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이나 기다려서 간신히 올라왔던 때와 달리 일단 여기서 30분 기다리고 나면 그 다음은 기다릴것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미센으로 올라가는 로프웨이중 밀리는 곳은 여기라서.
다른 한개는 6인승 케이블카가 수시로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


아무리봐도 4인승이 적당할 것 같은 미니 케이블카. 나처럼 면적넓은 사람은 이거 타면 옆사람에게 좀 미안하다.
내 옆에 한 명만 앉았는데 직원이 '한 줄에 3명씩 앉아주세요'라며 한 명을 더 밀어넣는 바람에 더더욱. T_T
내려오는 10분동안 숨도 안쉬고 고목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몸 큰게 죄는 아닌데 으흐흑...


미야지마에서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서 신사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변해버리기 때문에, 이걸 놓치고 가면 미야지마의 반밖에 보지 못한 것.

미센을 올라가지 전에 찍었던 사진과 비교해보면 금새 차이를 알 수 있을 듯.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했던 이츠쿠시마 신사가 땅위에 서 있다.


낮엔 배로밖에 가지 못했던 오오토리이가 드디어 관광객을 맨발로 맞아들이기 시작했다.
썰물때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이곳을 보러 오기 때문에 상당한 인파가 몰린다.


낮과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차 있던 물과 쓰레기 패트병 하나는 어디가고 처자 한 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혹시 음료수캔이 사람으로 변한다는 모 애니메이션이 현실에 재림한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중간중간 애니메이션 관련 발언을 은근슬쩍 흘리면 오타쿠라고 오해받는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대부분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번 여행기 중에 애니메이션 관련 발언이 속속 숨어있다.


가까이 다다가니 과연 명불허전이라, 내가 일본에서 본 토리이중에서도 손가락에 들 정도로 거대한 녀석이 대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도쿄의 메이지신궁 토리이, 쿄토의 헤이안신궁 토리이와 비슷한 급이 아닐까 싶다. 실제 크기는 앞의 두녀석이 더 크지만.
밀물 때는 바다 위에 떠 있어서 접근을 할 수 없었는지라 얼마나 큰지 현실적으로 감이 오지 않았지만 직접 다가가 보니 그 박력이 장난 아니다.


저 위에 동전을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지나보다. 외국인들까지 동전 던지기에 여념이 없다.
낮에 배타고 토리이 앞에서 뭔가 작업하던 인부들, 혹시 이 동전을 쓸어담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던질 동전이 있으면 불쌍한 여행자한테 밥 한끼라도 사주...


빌어서 이루고 싶은 소원이 그렇게 많은지 토리이 기둥에 틈만 있으면 거기다 동전을 구겨넣는다.
그래도 현실감각은 있는지 대부분 1엔이나 5엔짜리다. ㅡㅡ;


이런거 계속 끼워넣다간 기둥이 상하지 않나 싶었지만
바다위에 세워진 토리이니까 그 정도의 관리는 하고 있겠지.


정말로 손이 가게 만들뻔한 동전뭉치...
저거 다 긁어모으면 식사 한끼는 거든할것 같은데.
보는 눈이 많아서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바닷속에 잠겨 있던 기둥부분이 드러났다. 조금 혐오사진일 수도 있을 듯.
갯벌이 다 그렇듯 썰물 때의 이츠쿠시마 신사 앞바다는 온갖 동식물의 보고다.
처음에 토리이의 위용에 이끌려 온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갯벌에 앉아서 조그만 녀석들 구경하는데 정신을 뺏긴다.


이런 녀석이나


이런 녀석들.
그런데 주변 여기저기에 '굴'만은 잡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표지가 많이 서 있다.
굳이 그런 글을 쓸 만큼 굴이 널려있진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자기네들이 캐서 먹고 살아야 하나보다.


바다위에 떠 있는 거대한 토리이를 보고 옛 일본인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고취되었을지 상상이 간다.
근대화가 빨리 이루어진 일본이지만, 태평양전쟁 당시에도 온갖 미신이란 미신은 다 믿을 정도로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많이 혼재된 사회였으니.


기둥이나 표지판에 붙어있는 것들 중엔 거의 화석화되어버린 녀석도 있었다.
살아있는건가 싶어서 건드려봤지만 돌덩이였다.


썰물때의 또 한가지 재미.
센스있게도 밀물때는 잠겨 보이지 않는곳에 돌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썰물이라도 이츠쿠시마 신사로부터 바다까지 조그만 개천 비슷한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애교있는 돌다리.
사실은 없어도 얼마든지 넘어다닐 수 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표지판에도 적당히 적응해서 잘 살고 있는 녀석들.
음식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듯.
계단 여기저기에 굴이 붙어있던 흔적도 있지만 알맹이는 흔적도 없다.


신나게 찍고 갯벌 사이사이에 돌아다니는 애들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점점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몸이 상당히 피곤하지만 그래도 미야지마는 충분히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서 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자국 여행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버가 심한 일본이긴 한데, 일본 3대 절경이라는 곳은 가도 후회없는 곳임에 틀림없다.
(유럽 등의 정말 볼거리 가득한 곳에 비하면 일본 여행지들의 광고는 좀 과장이 심하다, 그렇게 있는 척 해서 관광객 끌어들이는 기술은 감탄할만 하고, 결코 나쁜 일도 아니지만)

실물을 직접 보지 않으면 감이 쉽게 안오지만, 붉은 주황색으로 치장한 거대한 오오토리이는 꽤나 멋지다.


지는 해를 뒤로하고 짧았던 미야지마를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썰물때만 나타나는 표지판에는 '오오토리이 안쪽으로는는 경내지역이니 조개캐기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오역 수정 -> 나 그냥 나가죽어야 할듯. T_T)
날씨 탓에 이츠쿠시마 신사의 밀물 썰물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관광객도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어지간히 볼 만한 건 다 즐기고 돌아올 수 있어서 뿌듯했다. 카메라를 맨 어깨는 뻐근했지만.

이제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 아껴두었던 여비를 투자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야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