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님과 오후 2시에 만나 OM-D 등을 건네드리고, 밥도 한끼 얻어먹고 공항으로 출발.

일본 가기전에 건네드릴 수 있어서 가슴이 후련하다. 내가 일본 가있는 동안 많이 연습해 보시겠지.

 

야간 공항 도착이야 수도 없이 많이 해봤지만 출국을 밤늦게 하는건 처음이라서 나름 신선하다.

피치항공은 출항한지 1달도 안된 새내기 항공이라 인천공항에서 타려면 전철타고 버스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구석탱이에 있다.

저가항공답게 좌적 지정, 수화물 위탁 등등 어떤 옵션에도 추가금액이 붙기 때문에

짐은 모두 갖고 타고 좌적 지정같은것도 없이 최대한으로 저렴하게 구매하니 세금포함 왕복 13만원.

도착시간이 밤 11시경인 점이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게 큰 문제점으로 떠오르지만

그냥 다음날부터 여행시작이라 생각하고 그날 밤은 대충 알아서 때우면 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꽤나 유용한 노선이다.

 

그냥 싼게 아니라 항공기 내부는 이제껏 내가 타본 어떤 것보다 좌석 사이의 간격이 좁다.

나보다 더 덩치가 굵은 사람은 아마 무릎을 옆으로 돌리지 않고서는 앉을수도 없을 듯.

그래도 반짝반짝 새 비행기라서 이 정도면 만족한다.

 

물론 음식이나 물까지 유료라서 살짝 아쉽긴 했다. 도시락을 세일중이었지만 어차피 1시간 40분밖에 안걸리는 거리.

이 짧은 시간동안에도 나름 여행의 추억이라고 할 만한 에피소드는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승무원이 나한테 외국인 입국카드를 주지 않고 내국인용 세관신고서만 주는 바람에 당황했던 것이 첫 에피소드.

 

무심코 펼쳐 본 기내쇼핑 카탈로그에서 마음에 딱 드는 유니버셜 어댑터가 있어서 큰맘먹고 인생 첫 기내 구매를 해보려고 했는데

막상 그 제품은 6개월 후에나 재고가 들어온다는 답변을 받은 것이 두 번째 에피소드.

그 어댑터 정말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도 좋고, 160 개국 사용가능에, 아이패드까지 충전 가능한 USB 포트도 2개 달려있어서.

아직 피치항공 기내구매 외에는 입수할 방법이 없는 제품이라서 더더욱 안타깝다. 6개월 후에는 구매할 수 있으려나.

 

그리고 귀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국어 설명을 더듬더듬 이어가던 승무원의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착륙후 마지막으로 'ほんま、おおきに~’ 라고 말하는 모습에 피식 웃고 만 것이 마지막 에피소드.

구수한 칸사이 사투리로, '증말 고맙심더~'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칸사이 국제공항을 나서자 생각보다 훨씬 싸늘한 날씨에 놀랐다. 12도라고 하는데 반팔을 입고 있으면 이빨이 부딪칠 정도로.

반팔 중에서도 시원하기로는 둘째갈 스포츠웨어를 입고 있어서 시작부터 극기훈련하는 느낌.

오늘은 그냥 공항 안에서 대충 책이나 보면서 새우잠을 잘 계획이었는데, 운좋게도 아직 오사카로 가는 전철이 남아있었다.

6시간쯤 이득 본듯한 즐거운 기분으로 전철타고 40분간 달려서 오사카 난바(難波)역에 도착.

 

전철 안에서 들려오는 정차역 이름은 지난 일본 자전거 여행때 분명 본 기억이 나는 것들이다.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결코 들러볼 일이 없는 평범한 주택가 지명들이지만, 나에게는 잊어버리기 힘든 이름들.

자전거로 너댓시간 달려온 거리를 40분만에 질주하는 전철 안에서는, 이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게 일상이 되어간다.

 

 

 

밤 12시경 도착한 난바역은 오사카 최대의 중심가중 한곳이라서 아직 그럭저럭 활기에 차 있다. 토요일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물론 대부분 젊은이들이고, 노상에 기타들고 앉아서 열심히 노래하는 가수들의 모습이 인상적.

아쉽게도 내가 막 도착했을 때 마지막 곡을 끝내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노래하는 모습을 남기지 못했다.

 

한국에서 나침반님에게 밥을 얻어먹어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어쩐지 뭐라도 입에 넣어보고 싶어서 24시간 영업중인 맥으로 들어간다.

1층엔 좌석이 텅텅 비었는데 날씨가 너무 싸늘해서 지하로 들어갔더니, 다들 생각하는건 비슷한지 그곳은 꽤나 바글바글했다.

 

밤 12시의 맥도날드 지하는 피로에 찌들어 신문을 덮고 누워있는 양복 차림의 회사원, 다음엔 노래방이나 갈까 하면서 정처없이 떠도는 학생들,

경마신문을 펼쳐들고 무언가 고민중인 백발 할아버지 등등, 관광 가이드북에 실리지 않는 도시의 모습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부 칸사이 사투리로 말을 하고 있으니 이방인인 나로서는 그걸 반찬으로 햄버거를 씹어먹는 맛이 있다.

예순쯤은 가볍게 넘어버리는 백발 할아버지가 새벽 1시에 맥에서 커피와 함께 서류를 읽고 있는 모습, 이 정도면 충분히 이국적이지 않은가?

 

 

 

 

적당히 휴식하며 일기를 쓴 후 밖으로 나오자 '맛사지 안할래요?'라고 젊은 여성들이 엉겨붙는다.

사실 일본의 풍속업은 문제 일으키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자국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한테 말 건 것은 뭔가 착오가 있어서일거라고 생각한다.

 

오사카나 나고야에서 밤거리를 걸을때면 자주 있는 일이라서 이젠 별로 세삼스럽지도 않지만.

새벽 1시를 넘어가자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거리의 활기도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24시간 영업점 근처의 인적 말고는 고요해진다.

조금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근처에 남아도는 넷까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한국의 PC방과는 달리 일본은 개인룸이 주를 이루며,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의자가 아닌 매트리스 룸도 있기 때문에

밤에 잠시 눈 붙이고 쉬기에는 그나마 저렴한 수단으로 유용하다. 음료수와 만화책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점도 좋고.

 

 

 

 

특히 야간 나이트팩은 6시간 10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대신 기본요금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더욱 이득.

맥도날드보다 훨씬 저렴한 규동집도 일본 와서는 빠지지 않고 한끼 즐기곤 하는데

지금은 충분히 배가 부르니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넷까페로 들어간다.

 

6시간 팩키지를 끊었지만, 이곳에서는 단지 잠만 자기에는 왠지 아까워서 항상 음료수 마셔가며 한국에 발매되지 않은 코믹스를 찾아 읽는다.

한글보다는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6권쯤 읽는데 2시간이나 소모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잠도 잘 오질 않는다.

매트리스 룸이라고 해도 호텔방같은 분위기는 아니라서 잠자리는 불편하고 좁다. 이리저리 뒤척여서 간신히 잠 잘만한 자세가 나올 정도.

 

하지만 이것도 신기한 게, 한 시간동안 그렇게 잠이 오질 않아서 뒤치닥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머리 끝에서부터 밑으로 쑤욱 내려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달콤한 수면이 엄습해 오는 순간이 있다.

그 후엔 가끔 깨더라도 금새 편안하게 잠 들수 있고, 잠시 깨어나는 그 순간도 아늑하게 기분이 좋다.

잠이 오기 전의 그 딱딱하고 불편한 매트리스가 그렇게 아득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