 동작 한 동작 절도있는 움직임을 피로하고 있는 중.

 

아오모리현(青森県)의 대표적 축제인 네부타(ねぶた) 축제는

그야말로 누구나 행렬에 뛰어들어서 마음 가는대로 춤추며 소리를 지르는 야성의 기쁨이 살아있는데

요사코이춤은 형식에 있어 자유롭긴 해도, 정해진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집단 군무에 속하기 때문에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예술 행위 관람으로서의 매력이 있다.

 

 

 

말 그대로 동네 아주머니도 옆집 꼬맹이도 참가할 수 있는 춤이라서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번에 나온 팀은 꽤나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분위기라서 일종의 신성함이 엿보인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는 대회다 보니 나름 힘을 준 것이겠지만, 막상 정말 축제날에 가 보면

거의 전성기의 X-JAPAN 같은 펑크록 스타일과 모히칸 머리를 한 젊은이들이 날뛰는 요사코이춤도 있으니

이런 사진만으로 요사코이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슬그머니 운을 띄워 본다.

 

 

 

나처럼 우연찮게 축제에 찾아든 관광객도, 작정하고 구경하러 온 타지인도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의 축제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오사카 시민들을 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만들어가고 즐기는 그런 축제.

 

거대한 규모와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일본 각지의 대표 축제들과 비교하면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듯한 친근함을 가진 축제라는 느낌이다.

 

그냥 자동차에 점령되던 미도스지의 대로 중앙을 산책하듯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길만큼 즐긴다는 감각.

입장료도, 긴 대기시간도 필요 없는 가벼운 축제지만 일요일 오후에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는 의미로서는 굉장히 성공적이다.

이런 축제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던 내가 운좋게 이날 오사카에 도착한 것은 여행중 만나는 돌발적인 보물과 같다.

 

 

 

난바역에 도착한 후 다시 요시노야에 들어가서 규 나베동(牛鍋丼)을 하나 주문한다.

배가 고팠다기 보다는, 아침에 사진을 찍지 못한게 마음에 걸려서. 

 

규 나베동은 규동의 소고기를 조금 줄이고 두부와 당면을 넣은 녀석. 고기가 줄었으니 규동보다 가격은 좀더 저렴하다.

한국에서 규동을 한번 먹어봤는데, 가격도 요시노야보다 비싸고 맛은 정말 먹다가 내다버릴 정도라서

규동 먹으려면 일본 가야겠구나 싶은 생각에, 일본 갈때면 한번씩 먹곤 하는 요리다. 대(大)자 이상이 아니면 간식이라고 할 만큼 양이 적지만.

여행중 일본사람에게도 물어봤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사람에게도 보통 사이즈의 규동은 배가 전혀 안찬다고 하더라.

 

자전거 여행중 꽤나 즐겨먹었던 규 김치국밥이라는 메뉴가 사라져서 조금 아쉽다.

한국의 김치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지만, 일단 고춧가루를 쓴 붉은 음식이라는 것 자체가 꽤나 그리웠던 시기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메뉴인 규 김치국밥의 모습.

이 사진은 2010년 나고야 헌혈센터에서 헌혈 한번 해주고 난 뒤 근처에서 영양보충했을 때.

 

숙성되지않은 싱싱한 배추일 뿐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그리운 맛이었다. 가격도 싸서 여행중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국밥이라고 하기엔 국물에 든게 너무 없었지만, 저렇게 밥을 말아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일본에서는 그나마 한국 냄새 나던 음식.

 

 

 

난바역 근처엔 그럭저럭 큰 서점인 쥰쿠도(ジュンク堂)가 있긴 한데

막상 축제길을 다 걸어오고 나니 피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넷까페에서 새우잠 2시간 잔 후, 거진 14시간 가까이 계속 걷기만 했으니.

 

몸은 이미 형편없는 체력으로 돌아와 있는데, 마음만은 계속 1년간의 자전거여행 당시에 맞춰져 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다니는데도 체력은 예전같지 않다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서점에 들어가면 보통 두시간 정도 책을 훑어보기 때문에, 지금 체력으로는 그것도 상당히 무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한 강행군이 준비되어 있으니 오늘은 이정도로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일 코야산 가기 위해 난바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칸사이 스루패스 2일권을 구매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종료한다.

외국인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스루패스 티켓이라서 여권까지 확인하고, 구매명단 리스트까지 작성한 후 티켓을 건네준다.

 

참 징하게도 세세한 곳까지 신경쓰는구나 싶었는데, 그런 나라가 얼빠진 대처로 치명적인 원전사고를 일으켰다는 건 일종의 희극이다.

낙하산 인사들의 편안한 안식처였던 도쿄전력 임원들이야, 고위공무원의 얼빠진 나태함은 일본이라고 해서 빗나갈 리가 없지만

자신들이 원전 사고로 입은 피해만큼이나, 지금 일본인들은 그 우쭐해 하던 프라이드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거다. 애써 외면하고 싶겠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돈내고 전철 두 코스 타기는 싫어서 왔던길을 다시 돌아간다.

내일 스루패스를 사용하면 칸사이 각 도시를 잇는 전철은 물론 오사카 시내의 왠만한 전철도 전부 무제한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전철 타는건 왠지 손해본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호텔까지 가는데 한국 돈으로 3천원만 내면 되는데도.

여행가면 얼마 안되는 돈은 최대한 아끼고 비싼건 팍팍 써버리는 이상한 금전 감각이 발동해 버린다.

 

오후 6시쯤 다시 미도스지 거리를 걸어가는데, 그 북적이던 이벤트장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싹 정리되어 버리고

벌써 자동차들이 평상시처럼 운행을 하고 있다. 물론 도로쪽이나 인도쪽이나 쓰레기도 눈에 띄지 않고 평소 그대로.

한국에서 축제 뒤에 남겨지는 쓰레기더미의 산을 자주 봐 온터라, 5시간 남짓한 축제만큼이나 이런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다.

 

40분 정도 걸어서 숙소에 도착. CM 광고에서 나에게 깊은 임팩트를 주었던 닛신 컵누들(日清カップヌードル) 하나 사들고 간다.

기름많고 짜기만 해서 인스턴트 컵라면은 한국에 비해 영 맛이 없는데, 이 컵누들만큼은 내 입맛에 잘 맞는다. 시푸드나 카레맛 말고 오리지날이.

 

 

 

나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컵누들 광고 그 첫번째.

중간의 일본어 부분을 간략하게 해석해 보자면

 

'아들내미는 중3. 수험공부 하고 있었다 (있었다)'

'야식 컵누들, 엄마가 잊어버렸다(잊어버렸다)'

'아들내미는 삐졌다'

 

왠만한 일본 버라이어티 쇼보다 이 광고가 더 재밌더군.

 

그리고 충격과 공포 그 두번째.

 

 

 

이건 뭐 해석할것도 없이 '딴거 싫어~ 컵누들 좋아~' 다.

 

 

뜨거운 물 받아놓고 욕조에 몸 누이니 온 몸이 짜릿짜릿한게 정말 무리좀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돌아와서 긴장이 풀리면 느껴지는 그 무거운 감각이 평소보다 훨씬 심해서 스스로도 놀란다.

침대에 누우니 밑으로 몰렸던 혈액이 쏵 퍼지는 걸 느끼며 TV 틀어놓고 되는대로 보다가 새벽 1시쯤 취침.

 

 

 

길거리 농구 감상을 마치고 다시 난바역쪽으로 걸어간다.

미도스지 거리는 넓은 도로지만 양쪽에 나 있는 거리는 옛 정취가 남아있는 조금은 난잡한 골목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이미지엔 화려하고 정돈된 거리보다 이런 느낌이 어울리긴 한다.

일요일인 탓도 있지만 미도스지 페스타 덕분에 오사카의 유동인구는 전부 이쪽으로 몰려드는 듯 하다.

 

 

중간에 간식거리를 파는 코너가 있었지만 줄을 길게 늘어선 행렬 탓에 먹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별로 없고, 더워서 물 생각은 났지만 음식 생각은 그다지.

한국 음식점도 있었는데, 오사카까지 여행와서 한국 음식을 먹을 이유가 없으니까 패스.

음식 코너 앞에는 자연스럽게 어디든 걸터앉아서 음식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분위기가 조성중이다.

귀여운 강아지들이 많아서 허락을 받아서 한번 담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냥 넘어갔다.

 

다음으로 눈길이 간 곳은 통일된 티셔츠가 인상적인 트래드재즈 공연이었다.

이곳 역시 인파로 사진 찍기가 쉽진 않았지만 슬쩍 구경하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 뒤에서 기회를 잡으니 대강 건질만한 거리는 된다.

미도스지 페스타의 특징이기도 한데, 전국구급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을 초정하는게 아닌

아마추어들의 다양한 공연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마음 편하게 축제에 녹아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큰 돈 들여 연예인 초청하는 축제는, 그냥 먼 발치에서 굵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구경하는 동물원과 같은 느낌.

보행자 천국이라는 취지에는 역시 이렇게 친숙해 보이는 일반인들의 숨겨진 솜씨에 감탄하는 것이 어울린다.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들의 가벼운 스윙을 듣고 있으면, 뷰파인더를 보고 있더라도 가끔 몸이 들썩거려서 셔터찬스를 놓치곤 한다.

물론 이럴 때는 사진따윈 망쳐도 관계없다. 어디까지나 여행의 증거품일 뿐, 이 사람들의 공연은 귀로 즐기는 것이니까.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실력이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고, 국내 왠만한 프로밴드와 거의 동일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똥배와 가죽모자가 묘하게 어울리는 플라리넷 연주 할아버지는 중년의 미학을 여지없이 피로해주는듯 하다.

좀 전의 길거리 농구에 비해 조용한 편이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이 느긋하게 감상하는 모습은, 이 축제가 내부적으로 튼실한 녀석이라는 반증이겠지.

 

 

 

이제 저 너머에 슬슬 난바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사이바시(心斎橋)에서 난바역까지 이어지는 미도스지 거리는 그렇게 길진 않지만

자동차에서 해방된 시민들의 모습엔 평소보다 활기가 넘치는 듯 하다.

 

 

 

지체 부자유자들도 단체로 관광 나왔었는데, 도우미들의 힘을 빌어 관람에 무리가 없에 공간도 잘 만들어 주더군.

눈높이가 거의 같아서 사진이 잘 안나오길래 카메라를 최대한 치켜들고 촛점을 무한대에 맞추서 한장 찍어 봤다.

오른쪽에 보이는 핑크색 부스는 미용 연습생들이 원하는 사람들 상대로 무료 이발, 화장을 해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웨딩 컨테스트 비슷하게, 미용사들이 모델들에게 각종 드레스로 치장하는 곳도 있다.

 

모두 나하고는 그닥 인연이 없는 곳이라서 그냥 슬쩍 쳐다만 본 후 발걸음을 옮긴다.

 

피로가 점점 누적되는지 몸이 무거워지는게 느껴진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이라 난바역에 도착한 후로는 계속 도보로만 걸어다녔기 때문에

호텔로 돌아갈 때도 물론 걸어서 갈 생긱이었지만,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않는게 의외로 타격이 큰 것 같다.

내일 칸사이 스루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틀간 왠만한 전철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이동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도 오래 걸으니 무리가 간다.

 

 

 

희한하게 생긴 건물 주위에서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들고 있길래 뭔가 싶었는데

생방송으로 클라이밍 중계 중이었다. 선발된 지원자들이 제한시간내에 정상에 도달하는 이벤트인 듯 하다.

주위에서 들리는 말로는 곧 개봉하는 어떤 산악 영화와 연계되는 이벤트라고 한다.

일본 영화는 한국 영화 못지 않게 억지 신파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원래 건물 자체가 상당히 높은데, 그 중앙에 클라이밍 시설을 설치에 놓으니

올라가는 사람들의 체감 높이는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저 위치로 치면 거진 30m 는 될 듯 하다.

망원렌즈로 보지 않으면 옆에 카메라맨이 있다는 사실도 눈치재치 못할 정도니까.

 

지금 도전중인 선수는 외국인인듯 한데, 열심히 올라가고 있지만 제한시간이 아슬아슬한가 보다.

넓은 광장이라 소리가 퍼지는 바람에 잘 들리지는 않지만 방송 관계자인듯한 사람이 마이크로 생중계중이다.

 

 

 

육중한 몸무게를 지닌 나로서는 저런 클라이밍을 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궁금할 때가 많은데

아무리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는 해도 의지할 곳 없는 절벽에 매달려 올라갈 때의 기분은 참 스릴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수백명의 시선과 카메라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상황에서의 압박감은 상상하기 힘들 듯.

 

 

 

진행자가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결국 손을 놓치고 만다.

클라이밍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얼핏 봐도 상당한 난이도인 듯 하다.

한동안 대롱대롱 매달리던 선수는 그래도 저~기 밑에서 박수쳐 주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한다.

 

계속 구경하고 있으면 한두 명쯤은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축제 시간은 중반을 넘어가고 있고, 볼거 다 챙겨보기 전에 내 체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이곳은 이 정도로 끝낸다.

 

 

 

음악 중심의 이벤트 공간에는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이 가볍게 몇 곡씩 연주중이었는데

멕시코의 활기차면서도 적당히 힘 뺀듯한 음악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분위기 띄우는 법도 잘 아는 아저씨가 가벼운 개그도 선보여 주시고. 일본어가 아니라서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미도스지 페스타는 오후 5시에 모두 끝나지만 도톤보리나 각종 주변 공연장에서는 주말에도 이벤트가 이어진다.

그 중에는 한국 초청팀인 난타 팀도 포함되어 있더라. 뒤의 팜플렛 보면 슬그머니 보인다.

오사카 사람들의 취향과는 꽤나 잘 맞을 듯 하다.

 

그 외에 검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60~70대의 신사 할아버지들이 신들린듯한 솜씨를 뽐내던 재즈 공연도 있었는데

일본 재즈 역사와 길을 함께 걸어온 듯한 느낌의 그 밴드의 보컬은 영어도 매우 능숙해서, 일본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본토 발음의 재즈송을 열창했다.

잠깐 들어도 놀라운 실력의 밴드라는걸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 인지도도 있는 밴드일 듯 하다.

좋은 음악에는 사람이 몰리는게 당연한 듯,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사진은 한 장도 담지 못했지만 귀는 즐거웠다.

 

 

 

난바 역이 거의 보일만한 거리까지 걸어가는데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의 공연 소리가 들려온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쪽은 사람들로 가득차서, 밴드의 뒤쪽 통행로에서 사진을 담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감상중이었다.

 

청춘 스트리트2012 라는 제목의 이벤트장이었는데, 오사카 시내 고등학교 동호회가 참가해서 실력을 뽐내는 장소다.

밴드 실력이야 출중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리듬에 맞춰서 멤버 전원이 발도 구르고 점프도 하고 하면서 흥을 돋구는게 인상적.

 

 

 

활기찬 음악을 들썩들썩하는 율동과 함께 선보이니 꽤나 들을 만 하다.

고등학교 경음부가 축제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맡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요즘 한국 고등학생들은 이런 동아리 활동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려나? 적어도 내가 고딩때는 그런거 없었다.

 

 

 

곡 하나가 끝나고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그 다음 흘러나오는 곡이 귀에 익다.

혹시나 싶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역시나,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곡 '꽃~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 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항상 느꼈던, 히로시마의 원폭 희생자보다도 기구하고 서글픈 역사를 간직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애환을

가슴 저리는 음악으로 대변하는 대표곡 중 하나인 이 곡을 이곳 오사카의 고교 밴드부에게서 들을 수 있을줄은 몰랐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때 독립하지 못했다면 일어났을 한국의 대체역사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150년전 류큐 왕국이 멸망한 이후 식민지로 전락한 오키나와는, 갖은 수탈과 차별을 당하면서도

태평양 전쟁 당시엔 '위대한 황국 신민'으로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자결을 강요당하는 이중적 취급을 받으며

본섬만으로는 제주도의 60%밖에 되지 않는 이 섬에서 20만명의 원주민이 미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의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 후에도 일본 전체에서 학력성취도, 취업률, 평균 수입이 가장 낮은 곳이며, 일본내 0.2%의 토지에 75%의 미군이 주둔중인,

과연 이곳이 본토와 같은 일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소외된 지역.

 

이런 슬픔의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의 음악은 구슬프기 그지 없으면서도 그 내용만큼은 눈물에 젖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진정한 눈물을 흘려보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는 애잔함이 그 희망적인 가사 속에서 심금을 울린다.

 

 

 

 

강은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사람도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그 흐름이 닿는 곳에는

꽃으로서 꽃으로서 피워주고 싶네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눈물은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사랑도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그 흐름을 이 가슴에

꽃으로서 꽃으로서 맞이하고 싶네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꽃은 꽃으로서 웃을수도 있죠
사람은 사람으로서 눈물도 흘려요

  
그런게 자연의 노래 인거죠

마음속에 마음속에 꽃을 피워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꽃을 쥐어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꽃을 쥐어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며칠 후인 5월 15일은 오키나와 영유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된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참혹한 역사 속에서 류큐인들이 바라는 것은 여전히 총칼 대신 꽃을 드는 것.

 

 

 

 

이 곡이 흐르는 동안 건너편의 관객들 중 눈시울을 붉히는 중년층을 몇몇 볼 수 있었다.

수천km 떨어진 오키나와의 음악을 오사카 거리에 선사해준 젊은 학생들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