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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나와'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9.27  산인 여행 - 크고... 아름답습니다? 18
  2. 2012.09.26  산인 여행 - 이즈모 타이샤의 처절한 소원들 18

 

 

신사 정문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카구라전(神楽殿)이 나오는데, 그 전에 보이는 이 장소는

문득 머리에 드는 '해우소'라는 제목이 딱 들어맞는 듯한 느낌이다.

공간이 부족하니 여기서 마음껏 근심 날려보세요 라고 선전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원이 빼곡하게 걸려있는 소원서버.

 

인연맺기라는 단어, 그냥 보면 단순히 젊은 남녀의 달달한 이벤트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종족 번식을 위한 암수의 교미는 우주만물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이자 중요한 근본 욕구임에 틀림없으니

없다는거 다 알면서도, 신이라는 초월체에게 콩고물 좀 얻어보려는 이들의 헌신적인 행동은

충분히 납득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납득을 시켜야 이곳의 광경에 합리성이 부여될 것 같으니.

 

 

 

나무의 생장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붙어있는 소원 종이들.

저게 만약 매미같은 녀석들이었다면 굉장히 혐오스러운 광경이 연출될 듯 하다.

 

남에게 뭘 빈다는 행동에 대해서 그닥 이해심을 발휘하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매번 볼때마다 이 무의미한 행동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쉽게 생각하면, 동물이 영역 마킹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 흔적은 남기고 싶은데, 낙서같은 욕 먹을 짓보다는 공인된 방법이 누이좋고 매부좋을테니까.

 

 

 

아무리 깨끗하고 신성한 흰 종이라도 이렇게 붙어있으니 좀 무섭다.

저게 겨울무렵까지 그대로 붙어있으면, 해충 박멸하는데는 좋은 방법이 될것 같긴 한데.

 

실로 셀 수 없는 소원 종이와 에마들이 가득가득 걸려있는 모습은

코뿔소의 뿔이나, 하마의 입 크기처럼 '이 신사 이렇게 대단한 곳입니다'라고 선전하기에 좋은 잣대가 될것 같다.

한국인으로서는 꽤나 여러군데 신사를 둘러봤다고 자부할만 한 본인도, 이만큼 많이 붙어있는 곳은 처음.

 

 

 

여기도 뭔가 재미있는 소원이 적혀있을까 싶어서 슬쩍 살펴봤는데

몇 살 되지 않아 보이는 꼬마가 쓴 듯한 소원이 나름 눈길을 잡는다.

얼마나 친절한지, 오른쪽에 글로 소원 적어놓고 왼쪽에는 그걸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오오쿠니누시님께서 글자를 못 읽을 가능성도 있으니 이렇게 철저하게 소원을 설명해 주려는 것일까.

대충 '산수 잘하게 해 주고, 부자되고싶고, 게임 갖고싶다'는 정도의 소원이다.

그 중에서 '부자되고싶다'는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적어놓는걸 보니, 이 꼬마녀석 앞으로 크게 될지도.

게임 관련 그림에 닌텐도 3DS 게임이라는 표현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도 범상치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하지 않고 왼쪽 최상단에 '엄마 살빼' 라고 적어놓는 지극한 효심까지.

 

 

 

시마네현에서 가장 큰 마츠에나, 이곳 이즈모 지역 통들어서 이렇게 사람흔적이 뚜렷한 곳도 없을 듯.

티끌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경건한 이즈모 타이샤에도, 만약 영적인 뭔가를 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소원이 산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혼돈의 카오스를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곳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까지 조금의 아쉬움을 남긴, 공사중인 본전의 모습을 한번 더 담아본다.

멀리 본전 지붕에 보이는 X 자 모양의 표식은, 이곳 시마네 현의 마스코트 시마네코가 머리에 쓰고 있다.

그런데 여행 선물로는 너무 일색이 짙고, 그 고양이가 그리 귀여운 타입도 아니라서 구입은 포기.

 

 

 

본전에서 왼쪽으로 걸어나오면, 사실 본전보다도 더 커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들에게 음악과 춤을 바치는 카구라전인데, 인연 맺기의 신사인 이곳 이즈모타이샤에서는 결혼식장으로도 쓰인다.

신사의 결혼식은 굉장히 격식있고, 신들의 가호를 받는다는 느낌도 들고, 가격도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나름 수요층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특히 이즈모타이샤 정도의 신사에서 결혼식 하려면 몇억정도는 우습다.

 

빨리빨리 다음 손님 위해 치워내는 듯한 느낌의 한국 결혼식과는 달리

일본 결혼식은 최소 4~6시간은 걸리는 장거리 마라톤.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으며 오만가지 이벤트가 난무하는 곳이다.

이 정도 되는 신사에서 결혼식이라면 그야말로 결혼 파티가 아니라 뭔 신내림 받는 듯한 엄숙함까지 추가되니

이런 것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다시 겪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이 될 듯 하다.

 

 

 

물론 결혼식이 아니라도 이곳에서 행해지는 가악 등의 공연은 유명한 볼거리.

특히 일본 각지의 신이 모인다는 10월에는, 사람들도 덩달아 모여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데...

9월 초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 아무리 볼거리가 많아도 인파에 치여 쓸려다니는건 사양이다.

 

 

 

카구라전에 걸려있는 시메나와는 일본에서 가장 큰 녀석으로, 무게만 4.5톤 가까이 된다고 한다. 저거 떨어지는 날에는 대참사.

본전에 들어갈 수 없는 이즈모 타이샤에서 단연 유명세를 타는 녀석.

 

신기한 풍경이라서 보기엔 좋은데, 대체 이렇게 큰 시메나와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의구심은 든다.

단순히 커서 좋은거라면, 집 앞에 소박하게 걸린 시메나와들은 효능이 없는 것일까. 그것도 아닐테고.

 

이곳 이즈모탸이샤는 매우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주요도시들과 많이 떨어져 있어서, 다른 유명 신사에 비해 찾는 발길이 적은 편이긴 한데

그 반작용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XX' 타이틀을 갖고 있는게 많다.

이 시메나와도 일본에서 가장 큰 녀석.

 

 

 

원래는 저 밑둥에 동전을 던져 박아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다들 동전들고 던지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박히고 떨어지는 문제도 있고, 사람 다칠수도 잇어서 이제는 그냥 철망으로 감싸버렸다.

짚단으로 만든 녀석이라 수명도 있어서, 이거 새걸로 교체하는 것도 큰 이벤트중에 하나인데

동전 소문때문에 아무래도 골치가 좀 아팠던 듯. 근데 자기 동전을 그렇게까지 소모할 필요가 있나?

 

 

 

워낙 거대한 녀석이라 제작방식이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사람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크기가 아닌 듯 한데, 그렇다고 신사에서 기계식으로 만들리도 없을 것 같고.

 

여행 당시에는 날씨도 덥고 해서 그냥 지나쳤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이 시메나와 제작 방법에 대해서 조사해 보고 싶다.

프라모델도 완성품보다는 만들 때의 즐거움이 진짜라고 하듯, 이 거대한 녀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워낙 크다보니 비교대상이 있어야 실감이 갈 듯 하다.

다행히도 비교할만한 소재인 사람들은 여기저기 널려있으니 마음껏 사용한다.

 

결혼식장으로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신사에 비해서 이곳의 카구라전 역시 크기가 매우 큰 편이다.

아무래도 신사 이름이 타이샤(大社)이다 보니 뭐든 크고 아름답게 짓는게 특징인가 보다.

나는 '대'자 들어가는 것들이 너무 가식적으로 보여서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아무튼 본전은 못봤지만 유명한 시메나와 마음껏 감상한 것만으로도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밖으로 나서면 또 보이는게 이 게양대.

이 역시 높이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큰 녀석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가야 하는게 관광지의 숙명이겠지.

어지간한 삼나무보다 더 높아서 멀리서도 잘 보인다. 방금 전 시메나와 때보다 더욱 더 '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본에서 제일 높은 게양대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이렇게까지 '제일 큰 XX'의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녀석은 처음이라고 생각.

이곳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토리이(鳥居)도 있지만, 그건 훗날 포스팅에 아마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그 녀석도 나한테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는 뜻도 되고.

 

시간을 쌓아서 흔적을 남겨놓은 녀석들은 뭔가 느껴지는게 있지만

돈 많이 들여서 이렇게 제일 큰 타이틀을 거머쥐는 녀석들은 굉장히 덧없게 느껴진다.

그나마 시메나와야 일본 전통이 녹아있는 녀석이기도 하니 관광객들에겐 좋은 구경거리지만

내가 일본에서 제일 높은 게양대에 걸린 국기를 보고 놀라거나 신기해 해야 할 이유가 있나?

난 우리집 아파트 앞의 국기 게양대에도 관심이 없다.

 

 

주변 풍경이 훌륭하긴 하지만, 본전을 볼 수 없는 이즈모 타이샤는 이미 절반 이상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요 근래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구나 킨키지방의 코야산 등을 다녀온 터라

반쪽짜리 이즈모 타이샤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애초에 인연을 맺어주는 신사라는, 나를 제외한 다른 커플들에게는 심히 중요한 소재가 주를 이루는 곳이라서

정겹게 두 손 잡고 참배를 하거나, '둘이 오래오래 러브러브~' 따위의 문구를 에마에 적어넣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냥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잘 정돈된 산책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정도외에는 할 일이 없다.

 

본인은 일단 카메라를 들고 왔으니, 이제 에마에 적혀있는 염장질의 흔적이나 기념으로 담아와야지.

그 염장질을 찾아보기 전에 일단 꽤나 정성들여 제작한 이곳의 에마를 한장 담아본다.

저 정도로 색을 많이 넣고 디자인이 깔끔한 에마는, 외국 관광객들의 입장에서는 걸어놓기가 아까운 느낌도 든다.

실제로 외국 관광객들 중에는 그냥 기념으로 에마를 사들고 오는 경우도 많다.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신사에 걸린 에마는 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유명해도 일단 인연 맺기 신사이다 보니 조금은 어깨 힘이 빠진 느낌이 든다.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선택되는 신사가 사실 제일 재미있고, 유명 애니메이션에 나온 신사에 가면 다들 그림그리느라 정신이 없기도 한데

과연 이곳은 어떤 문구가 나를 즐겁게 해 줄것인가 살짝 기대된다.

 

중앙의 저 에마는, 다른 문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녀석인데, 좌측 상단의 'とりあえず彼氏がほしい' 라는 문구가 인상적.

뜻은 '일단은 남자친구가 필요해' 이다. 아무래도 여성 관광객인 두 명이 여행온 듯 한데...

세상에 솔로는 나만 있는게 아니구나 싶어서 왠지 응원을 보내주고 싶어지게 만든다. 니시카와 와카코씨한테 얼른 남친한마리 떨어지길.

 

 

 

이 녀석은 또 넘기기 힘든 문구를 적어놓았다.

자전거 여행 온 사람인듯 한데, '무사히 야마가타에 자전거로 돌아갈 수 있기를' 이라고 적혀 있다.

야마가타현은 토호쿠지방 후쿠시마현과 인접한 곳으로, 여기서의 거리는 서울서 부산의 2.5배가 넘는다.

올 때도 자전거로 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혹여 예전의 나처럼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일주하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왠지 동지애를 느끼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물론 돈내고 에마를 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내가 일본 자전거 일주할 때, 신에게 기도를 올린 적은 딱 두번.

출발 전 도쿄 아사쿠사에서 5엔짜리 (한국돈 70원)동전 하나 던지고, 무사히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첫 번째.

일본서 가장 신성한 곳인 이세 신궁에서 50엔짜리 (한국돈 700원) 동전 하나 던지고, 로또 당첨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두 번째.

 

로또가 많이 고팠는데, 50엔 정도의 뇌물로는 어림없었던 것 같다. 500엔짜리 로또에 당첨이 되어서 한장 더 사본 경험은 있지만.

 

 

 

장사가 잘 안되는 신사는 좀 황량한 느낌도 드는데

이즈모타이샤는 그럴 걱정이 없는 곳이니, 아주 빡빡하게 에마가 걸려있다.

거는 곳이 이곳뿐만이 아니라서, 걸려있는 에마들의 단순 구입가격은 약 10만엔쯤 할 듯.

이런 곳이 서너 군데는 있었으니, 회전율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6백만원 정도의 이익은 있을 듯 하다.

 

신사에는 에마 말고도 여러가지 부적, 기념품을 팔고, 본전에 참배할때도 돈을 던져넣기 때문에 꽤나 짭짤하다.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신사는 정부로부터 보조금도 받고,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기도 하니까 나름 괜찮은 편.

의외로 개인 소유의 신사가 꽤 많은 편이라서, 큰 부자는 못되도 대를 이어 먹고사는데는 문제없는 가게라고 생각하면 될 듯.

 

연말연시에는 작은 신사라도 불티나게 바빠질 정도로 참배객들이 몰려들고, 신사의 지주는 대부분 지역 토박이인 탓에

한국에서 거의 전멸중인 지역경제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는 톡톡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는 곳.

종교적인 시설인 만큼 지주의 사생활도 꽤나 조심스러운 편이라, 그 엄격함에 후계자 위치를 관두고 나와버리는 자식들도 있다.

한국의 종교야 뭐... '토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주식회사 예수를 믿지 않아서'라는 똥을 입에 물어도 믿습니다! 를 외치는 곳이니까.

 

 

 

잠깐 안구에 습기 좀 닦고...

차마 상세하게 번역할 수는 없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한 에마가 떡하니 걸려있다.

'O형에 귀여운 독신여성과 결혼전제로 사귈 수 있기를, 부디 부탁드립니다' 라는 뜻으로... 크흑.

 

거기다 얼마나 현실적인지, 아니면 절박한건지 자기 주소까지 꼼꼼하게 적어놨다.

류타라는 이름의 남성이여. 여기서 이럴 시간 있으면 그냥 오사카 시내에 놀러나가는게 더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리고 혈액형이 대체 뭔 관계람. 독신여성이란 단어 안 적어놓으면 불륜이라도 할 생각인가?

결혼전제라는 말을 붙일 때부터 여성에게는 부담이 클 것 같은데... 눈이 높은건지 그냥 생각이 없는건지 스스로 벽을 쌓는 느낌이다.

100엔짜리 공물 하나 받아먹고 들어주기에는 오오쿠니누시에게도 좀 리스크가 큰 소원인 것 같은데.

 

 

에마만으로 부족한지 이곳 나무 곳곳에는 소원을 비는 종이가 가득 매여있다.

 

이거 나무한테 부담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손이 닿는 곳에는 전부 매여있어서

이곳 관리하는 사람들도 할 일이 없는건 아니구나 싶다. 저걸 전부 일일히 손으로 풀어서 모아놨다가 날 잡아서 태워야 하니까.

보지 않는 곳에서 마구잡이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저런 것 정중히 처분하는것도 신사의 일이라서, 만약 잘못하면 뉴스에 실릴 정도의 사건이니까 그런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듯.

 

 

 

이름난 신사이다 보니 찾아온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정신도 훌륭하다.

날씨가 더운 탓에, 휴게소 곳곳에 얼음을 넣은 선풍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시각적으로는 햐안 김이 바람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게 엄청 시원해 보이지만

아주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닥 효과는 없는 편. 그래도 저런 걸 설치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이런 사소한 배려 하나하나가 쌓여서 관광온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결코 쉽게 생각할 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조금 기분좋아진 채로 목 끝까지 짜릿하게 시원한 음료수 하나 뽑아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가면 라이더 그림을 박아넣은 센스작품 '가면 사이다'도 오랜만에 보지만, 그건 자전거 여행때 뽑아먹었으니 패스.

 

일본은 음료 자판기 옆에는 반드시 쓰레기통을 비치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서 뽑아먹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게 별것 아닌 듯 해도 사실 굉장히 유용하고 편리한데,

일본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이래도 장사가 되는가 싶을 정도로 자판기 숫자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길다가 생각나서 목을 축이고, 걱정없이 쓰레기를 금새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마음 든든한 일이다.

 

 

 

목도 축이고 휴식도 취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좀 전의 배전을 한바퀴 더 돈다.

처음부터 한바퀴 더 돌아보기 위해서 사진도 찍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관광객이 줄어든 틈을 타서 한 장 남긴다.

여행 사진에 어지간하면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냥 사진만 봐서는 황량한 곳을 혼자 돌아다닌듯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능한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타이밍을 노려서 찍고 있으니 오해가 없었으면.

 

저작권(?)이니 초상권이니 하는거 신경쓰기도 귀찮고, 실제 여행중에서도 관광객은 내 시선에서 한참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의 물리적인 숫자와는 별개로, 여행 때 보고 느낀 나의 시선은 대충 이런 사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는 더더욱 그렇기도 한데, 목조건축물이 많은 일본의 문화재는

보존하는게 보통 힘든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객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주기적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이게 되어 있다.

그것도 빨리빨리가 아니라 약 5년 정도의 기간을 들여 꼼꼼하게 복원하니,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에게는 여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을 듯.

 

이즈모타이샤의 본전이 거대한 편이긴 하지만, 저 정도 크기의 건물을 5년동안 보수한다는 건 진짜 그동안 뭐하나 싶을 정도.

 

 

 

이즈모타이샤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라면 단연 이 녀석이다.

이건 시메나와(注連縄)라고 부르며, 한국 토속신앙의 금줄과 같은 의미를 가진 녀석.

단지, 이곳 이즈모타이샤의 시메나와가 다른 곳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다보니 명물로 유명해졌다.

 

사실 일본여행가서 조금만 눈여겨보면 조그마한 시메나와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동네 조그만 신사나, 음식점 입구 위, 혹은 그냥 일반 가정집 문앞에서도.

보통은 새해 첫날 악귀는 물러가고 복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며 걸어두는 경우가 많다.

 

이곳 배전의 시메나와는, 다른 곳과 비교하면 크긴 하지만 이게 이즈모에서 가장 큰 녀석은 아니다.

인연맺기의 소중함이라고 할까, 유독 이곳 이즈모탸이샤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XX 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이 많다.

본전 구경은 할 수 없지만, 이 거대한 시메나와 역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니 실컷 감상한다.

 

 

 

일단 배전의 시메나와도 보통 큰 녀석은 아니지만, 이즈모타이샤 하면 생각나는 그 시메나와에 비해서는 작은 편.

원래는 여기서 배전 구경 한번 하고, 본전으로 들어가서 국보급 건축물의 위용을 감상한 후

돌아오는 길에 카구라덴(神楽殿)을 보는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본전 구경이 불가능하니...

그래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참배를 하는데, 일반적으로 손뼉을 두 번 치는 신사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자신과, 미래의 인연을 위해서 네 번을 친다고 한다. 역시 인연맺기의 신사.

 

이곳은 제국주의의 잔재가 묻어나는 신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곳이고

애초에 오오쿠니누시라는 신이 진한과 신라 이주민들과 관계된 녀석이라, 인연 맺어지기를 기원해도 별 문제는 없을 듯.

하지만 그것도 저것도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실들...

 

이곳 본전은 한때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가 1744년 재건된 녀석인데

재건당시 크기가 24m로 꽤 큰편인데도 불구하고, 기록상 전해지는 본전은 48m나 되는 거대한 녀석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건축물.

덕분에 본전 자체에 들어가는 것은, 공사기간이 아니더라도 불가능하다. 그냥 옆에서 살짝 구경만 할 수 있는데

지금 공사 덕분에 그 살짝 구경조차도 못하는 실정이 되어버린 것. 관광객으로서는 아쉽기 그지없지만

지은지 300년된 국보 목조건축물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긴 하다. 허무하게 사라진 숭례문의 케이스만 봐도.

 

내년 5월인가부터 다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고 하는데, 사실 흥미깊은 건축물이긴 하지만

이것때문에 다시 시마네현을 찾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훗날 포스팅에 설명하겠지만 다시 갈만한 일이 좀 생겨서.

 

 

 

이 배전 앞이 조금 전 비둘기를 바라보며 휴식하던 곳인데

그 쪽으로 가보니 왜 비둘기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먹이주는 상자가 놓여있었기 때문.

내가 휴식을 취하던 곳은 뒤쪽 벤치라서 여기에 먹이상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한 봉지 20엔짜리 먹이는, 20년전 일본을 찾았을 때 본 후로 정말 오랜만이다.

20년 전에는 도쿄의 신사에도 이런 먹이상자가 설치되어 있어서, 흰 비둘기들이 사람에게 막 덤벼들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후 그런 먹이상자는 대부분 철거되어 버렸다.

이곳은 워낙 외진 산골짜기라서 먹이를 줘도 큰 문제가 없는 듯 하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절대로 도망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녀석들.

 

 

 

저 녀석들이 덤벼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경험해 본 나로서는

단벌 옷에 카메라까지 들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먹이를 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가만 기다려 보니 젊은 커플이나 나이 지긋한 단체 관광객이 가끔 먹이를 꺼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엇는데

일단 저 상자에 손이 다가가는 순간 털 고르고, 암컷 쫓아다니던 녀석들의 시선이 일순 집중되는 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먹이봉투를 손에 들면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려들며 한껏 소리높여 애교를 떠는데, 비둘기라는 녀석 참 적응력도 좋다.

 

마구 쓰다듬어도 먹이가 손에 들려있는 한 도망가지 않기 때문에 녀석들의 귀여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에서 사는 비둘기야 도시 녀석들처럼 더러운 편도 아니라서, 열심히 놀아주고 손 한번 씻으면 그만일 터.

물론 옷에 알록달록한 액체 X가 달라붙을 수 있으니 그점은 항상 조심해야 하겠지만.

 

머리도 좋아서, 먹이를 손에 든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다가오지 않는 영악한 녀석들.

 

 

 

이 비둘기 아지트 오른편에는 보물전이 있어서 이곳의 중요 문화재들을 감상할 수 있지만

몇 번이고 들어가본 보물전이란 곳은, 의외로 입장료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패스.

 

사진도 당연히 찍을 수 없고 한국어 설명은 조잡하고, 일본어 설명은 어려운 한자가 꽤 많이 들어가 있는데다가

어지간히 지역 역사와 문화를 알고 있지 않으면 그 문화재에서 느낌을 받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한가로운 비둘기들의 모습을 빼면, 조금 소름끼칠정도로 깔끔하게 정비된 신사 내부를 한번 더 둘러보고

슬슬 돌아보지 못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신사 하나만 볼거리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산책로나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