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가 퇴직하시고 좀 심심해 하셔서 저하고 가볍게 근처 오사카 정도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일본쪽으로 가면 가이드 필요없이 저하고 다닐 수 있어서 말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엄니는 2월 초에 부부모임 동창회에서 대만여행 간다는 사실을
제가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래서 좀 있다 또 나가십니다.
더더욱 아이러니하게도 저 역시 작년 10월부터 2월에 홋카이도 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
눈축제 구경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거기서 취직하신 대학원 졸업생분과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니나 저나 전혀 갈 필요가 없었던 여행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뭐, 자식하고 둘이서 해외여행 나가는 건 평생 처음이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불행히도 오래 직장을 비울 만한 여력이 없어서, 그냥 2월에 대만 함께 가시는 걸로 결정했네요.
대구에서 부산 김해공항으로 당일 버스타고 갈 예정이라 까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니가 커피를 너무 조금 드셔서, 이럴 줄 알았으면 음료수는 하나만 시켜도 될 뻔 했네요.
직장생활 당시 시간에 쫓기는 출퇴근을 워낙 많이 경험하신 엄니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가서 기다리는게 낫지 늦게 가서 허둥대기는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별로 볼 것 없는 조그만 김해공항에도 탑승 2시간 반이나 전에 도착해서 미리미리 체크인을 해 버렸네요.
김해공항은 정말 아담해서 눈이 번쩍번쩍하는 인천공항의 면세점 물건들 구경할 수는 없지만
청사 내부에 재미있는 쓰레기통이 있어서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줬습니다.
엄니는 한참동안 '왜 여행가방이 이렇게 여기저기 세워져 있지'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는군요.
오사카를 기점으로 하는 저가항공인 피치항공을 사용하는 여행입니다.
첫날은 저녁 7시가 넘어야 겨우 오사카 시내에 도착할 것 같지만, 저가항공이니 감내해야 할 듯.
그래도 난바역에서 도보로 이동가능한 숙소인데다 도톤보리라는 밤의 거리까지도 걸어서 갈 수 있으니
피곤한 여행 첫날 저녁은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엄니나 저나 여행 전날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우는 성격이라
고속버스 -> 비행기 -> 전철 등 하루 5시간 정도를 이동하는데만 소모하는 첫 날 여정은
항상 머리가 지끈거리는 힘든 날입니다만, 그것도 이제는 익숙해 질 만큼 많이도 나가다녔군요.
피치항공은 물조차도 사 먹어야 하는 곳이라 남은 시간동안 점심식사를 합니다.
오사카에서 뭐 먹으러 나가려면 적어도 저녁 8시는 넘어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죠.
한국의 공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어서 심히 불안했지만
배 속에 뭐라도 넣어놔야 하니 일단 푸드코드에서 적당히 주문했습니다.
엄니는 타이식 볶음국수였나 어쩌구였나 주문하고, 저는 뚝배기 된장국 비슷한거 주문했습니다만...
역시 돈값은 거의 하지 못하는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일 뿐이었네요. 기대하지도 않긴 했지만.
식사 후에 도착층 쪽으로 내려가 귀국시 바로 타고 갈 버스표를 예약하고 있는데
그 쪽에는 번햄즈 버거였나 크라제 버거였나 아무튼 좀 비싼 버거집이 있는걸 봤습니다.
차라리 그걸 먹는게 좀 더 만족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했죠.
이륙이 연착되는건 특히 저가항공사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사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예정시각보다 20분쯤 지연되었지만, 부산에서 오사카까지 워낙에 가까운 거리라
비행기 처음 타는 사람이라면 그 첫경험의 황홀함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금새 착륙해 버릴 테죠.
오랜만에 딱 해가 질 무렵쯤 하늘 위를 달리는 비행기를 탄 덕에
푸른 하늘과는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은 만족할만 하군요.
기내 쇼핑 팜플렛을 보니, 칸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난바까지 가는 특급열차인 '래피드 a'를
원래 1500엔에서 1000엔으로 판매한다는 좋은 광고가 있어서 그거 사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1시간 15분의 짧은 비행시간동안 기류가 불안정한 곳이 많아서
기장 명령으로 승무원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게 되었더군요.
이런 경우엔 기내 쇼핑도 자연적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경험했습니다.
두 장만 사도 만원이나 절약할 수 있어서 언제 쇼핑이 시작되려나 매우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기류 문제로 인해 쇼핑은 시작도 하기 전에 오사카에 도착해 버렸네요.
일단 비행기 내리면서 구입할 수 있는지 한번 더 물어보기로 하고, 해지기 전의 창밖이나 담아봅니다.
노파심에서 적지만, 창쪽 좌석은 엄니에게 드렸고 저는 카메라를 쭈욱 뻗어서 한손으로 담은 겁니다.
엄니는 오사카도 외국이라고 추우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시는데
오사카나 쿄토 등의 지역은 한국에서도 따듯한 편인 대구와 비교해도 겨울 평균기온이 더 높은 곳이라
그냥 입던대로 입고 가도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별로 효과가 없네요.
어느 가족이나 다들 그렇겠습니다만
제가 한국의 새집증후군에 대해 설명하면서 추운 겨울이라도 환기 꾸준히 해야 독성물질이 빠져나간다고 한참 설명하면
그냥 듣고 계시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응응거리시다가, 며칠 뒤 TV에서 똑같은 내용의 방송이 흘러나오면
깜짝 놀란 얼굴로 저한테 달려와서 새집증후군이란 게 그런 거라서 우리 환기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씀을 하시곤 하죠.
아무튼 금새 착륙하고 내리려는데 옆좌석 밑에 면세점에서 구입한 듯한 담배 두 보루가 떨어져 있습니다.
불쌍하게도 누군가가 잊어버린 모양이네요.
저는 팔면 밥값 정도는 나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니는 남의 것 가져가면 밤에 잠이 오겠냐고 하시며 승무원에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저야 뭐 담배 두 보루 정도라면 밤에도 잠 잘만 하겠지만 어쨌든 얌전히 승무원에게 인계하고 내렸죠.
래피드 a 할인권 좀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 공항 터미널에서도 할인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거긴 1000엔이 아니라 1100엔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었습니다.
평일에 출발해 평일에 돌아오는 여행이라 좀 한산할 줄 알았더니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이 많은지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아주 칸사이 공항을 점령중이더군요.
일단 앞으로 이용할 칸사이 스루 패스를 구입한 후 래피드 a 에 탑승하러 이동하는데
광장 한편에 세계의 명화가 묘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한번 가 봤습니다. 재현도는 상당한데 대체 뭘로 만든건가 싶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건 다 쓰고 회수한 전철 티켓을 모아 만든 그림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회수권의 검정 마그네틱 부분과 앞쪽의 노란 부분을 꾸준히 이어붙여서 만든 것이 보이더군요.
이 작품에는 131,516장의 티켓이 사용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 전시회 너무 좋더군요. 화려함보다 친근함이 앞서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 혼자라면야 이런 특급열차 탈 필요 없지만 엄니와 함께니까 최대한 편한 이동을 선택합니다.
사실 이 시간에 혼자 온다면 첫 날은 숙소도 잡지 않고 넷까페 같은데서 새우잠이나 자고 있겠죠.
무사히 열차를 탔는데 앞 옆 뒤 거의 대부분이 한국 아니면 중국인 관광객입니다.
대학생쯤 되어보이는 젊은 아기들 서너 명이 즐겁게 한국어로 이야기 중이든데
남정네 여럿이 오사카 와서 뭘 즐겁게 여행하고 갈런지 궁금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전 남하고 여행간 적이 혼자 여행간 적 보다 훨씬 적어서
단체 여행의 매력이란 거 아직 이해하기 힘들긴 합니다.
편안하게 난바역에 도착해서 잠깐 걸어 숙소에 짐 풀어놓고
그냥 하루 보내기는 아쉬워 도톤보리(道頓堀)로 이동합니다. 대낮보단 야경이 더 괜찮은 전형적인 도심지죠.
인공 하천을 중심으로 조성된 상가임에도 서울의 청계천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환락의 거리입니다.
저희 집안 사람들의 특징이, 옆에서 혜성이 폭발해도 미간에 주름 하나 변하지 않고 흐음 하는 성격이라
하천 양쪽에 끝없이 늘어선 욕망의 네온사인을 떡하니 보여드려도
지금 엄니가 초상집에 온 건지 여행 즐기러 온 건지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는 보살의 은은한 표정으로 일관하시더군요.
제가 즐긴다기 보다는 엄니 가이드 역할로 따라온 터라 이렇게 되면 장소 선택이 잘못된 건가 고심하게 됩니다.
저녁이 늦었고 해서 술안주 비슷한 자극적인 먹거리가 많은 도톤보리의 음식점보다
적당히 한끼 때우고 슈퍼에서 간식거리나 사 가자고 하셔서 그냥 요시노야에 들어갔습니다.
일본 서민들의 휴식처인 요시노야인데, 어째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이 전부 한국인 관광객이더군요.
더 웃긴건 영어로 어물어물 뭔가 주문하는 한국인과, 그 주문을 어설픈 일본어로 받아드는 중국인 알바의 시트콤이었습니다.
매우 심란한 일본어를 어색하게 발음하고 있어서 오히려 영어와 일본어의 혼합 의사소통보다
제가 일본어로 말하고 종업원이 일본어로 대답하는 그 순간이 더 알아먹기가 어려운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네요.
도톤보리 요시노야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서인지
역대 제가 먹어본 백여 군데의 요시노야 지점중 단연 최악의 품질을 보여줬습니다.
규동 소스도 제대로 뿌리지 않아서 밑에 흰 맨밥이 떡하니 늘어붙은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그릇을 점장 머리에 던져주고 싶을 정도더군요.
워낙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규동집의 품질마저 개판이 되어버렸습니다.
밝고 해피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들에게는 밤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곳인데
인류의 미래와 진리에의 탐구에 여념이 없는 진중한 저희 모자는 그냥 밝은건 전구고 어두운건 사람이구나 하며 걸을 뿐이었습니다.
도톤보리가 그렇게 일자무식 먹고 마시는 곳만은 아니어서
상당히 오래된 카부키 극장이라던가, 문화 예술적인 면에서도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긴 합니다만
외국인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곳이고, 엄니께 그걸 추천할 수도 없어서 조금 아쉬울 따름이네요.
그래도 일본의 상가 거리는 꽤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입니다.
한국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이곳에 와서 이렇게나 번창하고 있는 개인 상점들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사진 옆의 멍청한 용이 서 있는 가게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매우 유명한 킨류 라멘입니다.
대체 어떤 멍청이들이 오사카 가이드북에 꾸준히 저 가게를 소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사카의 라멘집 중에서도 레벨이 중하 정도로 떨어지는 곳이라 일부러 갈 일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생각.
얼마나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면 반찬으로 김치도 내준다고 합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부산사람과 닮았다는 말이 도는 이유가 이런 도톤보리의 풍경 때문이기도 하죠.
먹다 죽다(食い倒れ)라는 말이 오사카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이듯
이곳 도톤보리는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먹거리가 다 밀집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정갈한 회 요리, 코스 요리 등과는 달리
욕망에 솔직하다는 느낌이 드는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쓰러지기 위한 식당이 너무도 많습니다.
성격이 그렇지 않으니 동료들끼리 어깨동무하고 한 손에 맥주병 들고 웃고 떠들며 고기집 찾아다니는
그런 드라마같은 행동은 해 본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지만
이곳 도톤보리는 그나마 일본에서 그런 모습이 제일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엄니는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사진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제가 카메라를 들던 말던 자기 갈 길을 가십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중 찍은 엄니 모습의 90%는 뒷통수만 나와 있네요.
엄니는 그걸로 아쉬워 할 성격이 아니니 저도 부담감은 없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저 별다방에 들어가 새벽 1시쯤까지 책이나 읽으며 시간 보내다가
적당히 넷까페 찾아들어가 잠 좀 자고 나오는 그런 여행을 즐겼겠죠.
오사카가 일본의 제 2 도시이긴 하지만, 도톤보리를 걷고 있으면 항상 신기한 기분입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거대한 상권을 소화할 인적 물량이 유입되고 있는지 말이죠.
아무래도 20여년의 불경기를 겪은 일본의 입장상, 이 정도의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할 듯 합니다.
오사카에 이 정도의 상권은 도톤보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중국의 부유층은 요즘 그야말로 자기들의 세상이라고 어마어마한 자금으로 일본 관광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죠.
도톤보리는 항상 그렇지만, 오늘은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인+중국인 관광객 수가 일본인보다 더 많아 보입니다.
도톤보리에 오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글리코 전광판도 변함없이 한 장 남겨봅니다.
이 다리가 이 다리에 대한 설명은 예전 오사카 여행기에서 언급을 했으니 넘어갑니다만
프릴이 잔뜩 달려 풍성한 미니스커트에 인형같은 차림을 한 여식들이 한 잔 하고 가라고 바람을 불어넣고 있더군요.
젊은 남정네들끼리 온 관광객들은 저런 것도 경험이다 하면서 한 잔 걸치러 갈 것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허세 만빵이라도 막상 현지인들이 저렇게 덤벼들면 매우 얌전하고 소심해 지는게 지금의 한국 대학생들이 아닐까 싶네요.
엄니는 놀랍게도 옷 귀엽게 입었다면서 저보고 사진 같이 찍어보자고 말 걸어보라 하십니다.
저도 만만치 않게 소심한 편이라, 바람잡이들에게 그런 말을 걸 자신은 없죠.
거기다 술 마시러 갈 것도 아니면서 업무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그 제안은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뭔가 신기한 표정을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는 엄니입니다만
세상 여기저기를 다 둘러보셨기 때문에 이 정도는 그냥 슬쩍 보고 넘겨버리는 레벨에 도달하신건지
이미 구경은 다 하셨다는 듯 슈퍼에서 먹을거 좀 사가자고 하십니다.
물론 도톤보리에는 재미있는 슈퍼인 돈키호테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습니다. 사진 정면에 보이는 거대 관람차 건물이 돈키호테입니다.
도톤보리 들어가기 전에, 언제 봐도 놀라운 소비의 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담아봅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원래 좀 태평하고 거친 느낌이 있습니다만
묘하게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들면서도, 여기서라면 한번쯤 타락해버려도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소비와 향락의 거리인 이곳의 모습은 조화와 부조화가 묘하게 공존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엄니도 한참동안 조그마한 하천 양쪽으로 뻗은 끝없는 건물들을 바라보시더군요.
이곳 도톤보리는 일본이 현대화 되고 나서부터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400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엔 물자 수송 하천으로 개발되었지만 에도시대부터 이미 환락하고 유명했죠.
강가에 배 띄워놓거나 하천 옆 유곽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며 경치를 구경하는 곳이었습니다.
뭐랄까, 이 정도 되면 환락가에서도 역사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단순한 슈퍼는 아니고 상당수 제품의 품질이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일본 관광 루트에도 이 곳에 들어가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을 만큼 독창성으로 넘치는 가게입니다.
엄니도 물건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하시더군요. 중간에 아기 장난감은 없냐고 물어보셔서 난감했지만.
손자 장난감은 이런 곳에서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있다고 설득한 후에 정상적인 구경이 이어졌습니다.
의외로 샤넬이라던가 루이 뷔통 같은 브랜드품 중고도 상태 좋게 전시되어 있고
보석류나 고가 시계도 많은 걸 보면, 역시 이곳은 외국인들이 워낙 많이 보다보니 상당히 특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이곳 돈키호테 만큼은 외국인 관광객이 먹여살리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맨 위에 주욱 내려오면서 일본어보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눈썰미 좋은 엄니께서도 '저기 저 아해들 우리하고 같은 비행기 탄 애들이다'라고 지적하실 정도로
다들 그 시간에 칸사이 공항에 도착해서는 생각하는 것이 전부 똑같았습니다.
지금 내가 한국에 있는건지 일본에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사방 천지에 한국인들 투성인데
부디 내일부터는 좀 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니와 함께하는 고로, 대충 다들 생각할만한 안정적인 루트를 짜 놓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긴 했죠.
돈키호테는 곳곳에 피식 웃을만한 장치를 많이 마련해 놓은 곳인데
매 층마다 멋지게 그려놓은 캐릭터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저 화풍은 일본에서 꽤나 유명한 예술 장르(?)인데, 궁금하신 분은 '저연비 소녀 하이디'를 찾아보시길.
동키호테는 공산품 품질이 영 엉망이지만 그걸 감안하고 구매하는 그런 곳이고
어디서나 똑같은 물, 음료수, 술 같은 경우는 편의점에 비해 꽤나 싼 편입니다.
오사카의 호텔에서는 3박을 할 예정이라 물과 음료수 빵 등을 넉넉하게 사가지고 돌아갑니다.
도톤보리의 화려한 모습은 많이 봤으니 돌아갈 때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돌아가 봅니다.
엄니는 혼자서는 이런 길 못걷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째 사진 찍고있는 저를 놔두고 혼자서 쑥쑥 전진하시더군요.
난바에서 도톤보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상권은 그야말로 절제되지 않은 소시민의 거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북쪽의 우메다(梅田)는 좀 더 고급스럽고 우아한 소비가 주를 이루고 있는 편이구요.
도톤보리 주변의 이런 골목길은 물론 적당한 고급 요리점이나 숨겨진 맛집 등이 존재하는 곳이긴 합니다만
난바역 주변까지는 워낙 풍속업소가 많아서 사실 엄니와 함께 오손도손 걸어가기 좋은 곳은 아니죠.
하지만 다행이라고 할까, 대부분 엄니가 봐도 풍속업소라는 걸 눈치채기 어렵게 되어 있어서 별 문제는 없습니다.
호텔은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 곳이라 비싼 곳 필요없다고 말씀하셔서
시장통 주변의 조그만 비지니스 호텔을 선택했지만, 예전부터 제가 칭찬하던 슈퍼호텔이라서 서비스는 좋습니다.
2명 고객을 위해 2층침대가 구비된 슈퍼 룸을 선택했는데 역시 좁긴 좁네요.
사실 엄니하고 함께 간 것이라 자금도 넉넉하게 준비해 왔는데, 좀 더 좋은 호텔로 할까 여쭤봐도 돈아깝다고 하셔서.
전날 잠을 못 주무신 터라 많이 피곤하신듯 했습니다. 씻고나서 금새 주무시더군요.
저는 TV라도 좀 보고싶었지만 엄니 수면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2층 침대로 올라갔습니다.
2층 침대는 1층 침대의 절반 크기밖에 안되는 작은 사이즈라서 저는 발을 쭉 펴기도 힘들었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침대를 바꿀수는 없고, 오히려 저는 예전 자전거 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해서 기분좋게 잘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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