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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6  킨키 방황 - The Two Towers 12
  2. 2012.06.05  킨키 방황 - 코야산 단상가람 18

 

단상가람의 관람 순서라는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있다고 해도 그걸 지킬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그냥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건물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귀국후 사진을 정리하는데 건물들 찍은 사진의 시간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루트상으로 대략 금당 -> 산노인 -> 서탑으로 진행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진이 찍힌 시간순으로 배열해보면 완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다리미 인간처럼 왔다갔다한 결과가 나온다.

걸어다니는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사실은 그냥 빙 둘러보는 루트보다 훨씬 더 많이 걸었던 것.

 

이쯤되면 당시 내 정신상태가 어느 정도 절박했는지 스스로 납득이 간다.

 

어쨌든 산노인 옆의 이 건물은 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설명을 읽을 여유도 없었으니.

가이드북에는 그냥 '종루'라고 적혀있는데, 2층에 종이 있는 건가?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가람의 동쪽에는 코야시로(高野四郎)라는, 척 봐도 종루처럼 생긴 녀석이 있는데, 이 녀석과는 형태가 전혀 다르다.

 

 

 

그러고보니 1층의 입구쪽에는 출입금지라는 펫말도 없는걸로 봐서 들어가도 될 법 한데

계단을 오르내린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몸이 회복되어 포스팅중인 지금 생각해보면, 한번 더 가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느낌.

 

산 속 풍경이 다들 그렇지만, 이곳도 사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90도씩 딱딱 바뀌기 때문에

다음 방문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가게 된다면 일단 가을이나 겨울쯤이 좋을 듯 하다.

 

 

 

단상가람의 북서쪽에 위치한 서탑(西塔)의 모습. 1834년에 재건했지만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이 서탑은 다보여래의 사리를 모시는 다보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불국사의 다보탑과는 덩치나 형태가 매우 달라서 나름 신기한 경험이다.

 

높이가 27미터나 되는 거대한 녀석이지만, 그 높이를 훨씬 뛰어넘는 삼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탓인지

그리 위압적으로 보이지 않고 주변 풍경에 잘 녹아들어간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으로 보니 한층 현실감이 떨어지는 느낌.

 

 

 

예술성에 촛점을 맞춰 감상해 본다면 사실 이 서탑은 불국사의 다보탑과는 비교할 필요도 없다고 보지만

200년 전에 세워진 이 정도 크기의 목조 건축물의 보존 상태 하나만큼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괜스레 아쉽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 아쉽다는 표현은, 물론 현재 모습으로도 신라 석탑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모자람이 없는 불국사 다보탑에 대한 것.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멋대로 보수한답시고 완전히 해체되었다가 복원되었는데, 그에 관련한 기록이 일절 남아있지 않아서

전통성에 큰 상처를 입혔으며, 원래 네 마리였던 돌사자도 가져가버려, 한 마리만 남은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당시엔 조선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하찮게 내려봤으면 절세의 미탑을 그딴 식으로 주물거렸는지 한탄스럽기만 하다.

자기네들 다보탑 복원은 이렇게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모습이 보이는데,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

 

석굴암에 관한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을테고 여기서 더 말했다간 분노 폭발할 뿐이니 넘어가고.

 

세계적으로 보면 역사의 비극 아래 일어난 무수한 사고중 하나일 뿐이니 지금부터라도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다보탑과 더불어 석탑양식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석가탑은 왠걸,

해방 이후 보수공사중 옥개석을 떨어트려 박살내버린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서, 강점기때하고 다른게 뭐냐고 욕먹기도 했으니

강점기의 그 사건이 없었더라도 과연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이 서탑만큼 극진히 보수를 받아왔을지, 솔직히 말해 부정적이다.

 

 

 

역사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인데다

특히 불교라는 전통 문화와 자국의 역사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공통된 국가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런 문화재를 볼 때마다, 한국쪽이 훨씬 더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현재 문화재들의 보존 상태를 보면 일본 쪽이 월등히 앞서있는지, 한숨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감상은 즐겁게 하고, 셔터도 기분좋게 누르고 있지만, 두고 온 자식걱정이 계속 든다고 할까. 물론 자식 길러본 경험은 없지만.

 

이번 여행과는 관계없는 개인적인 잡설일 뿐인데,

현재 한국의 불교 문화재 중, 비단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들어서도 가장 가치있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팔만 대장경만큼은 부디 천년만년 그 가치를 잃지 말고 지속되어주길 바란다.

대장경 원판은 물론, 원판을 보관하는 장경판고조차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보존이 잘 되어있던, 완전히 망가져 있던, 이런 불교 문화재들을 볼 때면 항상 드는 생각.

 

 

 

상념은 그만하고 반시계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제껏 보아온 사당과는 분위기가 달라보이는 준지당(准胝堂)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준제관음(准提觀音)이라고 부르고, 이는 산스크리트어 'Cundi'의 훈음이라고 전해진다.

청정함과 모성성을 상징하는 여성 관음이라고 하는데, 불교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

 

아무튼 이 녀석은 1883년 재건되었는데도, 비슷한 시기에 재건된 다른 불당과 비교해서 꽤나 고풍적인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인상깊었지만, 바로 옆에 위치한 어영당(御影堂)이 홍법대사가 거주하던 불당으로 유명한 탓에

가람 안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녀석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드니 뭐.

 

 

 

준지당 바로 옆에 위치한 어영당. 일본어로는 미에이도(みえいどう)라고 하는데, 때로 고에이도(ごえいどう)라고 하기도 한다.

가뜩이나 현대 일본어 상용한자 발음도 못 외우겠는데, 고어 문법의 영향을 받는 이런 사찰들의 발음은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발음되기도 해서, 설명 없이는 알아먹기 힘들다. 이건 현지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일본에 실존하는 특이한 성씨 같은 경우도, 가끔 일본 TV에 소개되기도 할 만큼 정상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녀석들이 있지.

대표적인 것이 '一' 이라는 한자. '일'자를 읽는데 무슨 방법이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이게 이름의 성으로 쓰일때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읽히기도 한다.

바로 니노마에(二の前). 숫자 2의 앞에 있다는 뜻.

 

최근 모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해서 이제는 꽤나 친숙해 진 타카나시(たかなし)라는 성씨도 대표적인 케이스.

원래 타카나시는 '鷹無し' -> 즉, '매가 없음'이라는 뜻인데, 이게 성씨로 쓰이면 한자가 참으로 절묘하다.

'小鳥遊' 라고 쓰는데. 뜻 그대로 '작은 새가 논다'라는 뜻. 작은 새가 노는 곳에는 매가 없다는 해석상

'小鳥遊' 라고 쓰고 타카나시라고 읽는, 실로 오묘한 성씨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녀석.

 

예전에 나름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이 성씨를 읽을줄 몰라서 타카나시가 아니라 카타나시(形無し)로 부르는데

이건 '형편없음'이라는 의미라서, 참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남자 이름이 타카나시고, 행진중인 괴생물체가 그를 자꾸 카타나시라고 부르는 그렇고 그런 애니메이션.

사찰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는 것도 이 블로그의 특성이라고 이해하면 편할 듯 하다.

 

참고로 실제 작품에서 이런 러시아 행진곡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시 돌아와서, 어영당은 조사(祖師)의 초상을 안치한 곳을 뜻하는데, 조사란 불교 종파를 창건하거나 그에 준하는 큰스님을 지칭하는 말.

종파에 따라서 조사당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한국에서는 어영당보다 조사당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는 듯.

 

물론 건물 자체는 1847년에 재건되긴 했지만, 기록상으로는 홍법대사가 거주하던 곳이라고 한다.

단상가람의 상당수 불당이 1800년대 재건된 이유는, 그 당시 이곳 산맥 전체를 휩쓸었던 큰 화재가 있었기 때문.

 

매년 3월 21일에는, 1년에 한번 이곳의 내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흥미는 동하지만 아마 미어터지겠지.

홍법대사가 머무르던 곳이라서 그런지 규모도 크고, 연꽃 모양을 한 등잔이 가지런지 배열된 모습이 심히 아름답다.

위의 어영당 설명에서 알 수 있지만, 실제 홍법대사가 머무르던 시기에는 딱히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고

홍법대사 입적후 초상화가 안치되고 나서부터 어영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단상가람의 정북쪽에 위치한, 가람 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근본대탑(根本大塔)의 모습.

진언종의 근본 사상을 표현한 거탑으로, 단상가람의 중심 역할을 한다.

 

48.5미터나 되는 탑이라서, 전신 사진을 담으려면 저 멀리 한참을 떨어져야 했는데

다리 상태는 말할것도 없고, 사실 너무 깔끔한 모습이 내가 좋아하는 사찰과는 좀 동떨어진 모습이라서

그냥 대강대강 담고 말았다. 여행의 전리품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좀 아쉽긴 한데,

분명히 여행 당시엔 '그렇게까지 해서 전신 모습을 찍고싶진 않다'라는 기분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남들 보여주기에 멋진 사진 남기려고 여행 간거 아니니까 지금 보이는 이런 사진이 이 탑에 대한 내 솔직한 기분이지.

 

 

 

신성한 건물에 저 색깔을 사용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위화감이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저런 발색을 내는게 쉽지 않았던 천 년 전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성하고 웅대하게 보였을 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져 버리는걸까.

1937년 재건된 녀석이라서 천년 전의 모습을 찾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부에는 대일여래 본존불상과 함께, 극채색으로 내부를 뒤덮은 화려한 만다라의 세계가 관광객들을 압도한다고 하는데

입장료가 필요한 곳이고, 그럼에도 누가 따로 지키고 있는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내고 들어가는 곳이라서

저 계단 올라가는 것만 해도 만다라의 세계로 떠나버릴듯한 나로서는 그냥 접근도 하지 않고 주위에서 사진만 찍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좀 전의 서탑이 훨씬 마음에 들어서, 이곳엔 큰 관심이 없다.

서탑과 기본적인 구조가 비슷하기도 하고.

 

가람 동쪽 끝에는 물론 동탑도 있는데, 이 동탑은 1984년에야 재건되었고, 서탑과 달리 이 근본대탑처럼

시멘트 골격에 목재를 사용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관심이 가지 않아, 그곳까지 이동하진 않았다.

서쪽에서 중앙부까지 오는데만 해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동탑 외에는 그닥 볼만한게 없는 곳까지 가기는 힘들다.

 

본인에겐 그닥 감흥이 없었지만 그래도 단상가람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보니 관광객이 내부로 들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외국인을 제외하고는 다들 경건하게 문 앞에서 합장하고 들어간다. 문화재 관광만큼이나 불심이 깊은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곳이겠지.

 

이렇듯 중앙부에 거대한 탑이 우뚝 서 있는 곳은, 대부분 그 주변이 탁 트인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런 곳에 설 때마다 뭔가 왜소하고 고독한 미물이 된 것 같아서 어색하다.

내가 불교 사찰에서 바라는 건 웅장함이 아니라 조화로움이라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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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미터의 짧은 거리를 간신히 기어서 단상가람에 도착했다.

가람에 들어가기 전에, 가람 주위를 둘러싼 숲속 풍경이 멋들어져서 셔터를 누른다.

울창하긴 울창한데도 이렇게 조경이 멋진 숲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보통 이런 산속 깊은 곳은 어딘가 살짝 어둡고 두려운 느낌이 드는데.

 

도착하자마자 정면에 거대한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와서, 혹시 내부 보수중이라 못 보는건가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는데

앞쪽 표지판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2015년 개창 1200년을 맞아 1843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중문(中門)을 건설중일 뿐

나머지 사찰들은 멀쩡하게 공개중이다. 여기까지 와서 단상가람 구경을 못했다면 정신적인 충격이 컸을 듯.

 

진언종의 현재 총본산은 콘고부지(金剛峰寺)이지만, 원래 홍법대사가 수행하던 본당은 이곳 단상가람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가진 불당은 이곳에 거의 집결해 있다. 국보급 보물들도 굉장히 많았지만 현재는 영보관에 보관중.

 

 

 

가람은 산스크리트어 상가-아라마(sanghārāma)의 한음표기인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임말.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는 거주지를 뜻한다. 한국에서도 쓰이는 말이라서 포스팅에서 일본어 표기가 아닌 가람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한다.

 

공사중인 중문을 통과하면 눈앞에 보이는 금당(金堂)의 모습. 단상가람의 본당에 해당하며,

현재 건물은 수많은 화재 끝에 1932년 재건된 녀석이다.

워낙 중요한 가치를 가진 건물이라 가까이서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심하게 복원되어 있다.

 

 

 

코야산의 모든 사찰이 그렇듯 이곳도 실제 진언종의 승려들이 거주하며 생활하는 곳인데

그 덕분에 더더욱 삶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할까. 일본에서 접할 수 있는 대다수의 문화재급 사찰에 비해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처음 창건되었을 당시인 819년의 건축양식과는 사실 차이점이 많이 보이지만

살짝 굽이친 서까래와 원만한 곡선을 그리는 처마의 구조는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려시대 건축된 사찰인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중국, 일본을 모두 포함해서도 으뜸간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적어도 일본에서 이 정도로 미려한 모습을 한 사찰은

나라에 남아있는 극소수의 사찰과 닛코의 사찰, 그리고 이곳 뿐이라고 평가해 본다.

심심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현재의 일본 사찰 양식과는 레벨이 다르다.

 

  

 

금당 내부는 금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외부와 달리 상당히 화려하다.

건축 당시, 당대 일본 최고의 예술가가 그려넣은 약사여래 불화가 굉장하다고 하는데, 원본은 영보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래 가람 내부에 있던 수많은 국보들이 관리와 보존을 위해 대부분 영보관으로 이전되는 바람에 조금 아쉽지만

돈 주고 보물 관람하는데 조금 인색한 편인 나로서도, 몸 상태만 괜찮았다면 꼭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가람의 사찰들 대부분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딱히 보여줄 것도 없긴 하지만.

 

 

 

 

금당 왼편엔 넓은 마당과 함께 조그마한 벤치 몇개가 놓여있다.

문화재 덩어리인 단상가람안에 의아하게도 흡연 가능한 장소가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흡연문화에 꽤나 관대해서, 대부분 흡연금지인 명승지 입구 앞에 흡연소가 설치되어 있는 일본에도

이렇게 가람 내부에 흡연소를 만들어 놓은 것은 상당히 드문 케이스. 혹시 승려들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걸까.

 

어쨌든 벤치에 앉아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휴식을 취하며 가람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한다.

오쿠노인에서 숱하게 봤던 거대한 삼나무들은 역시 이곳에서도 잘 어울린다.

날짜를 잘 잡아서 그런지 관광객의 모습이 정말로 드물어, 몸은 아파도 날짜 하나는 참 잘 선택했다고 자화자찬 해 본다.

 

땀을 식히고 욱씬거리는 왼쪽 발목을 진정시키며 이 곳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에게 신성함과 경건함을 일으키는 근원은 종교가 아니라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속과 떨어져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이 일반인들의 불교에 대한 이미지라고 한다지만

만약 그 세속이라는 곳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면 아마도 이곳과 세속의 경계는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어떤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적 신비함도 결국엔 나무와 흙과 하늘이 만들어내는 풍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인간은 사고의 발달로 인해 언어라는 수단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동시에 언어로 인해 인간의 사상과 개념 자체에 한계를 가지게 되는 것 처럼

 

종교가 가지는 경건함과 신비함 역시 원래부터 자연이 가진 요소였음에도, 단지 사람의 머릿속 필터를 거쳐

종교라는 관념으로 구체화 된 결과물일 뿐이라고, 이런 풍경을 보면서 상상해 본다.

 

한마디로, 인류의 모든 위대한 사상과 개념은 그 모태를 자연 그 자체에 두고 있다고 말이지.

먼 길을 돌아와서 진리를 갈구하지만, 결국 태초부터 누구에게나 내재된 본능의 산물이었을 따름.

 

 

 

일반적인 불교 가람과는 달리 이곳 단상가람에는 신사도 들어서 있다.

신사의 입구를 알리는 토리이(鳥居)가 이곳에서는 왠지 낮선 느낌.

물론 홍법대사와 관련이 있는 역사적 건축물이고, 후대에 일부러 세워둔 신사는 아니다.

 

 

 

이곳의 신사는 따로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냥 니우묘진(丹生明神)이라는 토지신을 기리는 어사(御社)라고 불리는데

일본에서는 훈음과는 맞지 않게 미야시로(みやしろ)라고 부르기도 한다.

 

니우묘진이라는 신은 홍법대사가 이곳에 사찰을 건립할 때 그를 수호해 준 토지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불교 사찰을 짓는 승려도 축복해 주는 토지신이라는 개념은, '모든 사물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는 일본 신토의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토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교든 카톨릭이든 힌두교든 자신들의 신과 다를바 없는 한 명의 신일 뿐이며

신토를 믿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날 성당에 간다던가, 사찰을 찾아 절을 올린다던가 하는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코야산 한국 가이드북에는 이러한 설명 싹 빼버리고 그냥 '묘신사'라는 이름 하나만 달랑 쓰여있어서

대체 이게 뭔가 싶은 사람들이 많을 듯 하다. 나머지 중요문화재 설명하기에도 페이지가 모자라니 어쩔 수 없지만.

 

사진의 건물은 미야시로가 아니라 그 앞에 건립된 산노인(山王院)이라는 배전.

이 곳은 규모가 큰 신사에서 쓰이는 양식처럼 본전과 배전이 나뉘어져 있는데

이 배전은 또 불교 사찰건물의 양식을 상당부분 빼다박은 건축물이라서 굉장히 묘한 느낌이다.

 

이렇게 신사와 사찰이 한 곳에 세워져 있는 광경은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일본에서 이곳밖에 없다.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지만.

 

 

 

정작 미야시로 신사는 그 강렬한 주황색이 워낙 두드러지는 바람에

이곳과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 어색함 탓인지 한 장도 담아오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구경했는데

산노인은 신사 양식과 불교 양식이 훌륭히 조합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구도를 잡고 뷰파인더를 바라보는데, 문득 '코야산의 시린 산속에서 해가 막 떠오늘 무렵'의 산노인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 해서

색온도를 조절해서 그때 느꼈던 이미지를 재현해 보려고 노력해 봤다.

보정 프로그램 쓰는것도 쥐약이라서 마음먹은 것처럼 뚝딱뚝딱 고치진 못하지만, 대강 이런 느낌.

이곳에서 아침을 맞이해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신사 앞이라면 에마(絵馬)가 빠질 수 없지.

그런데 그냥 신사가 아니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에마 역시 불교식과 신토식이 따로 걸려 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진언종식 에마라는 느낌. 쓰여 있는 소원도 읽기힘든 한자로 쓰여 있는 점이 특징.

참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일본인들의 에마 사랑은 이곳에서도 멈추지 않는구나.

 

 

 

이곳은 전형적인 신사의 에마를 걸어두는 곳.

역시 진언종의 총본산인 만큼 이런 에마보다는 불교식으로 소원을 비는 곳이 훨씬 빡빡하다.

 

대체로 신사의 에마들을 잘 살펴보다 보면, 소원 빈다기 보다는 반쯤 우스갯소리를 적어놓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장난스러운 에마가 보이지 않는다. 세삼 이곳을 바라보는 일본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

거기다가 옛 향기 가득한 이곳 단상가람에 걸맞게도, 오랜 시간이 지나 매직으로 쓴 글씨가 지워져 버린 에마마저 찾을 수 있다.

이제껏 꽤나 유명하다는 신사는 다 찾아가본 나로서도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에마마저 이렇게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광경은 소소하지만 확실히 각인되는 여행의 추억이다.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굉장한 사찰들이 꽉꽉 모여있는, 보물상자같은 단상가람이지만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 지고 있다. 한시간에 두 번 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타려면

지금부터라도 이동속도를 높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평소 발걸음 대로라면 이곳 단상가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혹사에 혹사를 거듭한 왼쪽 발목은 원래 이동속도를 1/10 이하로 줄여버린데다

덕분에 계속 부담을 준 오른쪽 다리는 근육이 터질듯 단단해진 상태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일 때를 생각해서 구경하다보면 자칫 버스를 놓칠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있었다.

 

단상가람의 입구까지 최소한 버스 도착 15분 전에는 도착해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될 것 같아서

하나라도 더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서두르게 된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혼자 쇼를 벌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단상가람은 17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저 녀석들이 전기로 빛을 밝히는지, 여전히 초롱불을 사용하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게 아쉽다.

어둠 속에 잠긴 단상가람 사이사이에서 조그맣게 빛나는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지.

조용한 산골짜기 사찰 아래 울려퍼지는 우렁찬 셔터소리에 그나마 기운이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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