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앞의 조그만 정원에서 사람만 보면 밥달라고 달려드는 잉어(붕어?)들을 감상하다가 로프웨이를 타려고 올라간다.
미야지마에서 가장 높은 산 미센(彌山)은 해발 535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로프웨이 타지 않아도 올라갈 수 있지만
나는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어깨 부러질 것 같은 카메라를 짊어지고 등산 한번 하면
주위 사람들이 어디 아픈거 아니냐 할 정도로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되기 때문에 얌전히 로프웨이를 탄다.
어차피 2일 프리패스 끊는게 여러모로 이득인 터라 일부러 로프웨이를 안탈 이유도 없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세워져 있었던 듯한 돌맹이들.
산에서 돌맹이를 쌓아 소원을 빈다는 풍습은 세계 각지에 많이 퍼져있나 보다. 중국이나 몽골도 그랬던 것 같은데.
로프웨이는 얼마 기다리지 않고 쉽게 탔다.
사실은 4인이 앉아야 적당할 크기의 쥐꼬리만한 케이블카에 6명을 우겨넣었다. 에어콘도 없다. 찔것 같았다.
아이가 끼어 있었다거나, 6명 모두가 일행이었다면 올라가는 동안 즐겁게 대화라도 하겠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앉혀놓으니 원래 이럴때 더 소심해지는 일본인들이라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다.
숨소리마저 조용히 내려고 노력하는 듯한 정적이 10분간 계속되었다. 535m 밖에 안되는 높인데도 꽤나 오래 걸린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아뿔싸.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인파가 줄을 서 있다.
미센 정상까지는 로프웨이를 한 번 갈아타야 했던 것. ㅡㅡ;
이게 또 방금 전처럼 6인승 케이블카가 수십 대씩 다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큰 20인승 단 두대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손님을 실어나르고 있어서
10분에 한번씩 20명의 사람을 태울 수 있는 것. 그래서 이 두번째 탑승장은 엄청난 병목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난 여행가서 맛있는 음식 먹는걸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로 여길만큼 먹는걸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당연한듯이 서 있는 음식점 앞의 긴 행렬에는 끼고 싶지 않다.
30분, 1시간동안 줄서서 겨우 먹을수 있는 음식이 정말 기똥차게 맛있다고 해도
무언가에 쫓겨서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
음식은 어디에서나 마음 느긋하게 먹는게 내 신조라서, 설사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10분 이상 기다려 먹진 않는다.
한마디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줄서서 기다리지 않는게 내 성격인데...
이번엔 어쩔 수 없는 경우다.
이미 여기까지 올라와 버렸고, 프리패스에 왕복요금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데 이걸 타지 않고 걸어간다는게 너무 아까워서.
1시간이라는 끔찍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내가 탈 차례가 다가왔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정말 케이블카가 2대밖에 없다.
정확하게 왕복 교차이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순간 정상 쪽에서도 케이블카가 도착한다는 뜻.
정말 일본인들 줄서서 기다리는 것 하나는 놀랍다. ㅡㅡ;
총 2시간에 가까운 기다림끝에 드디어 미센 정상에 도착했다. 사실 걸어 올라가는거나 거의 비슷한 시간이다. ㅡㅡ;
로프웨이 출구와 이어진 휴게소에는 '작은 물건이나 먹을 것등은 무료 락커에 넣어놓고 나가세요' 라고 주의문이 적혀있다.
원숭이들이 가져갈 수도 있기 때문에.
미야지마를 기대했던 이유 그 두 번째. 철장에 갖혀있지 않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원숭이를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정말로 바위 위에 무심하게 원숭이가 앉아 있다.
사람에겐 아예 관심도 없는 듯. 오랜 경험으로 이제 사람이 먹을걸 들고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섬 밑의 사슴들은 사람이 다가가서 만지거나 하면 조금씩 몸을 빼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이곳 원숭이는 전혀 미동도 없다.
사슴과 달리 원숭이는 정말로 만지면 안되기 때문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철저하게 주의를 따르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동물이라면 사람 빼고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는 원숭이가 제일 마음에 안든다.
사람하고 너무 닮아서일까. 성격 괴팍하고 욕심많고 생존 경쟁만큼이나 동족 안에서의 혈투가 치열한 점 등등.
이곳의 원숭이는 워낙 편안한 생활을 즐겨서 그런지 그래도 얼굴에 여유가 넘치는 거 같다.
미센 정상에서 보는 절경은 한 눈에 들어오는 세토 내해(瀬戸内海).
아쉽게도 쨍쨍하다고 할 만큼 하늘이 맑은 편은 아니라 약간 흐릿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볼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세토 내해는 지도상으론 얼핏 보기에 호수처럼 보이는 좁은 바다로, 그 안에 약 3000여개의 작은 섬들이 몰려있서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저 바다 어디엔가는 양아치 행세를 하며 신기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박살낸다는 인어아가씨도 있는 모양.
바다와 산이 맞닿아 있는 곳의 경치는 나쁜 곳이 별로 없을 거다.
로프웨이 기다리느라 고생 좀 했지만 올라오고 나서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열심히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다가와서 카메라 셔터 좀 눌러 달라고 하신다.
'난 일본어 모태요' 라고 둘러댈수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착각당하는 경우가 원채 많다 보니 이젠 그냥 익숙해졌다.
아마 내가 산더미같은 DSLR을 들고 있어서 부탁하기 쉬웠나보다.
카메라는 소니 A200 모델에 18-70 구번들 렌즈. 렌즈 성능이 좀 안습이라 내가 만약 A900 쓰고 있었다면 내 렌즈를 마운트해서 찍어드렸을 텐데.
오토모드에 맞춰진 상태라서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된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사실은 A 모드로 좀 조절해서 찍어드릴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나도 장비만 화려하지 생초보에 불과하니 아는 척 으스대는 느낌이 날까 해서 그냥 시키는대로 구도만 맞추고 찍어드렸다.
'2장씩 찍어주세요' 라고 웃으며 말씀하셔서 약간 화각을 달리해서 한 장 더 찍어드렸다. 뭔가 아는 할아버지로군.
병맛 포커스를 자랑하는 캐논의 예전 보급기들은 어떤 사진을 찍던지 2~3장 셔터 누르는건 기본이었다.
이 미센이라는 산은 정상부분이 완만한 길로 연결되어 있어 여기저기에 많은 볼거리들이 놓여있다.
대부분이 불교 관련 사찰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806년에 코우보우(弘法) 스님이 켜놓은 이래 1200년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는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그런데 시간상으로도 거기를 왕복해서 갔다오면 이츠쿠시마 신사의 썰물 광경을 놓쳐버릴 가능성도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
이 '꺼지지 않는 불'은 히로시마 원폭 공원 앞의 '평화의 등불'에도 쓰이고 있다. 미센에 있는 이 불에 끓인 물이 만병통치라는 소문도.
미야지마는 히로시마시 전체보다 더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세밀한 곳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여기서 1박 하는게 나을 듯 하다. 괜찮은 숙소 가격이 꽤나 후덜덜하지만.
그래서 거기까지 가진 못하고 전망대 바로 옆에 있는 사자바위(獅子岩)나 찍고 놀았다. 이게 왜 사자바위라 불리는지까지는 찾지 못했다.
전망대에는 동전을 넣어 작동하는 제대로 된 망원경도 있었지만 이렇게 생긴 것들도 있다.
몇개씩 세워져 있는 이 물건을 들여다보면 특정 지역이나 섬이 보인다나보다. 시코쿠(四国)나 츄코쿠(中国) 관련해서는 지식도 별로 없고 아는곳도 없어서
저기를 통해 보이는게 뭔지 잘 모르겠다.
뭐, 그런거 알고 가면 좀 더 우쭐하거나 여행 후기 풀어낼 때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모르고 가는 여행은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니까.
맨날 '아는만큼 보인다'며 여행 전 무슨 수능이라도 공부하듯이 책을 붙잡고 씨름하는 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가이드역할을 맡아가며 하는 여행으로 충분하다.
미센 정상의 풍경은 일본인들이 자랑할만큼 풍요롭고 차분한 멋진 광경이다.
사실 보기싫은 현대식 건물들이 밑에 주르륵 보이지만 않는다면
바다와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미륵봉에서 내려다보는 한국의 한려수도도 이곳 못지 않은 절경을 연출할 텐데.
그런 미세한 조건들이 합쳐진 탓에 이 곳이 그렇게 인기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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