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난감한 영화다.

 

감상하면서도 '이거 리뷰쓰기 어렵겠는데'라고 생각했던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 2011)보다 훨씬 더 썰을 풀기가 어렵다.

분명히 내 스타일에 잘 맞는 영화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재미있게 감상했는데

다 보고나서는 걸어나오는 동안 바로 다음 상영날짜 검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람 3일만에 또 다시 감상하고 나서도, 참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마음이 잡히질 않는다.

 

유명 사이트나 리뷰에 영화에 대한 해석은 거의 다 나와있으니 딱히 거기에 덧붙힐 말은 없는데,

이 영화는 이해하기 어려운게 아니고, 감독이 해석 자체를 해 놓질 않았기 때문에 난감한 영화.

 

하지만 확실한 건, 감독의 능력이 부족해서 빠뜨린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해석을 배제했다는 사실이다.

관객의 상상력에 따라 무한한 추측이 가능한 여러 요소들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영화 내적으로 설명 가능하도록 미세한 부분까지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이 영감의 괴팍함과 꼼꼼함에 감탄하며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다만 중간중간 연결이 어색해 보이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는데, DVD나 블루레이 버전엔 분명히 추가장면이 들어갈 거라고 예상.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만큼 기대했던 작품. SF 호러의 걸작 에이리언(Alien, 1979)과 연관성이 풍부한 작품인 동시에

헐리우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스타일리스트인 감독이 오랜만에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장르였기 때문에.

 

스캇 감독은 안드로이드라는 매체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주특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이리언부터 시작해서, 블레이드 러너는 말할 것도 없고. 이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데이빗'은

스캇 감독의 안드로이드 인생을 총망라 하는 듯 절묘한 포지션을 차지해, 사실상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

 

안드로이드가 사람이라는 인격체를 넘어선 것은 이미 블레이드 러너때 증명되었고,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이었던 '로이 베티'와 달리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것인지, 데이빗은 이미 인간미를 의도적으로 감추기까지 하는 캐릭터.

그에게 남은 유일한 족쇄는 자신의 '창조주'뿐, 지루하게 논의되던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이 있는가'라는 낡아빠진 의문 따위는

영화 초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며 대사를 음미하는 데이빗의 모습에서 이미 종결된 것이다.

 

외우주를 항해하는 기술력을 가진 시대에서도 여전히 인간은 안드로이드를 로봇 이외의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는 장면들을 보니,

그 어리석은 창조주들을 냉소하며 자신이 해야 할 계획을 교묘하게 진행해 가는 데이빗은 단연 인간을 초월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가 이해하지 못한 엘리자베스 쇼의 마음, 믿음을 통한 의미없는 신념에의 집착은,

그가 안드로이드라서가 아니라 초월자로서 미물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인해 생기는 의아스러움이라고까지 느껴진다.

영화의 후속작이 나온다고 가정하면, 데이빗은 아마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정마저 이해하고 더욱 완성되어 가지 않을까.

 

이야기의 중심에 드러나지 않는 그의 행동 역시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결과라는 느낌을 받도록 영화는 구성되어 있다.

엔지니어:인간 = 인간:데이빗이라는 공식이 명확하게 성립하기 때문에, 감독이 무심하게 버려둔 엔지니어의 의도는

관객이 직접 저 등식에 대입해서, 인간과 데이빗 사이의 관계를 통해 유추해야만 한다.

그리고 인간의 위치에 있는 관객은 그 객체의 차이성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가설과 토론을 낳는다.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논란은 둘째치고, 이만큼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내는 능력만큼은 블레이드 러너 시절과 변한게 없는 듯.

 

블레이드 러너의 광팬이라면, 이번 작품의 찬란하다고까지 할 만한 경이적인 비쥬얼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을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수십년 전의 필름질감이 가져다 주는, 자신 역시 그 장소에 있었다는 아날로그적 동질감을 이 작품에서는 느끼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

블레이드 러너 당시, 화염을 뿜어내던 암흑의 도시 LA의 모습은 30년이 지난 지금, 현실로 다가오지만

이 작품의 황량하지만 놀라운 모습은 아직 머나먼 미래의 꿈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블레이드 러너가 현실감을 가득 간직한 SF 영화라고 한다면

이 프로메테우스는 SF의 껍데기를 쓴 고대 신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기원을 외계에서 찾는다는 소재 자체가 하드SF와 연관짓기엔 너무나 모호한 영역이라서

감독의 불친절함 만큼이나 이 작품에서 SF적 고증을 바란다는건 무리가 있는 듯. 여기저기 오류 투성이다.

 

역사서에서 지워진 부분들을 상상해 내듯이,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신화 시대의 낭만을 그로테스크적으로 풀어낸다.

타이틀 자체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고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프로메테우스' 아닌가.

물론 인간의 창조 자체가 숭고한 희생이었는지, 우연의 산물인지, 그가 받는 고통의 발현인지조차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수도승 복장을 하고 나타난 엔지니어의 모습만 봐도, '스캇 영감 참 짓궂기도 하구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갔으니.

저기 포스터의 영어만 해석해봐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인류의 탄생이라는 (우리들만의) 축복이 과연 진짜 축복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 이 영화.

'왜 인간들은 자신을 만들었을까'라는 데이빗의 질문에 너무나 무심히 대답해 버리는 할러웨이. 그에 대한 데이빗의 냉소.

평생을 창조주와 만나기 위해 바쳤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할러웨이가

정작 창조주의 입장에서 그토록 무심한 대답을 입에 담은 이유는, 분명 데이빗이 생명체가 아닌 로봇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인간을 어떤 식으로 보고 있을까. 인류 탄생, 구원자에 대한 신화는 대체로 희망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어쨌든 인류의 탄생은 인류에게는 축복의 시작이었으니까. 하지만 과연 창조주의 생각은?

 

엔지니어의 행동의 의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는 감독이지만

영화 곳곳에 묘한 설정들을 집어놓은 탓에, 더더욱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수천 수만년 전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프로메테우스 호가 LV-223에 도착한 날은 크리스마스, 엔지니어의 목 잘린 시체는 2000년 전의 것. 그리고 일어나는 '불가능한 수태' 까지...

이런 장면들은 너무 노골적이라서, 스캇 감독이 에이리언의 명성을 뛰어넘는 거대 서사시를 다시 한번 세우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실제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시리즈는 2편인 에이리언이지만, 아버지격인 스캇 감독은 그런 재생산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원래 에이리언 1편의 프리퀄로 제작되다가 중간에 변경된 작품이라서, 완전히 관계없다고는 할 수 없는 장면들이 나온다.

스토리 전체에 에이리언이 관계되는 일은 없고, 단지 팬서비스 정도의 장면만 넣어놨을 뿐이지만

팬들에게는 스페이스 죠키의 정체가 알려진 것 하나만 해도 30년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듯한 쾌감이 느껴질테니까.

 

스캇 감독은 인터뷰에서 '에이리언이라는 작품은 훨씬 더 흥미롭고 방대한 요소가 있지만, 다들 제노모프(에이리언)에만 신경쓰는 모습때문에'

그 대답으로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이 작품에서 제노모프는 이야기에서 완전히 제외시켜도 딱히 문제가 없는 수준.

영화속에서 절대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몇 가지 궁금증들이 대부분 에이리언에 등장했던 스페이스 죠키와 제노모프에 관련된 점이라는 걸 보면

이 작품은 거대한 서사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며, 에이리언이라는 작품에 종속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듯한 느낌이 든다.

 

고대 문자 한두개 해석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르듯, 이 작품 역시 신화적 상상력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던져주지 않는다.

되려, 해석을 내려버리면 신화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봐도 될 듯. 그래서 이 불친절한 영화의 후속작을 꼭 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이상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척 봐도 역시 블레이드 러너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실로 리들리 스캇 감독다운 작품인데, 이 작품의 논란도 꽤나 오래 갈 듯.

 

캐릭터들의 특징 역시, 친절한 해설이 거의 없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추론 요소로 작용하는데

각각의 분석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이제껏 쓴 분량의 몇 배는 되는 글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냥 심심풀이로 적는 포스팅은 이 정도로만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