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만큼은 아니지만 가랑비가 끊임없이 내려서, 옷 말리는건 사실상 포기.
다들 우산 한개씩 들고 다니는데, 한국에서 접이식 우산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호텔에서 대여해주는 비닐우산은 장우산이라서
귀찮아 들고오지 않았더니 이런 꼴이다. 사실 본인은 비에 젖어도 관계없는데 어디 들어가기가 좀 미안할 따름.
아버지께서 일본을 다녀왔을때 한국과 가장 다른 인상을 받았던 점으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가 없다는 것을 드셨는데
확실히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량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 거리의 풍경이 확 바뀌는 기분이 든다.
일본은 어떤 건물이든 주차공간을 확보하도록 법으로 지정되어 있고,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불법 주차시 벌금 20만원
골목이 아닌 대로변 주차 혹은 일정시간 지나거나 하면 견인비 30만원 정도가 부가되기 때문에
시골은 말할것도 없고 어지간한 대도시에도 교통에 방해되는 불법주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처벌이 무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엉성엉성 주차단속하는 한량과는 달리
일단 발견되면 그 즉시 사진찍고 선 긋고 딱지 붙여버리기 때문에 그닥 엄두를 내지 않는다.
멀쩡하게 차선 지키면서 운전해도 불법 주정차된 차량 때문에 곡예운전을 해야 하는 한국에 비하면
마음 느긋하게 주행을 즐길 수 있는 이쪽 도로사정은 참으로 부럽기 그지없다.
내가 일본에 거주한다면 앞뒤 불문하고 바이크나 스쿠터같은 이륜구동 몰고 다닐텐데
한국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륜 몰고다닐 마음이 안생긴다. 사륜마저도 개떡같은 운전매너때문에 몰기 싫은데.
들어가서 구경하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나올법한 잡화점이 보인다.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집 자체가 골동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하지만 저렇게 좁은 곳은 지금 이렇게 젖어버린 몸으로 들어가기 좀 미안하다.
밖에서 살짝 구경이나 했는데, 창문 밑의 저 간판이 심히 신경쓰인다.
네모세모동그라미... 이거 뭘 의미하는거지?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의 버튼이 비슷하긴 한데, 골동품점에서 팔 물건은 아닌듯 하고.
현지인들 상대인지 관광객들 상대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둘러보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 건져오는 것도 재미있을것 같다.
막상 사들고 오면, 내가 왜 이런걸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겠지만.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분위기 탈 확률이 높으니 조심.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보이는 저택이 코이즈미 야쿠모 기념관.
기념관 입구에도 쓰여 있지만, 이곳은 코이즈미의 생가가 아니고 기념관이다.
그가 살던 생가는 바로 옆에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고는 하지만 외국인에게 그게 별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입장료가 있긴 한데 그리 비싸지 않고, 외국인은 50% 할인이라서 매우 저렴하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난 코이즈미 야쿠모라는 문학가를 좋아하지 그가 살던 집이나 그의 물품에는 관심이 없다.
얼마 안되는 입장료 내고 들어가 구경하는건 관계없는데, 작은 물건 세심하게 쳐다보기에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힘들 듯.
옆집은 진짜 코이즈미의 생가. 여기도 안에 들어가려면 요금 내야 하지만 앞마당까지는 공짜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듯 하다. 이 꼴로 들어가면 폐를 끼칠 것 같은 느낌.
일본인들에게 100년 전 자신들의 나라를 좋아해 찾아온 푸른눈의 외국인은 매우 귀중한 존재겠지.
나쁘게 말하자면 그가 왔다는 사실 자체를 자신들의 자부심으로 변환하는, 조금은 허세적인 마음일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도 안에 들어가지는 않고, 마당에 새초롬히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이나 찍고 돌아선다.
비가 조금 세지는 듯 해서 몇 분 정도 입구 처마에 서서 비를 피하기도 하고.
그가 살았던 저택을 구경하기보다는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마츠에라는 조그마한 마을의 풍경을 느껴보는게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 부근은 그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한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조금이나마 코이즈미의 시선을 엿볼 수 있을 듯.
물론 코이즈미 야쿠모 때문에 이렇게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 아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곳은 시오미나와테(塩見縄手)라는 이름의 거리고, 나와테(縄手)라는 건 새끼줄처럼 길게 뻗어있는 거리를 뜻한다.
마츠에 성이 세워지고 나서 번주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성 주변을 둘러싸는 형식으로 거주하게 된 것이 이 거리의 탄생.
시오미(塩見)라는 건 그 당시 봉행직에 있었던 시오미 코헤(塩見小兵衛)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 중 관광객에게 공개된 건물이 바로 무사 저택. 이 길 대부분의 저택이 무사 저택이긴 하지만, 들어가 볼수 있는 녀석은 이곳 뿐.
특출나게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시오미나와테 거리와 함께 그 시절 사람들의 실제 생활터를
실감나게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는 편.
280년 전쯤의 건물인데, 목조건물의 특성상 수리는 여러번 거쳤지만 당시 모습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다.
여기도 외국인에게는 반값할인이 되니, 음료수 한개 사먹는 돈으로 입장 가능.
계속 비가내리고 있어서 파란 하늘이 참 그리워지지만, 이것도 나름 운치는 있다고 생각중이다.
물론 저런 인형까지 280년전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이 저택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중급 무사가 거주하던 곳인데, 관광화 되면서 그 당시 생활도구등을 모아 전시하게 되었다.
스피커에서는 일본어 설명과 함께 한국어 설명도 나와서 이해하기 쉬운 편.
물론 중급이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무사는 무사, 애초에 이 거리는 번주를 호위하기 위한 무사들의 마을이었기 때문에
이 저택이 서민들의 생활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약간 어긋나지 않았나 본다.
한국의 경우에 대입한다면 어쨌든 어엿한 양반집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게 편할 듯.
일본은 일단 문인 무인 가르기 전에 관료직 자체를 무사라고 지칭하는 편이 적합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무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랄까, 그런 흔적이 꽤나 느껴진다.
깊게 들어가자면 논문 쓸 정도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그냥 검소하고 절제있는 생활에 맞춰져 있다고 보면 될 듯.
한국의 마당과는 달리, 일본의 정원은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풍경의 일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자갈은 항상 수면처럼 잘 골라놓고, 움직일 때는 저 돌을 밟는 꼼꼼함을 보인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만.
여기는 여성들이 사용하던 물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
내용물은 그 시대 동양 여성들이 가지고 있었을 만한, 은근히 만고불변의 진리같은 느낌이 든다.
뒤에 걸려있는 예복은 생각보다 꽤 무겁다. 시대가 흐를수록 점점 가벼워지긴 했지만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던 헤이안 시대 여성의 예복은, 겹겹히 다 착용했을 경우 30kg 는 넘었으니.
그래서 자연스럽게 옷걸이도 매우 든든한 모습을 하고 있고, 하급 무가의 여성들은 저 예복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물건일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물론, 제대로 된 전통 예복은 4~5천만원이 훌쩍 넘어가니... 화장품과 옷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으리.
사실 300년 전쯤의 전통 가옥은, 그 편의성 면에서 볼때 한국의 그것이 월등히 앞서는 부분이 많다.
목재의 수급이 한국보다 수월해서 유리한 점이 있긴 했지만,
부엌이나 온돌, 대청 등 사계절의 변화에 능동적인 대처능력이 뛰어난 한국의 전통 가옥은,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도 굉장한 하이레벨.
솔직히 집 짓는 능력은 요즘들어 훨씬 퇴화하지 않았나 싶은데, 물론 돈때문이곘지만 한국의 요즘 건물모습은 그냥 추하다.
예전에 사용하던 우물터.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덮개가 조금 인상적.
딱히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그냥 저택 뒷 언덕에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였겠지.
빗줄기도 점점 심해지고 그에 맞춰 머리도 돌기 시작해서 때마침 나타난 휴게소에 들어가서 걸터앉는다.
이곳도 원래 사용하던 건물인데, 휴게소로 사용하기 위해 살짝 보수를 거친 녀석.
물에 젖은 옷때문에 사실 앉아있는것도 좀 미안한 느낌이 들어서, 신발 벗고 위로 올라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옆에서 본다면 음악이라도 흥얼거리고 있는걸까 할 정도로 머리가 저절로 운율을 타고 있다.
몇몇 관광객들이 앉았다가 다시 나가기를 반복하는 시간동안 그냥 멍하니 앉아서 바깥 경치를 바라만 본다.
그 사람들은 우산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가고 싶을때 나갈 수 있지만, 난 일단 비 그칠때까지 앉아있으려고.
이곳 무사 저택도. 개인 집치고는 그럭저럭 큰 편이지만 관광지로서는 참 조그마한 곳이라서
느긋하게 돌아도 15분이면 떡을 친다. 그런데 비 때문이기는 하지만 휴게소에 앉아서 20분 넘게 이 풍경만 계속 바라보고 있다.
꼼꼼하게 본다고 해도 역시 걸어가다가 멈추고, 다시 걸어가고 하는 구경과
그냥 한자리에 앉아서 같은 풍경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과는 꽤나 차이가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한옥에 익숙해서 그닥 살아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 저택이지만
집 안에서도, 심지어 수면 중에도 무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그때 그시절의 딱딱한 격식때문일까
난 집안에서는 옷 훌떡 벗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역시 좋다.
여기서 오른쪽을 보면 찻집을 겸한 조그마한 상점과, 언덕 위로 올라가는 작은 오솔길이 나 있는데
보통 이런 저택에는 언덕이라는게 있지도 않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우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저 위에 뭐가 있을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비가 그치면 올라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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