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년에 하루 열리는 마츠모토 축제도 슬슬 끝을 향해 달려간다. 슬슬 도로에 주저앉아서 쉬는 사람들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일본의 8월 첫째 주 토요일이라는 시공간이 가지는 공포스러움은, 사계의 변화가 뚜렷한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신기루같은 항변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수도 없이 겪으면서도 오히려 북극 사람이나 적도 사람들보다 날씨에 덜 민감한 듯 하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본인 역시 11월의 싸늘한 날씨에 익숙해져, 그 때의 섬뜩한 더위가 벌써 사진 속의 추억처럼 바래지고 있으니까.

 

한바탕 날뛰고 나서 들이키는 음료수의 짜릿함이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일 듯.

4시간이나 계속되는 축제다 보니 지쳐 나가떨어질 참가자나 관광객들이 좀 생기리라 예상했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거리에 사람이 더 많아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춤 자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조금씩 줄어들고

삼삼오오 무리들이나 달달한 커플들이 자기네들만의 시간을 가지는 뒷풀이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밤까지 계속되는 축제라면 역시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축제가 끝나가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지금 이곳 축제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마츠모토 시 인구보다 더 많은 20만명이 넘는데

이 사람들 다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여기가 서울처럼 큰 도시도 아니고.

 

특히 축제 끝날때 까지 주요도로가 전부 보행자 천국이라서, 대충 다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싶다.

이런 축제 후라면 뒷풀이 거하게 하고 새벽에 한시간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전혀 힘든 일은 아니겠지만.

 

본인은 축제 장소 한가운데 서 있는 호텔에 투숙중이니 돌아가는거 하나는 신경쓸 게 없어서 홀가분하다.

 

 

 

짧지 않은 축제가 끝을 향해 달려가자 일본인 특유의 질서가 조금씽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것도 아니다.

아무리 마이크에서 떠들어대도 이미 힘이 다한건지, 춤 추는 도중에도 길을 건너려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사람들 통제가 되지 않는다.

진행요원이 대열 사이사이에서 '건너가지 마세요'라고 소리를 질러도 스스럼없이 건너가 버린다.

강제력을 가지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진행요원들은 그냥 속이 탈 뿐.

 

사실 춤추는 사람과 부딪친다거나 하는 사고는 사소한 것일 뿐이지만

운영위원회 입장에서는 어쨌든 제일 신경쓰이는게 물리적인 부상이니까.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은 이미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다행히도 본인이 보는 한 사고가 생긴 일은 없었다.

 

 

 

뭐 하는 팀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이 앞쪽에, 여자들이 뒤쪽에 서서 춤을 추는데

복장도 강렬하지만 안무 역시 일반적인 동작과는 달리 무릎과 허리를 지면에 엎드리듯이 굽혀가며 몸을 크게 휘젓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다른 팀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체력이 소모되는 안무인데, 다들 의무감에라도 휩싸인 듯 악과 깡으로 춤을 이어가고 있다.

 

복장을 봐서는 무슨 빠칭코 회사 직원들이거나, 아니면 폭주족 팀원들 같은 분위기.

사회적으로 눈총받는 그룹들이긴 해도 사실 축제 때 분위기 제일 잘 띄우는 사람들 역시 좀 놀아본 사람들이다.

상세한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참가 팀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는 건 확실히 기억한다.

 

 

 

축제의 규모에 비해서는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게 이 마츠모토 봉봉인 듯.

큰 축제는 원래 준비할 것도 많아서 아예 축제 준비를 전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다.

아오모리의 네부타 축제는 네부타라는 거대한 구조물 만드는 데 1년이 걸린다. 축제 역시 1년에 한 번씩 열리고.

축제 후엔 그 인형들 바다에 띄워 불태워버리니, 사실상 평생 축제 인형 만든다는 의미.

 

하지만 이 축제는 뭐, 의상 맞추고 안무 연습만 하면 되니 크게 부담은 없을 것 같다.

네부타 축제처럼 일본 3대 축제에 들어가는 유명한 녀석들은 인건비와 규모를 감당하기 힘들어

점점 찾아오는 사람도 줄고 축제 규모도 축소되어가는 분위기인데, 마츠모토 봉봉은 매년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해석이 필요하다. 특히 관 주도로 열리는 축제 관계자들은.

세계대회 열리는 기간엔 문화, 예술을 즐긴답시고 재즈축제 열고 잰척 하더니

대회 끝나니 재즈축제 없애버리고 치맥축제 따위나 열어서 거지들 줄세우기나 하는 꼬라지 보니 참 한숨밖에 안나오더라.

 

 

단지 지역 사람들 모여서 춤추며 돌아다니는 이 축제가

어째서 이 도시 인구보다 더 많은 20여만명의 관광객들을 매년 불러모으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돈 내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온 김에 좀 더 둘러보고 갈 만 하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축제가 돈을 밝히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결코 수면위로 스스로 올라와서는 안되는 양면성을 가진다.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러 온 거지 가게들 선전 보러 온게 아니다.

축제는 축제대로 관광객을 만족시켜줘야 그 뒤에 지갑이 열리게 되어 있는 것.

축제 참가에서 장사나 좀 하고 가겠다는 마인드 가지고 있는 회사들

그것보다는 아예 축제 자체를 회사들 선전하는 장소로 만들어 버리는 조직위가 더 문제이긴 하지만.

 

 

 

습한 더위 속에서 4시간 가까운 강행군을 하면서도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축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가장 단순한 증거일 듯 하다.

 

쉬는 시간마다 스피커에서 미아가 된 아이 보호하고 있다는 메세지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묘하게도 그리 걱정되지 않는 것은, 충분히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사고는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 때문일까.

 

 

 

거의 마지막 휴식시간이 아닌가 싶다. 어째 사람들은 점점 힘이 나는 듯 하다.

스피커에서는 여느 때의 안내방송이 아니라 뭔가 시상식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방송하고 있다.

 

몇몇 눈에 띄는 팀이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시상식장까지 가서 구경하는건 너무 힘들것 같아서 패스.

애초에 여기 참가한 사람들 중에 반드시 시상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은 없을거라 본다.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쳐가며 뿌듯한 기분으로 맥주 한캔씩 따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혼자 조용히 이곳저곳 누비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나 같은 홀로 관광객은 기분이 묘하다.

쓸쓸하다거나 초라하다거나 하는 기분은 아니고, 축제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구나 싶은 생각.

 

실제로 춤은 안 췄지만 또 하나 예정에 없던 귀중한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비록 이 축제를 보게 된 이유가 쓸데없는 자괴감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 또한 여행의 한 부분으로 각인되었으니까.

 

 

 

굉장히 화려한 총천연색 의상을 자랑하는 팀. 간판이 있긴 한데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쉬는 시간 외에는 이동하기가 힘들어서, 내가 참가 팀의 몇% 정도를 본 건지 알 수가 없다.

한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면 아마도 모든 팀들을 한 번쯤은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너무 심심할 테니까.

 

보통 축제 끝나면 뒤풀이로 또 한번 시끌벅적해 지는데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으면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궁금하다. 가게는 거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을텐데.

젊은 사람들은 벌써부터 인도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서 술 마시며 여자 꼬셔대고 있다.

나도 슬슬 편의점에서 먹을 거 좀 챙겨 나와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해서 타이밍 잡기가 힘들다.

 

 

 

마지막 춤이 시작된다. 으레 그렇듯이 참가자들의 목소리나 동작은 더욱 커진다.

4시간 동안이나 마징가 Z 같은 노래를 듣고 있으니 그것도 이미 익숙해져서 흥이 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남녀노소 참가할 수 있는 축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세삼스럽게 느낀다.

 

도로가에 위치한 전망 좋은(?) 가게 안은 벌써 사람들이 가득 앉아서 아련한 눈길로 행렬을 바라보고 있다.

기분같아서는 어디 가게나 패스트푸드점 같은데 들어가 마지막 마무리를 지켜보고 싶기도 한데

빈 자리가 있을리 없기 때문에 깔끔하게 포기하고 편의점에 들어간다.

 

화장실 가려는 사람들의 줄과 물건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섞여있어서 혼잡하지만

의외로 편의점에서 먹을거리 사는 사람은 적은지 도시락 같은 건 충분히 남아있는 상태였다.

하긴 축제날 편의점 도시락 사먹는다는 건 뭐랄까, 이곳 사람으로서는 이미 최후의 수단 같은 행동일 테니까.

나는 인파 헤치고 줄 서서 간신히 타코야끼 하나 집어물고 하는 짓은 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은 이상할 정도로 예정외의 이벤트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

히다 타카야마에 갔을 때도 운 좋게 그날 저녁 마을축제가 있었고.

 

축제 시작때까지만 해도 키소 마을에 가지 않고 하루 더 눌러앉아 있으려는 본인의 소심함에

매우 우울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활기찬 사람들의 축제를 구경하며 좀처럼 담기 어려운 사진을 찍어대고 있으니

그 죄책감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듯 하다. 내일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으니 당연히 키소로 향하겠지만, 그 전에 얼굴이 좀 풀려서 다행이다.

 

마지막 음악이 흐르고 춤은 모두 끝났지만, 한참 동안 동료들끼리 인사, 지나가던 지인들끼리 인사, 수고한 팀들간 인사 등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 시간이 흘러간다. 운영팀에서는 우수팀 시상하느라 정신이 없고 슬슬 사람들은 한잔 하러 가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등 소금이 물이 녹아내리듯 서서히 흐트러지는 집단의 모습이 보인다.

 

편의점에서 어렵지 않게 맥주 한 캔과 도시락 하나를 싸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9층의 객실에서도 여전히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운을 남긴다.

결국 축제가 끝난 지 한 시간이 넘어서야 드디어 모든 만남이 끝나고 고리는 해체되어 서서히 흩어진다. 본인은 이미 목욕을 마친 상태.

맥주 한잔 들이키며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축제 현장에 건배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