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야산에 다녀온 게 1월 17일입니다.

18일 아침에 일어나니 엄니께서 밤새도록 혈뇨가 나오셨다고 합니다.

소변이 거의 핑크색으로 나올 정도로 정도가 심해서, 오늘은 움직이는 거 무리라고 하셨죠.

 

엄니의 혈뇨는 40여년동안 산발적으로 계속된 것이라 급성은 아니지만

대체로 몸이 피곤해 생기는 일이라, 관광은 꿈도 못꿉니다.

 

원래 체크아웃 후 나라까지 이동할 예정이었던 탓에, 당장 프론트에 내려가 1박 추가할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다행히도 방 바꿀 필요없이 그대로 투숙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원래는 3박 후에 청소를 위해 오전 중에 방을 비워줘야 하지만, 엄니가 몸이 아프시다고 설명을 해서 청소는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엄니는 준비성이 좋은 분이라, 일단 혈뇨 시 먹는 약도 가지고 온 덕분에 응급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배의 통증은 쉽게 가라안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조식 먹으러 내려가는 일도 포기하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기로 합니다.

 

저는 일단 밖으로 나가 빵집과 슈퍼에서 요기할 만한 것들과 과일 등등을 사왔습니다.

여행 중간중간 여러번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길래

괜찮겠구나 싶은 마음이었는데, 결국 가이드 역할인 제가 컨트롤 하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무겁게 다가오더군요.

 

역시 여행이라고 해서 무리하지 말고 느긋하게 돌아봐야 했습니다.

그것도 제 기준에서 무리가 아니라 엄니 기준에서 무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니는 저보고 오사카 돌아다니고 오라고 하셨지만 그럴수는 없죠.

밥하고 과일하고 보이차 등등을 섭취하며 TV 보다가 자다가 하며

여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녁엔 그래도 몸이 좀 좋아지셨는지 식사를 밖에서 하자고 하시길래, 5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지유켄(自由軒) 본점으로 갔습니다.

제 블로그 오카사 여행기를 보면 잠깐 등장하는 '명물 카레'를 만든 본점이 난바에 있죠.

창업 103년째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레점이고 나이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부드럽고 부담없는 카레로 유명합니다.

 

여행을 즐긴다기 보다는 많이 먹고 많이 쉬어서 체력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강했기에

엄니는 그냥 묵묵히 드시고 별 말은 없었습니다. 제가 집에서 만드는 카레가 더 맛있다고는 하시더군요.

 

나라에서의 1박은 완전히 없었던 일로 되었기 때문에 1월 19일 아침엔 바로 전철 타고 쿄토로 떠납니다.

엄니 몸을 생각해서 우메다 역까지 택시를 타고 갔는데요, 택시 기사가 먼저 말을 걸어오길래 잠깐 잡담을 나눴습니다.

코야산은 오사카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한 번쯤은 가 보는 곳이라고 하네요.

 

일본에서는 택시 기사가 승객에게 먼저 잡담 거는 일은 별로 없는데, 역시 오사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의 여행은 엄니의 몸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일정을 대폭 축소하기로 합니다.

저야 몇 번이고 와 본 곳이니 아쉬울 것 없지만, 엄니는 이런 여행으로 괜찮겠느냐고 여쭤봤는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데 이번에 좀 덜본다고 뭐가 아쉽겠냐고 하십니다. 다행이네요.

 

사실 엄니 여행다닌 곳을 생각해 보면, 비행시간이 1시간 20분 밖에 되지 않는 이런 곳은 그냥 동네 마실나가는 수준에 불과하긴 합니다.

 

쿄토 역은 오사카 만큼이나 사람이 넘쳐나더군요. 겨울에 수학여행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교복입은 학생들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날씨는 추워도 모처럼 하늘이 푸른 날이라 사진 찍기는 좋더군요.

 

 

 

날씨 좋을때는 실제 쿄토 타워보다 역의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이 더 깔끔하게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일단 쿄토에서 칸사이 공항으로 가는 교통편을 예약해 놓고 호텔에 짐을 푼 후, 후시미(伏見) 이나리 타이샤만 둘러보기로 합니다.

 

내일은 원래 엄니와 둘이서 다닐 생각이었지만, 엄니 몸을 생각해서 쿄토 관광버스 반나절 코스를 끊어서 편하게 돌아다녀 볼 예정입니다.

조금 수박 겉핥기가 되겠지만 역시 몸을 생각하면 바로바로 관광지로 실어다 주는 관광버스가 편하겠죠.

 

 

 

엄니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저는 어제부터 죄책감으로 기분이 매우 다운된 상태였죠.

그래도 쿄토 역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엄니를 보니 그나마 좀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 듭니다.

 

쿄토 역은 단순히 크기뿐만이 아니라, 전통 문화와 현대 기술의 타협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구조물이라는 의의가 있죠.

이 곳 역시 예전 여행기 포스팅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넘어가기로 합니다.

 

 

 

화장실 다녀오는 엄니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막상 지금이 되어서야 아차 싶더군요.

몸이 멀쩡하다는 걸 가정하고 1달 전에 예약해 놓은 호텔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은 가야 하는 곳이라

어제 바로 예약 취소한 후 쿄토 역에 붙어있는 수많은 다른 호텔을 신속하게 예약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는데 말입니다.

 

어제는 단순히 나라쪽 호텔 취소하는 것 밖에 머리에 들어있지 않아서 깔끔하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가져온 현금은 별로 없지만 그냥 카드 결제라도 해서 쿄토 역 구조물에 포함되어 있는 고급 호텔인 그랑비아에 투숙했다면

엄니도 훨씬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가격은 1박에 20만원이 넘긴 하지만.

 

홀로 여행의 습관이 뼛속까지 박혀 있다보니 동행인의 사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런 실책은 참 괴롭습니다.

 

 

 

일단 내일 관광버스 예약하고, 칸사이 공항 행 고속버스 티켓을 알아보러 이동합니다.

거대 역이 의례 그렇듯 번화가가 이어지는 카라스마구치(烏丸口)와, 점점 한적해지고 있는 하치죠구치(八條口)로 나뉘는데

공항행 버스는 하치죠구치 쪽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엄니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스무스하게 이동을 시작합니다.

 

중간중간 엄니 어깨도 주물주물하고 일부러 천천히 걸으면서 최대한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혈뇨가 완전히 그친 게 아니고, 통증이 많이 완화된 정도일 뿐이라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되겠죠.

20년 전쯤에 병원에 한번 가 봤을 때 의사가 죽을 병은 아니고 고칠 수도 없으니 그냥 사세요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20년이라면 의학 기술적으로 천지가 뒤집어질 정도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돌아가면 꼭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종용했습니다.

 

하치죠구치로 향하는 도중 우지(宇治) 녹차를 넣은 슈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호기심에 한번 먹어봅니다.

쿄토역에 입점한 가게들은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라 최소 수십 년 전부터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는 가게들이라

군것질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허벌나게 비싸다는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녹차향기 가득한 슈크림이 아주 꽉꽉 들어차 있어서 심각하게 맛있었는데 저 녀석이 무려 300 엔이나 합니다.

엄니도 참 맛있다며 드시다가, 하나에 한국돈으로 3천원이라고 말씀드리니 얼굴이 어두워 지시더군요.

슈크림이란 게 정직한 방법으로 맛있게 만드려면 돈이 많이 드는 녀석이긴 하지만.

 

 

 

슈크림 하나로 배가 찰 리는 없고, 맛있는 거 먹기보다는 대강 배만 채우고 숙소로 향하기 위해서

걸어가다 보이던 나카우(なか卯)에 들어갑니다.

 

나카우는 한국의 김밥천국과 같은 곳이라 보면 되는데, 그렇다 보니 음식의 질보다는 저렴함으로 승부하는 곳이죠.

아무리 그래도 규동 한그릇 만으로는 좀 모자랄까 싶어서 세트메뉴를 이것저것 시켰는데

맛은 둘째치고 역시 엄니에게는 좀 과하게 짠 느낌이 들어서 선택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깔끔하긴 깔끔한데, 주위 손님들이 대부분 교복입은 학생들인 것을 보면 역시 엄니와 함께 먹을만한 레벨은 아닌 듯 하네요.

제 입장에서야 이 정도면 가격대 성능비가 좋아서 감지덕지입니다만.

 

 

 

여행중에 하늘이 맑고 쨍쨍하다는 건 매우 큰 축복입니다.

기온은 낮은 편이지만 햇살이 비춰주니 그나마 움직일 만 하네요.

코베나 코야산과 달리 쿄토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서 조금 덜 춥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죠.

 

 

 

숙소에 짐 풀어놓고 바로 후시미로 향합니다.

쿄토는 일본의 다른 대도시와 달리 전철로 이동하는데 제약이 많아서 대부분의 관광지 이동은 버스로 움직이게 됩니다.

 

유명한 관광지로 향하는 버스는 다들 와르르 내리고 하니 길 잃어버릴 염려는 적은 편이죠.

일본인 관광객도 많았지만, 몇년 전과 비교해 월등히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이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 하네요.

자전거 여행중인 2010년만 해도 이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후시미까지는 20분 정도 걸려서 가볍게 도착했지만, 문제는 돌아가는 버스가 30분에 한 대씩 밖에 없기 때문에

구경 시간과 버스 타는 시간을 잘 계산해가며 움직여야 했죠.

엄니의 몸 상태를 생각해서 약 2시간 정도만 구경하고 바로 버스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쿄토에서도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사람은 꽤나 많은 편입니다. 군것질 거리도 많아서 이 정도면 나카우에서 먹을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돈 많은 신사다 보니 시원시원하게 넓고 건물도 큼직큼직합니다.

이나리 신사에 대한 이야기는 제 블로그의 산인(参院) 여행기에 적어놨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생략합니다.

 

개인적인 호불호에 의해 전 조용하고 아담한 이나리 신사를 좋아하지만, 후시미도 워낙 볼거리가 많아서 훌륭한 관광지임에 틀림없죠.

 

 

 

신사 들어가기 전에 엄니가 잠깐 앉아서 물 마시고 쉬는 동안 꽃사진이나 담아봅니다.

후시미 타이샤는 코스를 전부 돌게 되는 경우 거의 산을 한바퀴 오르내리게 되기 때문에

엄니와 함께 그렇게 돌아보기엔 부담이 되고 해서, 신사 뒤편의 센본 토리이(千本鳥居)만 통과하는 걸로 마치려 합니다.

 

 

 

엄니가 자주 가시던 단체 관광 여행은 중간에 군것질할 시간이 별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방속에 물과 간식거리를 들고 움직이는게 습관이 되신 것 같네요.

 

제 경우엔 홀로 여행 때 즐거움이 이것저것 군것질 해 보는 것이라

굳이 먹을 거 넣어와서 먹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는 게 차이점이라 할까요.

 

 

 

쿄토는 어느 문화제든 시내에서 버스 타고 30분을 넘기지 않는 거리에 위치할 만큼

도시 전체가 문화제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입니다.

 

유명 관광지는 어마어마한 관광객과 함께, 스폰서 형식으로 기업들이 제공하는 봉납금으로 유지가 될 정도로 규모가 크죠.

이곳은 서기 700년경 외부 씨족인 하타(秦)씨쪽을 기리는 신사로 세워졌는데, 하타 씨는 현재 신라 혹은 백제의 후손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실제 신사는 화재로 소실된 후 1499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하네요.

 

 

 

신사 입구 앞에서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안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 중 매우 독특한 패션을 자랑하는 여성 두 분이 서 있어서, 죄송하지만 망원으로 스윽 당겨 뒷모습만 찍어 봤습니다.

 

앞모습까지 찍으려면 역시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전 새가슴이라 그런 시도를 하기가 힘드네요.

저런 걸 무슨 패션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특별한 예식 행사가 있을 때 악기를 연주하거나 안무를 피로하는 무대입니다.

후시미 타이샤는 관리 상태가 최상급이라 경건하고 깔금해 보이긴 하지만 시간의 흔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점이 조금.

 

기분탓인지 모르겠는데, 엄니 복장이 다른 동년배 관광객들에 비해서 좀 눈에 띄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목도리로 포인트를 준 것이 패션 센스란 것일까요.

 

 

 

이나리 신사가 원래 농사의 신을 모시던 곳이라

예전부터 사업 번창과 안녕을 위해 기업들의 기부가 많은 곳이기도 하고

천년 수도 쿄토에서도 이름난 후시미 지역이다 보니, 관광객들 역시 줄서서 세전함에 돈 넣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등산객들이 돌맹이 하나씩 모아올려 만드는 탑과 비슷한 느낌과 비슷한데

작긴 하지만 돈과 함께 기도를 올린다는 게 어찌보면 일본인의 실리적 성격이 표현된 것 아닌가 싶더군요.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몇몇 특정한 사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좀 아시는 분들은 그걸 기대하고 계시겠지만, 저와 엄니는 일단 그거 보기전에 주위를 좀 둘러봅니다.

 

사람이란 게 바라는 건 또 얼마나 많은지, 끝도 없이 늘어선 에마와 종이학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네요.

신사는 그냥 빌고 싶은거 빌면 되니까 딱히 학문과는 관계 없는 이곳에서 합격하게 해 달라는 소원 쓰는 것도 잘못된 건 아니지만

쿄토에는 학문의 신이 살고 있다는 텐만구도 얼마든지 있는데 왜 이곳에서 소원 비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뭔가 둘러보면 볼수록 부유한 신사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게, 신들 세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듯 합니다.

 

 

 

에마는 둘째치고, 이 종이학은 정말 정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자세히 보니 한 줄로 꿰인 종이학을 모아서 한 묶음으로 걸어놓은 듯 한데

아마 친구들과 함께 한 줄씩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 현실주의라자 그런지 이런 거 정성으로 만들어서 소원 비는 일을 해 본적이 없군요.

 

 

 

그래도 그 작은 소원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렇게 저한테 좋은 셔터찬스를 남겨주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개인적인 소원이라도 결국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니는 애마를 보시더니 적어서 걸지 말고 기념품으로 사 가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역시 리얼리스트.

 

 

본당 주변을 구경하고 난 뒤 드디어 후시미 이나리 탸이샤의 진짜 볼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전에 이곳의 주인격이나 마찬가지인 여우상도 한 번 찍어주고.

 

농사의 신인 이나리노카미의 사자 역할을 하는 여우이기 때문에 입에 벼이삭을 물고 있습니다.

여우는 원래 신이 아니지만 워낙 유명해지나 보니 이나리 신사가 여우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죠.

 

 

 

후시미 타이샤는 제 입장에서 참 복잡한 상념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의 입구에서부터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들어 진 신사이다 보니 풍경도 좋고 자연에 둘러싸여 산책하는 재미가 있는 곳인데

원래 붐비는 쿄토 안에서도 관광객이 끊일 날이 없는 곳이라서, 혼자 느긋하게 거닐어 본 적이 없네요.

 

제가 이곳을 매우매우 좋아했다면 새벽에 와서 환상적인 사진을 담아보겠지만

앞서 말했듯 센본 토리이 하나 빼고는 너무 호화스러운 느낌이 나는 신사라서 그렇게까지 힘을 쏟고 싶지도 않고 말입니다.

 

사진만을 위해서 간다면 새벽부터 해질 녘까지 하루종일 투자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곳이긴 합니다.

 

 

 

쿄토, 혹은 일본 관광 가이드에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이 모습.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를 유명하게 만든 센본 토리이(千本鳥居) 입니다.

번영을 바라는 상인들이 하나씩 하나씩 봉납한 토리이가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이 풍경은

맑은 날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햇살이 비칠 때가 가장 환상적이라고 하더군요.

 

혼자서 조용히 이 길을 걸으면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된다고 하는데

사실 이 사진도 관광객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단 몇 초 사이에 간신히 담은 녀석이죠.

 

태양 각도가 적당히 떨어질 때 삼각대 가져다 놓고 조용히 찍을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유명한 사진가가 아닌 이상 그런 사치를 누리긴 힘들겠죠.

 

 

 

토리이 터널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고, 굵고 큰 토이리와 작고 촘촘한 토리이 등 여러가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산을 한바퀴 도는 길 사이사이에 계속 토리이가 늘어서 있기 때문에

이 신사를 한바퀴 돌려면 거의 2시간 가까운 낮은 산행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엄니 체력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패스.

 

보통 버스 관광으로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센본 토리이의 입구 부분만 통과해서 보이는 이 곳 사당까지만 보고 돌아가는게 일반적이죠.

 

센본 토리이를 통과하면 조그만 사당이 나오는데, 거기 걸려있는 애마는 본전 쪽의 애마와는 사뭇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여우 얼굴 모양을 한 애마에는 귀와 눈썹만 그려져 있는데, 자기가 그리고 싶은 나머지 표정을 그리면 됩니다.

별의 별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그런 다양한 표정 자체가 여우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보면 좋은 마케팅 포인트를 잡았다는 느낌이 드네요.

 

 

 

토리이는 기업들이 설치하는 커다란 녀석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역시 상술은 굉장하다고 해야 할까요. 경내 판매점에서 개인 관광객들을 위한 미니 토리이도 판매중입니다.

이렇게 기둥에다가 자기 이름 쓰고 헌납하는 것이죠. 애마에 비해서도 결코 싼 가격은 아닐 것 같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여기다 써 놓고 돌아오기보다는 아마 사서 갖고 갈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네요.

 

여전히 사람이 많지만 엄니는 여우 얼굴 애마를 보면서 재밌어 하십니다.

이 일대는 본전 쪽과 달리 길도 좁고 센본 토리이 촬영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좀 북적이고 있었죠.

엄니 체력을 생각해서 이 부근까지만 구경하고 돌아가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