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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25  산인 여행 - 이즈모 타이샤 10

 

 

일단 본전이 공사중이라 의지가 한풀 꺾인 이즈모타이샤보다는

주변 풍경이나 느긋하게 감상하면서 천천히 산책해 보기로 한다.

입구에서 본전까지는 꽤나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데, 이 정자같은 휴게소는 입구 바로 옆에 위치.

 

휴게소 앞에 묘하게 넓은 공터가 있는데, 주차장은 아니다. 아마도 간단한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 아닐까 싶다.

날씨도 무지 덥고 해서 쉬어가는것도 나쁘진 않은데, 이미 1시간 넘게 기차타고 왔으니 휴식은 충분히 취한 것 같다.

어제 하루종일 머리를 괴롭히던 멀미도 싹 사라져서 기분도 괜찮고.

 

 

 

일본엔 신사가 워낙 많이 세워져 있어서 뭐라 비교하기는 힘든데

이곳 이즈모타이샤는, 이름 알려진 유명 신사 중에서는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닌듯 하다.

 

신사 바깥 상점가 -> 신사 정문 -> 본전 앞까지 완전히 일직선으로 쫘악 이어져 있는 모습은 굉장히 독특한 경우.

규모가 큰 신사는 보통 본전으로 향하는 통로가 나무와 이끼에 둘러쌓여 좀 어둡고 습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여기는 환경이 그런건지 일부러 그렇게 만든건지 길도 넓고 시원시원하다.

 

유명 관광지 치고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데, 9월에 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 곳이 가장 붐비는 시기가 바로 옆 10월이기 때문에.

 

일본의 신토는 어떤 것에든 신이 깃들어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데, 그 수많은 신들을 '八百万'이라 쓰고 야오요로즈(やおよろず)라고 부른다.

실제 신의 숫자가 8백만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냥 무수히 많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에는 매년 10월에 한번씩 일본 전국의 모든 신들이 이곳에 모인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10월을 '신이 없는 달'이라고 하는 '칸나즈키'(神無月)라 하는데

이곳 이즈모 지역만은 10월을 '신이 있는 달'이라는 뜻의 '카미아리즈키'(神在月)라고 부른다.

 

그 신들이 모이는 이유가 남녀간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한 서류작업(?)이기 때문에 이곳은 인연맺기 신사로서 유명한 것.

 

 

 

물론 그리스신화가 알아서들 사랑과 전쟁을 연출해주듯이

이곳 신화 이야기도 사람들이 여기저기 만들어내고 살을 붙여서 풍성해진 것.

 

실제로 칸나즈키(神無月) 라는 단어 중간의 '無' 라는 단어는, 고어에서 'の'를 대체해서 쓰는 한자어였고

'の"라는 단어는 '~의'라는 뜻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신이 없는 달이 아니고 '신의 달'이라는 해석이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이즈모 신사의 비상한 머리를 가진 누군가가 후대에까지 내려오는 멋진 마케팅 포인트를 만들었다는게 현실적인 해석일까.

 

덤으로, 10월에 모든 신이 이즈모에 모이는 것도 아니고, 집지키는 신이 가끔 남아있기도 한단다.

대체로 칠복신중 어부와 상인의 신인 에비스(恵比寿)가 집지키는 신으로 일컬어지는데,

어업과 상업의 중요성과 결부시켜보면 은근 현실적인 설정이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어업이란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위험한 직종 중 하나이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에서도 진수식에 와인을 깨트리는 등, 여전히 미신에 의존하고 싶을 만큼 운이 따라야 하는 편이니까.

 

 

 

세력이 큰 신사는 원래 마케팅을 위해서 자신만의 특징을 잘 부각시키는데

의외로 손발이 잘 맞아서, 지주격의 신사들이 각자 그 설화 혹은 신화들을 잘 조합시켜준 결과

일본인이라면 계절별로 각 지방의 신사를 여기저기 찾아가는 식의 여행도 즐길 수 있다.

 

새해 첫날에는 이세신궁에서 일출 보기, 5월에는 아사쿠사신사에서 축제, 10월엔 이즈모타이샤에서 인연맺기 참배 등등.

상업적인 아이디어가 먼저인지, 그냥 그렇고 그런 이야기에 상업적인 향기를 덧입힌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이야기에 동조해주고 자동차로 5~6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서까지 타 지방으로 여행가고, 숙식비와 선물비를 뿌리고 돌아오는,

사람으로 치자면 혈액순환이 골고루 잘 돌아가도록 움직여주는 시민들의 행동 덕에 지방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은 참 부럽다.

 

사실 중국과 한국등의 동양인들에게 신사라는 개념은 그리 신기한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냥 주변 풍경과 신사 모습만 슬쩍 보고 사진찍고 돌아오면 이게 외국까지 가서 돌아볼 곳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이런 곳을 재미있게 보려면, 자국인들이 이렇게 찾아오는 이유와, 거기 얽혀있는 소소한 이야기와 지방 특색을 알아보는게 좋은 방법인 듯.

 

알면 알수록 여행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말에는 사실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냥 가서는 별 재미가 없는 곳에 한해서, 즐길만한 요소를 따로 생각해 보는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신사 쪽으로는 별로 진행하지도 않았는데, 주변 풍경이 계속 눈길을 끌어서 걸음이 더뎌진다.

돗자리와 도시락 잔뜩 싸들고 그늘밑에 누워서 책읽으면 천국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 많다.

 

도쿄 내부 신사는 그런 곳이 많아서, 휴일날이면 이런 곳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천혜의 풍경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람은 왠만해서 찾아보기 힘들다.

 

애초에 타지에서 이곳까지 오는 관광객은, 저기 누워서 시간 보낼 여유라는게 별로 없기도 하겠지.

시간과 돈을 들여 관광지에 왔으니 열심히 못보던 것들 구경해야 하는데 저곳에서 한나절을 보내기엔 좀 아까울 듯.

그리고 이곳 지역민들은, 학교 소풍때야 오겠지만 굳이 이곳에서 누워있을 필요도 없다. 원래가 시골마을이라서.

 

 

 

그래도 한동안 살짝 고민하게 만드는 그늘 밑 벤치.

카메라 가방 내려놓고 전자책좀 읽으며 바람에 땀을 식히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뭐랄까, 1시간 넘게 기차타고 와서 걸어다닌지 15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 퍼질러진다는 건 좀.

자전거 여행중 방문했다면 아마 신사 구경은 저리 넘기고 저런 곳에서 3시간쯤 휴식을 취했을 듯 하다.

 

사실 크게 볼거리가 없는 이곳을 굳이 방문한 이유는, 지난 번 자전거 여행때 불의의 사건으로 가 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

겨울을 오키나와에서 보내고 3월에 다시 큐슈로 돌아와, 시모노세키 해협을 건너고 야마구치현으로 들어온 것이 3월 초순.

3월이라고 해도 여전히 초겨울 날씨라서, 야마구치현의 토요코인에 들어와 무료 카레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고

이제 슬슬 달려볼까 싶어서 준비하던 3월 11일의 화창한 오후.

 

호텔 로비 TV에서 긴급 방송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뭔가 좀 크게 났구나 싶은 정도였지만

15분 후 생중계되는 지옥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일본의 지인들과 한국의 가족들에게 급히 전화를 돌렸다.

너무 빨리 전화를 하는 바람에 엄니께서는 뭔 일인지 전혀 모르고 '그려 알았다'라고만 대답하셨는데

막상 그 후에 TV 중계를 보고 나서는 사색이 되어 나한테 전화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국제회선이 마비된 후.

 

급히 로비에서 숙박을 연장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에서야 지나간 일이지만, TV에서 흘러나오는 긴급방송 외에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던 답답한 상황이라서

무턱대고 출발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애초에 도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게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싶은 영상이 흐르고, 며칠간 오키나와에서 함께 했던 일본인 라이더들이

마침 후쿠시마 주변을 달릴 시기라서 연락을 해 봐도 닿지 않는다. 그야말로 패닉 상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오직 TV와 인터넷의 불확실한 정보만을 눈이 빠져라 찾아가면서

약 10일이 넘도록 계속 호텔에 처박혀 고민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도쿄까지는 돌아가겠지만 북쪽 루트를 타기는 힘들다는 것.

야마구치현에서 남쪽 해안가 루트를 타면 큰 도시도 많고, 한번 지나와본 길이라 무난히 도쿄까지는 돌아가겠지만

북쪽 해안가 루트는 일본에서도 이름난 시골동네가 대부분인데다, 어차피 쿄토 근방에서 남쪽 루트로 내려가지 않으면

그 이후부터는 어마어마한 산맥을 넘거나, 지진으로 개발살이 난 후쿠시마쪽으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었기 때문.

 

지진과 원전 상태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라고 판단된 이상

도쿄에 돌아가는 것조차도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1년간의 자전거 여행을 여기서 끝낼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곳 시마네현과 돗도리현을 포기하고, 원래 왔던 남쪽 해안가 루트를 타고 도쿄로 돌아간 추억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참동안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깨끗히 잊어버렸지만

역시 한번 기회가 생기니 그때 지진때문에 가지 못했던 이곳에 대한 아쉬움이 점점 커지는 바람에

이렇게 배타고 와서 그때의 심란했던 마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있다.

 

그때 왔었다면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을 저 벤치가, 그렇기 때문에 낯설게만 보이지 않는다.

 

 

 

신사 바로 앞까지 왔는데, 뭔가 힘좀 준듯한 조각상이 서 있다.

주인공은 이곳 이즈모타이샤에서 모시는 신이자, 일본 신화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오오쿠니누시노오오카미(大国主大神)이고

파도 위에 보이는 드래곤볼(?)은 말 그대로 신의 힘을 구체화시켜 표현한 것이고

저 구슬을 얻음으로서 오오쿠니누시는 인연을 맺어주는 힘을 가진 신으로 격상되었다고 한다.

 

 

 

왜 인연을 맺어주는 신이 되었는가 하면

이걸 제대로 설명하려면 아주 귀찮을 정도로 일본 신화에 대해 깊게 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패스.

 

나처럼 일본쪽 전공한 사람도 아닌, 일반 블로거들이 그렇게까지 일본 신화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본의 3대 신에 들어가는 타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建速須佐之男命)의 딸내미를 갖은 시련끝에 얻어서 결혼한 인물이기 때문.

 

요즘엔 스사노오라고 간단하게 불리는 이 신은 한반도에서 찾아와 정착한 세력을 신격화한 것이고

그의 행적과, 딸이 오오쿠니누시와 결혼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당시 정치상황을 빗대어 묘사한 것이나 마찬가지.

따라서 이걸 파고들어간다는 건 상당히 학술적 시점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신화에서의 스사노오는 괴물퇴치도 하고, 일본 신중 대빵인 아마테라스를 이지메해서 쫓아버리기도 하는 등, 폭력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당시 한반도에서 건너온 세력에 대해서 중앙정부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는가가 신화의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다.

딱 이정도만 알고 있어도 이즈모타이샤 구경에는 지장이 없을 듯.

 

 

 

아무튼 신화의 내용에 맞춰서 이곳은 인연을 맺어주는 신사로 유명해졌으니

이곳 사람들은 저 핸섬남에게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랄 듯 하다.

 

당시 일본에서는 현대와 같은 결혼식보다는, 그냥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밤에 보쌈해가는게 결혼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요즘 세상에 좋게 해석하자면, 이성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정도로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진짜 보쌈해가는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사진을 찍을때 가능하면 사람이 안나오게 찍는 성격이기도 하고

실제로 다른 유명 신사에 비하면 좀 조용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마츠에에 도착한 이후 가장 사람이 많이보이던 곳이다.

약간 우충중한 느낌이 드는 다른 유명 신사보다는 훨씬 화사한 분위기라서

정말로 커플들끼리 오면 좋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그냥 놀러온 사람이야 에마(絵馬)같은데 소원을 적거나 할 필요도 없지만

커플들끼리 오면 뭔가 의무감 떄문에라도 멋진 소원 적어야 하지 않을까. 연애란 것은 적당한 과시와 허세도 필요하니.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이 신사를 지탱하는 귀중한 수입원이 될 것이고.

 

왠지는 모르지만 이곳 나무들이 자꾸 옆으로 누으려는 경향이 있는 듯, 지지대로 받쳐놓은 곳이 꽤 많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인연맺기 신사이다 보니 어쨌든 누워보려는 것일까 하고 낭만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마츠에도 물론 맑은 공기를 자랑하긴 하는데

이곳은 그야말로 청정지역이기 때문에, 쏟아지는 햇살과 시원한 솔내음 풍기는 공기를 열심히 흡입하는 것만으로도 만족도가 상승중.

 

기온은 33도까지 올라가서 꽤나 괴롭긴 하다. 줌렌즈는 망원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단렌즈라서

구도에 맞게 렌즈 갈아끼우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막상 이곳까지 오니 공사중이라서 꽉 막혀버린 본전 때문에 약간 의기소침하다.

 

옆쪽으로 돌아가서 살짝 나있는 창문 틈으로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보려는 사람들도 있고.

위에서 밝혔듯이, 이번 여행은 이즈모타이샤 때문이 아니라 자전거 여행의 미련을 풀어버리기 위한 여행이기 때문에

사실 본전이 보이나 안보이나 별 상관 없다. 그거 못봤다고 훗날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늘이 조금 펼쳐진 벤치 앞에 앉아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그 앞에는 왠지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털을 고르는 중이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도 신기한듯 한번씩 비둘기들을 바라보고 가지만, 이 녀석들은 본 척도 하지 않는다.

대체 왜 이러는걸까 궁금하지만, 괜히 다가갔다간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고 해서 그냥 사진이나 담아본다.

 

20년전의 일본 신사에는 흰 비둘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엔 흰 비둘기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게 약간 아쉬울 따름.

 

 

 

잠깐 땀만 식히고 일어날 요량이었는데, 이녀석들이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니 그냥 눌러앉기로 한다.

느긋하게 털고르고 있는 녀석들과는 달리 이 혈기넘치는 수컷은 한창 넘치는 정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

 

목의 화려한 털부분을 힘껏 부풀리면서, 아파트 창문에서 익히 들어온 구애의 노래와 함께 암컷을 따라다닌다.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할 정도로 열심히 구애를 하는데, 암컷은 보지도 않고 매몰차게 자리를 피해버리는 중.

두세 마리의 암컷에게 똑같이 차이고 나서 조금 낙심하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암컷 따라다닐때의 목 주변은 정말 두툼하고, 햇빛에 반사되어 화려하기 그지없는 색을 자랑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인연 맺기가 힘든 듯. 하필이면 인연맺기의 전당 이즈모 타이샤에서 신나게 차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다.

 

쟤네도 머리는 있는지, 몇번 차이고 나니 그냥 단념한 듯 혼자 서서 털이나 고르고 있다.

우측 상단에 보이는 암컷이 이 녀석을 차버린 녀석.

비둘기한테 발정기라는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암컷 녀석은 그냥 쉬고 싶을 뿐인가 보다.

 

에마에다가 '저 비둘기들이 새끼 쑴풍쑴풍 낳도록 해 주세요'라고 빌고싶은 마음이 조금 드는둥 마는둥 했지만

내가 내돈내면서 저 녀석들 인연을 빌어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앞서는 바람에 그냥 안스러운 눈길 한번 주는걸로 끝낸다.

 

 

 

30분쯤 그늘에 앉아서 비둘기 구경하는 재미로 보냈다.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차례로 돌아다니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본다.

이곳의 중요한 이벤트는 대체로 10월에 열리기 때문에 지금은 꽤나 조용한 편.

특히 본전이 내년까지 수리중이라 올해는 꽤 차가운 한해가 될 것 같다.

 

신사 내부에서 볼만한 건물은 현재 저 앞의 배전밖에 없고

좌측에는 결혼식장으로 쓰이는 카구라전(神楽殿)이 있어서, 아마 그쪽이 여기보다 더 볼만한게 많을 듯 하다.

본전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신사 치고는 규모가 꽤나 아담한데, 그와 반대로 건물 상태는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하다.

규모보다는 질을 우선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관광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풍경이 되려 이질적일 정도로.

 

신화를 간직한 의미있는 곳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느낌이 훌륭하다고 할 수도 있을 듯.

바닥을 보면 알겠지만, 단정한 통로 위에는 그 옆의 자갈조차 올라와있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관광객들도 왠지 큰소리로 떠들지 못하고 조금 조용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림같은 풍경은, 그림으로 볼때는 훌륭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보면 살짝 위화감이 든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