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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11  외할아버지 성묘 8

외할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경북 군위에 위치한 공원묘지에 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가 있는 곳이라 성당 측에서 열심히 무리해서 산 전체를 공원묘지로 만들었죠.
막상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거의 관광지화 되어서, 예전의 그 흙집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듯이 보이네요.

저하고는 몇가지 안 맞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6월 민주항쟁 당시 살인마 전두환의 총칼 앞에서
'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당신들은 나를 짓밟고, 신부들, 수녀들을 모두 짓밟고 난 뒤에야 학생들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오.'
라고 외치던 그 모습만큼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전통 풍습상 언제나 묘자리가 부족한 한국인데다가 공동묘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비록 종교단체의 주관이긴 해도 이런 공원묘지가 아름다운 산자락에 위치한 것은 참 좋습니다.
요즘 돈독이 한창 오른 종교단체들이 납골당 등으로 짭짤하게 장사 잘 하고 있지만
이 공원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거의 무보수에 가까운 관리비를 받으며 힘없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일년에 몇만원 하는 관리비조차 내지 못해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참 안타깝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뭐, 저희 엄니를 내팽개치다시피 하면서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정정하게 잘 살다 가셔서
매년 이렇게 자식들 절도 받고 편안하게 누워계시니 안타깝고 뭐고도 없습니다만.

이 곳에 오면 항상 '희망원 재소자'라는 설명밖에 적혀있지 않은 묘와 '관리비 미납'이라는 꼬리표를 단 묘가 절 쓸쓸하게 만드는군요.
세계가 놀라는 경제 성장의 뒷면에서 소외당한 이들은 이곳에서만큼은 편안하게 쉬고 있길 바랍니다.


외가쪽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이렇게 여기 모이려면 꽤나 바빴을 듯.
서울에 있는 형님부부는 올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형수님 몸을 생각해서.
오늘 햇볕은 쨍쨍한데 바람이 환장하게 불어서 오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은 드네요.


외할아버지 기일이 음력 2월이라서 이곳을 항상 이렇게 봄이 막 기지개를 펴려고 하는 순간에 찾게 되는군요.
4~5월에 오면 공원묘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참으로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이 들 텐데...
아주 외진 산골짜기라서 공기도 좋고 물도 맑고, 공동묘지라는 선입견을 깨는데 매우 좋은 견본이 되는 곳입니다.
오늘은 30명쯤 되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기도 했네요.


바람이 너무 무서워서 지난번처럼 밖에서 자리펴고 밥 먹기는 불가능합니다.
일행들이 사무실로 찾아가는 동안 저는 천천히 내려오면서 오랜만의 푸른 하늘을 카메라에 맘껏 적셔보며 놉니다.
이게 마지막 꽃샘추위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 바람도 그렇게 거북하지만은 않더군요.


하늘과 바람과 나무를 벗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그릇은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을텐데
매연냄새와 아스팔트의 끈끈한 열기에 둘러쌓인 도시에 들어가면 그것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게 되네요.
질식하지 않으려면 역시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겠죠.


세계 최악의 아파트 미관과 함께, 요즘 유행하는 미려한 디자인의 빌딩들도
이 녹색의 생명력이 뿜어내는 향기에 비할 수 있을까요.
엄니께서 그렇게도 흙집을 좋아하시는 이유도 거기 있겠죠.
죽은 것으로 만든 집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든 집의 차이죠.

막상 살아있는 사람들은 온갖 죽은 것들에 포위되어 살고
죽은 사람들은 온갖 생명이 축복하는 깨끗한 산 위에 누워 있으니
이게 과연 사람들이 바라던 세상인지 의아한 기분입니다.


이곳에 올때마다 난감한 생각이 들게 하는 조화 무인 판매대가 올해도 모습을 드러내는군요.
쓰레기 문제로 조화는 반드시 갖고 가서 버립시다 라고 적혀있는 듯 한데
관리인원이 적으니 생화를 놔둬봤자 소용이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묘지에 조화라는 것 만큼 언밸런스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현재 관리인이 우연찮게도 예전 같은 아파트에 살던 교인이라서
흔쾌히 잠겨있던 식당 문을 열고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관리인 아저씨도 함께 식사를...
인천에서 여기까지 먼 길을 오신 외숙모께서 간장게장을 잔뜩 만들어 오셨습니다.
요리를 잘하셔서 어쩐지 계속 요리담당이 되는 것 같은데... 추어탕과 영양밥까지 준비해 오셔서 많이 힘드셨을 듯.

대게가 동해라면 서해의 대표 게요리는 역시 이 간장게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인당 서너 마리는 돌아갈 수 있을만큼 많이 준비해 오셔서 거침없이 폭풍흡입입니다.
맛과 신신도를 위해 자르지 않고 통째로 가져온 후, 이곳에서 바로 잘라주시는 철저함까지 발휘하시는군요.
더구나 영양밥과 함께 게껍질에 비벼먹을 수 있게 그냥 현미밥도 가져오시는 꼼꼼함까지...


간장게장이라면 환장을 하는 저라서 아주 미친듯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아쉽게도 올해는 윤달이 들어가서 그런지 아직 게가 좀 덜 익었다고(?) 하시는군요.
그래도 이 맛이 어디 가진 않으니 그저 행복할 뿐입니다.


폭풍 흡입후 다시 카메라를 들고 혼자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올해는 제 또래 친척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산책하기 좋군요.
모두들 결혼하고 애 놓고 하느라고 바쁜가?

공원 한쪽에는 카톨릭 신자라면 익숙한 십자가의 길 조각상이 둥글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냥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보시면 단박에 이해 가능합니다.
지금 사순절이라서 간장게장같은 즐거운(?)음식은 조금 삼가해야 하는 시기인데
전 현재 종교와는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실 성당 열심히 다니시는 부모님도 신경 안쓰시더군요.
나름 이런 곳에서는 널널한 점이 카톨릭의 좋은 점이기도 하죠. 신부님들은 아마 좀 서글퍼 하실지도 모르지만.


봄이 되면 아마 성묘 외에도 공원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시는 분들도 많아질 듯.
중간중간 아담한 정자도 만들어 놨기 때문에, 따뜻한 날씨에 저기 앉아있으면 좀 많이 행복할 듯 하네요.
오늘은 바람이 너무 무서워서 들어갈 엄두도 못냈습니다만.


종교 시설물이긴 하지만 과하지 않은 조화로운 분위기라서 정감이 가는 곳입니다.
원래 그렇긴 하지만 쥐박이 이후로 차마 종교라고 부를 수 없는 광신도들이 여기저기 창궐하는 시대라서
자칫하면 도매가로 비난받지 않을까 조금 걱정도 됩니다만,
다행히도 평소 행동의 덕인지 개독과 카톨릭을 구분하시는 분이 꽤 많더군요.


토요일이었으면 내일도 휴일이겠다 좀 더 여유있게 즐길 수 있었을 테지만
수도권 부근에 사는 친척분들은 서둘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점심만 먹고 헤어집니다.
외할머니 산소에도 한번 가봤으면 좋았겠지만 날씨가 너무 매서워서 아무도 말을 안꺼내는군요.
엄니께서도 감기조심해야 할 시기라서...

다들 피곤하신지 부모님께서는 돌아오셔서 바로 침실로 직행입니다.
전 사실 오늘 아침 7시에 잠자리에 들어 10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잠이 많이 부족하지만
오랜만에 산에서 정기를 흡수하고 와서 그런지 딱히 피곤하진 않네요. 틈날때 미리미리 사진이나 정리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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