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위치가 참 절묘하기 때문에 풍경은 매우 훌륭하다.
바다와 산 모두가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목조 신사 역시 그 속에 부드럽게 녹아가는 느낌.
예산 문제인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과하게 깨끗하지 않은 느낌도 조화를 이루는 듯 하다.
잠시 산책하고 있으니 카약을 타고 토리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인다.
저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재미있는 풍경이 나올법도 하다. 사실 썰물 때라면 저기까지 걸어갈 수 있으니 큰 의미는 없겠지만.
대마도가 지형적 특성상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해도 관광 자원이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닌데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 놓은 모습은 나름 공부가 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댐으로 인해 수몰된 경계선처럼 보이기도 하는 지형이다.
바다와 이렇게까지 근접한 곳이 빡빡한 수풀로 덮혀 있는 모습은 꽤나 볼만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쪽은 대마도의 정중앙 쯤 빡빡한 섬들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
한국에서 밀려오는 쓰레기로 해안가가 오염되어 있지는 않았다.
북한보다 위도가 높은 홋카이도 최북단 근처의 바닷가에서
대구 들안길 음식골목의 한 숯불갈비집 마크가 찍한 라이터를 발견했을 때의 황당함을 느끼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 옆에 지붕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어서 거기 앉아 점심용으로 보존해 놓았던 카레빵을 뜯어먹는다.
배가 슬슬 고팠던 탓고 있고 해서 강한 카레향기를 감싼 부드러운 빵의 식감이 더욱 훌륭해 보인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내가 걸어왔던 길 반대쪽 오르막을 힘차게 달려간다. 아마도 전망대 쪽인 듯.
풍경이 좋아서 전망대 구경을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지금 전망대까지 걸어갔다면 버스를 약 5시간 뒤에나 탈 수 있어서 힘들다.
아쉬움은 빨리 잊어버리기로 하고 짐을 챙겨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미야지마의 추억을 되살려 보며 바다 위의 토리이도 한 장 담아보고.
땀 흘리며 올라가고 있으니 한국인 자전거 투어러들이 지나쳐 올라간다.
저 정도 짐과 자전거라면 확실히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을 듯 하다.
물론 예전에 내가 타던 자전거는 본체 무게도 장난 아니게 무겁고 튼튼했으며
펑크 방지를 위해 1kg가 넘는 두터운 타이어를 사용했고
바퀴에 다는 사이드백 4개에 50L 짜리 베낭을 뒷좌석에 얹은 걸어다니는 집이었으니
이런 경사라 해도 쏟아지는 땀을 감내하며 걸어가는 것 보다 쥐꼬리만큼 빠른 속도로 기어가는 것이 고작이다.
시작을 그렇게 하다 보니 저런 복장으로 2~3일 가벼운 투어링을 즐기는 것은 왠지 성미에 맞지 않다.
산책 수준의 짧은 자전거 여행도 1주일이 넘었으니까.
울릉도를 아직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왠지 궁금해진다.
크기로 치면야 제주도보다 조금 작은 이 섬이 울릉도 면적의 10배는 되지만
거기도 자연환경을 꽤나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손을 별로 타지 않아 무질서하게 보이는 수풀이 오히려 친근해 보인다.
도로 주변엔 꼽등이처럼 보이는 커다란 곤충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날씨와 짐 때문에 땀이 많이 나는 것을 제외하면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물론 버스 도착 시간을 맞춰야 해서 조급해지는 마음이 편안한 감상을 조금씩 방해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긴 힘든 게 카메라를 가진 사람의 숙명인 듯.
말라버린 덩굴이 살짝 징그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고 저런 일을 모두 거쳐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녀석들이라.
귀뚜라미인지 곱등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크고 건강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곤충들 중에서는 방아깨비가 가장 귀엽다. 산소에서 자주 갖고 놀아서 그런 듯.
얘네들은 색깔도 그렇고 좀 더 강해보여서 왠지 만지고 놀려니 무서운 느낌이 든다.
이런 색깔을 가진 곤충들 중에서라면 매미를 꽤나 귀여워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여름 야간자습 시간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교실로 가끔 들어오곤 했는데
울지 않으면 쫒아낼 이유도 없어서 잡아서 머리 위나 팔목에 올려놓고, 공부하다가 지치면 가끔 바라보며 마음을 치유하곤 했다.
물론 가끔씩 내 팔뚝을 나뭇가지인줄 착각하고 빨때를 꽂으려는 녀석들이 있어서 놀라긴 했지만.
신사 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는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없어서 조금 서두르는 바람에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았지만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갈 때는 길과 시간을 모두 알고 있으니 여유를 부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 있다.
이름모를 꽃도 찍어가며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산이 울창해서인지 바다 비린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바다 하나 건너 섬에서는 꽤나 많은 수의 새가 무리를 이루어 빙글빙글 도는 중이다.
이쪽으로도 좀 와 주면 안될까 싶었지만 바다를 건너오지 않는다.
일상 생활에서는 망원렌즈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그 덩치와 무게에도 불구하고 여행갈 때는 반드시 가지고 간다.
조금이라도 찍을 수 있는 피사체가 늘어나기 때문에 없으면 아쉬운 순간이 생긴다. 지금처럼.
보통은 여행용 렌즈라면 표준줌이나 광각 렌즈를 많이 추천하는데
이상하게 블로그에 올리는 여행사진들 중 호평을 받는 것들은 상당수가 망원렌즈로 찍은 것들.
갈 때는 산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올 때는 선명히 드러나는 건물이 있다.
상당히 거대한 녀석인데 무슨 종교 시설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한적한 곳에 혼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궁금하긴 하지만 저기까지 가는 것은 시간적으로 조금 위험하다.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개글이 있는 것도 아니라 저 건물에 대해서는 결국 여행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참새가 다리 사이를 비집고 생명력을 과시하는 풀잎 근처에서 뭔가를 먹고 있다.
다행히도 망원렌즈를 계속 마운트한 상태가 지체없이 촬영이 가능했다.
더 다가가고는 싶었지만 참새가 워낙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라.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볼일을 다 마쳤는지 금새 날아가 버렸는데, 덕분에 멀리서라도 한 장 남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지만 시골에는 정말 사람이 사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집이 꽤 많다.
이제는 그런 집을 찍을 때도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
예전 자전거 여행할 때 분명 빈 집이라고 생각하고 그 집 공터에 자리잡고 앉아
버너에 밥까지 지어먹는 느긋함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밥 먹는 도중에 그 집에서 할머니가 한 분 나오시는 걸 보고 기겁한 경험이 있기 때문.
허둥대며 사과를 했지만 할머니는 흔쾌히 웃으면서 한동안 말상대를 해 주셨다.
콘크리트가 여기저기 부서진 마당과 번호판도 없이 방치된 낡은 자동차와 헌 가구 사이로 고양이가 열 마리 정도 느긋하게 앉아있던 집이라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구나 싶어서 벌인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여행 중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긴 했다.
물론 이 정도 집이라면 절대로 그런 짓 하지 않았을 텐데.
한적한 주택에 사는 매력중 빠질 수 없는 매력이 이런 우체통이다. 집 주인의 특징마저 드러내는 개성의 산물.
엄니가 밭일하고 차 마시는 용도로 사용했던 경남 사천의 조그만 시골집 앞에도 나무도 만든 귀여운 우체통이 있었는데
한동안 쓰지 않고 방치했더니 우체통 안에 새가 둥지를 짓고 새끼까지 길렀던 추억이 생각난다. 물론 덕분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만든 것 처럼 보이는 이 우체통도 매력덩어리다.
스스로 꾸미고 가꿔서 자신의 색깔을 덧칠할 수 있는 점은, 비록 불편하긴 해도 주택만의 떨치기 힘든 매력이다.
대마도는 매가 매우 많다. 사람 사는 마을 주변에서도 그 수려한 날개를 펼치고 주위를 천천히 돌며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다.
자전거 여행때는 까마귀한테 쫒긴 적이 있어서, 덩치 큰 새가 머리 위로 날아들 때의 공포를 잘 알고 있는데
이 녀석 정도 되는 덩치가 머리 위를 돌아다니고 있으면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사실 사람을 덮치는 건 까마귀가 훨씬 많아서 매는 걱정할 필요가 없긴 하다.
날고있는 조류 사진은 거의 찍어본 적이 없어서 대충 담아봤는데
저 매력에 빠진 사진가들은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포인트를 찾느라 바쁠 듯.
시골 생활이란 게 이렇게 사진에 담기엔 아름답고 정겹지만 도시인들에게는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란 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깡촌중의 깡촌이 아니고서는 생활 편의시설이 나름 한국보다는 잘 갖추어진 곳이 일본이라
도시 생활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약간의 육체적 피곤함으로 치환할 각오만 있다면 그렇게 겁 먹을 일까지는 아니다.
시골의 정의를 어디까지 하는 것인가가 중요하기도 한데, 일본에서는 전철, 버스가 하루에 4번 정도 다니는 마을에서도
조그만 편의점 몇 개와 미니 그마트 같은 중형 슈퍼 정도는 영업을 하고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아예 그런것도 없는 깡촌이라면 생활 난이도가 만만치 않겠지만 그런 곳은 정말 특수한 환경이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듯.
대마도는 섬 크기에 비해 인구가 많이 적은 곳이라 이렇게 조금이라도 관광객이 돌아다닐 만한 노선 근처엔
풍경과 편의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편이라 왠지 머릿속에 연상되는 시골이라는 느낌이 조금 덜한 편이다.
고행을 하러 귀농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 밸런스가 적당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사람 흔적 하나 없는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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