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에도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다들 새롭다. 지나칠 만한 일상적인 모습이라도 일본틱한 분위기를 담는 데 부족함이 없다.

뭘 심어놔도 무럭무럭 자라는 곳인지 눈을 두는 곳 어디든 잔잔한 녹색이 인공미와 조화되어 푸근한 인상을 준다.

대마도는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라 느긋해 보이는 마을 풍경에 비해 자가용이 많이 보이고, 꽤나 인상적인 녀석들도 있다.

 

아무리 널널한 곳이라도 일본은 자동차 구입시 반드시 주차공간 확보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에 불법주차해 놓은 차를 구경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법령이지만 이미 늦기도 너무 늦었고 시민의식은 아예 시작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니 아쉬울 따름.

 

 

 

민가 바로 뒤편에는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뒤편에 언덕이나 산이 위치한 마을에서는 이렇게 방풍림 대용으로 대나무숲이 울창한 곳이 많다.

워낙 잘 자라기도 하고 필요할 때 죽순도 금방금방 캐 먹을 수 있고 꽃도 거의 피지 않는 특성상 키우기가 매우 용이하다.

 

삼나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엔 화분증으로 고생하는 바람이 한국에 비해 훨씬 많은데

대나무는 꽃이 거의 피지도 않고 한번 피더라도 숲의 모든 대나무가 일시에 꽃을 피우고 일시에 져 버리는 특성상

마을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녀석이다. 일시에 꽃을 피우는 것은 애초에 대나무 뿌리가 거의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

 

 

 

팻말이 썩어가는 모습이 조금 위태위태하지만 보기는 참 좋다.

물이 오염되어 있으면 잎 색깔도 탁하고 덩쿨 주변에 눈으로 보기 괴로울 정도의 진딧물이 바글바글한데

이곳은 꽤나 깔끔한 편이다. 애초에 오염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곳인데다가 깔끔하기로는 유명한 사람들이다 보니.

 

관광지는 거의 문을 닫은 6시 즈음이지만 여전히 햇살은 사진을 찍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좀처럼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는다.

 

 

 

짧은 시간 배를 타고 와서 멀미가 심하진 않았지만 항구에서부터 고생을 하다 보니 첫날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마을 주변의 꽃과 나무들을 찍으며 걷다 보니 슬슬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관광이라면 본인 입장에서 정말 볼 것 없는 곳이지만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 조용한 마을 거리를 걸어다니며 이름모를 수줍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

여행 하루차를 즐겁게 마무리하기에 충분하다.

 

 

 

분명 사람이 사는 집이지만 점점 자연에 먹혀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바로 옆이 산이다 보니 얘네들을 죽지 않게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늦기전에 끊임없이 정리를 해 줘야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할 듯 하다.

온통 녹색 물결로 덮혀 있어도 뭔가를 키우고는 싶은지 계단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담긴 화분이 줄지어 서 있다.

 

 

 

다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본에서 본 시골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집 치장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콘크리트로 떡칠된 도시보다 애초에 더 아름다운 곳이지만서도 소소한 곳에 공을 들여 꾸미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동안 신세를 졌던 나가노의 산속 깊은 마을 키소에서도 집 앞에 유럽이 기원인 듯한 난쟁이 인형 도자기를 문 옆에 놓아두고 있었고.

지금 나에게나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나 모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음의 여유가 만들어 내는 풍경이 저 조그마한 장식품 안에 들어있을 듯 하다.

 

 

 

일본의 3대 편의점이 하나도 없는 시골 섬마을이지만 도회지 못지 않게 차량을 꾸미려는 욕구는 강렬한가 보다.

자동차에 스티커 붙이는 건 대도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편인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자동차 전체에 붙이고 다니는 매니아로 발전할 수도 있을 듯.

매니아 문화에 관대한 일본에서도 그런 차들을 보고 있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이타샤(痛車)라 부를 정도인데

설마 이곳 대마도에 그 정도 자동차까지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밖에서 보는 산의 지형을 바꿔버릴 정도로 높은 거목들이 즐비하지만 그것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쭉쭉 뻗은 대나무들도 참 장관이다.

 

애초에 대나무는 나무라고 부를수도 없는 것이, 목본성이 아니라 초본성 식물이라서 사실 우리가 보는 기둥 부분은 전부 풀이기 때문.

그럼에도 하루에 십수 센티미터씩 쑥쑥 자라는 엄청난 생명력을 보여 주니 여러가지로 묘한 녀석이다.

 

유치원 가기도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한 그림책에서는 대나무의 텅 빈 속을 이용해 물총을 만드는 방법이 그려져 있었는데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여서 한참 동안 그걸 만들어 물놀이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곤 했었다.

불행히도 주변에 대나무 따윈 보기도 힘든 도심 한복판에서 자라다 보니 한 번도 실행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런 곳이라면 대나무 물총 쯤은 다들 한 번씩 손에 쥐어보는 것일까.

 

 

 

문을 작고 아담하게 만드는 건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밀집지역 주택은 거의 대부분 이런 일본식 건축 방식을 따라 대문이 매우 작았다.

언덕 위의 부자들 집은 자동차가 들어갈 정도의 거대한 검은 철문이 위쪽의 뾰족한 창살과 어울려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줬었고.

 

어릴 적엔 제주도의 미덕을 들먹이며 도둑이 없었기에 대문도 없다는 식의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꼭 그렇다기 보다는 수백년 전 부터의 건축 양식 차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애초에 마당있는 집이라는 개념은 일본에 정착된 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으니까.

 

 

 

얼마 걷지 않아 다시 이즈하라 시내로 진입한다.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하며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다지 유명하진 않지만 대마도 특산인 오징어와 톳을 패티에 섞은 '츠시마 버거'라는 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 가게를 찾아봤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휴일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일본의 햄버거 하나로 배를 채우기는 무리지만.

 

토박이라면 몰라도 홀로 여행자가 뭔가 특출난 식사를 즐기기엔 힘든 곳이라 그냥 쇼핑몰 티아라 안에서 적당히 골라서 숙소로 가지고 가기로 한다.

시마토쿠 쿠폰을 사용하면 경비도 절약할 수 있으니 배를 채우는 데는 문제 없을 듯.

 

골목 안에서 조그만 놀이터를 보고 여느때처럼 직업병(?)이 도진다.

자전거 여행중이었다면 훌륭한 숙박지가 되었을 텐데.

 

 

 

골목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마토쿠 쿠폰 가맹점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이 조그만 서양식 바는 한국인 사절이라는 단어도 당당하게 문 앞에 걸어놓았다.

내부를 슬쩍 보니 나무로 된 카운터에 아기자기한 깃발과 뱃지들이 벽에 걸려있는 이국적인 분위기인데

그래서인지 선전 간판도 영어로 적혀있는 것이 나름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있는 듯 하다.

 

인터넷이 되기 때문에 일본의 인기 게임인 몬스터 헌터도 플레이 할 수 있다고 적은 것 까지는 센스를 느낄 수 있는데

한국인 사절이라는 팻말을 걸 정도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등산복 입은 중년층 이상 단체 관광객들이 이런 곳에 들어가기나 할까 싶은데.

 

그냥 주인이 혐한론자라서 이유도 없이 사절하는 것인지, 예전에 크게 당한 적이 있었기에 그러는 것인지

이 곳의 역사를 알 리 없는 본인으로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기분이 편하지는 않다.

 

 

 

버드나무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개천을 다리 위에서 감상하며 처음 출발지로 다시 돌아온다.

정말 깡촌중의 깡촌이 아닌 이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파칭코 가게도 도시의 그것처럼 시끌벅적하지는 않다.

관광객이 아닌 주민 상대로 하는 가게들은 벌써부터 문을 닫고 길거리는 점점 한산해진다.

 

한적한 곳이기는 한데 관광객이 한꺼번에 많이 오면 이 곳은 왠지 소화불량에 걸린 것 처럼 어색해 진다.

굳이 같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없는 조용한 곳을 항상 추구하며 여행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인적이 없는 다리 위에서 조용히 서 있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을 듯.

 

 

 

다리 위엔 의자도 마련되어 있고 대마도의 특징을 나타내는 그림도 새겨져 있다.

왼쪽의 츠시마 삵은 10만년쯤 전에 이곳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을 당시 건너온 녀석이라고 하는데

섬에 사는 삵이 그렇듯 이쪽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이라 실제로 여행중 야생 삵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인지도로 친다면 20만년도 전에 격리되어 완전히 분화된 오키나와의 이리오모테 섬에 서식하는 삵이 유명한데

이곳도 일단은 종 분화가 일어난 아종 삵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녀석이긴 하다.

 

 

 

 

자국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보다 부산이 더 가까운 곳이다보니 한국인들을 위해 이런 그림도 박아놓았다.

실제로 강점기 시절에는 당일치기 놀러갈 때 후쿠오카보다 부산쪽으로 훨씬 많이 가기도 했다.

멀리 보자면 조선시대 때도 후쿠오카쪽보다는 조선쪽과 무역규모가 컸고.

 

잘사는 나라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일본도 최근 한국과 중국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주변국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편이었다.

심지어 2010년 일본에서도 나를 보고

'지금 북한하고 휴전중인데 한국 놀러가도 되나?' 라던가 '한국인들 상당수가 일본인 보면 두들겨 팬다고 들었는데' 라는 말을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의 일베나 디씨같은 쓰레기 집합장에서 나오는 말과 비슷하게 '한국에 가면 강간당해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소문 정도는 꾸준히 나도니까.

물론 한국이 과하게 안전불감증인 것처럼 일본이 해외 여행에 겁을 좀 먹는 성격이기도 하니 정말 순수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는 객관적으로 알려줄 뿐이지만.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저녁장을 보기 전에 모스버거로 들어간다.

딱히 버거가 땡겨서는 아니지만 생각해 놓았던 츠시마 버거를 먹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도 했고, 편의점도 없는 이곳에 무려 모스버거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해서.

 

50대 중반 혹은 6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아주머니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어서 조금 놀라긴 했다. 확실히 대마도의 인구는 심각한 고령사회이긴 한데.

모스버거는 주문을 받고 나서 패티를 굽기 때문에 확실히 다른 버거에 비해서는 좀 더 따끈하고 폭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진한 토마토 소스와 싱싱한 양파는 이 코딱지만하면서도 비싼 모스버거를 그래도 완전히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재료.

 

특히 요즘 점점 말라 비틀어져가는 타 회사들에 비해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는 두툼한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일본에서는 감자튀김을 선택해도 캐첩이 기본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매번 추가를 해야 하는게 조금 귀찮지만

일회용 비닐주머니에 담겨져 어디 부어서 찍어먹기 참 난감한 한국에 비해 반드시 제대로 된 접시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마음에 확 와닿는 일정이 아니라서 일기를 그렇게까지 길게 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햄버거와 함께 여행의 기록 남기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터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바로 옆 티아라 식품관으로 향한다.

대마도쯤 되는 곳에 이런 복합쇼핑몰이 들어서 있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 편중을 생각할 때 그렇게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관광객 수요를 충족시키는데는 또 이만한 곳이 없으니 계륵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츠시마 삵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은지 158일째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사실 대마도의 분위기라는 게 워낙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보니 158째 사고가 없었다는 게 신기하기는 커녕

159일 전에는 삵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긴 하다.

 

물론 인명사고와 달리 고양이과 동물은 자동차같은 빠른 물체와 조우했을 때 일단 상대를 확인하는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는 습성이 있어서

사람보다 훨씬 빈번하게 로드킬이 일어나다 보니 저 정도 기록도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시마토쿠 쿠폰은 1천엔 단위로 사용할 수 있으며 1천엔 이하의 물건에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뭐가 어찌됐든 1천엔 이상 먹거리를 사야 한다. 컵라면이나 과자 따위로는 방금 전 모스버거까지 먹었던 본인으로서 조금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적당히 비싸다 싶은 것들을 골라본다. 이미 관광객들이 한바탕 쓸어간 탓인지 왠만한 즉석요리 코너는 텅텅 비어있는 상황.

 

닭꼬치 한 접시와 초밥, 음료수를 구입하니 1500엔 조금 넘게 나온다. 시마토쿠 한 장과 잔돈으로 계산하고 나니 조금 뿌듯하다.

일단 5천엔을 주고 6천엔짜리 쿠폰북을 샀으니 이럴 때 계산하면 이득 본 듯한 느낌.

아무래도 티아라 쇼핑몰은 이즈하라의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물가가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쿠폰의 묘한 매력 때문에 이것저것 쓸어담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짐에 틀림없을 것이다.

 

시력이 나쁘지도 않지만 내 방 PC 모니터의 절반도 안되는 아날로그 TV를 실눈으로 간신히 쳐다보면서 느긋하게 닭꼬치와 초밥을 흡입한다.

대마도는 거리상 후쿠오카와 가깝지만 특이하게도 나가사키현에 소속되어 있어서 TV 방송도 기준 물가도 모두 나가사키를 따라간다.

 

TV가 작아서 좀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는 방송이 몇개 나왔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시계 장인이 만들어내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단위의 초정밀 기계시계를 만드는 다큐였는데

본인의 손톱 끝보다도 작은 부품들을 하나하나 조립해가는 광경은 마치 신적인 존재가 우주 하나를 탄생시키는 모습처럼 보인다.

시계엔 관심이 없지만 장인들의 노력과 신기에 가까운 솜씨만큼은 TV를 쳐다보는데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이불과 배게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에 기분좋게 잠들기는 참 어려웠지만 어쨌든 여행은 여행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눈을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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