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일본에 있어서 못 갔던 청도 매실밭에 전지하러 갔습니다.
날씨가 쨍쩅하지 않아서 사진은 조금 아쉬웠지만, 일할때는 흐린날이 좋죠.
아직 봄느낌은 풍기지 않는 매실밭입니다.

일년에 한두번 와서 그냥 전지 좀 해주고 매실이나 따고 하는... 거의 버려진 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는 녀석은 전지가위로, 굵은 가지는 톱으로 썰어냅니다.
일하는 사진은 전부 엄니밖에 없지만 당연히 저도 일했습니다.
엄니께서 카메라를 만질줄 모르시기 때문에 제 사진이 없는 것일 뿐.


매실나무란게 약하다고 하면 약하지만
새순 돋아나는 속도는 무시무시해서 나무가 뭔 호러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삐쭉삐쭉하더군요.


새순이 너무 많으면 매실이 크게 맺히지 않기 때문에
녹색이 보이는 작은 새순들이나 그냥 삐쭉삐쭉 솟기만 한 녀석들은 전부 쳐줍니다.
좀 많이 친거 아닐까 걱정해도, 막상 매실이 열릴때면 지금 이 사진들이 놀라울 정도로 확 바뀐다고 하네요.
전 맨날 전지만 하고 실제 따러가질 못해서... 이번엔 5월 20일쯤 매실 따러 가볼까 싶군요. 물론 그떄 한국에 있다면...


엄니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담으려다 보니 사진이 많아진거지
농땡이치면서 놀지는 않았습니다. 넵.


가끔 엄니께서 그만찍고 일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긴 하셨지만...
사실 카메라 놓으면 제가 톱하고 전지들고 거의 다 자르고 엄니는 그냥 손가락으로 자를 새순을 톡톡 치기만 하셨죠.
나무를 자세히 보시면 어마어마한 새순들이 보이실겁니다.
저게 몇년째 잘라대다보니 줄기가 거의 가시나무처럼 뾰족해져서 많이 찔리는군요.


전체적으로 흐린 날이었는데, 가끔 햇살이 비칠 때면 하늘을 찍는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배경지로 깔면 대부분 보기좋은 사진이 나오죠. 찍사의 성능을 커버해주는 배경지입니다.


매실나무가 전지를 하고 하고 또 해도 계속 저렇게 새순을 돋아내기 때문에
나중에 어떻게 될까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저희 매실밭 건너편엔 정자를 새로 지어놨더군요.
봄이 되서 저 나무에 잎사귀가 가득해지면 멋진 풍경이 연출될 것 같습니다.
매번 이렇게 앙상한 모습만 담고 있으니 조금 아쉽지만 올해는 과연?


슬슬 점심시간이 되어서 밥 먹으려고 하니
엄니께서 돗자리를 안가져왔다고... 밑에 슈퍼 내려가서 하나 사오라고 하길래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슈퍼가 없더군요. ㅡㅡ;

슈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내려가라고 하셔서 땀뻘뻘 흘리며 왕복운동이나 하고 왔습니다.


돗자리 없다고 밥 못먹는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대충 바람막이 만들어서 물 끓이고, 가져온 키친타올을 넓게넓게 펴서 간이 돗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톱이야 아무데나 던져놔도 찾을 수 있지만 전지가위는 땅바닥에선 거의 못찾습니다.
그래서 나무에 잘 걸어놔야 하죠. 우연찮게도 땅바박에서는 위장색에 가까운 녀석이라...


라면에 밥에 과일까지 가져와서 이걸 다 먹을 수 있나 싶습니다.
밖에서 먹는 밥이 맛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너무 많은것 같은데...


예상대로 양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버릴수는 없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다 먹었지만, 저나 엄니나 속이 거의 한계에 다다라서
대구로 돌아올 때까지 아주 고생이었죠. 저녁엔 폭풍배출을 3연속으로 해버릴 정도로...


그 와중에도 하늘이 맑아지면 카메라를 들어올립니다.
쉬고 있을때 바라보는 하늘은 좋군요. 일할때 이러면 좀 서글프지만 말입니다.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일단 좀 쉽니다.
엄니는 훗날 토할뻔 했다고 하시네요.
야외나갈때 기분좋게 먹을거 싸는건 좋지만 역시 정도를 지켜야 행복한 식사시간이 되는가 봅니다.


힘든 매실전지의 시간과는 별개로 하늘 모습은 참 좋아요.
5월쯤 되면 저 앙상한 가지들이 푹신푹신하게 변해있을테니, 그걸 카메라에 담는 순간이 기대됩니다.


중간에 벌집으로 보이는 녀석이 있어서 약간 당황했지만 속이 텅 빈 녀석이라서 부숴버렸습니다.
사실 길 건너편에 양봉장이 있어서 밥 먹을때 벌들이 라면맛 보러 오더군요.
꿀벌이라 그냥 가만 있으면 별 문제 없는데, 엄니께서 자꾸 웅웅거리는 소리때문에 몸을 흔드셔서 말리느라 염통이 쫄깃해지기도 했습니다.


매실 따먹을게 아니라면 이런 생명력을 보여주는 나무들을 따스하게 바라만 봐도 되겠지만
이러면 매실이 제대로 맺히지 않아서 불쌍해 보여도 전부 잘라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나무를 위해서도 이런 건 별로 좋지 않다고 하네요.


앙상한 나무도 하늘과 함께 담아주니 나름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
이 장소를 기억할 수 있다면 5월말에 똑같은 구도로 담아낼 수 있겠는데... 과연 기억이 날런지.


그래도 역시 봄이 가까이 왔군요.
5시간정도 작업한 후 피곤한 몸을 이끌로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전 시내 볼일이 있어서 좀 더 돌아다니다 왔는데,
다리와 팔 여기저기는 가시에 찔려서 빨간 점들이 소복하고 머리도 좀 찍혀서 피 좀 봤습니다.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었지, 시내를 피투성이로 배회하는 모습이었다면 뉴스에 나왔을지도...

그러고보니 대구 블로거분들한테 매실원액 좀 나눠드린다는게 벌써 몇년째인지...
이번에 매실 따면 좀 돌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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