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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7  산막골에서만 맛볼수 있는 진수성찬 12


아프리카에서 알맨님이 돌아오셔서 나침반님과 함께 산막골에 놀러갔습니다.
한국화의 대가 우안선생님이 거주하시는 산막골은 인구 30명 정도의 작은 마을로
휴대전화 전파도 통하지 않는 조그만 산골 마을이죠.

산막골에 가는 도중 항상 차를 세워서 풍경을 즐기게 되는 건봉령 승호대. 한국에서 가장 멋진 풍경 중 하나라고 생각.


보통 산막골엔 까페 회원들과 단체로 왔던 일이 많은데, 이번엔 3명이서 조용하고 느긋하게 왔습니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를 먹으며 그저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서.


알맨님이 홀홀단신 아프리카에 뛰어든지도 3년이 되었고, 점점 그 규모나 중요성도 커지는 중이라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승호대 앞에선 그저 풍경만 바라보면 근심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네요.


산막골의 폐교에 도착하면 맨 먼저 하는일이 불 지피기.
우안선생님이 작품활동을 하고 계시는 폐교는 운동장에서 캠프파이어하기 딱 좋은 곳이지만 3명이서 왔으니 그렇게까지는 필요없고

개울가에서 주워온 넙적한 바위를 올려놓고 열심히 장작을 때워서 그 위에 삼겹살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세상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최고의 고기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전날 밤에 비가 온 터라 불이 잘 붙질 않네요.
불 지피고, 밥 만들고, 상추 씻고, 미역국 만들고 하느라 초반엔 정신없습니다.


7개월만에 찾아간 폐교 안에는 우안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신데다, 원래 있던 전기밥솥이 어디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아서
그냥 솥에 물넣고 가스레인지에서 밥 만들기로 했습니다.
1인분 쌀밥이야 진저리나도록 해먹어 봤는데 6인분 잡곡은 불이나 불조절이 처음이라 좀 착오가 많았네요. ㅡㅡ;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진액. 일단 여기는 공기 냄새가 도시와는 차원이 달라서 (나침반님 표현으로는 필터없이 그냥 들이마시는 듯한 느낌)
사방을 꽉 채운 풀내음에 장작 타는 냄새가 어우러져 그저 숨쉬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우안선생님이 지난 번 심경색으로 쓰러지신 후로 그림을 배우는 제자분들이나 사모님께서 집안일을 하러 자주 오신다네요.
원래 부엌에 있던 밥솥은 우안선생님 방 안으로 옮겼다는데, 이미 만들고 있었던 중이라 그냥 허탈한 웃음만.
냉장고에 있던 미역과 멸치, 황태로 미역국 뚝딱 만들어서 식사 준비 끝냈습니다. 이제 구워진 고기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릴 뿐.


쓰러지신 후로 살도 좀 빼시고, 음식량도 조절하시고 짠 것도 줄이셨다는 우안선생님.
그냥 봐서는 지난번보다 더 건강하신 것 같은데, 아무튼 건강하셨으면 좋겠네요.


제자분들은 갓 피어난 국화꽃을 따고 있습니다. 국화차도 만들고 손님들에게 선물도 주기도 하고 하려고.
오색찬란한 향기에 국화까지 더해지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향기의 향연이 벌어졌습니다.


사진으로 표현하기 힘든 국화의 아름다움에 더해
미술에 조의가 있는 분들이 사진빨 잘 나오게 하려고 국화를 이리저리 세팅하시는 바람에 오히려 부담 백배.


빛의 방향과 구도까지 생각해 가며 간만에 살떨리는 촬영을 했습니다. 마음에 들 만한 건 별로 안나왔지만... ㅡㅡ;


돌판이 꽤나 두꺼워서 달궈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한번 달궈지면
기름기는 밑으로 줄줄 흐르고, 아무리 구워도 타거나 늘어붙지 않는 최고의 불판이 탄생하죠.


마늘과 버섯, 김치등은 은박지에 싸서 은근히 굽습니다.
그때서야 고구마와 감자를 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 아쉬워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저 숯불에서 구워먹는 고구마와 감자는 별미중의 별미인데 말입니다. 밤의 대화시간에 위장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는데. ㅡㅡ;


교대로 고기 구워가며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상추에 쌈장, 김치, 마늘과 함께 고슬고슬한 잡곡밥과 잘 구워진 삼겹살을 싸서 입에 넣을 때의 기분은~


6명이서 삼겹살 세근은 그리 많은 양이 아니지만 밥과 미역국이 꽤나 많아서 배불리 먹고 먹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어떤 방법을 써도 이 맛을 재현할 수 없다고 자신합니다.
알맨님 말마따나 여기는 공기마저도 양념이 되는 곳이니까 말이죠.


배는 터질 것 같은데, 남은 밥과 이제껏 은박지에서 잘 익혀진 김치와 버섯을 섞고, 고추장을 듬뿍 넣으면
오리지날 숯불 돌판 볶음밥이 완성됩니다.
 
은박지에서 넘쳐흐를듯한 팽이버섯의 액즙이 저 위로 쏟아질 때의 모습은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이게 하죠.


정말 저걸 어떻게 다 먹나 막막할 정도였지만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금새 해치워 버렸습니다.
아마 여기서 밥 먹어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실 내용일 듯.

배에 부담가지 않고 언제까지나 들어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음식입니다.

이 날은 우안선생님께서 폐교에서 주무시지 않고 제자분들과 함께 떠나는 터라 산막골에서 처음으로 일행 셋이서 보내는 밤을 맞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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