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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27  산인 여행 - 크고... 아름답습니다? 18

 

 

신사 정문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카구라전(神楽殿)이 나오는데, 그 전에 보이는 이 장소는

문득 머리에 드는 '해우소'라는 제목이 딱 들어맞는 듯한 느낌이다.

공간이 부족하니 여기서 마음껏 근심 날려보세요 라고 선전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원이 빼곡하게 걸려있는 소원서버.

 

인연맺기라는 단어, 그냥 보면 단순히 젊은 남녀의 달달한 이벤트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종족 번식을 위한 암수의 교미는 우주만물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이자 중요한 근본 욕구임에 틀림없으니

없다는거 다 알면서도, 신이라는 초월체에게 콩고물 좀 얻어보려는 이들의 헌신적인 행동은

충분히 납득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납득을 시켜야 이곳의 광경에 합리성이 부여될 것 같으니.

 

 

 

나무의 생장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붙어있는 소원 종이들.

저게 만약 매미같은 녀석들이었다면 굉장히 혐오스러운 광경이 연출될 듯 하다.

 

남에게 뭘 빈다는 행동에 대해서 그닥 이해심을 발휘하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매번 볼때마다 이 무의미한 행동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쉽게 생각하면, 동물이 영역 마킹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 흔적은 남기고 싶은데, 낙서같은 욕 먹을 짓보다는 공인된 방법이 누이좋고 매부좋을테니까.

 

 

 

아무리 깨끗하고 신성한 흰 종이라도 이렇게 붙어있으니 좀 무섭다.

저게 겨울무렵까지 그대로 붙어있으면, 해충 박멸하는데는 좋은 방법이 될것 같긴 한데.

 

실로 셀 수 없는 소원 종이와 에마들이 가득가득 걸려있는 모습은

코뿔소의 뿔이나, 하마의 입 크기처럼 '이 신사 이렇게 대단한 곳입니다'라고 선전하기에 좋은 잣대가 될것 같다.

한국인으로서는 꽤나 여러군데 신사를 둘러봤다고 자부할만 한 본인도, 이만큼 많이 붙어있는 곳은 처음.

 

 

 

여기도 뭔가 재미있는 소원이 적혀있을까 싶어서 슬쩍 살펴봤는데

몇 살 되지 않아 보이는 꼬마가 쓴 듯한 소원이 나름 눈길을 잡는다.

얼마나 친절한지, 오른쪽에 글로 소원 적어놓고 왼쪽에는 그걸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오오쿠니누시님께서 글자를 못 읽을 가능성도 있으니 이렇게 철저하게 소원을 설명해 주려는 것일까.

대충 '산수 잘하게 해 주고, 부자되고싶고, 게임 갖고싶다'는 정도의 소원이다.

그 중에서 '부자되고싶다'는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적어놓는걸 보니, 이 꼬마녀석 앞으로 크게 될지도.

게임 관련 그림에 닌텐도 3DS 게임이라는 표현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도 범상치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하지 않고 왼쪽 최상단에 '엄마 살빼' 라고 적어놓는 지극한 효심까지.

 

 

 

시마네현에서 가장 큰 마츠에나, 이곳 이즈모 지역 통들어서 이렇게 사람흔적이 뚜렷한 곳도 없을 듯.

티끌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경건한 이즈모 타이샤에도, 만약 영적인 뭔가를 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소원이 산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혼돈의 카오스를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곳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까지 조금의 아쉬움을 남긴, 공사중인 본전의 모습을 한번 더 담아본다.

멀리 본전 지붕에 보이는 X 자 모양의 표식은, 이곳 시마네 현의 마스코트 시마네코가 머리에 쓰고 있다.

그런데 여행 선물로는 너무 일색이 짙고, 그 고양이가 그리 귀여운 타입도 아니라서 구입은 포기.

 

 

 

본전에서 왼쪽으로 걸어나오면, 사실 본전보다도 더 커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들에게 음악과 춤을 바치는 카구라전인데, 인연 맺기의 신사인 이곳 이즈모타이샤에서는 결혼식장으로도 쓰인다.

신사의 결혼식은 굉장히 격식있고, 신들의 가호를 받는다는 느낌도 들고, 가격도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나름 수요층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특히 이즈모타이샤 정도의 신사에서 결혼식 하려면 몇억정도는 우습다.

 

빨리빨리 다음 손님 위해 치워내는 듯한 느낌의 한국 결혼식과는 달리

일본 결혼식은 최소 4~6시간은 걸리는 장거리 마라톤.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으며 오만가지 이벤트가 난무하는 곳이다.

이 정도 되는 신사에서 결혼식이라면 그야말로 결혼 파티가 아니라 뭔 신내림 받는 듯한 엄숙함까지 추가되니

이런 것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다시 겪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이 될 듯 하다.

 

 

 

물론 결혼식이 아니라도 이곳에서 행해지는 가악 등의 공연은 유명한 볼거리.

특히 일본 각지의 신이 모인다는 10월에는, 사람들도 덩달아 모여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데...

9월 초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 아무리 볼거리가 많아도 인파에 치여 쓸려다니는건 사양이다.

 

 

 

카구라전에 걸려있는 시메나와는 일본에서 가장 큰 녀석으로, 무게만 4.5톤 가까이 된다고 한다. 저거 떨어지는 날에는 대참사.

본전에 들어갈 수 없는 이즈모 타이샤에서 단연 유명세를 타는 녀석.

 

신기한 풍경이라서 보기엔 좋은데, 대체 이렇게 큰 시메나와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의구심은 든다.

단순히 커서 좋은거라면, 집 앞에 소박하게 걸린 시메나와들은 효능이 없는 것일까. 그것도 아닐테고.

 

이곳 이즈모탸이샤는 매우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주요도시들과 많이 떨어져 있어서, 다른 유명 신사에 비해 찾는 발길이 적은 편이긴 한데

그 반작용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XX' 타이틀을 갖고 있는게 많다.

이 시메나와도 일본에서 가장 큰 녀석.

 

 

 

원래는 저 밑둥에 동전을 던져 박아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다들 동전들고 던지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박히고 떨어지는 문제도 있고, 사람 다칠수도 잇어서 이제는 그냥 철망으로 감싸버렸다.

짚단으로 만든 녀석이라 수명도 있어서, 이거 새걸로 교체하는 것도 큰 이벤트중에 하나인데

동전 소문때문에 아무래도 골치가 좀 아팠던 듯. 근데 자기 동전을 그렇게까지 소모할 필요가 있나?

 

 

 

워낙 거대한 녀석이라 제작방식이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사람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크기가 아닌 듯 한데, 그렇다고 신사에서 기계식으로 만들리도 없을 것 같고.

 

여행 당시에는 날씨도 덥고 해서 그냥 지나쳤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이 시메나와 제작 방법에 대해서 조사해 보고 싶다.

프라모델도 완성품보다는 만들 때의 즐거움이 진짜라고 하듯, 이 거대한 녀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워낙 크다보니 비교대상이 있어야 실감이 갈 듯 하다.

다행히도 비교할만한 소재인 사람들은 여기저기 널려있으니 마음껏 사용한다.

 

결혼식장으로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신사에 비해서 이곳의 카구라전 역시 크기가 매우 큰 편이다.

아무래도 신사 이름이 타이샤(大社)이다 보니 뭐든 크고 아름답게 짓는게 특징인가 보다.

나는 '대'자 들어가는 것들이 너무 가식적으로 보여서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아무튼 본전은 못봤지만 유명한 시메나와 마음껏 감상한 것만으로도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밖으로 나서면 또 보이는게 이 게양대.

이 역시 높이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큰 녀석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가야 하는게 관광지의 숙명이겠지.

어지간한 삼나무보다 더 높아서 멀리서도 잘 보인다. 방금 전 시메나와 때보다 더욱 더 '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본에서 제일 높은 게양대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이렇게까지 '제일 큰 XX'의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녀석은 처음이라고 생각.

이곳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토리이(鳥居)도 있지만, 그건 훗날 포스팅에 아마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그 녀석도 나한테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는 뜻도 되고.

 

시간을 쌓아서 흔적을 남겨놓은 녀석들은 뭔가 느껴지는게 있지만

돈 많이 들여서 이렇게 제일 큰 타이틀을 거머쥐는 녀석들은 굉장히 덧없게 느껴진다.

그나마 시메나와야 일본 전통이 녹아있는 녀석이기도 하니 관광객들에겐 좋은 구경거리지만

내가 일본에서 제일 높은 게양대에 걸린 국기를 보고 놀라거나 신기해 해야 할 이유가 있나?

난 우리집 아파트 앞의 국기 게양대에도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