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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덴타운'에 해당하는 글들

  1. 2010.02.24  오사카 여행기 마지막 - 구테~ 19
  2. 2010.01.29  오사카 여행기 1편 - 신세카이와 츠텐가쿠, 오덕로드 8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항공편이 저녁 늦게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마지막 날엔 시간이 촉박하죠.
그나마 이번엔 오후 항공편이라 오전에 조금 돌아다닐 시간이 있긴 하지만
숙소 주변이 아니고서는 후딱 다녀와볼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갈 곳은 정해져 있는거나 마찬가지.

체크아웃 후 짐을 숙소에 맡겨놓고 후다닥 나옵니다.
오사카로 여행가는 헝그리 한국 여행자들에겐 이미 유명한 그린파인.


그러고보니 숙소에서 나와 3분 거리인 츠텐가쿠에는 결국 못 올라가봤습니다. ㅡㅡ;
주유패스 무료 티켓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 후 숙소로 돌아올 즈음이면
이녀석 개장 시간이 지난 후라서 결국 올라가보지 못했군요.

지금이라면 돈 내고 올라갈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공짜 전망대는 숱하게 올라가봤으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이럴 때 쓰는건가 싶네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구경하지 못하다니.


이른 시간이라 저녁때만큼 사람이 많진 않은 난바역입니다.
이곳 난바역 지하상가는 난바 워크(なんばウォーク)라고 해서 다양한 잡화점,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볼거리입니다.
이곳으로 온 이유는 엄니께서 부탁하신 홍차를 구해보기 위해서였지만
그 홍차는 사실 도쿄 쪽에 가게를 두고 있어서 이곳에서 구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웠네요.

일단 찾아보는 흉내라도 내 보려고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역시 제대로 된 홍차를 파는 곳은 없었습니다.
난바역 지하의 거대 식품매장도 둘러봤지만 전부 녹차 종류만 있고 홍차는 없네요.


홍차 찾기는 실패하고, 일단 다시 걸어서 숙소가 있는 에비스쵸 역으로 가기로 하는데
일단 그 전에 동생분이 오사카에서 먹고 싶다는 음식 중 하나인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난바 워크에서 적당한 가게 하나 찾아 들어가서 오무소바(オムそば) 하나하고 모던야키(モダン燒) 하나를 시켰습니다.

저는 지난번 히로시마 여행때도 굳이 오코노미야키를 찾아먹진 않았던 만큼
좋아 환장하는 타코야키에 비해 그닥 끌리지는 않는 음식이지만
일행과 함께 온 여행이니 이런 것도 한번 도전해 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먹어보기로 결정.


아침녘에 오코노미란 것도 참 특이한 조합이긴 한데 그래도 시간이 없으니...
오무소바는 말 그대로 오무라이스에 쌀 대신 소바를 넣은 음식이구요.

모던야키는 오코노미야키에 소바를 넣어 만드는 퓨전음식 비슷한 겁니다.
이것도 오코노미의 종류이기도 하고, 오사카 명물이라고 하니 시켜봤는데
그냥 소바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 이외엔 오코노미야키와 다른 점이 별로 없네요.
원래 오코노미야라는 녀석이 기본 재료만 들어가면 뭘 넣던 철판에 굽기만 하면 되는 녀석이라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데, 왜 이녀석은 모던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기다리고 있으면 종업원이 알아서 만들어줍니다.
저는 오코노미를 맛있게 만들 능력은 없기 때문에 그냥 숙련자가 만들어주는게 편하네요.
바로 만든 것이라 따끈따끈하게 맛있긴 했는데, 역시 제 취향과는 그닥이었습니다.
집에서 부쳐먹는 정구지 찌짐이 더 맛있어서 그런지 이런 류의 음식은 밖에서 먹고싶은 생각이 안나는군요.

그냥 오사카에 왔다는 기념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난바워크를 이동하면서 다시 숙소 쪽으로 걸어갑니다.
숙소 근처에 오덕들의 성지인 덴덴타운이 자리잡고 있으니 시간 보내기로는 제격이죠.

친구녀석은 아직 더 사고싶은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저도 지난번 포스팅 때 보여드린 보컬로이드 피규어를 손에 넣고 싶었기 때문에.


매번 밤에만 찾아와서 그런지 낮에 보는 덴덴타운은 꽤나 신선하군요.
여기서부터 덴덴타운을 가로질러 쭈욱 걷기만 하면 숙소가 나옵니다.


가게 안은 대부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주변 거리만 줄창 찍어댔습니다.
이곳 거리는 마치 용산 선인상가 주변을 보는 것 같아서 친근한 느낌도 듭니다.
도쿄 아키하바라에 비하면 아직 컴퓨터 관련 상가도 좀 남아있는 편이라.


일본이 전체적인 불황이다 보니 이곳도 장사 쉽게 할수는 없는 듯.
아키하바라가 오덕들의 성지로 거듭나기 전에도 이곳에서는 나름 유명한 지역상가들이 꽤 있었는데
애니메이트나 게이머즈, 메론 북스 등의 거대 체인점들이 들어서면서
이곳만의 특색도 많이 줄어든 느낌이네요. 어느 나라나 거대 체인이 지역 상권을 점령해 가는 모습은 서글픕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라는 문구입니다.
길고양이나 비둘기나 이제는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네요.

처음 일본에 갔던 중학교 2학년때는
비둘기 먹이 자판기 옆에 가기만 해도 비둘기들이 온 몸에 달라붙기도 했는데 말이죠.
지금은 물론 자판기도, 비둘기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일본에 올 때마다 항상 궁금하지만
매번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는 메이드카페.

까페는 느긋하게 차 마시면서 숨좀 돌리고 책이나 읽는 재미로 가는 건데
저런 데서 냥냥한 목소리로 뭐라뭐라 하는 메이드복 차림의 종업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면
별로 느긋하게 있지 못할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남은 돈 탈탈 털어서 피규어 등등을 구입하고
아직도 수중에 돈이 남아 뭐 좀 더사야 하나 안절부절하는 친구를 닥달하면서
다시 숙소가 있는 신세카이로 돌아왔습니다.

공항 검색대를 안전하게 통과하려면 필름을 다 써야 하기때문에
의미없어 보이는 늠름한 할리 데이비슨도 한 장 찍어줬습니다.

사실 고성능 필름카메라인 세븐이에는 필름 끝단 남기고 강제 이송해주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남아도 별 관계는 없지만, 기분상 매거진에 들어있는 필름은 다 찍어주고 싶은 게 여행이란 녀석이죠.


결국 올라가지 못한 츠텐가쿠를 바라보면 언제나 쓴웃음만 나옵니다.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러 다시 난바역으로.
기념품이다 오덕 물품이다 해서 짐이 뭔가 좀 늘어난 느낌입니다.
책이 무게도 무겁고 부피도 크고 해서 좀 힘들군요.


4박 5일만에 오사카와 쿄토를 둘러본다는 건
그냥 살짝 맛만 보고 돌아서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도 4박 5일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칸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적인 여유는 꽤 있군요.
늦어서 헐레벌떡 하는것 보다는 여유있는게 좋으니.

이곳에서 이곳 오사카 여행의 마지막 별미를 맛볼 차례입니다.


각종 여행 매체에서 추천하던 빵집 구테(グーテ)의 신선한 빵입니다.
아침에 돌아다녔던 난바 워크에 자리잡고 있는 이 빵집은 1948년에 개점한 이후
오사카를 대표하는 빵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사카 시내에만 10개가 넘는 체인점이 있고, 각각 개성있는 빵과 음식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본 난바점 하나만으로는 이 곳의 매력을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역시 빵은 맛있었습니다. 천연 효모를 사용해서 신선하다고 하네요.


그런데 빵만 먹고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결국 공항내 식당에서 또 한끼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래도 라면을 너무 적게 먹은 것 같아서... ㅡㅡ;

별 맛없는 평범한 라면이라도 돌아가는 길의 아쉬움을 달랠 만큼의 가치는 있더군요.


저만 먹는것도 좀 그러니 다른 것도 시켰습니다.
따끈따끈한 닭튀김과


앙증맞은 닭꼬치도 함께.
자금을 두둑하게 소지한 친구 일행덕분에 이런것도 먹어보는군요.
사실 전 소지금이 완벽하게 바닥나서... T_T

처음부터 얼마 갖고가지도 않았지만 예상이 없었던 고양이 인형과 피규어 지출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과 여행가면 얘네들이 만족을 좀 했을려나 하는 눈치때문에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혼자 다닐때와는 다른 즐거움도 있으니 가끔은 이렇게 떼로 몰려가는것도 나쁘진 않겠죠.
다음엔 또 혼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군요.

동생분은 아픈데 질질 끌고다녀서 참...
다음엔 몸상태 좋을때 가기로 하죠.

친구한테는 조금만 더 바람잡아넣었으면
닌텐도 DS도 사게 만들수 있었는데 내 능력이 부족한 탓에... ㅡㅡ;


여차저차해서 오사카(大阪) 관광 겸 가이드로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그 동생분과 함께 4박 5일의 일정으로 떠났습니다.
3년 전에 얘네들 데리고 동경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애니메이션,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동경에서는 작정하고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 등지를 돌아다니며
만다라케, 애니메이트, 게이머즈, 옐로 서브마린, K-Books 등등 오덕들의 성지란 성지는 전부 다 섭렵했었단 말이죠.

덕분에 정상적인 관광이라기보다는 오덕에 특화된 관광형태를 취하다 보니 정작 제대로 즐기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이번엔 친구를 정상적인 관광의 길로 인도해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평범한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비행기는 언제나처럼 아침 출발이라 새벽에 일어나서 리무진 버스를 기다립니다.


비행기를 타고 나니 한국에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실감할 수 있더군요.
참 기록적인 폭설이었습니다. 저야 뭐 눈이 귀한 곳에서 자란 탓인지 그저 신기할 뿐이었지만.


칸사이 국제공항에서 일단은 내일부터 사용할 '오사카 주유패스'(大阪周遊パス)를 구매해두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요...
결국 한참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얻은 결론은 원래 갈 예정이었던 난바(難波)역까지 가야 구매할 수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1일 패스밖에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오사카 주유패스는 오사카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진리나 마찬가지인 티켓으로...
원래는 1일권 밖에 없지만, 외국인들에게만 발행하는 2일권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본적인 기능은 1일, 혹은 2일간 오사카 시영 전철과 버스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실제로 여행자들에게 크나큰 축복이 되는 부분은 오사카 시내 유명한 볼거리 25개소의 무료 입장 쿠폰이 동반된다는 사실이죠.
게다가 그 외의 수많은 볼거리, 탈거리를 조금씩 조금씩 할인해주는 쿠폰도 있습니다.

무료 입장가능한 지역을 중점적으로 이틀간 돌아본다면 보통 5000~7000엔 가까운 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여행자를 위한 최상의 패스카드임에 틀림없습니다.
단지, 1일 패스로는 아무리 용을 쓰고 달려도 무료 쿠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국인을 위해 특별히 2일 패스가 만들어 진 거죠. 
특히 오사카는 기본 전철비도 꽤 비싸고, 몇 구간만 지나면 요금이 추가되는 터라
오사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도 주유패스가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결국 일행은 꽤나 긴 시간을 소비한 후에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난바역으로 향했습니다.
난바는 남부 오카사의 모든 전철선이 모이는 중심지로, 오사카 최고의 번화가인 도톤보리(道頓堀), 신사이바시(心齋橋)등이 밀집해 있습니다.
일본 제 2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는 화려함을 자랑하는 곳이죠.

하지만 일행은 지금 짐덩어리를 여기저기 짊어지고 있는 터라 일단 숙소로 가서 짐부터 풀어야 했습니다.
그 전에 어떻게든 주유패스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패스 판매처인 Visitor's Information Center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한차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T_T
일본의 둘째 주 월요일(1월 11일)이 성년의 날이라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사카에 도착한 날이 1월 10일이었는데요, 일본에서 성년의 날은 굉장히 큰 기념일이고 법정 공휴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주유패스의 무료 쿠폰을 쓸 수 있는 여러 관광 명소들 중, 원래 월요일이 휴관인 곳들이었죠.
일본은 보통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치면 다음 날 월요일로  휴일을 밀어버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월요일 휴관인 곳들이 성년의 날 관계로 전부 월요일 영업한 후,
다음 날인 화요일날 휴관을 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주유패스로 뽕을 뽑으려고 월요일 휴관하는 곳과 화요일 휴관하는 곳을 잘 구분한 후 거기 맞춰서 열심히 돌아다니려 했던 터라
상당수 관광지가 화요일날 왕창 쉬어버리는 사태는 여행계획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크나큰 위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서 안내원 아가씨를 괴롭혀가며
월요일, 화요일 휴관인 곳, 이틀 모두 영업하는 곳 등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일정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원래 계획했던 코스가 정말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열심히 달려야 소화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에
몇 군데 돌아보지 못하는 곳을 제외하면 이틀간 주유패스를 이용한 여행경비 절감은 그럭저럭 가능할 듯 했습니다.


결국 도착은 오전에 했지만 오후가 훨씬 넘어서야 숙소가 있는 에비스쵸(恵美須町)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도 꽤나 번화가라서 골목 구석에 숨어있는 숙소 찾기가 참 어려웠네요.
원래 혼자 여행할때는 그저 두리번거리며 하염없이 목적지 찾는것도 일상다반사였는데
가이드할 일행을 두고 그러려니 왠지 뒷통수가 뜨끔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ㅡㅡ;

이곳 에비스쵸는 아직 옛날 풍경이 조금은 남아있는 시장 신세카이(新世界)와, 그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츠텐가쿠(通天閣)가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었던 것이, 신세계라고 당당히 이름붙힌 거리는 촌스럽기 그지없는 전광판으로 그 길을 시작하고
거리 안엔 오사카 안에서도 꽤나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고즈넉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거든요.

그리고 하늘과 통한다는 거창한 제목을 단 츠텐가쿠는 사실 요즘 보면 초라할 정도로 조그만 탑입니다.
원 탑은 1912년에 세워졌고, 화재로 소실된 후 195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으니, 지금와서 뭐라 할건 아니지만...
높이 103m의 타워는, 오사카의 랜드마크인 WTC 코스모타워의 256m나 우메다(梅田)의 명소 스카이빌딩(スカイビル)의 173m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어린애 장난이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런 작명성에서 오사카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기도 합니다.
홋카이도에서나 오사카에서나 도쿄 사람들은 쑥맥에 핏기없는 의지박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데
그만큼 홋카이도나 오사카 사람들은 배포가 크고 인정이 많으며, 호탕한 기질이 부각된다는 말이 되니까요.

한국사람들과의 상성은 쪼잔한 도쿄보다 오사카 사람들이 더 맞는다고 할 만큼 적당히 뻥도 잘 치고 친근하게 대하기 좋은 느낌이죠.
이미 전통 문화의 향수는 거의 사라진, 이름뿐인 문화의 도시 오사카에서 그나마 이 아이러니한 제목의 두 볼거리가 저를 한번 피식 웃게 만듭니다.

일단 숙소에 서둘러 짐을 풀고 아까운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길거리로 나섭니다.
주유패스 2일권은 내일부터 써야 본전을 뽑기 때문에 오늘은 전철비도 아낄 겸 주변 구경만 슬쩍 하기로 했습니다.
동생분 몸도 별로 좋지 않은것 같아서 초장부터 무리를 하면 안될 것 같기도 했고.


일단 저렴한 덥밥체인인 마츠야(松屋)에 들어가서 배를 좀 채우기로 했습니다.
친구와 저는 규동(牛丼)을 주문했습니다. 그냥 평범한 소고기덮밥.
뭔가 비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재료의 질만 좋으면 누구나 만들어먹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요리입니다.
친구는 이 규동을 참 좋아하더군요. 전 싼맛에 일본 갈 때마다 자주 먹긴 하지만 그닥 맛있다는 느낌은 못받았습니다.


동생분은 속도 안좋은데 모험정신을 발휘해서 무려 저도 처음보는 비빔동(ビビム丼)을 시켰습니다.
분명 한국의 비빔밥+덥밮 이라는 의미겠죠. 그런데 도착한 음식은 아무리봐도 비빔밥이라고 하기엔 좀... ㅡㅡ;
암튼 용감한 동생분은 열심히 먹긴 먹었습니다만 양도 꽤 많았고, 훗날 속이 안좋아서 고생 좀 하셨습니다.


정말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이 날은 에비스쵸 서쪽의 신사에서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고 하네요.
꽤나 큰 규모의 축제라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께서 교통이 혼잡할거라고 미리 주의까지 주셨습니다.
신사까지 따라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길게 늘어있는 상점들도 구경할 수 있어서
주유패스의 악몽이 조금은 희석되는 느낌이었네요.


축제를 즐기는 사람 중 상당수가 저런 나뭇가지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 더 통이 큰 사람이었다면 아무나 붙잡고 저게 무슨 의미인지 다짜고짜 물어봤을테지만
전 섬세한 사람이라서 그냥 남몰래 사진만 찍었어요.


동생분은 예전부터 어떤 맛인지 궁금해하던 사과사탕(リンゴアメ)을 하나 샀습니다.
일본 만화책이나 영화 등등에서 아이들이 축제날 자주 사먹는 녀석이죠.
별다른 거 없이 그냥 사과에 설탕 녹인 시럽을 둘둘 발라서 굳힌 것 뿐입니다.
사과와 시럽의 조합으로 굉~장히 달달하기 때문에 단 것 좋아하시는 분은 사과의 상큼함에 단맛이 가미된 이 녀석이 마음에 드실 듯.

저처럼 단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머리가 찡할 정도로 상당한 당도를 자랑하니 그냥 한 입만 먹어보세요.


이번 여행에도 전 필름카메라 알파 세븐이를 주력으로 사용했는데,
마음껏 쓰라고 건네준 DSLR A550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잠만 잤습니다. ㅡㅡ;
대만 여행땐 형님이 알아서 저것 가지고 열심히 찍고 해서 상당수의 사진을 건졌는데
이 친구녀석은 카메라의 'ㅋ'자도 관심이 없어서 그냥 멀뚱멀뚱 갖고만 다녔네요.

열심히 찍어댔으면 그래도 몇 장은 참신한 사진을 건질 수 있었을텐데 그냥 제가 필요할 때 받아쓰는 용도로밖에는 사용하지 못했네요.
친구는 이번 여행동안 '아이템박스'로서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조금은 자율성을 발휘해도 좋았을 텐데...


칸사이 하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마성의 간식 타코야키입니다.
타코야키도 많이 만들어본 사람이 잘 만든다고, 유동인구가 많고, 잘 팔리는 타코야키집이 맛도 일정 이상은 합니다.

한국에서 먹던 늘어붙은 떡같은 타코야키와 비교하면
겉은 과자처럼 아삭거리면서 속에 숨어있는 엄청난 열기의 반죽과 토실토실한 문어조각의 향연이 예술이죠.
전 참을성이 없어서 항상 일본서 타코야키 먹으면 항상 입천장이 헐렁헐렁 거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맛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방금 전에 규동을 먹은터라 그 감동이 조금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 혼자 10개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출발 전부터 속이 좋지 않던 동생분이, 비빔동에 이어 이것까지 무리하게 먹다가 상태가 별로 안좋아졌습니다.
간식거리는 다음에 동생분 속이 좋아지면 같이 즐기기로 하고 일단 군것질은 여기서 끝내기로.


노점축제가 다 그렇듯 이곳에서 파는 것들은 조잡한 애들 장난감이나 출처불명의 기념품들이라 그냥 재미있게 구경만 해도 만족합니다.
왠지 전문 기념품점에서 팔면 '이런 걸 기념품이라고' 하면서 기분나빠질 저질 물건들도
이런 노점상에서 팔고 있으면 나름 정취를 풍기는 문화적 코드가 된다고 할까요.


축제 노점판을 슬쩍 둘러본 후 날이 어두워지자 급조된 오늘의 행선지로 향합니다.
숙소 근처에서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는 관광지.
오덕들의 성지 덴덴타운(でんでんタウン)입니다.

지도에는 결코 나오지 않지만 많은 오덕들에 의해 오타로드(オタロード)라는 애칭까지 갖게 된 거리입니다.
원래 15년 전까지 도쿄의 아키하바라(秋葉原)가 그랬듯이 이곳 덴덴타운도 처음엔 PC 부품 관련 상가들이 중심이었는데
점차 오덕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아니메, 게임관련 점포들이 입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거의 오덕들의 성지로 변한 아키하바라에 비해 아직은 PC 관련 점포도 꽤나 남아있는 이곳이지만
오히려 아키바보다 노골적으로 성인용품, DVD를 판매하는 점포가 더 강성한 듯 해서 재미있었습니다.
아주 열정적인 목소리로 성인 DVD를 홍보하는 테이프를 가게 밖으로 크게 틀어놓은 점포도 있고
'세계의 속옷 전문점'이라는 묘하기 그지없는 제목을 달고 있는 점포도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들어가진 않았어요. ㅡㅡ;
친구 동생분이라는 '여자사람'도 있고, 친구는 반 오덕에 가까운 녀석이라 현실세계의 여성에겐 관심이...
(이 이상 했다간 친구분의 인생에 큰 장애가 생길수 있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기로 하죠)

숙소도 어찌어찌 잡다 보니 이 덴덴타운과 걸어서도 갈 수 있는 희한한 위치가 되어버렸는데
어차피 이번 여행의 컨셉이 오덕문화에서 탈피한 정상적인 관광인 고로
일부러 시간내서 덴덴타운을 찾아가지 않는 대신 숙소 근처에 있으면 저녁에 정상적인 관광 후 조금씩 둘러볼 수 있겠다
싶은 저희 면밀한 계획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번뜩번뜩하며 중고 게임소프트를 굶주린 늑대처럼 찾아다니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뭔가 제가 오덕의 저력을 너무 우습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가슴을 엄습해 오더군요.
동생분은 친구만큼 오덕은 아니고, 평소 즐겨하던 NDS 게임이 있어서 그것만 찾아다녔습니다.

저도 참 한때는 저 친구를 오덕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전반적으로
굉장한 수집력과 지식을 자랑했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가끔 코믹스 몇 권씩 사는 것 외엔 거의 손을 뗀 상태라서
손을 떼지 못하고 오덕의 피로 물들어가는 친구의 모습에 쥐똥만큼의 죄책감을 느낄랑 말랑 하기도 합니다.


대충 저렴하다 싶은 게임 소프트를 구입한 후 첫 날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일본은 가게들이 문을 꽤나 일찍 닫아서 밤부터는 그닥 할 게 없다는게 아쉽죠.
물론 도톤보리 같은 환락가에 가면 먹고 마시는 거야 밤새도록 할 수 있지만 여행경비는 한정되어 있으니.
저 츠텐가쿠 전망대 역시 원래는 600엔이지만 주유패스에 무료 입장권이 있으니 잘 써먹어야겠습니다.


효심이 지극한(?) 친구는 엄니한테 안부전화도 잊지 않습니다.
저는 워낙 이리저리 뛰쳐나가는 터라 엄니는 제 전화 별로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4박 5일 정도의 여행이야 그냥 동네 슈퍼에 과자사러 나가는 정도지만 그래도 한두 번은 연락을 드려야겠죠.


신세카이 거리는 신, 구의 조화가 기묘하게 얽혀있는 느낌입니다.
허름한 꼬치구이집과 한국에선 거의 자취를 감춘 동시상영 영화관, 그리고 휘황찬란한 파칭코 가게.
숙소 근처엔 상당히 큰 스파 월드도 있었지만 여행 끝날 때까지 그곳을 이용할 일은 없었네요.
동생분 혼자서 여탕에 들어가봤자 심심할 테고... 저는 그냥 여행 후 혼자 조그만 욕탕에서 몸만 담궈도 행복하니까요.

근처 편의점에서 간식거리 조금 사들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여행의 첫날은 비행기에서 버스, 전철까지 항상 피곤함의 연속이라 힘들군요.
물이 가득 담긴 욕탕에 몸을 담그니 역시 그 짜릿함과 편안함은 여행의 최고 즐거움입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주유패스를 이용한 입장료 남겨먹기 계획을 실행합니다.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주유패스의 무료 입장권을 헛되이 할 수는 없죠.
상당한 강행군이 예상되는데, 저는 익숙하지만 이런데 면역이 없는 친구와 동생분은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