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진에 도착하니 해는 벌써 저물어가고 있다. 일단 이곳에서의 계획은 친구한테 부탁받은 게임소프트를 구매하는 것.
어젯밤에 아이패드로 잠시 위치 파악을 해 놨으니 이번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찾아간 애니메이트에는 이름 그대로 애니메이션 관련 물품밖에 찾을수가 없네.
원래 게임소프트도 팔지 않았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후쿠오카 애니메이트는 와 본적이 없으니.


걸어가는 도중 나름 하카타의 명물이라는 포장마차도 한장 남겨봤다. 한국과 가까워서 그런지 여느 지역보다 포장마차가 활성화 되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대부분 맛은 보통이고 가격은 좀 비싼 편이라고 하니...
분위기를 즐기는 의미에서는 한번쯤 경험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본어가 어느정도는 되야 이야기나 좀 하며 놀 수 있으니
대다수의 한국 관광객들에겐 그냥 둘러보는 정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포장마차라서 좀 아저씨틱한 구수한 음식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어제 봤던 TSUTAYA에 가서 중고품 소프트를 하나 구입했다.
친구도 괜히 비싼 새거 살 필요 없이, 저렴한 중고 있으면 구해오라고 했으니까.
참고로 친구가 사 달라고 한 녀석은, 이 블로그의 피규어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初音ミク)의 리듬게임.

대략 이런 녀석들이 나오는 게임. 닌텐도 3DS라는 게임기는 3D 안경이 없는 맨눈으로도 입체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실제로 친구한테 넘겨주기전에 플레이 해보니, 집에 놓여있는 피규어가 그냥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엄니한테도 한번 보여드리니 쪼그만 것들이 쪼물쪼물~ 이라고 귀여워 하시더군.

이번 여행에서는 유후인 왕복 버스비 이외엔 돈 들어갈 데가 밥먹는것 밖에 없기 때문에
텐진에서 좀 괜찮은 일식집이나 초밥집에 들어가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유후인에서 먹은 것들 덕분에 배가 고프지 않고, 친구 동생분이 부탁한 용품 사려면 다시 하카타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만약 음식점에 들어갔다간 하카타엔 9시는 되어야 도착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자금이 널널한데 시간이 없어서 계획했던 음식을 못 먹고 가는것도 참 희귀한 일일세.
덕분에 스마트폰 에버노트에 빼곡히 적어왔던 텐진과 하카타의 맛집 리스트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100엔버스를 타고 하카타에 도착해서 역 건물에 위치한 잡화용품점 도큐핸즈에 들어간다.
대충 저곳이라면 없는 것 없이 팔고 있으니. 그런데 막상 돌아보니 폐장전에 한바퀴도 둘러볼 여유가 없다.
급하게 문구용품 코너에 들어가서 후다닥 찾아보니 일단 심 없는 스테이플러가 있긴 한데, 동생분이 부탁한 것은 아니다.
다른 곳을 전부 둘러봤다면 어쩌면 찾을수도 있었을 테지만, 슬슬 문 닫힐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그냥 그걸로 구입.
소소한 에피소드로, 직원이 그 스테이플러 가격을 몰라서 다시 전시된 곳에 가서 표시된 가격을 보고 가격을 찍더군.

쇼핑이나 여러가지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텐진은 하루로도 모자라고, 캐널시티도 그런데다, 이곳 하타카역의 쇼핑센터도 어마어마해서
그야말로 즐겁게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느긋하게 시간이 남아돌 때 한번쯤 스윽 둘러볼 기회가 아니면 갈 일이 없는 곳.
이 건물 반대편에는 거대 전자기기 체인점인 요도바시 카메라가 있어서, 얼마 안남은 시간동안 최신 카메라나 좀 구경할 겸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기대했던 캐논의 1DX, 니콘의 D4, 올림푸스의 OM-D 등등 최신 제품들은 사진만 달랑 놓여져 있는 대참사가...
결국 소득이랄 것은 후지필름의 최신 카메라 X-PRO1 을 조금 만져본 것 뿐. 렌즈 성능은 훌륭하지만 바디 성능이 필름시절과 변한게 없었다.

실망하며 가게를 빠져나와서 근처에 보이는 라멘집에 들어갔다.
이미 왠만한 일식집은 문닫은 상태이고, 그렇다고 그냥 들어가기엔 뭔가 아쉬워서, 배는 고프지 않아도 여행 기분을 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세트메뉴로 챠슈 돈코츠 라멘과 밥과 만두 5개까지 따라나와도 어제 먹었던 다자이후의 라면 한그릇보다 싸다.
단보 라멘이 조금 비싼 면도 있고, 이곳의 세트메뉴가 30정 한정이라서 좀 저렴한 탓도 있고...
그런데 밤늦게 찾아갔는데도 아직 주문가능하다는데 오히려 좀 불안해지기도 했다.

뭐, 나쁘지 않은 맛이지만 확실히 다자이후의 단보 라멘보다는 국물의 진함이 확연하게 떨어지는게 느껴진다.
챠슈는 훨씬 굵직굵직한데, 맛은 좀 덜 베여있는 편이고. 그냥 역 근처에서 늦은 시간까지 직장인들을 위한 대중 라멘집같은 느낌이니
큐슈 라멘대회 1위라는 집과 맛을 비교하기엔 좀 불공평할 수도 있겠다.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 KFC가 아직 문을 열고 있어서 치킨 두조각 사들고 간다. 밤에 TV 좀 볼때 입이 심심할 수도 있으니.
일본 프로그램중에서 제일 재밌게 보는 'ナニコレ 珍百景'(일본 각 지방에서 신기한 것들을 투고받아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방영하지 않아서
그냥 적당히 채널 돌려보는데, 재미있는 과학, 역사적 지식을 소개하는 방송에서 '안티키테라의 기계'가 나와서 재미있게 봤다.

학생시절 나의 지적 호기심을 무한히 충족시켜준, 현존하는 가장 미스테리한 기계장치인 안티키테라의 기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전 그리스에서 제작된 일종의 컴퓨터이다.
1900년대 안티키테라 섬 앞바다에서 건져올려진 후에도, 수십년동안 용도가 무엇인지 밝혀내질 못하고 단지 시계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X선 사진으로 촬영해본 결과, 얇은 기계속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톱니바퀴 수십개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제서야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이 녀석은 태양와 달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천문 컴퓨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순히 움직을 표시해 주는 기계가 아니라, 수많은 태엽과 톱니바퀴의 조합으로 바깥쪽의 크랭크를 돌리는 행동에 의해
날짜에 맞춰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최신 현대장비와 거의 오차없이 계산해주는 컴퓨터의 일종이다.
2천년 전의 물건이지만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에 근거해 만들어졌으며, 윤달로 인해 어긋나는 1년 주기까지 계산할 수 있다.

 

그리스 박물관에는 이 기계를 복원한 장치가 전시되어 있는데
도저히 2천년전의 물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정밀함 때문에, 역사적으로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로 분류되기도 한다.

참고로, 마야의 수정 해골이라던가 하는 미스테리 물건들은 이미 옛날 옛적에 가짜라는게 밝혀졌다고 TV 프로그램은 소개했는데,
이 안티키테라의 기계는 정말 2천년 전에 만들어진 기계로 공식 인정되어 있다.

오랜만에 이 기계를 접해서 기분이 좋다. 학생 시절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 세계의 미스테리함에 그저 감동받던 기억이 새록새록.
물론 지금도 세계는 미스테리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미시과학과 천문학에 있어서는 그때보다 더욱 미스테리가 늘어만 가니까.

 

다음날 마지막 조식을 배불리 먹고 하타카 항으로 향한다.
터미널엔 약국이 없어서 한국쪽 카운터에서 하나 받았는데, 직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 멀미약은 무지 강한거라고 한다.
오늘은 파도가 적다고는 하는데, 부산에서 올때 워낙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서 일단 먹어보기로 한다.

올 때는 코비, 갈 때는 비틀이라는 배를 탔는데, 둘다 원리는 같다. 소속 국가가 다를 뿐.
하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해도 코비보다는 비틀의 내부가 깔끔했다. 내가 이런 생각 하지 않도록 해줄수는 없을려나.
의외로 부산으로 가는 이 배에는 거의 대부분의 승객이 일본인이었다. 환율 때문이기도 하고, 후쿠시마 일도 있고하니
부산으로 관광가는 일본인들이 많은 듯. 부산 소개하는 TV 가이드엔 대체로 먹을거리와 센텀시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여행 내내 찌부둥한 날씨가 돌아가는 날에는 화창하다 못해 찢어지게 푸르다.
아침엔 정말로 '그냥 배 포기하고 나중에 편도 하나 따로 사서 갈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웠다.
하지만 저렴한 배편으로 왔기 때문에, 편도를 다시 구매하려면 20만원에 가까운 요금이 들기 때문에 포기.
그래서 그런지 정말 바다는 조용하고 흔들림도 적었다. 문제는 그런 와중에 강한 멀미약을 먹은 탓에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로 졸다가 부산에 도착.
어찌나 강한 녀석인지 부산에서 KTX 타고 대구로 올라오는 50분간도 거의 눈을 뜨질 못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난리도 아니었고.
평생 멀미약이란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멀미약은 신경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사실상 독약에 가까운 독한 약이라고 한다.
다음엔 중간에 토사물을 꿀떡하는 일이 있어도 멀미약은 먹지 말아야겠다는 소중한 경험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연다. 다시 현실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