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의 통증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나로서는 오디오 가이드를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이곳까지 오는 사람이라면 7천원쯤 지불하고서라도 꼭 오디오 가이드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설명이 극히 제한적이고, 그나마 일본어와 어색한 영어 안내문밖에 없는 곳이 많아서
역사적 향기를 간직한 수많은 묘석들에 대한 설명은 전적으로 오디오 가이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으니까.
한국어 버전도 있다고 하니, 몸만 정상이었다면 훨씬 알차게 즐겼을 터였는데
그 당시엔 오디오 가이드에 대한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발목 통증이 심했다.
저런 조그만 표지판을 보고 그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지금와서 다시 안내소까지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가이드가 없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점이 있긴 있다.
고지대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오쿠노인은, 목재나 금속재로 만든 것들이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꽤나 대단한 모습을 한 묘석조차도 전부 석재로 되어 있다는 점.
중요문화재로 선정되어 있을 만큼, 꽤나 오랜 시간 지난 묘석인데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주위 환경과 절묘하게 조합되어가는 모습이 실로 인상적이다.
군데군데 보강을 거친 모습이 조금 어색한 것도 사실이지만 훌륭한 볼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이 정도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한다면, 세워질 당시에도 상당한 권력가였을 듯.
코야산에 묘석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약 1000년 전인데, 실제로는 500~600년 전의 묘석이 주를 이룬다.
물론 셀 수도 없이 부서지고, 그 위에 다시 세우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연도는 거의 알 수 없지만
현대 일본 전통건축 양식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저런 기와와 처마의 모습은, 당시 중국과 한국의 양식의 틀이 여전이 남아있었다고 해도 되겠지.
불교 건축물로는 유명한 오륜탑.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빠릿빠릿한 녀석보다 이렇게 세월의 흔적을 가진 녀석이 훨씬 보기 좋다.
이런 식으로 보존되기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기도 하고.
이곳은 예전에 세워진 몇몇 특정 묘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고
참배길 자체가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 자체가 이 곳의 신비성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흔적을 느끼게 해 주는 모습.
날려나간 거목 위에 다시 새로운 삼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나면 이 녀석도 주변의 거목들처럼 높디 높게 솟아있겠지.
아마 마야나 잉카 문명처럼, 일본이라는 나라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 오쿠노인의 참배길은 여전히 남아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당길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소원 종이. 설마 이런 곳에까지 매달려 있을줄은 몰랐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낙서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이긴 한데, 주변을 훼손하진 않으니까 괜찮으려나.
저건 보통 소원을 적어서 나뭇가지에 매다는 것인데, 이런 묘지 가운데서 무슨 소원을 비는지는 모르겠다.
오쿠노인 참배길은 V 자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앙에 홍법대사의 영령을 기리는 고뵤가 위치한다.
그래서 고뵤 부근을 제외하면 입구와 출구의 위치가 다르다. 거리상으로는 약 2km 정도.
고뵤에 다가가면 확 트인 공간과 함께 기념품을 파는 곳이나 휴게소, 영령전, 사찰 등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평상시라면 산책 축에도 들지 않는 가벼운 길이지만 나로서는 거의 극기훈련 하는 기분.
잠깐 생각해보니, 이곳은 눈이 쌓인 겨울에 와도 그 경관이 놀라울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비가 와서 안개가 자욱히 낀 모습도 이 곳의 경건한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고.
푸르름을 마음껏 발산하는 5월 중순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감상하는 오쿠노인도 좋긴 한데
뭐랄까 이렇게 맑고 화창하면 분위기가 조금 안 사는것도 사실인 듯. 그래도 사진 담기엔 좋다.
조금만 더 가면 고뵤에 도달하는데, 그 전에 눈에 들어온 이 탑은, 고뵤 자체보다 더 인상깊게 다가왔다.
'무연불' 이라는 제목의 탑으로, 이름 그대로 연고가 없이 방치된 석불들을 한 곳에 모아서 세워 놓은 것.
오쿠노인에 산재해 있던 수만개의 석불들을 이곳으로 모은 이유까지는 모르겠다. 묘석을 세우는데 방해가 되어서 그런가?
일반적으로 이런 조그만 석불들은 어린 아이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별할 것 없이 이렇게라도 명복을 빌곤 했다.
이제는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수십, 수백년 전의 석불들이 한데 모여있는 모습은 뭔가 형이상학적인 느낌.
상당히 오래된 것들인데다가, 원래부터 그렇게 정교하게 조각되지 않은 석불이기 때문에
지금와서는 얼굴의 형체조차 사라져 버리고, 그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흔적만이 남아있다.
오쿠노인은 아직도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깊숙한 곳에 방치된 석불들이 꽤나 많은데
가난한 자들의 노력이라고는 하지만 석불은 당시 꽤나 비싼 축에 들어갔고, 오쿠노인 안에서도 도난 사건이 셀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이렇게 한 곳에 모여 도난당하는 일 없이 사이좋게 늘어서 있으니, 좋은 시절인 듯 하다.
중요 문화제로 지정되어 있는 수많은 묘석들과, 홍법대사의 고뵤 등이 아무리 중요하고 위대하더라도
결국 코야산과 오쿠노인이라는 이미지를 현세에까지 이어가는 원동력은
힘 없는 서민들이 한개 한개씩 공양했던 이런 조그만 석불들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권력자들에 의해 쓰여지지만 문화는 항상 가장 낮고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샘과 같으니까.
단순한 돌맹이에 불과한 물체에 정성스럽게 헝겊을 둘러주고, 타인을 위해 합장하는 그 마음가짐이야말로
홍법대사가 의도했던 불교의 정신이며, 세계 각국에서 이 곳을 찾아오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
이것도 아마 공양물이겠지.
성불이란 표면적으로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행위이지만
결국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겨진 사람은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죽은 사람에 대한 연민을 선택한다.
그렇게 본다면, 성불이란 결국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거라고 생각.
이 인형을 놓고 간 사람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평온해 졌을 것이다.
무연불 주변에는 확실히 아이들을 위한 공양물이 많이 보이는 듯 하다.
실을 뭉쳐서 만든 저것도 옛날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오쿠노인에 가서 동전 한닢이라도 봉납하고픈 기분이 든다면, 무연불 앞에서 하는게 제일 적절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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