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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0  그린 존 (Green Zone, 2010) 2


본 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2004) 와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 2007) 의 감독으로 유명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최신작이라 그의 숨막히는 영상미와 편집능력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세인 '이라크전 영화는 망한다'라는 공식을 그대로 답습해서 흥행면에서는 쪽박찬 작품.
원작이 '에메랄드 도시에서의 제국 생활: 이라크 그린 존의 내막'(Imperial Life in the Emerald City: Inside Iraq’s Green Zone)
이라는 논픽션 베스트셀러인 터라, 이만큼 박진감을 가진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평가받을 가치는 충분하지만
역시 영화시장에서 이라크전이라는 소재는 너무 빨리 식상해진 느낌이 든다.
애초에 뭐라고 비틀만한 건덕지가 없을 만큼 뻔하디 뻔한 이익관계에 물든 추악한 학살 전쟁이었으니까.

그린그래스 감독의 진정한 개성은 사실 액션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의 전매특허나 마찬가지인 과격한 핸드핼드 촬영기법은 사실 액션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극의 사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린그래스 감독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 2002)가
처절할 정도로 현실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911 테러 당시의 현상을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한 플라이트 93(United 93, 2006)을 제작하는 등
이 감독은 원래 사회 고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1973년, 모든 시위가 원척적으로 불법화된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평화시위에
공수부대가 무차별 발포함으로써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피의 일요일.
평범한 청년을 폭탄테러범이라는 누명으로 치장하며 모든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으며
단 한명의 공수부대원도 처벌받지 않고, 지휘관은 영국 여왕에게 명예 훈장까지 받았던 이 사건은

어째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과 너무나도 판박이라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되풀이되는 이 잔혹한 역사의 굴레란 참 무정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건이기도 한데
그 사건을 영화화하는데 이 그린그래스 감독의 역량은 정말 최적화 되어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본 시리즈로 인해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의 떠오르는 능력자라고 평가받기도 하는 감독이지만
플라이트 93 이후 4년만에 이 '그린 존'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왔다고 본다.
반대로, 본 시리즈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거의 어필하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도 쉽게 가능하다.

이라크전이라는 특성상 대규모의 부대와 부대가 맞부딪치는 장면은 아예 없고
그나마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긴박한 추격적인 영화 최후반부에 화려하게 펼쳐지고
그 장면은 과연 겉만 번지르르한 감독이 아니라고 항변하는듯 본 시리즈에 버금가는 명품 추격씬이라 하기에 무리가 없다.
단지 이곳에서의 맷 데이먼은 제이슨 본이 아닌 평범한 미군이기 때문에, 초인적인 원맨쇼는 보여주지 않지만.

작품 외적으로는 이제껏 그린그래스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갈 만큼 흡잡을 장면이 별로 없다.
액션씬이 극단적으로 축소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카메라워킹엔 힘이 넘치고
작중 내내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감을 놓치 않아서 관객들은 화면을 따라가는데 즐겁게 에너지를 소비한다.
배우들은 욕심 부리지 않고 정해진 만큼의 역할을 완수하고 있어서 작품은 전체적으로 무리한 구석 없이 안정된 느낌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최대 약점은 이 감독이 너무 우직하다는데 있었다.

이 작품의 제목인 '그린 존'은 전후 미국 임시사령부가 들어선 바그다드궁 주변을 지칭하는 이름인데
마실 물 한잔이 없어서 총을 든 미군들 앞으로 몰려드는 이라크 시민들의 모습과
와인을 마시며 야외 수영장에서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미군 관계자들의 모습 두 장면만 대비해 봐도
더 이상 2시간의 상영시간이 필요없을 정도로 할 말은 다 한거나 마찬가지다.

작품의 내용은 WMD(Weapons of Mass Destruction) 수색작업에 의문을 품은 한 미국 준위가 진실을 파헤친다는게 전부인데
이 부분이 작품을 너무 유치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사실 전쟁 전부터 이라크에 WMD가 실존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기는 했나?
IQ 가 2메가바이트 정도 되는 무뇌충 정도라면 몰라도
적어도 '이라크와 미국의 안정을 위해' 몸도 아끼지 않고 작전에 몰두하는 이 작품의 주인공 밀러 준위정도 되는 사람이
정말로 철썩같이 WMD를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이라서 웃음까지 나온다.
차라리 밀러 준위의 진실을 캐려는 집착에 '자신은 빠지겠다'고 팀을 나누는 부하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의 머리 굴리는 능력이란 기껏해야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의 바보' 밀러 준위는 사실 감독이 추구하는 리얼한 고증과 가장 동떨어진 캐릭터였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만난 후세인의 오른팔 알 라위 장군이 내뱉은 냉소에 가득한 대사  '너네 정부가 원했던 시나리오일세'
그 대사 하나 유추해내는데 그렇게 머리를 싸매야 했던 밀러 준위의 IQ 는 도대체 몇인가?
정말로 단지 국방성의 인사 한명이 WMD 정보를 조작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는 순진무구한 생각을 했었단 말인가?
어쩌면 알 라위의 대사는 정공법으로 표현하기에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얄팍한 눈속임이었던 이라크전의 진실을
찍는 자신도 민망해하는 감독에게 스스로 던지는 의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너무나 어설퍼서 과연 이런 말도 안되는 증거가지고 전쟁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이 가능한 것인가 싶었지만
과연 세계 최고 멍청이가 수장을 맡은 미국이란 괴물은 어이없는 이유를 앞세워 한 나라를 멸망시켜버렸다.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최대한 사실적으로 촬영한 영화마저도 어색함이 느껴지는 이 어색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동양의 어느 지역에서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도 감지하지 못하는 외계인의 특수기술을 이용해서
1200톤급 초계함을 두동강 내버리는 세계 최빈국급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이것도 나중에 영화로 만들면 그린존 만큼이나 어색한 작품이 탄생할 듯 하다. 장르를 SF로 하면 좀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