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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텐노지'에 해당하는 글들

  1. 2010.02.09  오사카 여행기 7편 - 혼보 정원과 오사카성 12
  2. 2010.02.07  오사카 여행기 6편 - 비내리는 시텐노지 12

시텐노지 구석에 자리잡은 혼보 정원(本坊庭園)은 문화유산은 아닙니다.
1903년 외국 귀빈들의 영접관으로 만들어진 정원이라 굉장히 신경써서 만든 정원이긴 하죠.


작은 폭포와 연못 등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본식 정원은 '보는' 미학의 정점에 달해있다고 소문이 난 만큼
4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다양한 풍경을 일반 관광객이 슬쩍 훑어보는 걸로 이해하긴 쉽지 않죠.
대부분 돈과 권력이 넘쳐나는 권세가들의 취미활동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느긋하게 내부를 걸어다니며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할까.


하지만 여전히 가늘지만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일행의 발걸음은 그리 느긋하지 못했네요.
경험상 이런 정원은 여름엔 모기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니
겨울이나 가을에 오면 그 정취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더군요.


관광객들에겐 귀찮은 비라도
봄이 다가오는 시기에 이런 식물들에게는 고마운 단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색깔이 대비된 이런 모습도 하나하나 감상해가면 참 좋은데 말입니다.
이놈의 비때문에 집중이 쉽지 않네요. 그 덕분인지 정원 내부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점은 좋았지만.


정원 내부엔 서양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곳은 외국 국빈들의 영접관이었기 때문에 이런 형태가 되었죠.
도쿄의 유명한 정원인 리쿠기엔(六義園)이나 쿄토의 료안지(龍安寺) 정원에 비하면
조금 단촐하면서도 조밀한 느낌이 들어, 일본 정원의 아늑한 정취를 나타내기에는 약간 화려하지 않은가 싶은데
그래도 굉장히 신경써서 만든 정원임에는 틀림없습니닫.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일본식 정원은 제가 그리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네요.
정원을 둘러보고 정말 가슴 시원한 느낌을 받았던 곳은 리쿠기엔 정도가 유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본식 정원은 조경 방법에도 일정한 형식이 있고
제작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배치 등등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요소가 많아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제대로 음미하기 조금 힘든 느낌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이런 형식.
가지런히 배열된 모래정원은 '물'을 의미합니다.
중간에 솟아난 돌이 육지, 혹은 섬을 의미하니까, 이런 단정한 빗살무늬는 물의 파장을 그린 것이죠.

예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쓴 적이 있는데, 활동을 위한 공간인 서양식 정원과의 가장 큰 차이가
이런 식의 감상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정원을 손질중인 아저씨들을 슬그머니 뒤로 하고
들어가도 될 듯한 건물 내부로 들어왔습니다. 출입금지란 말이 없었으니 들어가도 되겠죠.
사람이 워낙 없어서 사람들 따라가기도 힘들고 왠지 우물쭈물한 느낌.
뭔가 문화재틱한 것들이 몇 점 장식되어 있었습니다만 앞선 보물전에 비해서는 그닥 눈길을 끌 만한 수준이 아니었네요.

이런 곳에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며 새소리 지저귀는 정원을 바라보면 그것 참 절경일것 같은데.

이곳 혼보 정원은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크게 인기가 있진 않습니다.
저도 주유패스 무료 입장권이 없었다면 절대로 돈내고 들어가지 않았을 곳.
이곳 시텐노지에서 주유패스를 이용해 얻은 이익금은 800엔 정도.
오늘이 주유패스 사용가능한 마지막 날이니 열심히 본전을 찾아야 합니다.

혼보 정원을 끝으로 시텐노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드디어 비가 그쳐갑니다.
비를 피하느라 휴게실에 죽치고 앉아서 과자와 음료수를 마셔댄 터라 배가 고프진 않지만
일부러 맥도날드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부터 새로 판매 개시하는 버거가 있어서 맛을 보려구요. ^^
일본에서는 기간한정 햄버거나 콜라 등이 선보이기 때문에 한번 가서 먹어보는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
작년 홋카이도 여행 때 마셨던 한정 차조기맛 펩시콜라도 산뜻한 경험이었습니다.
궁금한 분은 홋카이도 여행기를 참조.


오늘부터 개시한 신제품 버거는 이름도 터프한 텍사스 버거!
두툼한 100% 쇠고기 페티와 치즈, 베이컨, 과자처럼 얇게 튀겨낸 양파 등이 BBQ 소스와 버무려져 있습니다.
일단 맛은 합격점에 들어가더군요. 버거 차제의 크기는 그리 크지않지만 탄력있는 페티가 만족스러웠네요.
한국에서는 버거킹의 와퍼급 이상은 되는 수준입니다. 롯데리아 따위의 장난감 페티와는 질이 틀리네요.

가격도 싼 편은 아니지만 먹어볼 만한 녀석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계속 버거의 '와일드'함을 강조하는데
도대체 일본인의 텍사스에 대한 관념이란... ㅡㅡ;


버거로 배를 채운 후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오사카성(大阪城)으로 향합니다.
오사카 여행하면서 가장 만감이 교차하는 곳이 이 오사카성이라고 생각하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 생전의 화려했던 오사카 문화의 정점에 달한 곳이라
장엄한 주변 경관과 우뚝 솟은 텐슈가쿠(天守閣)의 모습에 놀라며 구경하다가도
정작 오사카성 안에 들어가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기도 하는 복잡미묘한 곳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오사카에 와서 오사카성을 보지 않는것도 좀 그렇고...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오직 그 거대한 성 주변의 풍경에만 조금 존재하는 애매한 장소입니다.
이런 멋진 화장실에 더 눈이 가는군요. 거참 세련되게 지었습니다.


오사카성 주변엔 공원도 있고 하니 날씨 좋을때 가면 성 자체보다 주변을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기엔 그만입니다.
오늘은 비도 무지하게 왔고, 겨울이라 공원은 있으나 마나한데다,
주유패스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러군데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에 마음은 조금 급합니다.

역시 돈없는 서러움인가요. 왠지 오사카 여행은 주유패스의 원령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 ㅡㅡ;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무지하게 많이 보입니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단체부터, 가이드를 동행한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오사카성의 문화적 가치는 텐슈가쿠가 아닌 외부 성벽에 있습니다.
이거 거대하기 짝이 없는 성벽은 오사카성에서 4번째로 큰 바위라고 하는군요.
그냥 찍어서는 도저히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서 동생분을 세워뒀습니다.



성문도 웅장하고, 2중으로 물이 가득 찬 해자도 깊고 (내부 해자는 지금은 물이 없이 비어있습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이름에 걸맞는 천해의 요새였던 오사카성도
토쿠가와 시대의 새로운 바람에는 버텨내지 못했었죠.

여기서 재미삼아 그 당시의 역사에 대해 살짝 주절거려 보자면
히데요시 사후 토쿠가와가 실권을 잡게 되자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이곳 오사카성에 유배됩니다.
하지만 토쿠가와가 실권을 잡은 후로도 히데요시의 추종세력은 여전히 강세를 떨쳤고
특히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가 오사카성에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습니다.

토쿠가와는 히데요리의 재산을 탕진시키기 위해 그에게 쿄토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호고지(方廣寺)를 재건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호고지는 원래 히데요시가 천하 통일후 그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었기 때문에
이를 재건하라는 말은 토쿠가와가 자신들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제스처라고 착각한 히데요리는
기쁜 마음으로 호고지를 재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악하기 그지없는 토쿠가와는 재건된 호고지 내부의 종에 새겨진 문구를 트집잡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안강 군신풍락 자손은창(國家安康 君臣豊樂 子孫殷昌) 이라는 문구였는데요.
이는 '국가는 평안하고 군신은 즐거우며 자손은 번창한다' 라는 뜻이었지만
'國家安康'의 '家'와'康'는 이에야스 (토쿠가와의 이름)를 뜻하며, 그 사이에 글자를 집어넣은 것은
토쿠가와 가문을 반으로 쪼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 했고
'君臣豊樂'의 '臣豊'의 발음은 '토요토미'이니, 이는 토요토미의 자식이 다시 번창할 것이라는 의미니
결국 토요토미의 후손이 토쿠가와를 멸망시키고 다시 천하를 잡겠다는 의도가 포함된 문구라고 억지를 부린 것입니다.

이 문구는 실제로 쿄토의 호고지 종에 새겨져 있는데, 그야말로 깨알같은 수천 자의 글자 중 저 3문만 발견해내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토쿠가와의 의도는 토요토미 가문의 씨를 말리겠다는데 있었다는 걸 반증해주고 있었죠.


히데요리는 그제서야 토쿠가와의 원래 목적을 알아채고 탄식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1614년, 압도적인 군사를 이끌고 오사카성으로 진격해 온 토쿠가와였지만 난공불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2배가 넘는 군세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성은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오사카성의 넓고 깊은 2중 해자는 그야말로 철벽의 수비력을 자랑했기 때문에
이대로는 도저히 함락이 힘들다고 생각한 토쿠가와는
'화해의 뜻으로 바깥 쪽 해자를 메운다면 병력을 철수하겠다'는 전갈을 히데요리에게 보냅니다.
때는 이미 겨울이라 해자가 얼어버릴 위험성도 있었고, 처음부터 절대적 열세였던 히데요리는
그 말을 믿고 첫 번째 해자를 흙으로 메워 버립니다.

하지만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615년 여름이 되자 다시 토쿠가와는 병력을 이끌고 오사카성을 공략합니다.
이제 이유따위는 아무 필요없죠. 어찌보면 히데요리라는 인물 자체가 이런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내부 해자 하나만 남은 오사카성은 결국 추풍낙엽처럼 함락되고, 히데요리는 자결합니다.
이로서 토요토미 가문과 그 지지자들은 대부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일본 전국은 토쿠가와에 의해 통일되고 전국시대는 끝을 맺으며 태평성대의 시대가 열리는가 싶었지만...
뭐, 주군을 잃은 수많은 낭인들이 배출되고 그에 따른 부작용 어쩌구 하면서... 막부 시대는 지속되었습니다.


역사 이야기는 이쯤 하고
실제로 오사카성에서 제일 볼만한 녀석은 이 놈이죠.
오사카성에서 가장 큰 바위덩어리입니다.

도대체 이걸 어디서 가져와서 어떻게 성벽으로 사용을 한 건지...
저는 속에 작은 돌덩어리들을 붙여놓은게 아닌가 싶었지만 옆의 설명문을 보니 그냥 바위 한덩어리라네요.


드디어 텐슈가쿠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날씨도 날씨고 관광객은 한국인 말고는 거의 보이지 않네요.
여기까지 왔으니 이런 사진도 좀 찍어봐야죠.
그런데 어째 역할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그려?


동생분이 일본에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했던 단고를 일단 먹어주고 오사카성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방금 만들어내서 따끈따끈한 단고는 저도 처음 먹어보는군요.

자전거 여행때 편의점에서 단고를 자주 찾아먹었었는데
탄수화물 덩어리라 체력유지에도 도움 되고
엿이 가득 발라져 있어서 자전거 여행하면서 피로할때 직빵이고
가격도 4꼬치에 99엔밖에 하지 않는 저렴한 간식이라 아주 유용했습니다.

참, 자전거 여행하면 자동적으로 짠돌이 거지생활을 하게 되는군요. ㅡㅡ;


단고라고 해서 딱히 특별한 맛이 있는건 아니죠.
그냥 달짝지근한 엿에 쫄깃쫄깃한 떡의 감촉이 입을 즐겁게 해 줄 뿐.
가게 안에 앉아있으니 아저씨께서 차도 내 주셨습니다.

피로를 풀면서 단고를 씹어먹는 기분도 여행 중간의 멋진 경험이네요.


텐슈가쿠도 주유패스로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이걸 쓰면 오늘 하루 주유패스로 즐긴 무료입장도 1400엔이나 되는군요.
저녁에 스카이빌딩 전망대까지 무료로 올라가면 주유패스로는 충분히 이득을 본 셈이니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 앞의 호랑이 그림은 뭘까요.


2010년이 호랑이해니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소원을 모아서 호랑이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 하네요.
일본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언어가 모여있습니다. 근데 다들 소원이 좀 재미가 없더군요.


한참 찾은 끝에 저를 만족시킬만한 소원을 하나 찾았습니다.
저도 저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정말좋겠네~


실질적으로 오사카성을 구경하는 재미는 여기까지입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텐슈가쿠의 외부에 비해 내부는 그저 평범한 박물관에 불과하죠.

애초에 몇 번씩이나 부서지고 무너지고 한 탓에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던 녀석을 1930년 경에 다시 세운 것이니
문화 유적으로서의 가치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한데
내부를 유적처럼 만들어 놓지도 않고 그냥 각종 기념품점과 엘리베이터, 영사기가 포함된 전시실 등으로 꾸며놓아서
겉만 번지르르한 현대식 건물이나 마찬가지 인상이더군요.


물론 관광이라는 입장에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만
원래 오사카도 쿄토만큼이나 일본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곳인 만큼
이런 식의 구성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오사카는 부산, 쿄토는 경주라는 말이 딱 맞는 듯. 오사카에서 전통 문화의 향기를 느끼기엔 좀 부족합니다.
그나마 텐슈가쿠 정상의 전망대에서 오사카 시대를 한번 훑어보면
토요토미 가문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조금이나마 체감해볼 수 있긴 했습니다.


전망대 아래쪽으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나 전국시대에 대한 설명
오사카성에 대한 역사 등등을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지만
이곳 폐관시간이 5시인 고로,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는 시간도 없고 그닥 흥미도 없고 해서
재미있는 방법으로 전시된 히데요시의 일생에 대한 전시관만 후다닥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2D와 3D가 결합된 전시방법으로... 직접 가서 보면 그냥 한번 씨익 웃을만 한 구성이더군요.

뭐, 한국인들에게는 워낙 또라이색히로 인식되어있는 히데요시라 굳이 한국인이 여기서 이런거 볼 일도 없을 것 같고.

슬슬 날도 저물어가고 왠지 씁쓸한 느낌과 함께 오사카성을 뒤로 했습니다.
이제 우메다(梅田)에 있는 공중 정원 전망대를 향해 출발합니다. 가다보면 해도 질 것 같으니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겠네요.

날씨가 심하게 흐립니다.
어제 텐포잔 관람차의 색깔을 분명 흐림을 뜻하는 녹색이긴 했는데, 이렇게 흐린 건 불안하군요.
저는 어제도 친구의 코 고는 소리덕분에 자다깨다를 반복했습니다.
서울서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도 잠을 좀 설쳤는데, 일본 와서 이틀 연속으로 코 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동생분도 몸 상태가 안좋은데 저도 자칫하면 뻗어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침에 스테이터스 이상이... ㅡㅡ;

일단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 싶어서 숙소를 뛰쳐나왔습니다.
신세카이 주변엔 요즘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이런 옛 극장도 유지되고 있더군요. 그리운 풍경입니다.
상영중인 영화는 서브웨이123, 트랜스포터3, REC 등이 있네요. 성인용 영화도 상영중이니 참 정겨운 풍경이로세.


오늘 아침에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시텐노지(四天王寺)로 향했습니다만...
난리났습니다. 결국은 비가 오더군요.
 
역시 어느 나라나 기상 예보는 믿을게 못된다는게 정설인가봅니다. 관람차녀석...
일단 우산도 하나 없는 일행이라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여행의 뽕을 뽑기 위해 무조건 전진밖에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냥 슬금슬금 내리는 편이지만 마음은 불안하군요. 여행때 가장 만나기 싫은 녀석입니다.


문을 통과하니 파마+염색한 아줌마 같은 녀석이 눈에 들어오네요. 문화유산은 아닙니다.
사실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운 애틋한 녀석입니다.


동생분이 사찰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주유패스로 무료 관람가능한 곳이라 찾아오긴 했는데
이곳 시텐노지는 그 역사에 비해서는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어서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해도 됩니다)
진짜 사찰 매니아에게는 조금 아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시텐노지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59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이기도 합니다. 백제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쇼토쿠 태자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하지만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이곳의 사찰은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되었고, 현존하는 건물은 모두 1970년대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사실상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사찰은 나라(奈良)의 호류지(法隆寺)에 세워진 서원가람(西院伽藍)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기도 하죠.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영령당(英靈堂)입니다.
앞에 세워진 두 개의 거대한 돌기둥에는 밀어로 보이는 글씨가 새겨져 있군요.
영령당 근처엔 돌로 된 위령비가 많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시텐노지 대부분의 사찰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진으로 남기는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제가 존중하는 불교의 정신은 이런 건물이나 문화제, 부처 이름 외우는데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한테 사찰문화재라는 것은 그냥 그 시대의 문화와 풍미를 느끼게 해주는 단순한 물건에 불과한 터라
사진을 찍지 않으면 그닥 감흥이 없네요.

그런 고로, 맨날 산위에 올라가서 양초나 켜놓고 자식 수능 대박나기를 손이 닳도록 비는 어미아비들의 모습도
'불교를 욕보이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세계 평화나 빌겠습니다.


빌고 싶으면 요 정도로 소박하게 하라니까요. ㅡㅡ;
니네 자식들 종이 위의 문제 푸는 등신으로 전락시키고 싶어서 사기꾼들한테 돈 쳐바르지 말고.

아~ 교육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군요. 릴렉스하고 다시 정신을 시텐노지로 워프시키겠습니다.


비가 주섬주섬 내리긴 하지만 그것도 꾸준히 맞으니 심히 불쾌해지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동생분은 모자도 있고, 저도 버프를 쓰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머리에 타격을 받진 않는데
(친구는 뭐 쓰고 있었나? 기억이 없습니다. 쏘리. ㅡㅡ;)

이곳은 약사여래, 사천왕상이 보존되어있는 육시당(六時堂)입니다.
시텐노지의 중앙에 위치한 큰 사당이며, 매일 6번씩 영령에게 예를 갖추는 의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육시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당연하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 이곳에서는 많은 현지인들이 경건하게 합장을 하더군요.


이곳은 카메이 부동당(亀井不動堂) 이라는 조그만 건물로, 건물 안에는 이끼에 덮힌 부동명왕상이 있습니다.
이곳과 바로 옆의 카메이당(亀井堂)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시텐노지의 본당인 금당(金堂)의 지하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하는데요.
쇼토쿠 태자가 이곳의 샘물에서 부동명왕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사당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저 부동명왕상에 샘물을 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뭐 그런 것이겠지요.


시텐노지의 대표 스팟중 하나인 이시부타이(石舞臺)입니다.
이곳 돌무대 위에서 매년 4월 22일 성덕태자의 덕을 기리는 부가쿠(舞樂)가 열립니다.
부가쿠는 당나라의 행사 예식인 당악에서 유래되어 일본 특유의 문화로 발전한 의식으로, 이곳에서 부가쿠가 열려온 지 천 년이 넘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믿거나 말거나.

비가 점점 굵어지는터라 서둘러 이번 시텐노지 공략의 1차 목표중 하나인 보물관(宝物舘)으로 향했습니다.
보물관은 쇼토쿠 태자와 관련된 중요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곳으로, 국보급 보물들도 전시되어 있는 터라
문화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둘러보셔야 할 곳입니다. 입장료를 받는데 주유패스로 무료!
물론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보물전 내부는 상당히 좁고, 문화재 수도 그리 많은건 아니지만 진득하게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
40분 남짓 열심히 구경한 후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는군요.
오늘중으로 돌아봐야 할 곳이 많은데 계속 비가 내린다면
최악의 경우 우산을 사거나 숙소로 돌아가서 우산을 빌려 나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태자전(太子殿)이라고 하는, 쇼토쿠 태자의 덕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한국 역사책에도 잘 나오는 이야기지만 (요즘엔 국사도 필수과목이 아니라면서요? 나라의 망조가 보이네요)
쇼토쿠 태자가 일본 불교, 나아가서 일본 역사와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이 워낙 중요한 지라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건축물이지만 정말 정성들여서 가꾸어 온 모습이 금새 눈에 들어옵니다.
빗소리에 파묻힌 성덕원의 모습이 오히려 더 경건하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원래 이곳의 이름은 성덕원(聖霊院)인데, 요즘엔 그냥 태자전이라고 많이 불린다고 합니다.
태자전 내부 지하에는 2만 2천개의 금동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아요.


비가 와서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이젠 막 쏟아 붓는군요.
동생분이 뭔가 불만어린 표정입니다. 근데 포즈는 왜 귀여운지? 이거 설정샷이었나? ㅡㅡ;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합니다
일단 이곳의 볼거리인 보물전은 관람 마쳤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혼보 정원(本坊庭園)과 중심가람(中心伽藍)이 남았는데
혼보 정원은 이 빗속에 돌러보기란 불가능해서 일단 태자전의 바로 옆에 위치한 중심가람으로 서둘러 향하기로 했습니다.


가람은 불교 용어로, 산스크리트어인 '상가 아라마(sangha- arama)'가 어원인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임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는 장소를 말하는데, 보통 7가지 구조물(불전,강당,승당,주고,욕실,동사,산문)이 갖춰진 구역을 뜻하죠.

이곳 시텐노지의 중심가람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인데,
중문, 오중탑, 금당, 강당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일직선 형식 배치를 이루며, 주위에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일본의 '음미하는' 정원 느낌을 이곳에서도 받을 수 있었네요. 활용 공간으로서가 아닌 미의식의 표출 수단으로 사용되죠.


회랑 내부에서 쏟아지는 비를 피하면서 가만히 가람 내부를 바라만 봅니다.
사실은 이게 제대로 된 감상 방법일지도 모르죠. 빗소리가 일행을 점점 개인으로 흐트려 놓는 듯한 느낌.


중앙의 건물이 금당(金堂), 뒤의 탑이 오중탑(五重塔)입니다.
오중탑에서는 석가모니의 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금당은 시텐노지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사방에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구세관음상이 놓여있습니다.


회랑 옆에는 우물도 있었습니다.
상당히 깊더군요. 이런 곳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좀 무서워지죠.


회랑 내부는 차분합니다.
비가 많이 오기도 하고, 좀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그냥 일행들끼리 조용히 서 있었네요.
비는 싫어하지만 이런 차분한 느낌은 좋습니다.

건물 전체가 너무 새것같은 느낌이라는게 참 아쉽긴 했군요.
호류지의 1500년 된 나무 기둥들은 정말 세월의 흐름이 이런거구나 싶었는데.


그냥 부슬비라면 어떻게 맞아가면서 움직이겠지만 장대비는 정말 무립니다.
그래서 그냥 막간을 이용해 사진이나 찍고 놀았죠.
역광도 이런 분위기에선 나름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그칠 기미가 안보여서 결국 근처의 휴게소로 뛰어가기로 결정.
휴게소에서 좀 쉬면서 비가 잦아들길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숙소로 돌아가 우산을 빌린다던가 할 수도 있지만 왠지 여기서 시간 보내는것보다 돌아가는 시간이 더 아까운 것 같아서.


가기전에 가람의 정문인 인왕문 앞에서 강제로 기념사진을 찍게 만들었습니다.
양쪽의 인왕상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녀석들이죠. 5.3m의 높이에 무게는 1톤입니다.
그냥 찍으면 재미 없으니 인왕 모습을 주문했죠. 동생분은 잘 따라줬습니다. 손바닥에서 여래신장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찍기 싫다고 잡아빼는 친구를 협박해서 억지로 포즈를 세워넣고 찍었습니다.
여행때는 이런 사진 남기는게 즐거움인데 말이죠. 지난 번 도톤보리의 글리코 앞에서는 실패했지만 이번엔 성공.


휴게실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먹으며 1시간 반 정도를 뒤척였습니다.
어제 잠을 하도 못자서 눈만 감으니 졸음이 오더군요.

내일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쿄토 당일치기인 터라, 이 체력으로 오늘 밤도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못자면
여행에 중대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오늘 밤은 따로 숙소를 잡아 도망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밤에 친구가 코를 골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ㅡㅡ;

하늘이 도운건지 결국 기다리다 보니 빗줄기가 잦아지더군요.
완전히 그친 건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돌아다닐 수 있을만큼 약해졌습니다.
이제 시텐노지의 마지막 볼거리인 혼보 정원으로 향합니다.

시간관계상 다음 포스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