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기는 저 멀리 앞으로 걸어가 버리고
어느 길로 가던 유후인 역 쪽으로만 가면 되니까 나도 따라가 본다.
민가인지 상가인지 모르겠지만 멋들어지는 담에 둘러쌓여 있다.
하수구 쪽도 깔끔하고, 어딜가나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관광 명소라는게 부럽기 그지없다.

 

직접 만든 것일까. 시골이니까 가능한 멋진 출입구다.
살짝 삐뚤어져 있는 모습이 더욱 인간미 느껴진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난간도 센스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높이는 것이겠지.

 

다리를 건너자 친숙한 코기와 함께 한 마리가 더 가세했다.
역시 주위에 주인은 보이지 않아서, 마음대로 산책나온 녀석인 듯.
둘 다 외지인들에게 별로 친근하진 않지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흰둥이 녀석은 별로 관심이 없어보이는데
코기쪽은 흰둥이가 굉장히 신경쓰이는 듯. 슬그머니 저 녀석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단순히 좋아서라기보단, 서로 경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카메라가 신경쓰이는지 한번 쳐다도 봐 주고.

 

결국 저렇게 냄새를 맡다가 분위기가 험악해 져서 으르렁거리며 싸움 모드에 들어가고 말았다.
왕실 귀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코기는 역시 양치기견이라 주변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심이 강하다.
이번엔 자기가 먼저 다가가다가 된통 당한 형국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이렇게 마음대로 쏘다니는 녀석들의 제일 큰 일과가 영역표시다 보니
이런 녀석 둘이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게 기선제압 혹은 싸움이긴 하다.

 

개들이야 신나게 싸우게 놔 두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름다운 풍경은 예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일까, 이곳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꽤 많다.
이곳은 트릭아트 박물관. 최근 한국에도 여러 군데 생겨서 친숙한 곳이다.
물론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가 보진 않았다. 동행이 있으면 재미있는 포즈도 좀 시켜보겠는데 혼자서 들어가는건...

속을 사람이 있을까 싶은 트롱프 뢰유(속임수 그림)인데, 그냥 한번 웃고 지나치는 정도로 충분.

 

마음가는대로 걷다보니 상가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유후인 역에서 직선으로 뻗어있는 거리는 아니고 한 골목 안으로 들어온 곳인데
어째 사람 붐비는 건 이 골목이 더한 듯 하다. 아님 그새 관광객이 많아졌던가.

온천과 자연 경관을 즐기는 휴양지라고 하면 그래도 나이 지긋한 사람의 비율이 높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10명중 7명 이상은 아마 나하고 비슷하거나 더 젊어보이는 사람들이니
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원동력이 이런 거리에 숨어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많은 곳은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활기찬 유후인의 모습 역시 궁금하니까.

한국 돈으로 14000원쯤 하는 우산이다.
퀄리티도 그리 나쁘지 않고, 일단 유후인 특산품이라고 전시해 놨으니 꽤 저렴한 편이다.
일본 왕족이 사용하는 우산은 우산 장인이 손으로 제작하는데, 보통 한개 80~120만원 선.
예전에 국내 최대의 우산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살짝 눈이 갔다. 물론 살 필욘 없지만.

유후인은 생각보다 고양이가 많은 곳이었구나.
어지간한 녀석들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
도망가거나 경계하는게 아니라 무관심하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증거.
털고르기를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그냥 적당히 떨어져 사진만 남겼다.

 

천연효모를 사용해서 만든다는 빵집 마키노야(まきのや)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전시된 장난감들도 인공적으로 꾸민 느낌이 적어서 잘 어울린다.
나름 유명한 빵집이라서 빨리 찾아가지 않으면 금새 품절된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빵 기분이 아니라서 패스.

 

솔직히 말하자면 빵 한번 먹어볼까 아주 조금 망설였는데
골목에서 튀어나온 냥이녀석이 부비부비해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깔끔 쌈빡하게 빵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한참동안 이 녀석 만지작거리며 놀고 말았다.
조금 어린 녀석인데, 주위에서 귀여움 받고 자랐는지 사람 손을 참 좋아하더군.


오토 포커스가 되지 않는 수동 렌즈를 끼우고 있었던 터라 적당히 촛점 맞춰서 뷰파인더도 보지 않고 샷을 날렸는데
다행히도 단 한장의 사진이 그나마 그럭저럭 잘 나온 편이라서 더욱 기분이 좋다.
이 녀석은 3분쯤 나하고 놀다가 다시 골목길로 스윽 걸어간다.

 

잘 꾸며놓은 상가가 많아서, 사지도 않을 거 점원에겐 미안하지만 천천히 꼼꼼히 둘러보며 걷고 있었는데
좀 전에 킨린코에서 봤던 묘한 모양의 꽃이 이곳에서도 발견되었다.
개화한 꽃잎 색깔은 다르지만 분명 같은 녀석.


다행히도 가게에서 심어놓은 녀석이라 옆에 이름이 적혀있었다.
삼지닥나무(みつまた)라고 하는 중국이 원산지인 녀석. 원래는 나무껍질을 제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자생하지 않으며, 남쪽 지방이나 제주도에선 임의로 심어놓은 곳이 있다고.
이곳은 제주도와 위도가 같으니 이렇게 볼 수 있는 듯 하다.

 

이제 슬슬 뭐라도 먹어볼까 싶어서 걸어다녀 본다.
금상 코로케라는, 이름만 들어도 대강 이해가 가는 코로케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던데
줄 서서 먹긴 귀찮고 해서 좀 더 돌아다니다가 폭탄야키라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모양은 타코야키와 같지만 크기가 내 주먹만한 녀석.

예전에 도쿄의 우에노 아메요코 시장에서도 비슷한 녀석을 먹어본 기억이 있는데
그건 정말 맛이 없어서 땅을치고 후회했던 적이 있다.
이곳은 뭔가 좀 다른것 같기도 하고, 그 때의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시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터라 레귤러 하나 주문해서 먹어보기로 한다.

덩치가 너무 커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젓가락 없이는 먹지 못한다.
부드러운 속을 파먹어 보니, 우에노와는 달리 뭔가 여러가지가 튼실하게 많이 들어있다.
문어만 들어있는 타코야키와는 모양만 비슷하지 완전히 다른 요리다.
타코야키 매니아인 나로서는 이런 이단야키에게 조금 거부감이 있었지만
타코야키는 오사카 가서 실컷 먹기로 하고 새로운 경험을 즐겨본다.

맛 없진 않다. 적어도 우에노의 거대야키보다는 훨씬 낫다.

 

이 폭탄야키의 종이 측면에는 '이안에 들어있는 10가지 재료를 맞춰보세요'라고 적혀있다.
뒷면에는 성분표기와는 반대쪽으로 그 답이 적혀있더군. 재미있는 발상이다.
단지 일본어라는게 좀...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메뉴판은 전부 한글로 적혀있었는데도 말이다.

메추라기 알, 비엔나, 오징어, 바지락, 시메지버섯, 떡, 옥수수, 튀김조각, 양배추, 홍생강절임

먹다보니 정말 다 들어있었던 듯. 배가 작은 여성이라면 한개만 먹어도 절반쯤은 든든할 듯 하다.
드는듯 마는듯 보물찾기하듯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먹다보면 소세지든 버섯이든 팍팍 씹힌다.
살짝 신경쓰이는 점이 있는데, 대다수 한국 관광객이 이걸 '폭탄 타코야키'라고 부른다는 것.
이 녀석은 타코야키가 아니다. 문어는 안 들어있다.

 

흡족하게 흡입후 가게를 둘러보면서 걸어다니다가 유후인 버거라는 이름을 보고 다시 군침이 돈다.
유후인 버거는 일본에서도 맛있기로 유명한 명물 버거.
사실 이 녀석은 일본 최고의 햄버거인 사세보 버거에서 파생된 녀석이긴 한데
네임밸류를 제외하면 사세보 버거에 크게 뒤지지는 않는, 꽤 먹을만한 버거다. 미국인들에게도 나름 괜찮다는 평.
폭탄야키를 먹었으니 내 얼굴통만한 디럭스 버거를 먹을 필요는 없고 그냥 레귤러로 하나 주문.


바람이 좀 불어도 일기 좀 쓰기 위해서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장의 애마인 듯한 멋진 바이크와 어쩐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곰탱이가 시선을 끈다.

 

주문후 바로 만들기 때문에 따끈할 때 먹는게 최고다.
패티도 빵도 모두 수제품이고, 신선한 양상추와 두툼한 치즈, 베이컨 등등
꼼수 쓸것 없이 질로 승부한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녀석. 레귤러인데도 일본 버거 체인점에서 파는 어떤 버거보다 크다.

어지간히 꾹꾹 눌러서 압축하지 않으면 안 입에 넣기가 매우 힘든데
일단 무리해서 모든 재료를 한번에 입 안에 넣고 씹어보니 그야말로 버거 먹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간단히 말하면 이태원 버거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맛이 좀 얌전하다고 해야 하나... 불량식품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바로바로 구워낸 계란과 후추 맛이 가득 느껴지는 패티의 맛을 생각하면 훌륭한 한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다.
한국의 햄버거점은 한끼 식사는 커녕... 입이 심심할 때 오징어다리 대신 씹는다는 느낌일 뿐이니.

재료 자체의 품질로는 상위권에 들어가는 일본의 모스버거도 나쁘진 않지만
일단 덩치가 기본적으로 모스버거 2배는 되는데다가 듬직하고 굵은 재료가 훨씬 느낌이 좋다.

우적우적 씹어먹으면서 일기를 쓰고 있으니 그저 행복하다.
출발 시간까지 1시간쯤 남았지만 후다닥 써내려갈 수 있는 타이핑과는 달리
거친 수첩에 손으로 쓰는 일기는 머릿속 생각보다 필기가 느려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1시간쯤 쓰는건 일도 아니니 오늘 돌아본 유휴인의 풍경을, 중간중간 카메라의 도움을 받아서 정리해 나간다.
바로 몇 시간 전의 인상도 카메라로 확인하지 않으면 그때 그 감상을 되새기기가 힘들 정도니
이걸 그냥 사진만 담아와 한국에서 풀어내려고 하면 데이터 손실이 너무 크다.

저녁에 텐진에 도착해서 부탁받은 물건들을 구입하고 나면 후쿠오카 여행은 종료.
내일은 아침 일찍 배를 타기 때문에 사실상 하루 반 정도의 짧은 여정이다.
교통비와 숙박비를 극단적으로 줄인 여행이라서 이 정도만 즐기자 했지만
역시 짧은 여행은 아쉬움이 많다. 만약 배편 변경이 가능했으면 3일정도는 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한국 여행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왔으니 이번엔 이걸로 만족하자고 자신을 달래며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