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정말로 자기 가족들의 묘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도 있다.

꽃과 간단한 음식 따위를 올려두고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것은 예의가 아닐것 같아서 패스.

좀 전의 흰개미 묘석도 충격적이었지만, 왠만큼 알려진 대기업들이 세운 묘석도 상당히 많다.

아니, 대기업이 아니라 일본 내에서만 조금 알려진 기업들의 묘석도 상당수.

 

대부분 자사 공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명목을 비는 묘석인 듯 한데, 기업이라 자금이 빵방해서 그런지

일반적인 묘석보다 크기도 크고, 조각상까지 설치해 놓는 곳도 있다.

 

개인 묘석보다 너무나도 크고 웅장해서, 이쯤되면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것인지 기업 자랑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진에 담지 않았다.

 

 

 

끝없이 줄지어 선 묘석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과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어쩌면 이렇게도 생장이 다른 삼나무가 자라고 있는지 신기하다.

중국의 메타쉐콰이아 나무도 삼나무의 일종이지만, 한국에는 이런 삼나무가 없다는 것이 특이한 점.

 

기원을 따지자면 야쿠시마(屋久島)나 시레토코(知床) 등,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수백년 전 인공적으로 조성된 삼나무 숲이긴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인공미는 사라지고 어엿한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듯.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묘석 주위를 깨끗하게 청소중이다.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꽃이나 캔 음료수, 비닐에 쌓인 먹을거리 등을 놔두고 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관리 없이는 온통 썩어나는 것들로 뒤덮힐 것 같다.

 

묘석 앞에는 1엔짜리에서부터 100엔짜리 동전도 많이 올려져 있는데, 이곳엔 그런 거 가져가는 사람은 없는가 보다.

마음먹고 털어가면 아무리 동전이라도 기십만원어치는 우습게 모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인데.

 

 

 

이곳에 묘석을 세우는게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닌데, 이런 애완견의 묘석까지 놓여있는걸 보면 여러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엄니처럼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나처럼 매사에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사람도 맘대로 못 눕는곳에 돈X랄 해가며 동물 비석까지 세우는구나. 이놈의 세상~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고.

 

아, 내세의 명목을 비는 건 굳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동일한 것이구나. 이게 불교의 원리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묘석을 세우는거야 어쨌든 좋은 의도지만, 코야산이라는 의미깊은 위치 자체가 빈부 측정의 척도로 쓰이는 것 같아서 약간 마음에 걸린다.

 

이곳에 이 정도 묘석 세우는데는 싸게 잡아도 기본 3~4억은 든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묘지에서 가장 씁쓸한 광경은 이런 동자상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니, 춥지 말라고 옷을 입혀주는 것이나

앞에 놓인 먹을거리도 아이들 입맛에 맞는 과자같은 것들이 많아서 더더욱 애잔하다.

 

나같은 독신도 사무치게 이해가 되는데 자식 가진 부모들이라면, 7살이 되기 전에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그 심정을 설명할 필요나 있을까.

엄니는 예순이 넘으신 지금도, 내가 어릴적 사고나 병으로 죽어버렸다면 당신도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가 없다고 단언하신다.

 

그 찢어지는 마음을 억누르고 억누르며, 단지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일념 하나로

이렇게 세워 둔 조그만 동자상들의 모습은, 그 의미를 안다면 이 곳을 찾는 전 세계의 누구라도 아련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배길 초반에는 대부분 반짝반짝한 새 묘석들이 줄지어 있지만

가끔씩 이렇게 사람이 손을 놓아버린 듯한 녀석들도 눈에 들어온다.

자리를 꾸준히 차지하고 있고, 새것으로 보이는 양초가 남아있는 걸로 봐서

아직 이곳에서 명복을 비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벗겨진 페인트와 녹슨 철판도 왠지 이곳에서는 그리 흉물스럽지 않다.

 

 

아직까지는 정돈도 잘 되어있는 산책길 같은 분위기다.

 

그 빼곡하던 묘석들 사이에 공터가 있길래 뭔가 싶었는데

이번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를 세우기 위한 예정지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대참사의 흔적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모습에 잠깐 발걸음을 멈춘다.

 

 

 

온통 하늘을 찌를듯한 푸른색 천지에 이런 단풍이 서 있는 모습은 극히 인상적.

인공적으로 걔량되어, 사시사철 저런 색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은적이 있는데

절경 속의 절경이랄까,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인상적인걸로 치면 이 묘석을 빼놓을 수가 없다.

어느 유쾌한 사람이 만든 '낙서총'이라는 이름의 이 묘석은, 낙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행위이니

하지 말라는데 하지 말고 이곳에서 신나게 낙서라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묘석 자체도 여기저기 낙서처럼 만들어져 있는데, 그 옆에 정말 낙서할 수 있는 판이 놓여져 있다.

이렇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인생을 잘 산 사람이 아닐까 싶다.

 

 

 

딱히 표시된 건 없지만 이 안쪽부터는 분위기가 급변한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포장된 현대인들의 묘석들이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전의 묘석들이

참배길 주변 뿐만 아니라 길이라고 할 수 없는 산속 구석구석에까지 빼곡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으로서의 진면목은 이곳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급변하는 분위기만큼 왼쪽 다리도 아주 심각한데

어떻게든 버티겠지 싶던 다리는 계속 무리를 줘서 그런지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목발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힘을 거의 줄 수가 없다.

 

절뚝거리며 어떻게 전진은 하고 있지만 게속 그러다 보니 오른쪽 다리는 근육이 아주 터질듯 하다.

코야산 탐방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이미 일반인 걷는 속도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으니.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 갈 수도 없으니 그냥 어쨌든 참으면서 계속 걷는 수 밖에.

 

 

 

걷다보면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이 쉽게 납득이 간다.

이 정도 규모와 역사를 가진 묘지는 확실히 세계적으로도 드물거라 생각.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거대한 삼나무와 셀 수도 없는 묘석들 뿐이다.

 

길이 나 있지 않은, 시야가 보이는 끝까지 묘석이 빼곡하다. 현실감각이 없어질 정도의 풍경.

코야산이 성지로 추앙받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느껴진다.

 

 

 

입술과 볼에 연지까지 칠한 동자상이 어째 되려 애처로운 모습이다.

동자상에는 대부분 이름도 적혀있지 않은데, 아마 가족뿐만 아니라 참배객 모두가 명복을 빌 수 있도록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유독 동자상들 앞에는 동전이 많이 놓여있는 것이 인상적.

 

 

 

오쿠노인 참배길은 홍법대사의 영령을 기리는 고뵤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오래된 묘석들로 채워진다.

고뵤에서 시작한 곳이니 당연한 결과지만, 그 덕에 참배객들은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듯한 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인공미 느껴지는 묘석들도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색이 바래고 이끼가 끼면서 오쿠노인의 한 부분이 되어가는 듯 하다.

 

수백 년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은 굉장히 신선하다. 점점 현실세계와 멀어져 가는 듯한 느낌도 들고.

 

 

 

추정 20만개 이상의 묘석이 안치된 곳인데다가

사람 이름 한자는 일본인들도 제대로 읽기 힘든 터라, 나로서는 누가 누구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물론 일본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유명 인물들의 묘도 전부 이곳에 있다.

 

실제로 시신이 안치된 건 아니고, 극락왕생 기원과 현세에서 저지른 무수한 악행, 살상을 정화하기 위한 의미에서

표면적으로나마 이곳에는 꼭 묘비를 세우곤 했으니까.

왠지 나쁜 짓 실컷 벌여놓고 회개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이 사상, 어딘가와 많이 닮았다.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던 입구와는 달리 이곳부터는 삼나무 그늘에 뒤덮혀서 그 분위기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절룩거리는 발을 이끌고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기가 힘들어 몇 걸음 가지 않아 셔터를 누르고 누르게 된다.

 

이곳 사진을 전부 블로그에 올려서는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가 없어서 적당히 추려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오쿠노인 사진은 포스팅은 몇 번을 더 해야 간신히 마무리가 될 듯 하다.

이런 곳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찾아가 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서,

실제 풍경의 10%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사진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면 나로서도 뿌듯할 듯.

 

 

 

해발 1000m 가량 되는 코야산이고, 안개가 굉장히 짙게 드리우는 곳이라서

묘석이 자연과 동화되는데 적합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원인과 결과가 묘하게 얽혀있는 것도 이곳의 가치라고 할 수 있을 듯.

 

왼쪽의 묘비에 살짝 보이는 문양은 일본 특유의 전통이기도 한데,

완전한 천민 계급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서민들 역시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문양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 여행때 신세를 졌던 나가노현의 산골마을 가족도 물론 그 문양을 걸어놓고 있었지.

여자는 보통 시집갈 때 문양을 가지고 가기도 하지만, 남편 가문의 문양을 쓰는게 일반적.

 

유명한 군주들의 문양이야 알려질대로 알려져 있고, 역사학자들의 주요한 연구원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한국에 족보가 있다면 일본에는 가문의 문양이 있다고 할 정도로, 현대까지 내려오는 표식이다.

 

이곳 오쿠노인의 묘석에도 그건 예외가 아니라서, 연구를 해도 끝이 없을 정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일본 역사학자들의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으로 유용하게 활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