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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5  킨키 방황 - 코야산 단상가람 18
  2. 2010.02.07  오사카 여행기 6편 - 비내리는 시텐노지 12

 

2백미터의 짧은 거리를 간신히 기어서 단상가람에 도착했다.

가람에 들어가기 전에, 가람 주위를 둘러싼 숲속 풍경이 멋들어져서 셔터를 누른다.

울창하긴 울창한데도 이렇게 조경이 멋진 숲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보통 이런 산속 깊은 곳은 어딘가 살짝 어둡고 두려운 느낌이 드는데.

 

도착하자마자 정면에 거대한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와서, 혹시 내부 보수중이라 못 보는건가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는데

앞쪽 표지판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2015년 개창 1200년을 맞아 1843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중문(中門)을 건설중일 뿐

나머지 사찰들은 멀쩡하게 공개중이다. 여기까지 와서 단상가람 구경을 못했다면 정신적인 충격이 컸을 듯.

 

진언종의 현재 총본산은 콘고부지(金剛峰寺)이지만, 원래 홍법대사가 수행하던 본당은 이곳 단상가람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가진 불당은 이곳에 거의 집결해 있다. 국보급 보물들도 굉장히 많았지만 현재는 영보관에 보관중.

 

 

 

가람은 산스크리트어 상가-아라마(sanghārāma)의 한음표기인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임말.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는 거주지를 뜻한다. 한국에서도 쓰이는 말이라서 포스팅에서 일본어 표기가 아닌 가람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한다.

 

공사중인 중문을 통과하면 눈앞에 보이는 금당(金堂)의 모습. 단상가람의 본당에 해당하며,

현재 건물은 수많은 화재 끝에 1932년 재건된 녀석이다.

워낙 중요한 가치를 가진 건물이라 가까이서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심하게 복원되어 있다.

 

 

 

코야산의 모든 사찰이 그렇듯 이곳도 실제 진언종의 승려들이 거주하며 생활하는 곳인데

그 덕분에 더더욱 삶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할까. 일본에서 접할 수 있는 대다수의 문화재급 사찰에 비해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처음 창건되었을 당시인 819년의 건축양식과는 사실 차이점이 많이 보이지만

살짝 굽이친 서까래와 원만한 곡선을 그리는 처마의 구조는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려시대 건축된 사찰인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중국, 일본을 모두 포함해서도 으뜸간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적어도 일본에서 이 정도로 미려한 모습을 한 사찰은

나라에 남아있는 극소수의 사찰과 닛코의 사찰, 그리고 이곳 뿐이라고 평가해 본다.

심심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현재의 일본 사찰 양식과는 레벨이 다르다.

 

  

 

금당 내부는 금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외부와 달리 상당히 화려하다.

건축 당시, 당대 일본 최고의 예술가가 그려넣은 약사여래 불화가 굉장하다고 하는데, 원본은 영보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래 가람 내부에 있던 수많은 국보들이 관리와 보존을 위해 대부분 영보관으로 이전되는 바람에 조금 아쉽지만

돈 주고 보물 관람하는데 조금 인색한 편인 나로서도, 몸 상태만 괜찮았다면 꼭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가람의 사찰들 대부분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딱히 보여줄 것도 없긴 하지만.

 

 

 

 

금당 왼편엔 넓은 마당과 함께 조그마한 벤치 몇개가 놓여있다.

문화재 덩어리인 단상가람안에 의아하게도 흡연 가능한 장소가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흡연문화에 꽤나 관대해서, 대부분 흡연금지인 명승지 입구 앞에 흡연소가 설치되어 있는 일본에도

이렇게 가람 내부에 흡연소를 만들어 놓은 것은 상당히 드문 케이스. 혹시 승려들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걸까.

 

어쨌든 벤치에 앉아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휴식을 취하며 가람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한다.

오쿠노인에서 숱하게 봤던 거대한 삼나무들은 역시 이곳에서도 잘 어울린다.

날짜를 잘 잡아서 그런지 관광객의 모습이 정말로 드물어, 몸은 아파도 날짜 하나는 참 잘 선택했다고 자화자찬 해 본다.

 

땀을 식히고 욱씬거리는 왼쪽 발목을 진정시키며 이 곳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에게 신성함과 경건함을 일으키는 근원은 종교가 아니라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속과 떨어져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이 일반인들의 불교에 대한 이미지라고 한다지만

만약 그 세속이라는 곳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면 아마도 이곳과 세속의 경계는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어떤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적 신비함도 결국엔 나무와 흙과 하늘이 만들어내는 풍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인간은 사고의 발달로 인해 언어라는 수단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동시에 언어로 인해 인간의 사상과 개념 자체에 한계를 가지게 되는 것 처럼

 

종교가 가지는 경건함과 신비함 역시 원래부터 자연이 가진 요소였음에도, 단지 사람의 머릿속 필터를 거쳐

종교라는 관념으로 구체화 된 결과물일 뿐이라고, 이런 풍경을 보면서 상상해 본다.

 

한마디로, 인류의 모든 위대한 사상과 개념은 그 모태를 자연 그 자체에 두고 있다고 말이지.

먼 길을 돌아와서 진리를 갈구하지만, 결국 태초부터 누구에게나 내재된 본능의 산물이었을 따름.

 

 

 

일반적인 불교 가람과는 달리 이곳 단상가람에는 신사도 들어서 있다.

신사의 입구를 알리는 토리이(鳥居)가 이곳에서는 왠지 낮선 느낌.

물론 홍법대사와 관련이 있는 역사적 건축물이고, 후대에 일부러 세워둔 신사는 아니다.

 

 

 

이곳의 신사는 따로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냥 니우묘진(丹生明神)이라는 토지신을 기리는 어사(御社)라고 불리는데

일본에서는 훈음과는 맞지 않게 미야시로(みやしろ)라고 부르기도 한다.

 

니우묘진이라는 신은 홍법대사가 이곳에 사찰을 건립할 때 그를 수호해 준 토지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불교 사찰을 짓는 승려도 축복해 주는 토지신이라는 개념은, '모든 사물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는 일본 신토의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토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교든 카톨릭이든 힌두교든 자신들의 신과 다를바 없는 한 명의 신일 뿐이며

신토를 믿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날 성당에 간다던가, 사찰을 찾아 절을 올린다던가 하는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코야산 한국 가이드북에는 이러한 설명 싹 빼버리고 그냥 '묘신사'라는 이름 하나만 달랑 쓰여있어서

대체 이게 뭔가 싶은 사람들이 많을 듯 하다. 나머지 중요문화재 설명하기에도 페이지가 모자라니 어쩔 수 없지만.

 

사진의 건물은 미야시로가 아니라 그 앞에 건립된 산노인(山王院)이라는 배전.

이 곳은 규모가 큰 신사에서 쓰이는 양식처럼 본전과 배전이 나뉘어져 있는데

이 배전은 또 불교 사찰건물의 양식을 상당부분 빼다박은 건축물이라서 굉장히 묘한 느낌이다.

 

이렇게 신사와 사찰이 한 곳에 세워져 있는 광경은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일본에서 이곳밖에 없다.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지만.

 

 

 

정작 미야시로 신사는 그 강렬한 주황색이 워낙 두드러지는 바람에

이곳과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 어색함 탓인지 한 장도 담아오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구경했는데

산노인은 신사 양식과 불교 양식이 훌륭히 조합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구도를 잡고 뷰파인더를 바라보는데, 문득 '코야산의 시린 산속에서 해가 막 떠오늘 무렵'의 산노인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 해서

색온도를 조절해서 그때 느꼈던 이미지를 재현해 보려고 노력해 봤다.

보정 프로그램 쓰는것도 쥐약이라서 마음먹은 것처럼 뚝딱뚝딱 고치진 못하지만, 대강 이런 느낌.

이곳에서 아침을 맞이해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신사 앞이라면 에마(絵馬)가 빠질 수 없지.

그런데 그냥 신사가 아니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에마 역시 불교식과 신토식이 따로 걸려 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진언종식 에마라는 느낌. 쓰여 있는 소원도 읽기힘든 한자로 쓰여 있는 점이 특징.

참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일본인들의 에마 사랑은 이곳에서도 멈추지 않는구나.

 

 

 

이곳은 전형적인 신사의 에마를 걸어두는 곳.

역시 진언종의 총본산인 만큼 이런 에마보다는 불교식으로 소원을 비는 곳이 훨씬 빡빡하다.

 

대체로 신사의 에마들을 잘 살펴보다 보면, 소원 빈다기 보다는 반쯤 우스갯소리를 적어놓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장난스러운 에마가 보이지 않는다. 세삼 이곳을 바라보는 일본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

거기다가 옛 향기 가득한 이곳 단상가람에 걸맞게도, 오랜 시간이 지나 매직으로 쓴 글씨가 지워져 버린 에마마저 찾을 수 있다.

이제껏 꽤나 유명하다는 신사는 다 찾아가본 나로서도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에마마저 이렇게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광경은 소소하지만 확실히 각인되는 여행의 추억이다.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굉장한 사찰들이 꽉꽉 모여있는, 보물상자같은 단상가람이지만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 지고 있다. 한시간에 두 번 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타려면

지금부터라도 이동속도를 높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평소 발걸음 대로라면 이곳 단상가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혹사에 혹사를 거듭한 왼쪽 발목은 원래 이동속도를 1/10 이하로 줄여버린데다

덕분에 계속 부담을 준 오른쪽 다리는 근육이 터질듯 단단해진 상태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일 때를 생각해서 구경하다보면 자칫 버스를 놓칠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있었다.

 

단상가람의 입구까지 최소한 버스 도착 15분 전에는 도착해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될 것 같아서

하나라도 더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서두르게 된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혼자 쇼를 벌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단상가람은 17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저 녀석들이 전기로 빛을 밝히는지, 여전히 초롱불을 사용하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게 아쉽다.

어둠 속에 잠긴 단상가람 사이사이에서 조그맣게 빛나는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지.

조용한 산골짜기 사찰 아래 울려퍼지는 우렁찬 셔터소리에 그나마 기운이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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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심하게 흐립니다.
어제 텐포잔 관람차의 색깔을 분명 흐림을 뜻하는 녹색이긴 했는데, 이렇게 흐린 건 불안하군요.
저는 어제도 친구의 코 고는 소리덕분에 자다깨다를 반복했습니다.
서울서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도 잠을 좀 설쳤는데, 일본 와서 이틀 연속으로 코 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동생분도 몸 상태가 안좋은데 저도 자칫하면 뻗어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침에 스테이터스 이상이... ㅡㅡ;

일단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 싶어서 숙소를 뛰쳐나왔습니다.
신세카이 주변엔 요즘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이런 옛 극장도 유지되고 있더군요. 그리운 풍경입니다.
상영중인 영화는 서브웨이123, 트랜스포터3, REC 등이 있네요. 성인용 영화도 상영중이니 참 정겨운 풍경이로세.


오늘 아침에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시텐노지(四天王寺)로 향했습니다만...
난리났습니다. 결국은 비가 오더군요.
 
역시 어느 나라나 기상 예보는 믿을게 못된다는게 정설인가봅니다. 관람차녀석...
일단 우산도 하나 없는 일행이라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여행의 뽕을 뽑기 위해 무조건 전진밖에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냥 슬금슬금 내리는 편이지만 마음은 불안하군요. 여행때 가장 만나기 싫은 녀석입니다.


문을 통과하니 파마+염색한 아줌마 같은 녀석이 눈에 들어오네요. 문화유산은 아닙니다.
사실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운 애틋한 녀석입니다.


동생분이 사찰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주유패스로 무료 관람가능한 곳이라 찾아오긴 했는데
이곳 시텐노지는 그 역사에 비해서는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어서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해도 됩니다)
진짜 사찰 매니아에게는 조금 아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시텐노지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59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이기도 합니다. 백제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쇼토쿠 태자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하지만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이곳의 사찰은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되었고, 현존하는 건물은 모두 1970년대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사실상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사찰은 나라(奈良)의 호류지(法隆寺)에 세워진 서원가람(西院伽藍)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기도 하죠.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영령당(英靈堂)입니다.
앞에 세워진 두 개의 거대한 돌기둥에는 밀어로 보이는 글씨가 새겨져 있군요.
영령당 근처엔 돌로 된 위령비가 많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시텐노지 대부분의 사찰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진으로 남기는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제가 존중하는 불교의 정신은 이런 건물이나 문화제, 부처 이름 외우는데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한테 사찰문화재라는 것은 그냥 그 시대의 문화와 풍미를 느끼게 해주는 단순한 물건에 불과한 터라
사진을 찍지 않으면 그닥 감흥이 없네요.

그런 고로, 맨날 산위에 올라가서 양초나 켜놓고 자식 수능 대박나기를 손이 닳도록 비는 어미아비들의 모습도
'불교를 욕보이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세계 평화나 빌겠습니다.


빌고 싶으면 요 정도로 소박하게 하라니까요. ㅡㅡ;
니네 자식들 종이 위의 문제 푸는 등신으로 전락시키고 싶어서 사기꾼들한테 돈 쳐바르지 말고.

아~ 교육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군요. 릴렉스하고 다시 정신을 시텐노지로 워프시키겠습니다.


비가 주섬주섬 내리긴 하지만 그것도 꾸준히 맞으니 심히 불쾌해지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동생분은 모자도 있고, 저도 버프를 쓰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머리에 타격을 받진 않는데
(친구는 뭐 쓰고 있었나? 기억이 없습니다. 쏘리. ㅡㅡ;)

이곳은 약사여래, 사천왕상이 보존되어있는 육시당(六時堂)입니다.
시텐노지의 중앙에 위치한 큰 사당이며, 매일 6번씩 영령에게 예를 갖추는 의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육시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당연하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 이곳에서는 많은 현지인들이 경건하게 합장을 하더군요.


이곳은 카메이 부동당(亀井不動堂) 이라는 조그만 건물로, 건물 안에는 이끼에 덮힌 부동명왕상이 있습니다.
이곳과 바로 옆의 카메이당(亀井堂)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시텐노지의 본당인 금당(金堂)의 지하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하는데요.
쇼토쿠 태자가 이곳의 샘물에서 부동명왕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사당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저 부동명왕상에 샘물을 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뭐 그런 것이겠지요.


시텐노지의 대표 스팟중 하나인 이시부타이(石舞臺)입니다.
이곳 돌무대 위에서 매년 4월 22일 성덕태자의 덕을 기리는 부가쿠(舞樂)가 열립니다.
부가쿠는 당나라의 행사 예식인 당악에서 유래되어 일본 특유의 문화로 발전한 의식으로, 이곳에서 부가쿠가 열려온 지 천 년이 넘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믿거나 말거나.

비가 점점 굵어지는터라 서둘러 이번 시텐노지 공략의 1차 목표중 하나인 보물관(宝物舘)으로 향했습니다.
보물관은 쇼토쿠 태자와 관련된 중요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곳으로, 국보급 보물들도 전시되어 있는 터라
문화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둘러보셔야 할 곳입니다. 입장료를 받는데 주유패스로 무료!
물론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보물전 내부는 상당히 좁고, 문화재 수도 그리 많은건 아니지만 진득하게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
40분 남짓 열심히 구경한 후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는군요.
오늘중으로 돌아봐야 할 곳이 많은데 계속 비가 내린다면
최악의 경우 우산을 사거나 숙소로 돌아가서 우산을 빌려 나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태자전(太子殿)이라고 하는, 쇼토쿠 태자의 덕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한국 역사책에도 잘 나오는 이야기지만 (요즘엔 국사도 필수과목이 아니라면서요? 나라의 망조가 보이네요)
쇼토쿠 태자가 일본 불교, 나아가서 일본 역사와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이 워낙 중요한 지라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건축물이지만 정말 정성들여서 가꾸어 온 모습이 금새 눈에 들어옵니다.
빗소리에 파묻힌 성덕원의 모습이 오히려 더 경건하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원래 이곳의 이름은 성덕원(聖霊院)인데, 요즘엔 그냥 태자전이라고 많이 불린다고 합니다.
태자전 내부 지하에는 2만 2천개의 금동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아요.


비가 와서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이젠 막 쏟아 붓는군요.
동생분이 뭔가 불만어린 표정입니다. 근데 포즈는 왜 귀여운지? 이거 설정샷이었나? ㅡㅡ;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합니다
일단 이곳의 볼거리인 보물전은 관람 마쳤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혼보 정원(本坊庭園)과 중심가람(中心伽藍)이 남았는데
혼보 정원은 이 빗속에 돌러보기란 불가능해서 일단 태자전의 바로 옆에 위치한 중심가람으로 서둘러 향하기로 했습니다.


가람은 불교 용어로, 산스크리트어인 '상가 아라마(sangha- arama)'가 어원인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임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는 장소를 말하는데, 보통 7가지 구조물(불전,강당,승당,주고,욕실,동사,산문)이 갖춰진 구역을 뜻하죠.

이곳 시텐노지의 중심가람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인데,
중문, 오중탑, 금당, 강당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일직선 형식 배치를 이루며, 주위에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일본의 '음미하는' 정원 느낌을 이곳에서도 받을 수 있었네요. 활용 공간으로서가 아닌 미의식의 표출 수단으로 사용되죠.


회랑 내부에서 쏟아지는 비를 피하면서 가만히 가람 내부를 바라만 봅니다.
사실은 이게 제대로 된 감상 방법일지도 모르죠. 빗소리가 일행을 점점 개인으로 흐트려 놓는 듯한 느낌.


중앙의 건물이 금당(金堂), 뒤의 탑이 오중탑(五重塔)입니다.
오중탑에서는 석가모니의 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금당은 시텐노지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사방에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구세관음상이 놓여있습니다.


회랑 옆에는 우물도 있었습니다.
상당히 깊더군요. 이런 곳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좀 무서워지죠.


회랑 내부는 차분합니다.
비가 많이 오기도 하고, 좀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그냥 일행들끼리 조용히 서 있었네요.
비는 싫어하지만 이런 차분한 느낌은 좋습니다.

건물 전체가 너무 새것같은 느낌이라는게 참 아쉽긴 했군요.
호류지의 1500년 된 나무 기둥들은 정말 세월의 흐름이 이런거구나 싶었는데.


그냥 부슬비라면 어떻게 맞아가면서 움직이겠지만 장대비는 정말 무립니다.
그래서 그냥 막간을 이용해 사진이나 찍고 놀았죠.
역광도 이런 분위기에선 나름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그칠 기미가 안보여서 결국 근처의 휴게소로 뛰어가기로 결정.
휴게소에서 좀 쉬면서 비가 잦아들길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숙소로 돌아가 우산을 빌린다던가 할 수도 있지만 왠지 여기서 시간 보내는것보다 돌아가는 시간이 더 아까운 것 같아서.


가기전에 가람의 정문인 인왕문 앞에서 강제로 기념사진을 찍게 만들었습니다.
양쪽의 인왕상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녀석들이죠. 5.3m의 높이에 무게는 1톤입니다.
그냥 찍으면 재미 없으니 인왕 모습을 주문했죠. 동생분은 잘 따라줬습니다. 손바닥에서 여래신장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찍기 싫다고 잡아빼는 친구를 협박해서 억지로 포즈를 세워넣고 찍었습니다.
여행때는 이런 사진 남기는게 즐거움인데 말이죠. 지난 번 도톤보리의 글리코 앞에서는 실패했지만 이번엔 성공.


휴게실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먹으며 1시간 반 정도를 뒤척였습니다.
어제 잠을 하도 못자서 눈만 감으니 졸음이 오더군요.

내일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쿄토 당일치기인 터라, 이 체력으로 오늘 밤도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못자면
여행에 중대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오늘 밤은 따로 숙소를 잡아 도망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밤에 친구가 코를 골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ㅡㅡ;

하늘이 도운건지 결국 기다리다 보니 빗줄기가 잦아지더군요.
완전히 그친 건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돌아다닐 수 있을만큼 약해졌습니다.
이제 시텐노지의 마지막 볼거리인 혼보 정원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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