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씨에 땀 뻘뻘 흘리며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와 히타카츠행 버스를 탄다.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한적한 거리를 달리는데, 이렇게 달리면서 보는 대마도의 거리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오히려 크게 부각되는 점이 없는 관광지 근처를 걸어다니는 것보다 바다와 가깝다가 멀어지며 올라갔다 내려가는 곡선 도로들이 훨씬 멋지다.

 

이 버스의 노선이 대마도에서 가장 큰 두 도시를 잇는 길이란 걸 생각하면, 그 외의 도로는 이것보다 훨씬 매력적일 듯 하다.

자전거로는 워낙 업다운이 심해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라이딩의 매력은 충분하다.

특히 바이크로 달린다면 숨을 몰아쉴 필요 없이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는 커브길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렇게 여행하는 것보다 바이크 끌고 2~3일 정도 섬을 돌아보는게 더욱 재미있을 법 하다.

 

히타카츠에 내리자 생각보다 주위 풍경이 한산하다. 너무 황량해서 아무래도 정류장을 좀 일찍 내린 듯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마을 자체가 그리 크지 않으니 조용히 걸어다니며 산책하기엔 무리 없다.

나와 함께 내린 사람은 한국인 젊은 여성 관광객 둘 뿐. 아마 예약한 숙소가 이 근처에 있는지 잡담을 나누며 앞으로 걸어간다.

 

본인은 예약도 없이 그냥 왔기 때문에 걸어다니다가 숙소가 보이면 그냥 들어가 물어보는 수 밖에.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표지판은 사망사고 0명 기록이 725일째라는 기분좋은 내용.

하긴 이제껏 돌아다닌 대마도의 도로 사정을 생각하면 이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한국이라면 이렇게까지 장기간 기록을 갱신하기는 어렵겠지만, 가뜩이나 얌전하게 운전하는 일본에서 이렇게 한산한 마을에서야.

 

 

 

15분쯤 걷자 마을다운 마을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사이에 숙소가 몇개 보이긴 했지만 바로 들어가진 않기로 한다.

어제 묵었던 호텔의 심각한 악취 덕분에 조심성이 생겼다고 할까.

일단은 내일 돌아갈 항구까지는 길을 파악하는 의미에서 걸어가 보고 그 후에 숙소를 결정하기로 한다.

 

대마도에서 가장 큰 두 도시라지만 별로 크지 않던 이즈하라에 비해서도 훨씬 작은, 그냥 바닷가 마을같은 분위기라

숙소 면에서는 훨씬 여유가 있을 법도 하다. 한국 관광객은 둘 말고는 본 적도 없고.

 

사실 대마도는 보통 당일치기, 길어야 1박 2일 정도 머무는 게 대다수라서 나처럼 2박 3일 머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제 이즈하라에 도착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오늘 여기서 부산가는 배를 탈 거라고 예측해 본다.

 

 

 

특징적인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극히 평범한 마을이지만 도로는 깨끗하고 공기도 맑다.

이즈하라는 그래도 일단 도시라는 보편적 개념에 부합하듯 현대적인 쇼핑센터와 패스트푸드 체인점 정도는 존재하지만

히타카츠는 관광 가이드에 한국의 동네 중국집만한 가게와 매우 평범한 슈퍼마켓마저도 전부 실어놓을 정도로

관광을 위한 곳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 곳이라 되려 마음이 편한 느낌도 든다.

 

걸어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부담없이 걸어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아무 생각없이 셔터만 누르고 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땀 좀 흘리며 걸어다니고 있어서 조금 피곤하긴 하다.

위에 뭔가 있어보이는 토리이가 늘어서 있지만 아침 점심 모두 신사를 보러 돌아다닌 터라 더 이상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

저 위에 올라가면 풍경은 좋겠지만 어차피 이곳에서 풍경으로 유명한 곳은 따로 있고, 그 곳은 내일 둘러볼 생각이라서.

 

길을 걸어가는데 초등학교 1~2학년쯤으로 보이는 학생 둘이 마주 걸어오다가 밝고 큰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넨다.

나도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는데, 둘이 킬킬 웃으면서 지나간다. 내가 뭔가 실수한 것이라도 있나?

 

 

 

이즈하라 항은 그래도 현대식 느낌이 났지만 여기는 정말 깡촌마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낡아도 이렇게 낡았나 싶은 분위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즈하라와는 다른 느낌이라서 오히려 볼거리는 늘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조금 전에 부산으로 배가 떠나서 그런지 주위는 모두 한산하다. 마을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서 살짝 오싹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

아마도 다시 관광객이 들어오기 전까지의 시간은 바랬던 대로 조용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법 하다.

 

항구 바로 앞에는 허름하지만 나름 제대로 된 식당도 1층에 갖춘 호텔이 버티고 있었지만

여기보다 깨끗해 보이는 호텔을 좀 전에 거쳐왔기 때문에 바로 들어갈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다시 좀 전의 호텔로 돌아가서 빈 방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

 

 

 

한국 관광객이 몰려가고 나면 마을 전체가 조용해지는 듯 하다.

문을 닫은 음식점도 많고, 관광안내센터라고 소개되어 있는 조그만 가게는 5시도 되기 전에 이미 문을 닫았다.

사실 안내센터가 필요할 정도의 마을도 아니지만.

 

그래도 관광객 맞이를 위한 노력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저 스티커는 마음에 든다.

히타카츠 마을 안에서는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빼곡한 환경을 기대할 수는 없어서 길을 걷는 도중에도 연결이 되다가 말다가 하는 현상이 잦긴 하다.

물론 이런 깡촌에서 이 정도 준비를 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은 흡족해 진다.

 

 

 

건물 외형이 상당히 깔끔해 보이는 호텔 앞으로 왔던길을 돌아 도착한다.

바로 옆에는 어째 이즈하라에 있던 것보다 더 깔끔해 보이는 파칭코 가게가 위치하고 있다.

주위엔 제대로 된 식당처럼 보이는 음식점도 몇 있는데, 가게 영업시간이 좀 이상해서 아직 문을 닫은 상태.

 

호텔에 들어가보니 로비도 넓고 제대로 된 숙박업소라는 느낌이 확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할머니가 안쪽에서 조용히 나와 빈 방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불행히도 시마토쿠 쿠폰은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러 아끼지 않는 한 남은 쿠폰을 소진할 방법은 충분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

 

어차피 여기서 쿠폰을 다 사용하면 저녁식사와 내일 관광을 전부 현금으로 해야 하니까.

조식은 금액이 추가된다고 해서 신청하지 않았다. 이 호텔 바로 옆에 대마도 명물 햄버거인 츠시마버거 가게가 있으니까.

관광객이 빠져나간 후라 그런지는 몰라도 영업시간이 벌써 끝나있다. 이 가게는 이걸로만 먹고살 수 있는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짐을 풀어놓고 휴식을 좀 취한후 밖으로 나온다.

호텔에는 여전히 냉장도고 없고 얼음물이 가득 담긴 보온병 하나가 달랑 놓여있는 곳이지만 냄새도 없고 깔끔해서 좋다.

이즈하라의 호텔과 가격이 거의 비슷하지만 이 정도만 된다면 하루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체 이즈하라의 그 냄새나는 호텔은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다시 항구쪽으로 걸어가서 근처의 라멘집에 무작정 들어간다.

카운터석까지 모두 합해서 총 수용인원이 1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보이는 조그만 가게인데

이런 가게조차도 빠짐없이 히타카츠 관광 팜플렛에 수록되어 있다. 맛있다고 호평이 자자한 곳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아마도 팜플렛에는 이즈하라에 위치한 모든 음식점을 다 적어놓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할머니 한 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라멘과 교자를 시키고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니까 흔쾌히 승락해 주신다.

흔쾌히 까지는 아닌가, '다들 여기 오면 사진찍고 가네요. 뭘 볼게 있다고'라고 웃으면서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할머니 한 분으로 그 거치디 거친 한국인 관광객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을지 조금 걱정도 된다.

자칫 술주정이라도 하는 사람 있으면 마음고생을 많이 할 텐데.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을 다 비우자 밖이 덮지요 하면서 한 잔 더 따라 주신다.

붙임성이 아주 좋은 분은 아니라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일본 전역을 자전거로 다 돌아다니고 여기는 섬이라서 와 보질 못해 이번에 찾아와 봤다고 말씀을 드려도

'여기 오는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꽤 있어요'라고 쿨하게 대답해 주신다. 정말일까.

 

 

 

풍경은 여지없는 시골이지만 시골만의 정겨운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마을이다.

아무래도 원래는 정말로 평범한 시골마을이었겠지만 워낙 관광객이 찾다 보니 나름 이골이 난 듯한 모습이라 할까.

 

이즈하라와 달리 히타카츠는 마을 규모만 봐도 거의 모든 음식점에서 한국인 관광객 안 받아본 곳이 없어 보인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 사람들의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조금 기다리다 나온 라멘은 위에 올라간 야체 정도만 신선할 뿐 면은 그냥 인스턴트고 국물도 매우 평범한 수준이다.

일본 여행이라면 어디서든 라멘 한 그릇은 먹어본다는 본인의 지론 때문에 일부러 찾아온 곳이긴 한데

역시 이런 곳에서 먹는 라멘 수준이 그렇게 훌륭할 수준이 될 수는 없다는 건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사실 절대 다수가 한국인 관광객인 이 곳에서 라멘 수준을 높여야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만한 수요도 만족할 수 없는 곳이라, 이 정도가 최선의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대마도는 라멘 맛을 추구하러 오는 곳이 아니다.

 

 

 

교자도 나름 금방 구워와서 따끈한 게 좋긴 하지만

일본식 교자 만드는 법을 완전히 무시한, 어찌보면 일본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레어한 녀석이긴 하다.

 

일본식 교자는 교자의 한쪽 면만 바싹하게 굽고 반대편 부분은 뚜겅을 덮어 수증기로만 쪄 내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 곳의 교자는 그냥 냉동교자를 후라이팬에 마구잡이로 구워낸, 한국의 가정집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과 똑같은 녀석이다..

 

내가 지금 일본에서 교자를 먹고 있는건지 집에서 고향만두를 구워먹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가시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일단 다 먹고 난 후 할머니한테 참 맛있었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는데, 이 할머니는 '뭐 그냥 평범한 교자인데' 라고 웃는다.

일본인과의 대화는 어쨌든 말 그대로 의미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일본어에 능통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번화가 도시의 가게였거나 좀 이름있는 가게였다면 '이 사람들이 지금 나 놀리는 건가'싶은 느낌이 드는 레벨이긴 했다.

대마도라는 지역의 특성상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없이 먹고 나온 것.

 

팜플렛에 나왔던 대로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라는 광고는 아무래도 너무 과장되었다고 할까.

그게 과장이 아니라면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대충 이 정도로 내어주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제대로 만들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상상마저 해 본다.

 

슬슬 해가 지고 있어서 다시 호텔쪽으로 돌아간다.

호텔을 지나 주택이 늘어선 거주지역으로 들어가 조금 더 걸으면 지역민들이 이용하는 슈퍼가 보인다.

대마도에서는 뭐든 문닫는게 빠르다 보니 초저녁인데도 도시락이나 닭튀김같은 안주거리가 거의 동이 나 있다.

대충 적당한 도시락과 음료수, 닭튀김 같은 걸 주워들고 계산을 한다. 시마토쿠 가맹점임을 확인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무난하게 쿠폰을 사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호텔에서 발 뻗고 TV나 보면서 물이 들어있던 보온병에 음료수를 채워넣는다.

얼음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내일 아침까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여행치고는 심적으로 너무나 고요한 상태로 보내고 있어서 정말 여행 온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기대치가 없어서 그런지 딱 생각했던 만큼이라는 느낌인가.

 

냄새가 나지 않는 것만 해도 어제와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을 느낀다.

간식과 함께 TV를 보고 굴거리면서 여행 마지막 밤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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