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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5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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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힘인가, 원작의 힘인가.
아니면 'Agent of Chaos'의 말대로 누구에게나 공정한 운과 같은 모종의 힘이 작용한 탓인가.

슈퍼히어로 장르에 그 생명력을 유지해 갈 환상의 처방전으로 기대를 모았던 스파이더맨을 뛰어넘어
감히 누구도 넘보기 힘들 정도의 확고한 전설을 쌓아버린 '다크 나이트'는 영화를 보고 궁금해진 위의 질문처럼
최고의 배우, 감독, 연출이 한자리에 모인다 해도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놀란 감독의 숨결이 느껴지는 부분은 영화의 호흡.
'메멘토'를 시작으로, '배트맨 비긴즈'까지 꾸준히 이어져 온 놀란 감독 작품의 특징은 그 완급조절이 놀랄만큼 일정하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서두르거나 조이지도 않고,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겐 클라이막스마저 조금 무덤덤하게 느껴질 만큼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지 않은 현실의 시계추처럼 흐르는 작품의 호흡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참고로 이런 인위적인 호흡 조절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감독은 나의 우상 피터 잭슨.

2시간 30분의 런닝타임 내내 팽팽하지만, 끊어질것 처럼 조마조마하진 않은 여유있는 클라이막스의 연속이다.
여기까지는 감독의 능력이 120% 발휘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다양한 미장센.
매니아들의 탐구심을 만족시키는 교묘한 편집.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턴 하워드가 함께한, 끊임없이 불안감을 일깨우는 빠른 비트의 저음.
이름없는 조연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의 명배우들.
이 모든 플러스요소를 모두 종합한다 해도 이 작품이 가지는 거대한 힘을 쉽게 납득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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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정말로, 이 혼돈의 사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자기 자신도 지배당해 버리지 않았을까.

처음 이 작품을 극장에서 봤을 땐 감상 후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조커의 얼굴을 볼 때마다 히스 레저가 생각났기 때문에.
난 작품 감상하면서 작품 외적인 요소가 감상을 방해하는걸 아주 싫어하는데, 이건 어쩔 수가 없다.

극장에서 4번 감상 후, 블루레이로 혼자서 집중하며 감상하고 나서야 간신히 내 머릿속에 자리잡은 히스 레저의 죽음을 지워낼 수 있었다.

'다크 나이트'는 히스 레저의 죽음때문에 오히려 큰 손해를 봤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의 신변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좀 더 차분하고 이성적인 매니아들을 양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조커의 힘을 빌렸지, 히스 레저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는 두터운 바탕을 가진 영화니까.

원작 코믹스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 조커라는 캐릭터는 악당이 아니다.
그가 말했던 몇가지 진실 중에서도 정말 딱 들어맞는 단어 'Agent of Chaos'. 이보다 그를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듯.

그리고 그 혼돈은 '도를 넘은' 질서를 추구했던 배트맨에 대한 변증의 부정합과 같은 존재다.

알것 다 아는 나이가 된 (나이먹어도 암것도 모르는 노친네들도 많긴 한데) 알프레드가 친절히 설명해주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히어로가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은 참혹한 댓가를 치루고 나서였다.

슈퍼 히어로의 내적 갈등을 이용해 영화의 질을 한 단계 높였던 스파이더맨에 비해
이 작품은 영웅의 존재가 사회 범죄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에 대해 훨씬 더 심층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은 당연히 나와있지 않다. 작품의 제목처럼 유일하게 장르의 힘에 애원하며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의 힘은 여기에 감명받은 많은 감독들은 물론, 놀란 감독 자신도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