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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2  오사카 여행기 5편 - 라멘과 전망대 18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로 향하는 내내 일행은 '여기가 아닌거 아녀?'라고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주유패스 무료쿠폰에도 등록될 만큼 관광지로서는 알려진 곳임에도
정말 사람 흔적이라고는 풀떼기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산했거든요.

마치 3년전 도쿄 오다이바의 황량한 벌판을 세명이서 걸어다닐 때의 기분을 맛보는 듯 했습니다.
뭔가 잘못 찾아온것 같은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일단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행히도 제대로 찾아오긴 했네요. 티켓을 끊고 승강기를 타고 쑤욱 전망대까지 올라갑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계속 긴장긴장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사람 모습이 좀 보여서 안도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바깥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덜덜 떨고있는 고소공포증 친구를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갑자기 어깨를 잡아밀어주니 고양이처럼 튀어오르더군요)

이곳 에스컬레이터도 경사가 꽤 심하고 아주 길게 늘어져 있어 친구는 결코 붙잡은 손을 놓지 않더군요.
원래 전망대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친구가 이렇게 즐거워해주니 찾아가는 보람이 생기네요.


전망대 내부는 아주 어둡습니다. 조용하고 어슴푸레한 조명 덕분에 야경을 감상하기엔 좋은 환경이네요.
연인들을 위한 칸막이 의자도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어서 커플끼리 실컷 염장질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오사카시의 모습은 정말 거대했는데,
이게 대구시 면적의 1/4밖에 되지 않는다는게 뭔가 어색하군요.

ISO400짜리 필름을 장전한 카메라로 삼각대없이 야경을 찍으려고 하니
평평한 장소 잘 물색한 후 지갑 등을 렌즈 앞쪽에 고아넣어 높이를 맞추고
M 모드로 적절한 노출값과 셔터스피드를 준비한 후 5초 타이머 촬영으로 셔터 눌러놓고
약 20초간 필름에 기록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게 됩니다.

귀차니즘때문에 삼각대는 여행에 가져가지 않는 편이라 (고릴라포드는 나중에 하나 사볼까 생각중)
가끔 난감하긴 한데 역시 전망대에는 수평 잡아줄 공간이 있는 편이라 이런 사진도 그나마 건질 수 있네요.


필름카메라는 현상 때까지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보험용으로 DSLR도 같은 방법을 이용해 찍었습니다.

오사카의 명물인 2개의 달을 잘 담아냈군요. (믿습니까?)

오른쪽에 일행이 하루종일 쏘다녔던 베이에이리어 텐포잔이 보입니다. 관람차도 녹색으로 빛을 발하네요.
로또 당첨되었다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한 번 가봤겠지만...


내려갈 때도 결코 손을 떼지 않는 착실한 친구.
여기서 밀어버리는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그냥 놔뒀습니다.


전 랜드마크 빌딩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별 감흥이 없어서
그냥 야경사진 몇 장 건진것에 위안을 삼고 빌딩을 빠져나왔습니다.

이곳 코스모타워엔 예식장도 있어서 자금 넉넉하게 가진 사람들은 아찔한 높이에서 화려한 경관을 즐기며
결혼식을 올릴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네요.


베이에이리어를 빠져나온 일행은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도톤보리(道頓堀)로 향합니다.
도톤보리는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라는 사람이 1612년에 만든 물자 수송용 인공 하천이었는데
에도시대 들어 하천의 양쪽 거리가 화류계로 점령되어버린 후 그때부터 쭈~욱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잡아왔습니다.

에도시대땐 상점들의 입구가 강 반대편으로 나 있었고, 건물 뒷쪽이 하천과 바로 맞닿아 있어서
창문을 열면 바로 펼쳐지는 하천의 모습을 구경하거나, 하천에 배를 띄우고 술과 벚꽃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죠.
지금은 타유우(太夫 - 최고급 매춘부)들이 있던 곳에 수많은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하게 늘어섰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의 열기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톤보리는 옛 정취와 소란스러움이 공존하는 서민적인 느낌의 거리입니다.
킨류(金龍) 라멘이나 움직이는 게 간판으로 유명한 카니도라쿠(かに道楽)등등 몇몇 거대 체인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좁은 골목 여기저기에 작게 펼쳐진 숨겨진 맛집들이 포진해있는 느낌이죠.
퇴근길에 가볍게 한 잔 마시는 조그만 선술집 등이 도톤보리의 분위기를 설명해 줍니다.

이와는 반대로 도톤보리하천 북쪽에 위치한 거리 신사이바시(心齋橋)는
도쿄의 긴자(銀座) 명품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최신 아케이드의 집합소입니다.
전 세계 최고급 명품 부티크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최신 패션샵, 악세사리 등으로 가득 차있죠.

조그만 하천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극단적인 모습의 두 거리가 마주보고 있는 느낌은 참 신선합니다
저희 일행은 신사이바시에서 뭔가 살 생각은 없었으니 그냥 도톤보리의 라멘집을 향해 출발.


도톤보리라고 해서 다 옛날 정취만 풍기는 건 아니죠.
이미 일본인들의 생활 깊숙히 파고든 파칭코는 어디든 그 거대함을 자랑합니다.

자전거 여행때도 놀랐지만, 인구 3만도 안될것 같은 조그만 마을에도 거의 백화점급의 파칭코점이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파칭코는 일본인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 했네요.


요런 조그만 골목 깊숙히 정말 제대로 된 맛집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죠.
이번엔 도톤보리에서 맛있다는 라멘집을 미리 알아보고 온 터라 정해진 곳을 찾아 바로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라멘은 킨류 라멘인데요, 대문 앞 장식도 화려하고
이곳 도톤보리에만 4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라멘계의 큰손입니다만 아무래도 현지인들의 평가는 그닥 좋지 않습니다.

어떤 여행지든 마찬가지지만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음식점과,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음식점은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죠.
물론 반드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이 더 맛있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입맛도 지역별로 많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뭔가 단순히 맛있다는 느낌보다는, 현지의 감각을 좀 더 느끼게 해 주는 독특함이 있는 음식점에서 한끼 해보는게
여행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득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면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는 곳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챠슈 라멘으로 이 근방에서 유명한 하나마루켄(花丸軒)입니다.
인기에 비해 정말 좁아서, 바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해도 되겠더군요.

후다닥 자리잡고 앉아서 이곳의 추천 메뉴인 행복가득 라멘(しあわせいっぱいラーメン)과 교자를 시켰습니다.


일단 먼저 나온 교자를 한 장 찍어드리구요.
교사는 아삭아삭하고 따뜻한게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히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맛있는 교자가 어디있냐구요? 카스카베시(春日部市)에는 만두 속부터 피까지 전부 수제로 만드는 조그만 개인 교자집이 있습니다.
그곳의 교자를 한번 먹어보면 분명 '교자에도 레벨이 있구나' 하실겁니다.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행복가득 라멘입니다.
저는 라멘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일본 여행땐 거의 하루중 2,3끼를 라멘으로 때워도 불평이 없는 타입인데
이번엔 친구 일행과 함께 움직이니 저 좋은데로만 먹을거리를 선택할 순 없어서
벼르고 벼른 이번 라멘은 기대가 컸습니다.

이곳 라멘은 진한 돈코츠(돼지뼈) 육수에 쇼유(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까지는 평범한 라멘과 다르지 않지만
사진에 보이는 두 종류의 챠슈(돼지고기를 양념해서 썰어놓은 편육)가 이곳을 유명하게 한 별미중 하나입니다.
왼쪽 챠슈는 한국에서도 익히 보는 삼겹살, 오른쪽의 진한 챠슈는 콜라겐이 다량 함유된 등뼈살(とろこつ)입니다.
특제 소스와 함께 압력솥에서 푸욱 쪄낸 더블 챠슈는 굉장히 부드럽고 맛이 진합니다.
챠슈 뿐 아니라 국물도 그야말로 진국이고 라멘 면발도 인스턴트와는 비교불가로, 이름값은 충분히 하는 가게였습니다.

윗쪽의 김에는 랜덤으로 글자가 들어가더군요. 위에 적힌건 '행복기원'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돈코츠 쇼유 라멘은 일본의 라멘 중에서도 맛이 가장 진하고 짠 편이라 여성분들 입맛엔 잘 맞지 않는 경향입니다.
저야 뭐,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지만 동생분 입맛엔 어땠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야밤에 라멘 사진을 보니 당장 삿포로로 날아가서 라멘공화국의 라멘들을 전부 섭렵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군요...


라멘으로 배를 채우고 도톤보리를 주욱 둘러본 다음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았네요.
일행들이 전부 다 쇼핑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저 둘러보며 구경만 할 뿐.


그래도 저기는 한번 들어가보자고 합니다.
만물상 개념인 일본의 유명 체인점 돈키호테입니다.

1980년대 처음 선을 보인 돈키호테는 그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영업 방식으로
최단기간에 최고의 급성장을 보인 업체로 손꼽힙니다.

일본 거의 대부분 지역에 점포가 있으며, 대부분 24시간 영업을 통해 심야 고객을 주로 확보하고
일부러 매장 통로를 좁고 어둡게 만들어 심야 고객들의 '탐험적 쇼핑' 욕구를 잘 파악한 마케팅 방법으로 유명하죠.
식료품, 음식, 잡화, 게임, 전자, 화장품, 스포츠 등등 없는것이 없다는게 최대의 특징입니다.
성인용품은 물론이고 코스프레 의상까지 있으니 뭐... ㅡㅡ;

이곳 도톤보리의 돈키호테는 사진의 저 관람차가 유명한 포인트였는데 작년부터 영업을 중지한 상태더군요.
실컷 둘러보고 물건은 사지 않고 나왔습니다.


밤의 도톤보리 하천은 매우 조용합니다.
주유 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이곳을 순회하는 도톤보리 리버 크루즈도 있었는데
시간상 여건이 안맞아서 패스하기로... 배는 산타마리아 호를 타봤으니 괜찮아요.


참 특이하게도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스팟이 되어버린 글리코 전광판 앞입니다.
오사카 도톤보리에 들러서 이곳을 찍어오지 않으면 여행 못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ㅡㅡ;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회사인 글리코사가 1935년에 세운 전광판으로, 75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달리고 있죠.
지금와서는 조금 촌스러운 쫄쫄이 육상선수 아저씨의 모습이 오히려 매력이 되어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저 전광판은 글리코 카라멜 선전용이었어요. 글리코 카라멜을 먹으면 힘이 솟아요 라는 느낌으로...

저 곳에서는 저 아저씨를 흉내내서 한쪽 발을 들고 두 손을 치켜든 포즈로 사진을 찍는게 유행입니다.
수줍음 많은 친구 일행은 아무리 협박해도 그 포즈를 취해주지 않네요. ㅡㅡ;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은 여자 꼬시는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이곳 도톤보리는 남부 오사카의 중심지역인 난바(難波)에 속해있는데요.
이 난바라는 단어가 일본어의 헌팅(난파,ナンパ)와 발음이 비슷해서 이곳을 난파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도톤보리를 빠져나오며 보였던 한 공연장에서 카나데혼 츄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예전 일본어과 4학년 마지막 수업때 발표한 것이 이 충신장 이야기라서 감회가 새롭더군요.
겐로쿠 15년(1702년)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각색해서 카부키극화한 작품인데,

'아무리 관객이 없어도 츄신구라만 공연하면 관객이 꽉 찬다'는 공연업계의 속담이 있을 정도로
1748년 초연 이래 꾸준히 일본인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아온, 카부키의 원조이자 대표격 작품입니다.

그리고 1748년 그 운명의 초연이 바로 이곳 오사카에서 시작되었죠. ^^

여담으로 일본 내에서야 셀 수도 없이 영화, 드라마, 소설 등으로 각색된 작품이지만
현재 헐리우드에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47 로닌'(The 47 Ronin)으로 영화화되고 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해서 얼른 씻고 잠을 청합니다.
욕탕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고 TV 보면서 느긋하게 목욕하다 보니
세 사람 한 바퀴 도는데 거의 1시간 30분이나 걸리더군요.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 과연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 걱정하며 일단 눈을 감고 누워봅니다.
내일은 주유패스로 입장할 수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와 오사카성, 그리고 우메다 스카이빌딩(梅田スカイビル)을 둘러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