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미도스지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은, 이제껏 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나 할 정도로 대단하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다양하게 보이는 점에서 이번 페스타가 특정 연령대를 위한 축제는 아니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젊은 사람들은 대게 커플 혹은 강아지를 유모차에 넣고 나오는 경우가 많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특히 남성들은 똑딱이가 아닌 DSLR 을 많이 들고 있다.

할아버지의 경우엔 필름카메라도 많이 들고 있는걸 보니 한국하고는 좀 다른 분위기다.

 

동 나이대의 한국 할아버지의 경우엔 젊을 때 카메라라는 취미를 갖기가 꽤나 힘들었던 탓인지

나이에 관계없이 최신 플래그쉽으로 무장한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분명 삼사십년 전의 모터없는 필름카메라 갖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미도스지 거리를 전부 전세놓은 축제라고는 해도 이 정도 인파를 소화할만한 넓이는 아니다.

일단 마음편하게 이곳에서 반대편 끝인 난바역까지 슬슬 걸어가면서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그것조차도 안이한 생각으로, 제대로 힘줘서 끼어들어가지 않으면 이벤트장엔 아예 접근도 불가능한 상황.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이벤트장은 동물마을이라는 곳이었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런 인파를 뚫고 구경하기란 너무 힘들다.

특히 아이들이 일찌감치 앞줄에 포진해 있고, 부모들이 목말을 태워서라도 동물을 구경시켜주려고 고생중이라

다른 어른이 앞줄에 끼어들어가서 카메라들고 찰칵찰칵거리기엔 눈에 뜨인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저러나 교통 통제를 시작한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벤트장이 만들어진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혼잡한 축제 컨트롤은 숙달된 인력의 힘이 극대화되는 곳이긴 하다.

미숙한 운영위원이 그냥 시키는 대로 지시봉만 흔들어대는게 아니라

근처 경찰이란 경찰을 다 끌고나와서 확성기로 소리질러가며 컨트롤할때의 능력이란 기계에 비할바가 안된다.

사람들은 사람 말을 듣지 기계 음성을 따라서 움직여주진 않으니까.

 

 

 

인력 감축이 무슨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린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일본은 경찰관 수만큼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시골로 갈수록 경찰관이 쓸데없이 너무 많아서 빈둥대며 세금 축낸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은 원래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활동할 수 있어야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한국엔 실컷 줄여도 관계없는 높으신 분들이 천지에 널리고 널렸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같은 중요 인력은 모자란 느낌이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미도스지의 대로는 인파로 완전히 막혀버렸지만

중간중간 동서로 나 있는, 자동차 한두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골목길중 몇몇은 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둔다.

건널목과 교차로의 의미가 없어진 보행자 천국이지만 여전히 교차로에서는 사람들보고 서 있지 말고 진행하시라고 경찰들이 소리를 지른다.

 

이 무렵쯤 멀리서 구급차의 급박한 소리가 들리더니, 근처 경찰관들이 모두 모여서 인파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행렬이 멈춰서고 구급차는 혼자 전세낸 것 처럼 동서로 난 골목길을 경찰관의 지시를 받으며 순조롭게 통과한다.

이렇게까지 인파로 북적이는 축제 장소 한복판에서 구급차가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모습은 축제 그 자체보다도 부럽다.

 

 

 

 

한국에서도 요즘 친환경 녹색성장이라는 영 듣기싫은 구호가 여러곳에서 울려퍼지는데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먼저 '에코'라는 단어가 상품 판매에 없어서는 안될 캐치프라이즈가 되어 있다.

TV 광고를 보다보면, 에코 없이는 자각있는 현대인의 대열에 들어갈 수 없다고 은연중에 협박당하는 느낌까지 드니까.

 

기업, 정부가 에코 에코 거리는 모습은 솔직히 꼴불견이다.

 

뭐, 이번 이벤트장의 '에코'는 환경단체 주도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렇게 불평할 필요는 없지만.

마스코트가 왜 사슴인지는 제대로 확인해 보지 못했는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왠지 수난 당하고 있다.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선전하는 마스코트도 사슴이었는데, 이는 지데지(地デジ)+사슴을 뜻하는 시카(しか)가 합쳐져서 지데지카(地デジカ)였기 때문.

저 지데지카라는 단어는 '지대지화(化)'라는 뜻과 발음이 똑같기 때문에 나름 머리 잘굴린 마스코트였다고 생각한다.

 

 

 

허구한날 에코를 외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일본 기업들이지만

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베터리 원료가 되는 희토류라는 희귀 금속이 전량 중국에서 수입되고

그 이유가 정제시 어마어마한 오염 물질을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사실까지는 광고에 싣지 않는다.

 

한국이야 사대강 사업같은 21세기 최고의 정신나간 환경파괴를 국책사업으로 밀고 들어가는 중이니 말할것도 없고.

 

이권이 걸려있지 않은 환경 단체들의 행동이야 순수하지만

목적이 돈 별러는 기업과 정부에서 에코 에코 거리는 건 가식도 그런 가식이 없다.

 

 

 

 

파나소닉에서 홍보중인 전기자전거.

확실히 근거리를 자동차 대신 이런 녀석으로 움직인다면 환경 보호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하는 셈이 될 듯.

일본에서는 이런 자전거를 전동 어시스트 자전거라고 하는데

100% 전기 동력으로만 움직이는 자전거는 사실상 자전거가 아니라고 하는 법리적 해석때문에 출시되지 않고

페달을 밟을 때 모터가 힘을 더해주는 이런 자전거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그 힘의 배분이 점점 우수해지고 있다.

 

자전거 여행당시 언덕을 뻘뻘거리며 오를때 마다 항상 머릿속에 꿈처럼 떠오르던 게

전동 자전거를 타고 평지처럼 시원하게 오르막을 달리는 자신의 해맑은 미소였지.

 

물론 장거리 여행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계 사상을 갖고 있어서 아직 이걸로 장거리 여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시연회때 한번 타 본적이 있는데, 페달 밟는 스쿠터라는 느낌이랄까.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데 자전거는 시원하게 달려간다.

가격이 무서워서 그렇지 어른의 장난감으로 부족함이 없는 녀석이다. 물론 운동이 안되니 그닥 의미는 없지만.

 

 

 

 

 

동물 마을과 환경단체 부스를 지나쳐서 계속 난바역으로 걸어가니 아직까지 파고들만한 공간이 있는 이벤트장이 보인다.

인파때문에 뭘 하는 곳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쪽에 자리잡을 여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후 무작정 돌격.

좀 더 진행하면 다른 이벤트장이 많겠지만 이런 곳에서는 공간 보이면 무조건 자리잡아야 하나라도 구경할 수 있으니까.

 

슬금슬금 주위를 돌다가 아직 펜스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뜸하게 서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곳은 전국 각지의 거리농구팀이 토너먼트전을 벌이는 곳.

아직 코트 설치중이라서 사람들 숫자가 적은 것이었다. 나로서는 운이 좋았던 셈.

교통 통제가 시작된지 1시간만에 고무 코트와 간이 골대 등등을 열심히 설치하고 있는 스탭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저 스탭이라는 사람들도 사실 전부 거리농구 선수들. 모두 자기가 좋아서 자원하고 있는 중이다.

 

 

 

 

농구엔 관심이 없지만, 이런 동적인 스포츠를 사진에 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나로서는

이 후달리는 성능의 카메라와 경험없는 찍사가 어느 정도의 사진을 담아낼 수 있을까 조금 기대중이다.

얼핏 니콘 D3 라는, 스포츠 사진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아주머니를 본 듯 한데.

한국에서야 훌륭한 뽀대덕에 아빠사진사나 정물, 풍경 등등 사방팔방에 활용되는 녀석이지만

일본에서 이 녀석 들고 다니는 사람 보는것은 참 신선하다. 저건 스포츠 사진엔 확실히 유용하니까 조금 부럽기도 하다.

 

 

 

약 30분간의 설치가 끝나고 대회가 시작된다. 앞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앉아서 뒷사람들을 배려한다.

나 역시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망원렌즈로 집중하다보면 확 돌진하는 선수들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으니

카메라가 박살나는 사고를 방지하려면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은 느낌.

농구에 관심이 많은 듯한 초등생, 중등생으로 보이는 애들도 꽤나 많이 앉아있다.

길거리 농구가 꽤나 활성화된 듯, 팜플렛의 팀 명단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농구 좋아하는 친구 강군이 여기 있었으면 불끈불끈 했을 듯.

 

 

 

 

몸을 푸는 선수들.

 

오사카에 연고를 둔 팀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원정온 팀도 있다.

입장시 받는 박수의 레벨이 다른걸 보니 길거리 농구라도 홈팀의 이점은 있는 것인가 싶다.

 

하지만 경기 전 길거리 농구의 간략한 룰과 특징을 소개해주는 사회자의 말을 빌면

길거리 농구는 퍼포먼스, 즉 쇼맨쉽도 중요하고 일단은 서로 즐기는 친목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멋진 장면이 나오면 신나게 박수쳐주고 호응해주는게 가장 좋다고 한다.

 

 

 

 

선수들이 연습중에 나도 카메라 연습중.

길거리 농구라서 그러지 않아도 선수와 상당히 가까운 편인데 내가 가진 렌즈는 35mm 단렌즈와 70-300mm 망원 뿐이다.

골대 근처도 아니라서 선수들의 움직임이 카메라의 사선 방향으로 많이 진행되다보니 화각 맞추기는 어려운 편.

세로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는데, 동체추적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본인의 카메라로는 대강 예측샷을 할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남자간의 뜨거운 우정을 교류하는 듯한 사진도 나오는 듯?

 

 

 

 

골대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이쪽에 준비하고 있으면 일단 슛 장면은 조금 건질 수 있을지도.

하지만 역시 농구는 움직임이 빨라서 어지간한 셔터스피드로는 대응하기 힘들다.

대낮이긴 한데 렌즈 조리개값이 상당히 어두운 편이라 큰맘먹고 ISO를 1600까지 올려본다.

 

6400 까지는 장난으로도 사용하는 요즘 DSLR에 비해 이 카메라는 1600까지만 올려도 노이즈가 심각하다.

그나마 소프트웨어가 많이 발달하다보니 그럭저럭 사용할 수준은 되는데,

농구 경기의 역동성을 잡아내는 목적이라면 화질의 손해정도는 감수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는 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1/4000 정도의 셔터스피드가 나오니 이젠 포커스만 제대로 맞추면 사진은 대충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1경기가 시작된다. 경기시간도 짧은 편이라 정말 순식간에 승부가 날 듯.

제대로 옷을 챙겨입은 심판도 두 명이나 있어서, 장난같지만 제대로 된 경기라는 느낌이 난다.

 

 

 

길거리 농구라서 그런지 자기 어필이 강한 선수들이 꽤 눈에 들어온다.

아님 그냥 원래 스타일인데 내가 적응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미도스지 페스타는 관객도 어마어마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팀들까지 있으니 친목 경기라고 해도 장난으로 할 수준은 아니다.

 

 

 

경기를 주욱 보다보면 팀의 리더격 선수들이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데

그 선수가 또 인상에 남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 사진 찍는 즐거움이 는다.

이 선수가 팀의 주장인 듯한 느낌인데, 역동적인 움직임도 그렇고 관객들에게 서비스 정신도 투철해서

공의 흐름을 중심으로 찍어도 어느샌가 이 선수에게도 카메라가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길거리 농구는 어떨까 싶은 기분으로 시작한 관람인데

움직임이 크고 시원시원하지, 관객과의 거리도 가까워서 관람하는 맛은 프로농구보다 나은 듯 하다.

사회자도 레슬링 중계하듯이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분위기 업 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선수들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농구엔 문외한인 내가 봐도 상당한 실력이라는게 느껴진다.

 

 

 

 

장거리 슛이 깨끗하게 들어갈 때도 짜릿한 맛이 있지만 길거리 농구는 역시 골밑의 치열한 공방전에 제맛이 있는 듯.

전체적인 사진은 화각이 맞지 않아서 담을 수 없었지만 틈을 만들기 위해 쉴세없이 움직이는 선수들의 모습이 꽤나 조직적이다.

이런 골밑에서 슛 찬스를 만들기 위해 이루어지는 연계 플레이는 사진으로 담기가 어려워서 조금 아쉽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들리지만, 역시 한국의 파괴적인 호응과는 차원이 다른것도 아쉽고.

선수들의 움직임은 정말 굉장하고 숙련되어 있는데 관객들의 호응은 역시 일본이다 싶을 정도로 차분하다.

그리고 생전 처음 찍어보는 농구경기 사진도 전혀 익숙하질 않아서 선수들 움직임 따라가는데 애를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