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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에 해당하는 글들

  1. 2011.11.06  인셉션 (Inception,2010) 16
  2. 2009.01.05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6


한창 일본서 자전거여행 하고 있을 무렵 개봉했던 영화.
헐리우드 영화가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는 일본 극장가에서 꽤나 흥행한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와타나베씨의 영향도 있을 듯.
당시 몇 번이고 극장서 보려고 고민을 했지만, 놀란 감독의 작품들은 일본어 세로 자막으로 후다닥 이해하기엔 조금 어렵기도 하고
일본 극장가격이 좀 센 편인데다가, 냄새 풀풀나는 노숙자 차림으로 2시간 넘게 자리에 앉아있을 뻔뻔함이 부족하기도 했다.

극장서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다행히도 영화에 대한 예상이 어느 정도 적중한 덕에 50인치 PDP로 감상해도 그다지 후회스럽진 않았다.
놀란 감독의 작품은 아무리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더라도 시각적 볼거리보다 꼼꼼한 전개와 편집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과 인간에 대한 탐구가 진행되면 될수록 각광받는게 2천년전 사상인 호접몽과 같은 심층의식을 다루는 소재인데
매트릭스의 대흥행으로 인해 어느정도 식상할 수도 있는 소재를, 감독 특유의 꼼꼼한 시선으로 설득력있게 그려낸 느낌이다.
물론 메멘토(Memento, 2000)에서 보여준 놀라운 구성과 비교하면 굉장히 구멍이 많은 작품이지만
그것은 감독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관객들이 소소한 유희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장난감이라 하는 것이 옳을 듯.
훗날 인터뷰에서 놀란 감독은 이슈가 되었던 장면들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관객들이 많을줄은 몰랐다'는 투의 발언을 했으니.

테런스 멜릭 감독을 존경하는 놀란 답게, 그의 작품은 어떤 스케일로 만들더라도 일정 이상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과장되고 급진적인 영상이 아닌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꼼꼼하게 계산된 편집 능력이 빚어내는 영상.
그래서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느끼는 즐거움으로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진행을 들 수 있다.
부족한 점을 박력으로 채우려는 블록버스터가 상당히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규모의 작품에서 이런 꼼꼼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한 이점.
그 꼼꼼함 때문에 배우의 애드립을 매우 싫어하기로 정평이 난 감독이라는 점이 가끔 살짝 거슬리기도 한다.
놀란 감독의 작품을 주욱 보고 있으면 빠릿빠릿하고 철저한 외골수 직장 상사가 느껴지곤 하는데, 아마 그 때문인 듯.

이 작품의 플롯을 보고 처음 생각난 것은 - 물론 호접몽은 제외하기로 하고 - 말레이시아의 세노이 부족.
현실과 꿈을 동등한 가치로 대접하는 이 부족은 현대병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는 대부분의 치명적인 스트레스성 증상들에 대해
실존하는 거의 완벽한 대체치료법으로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스트레스, 정신병, 폭력, 야망 등의 질병이 존재하지 않았다.
개발로 인해 세노이족이 사라진 지금도 꿈을 이용해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더 나아가 종교적 수행에 가까운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한
여러 실험과 연습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상당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향으로.

놀란 감독 작품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가 다루는 소재의 상당 부분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 자신이 그 소재를 대입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메멘토의 기억 장애, 인썸니아의 불면증, 프레스티지의 인간 복제 등등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어떨까'라고 재미있게 고민할만한 소재들 말이다.
이번 작품은 아주 노골적으로 그점을 이용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입소문 타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작품이기도 하고 흥행면에서도 성공하기도 했다.

꿈이라는 심층 의식에 대해서는 이미 스스로도 많이 생각해 봤기 때문에 상당히 쉽게 영화의 전개에 익숙해졌는데
조금이나마 신선했다고 생각했던 곳이 '림보'라는 존재와, 꿈 속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이라는 설정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 인간의 뇌는 다른 모든 신체 장기가 정상적으로 기능한다고 가정했을 때 약 500년이라는 수명을 가진다.
꿈을 꾼다는 것은 육체적 나이를 고려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에 꿈 속의 삶은 인간이 인지하는 '낙원'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 뇌는 사고할 때 만큼이나 육체를 움직일 때도 발달하기 때문에
단순히 꿈만 꾼다면 아마 실제 수명보다 더 짧아질 것이지만 일단 그렇게까지 현실적인 토론은 접어두기로 하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사라진다면 아마 사람은 더 이상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꿈이란 어떤 현실보다도 강력한 마약을 무제한으로 공급해 주니까. 전능이라는 권력 말이다.
하지만 그 꿈의 유일한 단점은 개인의 전능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약점, 즉 사회성이라는 요소이다.
꿈 속에서는 어떤 일도 가능하게 하지만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의식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꿈 속의 모든 요소는 자신의 뇌가 기억하고 있는 소재의 집합체니까. 모르는 것을 창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지와 전능의 대표적인 차이점이기도 한데,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라는 주장이 더없이 진리에 가까운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성이란 것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객체를 강하게 결합시켜 외적인 장해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삼는 것인데
이 사회성이 없이는 결코 발달할 수 없었던 인간의 뇌는 꿈 속이라는 환경에서 전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게 도달한 세상은 사회성이 완전히 결여된, 완벽한 개인만 존재하는 고독의 심연이라는 패러독스가 발생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능하지만 전지할 수는 없는 꿈이라는 세상은
인류가 공동의 의식체로서 초월적인 진화를 이루지 않는 한 결코 낙원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곧 전지전능, 신이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세노이 족은 그 단점을 현실 세계에서의 꿈의 공유라는 수단을 통해 해소했었고
이 작품에서는 한술 더 떠서 꿈의 의식 자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영화의 어떤 장치보다 신의 존재에 가까운 장치를 사용한다.
사실 이런 장치가 있다면 현실 세계는 이미 붕괴했으리라 생각하지만 
감독은 이런 충돌에 대한 간편한 해결책으로 두 가지를 제공한다.
부성애, 혹은 모성애라는 생물체의 기본 의식이 첫 번째, 그리고 부인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이 두 번째다.

앞서 말한 정체불명의 기계로 인해 타인의 의식까지 공유할 수 있는 무한한 세계의 매력마저도 이 두가지 소재가 갖는 의미를 뛰어넘지 못한다.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호르몬 분비의 영향이라는 다소 차가운 해석이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사회이긴 하고
실제로 전능이라는 중독성 앞에 그런 호르몬 분비의 결과물은 쉽게 굴복하고 말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런 감상을 제외한다면 감독은 충분히 설득력있게 영화를 관객에게 납득시키고 있다. 지극히 성선설적인 입장으로.

'생각을 훔친다!'라는 페이크에 가까운 기본 전개와 달리 이 작품의 주제는 일관되게 코브의 죄책감에 대한 구원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심지어 타이틀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해 보이는 소재인, 인격마저 변화시키는 '인셉션'이라는 행위 역시 사실 여흥에 지나지 않는다.
액션 장면에 그닥 흥미가 없어보이는 감독의 특징이 여러 군데서 나타나는 덕에 블록버스터라는 입장에서 보기엔 좀 파괴력이 약한 장면도 없잖아 있는데
주제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영화적 재미를 잃어버리지 않게 준비해둔 여러 장치들과 교묘히 결함되면서 상승 효과를 가져온다.

안정된 편집과 느슨하지 않은 전개, 감독 자신의 실력자랑이라고 느껴질 만큼 정교하게 구성된 자동차 낙하씬의 시간 흐름 등등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다 재미없는 작품은 아니라는 점을 부각이라도 시키듯이 즐길거리를 잔뜩 준비해 둔 것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젊은 감독은 역시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헐리우드 안에서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사람인 듯 하다.

여담으로
마지막 장면이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고들 하는데
그 논란은 단지 땅콩까먹기 수준의 잡담 정도가 어울릴 뿐이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니까.
'코브는 팽이를 보지 않았다'

더더욱 여담으로
엔딩 크래딧 자체가 쿠키영상이다.
이유는 끝까지 영상을 감상해보면 금방 눈치챈다.
놀란 감독의 유머러스함이 잘 드러난다.
인셉션 (Inception,2010) :: 2011. 11. 6. 19:16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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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힘인가, 원작의 힘인가.
아니면 'Agent of Chaos'의 말대로 누구에게나 공정한 운과 같은 모종의 힘이 작용한 탓인가.

슈퍼히어로 장르에 그 생명력을 유지해 갈 환상의 처방전으로 기대를 모았던 스파이더맨을 뛰어넘어
감히 누구도 넘보기 힘들 정도의 확고한 전설을 쌓아버린 '다크 나이트'는 영화를 보고 궁금해진 위의 질문처럼
최고의 배우, 감독, 연출이 한자리에 모인다 해도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놀란 감독의 숨결이 느껴지는 부분은 영화의 호흡.
'메멘토'를 시작으로, '배트맨 비긴즈'까지 꾸준히 이어져 온 놀란 감독 작품의 특징은 그 완급조절이 놀랄만큼 일정하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서두르거나 조이지도 않고,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겐 클라이막스마저 조금 무덤덤하게 느껴질 만큼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지 않은 현실의 시계추처럼 흐르는 작품의 호흡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참고로 이런 인위적인 호흡 조절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감독은 나의 우상 피터 잭슨.

2시간 30분의 런닝타임 내내 팽팽하지만, 끊어질것 처럼 조마조마하진 않은 여유있는 클라이막스의 연속이다.
여기까지는 감독의 능력이 120% 발휘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다양한 미장센.
매니아들의 탐구심을 만족시키는 교묘한 편집.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턴 하워드가 함께한, 끊임없이 불안감을 일깨우는 빠른 비트의 저음.
이름없는 조연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의 명배우들.
이 모든 플러스요소를 모두 종합한다 해도 이 작품이 가지는 거대한 힘을 쉽게 납득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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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정말로, 이 혼돈의 사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자기 자신도 지배당해 버리지 않았을까.

처음 이 작품을 극장에서 봤을 땐 감상 후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조커의 얼굴을 볼 때마다 히스 레저가 생각났기 때문에.
난 작품 감상하면서 작품 외적인 요소가 감상을 방해하는걸 아주 싫어하는데, 이건 어쩔 수가 없다.

극장에서 4번 감상 후, 블루레이로 혼자서 집중하며 감상하고 나서야 간신히 내 머릿속에 자리잡은 히스 레저의 죽음을 지워낼 수 있었다.

'다크 나이트'는 히스 레저의 죽음때문에 오히려 큰 손해를 봤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의 신변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좀 더 차분하고 이성적인 매니아들을 양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조커의 힘을 빌렸지, 히스 레저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는 두터운 바탕을 가진 영화니까.

원작 코믹스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 조커라는 캐릭터는 악당이 아니다.
그가 말했던 몇가지 진실 중에서도 정말 딱 들어맞는 단어 'Agent of Chaos'. 이보다 그를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듯.

그리고 그 혼돈은 '도를 넘은' 질서를 추구했던 배트맨에 대한 변증의 부정합과 같은 존재다.

알것 다 아는 나이가 된 (나이먹어도 암것도 모르는 노친네들도 많긴 한데) 알프레드가 친절히 설명해주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히어로가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은 참혹한 댓가를 치루고 나서였다.

슈퍼 히어로의 내적 갈등을 이용해 영화의 질을 한 단계 높였던 스파이더맨에 비해
이 작품은 영웅의 존재가 사회 범죄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에 대해 훨씬 더 심층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은 당연히 나와있지 않다. 작품의 제목처럼 유일하게 장르의 힘에 애원하며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의 힘은 여기에 감명받은 많은 감독들은 물론, 놀란 감독 자신도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