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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9  산막골의 밤과 쓸쓸한 고양이 8

확실히 강원도 산골은 서울보다 추위가 빨리 오더군요.
우안선생님이 떠나시고 폐교를 차지한 일당(?)들은 마음가는대로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폐교 안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난로를 때우고 이야기를 나누니 금새 밤이 되었네요.
마을 분에게 반 강제로 밤까지 뺏어와서 뜨끈해진 난로 위에 올려놨습니다.
연신 '감자와 고구마를 가져올걸'을 연발하면서. ㅡㅡ;


거의 그믐에 가까운 달이라, 저 전등을 끄면 계단 밑이 암흑의 바다처럼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불빛 한 점 없는 밤이었네요.
부드럽게 귀를 자극하는 벌레 소리와, 낯선 냄새때문에 왠종일 짖어대는 개 소리만 빼면 고요 그 자체였습니다.
서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뻥 뚫린 공간감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은 굉장한 매력이죠.
사하라사막의 밤에서 느꼈던 정도는 아니지만 좀 더 부드럽고 아득한 밤입니다.


야식으로 먹을 라면은 좀 있다 먹기로 하고, 일단은 맛있게 구워진 밤부터 먹었습니다.
직접 구워먹는 군밤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양이 적어서 아쉬울 뿐입니다.


이런 곳에선 그저 이야기하고, 커피 마시고 군밤 먹고 해도 즐거울 뿐이지요.


폐교 안을 둘러보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사진도 보고


재미있는 애들이 올려져 있는 난로. 그림이 되더군요.


낮에 그렇게 먹었는데 어째 그리 배가 꺼지는지.
세명이서 무려 5개나 라면을 먹으려고 작정했습니다.
부엌에서 끓여도 되지만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먹는 재미를 놓칠수는 없죠.


밤의 산막골은 으슥한 가로등 불빛 말고는 암흑천지입니다.
보름달이 뜰 때는 인공적인 불빛이 없어도 환하기 그지없는데, 이번엔 그믐이라 정말 어둡더군요.


라면을 끓이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반쯤 야생, 반쯤 집고양이로 우안선생님 근처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네요.
삼겹살을 구울 때면 슬그머니 나타나서 앵앵거리는데 이번엔 나타나지 않아서 좀 의아했습니다.
나타나는게 좀 늦었네요.


우안선생님한테 딱 붙어 사는 녀석은 아니고, 산에서 쥐나 새나 잡아먹고 가끔씩 폐교앞에서 사료도 얻어먹고 하죠.
우안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던 기간동안 꽤나 쓸쓸했는지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의자 위로 올라와 몸을 비비댑니다.

저 말고 다른 두분은 고양이를 안좋아하셔서 저 혼자만 이녀석과 놀아줬네요.


어엿한 아들녀석도 있는데, 그녀석은 완전 야생이라 사람 소리만 들려도 도망가버려서 사진에 담을수가 없었네요.
낮에 왔으면 삼겹살 꽤나 얻어먹었을 텐데 뭐 하고 있었을까요.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살수 있다지만
사실 사람과 함께 지내던 고양이는 사람이 없으면 상당히 외로워합니다.

예전엔 만지는걸 은근히 싫어해서 슬쩍 도망가곤 했는데 오늘은 자기가 적극적으로 애교를 부리네요.


오랜 기다림 끝에 라면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양이한테 줄 수는 없지만 사료도 공급해 줬고, 돌판에 남은 음식도 알아서 먹을테니 안심.
물과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소화도 잘 되고, 낮에 그렇게 먹었는데 라면 5개 정도는 금새 해치울수 있었습니다.


은박지에 싸서 난로 속에 집어넣어놨던 군밤까지 마지막 후식으로.
장작 향이 느껴지는 바싹 구워진 군밤을 찬바람에 식혀서 먹으니 그야말로 천국입니다.

먹고 이야기하고, 한동안 가만히 고요를 즐기고, 또 이야기하고 하면서 새벽을 넘긴 후 내일 아침을 기약하며 잠자리로 들어갔습니다.
5~6시간 전부터 미리 아궁이에 불 지펴놓은터라 뜨끈하게 달구어진 온돌이 아득하더군요.
냄새나는 이불 속에서 아련한 여행의 추억을 다시 되살리며 모두 금새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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