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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에 해당하는 글들

  1. 2011.10.22  동해안 자전거여행 3편 18
  2. 2011.10.20  동해안 자전거여행 2편 14


아침에 일어나보니 역시 해안쪽엔 안개가 낀 덕에 일출은 물건너갔다.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아서 그런지 푸른 하늘도 얇은 막이 쳐진 듯한 느낌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속을 달릴 때는 내가 왜 이짓을 하고 있나 고민도 하지만
그 후에 나타나는, 망막을 한꺼풀 벗겨낸 듯한 상쾌한 하늘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냄새나는 판초 우의와 신발도 견뎌낼 수 있었지.

편안하게 계속되는 맑은 날씨는 어려움없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격언이 틀리지는 않은 듯 하다.


컵라면 하나로는 역시 체력 보충하기 쉽지 않은지 허기가 좀 진다.
호텔 조식은 추가요금이 필요해서 아침 먹지 않고 나와 달렸는데, 다이어트엔 좋지만 정신건강엔 좋지 않다.

이름도 확인하지 않은 항구마을의 식당에서 깔끔한 칼국수로 배를 달랜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들어갔지만, 넣을 것만 넣은 간소하고 깔끔한 칼국수가 생각외로 든든했다.
공기밥 추가도 가능했는데 그만큼 먹으면 자전거 탈때 괜히 고생하기 때문에 살짝 모자란 듯한 느낌이 낫다.

김치도 국산재료로 직접 담궜다는데 적어도 저질 중국산 김치가 아닌것은 확실했다.
5천원에 이정도면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식당 음식은 왠만해서는 먹고 속이 끓는 체질이지만 이건 멀쩡했으니까.


국물까지 깔끔히 비운 탓에 식사 후 바로 자전거 타기는 좀 더부룩하다.
엄니한테 전화도 한통 드리고 느긋하게 주변 구경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선 안보이지만 왼쪽 가장자리의 곰치국 전문점의 유리창에는 'KBS, SBS, MBC 방송 한번도 안한 집'이라고 적혀 있다.

언덕 비탈을 따라 소박하게 세워진 집들이 마음에 든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는 힘들지만.


남는 시간동안 가을 꽃도 좀 담아주고.
꽃은 역시 봄꽃의 찬란함이 마음에 들지만 가을 꽃은 나름 정취가 있다.


워낙 느긋하게 달리다 보니 아직 울진까지도 못 왔더군.
도 경계는 어디든 험하다고 하는데 과연 편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언덕이 자주 나타난다.
가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강렬한 햇빛이 엄습해 와서 얼굴과 팔뚝은 이미 미디엄 웰던을 넘어가고 있다.


업다운중 라이더를 힘빠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푯말.
대충 이 푯말이 붙어있는 곳은 경사가 조금 심한 편에 속한다.
그래도 구 7번국도는 성수기가 아닌 이상 통과하는 차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그저 쓴웃음 한번 짓고 천천히 페달을 움직이며 조금씩 조금씩 기어오르듯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해결된다.


해안도로의 장점은
저런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높은 확률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흐르는 땀을 식히며 풍경 감상좀 해 주고 몸이 슬쩍 식을 때쯤 시원하게 내리막을 미끄러지면
오르막에서의 생성되는 건전하지 못한 분노와 짜증은 입에 넣은 1등급 한우처럼 녹아내려 버린다.


가끔씩 어쩔 수 없이 7번국도와 합류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때는 경치 감상할 여유도 없어진다.

바닥에 널려있는 사고 파편과 온갖 쓰레기, 자잘한 모래등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친절하게도 경적은 잘 울려주지만 속도는 결코 떨어트리지 않고 지나가는 자동차들도 경계해야 하니까.

마을 안에서는 가끔 사거리에서 1차선 광속 우회전하는 정신나간 운전자도 만났기 때문에 시내든 시외든 방심은 금물.


몇개의 업다운을 지나 평지를 멍하게 달리고 있으니 궁촌 정거장이란 곳이 나타난다.
관광 버스가 상당히 많이 드나들고 있어서, 숨이나 돌릴 겸 들어가 봤다.

작년에 개장한 탓인지, 비수기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일바이크 외엔 제대로 작동하는 시설물이 없었다.
기념품점은 열고 있었지만 야외 휴게소도 식당도 완벽한 휴업상태라 음료수 하나 제대로 뽑아먹을 곳이 없다.

그래도 레일바이크는 꽤나 인기인지 사람들이 가득가득 차서 출발하고
꽤 많은 후발 주자들이 2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에 아쉬워하며 돌아가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레일바이크는 6km 정도 거리로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원래는 석탄 수송하던 길이라고 한다.
가족이나 연인들끼리는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상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관광버스는 사람들이 출발한 후 도착지 역을 향해 미리 출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편리하군.


덥긴 하지만 멋진 날씨라서 주변 공원을 거니는 맛은 훌륭했다.
전부 레일바이크 타러 간 덕분에 사람도 없고.

지금이 저녁이라면 들어눕고 싶은 멋진 정자라서 대낮인 지금이 오히려 아쉬워졌다.


꿀 나온다고 해서 내 기억이 최대한 남아있던 때부터 계속 빨아대던 기억이 나는 붉은 사루비아.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있어서 당시 그 사루비아들은 거의 남아나질 않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런데 달콤한 무언가가 입으로 들어온 기억은 남아있지 않아서 좀 궁금하긴 하다. 정말 꿀이 들어있었을까.


일렬로 늘어선 붉은 군대의 위엄이 지나치다는 느낌에 찍어본 녀석.


내 자전거도 느리기로 치면 가슴을 펴고 자만해도 될 정도지만
레일바이크만큼 느리진 않기 때문에 한참 전에 출발한 녀석들을 쉽게 지나쳐 버린다.
그래도 레일바이크 덕인지 한동안 사치스러울 정도로 편안한 평지가 이어졌는데
종작점을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다시 업다운이 시작되어서, 다른 의미로 레일바이크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좋게 생각하면 항상 해변가를 독차지하는 바람에 시야를 방해해 온 레일바이크가 사라져서 카메라를 꺼낼 맛이 난다고 할 수도 있겠네.


숨은그림찾기 같지만, 우연찮게 찍은 이 사진을 보니 맥이 풀렸다.
왜 저기에다가 음료수라고 써 놨을까.
이곳도 성수기엔 사람들이 미어터져서 좌판이라도 벌리는 걸까.
얼핏 본 바로는 내려갈 길도 없어보이는 곳이었는데.

이번에 나에게 모습을 드러냈던 동해안은 겨울잠에 들어가는 곰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징하게 나타나는 해안선 업다운을 넘나들다가 중국집이 눈에 들어와서 얼른 들어갔다.
매번 국수나 해장국 같은거 먹으며 달리니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었는데 중국집 간판을 보니 확 땡기는 게 있더라.

느긋한 아주머니께서 느긋하게 준비해 주는 호사스러운 삼선볶음밥을 입에 퍼부어 넣으니 만족감이 몰려온다.
중국집은, 일단 배달음식은 논할 가치조자 없는데다, 직접 가서 먹어도 괜찮다 싶은 집은 그다지 찾기 힘들었는데
피곤과 시장이라는 두 가지 향신료와 함께 서울보다 훨씬 푸짐한 오징어와 새우가 함께하니 맛이 없을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원덕이라는 이름의 조그만 항구마을을 지나고 잠시 앞으로 나가보니
오후 5시 40분부터 넘기에는 상당히 귀찮을 법한, 산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언덕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사실상 강원도와 경상도의 경계면이다.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해야 할까. 6시 20분만 되면 라이트를 켜야 할 정도로 해가 빨리 지고 있어서
괜히 지금 올라가봤자 자동차소리 시끄러운 도로 옆 덤불 어딘가에서 뒹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느긋한 여행인데 서두를 것 없다고 생각해서, 원덕쪽 슈퍼에서 적당히 먹을 것좀 사고
슬금슬금 마을 외곽을 돌아다니다가 도로가 끊기는 지점이 마음에 들어 그곳에 텐트를 쳤다.
주변에 군사시설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좀 긴장되긴 했지만 두세 시간동안 아예 자동차 흔적도 보이지 않는 곳이니
보이는 즉시 사살당하진 않겠지 생각하고 누워서 가져온 책이나 읽었다.

일본에서는 건전지가 아까워 텐트 속에서 책 읽는 시간도 많이 줄이곤 했었는데
이번엔 AAA형 건전지 잔뜩 가지고 왔으니 최대로 밝혀놓고 느긋하게 읽었다.

살짝 피곤한 느낌도 드는 것이, 만약 여름의 강렬한 햇살 아래였다면
확실히 동해안의 업다운은 라이더를 쉽게 지치게 만들 것이란 느낌이 든다.
물도 조금 남았겠다. 대강 얼굴과 손을 씻어내고 1시간 가량 음악을 듣다가
살짝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이어폰을 빼고 귀마개로 귀를 막은 뒤 송충이처럼 몸을 움츠린다. 하루의 멋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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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望祥) 이라는 지명은 처음 들었을 때 부터 마음에 든다.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아마도 '좋은 일이 있길 바라다' 정도일까.
은근슬쩍 해가 저물무렵 간단히 씻고 편의점에서 물과 빵으로 배를 채우고 텅빈 주차장 근처에 텐트치고 들어갔다.

정동진도 그랬듯 동해안 일출이 참 좋다고 해서 기대하며 잤는데, 왠걸 일어나보니 7시 반이고 해안가엔 안개가 끼어있었다.
그래도 꽤나 유명한 해수욕장이라는 곳인데 그 넓은 주차장에 단 한대도 차가 없어서 임금님 기분으로 편한하게 자긴 했다.

쭈욱 동해안만 달릴테니 언젠간 보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는데, 사실상 단 한번도 일출을 보지 못했다. ㅡㅡ;



12시쯤 밥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는데 스티브 잡스가 떠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시대의 풍운아가 사라지는구나.
꾸역꾸역 갈비탕을 먹으며 지금쯤 인터넷에선 잡스 추모와 함께 잡스 그게 뭐 대수냐 인간 말종 등등의 대립이 재미있게 벌어지고 있으리라 예측해 본다.
다른건 둘째치고 난 그저 다시는 볼 수 없는 잡스의 다음 아이팟과 아이맥,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아쉬울 따름.

삼성에서는 어느 누가 사라져도 그 다음 제품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건 없는걸 보면 잡스라는 인물이 가지는 상징성은 대단한가 보다.


편하다고 할 정도는 아닌 업다운 코스가 주욱 이어지지만 난이도로 치면 중하 정도의 수준이다.
다른 블로거들이 치를 떨었다던 두 개의 긴 터널도 통과하지 않고 옆길로 세어 나왔으니.
애초에 신 7번국도는 어쩔 수 없는 코스가 아닌 이상 달릴 생각이 없었고
쭈글쭈글하고 봉긋봉긋한 코스가 대부분인 해안가 도로, 즉 구 7번국도를 계속 달려서 그런지
자동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코스가 대부분이더군.

망상해변을 지나고 나서는 어촌마을 어귀도 간간히 나타난다.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큰 모래사장은 아니지만 갈매기들에겐 좋은 휴식처인가 보다.


차를 세워놓고 내려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몇 있지만 
누구 하나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려는 사람은 없어서 갈매기들도 느긋하다.
여름엔 아마도 북적대는 인파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새우깡 한 조각에 위안을 삼곤 했겠지.


날씨가 더 추워지면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일까.
망원렌즈를 망원경 대신으로 쓰면서 한참 동안이나 얘네들의 느긋한 모습을 즐겼다.


해안가뿐만 아니라 바위섬에도 갈매기는 수두룩했다.
어느 쪽이 더 먹이 잡기가 쉬울까.


해안가의 구멍가게 앞에 강아지가 있었다.
한 걸음마다 눈동자에 들어오는 모든 새로운 것이 신기하기만 한지
움직임과 눈빛에서 녀석이 가진 호기심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겁은 많은지 차만 지나가도 깜짝 놀라며 도망가더군.


별로 안 닮은 것 같지만 일단은 어미인 듯 하다.
좀전까지의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모습과는 달리 그야말로 편안한 움직임으로 바뀐다.
털끝에서는 긴장감이 사라지고, 어미 냄새를 맡은 콧잔등은 기분좋게 풀어지겠지.

주인장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도 계시길래 말 걸고 만져볼까도 싶었지만
이런 흉폭한 귀여움으로 무장한 녀석을 만기지 시작했다간 오늘 여행은 종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피사체는 피사체로 남겨두자고 스스로 위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까막바위 버스정류장 앞엔 오징어가 진득하게 말라가고 있다.
맞은편엔 회 백화점이라고 개인적으로 명명한 거대한 수산시장이 서 있었다.
주차장도 넓직하고, 좀처럼 관광객이 걸음을 멈출만한 장소는 아닌 듯 한데 왜 그럴까 싶더라.

아마도 정류장의 이름인 까막바위가 일등 공신이겠지.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서는 그저 조금 크고 기묘한 모양의 바위일 뿐이지만
이곳 묵호항 주변 토박이들에게는 그들의 인생에 오독하니 자리잡은 역사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겠지.

해녀들도 원래 이곳 근처에는 가지 않는단다.
그리고 서울 남대문에서 정동방향에 위치한 곳이라고도 한다.
정동진이 워낙 인기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잘만 어필하면 관광상품이 되나 보다.


까막바위는 그 이름과 전해지는 이야기가 그다지 연관성이 없는걸로 보아
바위 차제는 예전부터 신성시 되던 녀석인 듯 하다.

까마귀가 새끼를 치는 바위라는 이름인데
왜구의 침입을 물리친 어느 마을 지주의 혼이 문어화되어 밑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더 유명하단다.
그럼 맞은편 횟집에서는 문어를 팔지 않는가 궁금했는데, 먹으러 들어가지는 않았다.


나한테는 까막바위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릇하게 말라가는 오징어와
방을 잘못 잡은듯한 생선 한마리가 더 운치있게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포항의 친척집에 자주 놀러간 터라 말린 오징어는 그리 신기한 것도 아니지만
지역에 따른 차이점인지, 오징어 말릴 때 저렇게 세로로 작대기 꽂아놓은 건 조금 신선했다.

삼척 근처로 자전거를 모는데, 자전거도로란 건 거의 이름뿐인 허울인 듯 하다.
도로 상태도 형편없어서 그냥 자동차도로 쪽으로 나가는게 훨씬 편할 뿐더러
그 자동차 도로조차도 갓길 쪽엔 모래와 자갈, 쓰레기, 부서진 자동차 부품 등의 지뢰밭이다.
결국 갓길도 아닌 자동차 도로 자체를 달릴 수 밖에 없는 곳이 대부분.

그나마 비수기인데다 신 7번국도가 만들어진 덕에 이곳 도로엔 차량이 거의 없어서 망정이지
제대로 차가 다니는 곳이었다면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이 틀림없다.

이건 자전거 도로라고 이름만 붙여놓고 대충 만들어 구색만 갖췄다고밖에 하지 못하겠네.


이러나저러나 산 넘긴 싫고 자동차랑 섞이기도 싫어 최대한 바닷가 쪽으로만 자전거를 몰다 보니
뭔가 익숙한 지형지물이 눈에 들어오는게, 중간부터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보니 머리를 탁 치게 되더군. 태어나서 유일하게 삼척에 온 기억은 예전 23사단 훈련소 뿐이니.
사격장으로 이동할 때 접한 조용하고 깔끔한 농촌 마을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인생의 황혼기쯤엔 이런 곳에서 사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
23사단 바로 앞엔 삼척 해수욕장도 있다. 모래사장 끝에서 끝까지 단 한사람도 없이 오직 나 혼자더군.


건너편 산자락에서는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저쪽에서 화생방과 각개전투 훈련을 했었지.
훈련소 자체는 아늑한 숙소나 다름없었는데, 어디든 그렇듯이 개똥같은 조교 한두 마리가 귀찮게 했던 기억이 난다.

보충역 훈련인데다 원체 늦게 들어간 터라 조교들이 전부 꼬꼬마들이었는데
대구 출신의 그 네가지없는 색히는 참... 대구에서 만났다면 정말 공단 뒤로 끌고가서 숨만 붙어있을 정도로 아작을 냈을 텐데.

이러나저러나 훈련소 생활은 별로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그저 여행중 슬쩍 들렀다 가는 휴게소 같은 느낌이어서 아무런 감흥도 없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느낀 삼척의 차분한 풍경은 상당히 인상깊었다.
이렇게 혼자 와 보니 그 차분함도 조금 쓸쓸해 보이는데
계절에 맞춰 깨어나는 식물들처럼 이곳도 그렇게 피다가 지다가 하는 것이겠지.



해수욕장을 지나 조금 귀찮은 언덕을 주욱 오르다 보니 넓직한 광장이 나온다.
이게 뭔가 했는데 비치조각공원이라는 곳이더군.

맞은편에 편의점도 있어서 숨이나 좀 돌릴 겸 해서 구경에 들어갔다.
가볍게 차 타고와서 염장질을 시전해 주시는 젊은 커플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더군.


예술에 조예따윈 거의 없어서 그냥 촬영연습이나 하는 기분으로 셔터를 누른다.
마침 해가 막 저물기 시작할 때쯤이라 사진 찍기에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었네.


대부분의 조각들이 뭘 말하고 싶은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현대미술은 더더욱 일반인들에게 멀어지는 중이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

제목을 하나하나 적어놓으면 아 이런 것이구나 할 수도 있지만
설명이 필요한 예술은 이미 그 시점에서 글러먹은거 아닌가.
그 전에, 애초에 한두 시간씩 감상해가며 뭔가 찾아내려는 마음가짐이 아닌 이상엔
이런 건방진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저 관심 가는 조각이 없어서 마음이 휑했다고만 하지.


이런건 좋다.
히치콕이 생각나서.
아마 작가의 의도와는 한참 어긋난 감상 포인트겠지만.

비둘기가 아이 얼굴을 반쯤 파먹었다는 생각이 드니, 호러 매니아였던 본성은 숨기기 힘든가.


조각공원 근처에도 초소와 철조망은 여전히 선을 긋고 있다.
해외서 보면 한국은 정말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놓인 국가일텐데
일본사람들이 지진에 익숙하듯 한국도 이미 익숙해져 버린 걸까.
아마도 이 상황을 악랄하게 이용해 먹는 추잡한 인간들 때문에 더더욱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일지도.


이 공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조각.
왜냐하면 제목을 보기 전에 이미 짐작했던게 정확히 들어맞았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낼 때의 그 동질감이 참 마음에 들고 뿌듯하다.

제목을 말하진 않을테니 슬금 상상해 보길.


이쯤 되면 이건 조각 감상이 아니라 촬영 포인트 연습이다.


금속을 이렇게 주물주물한다는게 이 나이 먹고서도 참 신기하긴 하다.
조형적 특징까지는 그렇다치고, 저 군데군데 바랜 색상마저도 작가의 의도인 걸까.


삼척 해수욕장엔 한 명도 없는데 이곳엔 그럭저럭 차들이 왔다갔다 하더군.
편의점 건물 2층엔 멋져보이는 레스토랑도 있었는데 내부수리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대강 절반을 훨씬 넘는 수준으로, 내부수리중이란 팻말 붙은 음식점은 다들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어차피 먹지도 않을 거 괜히 부정적 추측으로 몰아갈 건 없지.

하루를 식당에서 식사 한끼, 컵라면 한개, 빵과 음료수 조금으로 때우는 여행임을 생각하면
이런 곳에서 맛나게 식사 해보는것도 괜찮을거라 기대헀는데, 수리중이라니 좀 아쉬운 기분이었다.

게다가 달려보고 알았지만 이곳은 동해라서 일몰이 그닥 멋있지가 않다.
자전거 여행은 하루의 시작보다 끝이 훨씬 감정적으로 흥분되기 때문에
멋들어진 일몰이 보이지 않는다는게 조금 의욕을 꺾고 있었다.


하늘에 돛을 열고 떠다니면 좀 더 부드럽게 스스륵 흘러갈것 같았다.


반대쪽 해안이었다면 얼마나 다른 풍경이었을까.
부드러운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에 맞춰
그 빛에 반사되어,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갈 때의 나른하지만 기분좋은 색감으로 조용히 옷을 갈아입는 산과 바다의 모습은
아무리 찍고 찍어도 그 황홀함은 없어지지 않아서 매번 매번 감탄하곤 했었는데.

일출은 본인의 부지런함을 증명해 주고, 일몰은 본인의 하루를 위로해주는 느낌이라서 나는 일몰이 더 마음에 든다.


조각공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소망의 탑이라는 스타게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동해안답게 일출시 해가 저 원안에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밑도끝도없는 설명이 적혀있던데
인공 조형물에 그렇게까지 원념을 불어넣는것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를 가지고 만들어진 조형물이라면 몰라도, 의미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엔 관심 없다.


소망의 탑이라는 이름답게 손이 닿는 곳에선 전부 소원이 적혀있었다.
그닥 재미있는 소원은 없었는데, 그래도 이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가 딱 좋지.

지난 번 해돋이도 실패했고, 엉덩이도 영 따갑고, 마침 언덕 위라 오늘은 좀 즐겨볼까 싶어서
소망의 탑 바로 옆에 있는 모텔로 보이는 곳에 스윽 들어갔는데... 사실 모텔이 아니라 호텔이었다.
들어왔는데 쫄아서 나가기도 뭣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친절한 여직원이 비수기에 혼자라 깎아주신대서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투숙을 해 버렸다. 고맙긴 한데 방 안에 들어가보니 이렇게 으리으리한 곳인줄 몰랐다.

일본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비즈니스 호텔에 묵었지만, 여긴 관광호텔이라 넓기는 무지하게 넓다.
룸 안에서 텐트쳐도 되겠더군.

기왕 이렇게 됐으니 빠듯빠듯한 휴대폰 베터리도 충전하고 욕조에서 신나게 목욕도 즐기고
메모장에 밀린 일기도 쓰고 최대한 나태와 사치를 즐기며 보냈다. 스마트폰 베터리 정말 빨리 닮더군.
예전 피쳐폰은 일본서 베터리 한개로 1주일도 거뜬했는데 이건 뭐 하루 꼬박 가면 많이 버틴거라니.

그렇게 호화스러운 호텔에서 방금 전 편의점에서 산 빵과 컵라면을 먹는 자신의 모습은 여전히 좀 소박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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