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휴게소가 있는 곳까지는 도착. 화장실 한번 들어가고 나서 주위를 슬쩍 감상한다.

휴게소라는게 필요없어 보이는 길이의 참배길이지만, 나이 많이 든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까 있으면 좋을 듯.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는 사찰이, 옆의 나무와 참 단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카메라에 담아 본다.

 

 

 

사계절 내내 단풍나무인 듯 하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일까. 주위 풍경과 굉장히 대비되는 모습이 멋지긴 하다.

 

아무튼 주변 풍경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곳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곳이라서

떨어지는 사진 실력을 갖고 있어도 그럭저럭 찍으면 꽤나 보기좋게 나오는 듯.

지역이 지역이라 그런지 확실히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평일 낮에 여기 찾을 수 있는 젊은이란 나같은 관광객밖에 없긴 하겠지.

 

 

 

휴게소가 이렇게 멋들어지니, 이곳 오쿠노인 참배길은 어색함 없이, 어디 하나 조화롭지 않은 구석이 없다.

2015년이 고야산 개창(開創) 1200년이 되는 해라서, 그해 5월달은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참배객과 관광객이 몰려들 것 같다.

 

1년간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홋카이도의 시레토코(知床), 오카야마의 쿠라시키(倉敷) 였는데,

이곳 오쿠노인도 그 중에 당당히 들어갈 정도로 굉장히 마음에 든다.

 

1200년 기념으로 이곳을 처음으로 찾을 수 많은 관광객들은, 아마도 인파에 휩쓸려 고생 좀 하겠지만

그럼에도 분명 깊은 인상을 받고 오랫동안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추억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워낙 성지로 추앙받는 곳이다 보니 그 흔한 자판기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이 더욱 놀랍다.

일본에서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관광지라는 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히 희귀한 편.

휴게소도 얼핏 보니 먹을 걸 파는 곳은 없는 듯 하고, 노인들이 앉아서 TV의 고야산 소개를 보고 있다.

 

 

 

휴게소 역시 근간에 지은 듯한 느낌은 나지 않는다.

정교하게 지어서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인지, 정말로 오래된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양 건축물에서는 항상 처마 밑과 지붕의 흐름, 단청의 모양 등을 가장 유심히 살펴보는데

이곳 오쿠노인의 건축물들은 오사카 안의 왠만한 전통 건축물보다 훨씬 미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이곳이 속한 와카야마(和歌山)현은 발전도 더디고 인구도 킨키 지역에서 가장 적은 산골인데

정말 코야산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다. 수백년 전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해 이곳을 찾은 참배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도 예전 참배객과 같은 의상을 하고 순례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

그런 사람들과 일반 관광객을 위해 예전부터 이곳의 백여 개 사찰들에서는 템플 스테이가 가능하다.

여유가 있다면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하지만, 금액이 왠만한 일급 호텔 수준이라서 나한테는 무리.

 

불교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기도 하고, 모든 숙박실에 열쇠가 없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나 같은 사람은 카메라 장비를 그런 데 내려놓고 돌아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역시 속세인의 번뇌.

 

 

 

자판기 같은 전자기기가 이곳에 어울릴 리가 없으니, 없는편이 훨씬 낫긴 한데

그래도 기념품이나, 불교식으로 소원 비는 각종 도구들은 팔고 있다.

 

종교란 개인적인 소망 들어주는데 이용하는 녀석이 아니라는 지론을 같고 있기에 관심은 없지만

참배객인지 홍법대사인지 모를 마스코트 캐릭터 스트랩이라던가 하는건 그럭저럭 볼만해서 잠깐 구경해 본다.

본인이 쓸 생각은 없고, 이런 거라면 여행 선물로 남한테 주기에는 적당할 것 같은데

뭐랄까, 내 지인들에게는 그런 선물 주는것보다 그냥 여기 한번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서 구매는 하지 않기로 결정.

 

지면에 내딛는 힘의 80%를 오른발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이젠 왼발만큼이나 오른발도 피곤하다.

휴게소에서 앉아버리면 다시 일어나는데 상당히 고생할 것 같아서 잠시 숨만 고르고 다시 출발.

사하라 사막 마라톤 당시 체크포인트에서 주저앉아 잠시 쉬고나면, 일어나서 출발할 때 훨씬 아프고 힘들었다는 경험상.

 

 

 

기념품점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고, 고뵤 참배할때 봉납하는 도구들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할까.

오쿠노인에서 가장 세속적인 건물이긴 한데, 건축 양식은 후기 카마쿠라(鎌倉)의 흔적이 보여서

어지간하면 다른 역사적 건축물들에 비해 좀 현대적이고 이질적인 경향이 있는 이런 건물도 거의 위화감이 없다.

 

이런 곳에서는 왠지 마음도 경건해 지는 듯 한데, 화장실 근처에서는 공사 인부들이 담배를 피고 있는걸 봐서 꼭 그런것만은 아닌 듯.

오쿠노인 참배길은 전부 금연인 걸로 알고 있는데, 노동자들의 휴식 시간에는 역시 빠트리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담배가 천박한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겨난지 40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뭐.

 

 

 

난 지금 무슨 고행중인가 싶을 정도로 왼발 통증이 심하다.

몸을 생각해서 오늘 푹 쉬었다면 붓기가 어느정도 가라앉았을 테지만

여기서 이런 풍경을 감상하는걸 포기하는 것도 통증만큼이나 아쉽고 괴로운 일이다.

 

걷다가 가끔씩 발을 잘못 디디면, 매운 걸 먹었을 때처럼 본능적으로 쓰읍~ 하고 숨을 들이키게 된다.

산길치고는 굉장히 평탄한 길이지만 어쨌든 산길은 산길이라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고뵤가 코앞이니 이제 절반 정도 걸어온 셈인데, 문제는 코야산의 볼거리가 오쿠노인만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

 

원래대로라면 오쿠노인을 빠져나와 반대쪽 끝인 다이몬(大門)까지 느긋하게 경치 구경하며 걸어간 후

단상가람과 영보관(霊宝館)을 감상할 생각이었는데, 2km 정도 되는 그 거리를 걸어서 가는건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오쿠노인이 약 3km 정도, 이곳만은 도보 이외에 어떤 이동수단도 없으니까 죽기살기로 걸어가고 있지만

다이몬까지는 결국 짧은 거리라도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다행히도 스루패스덕에 버스비는 공짜.

 

 

 

이 다리 앞에서부터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일본 문화재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뭘 이런 것까지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사진 금지 구역이 많다.

중요 문화재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라면야 얼떨결에 플래시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테니 이해가 되지만

사방천지 뻥 뚫려있고, 다리 하나 지나는 것 외엔 바뀔 것도 없는 이런 곳에서도 촬영 금지라는건 조금 의아하다.

 

뭔가 엄숙함과 경건함을 위한 조치라고 개인적으로 예상해 보지만, 멋들어지게 수식했을때나 그런 거고

간단히 말하자면 사진 따위로 귀중한 볼거리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쓸데없는 자부심이란 것이겠지.

사진이란게 마이너리티 리포트 세대처럼 현실감 100%인 입체영상도 아니고,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촬영 금지라는 푯말이 일본 전역에 너무 많다.

 

그러라고 하니 일부러 규칙 어겨가면서 찍지는 않지만, 다리 넘어서 사진 찍는다고 오쿠노인의 경건함이 사라지진 않는다고 본다.

루브르 박물관도 플래시와 삼각대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데 말이지.

 

아무튼 망원렌즈도 가지고 왔으니 저 멀리 보이는 고뵤도 한장 남기고 다리를 건넌다.

앞의 관광객 단체를 이끄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세심하게 설명을 하고 있던데

조금조금씩 듣는건 몰라도 아픈 발목을 핑계로 느리게 걸으면서 설명 내용을 전부 다 들어버리는건

약간 도둑질 같은 느낌도 들어서 그냥 들리는 말만 듣고 지나가 버린다.

 

다리 건너서 고뵤까지는 이십 미터정도 될 법 한데, 이 안의 묘석들은 대체로 일본인이라면 알고있을만한 유명 인물들의 것.

예전 총리대신 했던 사람 이름도 얼핏 들리는 걸로 봐서

홍법대사와 가장 가까이 있지만 그의 뜻과는 가장 동떨어진 묘석들이 모여있는 곳인 것 같다.

홍법대사의 사당에 가까이 가서 누울수록 더 큰 복을 얻을 거라는 허망하고 탐욕스러운 중생들의 작태.

 

 

 

고뵤 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

일본 전국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니 분위기가 사뭇 남다르다.

 

그룹을 이끄는 가이드 아저씨가 들어가기 전의 예절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난 그냥 신발 안 벗는 곳까지 가서 내부 모습만 감상하고 가볍게 목례한 후 다시 빠져나왔다.

다리를 건너서 카메라의 전원을 다시 켜고 이제부터 돌아갈 길을 한장 담아본다.

이 길로 주욱 돌아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좀 전과 다른 방향을 선택하면 된다.

 

나만 그런건 아닌지, 몇몇 사람들이 나처럼 다리 바로 앞에 서서 고뵤의 모습을 담고 있더군.

 

 

 

 

잘려나간 나무 둥치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서 보기 좋은데

제대로 터를 잡지 못하고 이런 곳 사이사이에 놓여진 석불도, 과거나 현재나 고단한 서민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떡하니 묘터 잡아서 늠름하게 서 있는 묘석보다 이런 녀석들에게 합장 한번이라도 더 하겠다.

 

 

 

죽은 사람도 언젠가는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지론으로 보자면

아무리 반듯한 묘석이라도 결국 시간에 침식되어 이렇게 점점 형태를 잃어가는 게 본모습이라고 생각.

한국의 묘소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다 보면 슬금슬금 깎여나가서 결국은 주위와 동화되어 버리는게, 그게 좋다.

 

아버지가 묘석을 별로 안좋아하는 이유도, 천년만년 지나도 계속 그대로라서 뭔가 이상하기 때문이었으니.

그런데 이곳에서는 묘석도 점점 사그라져 가는게, 훗날엔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 있겠지.

순환의 필연성과 그 아름다움은 사람이나 비생물이나 마찬가지다.

 

 

 

왔던 길과 다른 쪽으로 나 있는 참배길로 들어선다.

30분이면 쉽게 돌아볼 거리를 한 시간 반씩 잡아먹고 있으니, 통증만 아니라면 느긋한 구경에 적합한 속도인데.

어제 겨우 그거 무리한 것 가지고 발목이 이 모양이라는게 이쯤되니 뭔가 억울하게까지 느껴진다.

한두 번 해본 일도 아닌데 왜 이번엔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왼쪽 발을 들어올리는 것도 부담되서 이제는 아예 왼다리를 쭉 편 상태에서 지면에 원을 그리듯이 휘적휘적 돌려가며 걷는다.

영 꼴불견이지만 그나마 이게 제일 덜 아프니까. 그런데 가끔 어디 툭 걸리고 할 때면 지옥이 엄습해 온다.

 

 

 

이 정도 한자는 다들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계단을 올라가면 뭔가 볼만한 묘석 혹은 사당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리가 멀쩡했다고 해도 저기 올라가는 수고따위는 하고싶지 않네.

 

일본에서는 당연하게도 전국시대의 영웅으로 명성이 높지만, 한국인이라면 유전자에 거부감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을 듯.

전국시대를 막 끝낸 당시의 일본은 거의 들개같은 야만과 혼란의 집합체였고, 장수들에게 하사할 토지가 턱없이 부족하던 때

하필이면 얼토당토 않는 방향으로 머리 굴린다는게 조선 침략이었으니... 지네들 밥그릇 싸움에 옆집 끌어들인다는 발상이 참 기가 찬다.

 

한국인 입장에서라면 그냥 올라가서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저 녀석을 위해 계단 올라가는 수고도 아깝다.

 

일본 역사를 공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자기가 아는 일본 인물 90% 이상은 이곳 오쿠노인에서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유랑 시인인 마츠오 바쇼(松雄芭蕉)의 묘석이라면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지금 이 다리로는 그저 참배길을 온전히 빠져나가는데만 전력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포기.

 

 

 

오륜탑에 생명을 틔운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풍륜과 화륜 사이에 식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라, 문학적인 감상이 떠오르는 듯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각자 알아서 감상하는 편이 좋을 듯.

 

자신의 사진은, 본인이 브레송 정도의 대가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찍사 자신의 의도와 느낌을 설명해 주는게 좋긴 하지만

가능하면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고 각자의 생각을 간직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한 장이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사진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