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소 후쿠시마는 요즘 원전문제로 소란스러운 그 후쿠시마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나가노현 나카센도 역참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이런 산골마을이 나름 유명했던 이유는 예전 에도 막부시대 쇼군이 지방권력 견제를 위한 '산킨 코타이'(參勤交代) 제도 때문.
쇼군의 영향력이 미치기 어려운 변경지 영주들을 불러들여 수도 에도에서 1년, 자신의 영지에서 1년 근무하게 하는 근무지 이동 제도였다.
영주의 가족들 역시 에도로 불러들여 사실상 인질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영주들에게는 경비 부담도 크고 힘들었던 제도.
비인간적인 제도이긴 하지만 권력 유지에의 열망은 이런 것쯤 눈에 밟히지도 않을 듯 하다.
아무튼 그 산킨 코타이 제도로 인해 지방과 에도를 오가는 사람은 줄어들 줄 몰랐고
에도로 향하는 주요 행로였던 이곳 키소 후쿠시마는 덕분에 끊이지 않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업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
이곳 키소 후쿠시마에서는 당시 행렬을 재현하는 축제를 1년에 한 번씩 열고 있는데
본인이 이곳에 머물렀던 2009 년도엔 비가 심하게 와서 축제가 중지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단순한 축제라면 비가 와도 큰 문제 없겠지만
이 가장행렬에 사용되는 의상이나 소도구들은 실제로 오래 되기도 한, 상당히 가치있는 소품들이라
비를 맞아도 될런지 하는 주최측의 고민이 있었다고. 다행히 비닐 비옷을 덮긴 했지만 축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예전에 비해 상당히 규모가 축소되고,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았는데
비 때문인지 그런 걱정 때문인지 조랑말 위에 탄 영주의 얼굴이 조금 더 엄숙해 보이는 듯 했다.
실제로도 사실상 인질로 불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기분 좋게 출발할 수 있을리가 없었을 듯.
에도까지는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이라, 쇼군에게 바치는 진상품과 여행 도구들, 시종들과 호회무사까지 합해서 100여명이 넘는 무리를 이루었다고 한다.
의도는 못마땅하지만 그 여파로 인해 산속 역참마을들이 번성하게 된 아이러니함이 돋보이는 역사의 흔적.
키소의 영주가 키소 후쿠시마에서 에도까지 향하던 길을 마을 안에서 압축해서 재현하는 것이 축제의 본편.
원래 키소에서 에도까지는 7개소의 관문을 지나가야 했는데, 축제에서 실제로 에도까지 갈 수가 없으니
마을 각각의 지점에 가상의 관문 7개를 새워놓고 그곳을 천천히 지나가는 것으로 해결해 놓았다.
천천히 행렬 뒤를 따라갈 수도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만 당시엔 비가 많이 와서 사람들의 참을성도 옅어진 상태였고,
본인은 원래 아르바이트 중에 사장님이 한번 가보라고 시간을 내주셔서 잠깐 들렀던 터라 그렇게 느긋하게 돌아다닐 순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거기서 쿠루마야의 진짜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쿠루마야의 주방을 담당하는 치프를 사장님이라고 불러서 그냥 입에 붙어 버린 셈이데
서류상 쿠루마야의 진짜 사장님은 치프의 와이프의 오라버니 되는 분이다.
몸이 안좋아서 간간히 보조 업무만 할 뿐이라 실질적으로 가게를 이끌어 가는 분은 당연히 주방의 치프인데
앞서 말했듯 다들 친인척 관계에다가, 어릴 적부터 이 마을에서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라 그런 거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
여담으로, 치프와 와이프분의 젊은 시절 열애 행각은 마을 안에서도 유명했다는 듯.
아무튼 거의 모든 축제 준비를 마을 사람들이 직접 해 온 탓에, 진짜 사장님도 며칠 전부터 열심히 일 돕고 있다고.
굽고있던 곤들매기(イワナ) 꼬치구이를 하나 집어주신다. 돈을 지불하겠다고 해도 안 받으니시 난감하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자연종을 볼 수 없는 녀석인데, 이곳에서는 수는 줄었어도 아직 지역 대표별미로 꼽히고 있다고.
축제에서 파는 꼬치구이는 숯불로 거진 12시간 가까이 오랫동안 천천히 구워낸 녀석이라 반쯤은 쥐포화 되어 있다.
민물고기 특유의 깔끔한 맛과 굵은 소금의 조화가 아주 예술.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것 처럼 좍좍 뜯어먹으니 이거 한마리가 아쉬울 정도로 맛있다.
좀처럼 호들갑 떨지 않는 내가 맛있다고 소리를 지르니 사장님은 기분이 좋은지, 이것도 한번 먹어보라고 구수한 향기 나는 곳으로 데려간다.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꼬치구이로 보인다. 물론 숯불로 구워내니 맛이 없을리는 없겠지만.
사장님이 이녀석은 이노부타(猪豚) 라고 하는데 이노시시(맷돼지)와 부타(돼지)의 교배종이라고.
일본에서는 마을 축제에 간간히 나오는 녀석이고, 맷돼지 고기의 쫀득쫀득한 육질을 유지하면서 산짐승 특유의 강한 비린내를 없애려고 만든 고기.
돼지고기 아닌가 싶어서 한입 씹어봤는데 확실히 씹히는 맛은 적당히 길이 든 맷돼지처럼 쫄깃하다. 맛은 돼지고기와 큰 차이 없다.
식감에서 나는 차이가 의외로 큰 편. 살코기를 씹는데 마치 닭이나 오리의 껍데기 씹는 듯한 탄력이 있다.
키소 마을의 축제에 빠지지 않는게 이 곤들매기와 이노부타 꼬치구이라고 한다.
물론 예전의 곤들매기는 마을 옆을 흐르는 강가에서 직접 잡은 자연산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잡을 양도 없고, 수렵이 허가되지도 않기 때문에 양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평균 해발 900m 를 넘는 나가노의 수려한 산악지형을 보고 있으면 깨끗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겠지만, 사실 80년대 초반까지 나가노의 이런 산골마을에서도 환경오염이 심각해져서 악취때문에 강가에 다가가지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노력노력해서 다시 1급수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 나가노의 자연환경이라는 막강한 백업이 있었던 탓도 있지만, 한번 망가진 자연을 다시 돌리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곤들매기 꼬치구이가 어울리는 마을이라는 표현이 언제까지고 어울리는 곳으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옛 추억에 젖으며 휴게소 앞의 '카미무라'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좀 깜짝 놀래켤 주고 싶었지만 소야노 어머니가 나를 보고는 흥분해서 전화를 동네에 뿌려버리는 바람에 살짝 잡임해서 놀래켜 준다는 계획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다들 엄청 반갑게 맞이해 준다. 오너 아주머니의 성이 '카미무라' 라서 가게 이름도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일반적으로 이 정도 시골마을의 옷가게 혹은 잡화점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싶을테지만 이곳 오너인 카미무라 씨는 젊었을 때 부터 미국 유학생활이 길었고 지금도 일년에 서너 번씩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패션 관련된 곳에 방문해서 트렌드를 접하고 조사하고 있는 프로페셔널. 심지어 따님 역시 자기 결혼식 때 입을 드레스 몇 벌의 디자인을 스스로 고안해 만들어내는 정도다. 메인 드레스는 어머니인 카미무라 씨가 수십년 전 미국에서 스스로 디자인 해 입었던 그 드레스를 물려입었고. 소비층의 연령대를 감안하면 조금 수수해 보이는 제품이 많은 편이지만 어지간한 도시 패션에도 전혀 꿀리지 않는 디자인의 의류, 신발 등이 배열되어 있어 결코 촌스럽지 않은 곳이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던 나에게 소바집 쿠루마야를 소개해 준 분도 이 곳 카미무라 씨의 따님. 사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 여행자를, 돈 관계로 지인에게 소개한다는 게 굉장히 껄끄러운 일이다. 카미무라 씨도 훗날 처음 소개할 때는 조금 걱정도 되었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덕분에 나로서는 소개해 준 사람들의 체면을 봐서라도 농땡이 칠 수가 없었고, 다행히도 평판은 좋아서 카미무라 씨의 신뢰도 얻을 수 있었다. 이곳의 특산품인 일본식 샌들인 게타(下駄) 소개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달라고 해서 가볍게 만들어 주었는데 돈 받는거 아니라고 그렇게 사양해도 결국 그 몇 글자 되지도 않는 번역문에 작업료까지 받아버린 기억이 난다. 이곳의 게타는 키소 명물인 측백나무를 사용해 만들어, 나가노의 험한 겨울날씨와 년교차에도 나무가 깨어지지 않고 탄력을 유지한다. 가장 신성한 신사나 황궁의 목조 유지, 보수를 위해서 사용하는 키소의 나무는 일본에서 최고로 치는데 그 키소 오목(木曽五木) 중 하나가 이 측백나무. 일본에서는 네즈코(ねずこ)라고 한다.
카미무라 씨 따님과 남편이 경영중인 조그마한 선술집은 불행히도 가게를 통째로 빌리는 단체 예약이 잡혀있어 오늘 저녁은 다른 곳에서 해결해야 할 듯 하다. '라다' 라는 곳에 가자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외식하러 다녀본 적이 없어 잘 모르는 곳이다. 비가 슬금슬금 내리고 있었지만 카미무라 씨는 가게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정원을 보여준다. 3평도 안되는 가게 앞 짜투리 공간에 스스로 흙을 고르고 벽돌로 길을 내고 식물들을 심어 만들었다고. 너댓 걸음만 옮기면 완주가 가능할 정도의 작은 공간이지만, 카미무라 씨에게는 자신의 힘만으로 일구어낸 아름다운 정원이다. 자연 아름답기로 자부심이 대단한 이곳에서,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부호인 카미무라 씨가 혼자서 얼굴에 흙 묻혀가며 마련한 조그마한 공간을 웃으며 자만할 수 있는 이 모습을 보면 시골에 산다고 다 시골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슬그머니 미소가 번진다. 도시에서도 시골처럼 살 수 있고 시골에서도 도시처럼 살 수 있는 법. 사실은 시골에서 시골처럼 사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소야노 어머니는 점심을 많이 먹는 바람에 배가 너무 불러서 식사까지는 무리라 하신다. 카미무라 씨 일행과 내가 식사하고 돌아오면 가볍게 야식이나 먹자고 하시는데 찾아오는 방식이 이랬다 보니 괜히 내 탓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카미무라 씨와 쇼야 군, 카미무라 씨가 사장으로 있는 된장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히사이 씨 형제까지 해서 네 명이 '라다' 라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라멘 대학'의 줄임말이었다. 라멘이라면 당연히 대환영. 키소가 워낙 소바로 유명한 곳이고, 전통 음식이 강세를 보이는 곳이라 라멘 가게는 어떨까 약간 걱정도 했는데 허름한 가게에 인심좋아 보이는 부부가 척척 만들어 내 놓는 라멘은 꽤나 수준급이다. 키소 마을같은 외진 곳 치고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퀄리티가 높은데 소바로 유명한 곳이니 다른 요리도 너무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라도 있는 건지, 대체로 음식 질이 좋은 편. 뭘 먹어볼까 고민중인데 카미무라 씨가 이 집은 아부라 소바를 잘 하는데 어떻냐고 물어본다. 아부라 소바(油そば)는 듣도보도 못한 녀석인데, 단어의 뜻으로 풀이하자면 '기름 국수' 정도 된다. 라멘 먹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소바는 좀... 특히 점심때 쿠루마야의 소바를 먹고 왔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우물쭈물하며 내가 그렇게 뜻을 전하자 다들 웃는다. 아부라 소바는 소바가 아니라 라멘의 종류라고. 라멘을 그렇게 좋아하던 나도 모르고 있는 바리에이션이 있었다니 세삼 놀라며 주문해 본다. 국물이 없어서 좀 신기한 외관. 원래 이렇게 나올 때는 츠케멘(つけ麺)을 떠올리는데 츠케멘은 먹는 방식이 메밀소바와 비슷하게, 따로 나오는 진한 육수에 면을 찍어 먹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아부라 소바는 찍어먹을 종지도 없어서 잠시 패닉상태에 빠졌는데 히사이 씨가 이 라멘은 한국에서 먹는 것 처럼 잘 비벼 먹는거라 조언해 준다.
알고보니 면 밑에 원래 국물보다 더 진한 간장맛 소스가 깔려 있었던 것. 제목에 기름이 들어다가 보니 일반 라멘보다 잘 비벼지기 위해 기름이 많이 들어간 진한 소스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짜파게티에서 춘장 맛을 줄이고 농도를 두 배로 올린 듯한 진득한 맛. 국물이 있는 라멘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워낙 덥고 습한 날이었기에 이런 먹거리가 더 어울리긴 한다. 카미무라 일행에게 한국의 인스턴트 짜장면과 슬쩍 비슷한 면이 있다고 설명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짜파게티 한 팩씩 보내줄테니 맛 비교 한번 해보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인스턴트 짜장면과 비교하기에는 이 녀석한테 미안해 지지만 살짝 비슷한 맛이니 한번 경험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국물을 좋아해서 츠케멘도 잘 먹지 않는 편이다 보니 이 아부라 소바라는 녀석은 처음 접해보는데 의외로 가볍게 먹기에 나쁘지 않다. 국물을 남김없이 다 먹으면 배가 좀 더부룩 한 편이었으니까. 괜찮은 메뉴 하나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잘 기억해 놔야겠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쏟아지는 빗줄기에 대화소리도 덩달아 커지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저녁 시간이었지만 나는 한국사람같지 않게 말수 적고 소심한 편이고 히사이 형제는 거의 예능인 수준의 입담을 자랑하는 호탕한 사람들이라 되려 말이 잘 통하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히사이 씨와 카미무라 씨에게는 쇼야 군 역시 6개월 만에 보는 반가운 소년이라서 여러가지 다양한 대화가 오고 간다. 카미무라 씨는 '일본은 후쿠시마 때문에 이렇게 세계에 폐를 끼치고 있는데, 총리까지 헛소리만 해 대고 있다'면서 나한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한다. 나는 가족과 같은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일본에 이렇게 있으니 조금이나마 일본 현지의 공기를 읽을 기회가 있지만, 온갖 분노와 정제되지 않은 선동으로 폭발 직전인 한국의 인터넷 상에서는 카미무라 씨의 이런 사과도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극소수 제정신' 이라고 절하될 수 밖에 없을 듯. 다행히도 이쪽은 대통령 자리를 권력으로 빼앗은 그네꼬라는 게 대통령 행세를 하고 있으니 나 역시 별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일본 쪽 총리나 한국 쪽 잘나신 분이나 아주 용호상박'이라고 말해 주었다.
식사를 끝내도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여러 번 말했듯이 지리적 특성 상 이 곳의 기후는 정말 변화무쌍하다. 카미무라 씨와 히사이 씨에게는 가지고 간 선물을 전해드렸는데, 아직 선술집을 하고 있는 카미무라 따님한테는 가지고 간 선물을 전해줄 기회가 없었다. 마침 얼굴이라도 꼭 보고 가라고 해서 다들 히사이 씨의 차를 타고 선술집으로 향한다. 다들 마을사람이다 보니 거리가 멀진 않아서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선술집에 도착한다. 단체 손님때문에 많이 바쁠 것 같아서 후다닥 선물만 주고 나오려고 했는데 카미무라 따님과 그 남편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현관까지 나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일부러 딱 하루만 키소에 머물기로 계획을 잡은 이유는, 이런 사람들의 호의에 푹 파묻혀 있으면 집에 돌아온 것 처럼 편안하면서도 은근히 폐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근심도 들기 때문. 사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나를 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 쾌활한 성격이라서. 모든 원인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념 탓이다. 마음의 벽은 이 일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단단하다. 기념사진의 양 쪽 사이드를 차지한 히사이 씨 형제는 보기엔 마초같아도 굉장히 섬세하고 예술적 감성이 흘러넘치는 사람들이다. 원래 히사이 씨 아버지가 경영하던 적된장 공장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마을의 전통 된장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카미무라 씨가 서류상 사장으로 취임하고 자기 자본을 끌어들여서 지금까지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는 것. 실제로 카미무라 씨는 공장 경영 외에는 터치를 하지 않으며, 히사이 형제가 공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소야 군이나 카미무라 씨가 한 말인데, 저렇게 개그맨같은 얼굴에 속사포처럼 나오는 입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턱시도를 차려 입고 전국 피아노 콩쿨에도 나갈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굉장한 실력자라고. 작은 마을이지만 동네 중장년층이 모여서 활동하는 오케스트라도 있을 만큼 다양한 취미생활을 영위하는 키소 마을인데 히사이 씨는 그 아줌마 아저씨들을 피아노의 음색으로 규합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카미무라 씨 따님 결혼식때도 연주해 줬다고.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욕심을 가지지 않고 태어난 마을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다시 한번 머릿속에 그 말이 떠오른다. 시골에서 산다고 다 시골 사람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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