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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 박물관'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1.25  도쿄 산책 - 삿포로 라멘 스미레 18
  2. 2013.01.20  도쿄 산책 - 요코하마 라멘 박물관 20
  3. 2013.01.18  도쿄 산책 - 카모메식당의 고향 10

 

 

본인은 이런 추억에 젖을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릴적 아버지께 들었던 기억은 난다. 마을에서 누가 흑백 테레비 한대 샀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애들은 물론 마을사람 전체가 모여와서 함께 시청하곤 했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

 

지금도 서울역 안의 거대 TV 앞에서는 여전히 시대를 뛰어넘은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이곳의 이 TV는 과연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 건지 조금 궁금하다.

정말 오리지날 흑백 브라운관을 어떻게든 계속 사용하고 있는건지

요즘 TV에다가 겉만 저렇게 옛날 티나게 만들어 놓은건지.

 

영상이 반복재생 되는걸로 봐서 내부에 현대식 장치가 되어있다는 사실까지는 알겠는데

아무래도 LCD 모니터가 아닌 듯한 느낌때문에 묘하게 느껴진다. 어디까지가 오리지날일지.

 

그러고보니 시골의 작은할머니 댁에는 이만큼 낡은 TV도 있긴 했다.

프레임이 나무로 되어 있고, 양쪽 옆에 붙박이 여닫이문이 있던 TV.

없어진지 오래지만,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면 나름 가치가 있는 녀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청법이다 셧다운제다 하면서 물심양면 완벽한 독재와 겸열의 부활을 꿈꾸는 요즘 한국의 꼬라지를 생각하면

이런 저속한 옛 거리 모습의 재현이란 낯뜨겁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퇴폐적 풍경일텐데

이곳에서는 이런 풍경으로 돈 잘 벌고 있는듯 하다.

 

하긴 돈이 주머니에서 샘솟고 넘쳐서, 인터넷 따위 사용할 필요 없이

화려한 대구의 밤문화를 얼마든지 직접 즐길 수 있는 우리 국회의원 어르신들이야

자기 딸내미 나이의 여자들 껴안고 나뒹굴 수 있을테니, 이런 추한 옛 모습은 저속하게도 느껴지시겠지.

 

캬바레라는 말은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 일본은 이 단어 별로 안쓰는 것 같던데.

요즘엔 스낵바라는 말을 많이 쓰는듯 한데, 이쪽 방면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문에 붙은 찌라시는 칼립소 쇼라는걸 선전하고 있는데, 뭔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카리브해 부근의 경쾌한 전통 음악이란다.

1958년도의 허름한 캬바레라는건 의외로 국제화에 빨리도 눈을 떴나보다.

 

옆의 조그만 창문에 붙어있는 찌라시는, 호스티스 모집이라고 적혀있다.

그러고보니 청량리 롯데백화점 갈때, 그 뒤쪽의 그렇고 그런 거리를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2012년의 경험이지만, 생각해보니 1958년의 이 모습과 놀랄 정도로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역시 가장 기본적인 운동을 산업화한 업종이다보니, 50년쯤 지나도 별로 발전이 없는건가 싶기도 하고.

 

 

 

시간이 점점 흘러서, 더 지채하다간 폐점시간까지 정말 라멘 못 먹을 위험성이 있으니

서둘러 한그릇 먹으러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생각해 봤는데, 길을 잘못들어 지하 1층부터 시작한 탐험이니까

그건도 인연이다 생각해서 지하 1층에 위치한 라멘집으로 들어가 본다.

 

지난번 포스팅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라멘가게는 지하 2층에 빙 둘러서 영업중인데

좁디 좁은 1층 통로에도 영업중인 가게가 있다. 지하 2층이 왁자지껄한 시장 한복판이라면

지하 1층의 통로에 자리잡은 라멘가게는, 그 음침하고 어두운 조명만큼이나 훨씬 진득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침 팔짱끼고 즐겁게 돌아다니는 젊은 커플들과 달리 난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는 솔로니까 왠지 분위기에도 어울리는 듯 하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은 삿포로 라멘 전문점 '스미레'라는 곳.

삿포로 하면 역시 된장을 베이스로 한 미소라멘인데, 아무 생각없이 메뉴 자판기에서 미소라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순간적으로 옆에 있는 버튼에 눈길이 갔다. '옛날식 라멘(昔風ラーメン)' 이라는 메뉴가 눈에 보인 것.

 

이 옛날식 라멘이라는 이름은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자전거 여행의 여파도 있겠지만, 일본 중에서 홋카이도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단어인데, 이 단어를 다시 보는건 근 4년만이다.

 

'옛날식 라멘'이라는 건 오직 홋카이도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인데, 이것은 홋카이도가 라멘의 발상지이기 때문.

라멘이라는 이름이 정착되기 전에는 '중화 소바'라고 불린 이 음식은, 이름 그대로 중국에서 들여온 녀석.

메밀을 중심의 면문화가 발달했던 일본에서, 꼬들꼬들 쫄깃쫄깃한 중국식 면은 매우 생소하고 신기한 이미지로 다가왔었다.

 

중화소바가 가장 먼저 들어온 삿포로에서는, 생선육수 혹은 닭고기 육수에다가 간장으로 맛을 내麩고

돼지고기, 멘마, 계란, 나루토(저기 똥글똥글 말린 오뎅같은 녀석), 시금치, 후(麩) 를 넣는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사진에 나온 저 녀석이 최초의 일본 라멘의 모습이라는 뜻.

 

라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고개를 갸우뚱할수도 있겠는데,

쇼유라멘(간장라멘)과 뭐가 다른지 말이다.

 

사실 중화소바 = 쇼유라멘 이라고 생각해도 틀린게 없다. 그리고 삿포로에서만 이걸 '옛날식 라멘'이라고 부르고

다른곳에서는 그냥 중화소바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같은 라멘. 알고보면 조금 맥이 빠지는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라멘의 시작점은 홋카이도의 삿포로였고, 지금은 된장라멘으로 유명한 삿포로지만

라멘의 시대를 연 것은 간장라멘이었다는 조그마한 잡지식.

 

중화소바라고 부르는 라멘은 기본적으로 이 녀석과 거의 흡사하지만

'옛날식 라멘'이라고 따로 구분해서 부를때는 반드시 시금치와 '후'가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후(麩)는 사진의 라멘 중앙에 둥둥 떠있는 녀석. 얼핏 보면 오뎅 말린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부 말린것 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도 통용되던 때가 있었으니 먹어본 사람도 있을 듯 하다.

 

저 녀석은 밀기울, 즉 두부의 비지처럼 밀가루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에서 추출해낸 글루텐이라는 성분을 말려서

마쉬맬로처럼 만든 것이다. 단백질의 일종이고, 밀가루 가공 찌꺼기로 만들기 때문에 단가도 매우 저렴해서

전후 영양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에서 많이 사용되던 녀석. 단지 저렇게 추출해낸 글루텐 덩어리는 무미 무취였기 때문에

그냥 먹기는 좀 그렇고 해서, 저렇게 육수 위에 얹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유부덩어리처럼 국물을 흡수해서 맛이 생기니까.

 

우동위에 얹는 유부조각도 사실 저 '후'가 그 기원이다. 좀 먹고 살만해 지니 굳이 맛도 없는 글루텐 덩어리를 쓸 필요가 없었던 것.

하지만 일본의 어느 현 어느 마을에서는 아직 마을사람들 전체가 저 '후'를 국에 넣어서 맛있게 먹고 있다.

저런 조그만 녀석이 아니라, 물 빨아들이면 한국의 호빵만큼 커지는 녀석이라서, 국 안에 넣으면 거대한 건더기가 된다.

저게 복합성 단백질 덩어리라서, 물을 아무리 흡수해도 쭉 찢어지지 않고 여전히 질긴 습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국물을 잔뜩 흡수한 녀석을 쭉쭉 뜯어먹는 그 식감은 상당히 묘한 체험이다.

 

쓸데없는 콩알지식 이야기하느라 길어졌는데, 아무튼 오랜만에 옛날식 라멘이라는 이름을 듣고

비록 된장라멘이 더 맛있을지라도 후회없이 그 녀석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곳 요코하마 라멘박물관이 1958년의 모습을 이렇게도 멋지게 재현해 놨으니, 거기 어울리는 라멘은 당연히 옛날식 라멘이겠지.

 

사실 간장라멘은 모든 라멘의 베이스가 되는 모델이라서, 라멘박물관에서 굳이 이 녀석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긴 했다.

국물을 만들때 소금라멘이 가장 첨가되는게 적기 때문에 라멘의 기본은 소금라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금라멘은 간장 -> 된장 -> 돈코츠로 이어지는 일본 라멘 가계도와는 완전히 별개로 만들어진 녀석이다.

 

 

 

취향에 맞춰 후추를 조금 뿌리고 후루룩 면발을 들이삼킨 순간

혀가 뇌에 보내는 신뢰성높은 화학신호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보기에 정말 평범한 간장라멘인데, 놀랄 정도로 맛있다.

 

간장라멘이 제일 저렴한 편이라서, 자전거 여행중 380엔 정도 되는 저렴한 중화소바 참 많이도 먹었는데

이곳의 옛날식 라멘은 900엔이나 하는 고가니까, 뭔가 다르긴 다르겠지 하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되짚어봐도 이 라멘, 내가 이제껏 먹은 녀석중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맛있다.

 

면의 삶은 정도나 굵기 등을 개별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완벽한 식감에 제대로 우려난 닭육수의 가슴지리는 시원함이 나를 놀라게 한다.

사실 싫어하는 요리만 아니면 대강 맛있게 먹는 성격이라서 이런 표현은 잘 하지 않는데

이 라멘 정말 굉장히 맛있다. 간장라멘이 갖춰야 할 모든 기본기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레퍼런스 라멘이라 할 만하다.

 

챠슈의 상태, 멘마의 식감, 적당한 반숙계란, 아삭아삭 파조각과 딱 적당히 삶긴 시금치 등등...

평소 번개처럼 음식을 입안에 털어넣는 식습관을 가진 본인이라도,

이번엔 천천히 면을 빨아당기고 숟가락으로 한모금씩 국물을 떠먹으며 최대한 맛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요 근래 먹은 라멘중에 이렇게 단점을 생각해내기 어려운 녀석은 처음이다.

 

물론 간장라멘이라는 녀석의 범위도 정말 넓어서, 면의 굵기, 삶는 정도뿐 아니라 면의 구성 성분과 뽑는 방법에 따라

완전히 직선으로 뻗은 녀석, 꼬물꼬물한 파마같은 녀석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되고, 각각의 맛도 다르다.

간장 역시 무한대의 조합이 가능하다. 미림에 가까운 옅은 간장과 돼지뼈 육수의 조합도 있고

콜라만큼 시커먼 진한 흑간장과 닭육수의 조합 등등... 간장라멘의 바리에이션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 모든 바리에이션 앞에 이름을 댈 수 있는게 이 '옛날식 라멘'이라고 생각.

가장 맛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간장라멘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가이드같은 느낌에서.

 

 

 

라멘박물관에 입점한 가게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최고의 가게라는

이시다씨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확실히 사실인 듯 하다.

일단 이곳에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최상급 라멘이라는 평가는 기본으로 따 놓는 것이라고.

 

삿포로 라멘 '스미레' 에서 맛본 라멘을 생각해 볼때, 아무래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라멘의 짠맛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관광객들 입장에서야, 어디서 뭘 먹으나 그게 그거겠지만

본인은 적어도 일본 라멘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평가를 할수 있을만한 입맛을 가지고 있고

이 곳에서 먹은 한 그릇의 라멘 레벨은, 편의상 1~10 까지로 구분한다면 9 레벨 이상의 S급이라고 확신한다.

 

식사를 마친 후 지하 2층으로 내려와서, 1층과는 다른 시끌벅적한 번화가의 모습을 만끽한다.

어디 붙어있는 설명을 슬쩍 읽었는데, 이곳 2층은 1958년대 어느 역 앞에 들어선 거리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듯.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번성하긴 하지만, 어쨌든 역 앞의 에너지란 확실히 힘이 넘친다.

 

폐점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남은 시간으로 따지자면 라멘 한그릇 정도는 거뜬히 더 먹을수 있지만

스미레에서 라멘 먹은지 5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먹어봤자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다.

폐점시간이 3~4시간쯤 남았다면 느긋하게 배를 비운 다음 다른 라멘을 시험해 보겠지만.

 

여기는 또 친절하게도, 입장권 한번 끊으면 그 날은 박물관 밖을 나갔다 들어갔다 해도 관계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시다씨와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 결과, 한밤중에서야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폐점시간을 이렇게 앞두고서는 급하게 먹어봤자 라멘의 맛을 즐기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이것도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언젠가 요코하마에 제대로 숙소를 잡고 와서

한 이틀쯤 느긋하게 여유를 내서 이곳의 라멘을 차근차근히 격파해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만들게 해 주었으니 그걸로 만족.

 

어차피 오늘 아무리 용써봤자 안될일은 안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다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수 밖에.

요코하마엔 크루즈 여행 매니아분과도 안면을 텄고 해서, 다시 찾을 이유는 충분히 만들어 놨다.

 

전봇대 위에 걸린 테레비는 정말 오래된 녀석이다. 시간이 되면 누군가가 테레비를 끄고 저 문을 닫아잠궈 버리는 것일까.

당시엔 레슬링이 유행한 듯 하다. 시기상으로 역도산이 활약할 때는 아닌가, 당시 레슬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역도산이라는 사람이 한국사람이었다고 자랑스레 기억해야 할만한 인물이 아니라는것 쯤은 안다.

 

 

 

거의 끝물이라서 사람들이 적은 것 하나만큼은 참 기분좋은 일이다.

지하 2층은 1층보다는 좀 더 정리된 듯한 느낌이 들지만. 아무래도 타일이 너무 깨끗한 느낌인데.

 

타일고 그렇고 나무 벤치도 그렇고, 살짝살짝 예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녀석들이 나와서 약간 아쉽다.

자전거는 상당히 옛날 녀석이고, 뒤에 실은 녀석은 아마도 우편물인 듯.

 

지하 2층은 라멘가게들이 밀집해 있어서, 붐빌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붐비기 때문에

흐름을 위해서라도 저렇게 바닥에 표시를 해 놓을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간이 마냥 넓은건 아니기 때문에

시대 재현과 라멘가게의 원활한 흐름, 두 가지 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머리를 쓴 흔적이 보인다.

 

 

 

어디로 향하는 계단인가 싶어서 올라가 봤는데, 마지막까지 센스넘치는 표지판으로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그 위의 금간 듯한 모습은 물론 가짜겠지. 아무리 봐도 진짜 금간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설마 그러진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다음에는 정식 루트로 차근차근히 즐겨보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하다.

 

 

 

올라갈 때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마지막으로 셔터를 한번 더 누른다.

이거 한국에서 비슷한 사진 가져와 바꿔치기해도 모를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어릴때 제일 맛있었던 불량식품은 뭐였을까...

사실 학교 앞 불량식품은 엄니께서 워낙 강력하게 억압하시는 바람에 또래 아이들 치고는 별로 먹어본 기억이 없다.

 

흰색과 검은색 콩처럼 생긴 밀가루 과자가 달달하게 맛있었던 기억은 나는데.

어릴적 제일 맛있는 과자는, 당시의 나에게 혁명적인 맛을 선사해준 치토스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탄산캔디였다.

발바닥 모양의 사탕에 찍어먹던 톡톡캔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뭔가 위험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버린듯 하다.

가끔씩 혀가 얼얼할 정도로 퍽 거리면서 터지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으려나.

 

 

 

300엔이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여행도 즐거웠고

900엔짜리 '옛날식 라멘'은, 내가 왜 여태껏 이곳을 찾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코하마 방문의 원래 목적이던, 이시다씨와의 토크 라이브도 문제없이 멋지게 끝났고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여전히 어색하지만, 공감할 부분이 많은 즐거운 괴짜들과 인연도 만들고

정통 쉐프가 부지런지 만들어주는 멋진 요리도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으니

5일간에 달하는 이번 도쿄 여행은, 사실 이 이벤트 하나때문에 온 거나 마찬가지지만

오늘 하루만으로도 그 어떤 후회 한점 남지 않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것이나 마찬가지.

 

첫날부터 지금까지 별 생각과 의욕없이 터벅터벅 걸어다니기만 하던 내 컨디션을

일시에 흥분 상태로 각성시켜 준 듯한 기분이다.

 

특히 자전거 여행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는 요코하마라도

이렇게 찾아오니 여기저기 즐길거리가 산재한 곳으로 변모하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일면.

역시 어떤 형태의 여행이든 각자에게 맞는 즐길거리가 있는 법인가 보다.

 

신요코하마역 앞의 사거리는 교통량이 많아서인지, 이렇게 커다란 원형 고가도보가 만들어져 있는데

야간사진도 문제없겠다, 요코하마에는 좋은 추억도 남겼겠다, 높아진 텐션으로 여기저기 카메라에 담아본다.

 

 

 

이제 2년이나 지난 자전거 여행이라서, 정신차리지 않고 그냥 달려나간 곳의 기억은 애매해진다.

요코하마는 여행 거의 막바지에 슬쩍 통과했을 뿐이라, 기억에 남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자전거여행중이라면 어떨까 하고, 마음을 예전으로 살짝 돌린 후 육교위에서 주위를 바라보니

역시 자전거로 달리고 있었다면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콘크리트 숲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걸 보니

참 여행이란 녀석은 이렇게도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최악의 여행 타입으로 생각하고 있는 단체 투어도

뭔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굴려보는데,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무리.

 

국딩 5학년, 한달간의 미국 여행중 1주일쯤 여행사 따라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건 여행이 아니라 거의 고문이었다. 대놓고 요구하는 팁에 흔해빠진 말장난, 형편없는 중국식당으로의 안내 등등.

아무래도 어릴때의 트라우마가 인격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사실인 듯.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40분쯤. 일본 여행하면서 이렇게까지 늦게까지 돌아다닌건 오랜만이다.

오늘 잠은 잘오겠구나 싶어, 그것마저도 즐거운 기분. 오늘은 어쨌든 모든 경험이 다 만족스러웠으니까.

 

내일부터는 또 할일이 별로 없어서 대강 부탁받은 물건이나 사러가볼까 싶다.

보고싶은 것들을 하루에 한개씩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널널하다.

오늘 이벤트는 날짜가 고정된 바람에 다른 계획을 수정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냥 마음가는대로 뒹굴거리다가 어디 슬쩍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하면서도 이렇게까지 게을러질 수 있다는걸 온몸으로 보여줘야 할것 같다.

 

라멘 박물관의 구멍가게에서 구입한 100엔어치 추억의 과자들.

사탕이야 별로 변한게 없고, 중간의 저녀석은 사이다맛 가위바위보 젤리.

왼쪽은 담배모양을 한 코코아 사탕이다. 그러고보니 국딩때 애들이 저걸로 폼잡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본인은 엄니의 편집증적인 건강 염려로 인해 불량식품을 벌레보듯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냥 옆에서만 바라보던 과자였는데,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 드디어 처음으로 맛을 보게 된다.

 

일단 여행 중간중간에 천천히 먹기로 하고, 사탕 하나 빨면서 TV 보다가 새벽 2시쯤 취침.

 

 

원래는 붐볐을테지만, 9시가 다 되어가는 일요일 밤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다.

입구쪽도 옛날 방식이라 그런지 제대로 안내표시가 없어서,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는 바람에

되는대로 지하1층의 어느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예상하지 못한 골목이 나온다.

 

아마 이곳이 정식 루트는 아닌듯 한데, 그러나저러나 아무 관계없다. 여긴 그냥 구경하고 라멘먹으면 되는 곳이니까.

 

운이 좋았다고 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타나는 옛날 구멍가게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내가 어릴때는 이런 가게가 군데군데 있었는데, 정말 놀랄 정도로 재현도가 높다.

 

 

 

안에 들어가서 사진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마음껏 직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 추억과 상당부분 겹치는 이 가게 안에서 유일하게 별로 겹치지 않는 요소가 가게 주인.

이곳의 할아버지는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는 타입인데

내 기억에, 예전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렇게까지 친절한 표정을 지었던 적은 없었다.

 

이시다씨가 좀 전에 역에서 '그곳에 가면 자기도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든다'고 했었는데

과연 그럴만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학교앞 문구점에 아직 이런것들 팔고 있지 않으려나.

 

내 경우는 학교 문구점보다, 집 앞의 재래시장 귀퉁이 3~4평도 안되는 쪽방 가게에서 이런 것들 사먹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조립 로봇 장난감조차 50원짜리가 있었던 시절이니까. 500원짜리 프라모델은 각오 단단히 하고 사야 했다.

 

모양만 봐도 대충 한국의 소위 불량식품들과 다를게 없는 친근한 모습이다.

단지, 처음엔 참 정겹고 즐겁게 구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금 현실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트는 기분.

 

이 사람들의 추억과 나의 추억이 이토록 겹쳐지는 것은

결코 쌍방간의 호의나 순수한 의미에서의 교류로 인해 생성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방후 40년이 넘었던 그 시절조차 여전히 일제의 흔적은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형태로 사람들의 생활속에 녹아있었던 것이다.

 

이런 추억을 향유하는 그 감상적 즐거움조차 분노로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유년시절의 추억이고, 그저 맛있고 신기한 과자들을 싸게 먹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기억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난 지금 회상해본다면

그 정형화된 이미지의 근원에 훨씬 복잡한 역사의 흔적이 세겨져 있음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역시 내가 쓸데없이 네거티브에 꾸질꾸질한 성격인 걸까.

몇십년만에 다시 마주하는 추억의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한 켠에 침울해지는 마음이 자리잡는다.

 

 

 

얼굴은 냉정하게 유지하는데 일가견이 있지만

머릿속의 감정을 정리하는건 어쨌든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더 머리를 비우고, 그냥 순수하게 이곳 라멘 박물관의 옛 거리풍경을 즐기는데 집중하려 한다.

 

슬쩍 가게를 둘러보니, 그때 그 시절만큼 싼건 아니지만 그래도 동시대의 편의점보다는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가격대. 아무래도 입장료까지 받는 곳이다 보니 커버가 되는 듯.

추억의 불량식품에 사진빨도 잘 받고, 가격도 싸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입구에 비치된 바구니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집어갈만한 녀석을 찾아본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손이 가는대로 마구 사버리면 의외로 돈을 써버리게 되는 것이 이런 불량식품류.

이곳에 왔다는 기념 정도의 의미로 적당히 세 개 정도만 담는다.

정겨운 먹거리는 널리고 널렸는데, 가방에 넣고 갈 부피를 생각하니 좀 작은것들로만 챙기게 된다.

이런 류의 간식거리는 가격에 비해 양이 많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해서, 겉보기에 좀 큰것들이 많으니.

 

가게 할아버지는 '딱 100만엔!' 이라고 기운차게 계산해준다. 물론 100엔이라는 의미.

구입하고보니 확실히 예전처럼 싼 가격은 아니다. 요즘엔 일본 편의점에서 100엔으로도 팝콘 한봉지 사먹을 수 있을 정도니까.

 

밖에서 좀 더 주위 풍경을 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나와서 그걸로 기념사진 찍어줄까 하고 묻는다.

본인 사진은 별로 찍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완전한 수동렌즈라 촛점 맞추기가 쉬운편이 아닌 탓에

이리저리 설명을 해 드렸는데, 할아버지가 '비싼 녀석이니 맡기기 좀 그렇지?' 라고 짖궃은 말투로 장난을 친다.

 

 

 

시작부터 정해진 루트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아무렇게나 걸어다닌다.

원래 저 가게는 라멘 투어 신나게 마친 후 돌아가기전 기념품 대용으로 들러보는 곳이었으니까.

 

2층은 두 사람이 간신히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회상하며 만들어져 있다.

내가 어릴적에도 물론 여기저기 이런 좁은 골목이 있긴 했는데

어머니 연세쯤 되는 분들의 추억에 남겨져 있는 골목길은 정말 이런 느낌이었을 법 하다.

대구에 남아있는 몇몇 옛 골목들을 보며 어머니가 '예전엔 거리 곳곳에 이런 골목들이 빼곡했는데' 라고 말씀하신적이 있다.

 

방금 전 골목가게까지는 내 추억속에서 회상할 수 있는 범위지만

이 정도까지 가면 역시 나로서도 어딘가 이야기속에서만 들었던 법한 비현실감과 조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낮에 학교 가면서 이런 골목 분위기를 보지 못한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활동시기는 대부분 아침이나 대낮이었던 고로, 어둠속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이런 거리풍경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이런 박물관의 레벨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라면 뭐니뭐니해도 그 재현도를 들 수 있겠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곳 라멘 박물관의 레벨은 정말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다.

 

군데군데 불이 나간 전구, 너덜너덜해진 간판, 벗겨지고 녹물이 내려오는 콘크리트 벽 등등

지금 이 모든 요소요소들이 전부 철저한 계획아래 정교하게 재현된 녀석인지

아니면 정말 관리를 되는대로 해서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착각할 정도로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어찌보면 개장 당시엔 저 전구가 다 켜져있었는데, 개장 후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렇게 낡아버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현도가 뛰어난 이곳은, 계속 걸어다닐수록 점점 현실이라는 시공간에서 멀어져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현실과 망상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은, 망상이 현실만큼 현실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니까.

 

오른쪽 간판은 삿포로 미소라멘 '스미레' 라고 적혀있는데

그냥 옛날 거리 재현하기위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고, 진짜로 이곳에서 영업하는 라멘부스중 한곳이다.

마리화나 몇대 빨고 이곳에 들어오면 정말 과거로 훌쩍 넘어온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굉장한 리얼리티.

 

 

 

이곳의 시간대는 아무래도 늦은 저녁, 해가 거의 지면으로 넘어가며 어슴프레한 핏빛만이 지평선에 살짝 스며드는 그런 순간인 듯 하다.

거의 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어두운 곳이라서, 이때만큼은 새 카메라 갖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도 3200 까지 올리고 조리개를 F2.0 까지 개방해야 겨우 사진을 건질 수 있을 정도.

 

힘겹게 사진을 담으면서도 이 장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매번 감탄을 금할수가 없다.

이건 1950년대를 그럭저럭 흉내낸게 아니라, 정말 그 시절의 시공간을 뚝 잘라서 가져온 레벨.

건축법상 의무적으로 표기된 소화기 안내판만이 나를 2012년에 붙들어놓는 유일한 이정표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벽의 낙서, 흘러내린 물 흔적, 색바랜 나무 문과 벽보까지. 무서울 정도의 현실감에 기분이 묘해지는 느낌.

옆의 안내도는 폼으로 만들어 놓은게 아니고 진짜 지도다. 재미있는건 대부분의 가게들이 간판만 존재하는 이름뿐인 녀석들이지만

그중에는 색깔만 살짝 다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있는 진짜 라멘가게도 있다는 것.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에 잠깐 넋을 잃고 발걸음을 멈춘다.

좁은 골목길에서부터 시작한 터라 이 박물관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이곳은 지하 2층이 진짜 라멘가게였던 것. 지하 1층의 좁은 골목거리는 이 가게들의 2층 뒤에 나 있는 샛길이었다.

 

물론 폐점시간이 다가올 정도라서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고

이 정도라면 어느 가게라도 쉽게 들어가서 원하는걸 먹을 수 있을듯 하다.

 

 

 

이곳에서 제일 비현실적인 녀석이라고는 저 하늘그림 그려진 지붕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몇 번을 봐도 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인 재현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시다씨가 극찬을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국인인 내가 느끼는 완성도보다는

직접 이 시대 이 공간을 살아온 이시다씨 입장에서라면 이 정도로 완벽한 고증은 하나의 예술로 느껴질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이 곳의 시대 고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확하다.

내가 어릴 적에도, 경북 점촌이나 영천 시장골목 정도는 들어가야 간신히 남아있던 이런 담배가게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뽑아낸 듯이 재현해 놓았다. 물론 그 시절의 담배곽까지.

 

도쿄나 삿포로의 라멘 테마파크를 생각한 탓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라멘박물관이란 녀석은

실상을 알고보니 나머지 테마파크와는 비교하는게 어리석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녀석이다.

라멘을 팔아야 하는 공간에 '거만하게도' 입장료까지 받는 건가 싶었던 내 불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곳에서 친근함과 그리움을 느낄지도 모르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역사가 만들어온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흔적마저 다시 상기시키는 기분이 들 가능성 역시 있기 때문에

이곳과 마주치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런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복잡난해한 곳.

 

 

 

 

아직 지하 1층을 한바퀴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걸어본다.

원래 목적은 맛있는 라멘이었지만, 이제와서는 라멘은 그냥 마지막에 맛보면 되는, 그런 레벨로 내려가 버렸고

이곳의 풍경을 좀 더 담아보겠다는 일념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한국은 전후 일본보다 목조건물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기 때문에

이런 풍경만큼은 한국과 일본의 추억이 상반되는 결과를 도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문옆에 걸려있는 개량기 모습은 뭐, 예나 지금이나 추억거리가 되긴 하지만.

 

라멘 박물관 소개글을 보면, 1958년대 어린이들은 이런 골목길에서 이렇게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까지 놀곤 했었다고 한다.

인스턴트 라멘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쌀밥 대체음식으로 장려되는 녀석이었는데

라멘이라고 하면 딱 생각나는게 그 시절 이런 장소와 이런 시간대의 풍경이었다고.

 

 

 

정말 문열고 한번 들어가보고 싶을 정도라서 참는데 고생했다.

이 풍경이 진짜 현실이었다면, 아마 저 문 너머에서는 화려하지 않지만 맛있어 보이는 저녁이 준비되고 있겠지.

 

당시 일본은 고도성장시기에 한창 불을 붙이고 있던 시절이라

소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했지만 그래도 나라 전체가 희망에 넘치던 시절이긴 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것도 그런 이유에서일듯.

 

반대로 한국은 이런 풍경을 감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조금 더 늦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같은 젊은(?) 사람도 이런 거리의 풍경에서 조금씩이나마 향수를 느낄 수 있는것 아닌가 싶다.

 

 

 

디자인쪽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동감하겠지만

이런 식의 디테일을 살리는데 세심한 고증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다른 동식물의 차이점은 구별하기 어려워도, 같은 사람의 차이점은 손쉽게 구별해 내듯이

실제 존재했던 시대상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고증이 조금이라도 어색하다면 사람 눈에 단점으로 쉽게 들어오게 된다.

 

하늘에 홀로그램 쏴올려서 구름 만드는 하이테크까지는 구현하지 못했겠지만

정말 어디 하나 흡집을 잡고싶어도 도무지 찾을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성이다.

억지로 잡아내자면, 당시 이런 거리 곳곳에 널부러져 있던 각종 오물과, 지독한 냄새를 풍기던 절임반찬의 강렬한 인상 등등

후각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 정도일까. 그것까지 구현한다면 아마 라멘 입맛이 떨어져 버리겠지만.

 

심지어 이곳의 구멍가게나 간식파는 가게 등에서는, 맥주나 음료수마저 옛날 유리병에 담긴 녀석을 제공한다.

라멘 가게를 찾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적당히 꾸며놓은 테마 파크들, 도쿄나 삿포로의 가게들이 딱 그 정도 수준이라서

5분에서 10분정도 슬쩍 걸어다니다가 적당히 라멘집 찾아 들어가는게 전부였는데

이곳은 일본 굴지의 라멘가게들이 경합하며 내 놓은 특급 라멘의 맛에 결코 떨어지지 않을만큼

외적인 구경거리가 가득한 곳이라서, '라멘'과 '추억의 거리'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어느 한쪽에 편중되어서 나머지 한쪽을 지탱해주는, 손님 입장에서는 왠지 끼워팔기라는 느낌을 받는 그런 테마파크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시다씨를 만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요코하마에서

이런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건 개인적으로 큰 성과다.

자전거 여행때는 멈춰서기도 어려운 대도시여서 그냥 통과해 버렸는데, 그렇기에 더욱 이번 방문의 가치가 높다.

 

천천히 둘러보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보니 맨 처음 출발지였던 구멍가게 앞으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나 말고는 아무도 저 앞의 문을 들락날락 하는 사람이 없는걸 보니

혼자서 길을 완전히 잘못 든 것 같지만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좋다.

 

이제는 일본 최고라고 불리는 이곳의 라멘중 하나를 골라서 맛있게 음미해야 할 시간인데

편안하게 추억을 씹어먹으며 걸어다니던 이제까지와 달리 이건 중요하기 그지없는 선택이다.

 

 

이시다씨가 추천해준 요코하마의 관광지는 라멘박물관이라는 곳.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다. 자전거 여행때도 이곳에서 발을 멈췄다면 분명 그곳부터 들러봤을 듯.

하지만 자전거 여행 마지막에 들른 요코하마인데다, 며칠전 온천으로 유명한 아타미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뒤라서

이런 번화한 도시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그냥 통과한 후, 고양이들이 기다리는 느긋한 섬 에노시마에서 마지막 노숙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라멘박물관이란 건 확실히 군침이 돌긴 했는데, 그거 하나만을 위해서 요코하마까지 갈 필요가 있나 하는게 이전까지의 생각이었고

도쿄 오다이바의 라면국기관, 홋카이도 삿포로의 라면공화국 등등과 별로 다르지 않은 곳일거라는 판단도 들었다.

확실히 각 지역의 다양한 라멘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으로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지만

어설프게 옛날 마을 분위기를 흉내낸 그런 라멘전문점이란게, 관광 스팟으로 지정할 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시다씨가 너무나 흔들림없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라멘박물관을 추천해 주니

이건 내가 알고있던 다른 지역의 그렇고 그런 라멘가게 모음집과는 다르다는 예감이 든다.

이 사람이 오다이바의 라면국기관 같은 곳을 나한테 추천할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슬쩍 떠보는 말투로 라멘국기관 같은 곳이냐고 물어보자, 분위기는 그런 곳인데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일본에 존재하는 그런 류의 라멘판매점의 원류가 되는 곳이 이곳 요코하마의 라멘박물관이고

다른 곳과는 비교하는게 부끄러울 정도의 퀄리티라고. 볼거리도 많지만 입점해있는 라멘가게들의 실력 역시 전국 최상위권이란다.

라멘의 성지같은 곳이라서, 그곳에서 점포는 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맛을 인정받을 정도.

 

얼핏 관광가이드에서 봤을때는 라멘공화국 등등과 별로 다를것 없나 싶었는데

역시 가이드에서 선전용으로 떠드는것과는 차이가 있나보다.

 

일행들과 차례차례 헤어지고, 활기넘치는 여성 한분이 갈아타는 곳 가르쳐 주겠다며 함께 했는데

전광판에 적혀있는 단어로 보건데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요코하마 거주중인 사람이 가자는데로 따라갔다.

하지만 역시나 그쪽의 착각으로, 갈아타야 할 곳을 지나쳐서 한 정거장 더 와 버렸다.

아무리 요코하마 거주중이라도, 술의 위력에는 다들 계란 말이가 되는 법.

중간에 발이 휘청해서 내가 부축해주기까지 했으니. 결국 그 여성분은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별로 화난건 아니고.

그래도 이 사람들 딴엔 한국서 처음 오는 사람을 위해 최대한 가이드를 해 주려는 마음이었으니.

 

그 자리에서 내가 술을 제일 적게 마셨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그사람들 배웅가줘야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모두와 헤어지고나서 한정거장 돌아와 신요코하마역으로 이동한다.

일본의 적지 않은 대도시가 그렇듯, 도시 이름이 들어가는 역보다 '신' 이 앞에 붙은 역이 더 화려한 경우가 많다.

낮에 왔다면 이런 호화찬란한 쇼핑몰에서 시간 보내는것 역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오늘은 이시다씨 토크 라이브 듣는데 모든 시간을 다 할애했으니까. 물론 후회는 없다.

 

 

 

대강 신요코하마역에서 동서남북만 계산해서 무작정 걷는다.

 

혼자 여행할 때의 나쁜 버릇이라면 나쁜 버릇인데, 지도같은거 그냥 머릿속에 잠깐 그려볼 뿐이고

대강 목적지가 표시된 방향으로 그저 걷고 걸을뿐. 그래서 목적지를 지나치는 경우도 많고, 빙 둘러서 시간 걸릴때도 많다.

하지만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여행이기도 하고, 그렇게 의미없이 걸어다니며 그 지역의 분위기란걸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낄 수 있으니까.

목적지만을 향해 돌격 앞으로 하는 여행은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만으로 족하다.

 

그런고로, 이번에도 한바퀴 빙글 돌아서 라멘박물관에 도착. 마음먹고 찾으려고 했어도 그리 쉽게 찾을곳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냥 발걸음 가는대로 걸어가던 내 앞에서, 일가족들이 두리번거리며 라멘박불관 찾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까.

특히나 밤에 오게되면, 정말로 겉에서 봐서는 어디가 라멘박물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평범한 현대식 건물이다.

 

너무 평범해서 외부 사진 찍을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그냥 들어가 버렸으니까.

다른 지역의 라멘 테마파크와 달리 이곳은 입장료라는게 존재한다.

어차피 라멘도 돈내고 먹어야 하는데 어째서 입장료가 따로 필요한건지.

하지만 그건 도쿄나 삿포로의 라멘 파크에서나 통하는 말이고, 이곳은 입장료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이시다씨가 추천해 줬으니.

저녁 8시 30분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라면 대다수의 관광지는 폐점했을 시간대라서

휴일이지만 입장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정도면 라멘 먹을때 줄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을 듯 하다.

 

맛있는 라멘은 너무나 좋아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몇십분씩 기다려 식사하는것에는 큰 거부감을 느끼는 성격이라서

이런 곳에 올때면 항상 긴장하게 된다. 특히 점찍어놓은 라멘가게가 있다면, 그곳을 포기할것인가 줄서서 기다릴것인가에 대한 문제로까지 번지기도 하고.

 

박물관에 들어가자 라멘을 파는 가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 프라모델샾에 들어온거 아닌가 싶은 풍경이 펼쳐진다.

슬쩍 둘러보니 아무래도 1층은 그냥 출입구 + 기념품점 정도의 역할만 할 뿐이고, 본격적인 구경은 지하로 내려가서 시작하는 듯.

 

입구 앞의 거대한 대자보에는 카모메식당이라는 단어와, 그 주위를 무수히 감싸는 응원댓글이 빼곡히 적혀있다.

카모메식당이라는 단어만 봐서는, 어째서 이렇게 대자보에 붙어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바로 위를 보니 금새 이해가 된다. 이 카모메 식당은 미야기현 케센누마(気仙沼)의 대표로서 이곳 박물관에 입점한 것.

 

케센누마는 지난 후쿠시마 대지진때 가장 극심한 피해를 받은 곳이다.

지진 당일 자정무렵부터 방송되던,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케센누마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지옥이라는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는 모습. 오일 탱크가 터져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암흑과 불길 뿐.

인구 7만 5천의 아늑한 항구마을은, 인구의 80%인 6만명이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이곳 카모메 식당은 원래 케센누마에서 유명한 라멘집이었다는데

케센누마 복구를 위해 케센누마출신의 도쿄 라멘집 사장님이 이곳에 입점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카모메 식당을 응원하기 위해 한마디씩 힘을 보태고 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본 사람들도 많을거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훨씬 잔혹할 뿐이지만

그래도 역시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유대감 밖에 없다고 본다.

영어는 물론 아랍어인지 러시아어인지 모를 언어도 적혀있는걸 보니, 뭔가 굉장하다는 생각.

 

 

 

대자보 반대편에는 뭔가 다양하기 그지없는 라멘 소개가 벽면 가득히 펼쳐져 있다.

한국 역시 라면시장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스턴트 라면이고

이곳에서는 라멘도 하나의 요리에 들어가는터라, 기상천외한 비법과 조합을 가진 라멘이 수두룩하다.

 

맛이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치고, 일단 이 정도 다양한 라멘이라면 한번씩은 먹어봐야 평가라도 할수 있을텐데.

이 날은 이시다씨 토크 라이브가 목적이었고, 라멘박물관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여흥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본 최고를 자랑하는 지역 라멘들의 각축장인 이곳에 오니, 역시 아쉬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한그릇밖에 못먹을테니까. 아무래도 요코하마에 다시 가봐야할 이유가 생기는 듯 하다.

물론 아직 이곳 라멘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그냥 입소문 뿐인 곳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맛에 대해서 여행만큼이나 일가견이 있는 이시다씨가 적극 추천한 곳이니 맛없지는 않을거라 생각은 한다.

 

 

 

늦은 녀석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탓일까

루트를 완전히 거꾸로 잡아서, 라멘 다 먹고 다시 올라올 때 들러야 할 기념품점으로 들어가버렸다.

어차피 여기서 라멘 사갈 생각은 없으니 큰 문제는 없다.

 

지하에서 경합중인 라멘가게들의 면과 스프 등이 가지런히 포장되어 전시중이다.

일단 면과 스프 육수 등등, 모두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녀석들이라 확실히 인스턴트보다는 맛있겠지.

하지만 인스턴트가 아닌 고로, 한 봉지 8천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한다.

이렇게 되면 가게에서 다 만들어져 나오는 녀석과 가격차이가 거의 없다.

직접 집에서 만들기엔 너무나도 손이 많이 가는데, 거기다 가격까지 이 정도니...

물론 남에게 선물하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을듯 하다. 어쨌든 이곳 외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특산품이니까.

 

 

 

라멘박물관은 1994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라멘 테마파크로

세워진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1950년대 후반의 도쿄 거리를 매우 훌륭하게 재현해 놔서

라멘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 재현된 길거리 풍경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추억을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곳이라서 그런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어린시절 로망을 불태웠던 장난감 자동차 서킷이 1층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영업시간이 끝나서 레이스의 열기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어릴때 봤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큰 서킷이 인상적.

나 어릴때는 이런 서킷이 없어서 그냥 자동차나 조립해서 아파트 놀이터에서 달리곤 했었는데.

 

워낙 본격적인 서킷이라 그런지 상금이 걸린 대회도 벌어지는 듯 하다. 구경만큼은 한번 해보고 싶다.

 

 

 

라멘가게의 도구들. 실제로 1960년대에 쓰이던 것들이긴 한데

옛것을 바꾸길 싫어하는 일본의 특징답게, 사실 지금도 상당수의 라멘가게에서 당연한듯 사용중인 것들이다.

 

일본은 특히 음식가게 점원들의 목소리가 큰게 특징인데

주방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하러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찌렁찌렁 울리는 '어서옵쇼!' 가 고육지책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굳어져서, 접대 목소리가 작으면 매상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

 

물론 현대식 식당이나 고급 일식당, 양식당 등에서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규동이나 라멘등의 서민음식점에서의 이야기.

 

 

 

이곳 라멘박물관에 적혀있는 빼곡한 지역별 라멘 연대기를 다 읽어보려면

최소 몇시간은 걸릴 듯 해서 포기하고, 나도 알고있는 일본의 4대 라멘을 담아본다.

 

삿포로의 미소라멘, 도쿄의 쇼우라멘, 키타가타의 쇼유라멘, 큐슈의 돈코츠라멘.

키타가타는 도쿄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라 특색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아침식사로 라멘을 먹을 정도로 라멘매니아가 많기도 하고

곱슬머리에 가까운 꼬들꼬들한 면발을 유지하는게 그쪽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통 키타가타 라멘은 도쿄 라멘과 확실히 다르다.

 

2008년 자전거 여행때는 키타가타 라멘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우연히 그곳의 조그만 식당에서 먹었던 라멘과 교자의 맛은

내가 뭔가 숨겨진 맛집에 들어온건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맛있어서, 처음으로 키타가타 라멘의 위용을 실감하게 해 줬다.

 

글쎄, 한국사람 입맛에는 삿포로와 큐슈의 라멘이 들어맞지 않을까 생각은 해 보는데

짠걸 못먹는다는 사람은 일단 일본라멘이란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하니까.

본인 역시 기분같으면 하루 네 그릇 정도 라멘을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것 같지만

나트륨 덩어리인 일본 라멘을 그러게 먹다간 정말 죽어버릴것 같기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다.

 

여행 자전거 여행때는 별 걱정없이 하루 두 그릇 정도는 헤치웠다. 땀을 워낙 많이 흘렸으니까.

 

 

 

1층엔 대자보, 기념품점, 라멘의 역사, 레이싱 서킷 정도가 볼거리다.

사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서, 아직은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이 서킷만큼은 정말 굉장하다. 장난감 레이싱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국민학교때는 프라모델 조립으로 돈 꽤나 날렸던 역사를 갖고 있는 본인이라서

가끔 서킷을 갖춘 곳을 찾아가서 구경하곤 했는데, 이 서킷은 여지껏 본 녀석중에서 가장 큰 녀석이라 놀랐다.

 

8살~13살 정도의 나이에 이곳을 부모님과 함께 찾아오게 되었다면, 이 서킷에서 자기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서킷을 달리는 자동차보다, 색바랜 채로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프라모델이 더 눈길을 끈다.

대부분이 자동차 종류이긴 한데, 단순한 최신 제품이 아니라 분명 빈티지급으로 보이는 녀석들도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극히 평범한 건담류 프라모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 중심, 물론 RC 헬리콥터 같은 녀석들도 있다.

 

나이 들어도 이런 취미 가진다는거, 사실 꽤나 동경하는 성격이다. '어른이' 혹은 '키덜트'라는 표현도 칭찬으로 들린다.

나이 처먹어야 생기는 취미라는게 딱히 더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하게 보일 이유가 있나 싶으니까.

이런 걸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인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1층 구경을 대강 끝내고 본격적인 라멘 탐방을 위해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로 향하는 통로는, 마치 목욕탕 입구를 보는 듯한 타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할때는 몰라도 혼자서 이렇게 내려가고 있으니 괜히 부담된다.

영업시간은 확실히 확인하고 왔지만, 유명하다는 곳에 이렇게 사람이 없으니 그건 그거대로 겁이 나는 법.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 순간부터 과거로 시간여행하는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모두 철저하게 50~60년대풍을 연상시키는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때묻은 거울과 낡은 맥주 간판, 의도적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몇개 빠져있는 바탁 타일까지.

 

일단 여기까지만 봐도, 오다이바나 삿포로의 라멘 테마파크들과는 위용이 다르다는걸 실감할 수 있는데

과연 이시다씨가 극구 추천해 준 이곳의 본모습이 어느 정도일까 점점 기대가 고조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