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가 속빈 강정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더라.
덕분에 이런 영화가 '이건 SF의 탈을 쓴 풍자영화다'라는 표현까지 얻어먹고 있다.
SF영화의 특성상 시청각적 자극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고, 그 부작용으로 어중이떠중이 영화나 철저한 상업용 블록버스터 영화가 워낙 많이 나와서
그 반동으로 이걸 SF라고 부르기 아쉬워하는 사람이 생기는가 보다.
SF영화를 무시하지 말라.
SF영화가 겉멋만 든 저급 영화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순간 당신의 영화에 대한 무지함을 자뻑하는 결과가 된다.
영화 역사상 SF라는 장르는 수많은 B급 혹은 말초신경 자극적 작품의 홍수 속에서도
어떤 장르보다 지독하게 현실을 파고드는 특징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어져 왔다.
뭔 말이다냐 싶으면 두말하지 말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를 감상하시길.
동 감독의 짧은 독립영화 'Alive in Joberg'를 장편용으로 다시 제작한 이 작품은
나의 우상 피터 잭슨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전폭적으로 지지해 줄 만큼 그와 나의 취향에 딱 맞다.
구역질과 혐오에서 웃음을 찾으면서도 순수한 아름다움의 추구에 대한 열정이 공존하는 기괴한 피터 잭슨의 영화관에 비추어 보면
닐 블롬캠프의 6분 남짓한 단편영화는 잭슨의 욕망을 순식간에 충족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잭슨 감독이 적극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던 거대한 담론에 대해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탓에
최고의 풍미와 함께 눈까지 즐겁게 만드는 일품 요리와 같은 두 가지 성과를 잡아냈다고 평가하고 싶다.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묘사가 한두 가지가 아닌 탓에 기분이 조금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외계인의 태아를 즐겁게 태워죽이는 모습, 예전 잭슨 감독의 작품이라면 크게 웃으며 즐길수 있겠지만 여기선 그러지 못한다)
한없이 진지해지기만 해서는 잭슨의 후계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을 터.
모든 현실적, 정치적 감정을 배제하고도 후반부의 액션씬은 원초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에서 토악질을 느껴야 할 장면은 인간의 몸이 풍선처럼 빵빵 터지는 곳이 아니라
사위를 산 체로 해부하는데 무덤덤하게 동의하며 딸에게 태연히 거짓말 하는 장인의 얼굴이다.
메뚜기와 바퀴벌레를 닮은 추악하고 멍청한 외계인의 모습.
강제 퇴거를 위해 살인 말고는 무엇이든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인간의 모습.
이건 감독의 창작물이 아니라 1970년대의 남아공 District 를 그대로 가져온 다큐멘터리나 마찬가지.
그리고 그런 일은 지금도 세계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어떤 나라에서는 퇴거하지 않는다고 정말로 불에 태워 죽이기도 하더라.
이렇게 영화 속에서 노골적으로 까발려주는 비참한 현실에 몸부림치다가도 감독은 우리에게 따스한 손길을 잊지 않는다.
나의 열받은 머리속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후반부의 신나는 학살 씬에서 나는 감독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껏 열받은 거 신나게 뒤풀이나 해보자는 느낌의 후반 전투 장면은 2천만불의 저예산 영화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박력 만점이다.
올해 나의 불쾌지수를 하염없이 올려주었던 MCG의 로봇 뿅뿅물이 이거 10분의 1만 따라갔어도 내 수명이 그렇게 줄어들진 않았을 거다.
특히 주인공 비커스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성격이 큰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감정의 이동도 무난하게 소화해 낸 덕에
그의 절규와 그의 배신과 그의 마지막 대사가 이 작품을 단순한 쾌감충족식 SF 액션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함정에서 구해낸다.
조금 진부하지만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어색함이 없는 잔잔한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비로소 웃으며 일어날 수 있다.
로드 오브 워(Lord Of War, 2005)의 결말이 행복하다면 되려 허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런 희망적인 결말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관용이 스며있다.
이것이 SF라는 장르가 가지는 최고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SF는 미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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