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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9  동해안 자전거여행 7편 26
  2. 2011.10.27  동해안 자전거여행 6편 20


어필할만한 특징과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공원이 된 것인가.
부지나 접근성 등에서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공원이 된 것인가.

일단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으면 위의 두 공원은 모두 경제적으로 성공한다.
하지만 아무리 해가 지나도 두 공원의 본질적 차이점은 좁혀지지 않는다. 태생이 다르기 때문에.

해맞이공원 중에서는 꽤 유명한 이곳은, 객관적인 사실여부를 배제한 개인적 견해로 후자에 속하는 듯 하다.
울진, 영덕, 포항을 어우르는 편리한 접근성과 함께 해산물 시장으로 유명한 강구항과 인접,
숙소가 풍부한 삼사해상공원과 자동차로 쉽게 이어지는 연계성, 주변에 어촌이 형성되지 않은 공간적 이점 등등.

반대로 경상도 해안가도로중 이곳의 해돋이가 더 장관이고 유명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시야, 이런 언덕은 이곳에서 너무나 흔하거든.


그 무난함과 차별화되는 특징을 위해 세워진 창포말 등대는 좋은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밤엔 루미나리에와 함께 등대에서 발산되는 몽롱한 레이저도 사람을 끌어들이고
창포말 등대에서 바라보는 동해 일출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으니까.

좋은 공원이면 그걸로 됐지 뭘 그리 따지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어느 한쪽의 우월을 위해, 그리고 그걸 이용해 내 불만을 표출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이곳은 굉장히 잘 만들어지고 훌륭한 공원이다.

단지, 자전거여행을 정리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던 중
무의식적으로 끌렸던 여러 관광지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곳들은
위에서 말한 전자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의 관광지 선택 기준은 그런 쪽으로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것 뿐이다.

즐길거리와 볼거리는 동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에게는 그 두가지가 꽤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밤에 이런 루미나리에 사이로 난 계단을 '연인과 함께' 걸어 내려가며 낭만을 즐기는 것. 훌륭하다. 하라쇼.
내가 여행을 즐기는 방향도 아마 '혼자'라서 즐길거리보다 볼거리쪽으로 기우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냉철하게 생각해봐도 그렇다.

물론 그 볼거리라는건 가능하면 설정 갖다붙여서 만든 게 아닌,
지역의 역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던가 위대한 자연의 손재주가 만들어낸 것이라던가가 더 좋다.
아쉽게도 내 옆에는 옆구리를 근질거릴 짝도 없고, 이 공원에는 시간이라는 재료를 들여 빚어낸 특징이란 것도 없다.
그래서 그냥 좋은 사진 건지겠네 라고 생각하며 바람 쇠는 정도의 감흥밖에 들지 않는 듯 하다.


이런 감정과 함께 공원을 둘러보면 사물을 대하는 인상도 바뀌는 법.
이 사진을 찍을때도 생각하던 건 '흰색 건물을 하늘과 찍으면 하늘이 시퍼렇게 잘 나오지. 좋다' 정도였으니까.
영덕의 상징인 대게의 다리를 본떠 만든 어쩌구 하는 감상은, 여기서 기억해 낼 만한 특징조차 아니어서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일본의 전래동화 모모타로 이야기의 고향인 오카야마와 그 옆의 쿠라시키에서는
원형이랄게 남아있지 않은 그 소재를 적극 활용해, 도시 전체에서 모모타로라는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했었다.
조그만 공원에도, 개천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다리 위에도 모모타로와 친구들의 동상이 소박하게 자리 잡고
가게에서는 모모타로가 먹었다는 경단을 캐릭터 스티커와 함께 팔고, 다른 지역에는 없는 모모타로 버전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을 판다.

울진과 영덕에서 대게 관련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경쟁하듯이 세워진 대게 동상과 도로변에 끝도없이 늘어서 있는 대게모양 장식물. 그리고 이 등대 정도다.
여행에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크고 특징적인 것들이지만
굵고 짧은 것보다 길고 가는 것이 여행에서는 여운을 남긴다고 본다.

관광버스를 타고 주르륵 둘러보거나, 자동차로 일일관광을 즐길 때는 분명 이런 게 어울리겠지.
그런데 자전거로 사골까지 고아먹으려는 나 같은 여행 스타일에겐 이건 수명이 짧다.
하다못해 한국 최고의 해돋이를 자랑한다는 이 곳에서 대게모양 휴대폰 스트랩하나 파는 가게가 없다.


이러저러하게 이 곳의 관광전략에 대해서는, 참 애써서 만들었는데 활용할 생각은 별로 없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지만
일단 풍경 하나는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라 그것만으로도 7번국도를 포기하고 이쪽으로 달려올 이유는 충분하다.

이번 여행중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만난 곳이기도 하고.
좀 더 편리한 이동수단을 갖고 이곳에 온다면 아마 밤풍경도 즐기고 야영장에서 밤 세운 후 멋들어진 일출을 보며 셔터를 누를 것이다.
단지, 그런 유희에 적합한 시기가 되면 지옥같은 인파에 시달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상상만으로도 느껴지는 듯 하다.


낙서해도 될 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글씨가 써 지고 보여질만한 장소에는 여지없이 낙서가 즐비하다.
등대 벽에다 낙서하는 인간이 남한테 정신 챙기라는 조언을 할 위치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를 안고 이 등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더라.
충분히 이해가 될 만큼 조금 아찔하고 어질하다. 수없이 뱅뱅 돌기 때문에 좀 어지럽다.


전편과 이어지기 때문에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이날 아직 아이스크림 한개 외엔 뱃속에 넣은게 없었다.

해맞이공원에 위치한 간이 가게에서 과자와 컵라면을 팔고 있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 정도의 폭리에 내 배고픔이 무릎을 꿇을 정도로 부조리에 대한 저항심이 약하진 않았기 때문에
해맞이공원을 지나 또 다시 나타난 조그만 어촌마을 횟집을 찾았다.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가게에 들어가서 여느때처럼 혼자 먹을 게 있느냐 물었는데
다행히도 이 집에서는 회덮밥과 물회라는 개인용 메뉴가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회 역시 회덮밥처럼 밥을 말아 비벼먹을 수 있지만 아주머니께서 회의 신선함을 즐기는데 밥의 온기가 방해되니
그냥 따로 먹는게 정석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손님도 없고 작은 횟집이지만 워낙 바다와 맞닿은 어촌이라, 회는 상당히 신선했다.
사실 회를 채소와 고추장에 비벼먹는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어쨌든 꿀맛이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말에 안스러워하시던 아주머니는 밥도 덜 먹었는데
한그릇 더 드시라며 공기밥을 추가해 주셨다. 사실 한그릇으로도 충분했지만 호의를 거절할 순 없어서 거뜬히 먹어치우는 '척'을 했다.

식사 끝나자 커피도 한잔 드시라며 타 주시고, 아마 웰던이 된 직후 진흙탕에 넣고 몇일 숙성시킨 몰골을 하고 있어서인지
많이 애처로워 보였나보다. 거듭 감사인사를 드리고 든든하다못해 '이것은 마치 입에 넣자마자 밑으로 빠져나오는' 듯한 포만감을 느끼며 다시 출발.


해맞이공원과 강구항은 매우 가까워서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강구에서 개불 사다가 신나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곳은 자전거 세워놓고 어디 들어가서 개불 먹기엔 조금 위험할 정도로 붐비는 곳이라
호객꾼들의 살가운 목소리를 뒤로 하고 천천히 자전거를 전진시켜 빠져나갔다.
나한테도 싸게 해드릴게요라고 붙잡는데, 내 행색이 해산물 싣고 달릴 수 있는 행색인가?

여기저기 대게대게 소리를 지르지만 강구항에서 대게를 살 확률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니 애초에 희망도 가지지 말길.
어떤 곳은 대게 5마리 10만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간판도 걸어놨다. 요즘도 대게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일단 어떤 허풍과 거짓말도 쉽게 용서되는 배려심 철철 흘러넘치는 대한민국이니, 그 정도의 광고는 그냥 넘어가 주는것 같기도 하다.

최상급 대게를 먹었던 7년 전쯤의 가격이 한 마리 10만원이었다. 그것도 소매가가 아닌 도매가로. 그냥 웃고 말지.
그 정도 대게는 긴다리의 마디 하나가 내 오른손 쫙 찢어 벌린 정도의 길이다. 
거의 킹크랩급의 크기지만 맛은 천하일품이지. 킹크랩 5마리하고도 안바꾼다.


강구항은 그저 멋들어진 풍경하진 한 장을 남기고 지나갔다. 강구항 바로 옆에는 삼사해상공원이라는 거대한 공원이 자리잡고 있어서
비수기인 지금엔 어디든 노숙할만한 장소는 차고 넘쳤다. 지붕까지 달린 공연장도 텅텅 비었고 근처엔 편의점과 호프집도 완비. 술을 마실 건 아니지만.

동해안은 뭐, 사실상 어딜 달리든 해맞이 구경하는덴 최적이니 명소라는 수식어가 조금 퇴색하긴 하지만
확실히 편의시설, 숙박시설, 오락시설이 충분한 삼사와 해산물 풍부한 강구항, 산책하기 최적인 해맞이공원까지
모두 자동차로 10분거리에 위치하다 보니, 이곳은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효율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찍고나니 이 시기에 왠 벚꽃인가 싶었지만 전부 조화였다. 뭘 기대했던걸까.
넓은 녹지에 한산한 인파덕에 여기서 만난 고양이만 네 마리는 된다. 물론 경계심은 심해서 사진 찍을 순간도 없었지만.
어젯밤 모기때문에 잠을 설친 덕에 믾이 피곤했다. 편의점에서 오징어다리까지 사서 컵라면과 함께 뜯어먹고
시체가 되어도 한동안은 못 찾을만한 구석진 곳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가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넓은 주차장쪽은 아무래도 너무 눈에 띠고, 의외로 관광버스라던가 바이크 라이더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놀고 하더라.

높은 언덕 위라서 파도소리도 그렇게 거슬리지 않고, 밤이 되니 정말 얌전할 정도로 조용해 진 덕에 꽤 편안했다.
자전거 끌고 언덕 올라가느라 고생좀 하긴 했다. 그리고 귀마개가 문방구에서 산 싸구려라 좀 딱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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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잠자리에 들때까지는 좋았는데 예상치 못한 적이 나타났다.
어딘가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밤새도록 모기가 출몰한 것.
처음엔 한두마리 잡고 누웠는데 이게 끝도 없이 계속 나오고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바닷바람에 강하게 큰 녀석들인지 왠만해서는 안 붙는 눈이나 입 주변에까지 신나게 붙는다.
반대로 너무 무방비하게 달려만 드니 잡기는 편했지만 이상하게 끝도 없이 계속 나온다.
결국 새벽 4시까지 모기 14마리를 잡고 피곤에 지쳐 쓰러졌지만 그 와중에도 귀며 손이며 팔이며 계속 물린 탓에
결국 반쯤 깬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도 벽에 붙어있는 모기만 세 마리더라.

출발하려고 짐 챙기는데 할머니께서 물도 차가운거 받아가라고 식당쪽 정수기에서 꽉꽉 담아주신다.
모기 이야기를 하니 그렇게 들어올 리가 없는데 하시며 방 점검을 해봐야겠다고 하시더군.
그렇게 많았으면 모기약 받아가지라고 하셨는데, 새벽 3~4시에 혹시나 주무실까봐 내려가질 못했다.
어찌됐든 텐트에서 하룻밤 보낸 것보다 더 피곤한 상태에서 출발.

고래불 해수욕장 주변은 성수기때 굉장히 붐비리라는 예상이 가능한 곳이다.
넓은 주차장, 넓은 모래뻘, 고래를 잡진 않겠지만 거대한 고래상까지.
그런데 은근 꼬리의 위치가 좀 이상한 듯 하다. 고래가 저렇게 길었나?


어제 바람만 불지 않았으면 이곳에 느긋하게 잠을 청해도 괜찮을 뻔 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더 이상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비수기는 정말 조용해서 좋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도중 도로 한복판에 뱀이 뒹굴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중앙선에서 수십 센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자동차 한두 대라도 달렸다간 그대로 즉사할 것임에 틀림없다.
해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지 몸이 안좋은지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이긴 하는데 거의 움직이질 않는다.

나뭇가지 집어들고 슬금슬금 당겨서 갓길 수풀 속으로 밀어넣어줬다.
반항다운 반항도 없고 꿈틀꿈틀거리기만 해서 정상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건 거기까지.


꽤나 귀찮아보이는 산이 앞에 가로막고 서 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숨을 골랐다.
오징어 말리는 풍경이 보기 좋기도 해서.


성수기는 밀려드는 인파로 바쁘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지금도 바쁜 시기인가보다.
이제껏 달려온 거의 모든 어촌마을에서는 모두 오징어 말리느라 정신없으셨으니.

영덕, 포항쪽의 반 건조 오징어 피데기는 경상도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테고
날씨와 지형 탓인지 맛이 훌륭하다는 평이 많아 아직 조금 이른 시기임에도 자동차를 세워놓고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


이곳에서 이리저리 사진 찍으며 놀고 있으니 해안가에서 여행차림의 청년 두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고 그냥 하루정도 걸리는 거리를 여행나온 듯 한데, 그래도 슬쩍 반갑긴 하다.
어째 일본에서 만난 여행자들보다 더 소심하고 쑥쓰러워하는 것 같아서 몇마디 말도 못건네고 말았지만.


여기서부터 영덕 해맞이공원을 낀 강구까지는 조금 험난한 라이딩이 예상된다.
예전에 자동차로 와 본적이 있는데, 7번국도가 아닌 마을 어귀를 도는 구 도로는 약간 리아스식 해안의 성질을 띄고 있어서
경사도 급하고 업다운이 잦았던 기억이 나기 때문.

그래서 잠을 못자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추스리려고 시간 좀 보내며 사진이나 찍으러 다녔다.


블로그에서 검색했던 동해안 도로의 난이도에 긴장하고 있었던 탓인지
1년간 자전거로 돌아다녔던 내 경험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었던 탓인지
막상 달려보니 동해안 도로는 그냥 쉽다고 말하지 못할 뿐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태어나서 첫 장거리 라이딩이라면 뭐, 충분히 투정부릴 만한 코스지만
그리 많이 달렸다고 하지는 못할 나 정도의 경험만 있어도 이 길은 그냥 땀만 좀 흘리면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예전에도 몇번 경험이 있지만, 여행 전에 인터넷에서 겁주는것에 너무 쫄면 안된다는 사실을 세삼 실감했다.
그렇게 어렵다고 써 놓으면 그 여행을 끝마친 자신의 가치가 좀 더 높아질거라는 무의식의 발로일까.
자전거 세계여행 준비 끝내고 인증사진 찍은 분에게 제일 많이 올라왔던 댓글이
저도 경험 좀 있는데, 그 장비로는 절반도 못가고 돌아오실겁니다. 너무 무겁고 짐많고 쫑알쫑알... 였었지.

일단 자기가 해낸 건 대단한 일이고, 남이 그런거 하려면 최대한 겁을 주는게 이쪽 사람의 본능일까.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간 곳은 준비만 하면 아무나 갈 수 있다고.
사하라 사막 마라톤? 난 그거 갈때까지 마라톤 풀코스 완주 한 번 해본 적 없다.
1년간 자전거여행? 난 지금도 자전거 타이어 교체 말고는 수리하는 방법 모른다.
운동? 내 몸무게가 지금 90kg 가깝다. 짐 싣고 달리면 100kg 넘는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니. 땀흘리면 바로 픽 쓰러져 죽는 사람 아니면 못갈 길이 아니다.
무슨 극기훈련 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가라고 만들어놓은 도로를 자전거가 못갈 일은 없다.

사하라 맴버 나침반님은 자전거끌고 융프라우도 갔다 오셨는데 뭘. 해발 3000m 가 넘는 융프라우 말이다.
내가 지옥을 경험하면서 넘었던 하코네나 키이 반도도 기껏해야 900m 정도밖에 안 된다.

힘들어서 포기할 수는 있지만 힘들어서 못 가는 여행은 없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걸 너무 우습게 보면 안된다.
중요한 건 가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인 듯. 가고 싶은 사람은 주위 반응에 너무 신경쓰지 말길.


그러나저러나 역시 이런 해안도로는 힘들긴 하다.
사실 리아스식이라고 부를 정도까진 아니라 엄청난 난코스는 아닌데도
떨어진 체력과 더불어 구식 도로의 단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라
저전거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땀 쫌 깨나 흘려야 하는 곳이다.

여름엔 고생 좀 하겠지만, 마음 느긋하게 먹고 느린 걸음걸이처럼 한 발짝씩 페달 밟는 느낌으로 올라가면
어쨌든 끌고 올라가는 것보다는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언덕 정상즈음에 잘 치장된 펜션이 꽤 많다.
비수기라곤 하지만 젊은 연인들이 간간히 차 타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펜션 측에서 만든 것 같은데, 도로 맞은편 절벽과 맞닿은 곳에 그네랑 정자 같은 것도 만들어 놓은 덕에
땀 좀 식히면서 꽃 사진도 찍고 놀아본다.


몇 개의 자비심없는 업다운을 넘나들고 나니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아마 저 곳이 영덕 해맞이공원이겠지.
그 이름답게 저곳에서 해맞이를 보면 참 멋질 것 같은데, 대낮에 도착해서 하룻밤 지셀 수는 없으니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도로에 사마귀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거 피해가는것도 고역이다.
얘네들이 뭘 잘못 먹었나, 전부 도로에 떡하니 나와서 움직일 생각도 별로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
연가시한데 조종당하고 있는 녀석인가 싶기도 한데, 물도 없는 도로 한복판에 나와있는건 그래도 의아하다.


영덕은 먹을것으로도,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한 곳이 많아서
조그마한 마을이라도 있다싶으면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민박과 횟집이 줄줄 늘어서 있는데
나같은 홀로 라이더한테는 크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오후 2시가 될때까지 몇 번의 횟집에 들어가 봤는데, 혼자서 먹을 메뉴가 없단다.
회는 최소 2~3인분이고, 매운탕도 회를 시켜야 나오는 거라서.

해산물로 유명한 곳이라 횟집 말고는 음식점이 별로 없다는게 더 서글프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석면 플레이트 지붕과, 사람이 살지 않는것이 확실한 폐가의 모습이 꼭 내 심정이다.
하다못해 음식점 옆 구멍가게에 들어갔는데도 술안주와 술밖에 팔질 않아서
냉장고에 든 아이스크림이나 한개 사들고 허기를 채워야 했으니.

어제 저녁 7시에 컵라면 먹은 이후로 오후 2시까지 먹은 건 아이스크림 한개.


해맞이공원도 당연히 언덕 위에 있어서 올라가는건 좀 귀찮았다.
하지만 여기서 큰 착각을 하고 말았는데
그냥 해안도로만 스윽 달리면 그 옆에 있는게 해맞이공원인줄 알았지.

내려오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그 도로에서 좀 더 산쪽으로 올라가면 바람개비공원이라든가 볼거리가 더 많았다고 한다.
신나게 바람을 타고 내려오고 나서야 그 표지판을 봤으니,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뭐, 영덕은 내 서식지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니니 언제 가더라도 갈 기회는 더 있겠지라고 자조하는 수 밖에.


지금쯤이면 바다보단 산 쪽이 장관이겠지.
본격적인 가을을 맞아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산으로 산으로 몰려든다고 하더라.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면, 앞으로는 어딜 가든 비수기만 골라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끔 성수기 관광지와 맞닥뜨릴 때가 있었는데, 컬쳐 쇼크에 가까운 인파에 정신이 혼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시에서 일상 생활을 보내다가 간다면 그리 문제될 것 아니지만,
하루 많아봐야 열댓 명 정도의 사람과 얼굴 스치며 지나가는 여행 중에
갑자기 수만 명의 인파에 휩쓸리면 가끔 스스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새끼고양이가 이런 느낌일까 생각하기도 한다.


해맞이공원은 홀로 고독을 즐길만큼 한가하진 않았다.
주차장은 널널하지만 그래도 여남은 명 정도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으니. 더불어 간이 매점도.
주위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으니 이 공원은 언덕 위쪽부터 아래로 나 있는 산책로가 즐길거리인 듯.

일조량의 차이 때문일까, '영덕해맞'과 '이공원'의 빈부격차가 안타깝다.


자전거로 힘겹게 언덕 올라온 터라 농담으로라도 자전거 세워놓고 혼자 산책로로 내려가고싶진 않다.
그냥 바람 쐬고 전망대에 올라가보고 사진이나 찍고 갈 생각.
이 때 조금만 주위를 둘러봤다면 이 바다 반대편에 다른 여러가지 시설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배가 빈 만큼 머릿속에도 든게 없었다는게 적당한 표현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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