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영화 좋아하긴 한다.
그런데 열정을 가지고 있진 않은 것 같다.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 영화를 보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별히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발품팔지 않고 그냥 오는대로 떠먹여 주길 바라니까.
하지만 뭐, 그게 나의 영화 취미에 대한 죄책감으로까지 발전될 필요는 없겠지.
단지 영화 보는걸 좋아한다는 선 이상으로 나 자신을 우쭐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는 있다.
오늘 밤 KBS 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몇몇은 나처럼 이렇게 주절대고 싶을 거라고 본다.
로리 콜리어 감독은 처음 듣는데, 당연하게도 필모그라피에 이 작품밖에 없어서다.
주연인 매기 질렌할은 '어댑테이션'과 '세크리터리' 등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쳐서 눈에 익긴 한데..
이 영화는 19세에 마약 남용과 강도죄로 붙잡혀 3년후 가석방으로 풀려난 셰리가 사회와 가족에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오빠 부부가 양육하고 있는 자신의 딸 알렉시스를 보고 희망에 차기도 하는 셰리지만
그녀를 끌어안은 사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냉혹한 법이다. 불안과 초조는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다시 마약에 손을 댄 셰리는 오빠 부부에게 딸을 빼앗길까봐 딸을 데리고 도주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결국 다시 오빠에게 돌아온 셰리는 자신이 알렉시스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지금도 도와주고 있지 않느냐는 오빠의 당연한듯한 대답에 '내가 스스로 부탁한 건 처음이야' 라고 흐느끼는 셰리.
이 감독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영화 내내 이렇게 아련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이다.
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가 만나면 장면 하나에서도 풍부하기 그지없는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어설픈 감정선 자극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동질감에서 우러나오는 설득력이 영화를 지배한다.
제목대로 셰리는 알렉시스보다 더 세상물정 모르는 아기에 불과하다.
아기는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한다. 본능적으로.
세상은 영화에서도 나타나듯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일 없이 냉정하게 쏘아볼 뿐이지만
감독은 셰리와 세상 둘 다 사랑스러운 자식을 보듬어 주는 시선으로 말을 건내 준다.
멜로, 가족드라마를 장르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나지만 이런 영화에서는 위안을 얻는다.
아직도 놓치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나는 이런 우연한 기회에 가끔씩 접할 뿐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대비하지 않았던 기쁨은 그 맛이 훨씬 진하고 달콤하니까.
늦은 밤에 멋진 영화 한편 발견한 기쁨은 로또 불발로 침울했던 마음에 시원한 박카스 한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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