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수다떨다가 새벽에 누웠는데 잠이 좀 일찍 깼습니다.
일행 분들은 여전히 잠에 빠져계셔서 살짝 카메라 챙겨서 밖으로 나왔네요.
가을이라지만 산막골의 새벽은 무지하게 춥습니다.

관사에서 폐교로 내려와서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고 돌아가기 전 감성샷이라도 찍어볼까 싶어서 이리저리 돌아봅니다.


어제의 숨가빴던 흔적이 드러나 있습니다.
처음엔 배불러서 먹을 수 있나 싶었던 볶음밥도 돌판 달달 긁어가면서 먹었네요. ㅡㅡ;


7시 반쯤 되었는데, 역시 농촌 어르신들인지 벌써부터 뭔가 들고 많이들 나가시더군요.


원래 사람 많이 올 땐 운동장 한 가운데서 캠프파이어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일행은 아니지만 누가 하고 갔던 흔적이 남아있군요.
장작 역시 거저 생기는 건 아니라서 다음에 올땐 저희들이 힘좀 써야 할 듯.


한여름에 오는건 모기때문에 조금 성가실 수도 있죠.
산막골의 진가는 추운 날씨에 발휘된다고 봅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구워먹는 삼겹살, 캠프파이어, 난로, 뜨끈한 온돌 등등...


폐교가 된지 오래된 터라 아이들이 놀던 흔적에는 세월이 덧씌어져 있네요.
우안선생님이 조만간 이곳을 떠나실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 폐교는 더욱 외로워질 듯.


해가 좀 떠오르기 전까진 산막골 전체가 안개로 자욱합니다.
아침의 안개나, 대낮의 시린 하늘이나, 한밤중의 별빛에 쌓인 산막골은 매 시간이 놀라운 풍경입니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불 속에서 명을 달리한 장작 속의 곤충들에게도 애도를... ㅡㅡ;


사람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양이가 다가옵니다.
애교를 가득 담은 울음소리. 이 녀석 원래 이렇게 사교성이 풍부하진 않았는데 실은 내숭쟁이였을지도.


사료를 좀 먹다가 어제 저희가 광란의 파티를 벌였던 돌판 위에 남은 밥풀떼기를 핥아먹네요.
원래 고양이 몸에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어차피 공기좋고 물좋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녀석인데
가끔 사람 음식 먹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가둬놓고 기르는 고양이도 아니라서 알아서들 살겠죠.


교정의 비탈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길래 슬쩍 옆에 다가가 앉았더니 금새 무릎 위로 올라와서 잡니다.
50분 정도 가만히 앉아서 얕게 그릉그릉거리는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네요. 행복했습니다.


10시쯤 되니 몸도 춥고 해서 다시 관사로 들어갔습니다. 일행들이 자고 있는 옆방에서 E-Book 이나 읽으며 졸다가 깨다가 하니
어느새 10시 반. 알맨님과 나침반님이 벌떡 일어나서 후다닥 짐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합니다.


돌아갈 때 항상 추곡약수터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아침은 따로 필요없네요.
이제 한동안 고양이가 쓸쓸해 하겠구나 싶어서 마지막까지 몸을 쓰다듬으며 놀아줍니다.


조금 만져주니 제 마음을 알았는지 알아서 들어누워 포즈를 취해주는군요.
다음에 만날 때도 건강하게 잘 놀고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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