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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해당하는 글들

  1. 2010.02.11  오사카(쿄토)여행기 9편 - 금각사 14
  2. 2010.02.10  오사카 여행기 8편 - 빛나는 우메다 공중정원 23
  3. 2010.02.09  오사카 여행기 7편 - 혼보 정원과 오사카성 12
  4. 2010.02.07  오사카 여행기 6편 - 비내리는 시텐노지 12
  5. 2010.02.02  오사카 여행기 5편 - 라멘과 전망대 18
  6. 2010.01.31  오사카 여행기 4편 - 명물 카레와는 연인도 아닌데 텐포잔 관람차 20

별관(?)에서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 후 아침 일찍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쿄토 당일치기 여행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빠릿빠릿하게 돌아다녀야 하는군요.
사실은 오사카 오고나서부터 빠릿빠릿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쿄토와 오사카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당일치기가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사실 쿄토는 느긋하게 둘러볼려면 1주일은 잡아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오사카 관광이 주 목적이었던 이번 여행에서는 그냥 맛배기만 살짝 보여주는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네요.

숙소인 에비스쵸(恵美須町)역에서 아와지(淡路)역까지 간 다음 한큐쿄토선(阪急京都線)을 타고
쿄토 카와라마치(河原町)역까지 가는데 대략 45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아침시간이라 사람이 많네요.
아와지역에서 카와라마치역까지 가는 전철은 급행, 쾌속, 준급행 등등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잘 알아보고 타야 합니다. 모든 역에 다 정차하는 전철을 잘못 탔다간 1시간 이상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열차가 올때마다 방송으로 '카와라마치역까지 가려면 다음 열차를 타는게 더 빨리 도착합니다' 라고 말해주는데
관광객들에게 그게 쉽게 들릴지는 의문이니까, 전광판을 잘 확인해가며 타는게 좋겠죠.


열차의 종작역인 카와라마치역은 JR 쿄토역에서 꽤나 가깝기도 하고, 쿄토 시내의 중심가중 한 곳이라서 이동하기도 편합니다.
쿄토 버스 1일 승차권을 구입한 후 바로 금각사행 버스를 탑니다.
1일 승차권이 있으면 하룻동안 쿄토 시영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민영버스는 무료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이번에 한번 당했습니다. ㅡㅡ;)
왠만한 관광지는 시영버스로 충분히 쉽게 이동이 가능하기도 하고,
쿄토는 오사카에 비해 전철이 구석구석 뻗어있지 않기 때문에 버스가 최적의 이동 수단입니다.

아침부터 버스 안엔 한국인 관광객이 수두룩하네요. 방학이라서 그런가.
근데 이 친구들은 분명 금각사를 가는 길일텐데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버렸습니다. 뭔가 착각한 듯.


2년만에 보는 쿄토의 풍경이 참 반갑더군요.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제대로 된 관광이나 해보자 싶어서 무작정 내려온 쿄토였는데
그땐 자전거 여행의 피로가 쌓인 터라 뭔가 몽롱한 정신으로 여기저기를 쏘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금각사(金閣寺)는 쿄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중에 한곳인데요.
사실 친구와 동생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면 굳이 제가 이곳을 찾아가진 않았을 겁니다.
평생 한 번만 와 봐도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곳의 실제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인데, 금박을 입힌 정자가 워낙 유명해서 언제부턴가 금각사란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쿄토 외각에 위치한 한적하고 조용한 사찰이라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쿄토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터라 자칫하면 엄청난 인파에 쓸려다닐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번 여행땐 관광객이 아주 적어서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네요.
지난번 혼자 갔을 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아주 바글바글거려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기가 힘들었는데.


쿄토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는 금각사의 모습입니다.
조용한 연못과 철저하게 인공적으로 조경된 소나무들, 그리고 화려한 금빛 정자는
마치 별세계를 뚝 떼어다 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 아름다움 만큼이나 이 금각사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는데요.
원래 금각사는 1397년 쇼군의 별장으로 만들어졌지만 1950년에 한 수도승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건물은 1955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정말 세심하게 복원이 잘 되어있지만
역시 원 건축물과는 그 느낌상 아쉬운 부분이 많죠.


방화를 일으킨 수도승은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소설이 전후 일본문학의 최고봉으로 뽑히는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금각사(金閣寺)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스승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미시마 유키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다면 일본의 어느 작가가 그 자격이 있겠나'라고 그의 문학성을 극찬하기도 한 만큼
그의 탐미주의에 대한 깊은 고찰과 광기가 묻어나는 최고 대표작 금각사는 전후 일본문학의 정점을 찍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후 일본문학을 공부하면서 금각사를 읽지 않으면 공부 헛한거나 마찬가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할 만큼
소설 금각사는 저기 보이는 실제 금빛 정자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공포스러운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말년엔 극우주의자로 여러 기행을 벌이다가 할복 자살을 선택한 미시마 유키오라 한국에서는 그냥 또라이 취급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광기어린 집착과 고집, 오만이 없이는 금각사와 같은 소설이 탄생할 수 없었기에 더더욱 연민의 정을 느끼는 작가입니다.
금각사를 불태우던 자신의 작품 속 승려와 결국 비슷한 최후를 맞이한 작가의 모습은,
어찌보면 그렇기 때문에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의 칭호를 받기에 손색이 없는 게 아닌가 싶네요.

일본을 대표하는 다른 탐미주의 작가인 타니자키 쥰이치로(谷崎潤一郞)의 페티시즘에 가까운 집착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미에 대한 두려울 정도로 순수한 집착은 마치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 1902)이나
영화로 치자면 베르너 헤이조그의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The Wrath Of God, 1972)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입장권 명목으로 받은 부적(?)을 갖고 즐거운 기념사진을 찍는 일행들.
소설의 광기는 어디가고 훈훈한 모습이 연출됩니다.


금각사의 아름다움이야 뭐, 말로하면 쓸데없이 칼로리 소비하는 것 밖에 안되지만.
실제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쿄토 반대쪽에 있는 은각사(銀閣寺)가 훨씬 중요합니다.

은각사는 원래 치쇼지(慈照寺)라는 이름의 사찰로, 금각사를 세운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의 손자인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할아버지의 업적을 모방해서 만들었습니다. 요시마사는 절의 바깥을 은으로 감싸서 금각사와 대칭을 이루려고 했지만
그 후, 후계자 문제로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혼란의 시대가 계속되는 바람에
결국 은각사는 은으로 덮히지 못하고 미완성된 채로 남아있게 됩니다.

이 은각사의 토쿠도(東求堂) 사당은 1485년 건립되어 지금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일본의 국보입니다.
진짜 은으로 덮혀버렸다면 오히려 빛이 바랬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할 만큼
금각사와 달리 아담하고 정갈한 조그만 정원과 연못이 어우러진 토쿠도 사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일본 사찰문화의 정수라고 할 만큼 화려하지 않은 미의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2008년부터 토쿠도 사당은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간 터라
지금은 돈 내고 들어가도 제대로 된 감상이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은각사는 코스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아쉬운대로 감상할 수는 있겠지만 기왕 감상하려면 최상의 상태에서 감상하는게 좋겠죠.
평생 쿄토에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도 아니고, 아쉬워할것 없이 이번엔 금각사만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실제 승려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금각사는 비록 1955년에 재건되었다고는 해도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유산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정말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소실 전과 거의 100% 동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당시엔 일본도 경제사정이 워낙 좋아서 거의 물쓰듯이 이런 문화제 수복에 돈을 퍼부을 수 있었죠.

따라서 현재 보는 금각사의 모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덕분에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네요..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곳입니다.
원래 별장으로 쓸 목적으로 이곳을 만들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 사후 사찰에 귀속되었지만
저런 곳을 만들어 노년을 보내려 했던 당시 일본 쇼군의 권력이란 참 놀라울 따름이네요.


저기엔 무엇이 적혀있었을까요.


금각사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이제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주변 풍경을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곳은 금삐까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실제로 산책로도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적어서 유유히 사진 찍고 놀면서 구경 잘했네요. 1년중 350일 정도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인데
용케도 이런 날에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성년의 날 덕분에 힘들었던 관광 일정을 이런데서 보상받는 듯.


사진 좀 찍어보라고 친구한테 맡겼던 디카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동생분이 직접 갖고온 똑딱이로 열심히 찍었죠.

차라리 동생분한테 디카를 맡기는게 좋았을지도.


바람도 심하지 않고 날씨도 적당하고
어제 시텐노지에서 비 쫄딱 맞아가며 강행군 했던 기억이 승화되어 갑니다.


중요 문화재까지는 아니지만 예전 일본의 휴게소(?)같은 분위기의 별장입니다.
서양 관광객들이 와서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구경하고 사진찍고 하더군요.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지만 이런 데서 포즈 잘 잡아주는 동생분의 사진도 좀 남겨줘야죠.


이런 곳에도 세전함이... ㅡㅡ;
한국 사찰도 뭐, 돈은 미친듯이 좋아하니 남 욕할 필요는 없지만.


금각사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아서 15~20분 정도면 무리없이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산책로가 끝나가면 이제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앉아서 차 한잔 할 수 있는 휴게소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느긋하게 저기 앉아서 주변 경관을 만끽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역시 좀 바쁘기도 하고...
15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지만 여기서 일본 역사와 미의식에 대해 담소를 나눌 만큼 내공이 출중하진 않은 고로
그냥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동생분은 기념품점에서 선물 몇개 챙겼습니다.
금각사를 빠져나와서 점심을 먹기위해 다시 카와라마치역으로 향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컷. 뷰파인더에 구애되지 마라고 소리쳤던 아줌씨가 누군진 모르겠는데
다양한 구도와 재미있어 보이는 화각을 이용하는 막간의 장난도 카메라의 즐거움이죠.

근데 필름카메라라서 돈이... 돈이... ㅡㅡ;

버스가 한동안 오지 않아서 정류소 옆의 자판기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뽑아먹었는데
제거 한입 먹어보고는 친구도 다른 종류로 하나 뽑아먹었습니다.


지난번 자전거 여행때도 한번 신세를 졌었던 회전초밥집 무사시노(武藏野)입니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는,
한마디로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초밥집이라 헝그리 여행자들이 마음먹고 한 번쯤 가기에 좋은 곳이죠.

한국의 회전초밥집과 비교하면 미안할 정도로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품질입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계란말이로.
계란말이의 폭신함과 탄력, 달달한 맛의 조화로 초밥집의 실력을 가늠한다는 말이 있듯이
요리사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초밥이 이 계란말이니까요.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


연어알도 튼실, 오이도 사각거리는게 적당히 풍미를 더하는군요.
한국 회전초밥집으로 따지자면 접시당 3천원~4천원 정도의 퀄리티입니다.
이곳은 접시 색깔별로 가격 차이가 있는게 아니라 모든 품목 균일가이고... 한국 돈으로 1800원 정도였던가?


아~ 강군이 이 사진을 보면 얼마나 괴로워할까. T_T
알면서도 여행기라는 명목으로 고문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죄많은 인간이군요.


이곳에 돌아다니는 초밥은 거의 종류별로 다 먹어봤습니다.
생선이 힘겨운 친구는 문어초밥이나 새우초밥이나, 그냥 초심자용으로 알맞은거 주워먹고 있군요.
이번만큼은 지갑 신경쓰지 말고 뜻한 바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먹고 먹고 또 먹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절제하긴 해서 요 정도로 끝을 봤네요.

그닥 많이 먹은것 같지도 않군요. 역시 무의식적으로 지갑 잔고에 대한 걱정이 앞선 탓도 있고.
하지만 아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참은 건 아니니까 만족합니다. 한국서도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 초밥을 먹을 수 있다면
아마 일주일에 세 번정도는 찾아가서 꼬박꼬박 먹어줄텐데 말이죠.

배도 채웠겠다 이제 쿄토에 와서 구경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표 볼거리 키요미즈데라(清水寺)로 향합니다.

해가 넘어갈 무렵 일행은 우메다(梅田)역으로 향합니다. 우메다는 북부 오사카시의 교통, 상업 중심지입니다.

남부 오사카의 요충지인 난바가 칸사이 공항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라면
우메다는 일본 칸사이지방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관문으로, 한큐선, 한신선, JR선등
일본 전국을 통하는 주요노선이 대부분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한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철과는 달리 일본의 전철은 국영, 시영, 민영 등 여러 종류로 나눠진 터라 노선이 상당히 복잡한 편이죠.
환승역을 공유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이름만 같지 출입구가 완전히 분리된 역도 많기 때문에
한국처럼 2호선 타다가 5호선으로 갈아타야지 하고 편히 생각하다가는 괜히 출구로 나가서 요금 더내고 갈아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이 우메다역은 전철뿐 아니라 신칸센 등 일본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곳이라
한신선 우메다역과 한큐선 우메다역, JR 우메다역이 각각 존재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난바 지역처럼 주위에 먹고 놀고 즐길거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상가 지역은
쇼핑하기에는 오사카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고, 비즈니스 중심지역이라 거대한 고층 건물들일 빡빡히 들어서 있는 모습도 볼만합니다.


일행이 목표로 한 스카이빌딩은 우메다역에서 15분~20분 정도 도보로 걸어가야 하는 곳이라
일단 근처 파출소의 경찰에게 물어물어 길을 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어~ 칸사이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남자 경찰이 조금 설명해 주려다가
옆의 여자사람 경찰분께서 그나마 표준어로 또박또박 설명해 주시는 덕에 이해하기가 편했네요.

확실히 토호쿠(東北)지방보다 칸사이(関西) 사투리가 더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아주 지렁이가 굴러가는 듯한 느낌.

다리가 좀 뻐근했지만 속도가 느려지는 친구의 등짝을 채찍으로 몰아쳐가며(?) 열심히 걷고 걸어
주유패스 무료 쿠폰의 마지막을 장식할 스카이빌딩(スカイビル)에 도착했네요.

이곳 스카이빌딩은 오사카시에서 7번째로 높은 건물로, 보시다시피 양쪽 건물 사이를 에스컬레이터와 아트리움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4개의 빌딩을 세우고 그 중간을 정원화 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건물을 2개까지밖에 세우지 못했다는군요.

쇼핑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특히 동생분은 모르겠지만 저와 친구는 윈도우 쇼핑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고로
이곳 우메다는 공중정원을 공짜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별로 찾아갈 만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로 기간이 만료되는 주유패스의 쿠폰을 마지막으로 사용할 때가 왔습니다.
아직도 저렇게나 많은 쿠폰이 남아있지만 실질적으로 저걸 이틀만에 다 돌아본다는건 불가능하죠.
가끔 미친척하고 저 쿠폰들을 다 쓰려고 방방 뛰어다니는 여행객들도 있긴 한데
그건 관광이 아니라 완수해야할 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듯한 비장함까지 느껴집니다. ㅡㅡ;
거의 한 곳당 15~20분 이상 체류해서는 안되는, 도대체 뭘 구경하러 가는지조차 알수 없게 되어버리는 극한의 도전이죠.


친구가 쿠폰 뜯기 신공을 발휘하는 동안 동생분은 지도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사진이나 열심히 찍고 있습니다.

야간이 되면 필카는 힘을 쓰기가 힘들기 때문에 낮동안 썼던 감도100 짜리 필름을 400짜리로 교체해서
최대한 쓸만한 녀석으로 만들어 놔야하기 때문에.

그냥 디카쓰면 되잖냐 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사진은 역시 그날그날의 느낌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최대한 필름으로 느낌을 내 보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닥치고 필름입니다.

그래도 이곳은 어제 방문했던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보다는 사람이 많이 있더군요.
우메다란 지역 자체가 워낙 번화한 곳이기도 하고, 역시 주유패스를 이용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습니다.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었는데, 역시 주유패스의 이익을 가장 잘 챙기는 쪽은 한국 여행객들이 아닌가 싶네요.


일단 전망대 내부는 WTC 타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높이는 WTC 타워가 훨씬 높기 때문에 약간 감흥이 덜할수도 있지만
베이 에이리어에 홀로 떨어져 독수공방중인 WTC 타워와 달리
스카이빌딩은 오사카시 최대의 번화가 우메다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기엔 이쪽이 더 좋을지도.

오늘도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된 일행은 제가 장노출로 사진 찍어대는 동안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중.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런 야경좋은 전망대 위에
2인용 캡슐 호텔같은걸 창가에 주르륵 배치해 놓으면 (매트릭스처럼)
커플들이 많이 이용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럼 너무 노골적인 랜드마크 러브호텔이 되어버리는건가. ㅡㅡ;


셀카찍기가 거의 불가능한 필름카메라지만
창분에 비치는 조명 덕분에 셀카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전망대 내부는 조명이 창문에 반사되는 바람에 야경사진 찍기가 힘들지만
WTC 타워와는 달리 이곳은 야외로 나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곳은 원형 정원이라 오사카시내를 360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분위기 좋더군요.
불행히도 삼각대가 없이는 장노출하기 알맞은 지지 장소가 없는고로 각도가 이렇게 하늘을 향하는 사진밖에 찍을 수가 없었네요.
뭐 이것도 나름 정취가 있는 것 같으니 만족합니다.

일단 뛰어내리려고 작정하면 멋있게 자살할 수 있는 곳이라 정원에는 경비원이 눈을 번뜩이고 있더군요.


위에서 두 번째 사진, 밑에서 스카이빌딩을 올려다 본 사진 중앙에 나온 공중정원을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레스토랑, 기념품샵 등이 위치해 있는데... 헝그리 여행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죠.

오사카 야경을 한바퀴 쭈욱 돌면서 구경한 후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동생분과 친구가 재미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이곳 공중정원은 야간이 되면 바닥이 반짝반짝 모래처럼 빛나는 야광 물질로 되어 있는데요.
빛을 밝혀주는 적외선 램프에 일행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의 형광물질이 반응한 겁니다.
PD 수첩이나 불만제로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법한 공포의 형광물질이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웃으면서 각자의 몸에 걸치고 있는 형광물질을 찾느라 바빴네요.
의외로 옷 여기저기에 형광물질이 많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천연 섬유로 만들었다는 제 버프도 아주 반짝반짝 빛을 발하더군요.
신발 쪽에도 환하게 불이 들어오고... 원래같으면 기분이 나쁠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여행의 재미있는 헤프닝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스카이빌딩 관람을 마치고 우메다역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위치한 거대 전자상가 요도바시 카메라(ヨドバシカメラ)에 들렀습니다.
이쯤되서 식사를 한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이곳 요도바시 카메라는 규모가 엄청나게 크더군요. 도쿄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요도바시보다 훨씬 더 커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카메라 매장에서 죽치고 싶었지만 그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라
옆에서 지루해할 일행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 바람에 그냥 밥이나 먹으러 올라갔습니다.

오사카 도착때부터 계속 먹고싶었지만 자금사정때문에 횟수를 제한해야 하는 초밥을 좀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양에 비해 가격이 좀 센편이긴 하지만 초밥 품질은 평범한 회전초밥보다 훨 나은 편입니다.


저는 일단 성게알과 연어알이 포함된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죠.
탱글탱글한 연어알이 저를 유혹하고 있네요.


미국서 유학중인 친구 강군이 무지하게 좋아하는 성게알.
이 사진 보면 아마 또 고통에 몸부림치겠군요. ㅡㅡ;


기름기 흐르는 참치 뱃살도 좋아합니다.
적당한 품질에 배를 많이 채우기 위해서는 역시 회전초밥이 낫긴 하지만
회전초밥집은 내일 쿄토여행때 점찍어둔 곳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무리 좀 해서 괜찮은 정식 세트를 먹습니다.


친구와 동생분은 무난한 세트를 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성게알같은 메뉴는 처음 도전하기엔 조금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특히 친구녀석은 생선을 거의 못먹는 타입이라 최대한 무난해 보이는걸 시켜야 했을 겁니다.


자금 여유만 널널했다면 저 혼자 이거 두 세트정도는 단칼에 해치울 수 있었는데...
그래도 진정한 초밥 사냥은 내일 쿄토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니 꾹 참으며 얼마 남지않은 초밥을 음미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후 저는 결국 짐 챙겨서 옆의 조그만 비즈니스 호텔로 향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코 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잔터라, 오늘도 잠을 설쳤다간 내일 쿄토여행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결국 옆의 싸구려 비즈니스 호텔에 개인적으로 1박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 여행이란 건 예측불가능이군요.

저는 성격이 굉장히 예민해서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잘 때도 30분~1시간은 뒤척여야 겨우 잠이 들 정도라
바로 옆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잠은 다 잔거나 마찬가집니다.

자기 코고는 소리때문에 쫓겨가는 제 모습을 보고 친구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ㅡㅡ;
불행중 다행인지 숙소인 신세카이 거리는 굉장히 낡은 건물이나 숙소가 많아서
제가 찾아간 곳도 가족 단위로 꾸려나가는 조금만 민박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할머니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 따뜻한 녹차까지 한 잔 대접해 주시더군요.

엄청 낡은 곳이라 나무로 된 히터, 고풍스러운 타일 욕조 등 1980년대로 워프한 듯한 느낌이었지만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서 해방된 덕택에 평화스러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시텐노지 구석에 자리잡은 혼보 정원(本坊庭園)은 문화유산은 아닙니다.
1903년 외국 귀빈들의 영접관으로 만들어진 정원이라 굉장히 신경써서 만든 정원이긴 하죠.


작은 폭포와 연못 등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본식 정원은 '보는' 미학의 정점에 달해있다고 소문이 난 만큼
4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다양한 풍경을 일반 관광객이 슬쩍 훑어보는 걸로 이해하긴 쉽지 않죠.
대부분 돈과 권력이 넘쳐나는 권세가들의 취미활동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느긋하게 내부를 걸어다니며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할까.


하지만 여전히 가늘지만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일행의 발걸음은 그리 느긋하지 못했네요.
경험상 이런 정원은 여름엔 모기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니
겨울이나 가을에 오면 그 정취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더군요.


관광객들에겐 귀찮은 비라도
봄이 다가오는 시기에 이런 식물들에게는 고마운 단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색깔이 대비된 이런 모습도 하나하나 감상해가면 참 좋은데 말입니다.
이놈의 비때문에 집중이 쉽지 않네요. 그 덕분인지 정원 내부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점은 좋았지만.


정원 내부엔 서양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곳은 외국 국빈들의 영접관이었기 때문에 이런 형태가 되었죠.
도쿄의 유명한 정원인 리쿠기엔(六義園)이나 쿄토의 료안지(龍安寺) 정원에 비하면
조금 단촐하면서도 조밀한 느낌이 들어, 일본 정원의 아늑한 정취를 나타내기에는 약간 화려하지 않은가 싶은데
그래도 굉장히 신경써서 만든 정원임에는 틀림없습니닫.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일본식 정원은 제가 그리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네요.
정원을 둘러보고 정말 가슴 시원한 느낌을 받았던 곳은 리쿠기엔 정도가 유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본식 정원은 조경 방법에도 일정한 형식이 있고
제작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배치 등등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요소가 많아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제대로 음미하기 조금 힘든 느낌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이런 형식.
가지런히 배열된 모래정원은 '물'을 의미합니다.
중간에 솟아난 돌이 육지, 혹은 섬을 의미하니까, 이런 단정한 빗살무늬는 물의 파장을 그린 것이죠.

예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쓴 적이 있는데, 활동을 위한 공간인 서양식 정원과의 가장 큰 차이가
이런 식의 감상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정원을 손질중인 아저씨들을 슬그머니 뒤로 하고
들어가도 될 듯한 건물 내부로 들어왔습니다. 출입금지란 말이 없었으니 들어가도 되겠죠.
사람이 워낙 없어서 사람들 따라가기도 힘들고 왠지 우물쭈물한 느낌.
뭔가 문화재틱한 것들이 몇 점 장식되어 있었습니다만 앞선 보물전에 비해서는 그닥 눈길을 끌 만한 수준이 아니었네요.

이런 곳에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며 새소리 지저귀는 정원을 바라보면 그것 참 절경일것 같은데.

이곳 혼보 정원은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크게 인기가 있진 않습니다.
저도 주유패스 무료 입장권이 없었다면 절대로 돈내고 들어가지 않았을 곳.
이곳 시텐노지에서 주유패스를 이용해 얻은 이익금은 800엔 정도.
오늘이 주유패스 사용가능한 마지막 날이니 열심히 본전을 찾아야 합니다.

혼보 정원을 끝으로 시텐노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드디어 비가 그쳐갑니다.
비를 피하느라 휴게실에 죽치고 앉아서 과자와 음료수를 마셔댄 터라 배가 고프진 않지만
일부러 맥도날드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부터 새로 판매 개시하는 버거가 있어서 맛을 보려구요. ^^
일본에서는 기간한정 햄버거나 콜라 등이 선보이기 때문에 한번 가서 먹어보는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
작년 홋카이도 여행 때 마셨던 한정 차조기맛 펩시콜라도 산뜻한 경험이었습니다.
궁금한 분은 홋카이도 여행기를 참조.


오늘부터 개시한 신제품 버거는 이름도 터프한 텍사스 버거!
두툼한 100% 쇠고기 페티와 치즈, 베이컨, 과자처럼 얇게 튀겨낸 양파 등이 BBQ 소스와 버무려져 있습니다.
일단 맛은 합격점에 들어가더군요. 버거 차제의 크기는 그리 크지않지만 탄력있는 페티가 만족스러웠네요.
한국에서는 버거킹의 와퍼급 이상은 되는 수준입니다. 롯데리아 따위의 장난감 페티와는 질이 틀리네요.

가격도 싼 편은 아니지만 먹어볼 만한 녀석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계속 버거의 '와일드'함을 강조하는데
도대체 일본인의 텍사스에 대한 관념이란... ㅡㅡ;


버거로 배를 채운 후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오사카성(大阪城)으로 향합니다.
오사카 여행하면서 가장 만감이 교차하는 곳이 이 오사카성이라고 생각하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 생전의 화려했던 오사카 문화의 정점에 달한 곳이라
장엄한 주변 경관과 우뚝 솟은 텐슈가쿠(天守閣)의 모습에 놀라며 구경하다가도
정작 오사카성 안에 들어가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기도 하는 복잡미묘한 곳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오사카에 와서 오사카성을 보지 않는것도 좀 그렇고...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오직 그 거대한 성 주변의 풍경에만 조금 존재하는 애매한 장소입니다.
이런 멋진 화장실에 더 눈이 가는군요. 거참 세련되게 지었습니다.


오사카성 주변엔 공원도 있고 하니 날씨 좋을때 가면 성 자체보다 주변을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기엔 그만입니다.
오늘은 비도 무지하게 왔고, 겨울이라 공원은 있으나 마나한데다,
주유패스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러군데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에 마음은 조금 급합니다.

역시 돈없는 서러움인가요. 왠지 오사카 여행은 주유패스의 원령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 ㅡㅡ;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무지하게 많이 보입니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단체부터, 가이드를 동행한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오사카성의 문화적 가치는 텐슈가쿠가 아닌 외부 성벽에 있습니다.
이거 거대하기 짝이 없는 성벽은 오사카성에서 4번째로 큰 바위라고 하는군요.
그냥 찍어서는 도저히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서 동생분을 세워뒀습니다.



성문도 웅장하고, 2중으로 물이 가득 찬 해자도 깊고 (내부 해자는 지금은 물이 없이 비어있습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이름에 걸맞는 천해의 요새였던 오사카성도
토쿠가와 시대의 새로운 바람에는 버텨내지 못했었죠.

여기서 재미삼아 그 당시의 역사에 대해 살짝 주절거려 보자면
히데요시 사후 토쿠가와가 실권을 잡게 되자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이곳 오사카성에 유배됩니다.
하지만 토쿠가와가 실권을 잡은 후로도 히데요시의 추종세력은 여전히 강세를 떨쳤고
특히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가 오사카성에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습니다.

토쿠가와는 히데요리의 재산을 탕진시키기 위해 그에게 쿄토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호고지(方廣寺)를 재건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호고지는 원래 히데요시가 천하 통일후 그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었기 때문에
이를 재건하라는 말은 토쿠가와가 자신들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제스처라고 착각한 히데요리는
기쁜 마음으로 호고지를 재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악하기 그지없는 토쿠가와는 재건된 호고지 내부의 종에 새겨진 문구를 트집잡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안강 군신풍락 자손은창(國家安康 君臣豊樂 子孫殷昌) 이라는 문구였는데요.
이는 '국가는 평안하고 군신은 즐거우며 자손은 번창한다' 라는 뜻이었지만
'國家安康'의 '家'와'康'는 이에야스 (토쿠가와의 이름)를 뜻하며, 그 사이에 글자를 집어넣은 것은
토쿠가와 가문을 반으로 쪼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 했고
'君臣豊樂'의 '臣豊'의 발음은 '토요토미'이니, 이는 토요토미의 자식이 다시 번창할 것이라는 의미니
결국 토요토미의 후손이 토쿠가와를 멸망시키고 다시 천하를 잡겠다는 의도가 포함된 문구라고 억지를 부린 것입니다.

이 문구는 실제로 쿄토의 호고지 종에 새겨져 있는데, 그야말로 깨알같은 수천 자의 글자 중 저 3문만 발견해내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토쿠가와의 의도는 토요토미 가문의 씨를 말리겠다는데 있었다는 걸 반증해주고 있었죠.


히데요리는 그제서야 토쿠가와의 원래 목적을 알아채고 탄식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1614년, 압도적인 군사를 이끌고 오사카성으로 진격해 온 토쿠가와였지만 난공불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2배가 넘는 군세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성은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오사카성의 넓고 깊은 2중 해자는 그야말로 철벽의 수비력을 자랑했기 때문에
이대로는 도저히 함락이 힘들다고 생각한 토쿠가와는
'화해의 뜻으로 바깥 쪽 해자를 메운다면 병력을 철수하겠다'는 전갈을 히데요리에게 보냅니다.
때는 이미 겨울이라 해자가 얼어버릴 위험성도 있었고, 처음부터 절대적 열세였던 히데요리는
그 말을 믿고 첫 번째 해자를 흙으로 메워 버립니다.

하지만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615년 여름이 되자 다시 토쿠가와는 병력을 이끌고 오사카성을 공략합니다.
이제 이유따위는 아무 필요없죠. 어찌보면 히데요리라는 인물 자체가 이런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내부 해자 하나만 남은 오사카성은 결국 추풍낙엽처럼 함락되고, 히데요리는 자결합니다.
이로서 토요토미 가문과 그 지지자들은 대부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일본 전국은 토쿠가와에 의해 통일되고 전국시대는 끝을 맺으며 태평성대의 시대가 열리는가 싶었지만...
뭐, 주군을 잃은 수많은 낭인들이 배출되고 그에 따른 부작용 어쩌구 하면서... 막부 시대는 지속되었습니다.


역사 이야기는 이쯤 하고
실제로 오사카성에서 제일 볼만한 녀석은 이 놈이죠.
오사카성에서 가장 큰 바위덩어리입니다.

도대체 이걸 어디서 가져와서 어떻게 성벽으로 사용을 한 건지...
저는 속에 작은 돌덩어리들을 붙여놓은게 아닌가 싶었지만 옆의 설명문을 보니 그냥 바위 한덩어리라네요.


드디어 텐슈가쿠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날씨도 날씨고 관광객은 한국인 말고는 거의 보이지 않네요.
여기까지 왔으니 이런 사진도 좀 찍어봐야죠.
그런데 어째 역할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그려?


동생분이 일본에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했던 단고를 일단 먹어주고 오사카성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방금 만들어내서 따끈따끈한 단고는 저도 처음 먹어보는군요.

자전거 여행때 편의점에서 단고를 자주 찾아먹었었는데
탄수화물 덩어리라 체력유지에도 도움 되고
엿이 가득 발라져 있어서 자전거 여행하면서 피로할때 직빵이고
가격도 4꼬치에 99엔밖에 하지 않는 저렴한 간식이라 아주 유용했습니다.

참, 자전거 여행하면 자동적으로 짠돌이 거지생활을 하게 되는군요. ㅡㅡ;


단고라고 해서 딱히 특별한 맛이 있는건 아니죠.
그냥 달짝지근한 엿에 쫄깃쫄깃한 떡의 감촉이 입을 즐겁게 해 줄 뿐.
가게 안에 앉아있으니 아저씨께서 차도 내 주셨습니다.

피로를 풀면서 단고를 씹어먹는 기분도 여행 중간의 멋진 경험이네요.


텐슈가쿠도 주유패스로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이걸 쓰면 오늘 하루 주유패스로 즐긴 무료입장도 1400엔이나 되는군요.
저녁에 스카이빌딩 전망대까지 무료로 올라가면 주유패스로는 충분히 이득을 본 셈이니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 앞의 호랑이 그림은 뭘까요.


2010년이 호랑이해니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소원을 모아서 호랑이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 하네요.
일본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언어가 모여있습니다. 근데 다들 소원이 좀 재미가 없더군요.


한참 찾은 끝에 저를 만족시킬만한 소원을 하나 찾았습니다.
저도 저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정말좋겠네~


실질적으로 오사카성을 구경하는 재미는 여기까지입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텐슈가쿠의 외부에 비해 내부는 그저 평범한 박물관에 불과하죠.

애초에 몇 번씩이나 부서지고 무너지고 한 탓에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던 녀석을 1930년 경에 다시 세운 것이니
문화 유적으로서의 가치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한데
내부를 유적처럼 만들어 놓지도 않고 그냥 각종 기념품점과 엘리베이터, 영사기가 포함된 전시실 등으로 꾸며놓아서
겉만 번지르르한 현대식 건물이나 마찬가지 인상이더군요.


물론 관광이라는 입장에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만
원래 오사카도 쿄토만큼이나 일본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곳인 만큼
이런 식의 구성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오사카는 부산, 쿄토는 경주라는 말이 딱 맞는 듯. 오사카에서 전통 문화의 향기를 느끼기엔 좀 부족합니다.
그나마 텐슈가쿠 정상의 전망대에서 오사카 시대를 한번 훑어보면
토요토미 가문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조금이나마 체감해볼 수 있긴 했습니다.


전망대 아래쪽으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나 전국시대에 대한 설명
오사카성에 대한 역사 등등을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지만
이곳 폐관시간이 5시인 고로,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는 시간도 없고 그닥 흥미도 없고 해서
재미있는 방법으로 전시된 히데요시의 일생에 대한 전시관만 후다닥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2D와 3D가 결합된 전시방법으로... 직접 가서 보면 그냥 한번 씨익 웃을만 한 구성이더군요.

뭐, 한국인들에게는 워낙 또라이색히로 인식되어있는 히데요시라 굳이 한국인이 여기서 이런거 볼 일도 없을 것 같고.

슬슬 날도 저물어가고 왠지 씁쓸한 느낌과 함께 오사카성을 뒤로 했습니다.
이제 우메다(梅田)에 있는 공중 정원 전망대를 향해 출발합니다. 가다보면 해도 질 것 같으니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겠네요.

날씨가 심하게 흐립니다.
어제 텐포잔 관람차의 색깔을 분명 흐림을 뜻하는 녹색이긴 했는데, 이렇게 흐린 건 불안하군요.
저는 어제도 친구의 코 고는 소리덕분에 자다깨다를 반복했습니다.
서울서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도 잠을 좀 설쳤는데, 일본 와서 이틀 연속으로 코 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동생분도 몸 상태가 안좋은데 저도 자칫하면 뻗어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침에 스테이터스 이상이... ㅡㅡ;

일단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 싶어서 숙소를 뛰쳐나왔습니다.
신세카이 주변엔 요즘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이런 옛 극장도 유지되고 있더군요. 그리운 풍경입니다.
상영중인 영화는 서브웨이123, 트랜스포터3, REC 등이 있네요. 성인용 영화도 상영중이니 참 정겨운 풍경이로세.


오늘 아침에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시텐노지(四天王寺)로 향했습니다만...
난리났습니다. 결국은 비가 오더군요.
 
역시 어느 나라나 기상 예보는 믿을게 못된다는게 정설인가봅니다. 관람차녀석...
일단 우산도 하나 없는 일행이라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여행의 뽕을 뽑기 위해 무조건 전진밖에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냥 슬금슬금 내리는 편이지만 마음은 불안하군요. 여행때 가장 만나기 싫은 녀석입니다.


문을 통과하니 파마+염색한 아줌마 같은 녀석이 눈에 들어오네요. 문화유산은 아닙니다.
사실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운 애틋한 녀석입니다.


동생분이 사찰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주유패스로 무료 관람가능한 곳이라 찾아오긴 했는데
이곳 시텐노지는 그 역사에 비해서는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어서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해도 됩니다)
진짜 사찰 매니아에게는 조금 아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시텐노지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59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이기도 합니다. 백제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쇼토쿠 태자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하지만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이곳의 사찰은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되었고, 현존하는 건물은 모두 1970년대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사실상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사찰은 나라(奈良)의 호류지(法隆寺)에 세워진 서원가람(西院伽藍)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기도 하죠.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영령당(英靈堂)입니다.
앞에 세워진 두 개의 거대한 돌기둥에는 밀어로 보이는 글씨가 새겨져 있군요.
영령당 근처엔 돌로 된 위령비가 많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시텐노지 대부분의 사찰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진으로 남기는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제가 존중하는 불교의 정신은 이런 건물이나 문화제, 부처 이름 외우는데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한테 사찰문화재라는 것은 그냥 그 시대의 문화와 풍미를 느끼게 해주는 단순한 물건에 불과한 터라
사진을 찍지 않으면 그닥 감흥이 없네요.

그런 고로, 맨날 산위에 올라가서 양초나 켜놓고 자식 수능 대박나기를 손이 닳도록 비는 어미아비들의 모습도
'불교를 욕보이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세계 평화나 빌겠습니다.


빌고 싶으면 요 정도로 소박하게 하라니까요. ㅡㅡ;
니네 자식들 종이 위의 문제 푸는 등신으로 전락시키고 싶어서 사기꾼들한테 돈 쳐바르지 말고.

아~ 교육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군요. 릴렉스하고 다시 정신을 시텐노지로 워프시키겠습니다.


비가 주섬주섬 내리긴 하지만 그것도 꾸준히 맞으니 심히 불쾌해지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동생분은 모자도 있고, 저도 버프를 쓰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머리에 타격을 받진 않는데
(친구는 뭐 쓰고 있었나? 기억이 없습니다. 쏘리. ㅡㅡ;)

이곳은 약사여래, 사천왕상이 보존되어있는 육시당(六時堂)입니다.
시텐노지의 중앙에 위치한 큰 사당이며, 매일 6번씩 영령에게 예를 갖추는 의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육시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당연하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 이곳에서는 많은 현지인들이 경건하게 합장을 하더군요.


이곳은 카메이 부동당(亀井不動堂) 이라는 조그만 건물로, 건물 안에는 이끼에 덮힌 부동명왕상이 있습니다.
이곳과 바로 옆의 카메이당(亀井堂)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시텐노지의 본당인 금당(金堂)의 지하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하는데요.
쇼토쿠 태자가 이곳의 샘물에서 부동명왕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사당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저 부동명왕상에 샘물을 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뭐 그런 것이겠지요.


시텐노지의 대표 스팟중 하나인 이시부타이(石舞臺)입니다.
이곳 돌무대 위에서 매년 4월 22일 성덕태자의 덕을 기리는 부가쿠(舞樂)가 열립니다.
부가쿠는 당나라의 행사 예식인 당악에서 유래되어 일본 특유의 문화로 발전한 의식으로, 이곳에서 부가쿠가 열려온 지 천 년이 넘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믿거나 말거나.

비가 점점 굵어지는터라 서둘러 이번 시텐노지 공략의 1차 목표중 하나인 보물관(宝物舘)으로 향했습니다.
보물관은 쇼토쿠 태자와 관련된 중요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곳으로, 국보급 보물들도 전시되어 있는 터라
문화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둘러보셔야 할 곳입니다. 입장료를 받는데 주유패스로 무료!
물론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보물전 내부는 상당히 좁고, 문화재 수도 그리 많은건 아니지만 진득하게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
40분 남짓 열심히 구경한 후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는군요.
오늘중으로 돌아봐야 할 곳이 많은데 계속 비가 내린다면
최악의 경우 우산을 사거나 숙소로 돌아가서 우산을 빌려 나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태자전(太子殿)이라고 하는, 쇼토쿠 태자의 덕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한국 역사책에도 잘 나오는 이야기지만 (요즘엔 국사도 필수과목이 아니라면서요? 나라의 망조가 보이네요)
쇼토쿠 태자가 일본 불교, 나아가서 일본 역사와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이 워낙 중요한 지라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건축물이지만 정말 정성들여서 가꾸어 온 모습이 금새 눈에 들어옵니다.
빗소리에 파묻힌 성덕원의 모습이 오히려 더 경건하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원래 이곳의 이름은 성덕원(聖霊院)인데, 요즘엔 그냥 태자전이라고 많이 불린다고 합니다.
태자전 내부 지하에는 2만 2천개의 금동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아요.


비가 와서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이젠 막 쏟아 붓는군요.
동생분이 뭔가 불만어린 표정입니다. 근데 포즈는 왜 귀여운지? 이거 설정샷이었나? ㅡㅡ;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합니다
일단 이곳의 볼거리인 보물전은 관람 마쳤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혼보 정원(本坊庭園)과 중심가람(中心伽藍)이 남았는데
혼보 정원은 이 빗속에 돌러보기란 불가능해서 일단 태자전의 바로 옆에 위치한 중심가람으로 서둘러 향하기로 했습니다.


가람은 불교 용어로, 산스크리트어인 '상가 아라마(sangha- arama)'가 어원인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임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는 장소를 말하는데, 보통 7가지 구조물(불전,강당,승당,주고,욕실,동사,산문)이 갖춰진 구역을 뜻하죠.

이곳 시텐노지의 중심가람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인데,
중문, 오중탑, 금당, 강당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일직선 형식 배치를 이루며, 주위에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일본의 '음미하는' 정원 느낌을 이곳에서도 받을 수 있었네요. 활용 공간으로서가 아닌 미의식의 표출 수단으로 사용되죠.


회랑 내부에서 쏟아지는 비를 피하면서 가만히 가람 내부를 바라만 봅니다.
사실은 이게 제대로 된 감상 방법일지도 모르죠. 빗소리가 일행을 점점 개인으로 흐트려 놓는 듯한 느낌.


중앙의 건물이 금당(金堂), 뒤의 탑이 오중탑(五重塔)입니다.
오중탑에서는 석가모니의 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금당은 시텐노지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사방에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구세관음상이 놓여있습니다.


회랑 옆에는 우물도 있었습니다.
상당히 깊더군요. 이런 곳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좀 무서워지죠.


회랑 내부는 차분합니다.
비가 많이 오기도 하고, 좀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그냥 일행들끼리 조용히 서 있었네요.
비는 싫어하지만 이런 차분한 느낌은 좋습니다.

건물 전체가 너무 새것같은 느낌이라는게 참 아쉽긴 했군요.
호류지의 1500년 된 나무 기둥들은 정말 세월의 흐름이 이런거구나 싶었는데.


그냥 부슬비라면 어떻게 맞아가면서 움직이겠지만 장대비는 정말 무립니다.
그래서 그냥 막간을 이용해 사진이나 찍고 놀았죠.
역광도 이런 분위기에선 나름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그칠 기미가 안보여서 결국 근처의 휴게소로 뛰어가기로 결정.
휴게소에서 좀 쉬면서 비가 잦아들길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숙소로 돌아가 우산을 빌린다던가 할 수도 있지만 왠지 여기서 시간 보내는것보다 돌아가는 시간이 더 아까운 것 같아서.


가기전에 가람의 정문인 인왕문 앞에서 강제로 기념사진을 찍게 만들었습니다.
양쪽의 인왕상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녀석들이죠. 5.3m의 높이에 무게는 1톤입니다.
그냥 찍으면 재미 없으니 인왕 모습을 주문했죠. 동생분은 잘 따라줬습니다. 손바닥에서 여래신장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찍기 싫다고 잡아빼는 친구를 협박해서 억지로 포즈를 세워넣고 찍었습니다.
여행때는 이런 사진 남기는게 즐거움인데 말이죠. 지난 번 도톤보리의 글리코 앞에서는 실패했지만 이번엔 성공.


휴게실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먹으며 1시간 반 정도를 뒤척였습니다.
어제 잠을 하도 못자서 눈만 감으니 졸음이 오더군요.

내일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쿄토 당일치기인 터라, 이 체력으로 오늘 밤도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못자면
여행에 중대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오늘 밤은 따로 숙소를 잡아 도망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밤에 친구가 코를 골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ㅡㅡ;

하늘이 도운건지 결국 기다리다 보니 빗줄기가 잦아지더군요.
완전히 그친 건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돌아다닐 수 있을만큼 약해졌습니다.
이제 시텐노지의 마지막 볼거리인 혼보 정원으로 향합니다.

시간관계상 다음 포스팅으로...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로 향하는 내내 일행은 '여기가 아닌거 아녀?'라고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주유패스 무료쿠폰에도 등록될 만큼 관광지로서는 알려진 곳임에도
정말 사람 흔적이라고는 풀떼기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산했거든요.

마치 3년전 도쿄 오다이바의 황량한 벌판을 세명이서 걸어다닐 때의 기분을 맛보는 듯 했습니다.
뭔가 잘못 찾아온것 같은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일단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행히도 제대로 찾아오긴 했네요. 티켓을 끊고 승강기를 타고 쑤욱 전망대까지 올라갑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계속 긴장긴장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사람 모습이 좀 보여서 안도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바깥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덜덜 떨고있는 고소공포증 친구를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갑자기 어깨를 잡아밀어주니 고양이처럼 튀어오르더군요)

이곳 에스컬레이터도 경사가 꽤 심하고 아주 길게 늘어져 있어 친구는 결코 붙잡은 손을 놓지 않더군요.
원래 전망대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친구가 이렇게 즐거워해주니 찾아가는 보람이 생기네요.


전망대 내부는 아주 어둡습니다. 조용하고 어슴푸레한 조명 덕분에 야경을 감상하기엔 좋은 환경이네요.
연인들을 위한 칸막이 의자도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어서 커플끼리 실컷 염장질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오사카시의 모습은 정말 거대했는데,
이게 대구시 면적의 1/4밖에 되지 않는다는게 뭔가 어색하군요.

ISO400짜리 필름을 장전한 카메라로 삼각대없이 야경을 찍으려고 하니
평평한 장소 잘 물색한 후 지갑 등을 렌즈 앞쪽에 고아넣어 높이를 맞추고
M 모드로 적절한 노출값과 셔터스피드를 준비한 후 5초 타이머 촬영으로 셔터 눌러놓고
약 20초간 필름에 기록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게 됩니다.

귀차니즘때문에 삼각대는 여행에 가져가지 않는 편이라 (고릴라포드는 나중에 하나 사볼까 생각중)
가끔 난감하긴 한데 역시 전망대에는 수평 잡아줄 공간이 있는 편이라 이런 사진도 그나마 건질 수 있네요.


필름카메라는 현상 때까지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보험용으로 DSLR도 같은 방법을 이용해 찍었습니다.

오사카의 명물인 2개의 달을 잘 담아냈군요. (믿습니까?)

오른쪽에 일행이 하루종일 쏘다녔던 베이에이리어 텐포잔이 보입니다. 관람차도 녹색으로 빛을 발하네요.
로또 당첨되었다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한 번 가봤겠지만...


내려갈 때도 결코 손을 떼지 않는 착실한 친구.
여기서 밀어버리는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그냥 놔뒀습니다.


전 랜드마크 빌딩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별 감흥이 없어서
그냥 야경사진 몇 장 건진것에 위안을 삼고 빌딩을 빠져나왔습니다.

이곳 코스모타워엔 예식장도 있어서 자금 넉넉하게 가진 사람들은 아찔한 높이에서 화려한 경관을 즐기며
결혼식을 올릴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네요.


베이에이리어를 빠져나온 일행은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도톤보리(道頓堀)로 향합니다.
도톤보리는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라는 사람이 1612년에 만든 물자 수송용 인공 하천이었는데
에도시대 들어 하천의 양쪽 거리가 화류계로 점령되어버린 후 그때부터 쭈~욱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잡아왔습니다.

에도시대땐 상점들의 입구가 강 반대편으로 나 있었고, 건물 뒷쪽이 하천과 바로 맞닿아 있어서
창문을 열면 바로 펼쳐지는 하천의 모습을 구경하거나, 하천에 배를 띄우고 술과 벚꽃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죠.
지금은 타유우(太夫 - 최고급 매춘부)들이 있던 곳에 수많은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하게 늘어섰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의 열기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톤보리는 옛 정취와 소란스러움이 공존하는 서민적인 느낌의 거리입니다.
킨류(金龍) 라멘이나 움직이는 게 간판으로 유명한 카니도라쿠(かに道楽)등등 몇몇 거대 체인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좁은 골목 여기저기에 작게 펼쳐진 숨겨진 맛집들이 포진해있는 느낌이죠.
퇴근길에 가볍게 한 잔 마시는 조그만 선술집 등이 도톤보리의 분위기를 설명해 줍니다.

이와는 반대로 도톤보리하천 북쪽에 위치한 거리 신사이바시(心齋橋)는
도쿄의 긴자(銀座) 명품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최신 아케이드의 집합소입니다.
전 세계 최고급 명품 부티크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최신 패션샵, 악세사리 등으로 가득 차있죠.

조그만 하천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극단적인 모습의 두 거리가 마주보고 있는 느낌은 참 신선합니다
저희 일행은 신사이바시에서 뭔가 살 생각은 없었으니 그냥 도톤보리의 라멘집을 향해 출발.


도톤보리라고 해서 다 옛날 정취만 풍기는 건 아니죠.
이미 일본인들의 생활 깊숙히 파고든 파칭코는 어디든 그 거대함을 자랑합니다.

자전거 여행때도 놀랐지만, 인구 3만도 안될것 같은 조그만 마을에도 거의 백화점급의 파칭코점이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파칭코는 일본인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 했네요.


요런 조그만 골목 깊숙히 정말 제대로 된 맛집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죠.
이번엔 도톤보리에서 맛있다는 라멘집을 미리 알아보고 온 터라 정해진 곳을 찾아 바로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라멘은 킨류 라멘인데요, 대문 앞 장식도 화려하고
이곳 도톤보리에만 4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라멘계의 큰손입니다만 아무래도 현지인들의 평가는 그닥 좋지 않습니다.

어떤 여행지든 마찬가지지만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음식점과,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음식점은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죠.
물론 반드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이 더 맛있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입맛도 지역별로 많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뭔가 단순히 맛있다는 느낌보다는, 현지의 감각을 좀 더 느끼게 해 주는 독특함이 있는 음식점에서 한끼 해보는게
여행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득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면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는 곳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챠슈 라멘으로 이 근방에서 유명한 하나마루켄(花丸軒)입니다.
인기에 비해 정말 좁아서, 바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해도 되겠더군요.

후다닥 자리잡고 앉아서 이곳의 추천 메뉴인 행복가득 라멘(しあわせいっぱいラーメン)과 교자를 시켰습니다.


일단 먼저 나온 교자를 한 장 찍어드리구요.
교사는 아삭아삭하고 따뜻한게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히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맛있는 교자가 어디있냐구요? 카스카베시(春日部市)에는 만두 속부터 피까지 전부 수제로 만드는 조그만 개인 교자집이 있습니다.
그곳의 교자를 한번 먹어보면 분명 '교자에도 레벨이 있구나' 하실겁니다.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행복가득 라멘입니다.
저는 라멘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일본 여행땐 거의 하루중 2,3끼를 라멘으로 때워도 불평이 없는 타입인데
이번엔 친구 일행과 함께 움직이니 저 좋은데로만 먹을거리를 선택할 순 없어서
벼르고 벼른 이번 라멘은 기대가 컸습니다.

이곳 라멘은 진한 돈코츠(돼지뼈) 육수에 쇼유(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까지는 평범한 라멘과 다르지 않지만
사진에 보이는 두 종류의 챠슈(돼지고기를 양념해서 썰어놓은 편육)가 이곳을 유명하게 한 별미중 하나입니다.
왼쪽 챠슈는 한국에서도 익히 보는 삼겹살, 오른쪽의 진한 챠슈는 콜라겐이 다량 함유된 등뼈살(とろこつ)입니다.
특제 소스와 함께 압력솥에서 푸욱 쪄낸 더블 챠슈는 굉장히 부드럽고 맛이 진합니다.
챠슈 뿐 아니라 국물도 그야말로 진국이고 라멘 면발도 인스턴트와는 비교불가로, 이름값은 충분히 하는 가게였습니다.

윗쪽의 김에는 랜덤으로 글자가 들어가더군요. 위에 적힌건 '행복기원'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돈코츠 쇼유 라멘은 일본의 라멘 중에서도 맛이 가장 진하고 짠 편이라 여성분들 입맛엔 잘 맞지 않는 경향입니다.
저야 뭐,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지만 동생분 입맛엔 어땠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야밤에 라멘 사진을 보니 당장 삿포로로 날아가서 라멘공화국의 라멘들을 전부 섭렵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군요...


라멘으로 배를 채우고 도톤보리를 주욱 둘러본 다음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았네요.
일행들이 전부 다 쇼핑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저 둘러보며 구경만 할 뿐.


그래도 저기는 한번 들어가보자고 합니다.
만물상 개념인 일본의 유명 체인점 돈키호테입니다.

1980년대 처음 선을 보인 돈키호테는 그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영업 방식으로
최단기간에 최고의 급성장을 보인 업체로 손꼽힙니다.

일본 거의 대부분 지역에 점포가 있으며, 대부분 24시간 영업을 통해 심야 고객을 주로 확보하고
일부러 매장 통로를 좁고 어둡게 만들어 심야 고객들의 '탐험적 쇼핑' 욕구를 잘 파악한 마케팅 방법으로 유명하죠.
식료품, 음식, 잡화, 게임, 전자, 화장품, 스포츠 등등 없는것이 없다는게 최대의 특징입니다.
성인용품은 물론이고 코스프레 의상까지 있으니 뭐... ㅡㅡ;

이곳 도톤보리의 돈키호테는 사진의 저 관람차가 유명한 포인트였는데 작년부터 영업을 중지한 상태더군요.
실컷 둘러보고 물건은 사지 않고 나왔습니다.


밤의 도톤보리 하천은 매우 조용합니다.
주유 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이곳을 순회하는 도톤보리 리버 크루즈도 있었는데
시간상 여건이 안맞아서 패스하기로... 배는 산타마리아 호를 타봤으니 괜찮아요.


참 특이하게도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스팟이 되어버린 글리코 전광판 앞입니다.
오사카 도톤보리에 들러서 이곳을 찍어오지 않으면 여행 못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ㅡㅡ;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회사인 글리코사가 1935년에 세운 전광판으로, 75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달리고 있죠.
지금와서는 조금 촌스러운 쫄쫄이 육상선수 아저씨의 모습이 오히려 매력이 되어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저 전광판은 글리코 카라멜 선전용이었어요. 글리코 카라멜을 먹으면 힘이 솟아요 라는 느낌으로...

저 곳에서는 저 아저씨를 흉내내서 한쪽 발을 들고 두 손을 치켜든 포즈로 사진을 찍는게 유행입니다.
수줍음 많은 친구 일행은 아무리 협박해도 그 포즈를 취해주지 않네요. ㅡㅡ;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은 여자 꼬시는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이곳 도톤보리는 남부 오사카의 중심지역인 난바(難波)에 속해있는데요.
이 난바라는 단어가 일본어의 헌팅(난파,ナンパ)와 발음이 비슷해서 이곳을 난파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도톤보리를 빠져나오며 보였던 한 공연장에서 카나데혼 츄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예전 일본어과 4학년 마지막 수업때 발표한 것이 이 충신장 이야기라서 감회가 새롭더군요.
겐로쿠 15년(1702년)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각색해서 카부키극화한 작품인데,

'아무리 관객이 없어도 츄신구라만 공연하면 관객이 꽉 찬다'는 공연업계의 속담이 있을 정도로
1748년 초연 이래 꾸준히 일본인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아온, 카부키의 원조이자 대표격 작품입니다.

그리고 1748년 그 운명의 초연이 바로 이곳 오사카에서 시작되었죠. ^^

여담으로 일본 내에서야 셀 수도 없이 영화, 드라마, 소설 등으로 각색된 작품이지만
현재 헐리우드에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47 로닌'(The 47 Ronin)으로 영화화되고 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해서 얼른 씻고 잠을 청합니다.
욕탕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고 TV 보면서 느긋하게 목욕하다 보니
세 사람 한 바퀴 도는데 거의 1시간 30분이나 걸리더군요.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 과연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 걱정하며 일단 눈을 감고 누워봅니다.
내일은 주유패스로 입장할 수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와 오사카성, 그리고 우메다 스카이빌딩(梅田スカイビル)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여행의 묘미란 예측할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이 한 몫을 합니다.
카이유칸 이후로 구경해보려고 했던 나니와 우미노지쿠칸(なにわ海の時空館)은 개장시간이 오후 5시까지였는데
카이유칸을 서둘러 나왔음에도 이미 3시가 넘어버린 시간이라 거의 반쯤 포기상태.

우미노지쿠간은 주유패스를 이용해 공짜로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1차 목표가 카이유칸이었던 탓에 뒤로 밀려버렸군요.
카이유칸 건너편에 보이는 산토리 뮤지엄(サントリーミュジアム)에 낯익은 그림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슬램덩크, 베가본드로 유명한 만화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씨의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군요.
들어갈까 말까 하면서 일단 뮤지엄쪽으로 향해 봅니다.


특별 전시회라서 관람료가 꽤 비싸더군요. T_T
제가 이 작가를 많이 좋아했다면 그 돈내고라도 들어갔겠지만
공교롭게도 슬램덩크 이후 작품에는 관심이 없던 터라 그냥 회장 앞에 전시된 거대한 일러스트 한 장 찍고 나왔습니다.
왼쪽에 살짝 보이는 액자가 사람 정도의 높이입니다. 저렇게 프린트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들런지... ㅡㅡ;

지난번 히로시마 여행 때 이 작가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던데, 슬랭덩크 연재 당시 NBA 화보집 트레이스 사건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베가본드 연재 이후 그 특유의 작품에 대한 집착이 잘 나타난 방송이었습니다.
단 1페이지의 얼굴 표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이틀 밤을 지새고 발버둥을 치면서도 결국 마감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걸 보니
역시 창작가로서 자기 의도를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할 때의 그 죽고싶은 심정은 장르를 불문한다는 걸 실감했네요.


뭔가 어정쩡한 시간이지만 아직까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 것은
사진 너머의 저 관람차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저런 관람차는 역시 야경을 보는게 재미있기 때문에 일부러 해질 때까지 기다리는거죠.
기다린다고 해봐야 그냥 시간만 때우는 건 아니고, 아직 이 주변엔 둘러볼 거리가 많이 남았습니다.


카이유칸 들어가기 전에 묘기를 선보이던 장소엔 다른 팀이 불쇼를 펼치고 있군요.


위험하기 그지없는 2인 저글링이지만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공연이 끝나고 새끼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돈을 건네주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돈을 받는 공연인줄은 몰랐네요.


일단 배는 별로 고프지 않지만 나름 명물 볼거리라고 소문이 난 곳으로 향했습니다.
마켓플레이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나니와 쿠이신보 요코쵸(なにわ食いしんぼ橫丁)입니다.
1960년대 오사카 시장거리를 재현한 좁고 어두운 음식거리인데요, 이런 식의 마케팅은 예전부터 일본에서 인기였습니다.

도쿄 오다이바의 다이바 잇쵸메(台場一丁目), 삿포로의 라멘공화국(らめん共和国)등등
대부분 일본의 1950~70년대를 재현해놓은 정겨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발을 끌어들이죠.
일본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대였던가 봅니다.

하지만 이곳 쿠이신보 요코쵸는 앞서 말한 두 곳에 비해 확연하게 음식의 질이나 다양성에서 떨어지는 듯 합니다.
다이바 잇쵸메야 워낙 막강한 자금력으로 승부하는 곳이고, 라멘공화국은 일본 굴지의 라멘집들이 모여 각축하는 곳이라
이곳은 그냥 예전부터 인기있었던 추억의 음식들 그 자체로 승부하는 조금은 소박한 느낌이네요.


가이드북에도 소개되었던 카레집에 들어가서 한 접시 먹어봅니다.
지유켄(自由軒)이라는 상점에서 처음 시도한 이 독특한 카레는 이미 나이를 100년이나 먹은 일본의 고전 카레로서 유명하죠.
카레 이름도 명물카레(名物カレー)입니다. ^^
지금은 인도에 이어 세계 2위의 카레 소비국인 일본이지만, 그 당시엔 카레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통일되어있지 않아
최대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요즘 카레와는 만드는 방법도 판이하게 다른데요. 일단 양파와 버터, 소고기를 살짝 볶은 다음
닭뼈를 고아 만든 육수와 카레가루를 섞은 후, 밥과 함께 볶아주면 명물카레가 완성됩니다.

카레 중앙에 저렇게 생달걀 하나 얹어주는게 포인트죠. 달걀에 살짝 간장소스를 뿌린 후 비벼먹으면 됩니다.
뭐랄까 정말 일본인들이 고안해낼 만한 느낌의 카레였습니다. 크게 맵지도 않고 계란 덕에 담백한 맛이 부각되네요.
중간중간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의 감촉도 특이하죠. 이 녀석은 루를 오랫동안 숙성시키는 타입이 아니라
현재의 진득한 맛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일본의 카레 역사에 이름을 남긴 독특한 녀석이니 시식해 봤습니다.


마켓플레이스로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씹어먹는데 무녀복을 입고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는 무리를 발견.
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어린이들이 예쁘장하게 치장하고 이곳 손님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뒤쪽의 케논 플래그쉽을 들고 열심히 찍고 계시는 분은 로리 오타쿠가 아니라 관계자분이니 오해는 금물.

그러고보니 마켓플레이스 중앙 공연홀에서 아이돌 그룹같은 애들이 춤추고 노래도 하던데
상가 활성화를 위해 여러가지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군요. 우리도 보고 배울만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런 애들이 웃으면서 금방울 흔들어주면 좋다고 쫄래쫄래 따라다닐 오덕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죠.


마켓플레이스 내부에서 유리공예점을 발견, 동생분과 저는 가족들에게 선물로 줄 기념품을 고르는데 열중했습니다.
수공예로 만든 것들이라 완전히 똑같은 것들이 없더군요. 고민고민하며 둘러본 끝에 형님부부 드릴 예쁜 부엉이 한쌍을 구입.
원래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인데 친구녀석이 밖에서 찍었네요. 뭐, 전시품을 확대해서 찍은게 아니니 괜찮겠죠.


훗날 친구가 들고 있던 제 카메라 사진을 재생해보니 이런 것도 찍었더군요.

ㅡㅡ;

ㅡㅡ;;;;;

노코맨트.


이곳 마켓플레이스엔 예전에 한때 화제가 됐던 닌자저택도 있습니다.
현지인보다는 외국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겠죠.
애니메이션부터 온갖 닌자틱한 잡동사니들을 모아서 팔고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가지 닌자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도 있는데
제가 저기 돈내고 들어갈 리가 없죠.

여담으로, 일본엔 마을 전체가 닌자 관련 내용으로 구성된 곳도 있습니다.
사가현(佐賀県)의 우레시노(嬉野)시에 위치한 히젠 유메카이도(肥前夢街道)라는 테마파크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닌자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수리검 던지기, 사금 캐기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죠.
역사적 사실과는 한참 동떨어졌지만 그래도 상업성이 있다면 뭐든 활용하는 능력은 참 대단합니다.


슬슬 해가 저물어가고 있으니 관람차로 향합니다.
탑승료 700엔이지만 주유패스의 할인쿠폰을 이용해 630엔으로.
조금씩이라도 아낄 수 있을때 최대한 아끼는게 여러모로 이득이니까요. 세 명 합쳐서 210엔 절약이면
음료수 두 개 뽑아먹을 수 있는 돈입니다 넵.

친구가 높은곳을 아주 무서워해서 오기로 타게 된 관람차입니다. ㅡㅡ;
배려심이 철철 넘치는 저는 일부러 친구를 위해 바닥부분이 투명하게 되어 있는 씨스루 관람차를 20여분이나 기다려서 잡아탔죠.
결코 놓지 않는 저 왼손이 지금 친구의 심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항상 지적하긴 하죠. 그거 암만 잡고있어봤자 진짜 떨어지면 어차피 몰살이여.


몇 개 없는 씨스루를 타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이곳 텐포잔 관람차는 높이 112m의 세계 최대급 관람차로, 한바퀴 도는데 약 15분이 소요되죠.
날씨가 좋을 땐 칸사이 공항까지 보입니다. 날씨가 안좋아도 화려한 야경을 즐기기엔 이만한 게 없네요.


원래 연인들끼리 염장질하는데 특화된 게 이 관람차라는데, 저희 일행이야 뭐...
사진 밑부분의 판넬식 구조물이 마켓플레이스, 녹색으로 장식된 묘한 모양의 건물이 카이유칸입니다.
카이유칸의 오른쪽엔 오늘의 항해를 마친 산타마리아 호가 휴식을 취하고 있군요.


15분동안 빼도박도 못하니 느긋합니다.
저는 친구를 놀려먹으며 사진이나 찍고, 동생분은 그 와중에도 가이드북을 뒤적이며 학구열을 불태우는군요.


여기서 잠깐 토막지식을 열거해 보자면
오사카시의 면적은 220㎢ 밖에 되지않습니다만, 인구는 270만명으로 상당한 인구밀도를 자랑합니다.
제가 서식하는 대구시 면적이 884㎢ 인데도 인구는 250만명 정도인것을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일 갈 듯.
한국에서 면적당 인구비율이 오사카시보다 높은 곳은 서울밖에 없습니다.


해가 완전히 질 무렵 관람차는 서서히 밑으로 내려오는군요.
건너편에 많은 즐거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선사한 카이유칸의 모습이 보입니다.


밤이 되면 관람차는 화려하게 빛나는데요.
관람차 색깔은 내일의 날씨를 예보하기도 합니다.
녹색은 흐림이네요. 사진 찍는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여행때는 비만 오지 않아도 감지덕지죠.


하루종일 서성거렸던 텐포잔을 뒤로하고 일행은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5~6시에 문을 닫아버리는 오사카에서 저녁 늦게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무엇?

정답은 전망대입니다.
크고 높은걸 좋아하는 오사카인들답게 시내 군데군데에 관람차, 전망대 등이 산재해 있죠.
그러고보니 숙소에서 엎어지면 코닿는 거리에 있는 츠텐가쿠도 못가봤는데
멀리 전철타고 와서 전망대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도 참... ㅡㅡ;


다음 목표는 베이 에이리어 내부에 있는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입니다.
물론 주유패스로 무료 관람이 가능하니까 이렇게 기를 쓰고 찾아가는 것이죠. 돈내야 했으면 애초에 관심도 없음.
WTC 코스모타워는 서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256m)
이곳에 가려면 난코 포트타운선(南港ポトタウン線)으로 바꿔타고 트레이트센터앞 역으로 가야합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어차피 코스모타워와 연결된 무역센터의 쇼핑 거리는 문을 닫았을 테고
오늘은 전망대를 구경한 후 화려한 밤문화를 즐기려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 도톤보리로 향하는게 마지막 일과네요.


이 포트타운선은 뉴트램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도쿄의 오다이바(お台場)를 순환하는 무인 모노레일 유리카모메(ゆりかもめ)와 비슷한 녀석입니다.
승무원이 없는 모노레일은 일행들끼리 장난치기 좋죠.


매거진에 장전된 필름이 딱 한장 남아서 의미없이 친구 사진을 떡하니 찍었습니다.
피곤한듯한 눈이 참 인상적이시네요.

뒤로 젖혀진 동생분의 고개에서도 삶의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원체 느긋한 컨셉의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일행들에게 여러가지 많이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곳을 둘러보는 중이라서 아무래도 좀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네요.
이런 여행도 한두 번 해보면 금새 익숙해져서 새벽부터 새벽까지 마구 돌아다닐 수 있으니 미리 연습해 보는것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