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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도리 공원'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7.31  2월 10일 삿포로 - 잠깐동안 다시 홀로 10
  2. 2014.07.13  2월 10일 삿포로 - 눈축제 with 일행 8
  3. 2014.07.07  2월 9일 삿포로 - 오오도리 눈축제 9

 

LP의 부드러운 음색에 취해 한동안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슬슬 밖으로 나간다.

Y양과 코마츠군은 저녁에 식사 약속이 있다고 해서 너무 늦기전에 전철을 타야 한다.

내일은 오타루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하는데 괜찮으면 함께 가잔다. 나 역시 내일은 오타루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동의.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고 날씨도 더욱 쌀쌀해진다.

삿포로의 날씨가 서울과 비교해서 그리 추운편은 아니라지만 눈이 워낙 많이오기 때문에 밤이 되면 체감적으로 더 추운 느낌이다.

 

관광객이 워낙 많은 눈축제장이라 가능하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장을 한 바퀴 돌수 있도록 요원들이 지도를 하고 있다.

인파가 역방향으로 엉켜버리면 워낙 난잡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그래서 일단 Y양과 코마츠군은 전철 타는 곳까지 걸어가며 못 본 전시물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울트라맨. 이것 외에도 고지라 등 50~60년 전의 캐릭터들이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부럽기 그지없다.

 

 

 

곰이 서 있어서 혹시 쿠마모토의 마스코트인 쿠마몬인가 싶었는데

옆에 TV타워로 보이는 건물과 함께 곰 가슴에 홋카이도 지도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쿠마모토와 홋카이도의 합작품인가 싶기도 하다.

홋카이도는 이주 역사가 짧은 만큼 그 반작용으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저 지도는 여러가지로 많이 쓰이곤 하는데, 삿포로 맥주정원의 명물인 무한 징기스칸의 불판도 홋카이도의 지도모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역시 알아보기 힘든 일본 지역 캐릭터보다 이런 세계적인 캐릭터들이 이해하기 쉽다.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쪽에 눈이 쌓여서 마치 머리카락 자란 푸우처럼 보이는게 재미있다.

 

 

 

호빵맨에 나오는 세균맨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뭔가 얼굴이 심각하게 무서워서 인상적.

호빵맨은 참 순수한 얼굴밖에 나오지 않지만 어른들의 장난으로 여러가지 무서운 바리에이션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터널을 통과하는 하행 신칸센.

현재 홋카이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로, 도쿄에서 삿포로까지 신칸센 철로를 만드는 공사가 2015년 완공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이 녀석이 완공되면 도쿄에서 삿포로까지 4시간에 이동이 가능해진다.

 

옆의 설명 간판에는 사용할 수 있는 IC 카드까지 설명해놓는 살짝 개그스러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것도 뭔가의 마스코트인 듯 한데 알 수가 없다. 코마츠군에게 계속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스키를 신고 있는걸로 봐서 동계올림픽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홋카이도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 당연히 캐릭터의 인지도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스마트기기의 보급과 함께 터진 첫 번째 대박 앵그리버드의 주인공.

인기작이라 그런지 특징 묘사도 꽤나 잘 되어있어서 아는 사람은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제작팀 쪽에서 일부러 넣은건지 군데군데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도 재미있다.

 

 

 

축제에 대한 일본인의 꼼꼼한 준비성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판기 스킨마저도 축제 캐릭터를 집어넣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배워갈 만한 점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이런 걸로 매상의 변동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본인처럼 소소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아닐런지.

 

 

 

회장 중간부분엔 세계 각국의 팀이 출품하는 국제 눈조각 콩쿠르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팀도 분명 출전했을거라 생각해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이 작품이 올해 콩쿠르 우승작이라고 한다.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설명문을 보니 금새 이해가 간다. 하나되는 세계를 형상화한 작품.

 

 

 

워낙 일본이라는 나라가 공동체의식을 중요시하기도 하고, 세계인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을 앞둔 시기이도 하고

특히 지금 일본은 협동과 협력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 한국팀이 시류를 잘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출품작들에 비해 모던 아트적인 느낌도 들고, 자세히 뜯어보니 우승 먹을만 하겠다는 생각.

 

 

 

조형의 퀄리티는 다른 국가 팀들의 작품도 결코 떨어지지 않지만, 주제 표현이라는 면에서는 확실히 한국팀이 뛰어나다.

물론 이 눈조각 콩쿠르라는 것이 피말리게 경쟁해서 우승을 거머쥐는 그런 대회가 아니라서.

 

 

 

저녁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Y양 일행은 이제 돌아가는 중이니 그렇다치고 본인은 좀 더 눈축제를 구경하려고 생각중인데.

바로 돌아가기에는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지만 추운 날씨에 무리하는건 앞으로의 여행에 지장을 줄 지도 모르니 신중해야 할 듯.

 

어둑어둑해지니 좀 전까지 새하얀 자태를 자랑하던 퐁키 키즈의 거대한 조각상이 고운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낮에 새햐안 눈색을 만끽하고 저녁에 화려한 조명빨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눈축제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여기저기서 대인기인 후낫시. 확실히 일본에서 인기몰이중인듯, 관광객 중에 '후낫시다~' 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꽤 많다.

코마츠군도 후낫시를 매우 좋아하는지 싱글벙글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보니 코마츠군에게도 뭔가 선물을 줬었어야 하지 않았다 싶다.

Y양은 한국에서 타지까지 와서 고생한다고 과자라도 하나 사드렸는데, 코마츠군은 토박이라는 생각에 선물 생각을 깜빡 한 듯 하다.

 

 

 

일행 셋이 전부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이동 속도 맞추기가 쉬운 점이 참 마음 편하다.

사진에 관심없는 일행이라면 어쨌든 찍는 입장에서 시간을 잡아먹는 모습이 되기 때문에 조금 미안한 기분도 드는데.

 

낮과 밤의 이미지가 이렇게 달라지면 어쩐지 이득보는 기분이 된다.

 

 

 

무려 자위대 삿포로지부 마스코트인 모코가 회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홋카이도 토박이인 코마츠군이 설명해 준다.

자위대는 당연히 모병제이다 보니 항상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홍보에도 열을 올리는 중이다.

군대라고 해서 마스코트를 딱딱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컨셉으로 나온 듯한 느낌.

 

 

 

밤이 되면 밤을 이용한 즐길거리가 등장한다. 단순히 불만 켜 놓는 것 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

저 멀리서 레이저로 바닥에 캐릭터 그림을 비춰주니 아이들이 재밌어하며 달려든다. 이럴 때는 물론 좋은 셔터찬스.

저작권(?) 문제로 가능하면 얼굴이 나오지 않게 소심하게 찍는다. 어디서 아이 부모가 달려와 카메라를 내던지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며.

 

 

 

거대한 전시물들은 오히려 밤이 되니 그 위용을 드러내는 듯 하다. 주위의 어둠과 대비되어 명암도 확실해지고 웅장함이 더해진다.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낮보다 사람이 훨씬 많은 듯 하다. 역시 축제는 저녁부터가 본편인 것인가.

 

이러나저러나 날씨도 매우 춥고 조명이 9시 정도까지밖에 켜지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초저녁 기분밖에 나지 않지만.

Y양이나 코마츠군이 저녁약속 없고 술이나 펍의 분위기를 즐기는 타입이었다면 늦은 밤까지 술안주를 즐겼을 테지만

두 사람 모두 나와는 다른 매우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분위기라서 살짝 아쉽긴 했다.

 

 

 

말레이시아 가게에서는 현란한 반죽돌리기를 시연하고 있다.

피자 도우 돌리는것과 비슷하긴 한데 좀 더 유연성이 있어서 움직임이 비규칙적이라 더욱 생동감이 느껴진다.

 

겨울 삿포로 축제장에서 말레이시아 사람이 그것도 무려 반팔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더 놀라웠지만.

음식 만드는 부스 내부는 어디든 춥기보다는 덥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데, 실제로 보면 또 그게 금방 이해되기는 어렵다.

열정을 봐서 하나 사먹어 주고 싶기는 했지만 Y양 일행은 이제 저녁먹으로 가는 중이고

본인 역시 홀로 저녁이지만 괜찮은 녀석 먹고 싶어서 배를 비우는 중이라 군것질은 힘들다.

 

 

 

오오도리 중앙에 도착해 Y양과 코마츠군은 전철을 탄다. 눈축제 기간이라도 삿포로는 돌아가고 있으니 저녁시간대의 인파는 대단하다.

혼잡한 개찰구에서 내일 삿포로역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초면 일행들과의 관광이라서 좀 긴장한 탓인지, 큰일 하나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도 없지 않다.

물론 눈축제 같은 행사는 혼자서 묵묵히 걸어다니며 사진찍어봤자 별로 재미있지 않으니 일행이 생긴 건 나에게 참 좋은 이벤트였긴 하다.

 

6시도 되지않은 시간이라 어둑어둑한 하늘과 달리 이대로 돌아가기엔 많이 아쉽다.

형형색색의 대만측 얼음궁전을 감상하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본다.

 

 

 

인파가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몰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확성기를 든 사람들이 스키 점프를 위해 이동을 서둘러 달라는 소리를 지른다.

아마도 어젯밤 텅 비었던 그 점프대에서 오늘도 이벤트가 일어나는 모양이라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슬금슬금 걸어간다.

 

점프 구경은 아마도 자리를 한번 잡으면 꼼짝도 못하고 있어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이 추운 날씨에 Y양 일행과 보려고 했다면 괜히 극기훈련 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해 질 수도 있었을 듯.

 

점프 이벤트는 6시에 시작하는데, 다행이 조금 이른 시간이라 무난하게 펜스 바로 앞에 설 수 있었다.

10여분 전부터는 뒤로 빠져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진행요원들은 이동하는 사람들 방해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나름 괜찮은 장소다 싶었는데 사람이 가득 들어차고 나니 방송이 나온다.

오늘 점프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한다고. 라인의 상태도 전혀 다른걸 봐서 아무래도 점프도 종목이 따로 있는가보다.

 

왼쪽에 자리를 잡은 탓에 생각한 것보다 시야가 확 트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찍 온 것은 다행.

늦었으면 사진 대부분의 하단부엔 시커먼 뒷통수가 난립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을테니까.

 

 

 

망원으로 갈아끼우고 눈 펑펑 쏟아지는 저녁에 서 있으니 팔은 뻐근하고 다리는 욱신거린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망원을 통해 보는 게 훨씬 잘 보이니 계속 주시중인데, 준비하는 선수들이 굉장히 어려보인다.

저 위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다리에 힘이 쏙 빠질것 같은 높인데다가 거기서 수십 km의 속도로 점프를 하다니.

 

스피드를 즐기는 운동은 별로 하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섬뜩하기만 하다. 부디 실패하는 일은 없기를.

 

 

 

타이밍 좋게도 점프가 시작할 즈음부터 내리는 눈이 더욱 거세진다.

이 정도로 눈내리는 상황에서 사진을 찍는 경험은 처음이라 좋은 연습이 되리라 생각.

 

사실 이번 여행중 눈이 이 정도로 내리기를 바라는 날이 딱 하루 있다.

토카치(十勝) 지방의 독특한 경마인 반에이 경마는 자이언트급의 거대 경주마들이 속도보다 파워를 겨루는 경기인데

원래 겨울경기에 특화된 녀석들이라, 내가 가는 날짜에 눈이 펑펑 내려주면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아서 기대중이다.

안내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운이 좋으면 이번 폭설이 그 날 촬영의 시험촬영 쯤 될 수 있을테니 나쁘지 않다.

 

 

 

풀프레임 망원렌즈는 베낭여행에 가져가기엔 참 크고 무거운 녀석이라 여간 귀찮은게 아닌데

그래도 다가갈 수 없는 지역의 모습을 찍을 일이 많은 경우엔 항상 믿음직하게 사진을 뽑아주기 때문에 내치고 갈 수가 없다.

 

살짝 억지스럽게 악을 쓰고 있지만, 촬영의 편의를 위해 손가락쪽은 드러난 손목 보온대만 차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망원렌즈를 물린 풀프레임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극기훈련하는 느낌이 든다.

겨울 홋카이도의 위력이란 걸 실감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이번 여행은 주욱 이 차림으로 갈 생각인데

고작 삿포로 정도에서 고생한다면 앞으로가 험난할거라 생각해 어찌어찌 참아보려고 노력중.

 

 

 

어쨌든 실수하면 생명마저도 위험한 점프이다 보니 안전관리에는 각별히 신경 쓰는 느낌이다.

몇 안되는 인원들이 정말 땀흘리며 열심히 필드를 고르고 있다.

 

왼쪽 점프대는 매끈하게 닦여져 있는데, 오늘 점프하는 오른쪽은 눈이 굉장히 울퉁불퉁하게 쌓여 있어서

아마도 점프의 종류에 따라 지면의 상태도 달라야 하는 것인가 싶다.

 

 

 

30여분간의 기다림 끝에 DJ 같은 사회자의 신명나는 목소리와 함께 이벤트가 시작된다.

한국과 달리 이런 쪽에서는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일본 사람들의 특성상, DJ 가 흥을 띄우려 노력해도 신사적인 박수 외에는 꽤나 조용한 편.

선술집에서는 누가누가 소리 잘 지르나 싶을 정도로 웃고 떠드는 일본 사람이지만 이런 곳에선 왠지 사회적인 분위기에 신경을 쓰나 보다.

 

가볍게 한 사람씩 점프가 시작되는데

조명이 있다고는 해도 이런 캄캄한 밤에 조리개값 어두운 망원렌즈로 질주하는 스키어들을 잡아낸다는 게 보통 힘든일이 아니다.

내 카메라가 동체추적에 특화된 모델도 아니라 일단 평소 습관대로 싱글 AF 에다가 연사만 걸어놓고 타이밍을 노려서 찍어본다.

 

아주 구닥다리 카메라는 아니라서 다행히도 3장 중 1장은 그럭저럭 건질 만한 녀석이 나온다. 감도를 3200 에서 6400 까지 올려야 겨우 셔터스피드가 확보되긴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누가누가 멀리 날아가는가가 아니라 익스트림처럼 멋진 동작을 보여주는 쪽으로 진행되는 듯 하다.

점프대 자체의 높이도 아찔한데 그걸 몸을 꼬면서 날아가는 스키어들의 모습을 보니 거의 서커스 보는 느낌.

 

홋카이도에서는 친숙한 겨울스포츠지만 관객들 사이에서도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선수들의 연령대는 대학생이나 사회인도 있지만 상당수가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라 놀라울 따름이다.

 

 

 

전부 개성있는 포즈라 점프 위치만 같을 뿐이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거의 패닝샷에 가깝게 카메라를 움직여가며 촬영할 수 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촛점이 잡히기만 하면 대충 찍을 순 있다.

 

컴팩트 카메라 들고 온 사람들은 거의 동영상 촬영용으로 쓰고 있는 분위기.

맛폰 촬영탓인지 여기저기서 번쩍거리기는 하는데, 이 거리에서 플래시 터져봤자 별 의미가 없다.

휙휙 날아올라서 사뿐하게 착지하는 인간같지 않는 모습에 감탄하면서 눈을 뷰파인더에서 뗐다 붙였다 한다.

사진만 담으면 실제로 보는 재미가 줄어들기 때문에 둘 다 놓치지 않기가 참 피곤하지만, 집중해서 다음 선수들의 점프를 주시해 본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라멘과 햄버거, 도시락 등등 여행 첫날의 들뜬 기분에 폭풍 흡입한 음식들 때문에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원래 부어있는 얼굴이라 별 문제는 없지만 오늘 정오쯤 합류하는 Y 양 일행이 놀라서 도망가지만 않으면 좋을텐데.

 

Y 양은 홋카이도 북동부에 위치한 키타미(北見)에서 한국어 교습소에 근무하고 있는데

눈축제 기간에 휴가를 받아 이곳으로 온다고 해서 함께 구경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대학원에서 잠깐 인사를 하긴 했지만 생면부지의 사람과 함께 여행한다는 게 홀로 여행에 익숙한 본인에게는 나름 결심이 필요한 일.

 

키타미라면 자전거 여행때 지나쳤던 적이 있는데, 과연 그 외진 곳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신선한 사실이다.

Y 양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본인도 한번 일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홋카이도를 좋아하기도 하고, 키타미는 삿포로까지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라 한적한 생활을 좋아하는 나에게 매력적이기도 하다.

더구나 조금만 더 가면 홋카이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비경 시레토코가 위치하고 있어, 반쯤은 다른 의도가 있기도 했지만.

 

7시 반쯤 버스를 탔다는 연락이 와서 느긋하게 조식 챙겨먹고 뒹굴거리며 TV나 본다.

삿포로 출신 청년 한명이 합류하고 있어서 일행은 세 명으로 늘었다. 두 명보다는 덜 부담되니 좋다.

 

호텔을 떠나면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한 시간을 맞춰 삿포로 역으로 나간다.

어젯밤의 매서운 눈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강렬한 푸른색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어 시작이 좋다는 느낌.

 

역 앞의 눈사람은 어제 시계탑의 녀석들과 비교해 세파에 찌든 기색이 역력하다.

일단 거의 쓰레기로 분류될만한 재료들을 모아서 만들어 놨는데, 위치상 절대로 눈축제 관련해서 세워진 녀석은 아니다.

역시 거대 집단에서 아무리 힘을 써도 개인의 자유분방함을 넘을 수 없는 한계라는게 있는 듯 하다.

 

 

 

눈이 오는것도 좋지만 청명한 겨울 하늘 아래서 눈축제를 즐긴다는 건 멋진 사진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 운이 좋구나 생각하며 Y 양 일행을 찾아본다. 살짝 해매는 느낌이 있었지만 어렵지 않게 조우할 수 있었다.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지만 여행중 파트너라는 게 그나마 금새 친숙해지기 좋은 장르니까 다행.

함께 온 코마츠 군은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으로 참 선해보이는 표정에 나름 개그센스도 갖추고 있는 편한 타입이다.

하긴 파릇파릇하지 않은 건 일행 중 본인 하나밖에 없으니, 짐이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

 

 

 

일단 다들 일본어는 할 줄 알고, 코마츠군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니 기본적인 대화는 일본어로 한다.

물론 Y 양과 세심한 대화가 힘들 때에는 한국어를 쓰긴 하지만 너무 둘이서 이야기하다간 코마츠군에게 실례가 될 테니 자중하는 중.

 

점심시간이고 하니 가볍게 식사 후 구경을 시작하려 한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곳 토박이인 코마츠군.

삿포로 하면 미소라멘이니 지역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인기있는 지하상가의 한 라멘집으로 일행은 이끌어 준다.

어제 미소라멘 먹었지만 라멘 매니아인 나로서는 1일 1라멘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거절할 일이 없다.

 

좌석이 10개 조금 넘을듯한 조그만 가게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다. 역시 맛있는 곳은 입소문이 나는 것일까.

어제 먹었던 고급스러워 보이던 라멘과 비교해 가격도 싸도 내용도 단순한 편이지만 중요한 면발과 미소 국물의 맛은 진하고 시원하다.

예전에도 가끔 느꼈던 점인데, 라멘이란 건 일부러 이것저것 넣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편이 가장 무난한 듯 하다.

 

멘마는 오돌오돌한게 참 맛있었지만 차슈쪽은 어제 라멘과 살짝 비교가 되는 편. 하지만 전체적으로 충분히 맛있다.

사실 삿포로에서 미소 라멘으로 맛없는 집 찾기가 힘들 정도이긴 하지만.

 

Y 양은 일본에서 취업해 생활하는 사람으로서는 좀 놀랍게도 라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일본을 좋아해도 식습관과 상성이 맞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키타미에서는 한국에서 보내온 김치나 된장 등으로 직접 밥을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처럼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현지 음식에 거리낌이 없는 편이 이상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라멘으로 몸 속을 한껏 따뜻하게 만들어 놓은 후 오오도리 눈축제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섰는데

왠걸 방금 전까지 그 쨍하디 못해 날카롭던 푸른 하늘은 어디로 가버린건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한 우중충한 색으로 변해 있다.

바람도 날씨만큼이나 매서워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겠다 싶었던 30분 전의 안도감은 싸그리 사라져 버린다.

하긴 겨울 홋카이도의 날씨란 원래 이런 것이란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어제 혼자 거닐었던 시계탑과 반대 방향에서 오오도리 공원을 향해 걸어 올라간다.

이곳엔 유명 관광 스팟인 도 청사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데

여름의 고즈넉한 고딕풍 붉은 벽돌 건물을 중심으로 한 가로수길 중간에 거대한 눈사람이 떡하니 들어서 있다.

원래 이 위치 정도에서 청사 건물을 담으면 참 단정하고 기품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겨울엔 이런 눈사람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이제까지의 장난감들에 비해 월등히 크고 단단하다. 거의 돌맹이 수준.

뒤쪽엔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어서 눈사람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홀로 여행중의 본인이라면 절대로 찍을 일이 없지만 이번엔 사진 찍히기 좋아하는 일행이 함께 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만끽해 본다.

 

Y 양은 아이폰으로 찍고 코마츠군은 캐논의 G 시리즈로 찍고 나는 거대한 DSLR 로 찍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사진 찍는건 좋아해도 찍히기는 싫어하는 나와 달리 Y 양 일행은 모두 사진 찍히는데 거부감이 없다는 점.

이제껏 상당수의 주변인이 내가 카메라 들이대는 걸 그리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찍어달라고 말을 해 줄 정도의 적극성을 보여줘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눈사람과 함께 사진 찍으려 계단을 올라가고 나니 사람들 시선보다 훨씬 높아지는 덕에

청사 사진을 부담없이 담아낼 수 있다. 청사의 경우엔 붉은 벽돌이 아무래도 푸른 수목과 푸른 하늘과 좀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며 오오도리 공원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코마츠군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라 타국인들끼리 대화에도 부담감이 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Y 양에게는 현지 생활에 한국어 교습소의 상황 등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그런 걸 전부 일본어로 말하기엔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특히 가끔씩 코마츠군에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법한 내용도 있으니 당히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키타미는 홋카이도에서도 꽤나 외진 곳에 위치한 마을인데, 그런 곳에 한국어 교습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수강 인원이 70명에 달한다는 것과, 그 수업을 2명의 교사가 맡고 있다는 점이 더더욱 놀라웠다.

대학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보유한 사람도 있는 반면 상당수가 나이 드신 어른들이라고.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따뜻해서 좋다는 말을 하는데, 본인 역시 키소 마을에서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간다.

 

단지 돈을 저축해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는 그다지 유리한 곳이 아니라 한다.

나처럼 아예 말뚝을 박아버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역시 그 먼곳에서 홀로 생활한다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리라 생각.

특히 키타미는 지금 삿포로 날씨가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겨울엔 험하기로 유명하다.

 

오오도리 눈축제는 거의 끝물이던 어제 저녁과는 달리 굉장한 인파가 모여있다.

중앙의 거대 전시물을 기점으로 양 쪽에 길이 있는데, 인파 조절을 위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관람을 권유하도록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다간 정말 복잡해 질 만한 상황이니 납득이 간다.

 

낮에는 역시 수많은 노점상들이 성황중인데, 보기만 해도 든든한 게다리와 게 된장국, 더워도 마시고 추워도 마시는 맥주 등등

미소라멘을 먹지 않고 왔어도 배가 고프지는 않을 상황인 듯 하다. 물론 사람이 워낙 많아서 먹는데 좀 초초해 질 것 같지만.

 

 

 

배는 고프지 않고, 특히 군것질을 좋아하기는 해도 여행중엔 거의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예전 여름에 방문한 삿포로는 한창 이곳 오오도리 공원에서 얼음조각 대신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그 때는 먹고 죽자는 일념으로 온갖 군것질거리를 마구 씹어먹으며 다녔는데, 포만감과 더부룩한 배 때문에

여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맛있는 거 먹고 싶은 마음이야 한결같지만, 많이 걷는 여행에서는 가능한 한 배를 가볍게 해 두는 편이 좋다는 게 지론.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 열심히 생활중인 Y 양에게는 매장에서 팔고 있는 맛있어 보이는 과자 선물세트를 하나 드렸다.

역시 경험 부족이란 말이 절실히 느껴졌던 것이, 사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굳이 지금 저런 짐을 늘릴 필요는 없었단 사실이다.

운 좋게도 등 뒤의 가방에 넣을 수 있어 문제는 없었지만, 덜컥 선물만 사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앞으로의 일정에 맞는 배려도 중요하다.

 

그걸 이 사진 찍으면서야 깨닫게 되어서, 역시 사회 부적응자의 면모는 착실히 갖췄구나 싶다.

 

 

 

나보다는 당연히 감수성도 풍부하고 구경하는 재미를 즐기는 일행들일테니

인파로 인해 이동 속도가 상당히 느리지만 천천히 사진 찍어가며 여유를 가진다.

코마츠군이 상당수 조형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줘서 큰 도움이 된다. 이 녀석들은 지역 방송국의 마스코트라고 하는 듯.

 

본인은 살고 있는 지역의 마스코트 같은 건 전혀 모르는데 홋카이도 사람들은 이런 데 상당히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이것도 애향심의 차이인가 싶고, 실제로 본인은 애향심 따윈 눈꼽만큼도 없으니.

 

 

 

어제는 라이트가 꺼지는 바람에 이곳까지 둘러보지는 않았기에, 완전히 새로운 기분으로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축제에 아이들이 빠질 순 없으니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눈의 놀이터.

 

얼음 미끄럼틀은 꽤나 재미있어서 어른들이 타도 관계는 없다. 아이들 관련 놀이기구는 다들 줄이 좀 길다는게 문제겠지만.

 

 

 

그러고보니 이런 여행에선 셀카도 중요한 요소라는 소문을 들었다.

본인은 1년동안 자전거 여행 하면서도 셀카는 한두 장 정도밖에 찍지 않는 편이라

재미있게 담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셀카를 찍는 사람들의 사진을 담아주는 것 정도.

 

 

 

철저하게 밀봉된 부스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길래 뭔가 싶었다.

알고보니 파나소닉 에어콘 전시장인데, 저 안은 하와이처럼 따뜻한 기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대형 스크린을 밖에 배치해 놓아서 그냥 구경도 할 수 있지만, 기왕 왔으니 일행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본다.

 

 

 

파나소닉의 에어콘 성능에 대한 평가보다는

눈이 수십cm 씩 내리는 겨울 삿포로 눈축제 한복판에서 훌라 댄스를 추는 광경을 바라보는 이 상태가 매우 묘한 기분이 든다.

 

일본은 온돌과 같은 난방시설이 없기 때문에 에에콘의 히터 기능도 중요한 선택 요소중 하나.

이 겨울바닥에 신나게 틀고 있는 히터의 전기세 걱정에 살짝 과소비가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기업 홍보용으로 이목을 집중하는데 그다지 큰 비용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히터가 따뜻하다고 생각한다면 옆의 버튼을 눌러달라고 한다. 위에 카운터가 있어서 자꾸 늘어난다.

어쩌면 파나소닉 CM 에 우리 일행이 버튼 눌러재끼는 모습이 나올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얼굴은 팔려도 될거라 생각하며 버튼을 눌러 줬다.

 

 

 

그 다음에 나타난 거대한 건물의 위용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삿포로 눈축제는 매년 다양한 나라들과 협의를 맺어 지원을 받아 그 국가의 랜드마크를 건설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어제 본 대만의 고궁박물관, 101타워와 함께 이번에 협력하게 된 건물이 아닌가 싶다.

 

깃발을 보니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건축물인 듯 한데 가 본적이 없으니. 첫인상은 영국 건축물로 보인다.

눈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엔 과도하게 거대한 덩치와 세심하게 조각된 기둥, 무늬, 시계탑 등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상상하기 어렵다는게 아니라 싫은 것은, 삿포로 눈축제의 메인 조형물들은 전부 자위대가 만들기 때문에.

물론 축제니까 기분좋게 임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세계 어디서나 눈과 군대는 상극 중의 상극이 아닌가.

 

훗날 찾아보니 이 건물은 말레이시아의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으로, 1897년 영국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진 벽돌식 건물이다.

영국식 시계탑과 이슬람 모스크 양식의 절묘한 조화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찍는 여행사진에 다른 사람 얼굴이 이렇게 뚜렷하게 나오는 일은, 가족을 제외하면 정말 정말 드문 경우다.

인물 사진은 영 찍질 못해서 Y 양과 코마츠군에게 좀 미안한 기분도 든다. 나 때문에 소중한 휴가 망치지 않기를 여행 도중에도 몇 번이고 기원하고 기원한다.

 

 

 

축제는 신기하고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광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능력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의 축제가 많이 놓치는 것이기도 하고.

 

이쪽은 일단 여기서만 먹을 수 있을 것 처럼 보이는 신선한 재료를 잘 이용한 군것질거리와

수많은 이벤트 관련 상품, 선물용 세트 등 상업적인 면에서부터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는데 굉장한 능력을 보이기에

딱히 참여형 이벤트가 없어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는 잘 만들어져 있다.

 

얼음으로 된 미끄럼틀은 얼마나 미끄럽고 재미있을지.

당시 일본은 겨울왕국이 아직 개봉하기 전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대흥행을 할 줄 알았다면

삿포로 눈축제보다 더 일찍 개봉한 후 최대한 콜라보를 진행했다면 대박 터트렸을거라는 데 의심이 없다.

 

 

 

이건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타지마할과는 느낌이 좀 다르지만 그런 부류였던 것으로 기억.

일단 환호성과 함께 사진 좀 찍고나서 세밀하게 살펴보는데, 분명 인도의 건축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옆에 건축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한국어로도 쓰여 있어서 알아보기 쉬웠는데

역시 베이비 타즈, 즉 작은 타지마할이라 불리는 뉴델리의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였다.

1600년대 무굴 제국 시대에 건설되었고, 타지마할보다 13년 일찍 건설되었기 때문에 타지마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 건축물은 본 적이 없지만 예전 사진에서 본 기억에 따르면 이 조형물은 정말 놀랄 정도의 재현도를 자랑한다.

 

 

 

물론 실제로는 벽면 빼곡히 경이로운 기하학적 무늬가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여기서 그것까지 전부 재현했다가는 도저히 축제 후에 철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까운 미술품이 되었을 법 하다.

 

높이 12미터의 이 조형물은 2250 톤의 눈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5톤 트럭 450대 분량의 눈이라고 하니

내가 평생 태어나서 본 눈을 전부 합한 것보다 더 많은게 아닌가 싶은 기분마저 든다.

아이스블록 공법이라는 독자적인 기술을 사용해 약 100개의 블록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만든 녀석이라고.

 

아, 물론 지금 이 설명은 포즈 잡고 있는 Y 양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평생 꼭 한번 가봐야 할 여행지로 생각하고 있는 곳이 인도, 몽골, 마추픽추, 프랑스, 우유니 정도인데

여기서 이 정도 퀄리티의 눈 모형을 보게 되니 그 마음이 사그라드는게 아니라 더욱 더 가고 싶어진다.

물론 많이 꼽아서 저 정도고, 사실은 전 세계 안 가보고 싶은 곳이 없긴 하다.

 

이곳 눈축제의 테마는 매년 다양하게 바뀌고 있으니, 삿포로 눈축제를 매년 방문한다면

내가 모르고 있던 곳의 아름다움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되면 가보고 싶은 곳이 자꾸 늘어만 갈 테지만.

 

잠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 일어나는 건 일종의 고문이다.

많이 피곤했는지 8시 알람소리에 눈을 떠도 일어나는 건 몸이 아니라 짜증 뿐.

 

신체적으로 본다면 그냥 아침까지 푹 자버리는게 최선의 선택이지만 여행중엔 희생해야 할 쾌락도 있다.

찌부둥한 몸을 이끌고 주섬주섬 옷과 장비를 챙겨서 이미 깜깜해 진 삿포로 시내로 나온다.

눈이 많이 내리면 추위는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하지만 역시 밤이 되면 꽤나 쌀쌀하다.

기온은 영하 6도 정도를 가리키고 있어서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카메라를 꺼내놓은 상태에서 움직이니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을수가 없다.

 

슬금슬금 걸어서 오오도리 공원에 도착하니 낮에 얼핏 보였던 흰 전시품들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다. 역시 밤에 와보길 잘했다.

오오도리를 가로지르는 도로에는 신호등이 작동하고 있지만 축제 기간이다 보니 나이 지긋한 요원들이 수신호로 관광객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낮부터 희끄무레하긴 했지만 밤이 되니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물론 눈축제 기간에 눈이 온다는 건 싫어할 만한 일이 아니니 기분은 좋다.

 

조심해야 할 건 카메라 렌즈에 눈이 너무 많이 묻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 정도.

눈이라면 정말 펑펑 퍼붓지 않는 한 물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갈 일은 없지만

렌즈 앞쪽에 많이 묻어버리면 결과물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후드를 항상 정방향으로 끼워놓는다.

위로 올려다보는 장면을 찍을 때는 살짝 들어서 찍고 바로 내리는 조심성을 보인다. 렌즈 닦는거 정말 고역이라서.

 

낮에는 아마 여러 먹거리들과 이벤트로 인해 시끌벅적하겠지만 점등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밤은 의외로 조용한 편이다.

 

 

 

눈축제에는 눈으로 만든 조형물과 얼음으로 만든 조형물이 혼재해 있는데

단순한 미적 조형물이 아니라 대부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세워져 있다.

 

일본에서는 인기있는 작품인 시마 시리즈의 작가 히로가네 켄시가 그린 비영리단체가 전시한 작품.

초반엔 그럭저럭 볼만 했지만 지금은 그저 직장인 판타지에다가 극우 자위기계로 전락해 버린 작품이라

저 사람 그림을 봐도 하트모양의 얼음덩어리처럼 차가운 기분밖에 들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리는 세계 3대 눈축제 중 하나라서 더더욱 일본 문화를 나타내는 조각상이 많은 듯 하다.

이 정도 크기로 통짜 얼음을 조각하기엔 무리가 많아서인지

이곳에 전시된 얼음 조각상들은 전부 일정 크기의 블록을 쌓고 깎아서 만들어져 있다. 내부에 블록 조립의 흔적이 보인다.

 

 

 

얼음 조각상은 눈보다 무거워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상당히 거대한 건축물도 몇 점 보인다.

만드는데 고생 좀 했겠구나 싶지만 인상에 깊히 남을만한 예술미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보기만 하는 관광은 흥미가 빨리 식어버리기 때문에, 사실 눈축제에 크게 기대하고 온 것은 없다.

낮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많이 열리니 체험하는 재미도 있겠지만 밤엔 그냥 라이트에 반사되는 조각상들의 자태를 감상하는 것 말고는.

 

얼음이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하트모양이 왠지 크나큰 상처를 받은 듯한 느낌으로 빛나고 있어서

눈 내리는 도시의 밤 속에서 보고 있으니 뭔가 의도와는 다른 불안감이 느껴지는 듯 하다.

 

 

 

맥주는 더울 때 마셔야 좋다고 하던가. 본인은 술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기분내키는 대로 마시느라 잘 모른다.

눈축제 기간이라고 눈이 내리지 않는 것은 아니니, 수많은 진행요원들이 부지런히 눈을 치우고 개최장을 정비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된다.

 

도시의 눈이란 건 그냥 방치해 뒀다간 여러가지로 흉물스러워지는 법인데

이곳 축제장 주변은 관광객들이 일상적으로 걸어다니기에 거의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 정비되어 있다.

1주일간 참 고생하는구나 싶다. 눈이 쌓인 양은 2월 8일 서울의 수 배에서 수십 배는 되지만 걸어다니기는 이쪽이 훨씬 편하다.

 

 

 

관광객이 워낙 많이 오는 축제다 보니 흡연구역의 철저한 격리도 중요한 요소일 듯 하다.

내부는 따로 부스가 설치되어 있지만, 축제와 분위기를 맞추려고 일부러 얼음벽까지 만들어 놓은 꼼꼼함이 만족스럽다.

시간이 늦어서 흡연부스는 문을 닫았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밤엔 특별히 이벤트 같은거 없나 싶었는데, 사람이 직접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이벤트라면 열리고 있었다.

경마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는 특히나 목장으로 유명한 곳이 홋카이도인데

서로우브래드의 고향 홋카이도라는 주제로, 음영이 조각되어 있는 거대한 눈벽에다가 영상을 쏘아서 다양한 장면을 연출중이다.

 

기술적으로는 딱히 놀라울 구석이 없는 전시지만 관광객 배려라고 할까, 서비스 정신은 그럭저럭 높게 쳐줄 만하다.

 

 

 

당시는 소치 동계올림픽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이라 이번 눈축제에서는 스키점프대도 설치되어 있다.

분명 이곳 오오도리 공원은 완전히 평평한 곳이었는데, 산등성이 대신 철제 구조물을 세우고 거기다가 눈을 퍼부어서

그럭듯하게 점프대를 만들어 놓았다. 언제 이벤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더 이상 점프가 없는 듯 하다.

 

 

 

동계 종목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지만, 두 곳의 점프대의 모양이 다르다.

자세히 보니 눈의 상태도 전혀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데, 점프의 종류에 따라 지면의 상태도 바뀌는 것인가 싶다.

 

오늘은 기회가 없지만 어차피 내일이나 모레 즈음 한번쯤은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자리를 뜬다.

첫날부터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으면 의외로 실망하기 쉽다는 과거의 전례를 생각해

그냥 슬쩍슬쩍 구경이나 하고 추위에 몸을 적응하는 편에서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머리속이 텅 빈것처럼 멍할 뿐이다.

 

 

 

긴장 풀고 돌아보는 와중에도 메인 조각상에 포함되리라 예상되는 거대한 얼음 조형물은 친숙한 느낌이다.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대만에 다녀와 봤기 때문에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던 고궁박물관과 101 타워의 모습이 얼음으로 재현되어 있다.

 

 

 

대단한 덩치의 얼음 구조물이 형형색색으로 은은히 빛나고 있는 모습은 꽤나 볼 만하다.

얼음 구조물 위에 타이밍 좋게도 눈이 내려서 훨씬 멋들어진 지붕이 만들어 진 것도 좋은 감상 포인트.

 

이 정도 덩치를 얼음으로 만들어서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일지 궁금하다.

만약 쓰러졌다가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신경을 썼을 텐데.

 

 

 

조금 전 서로우브래드 때와 비슷한 원리로 이번엔 아우디 부스가 나타났다.

자동차 1:1 크기의 구조물이라 크기는 좀 전 것에 비해 훨씬 작아서,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건 벽면에 붙였다기 보다는 그냥 자동차 한 대를 조각해 놓은 셈이나 마찬가지.

 

밋밋하던 흰색 자동차가 레이저 쇼의 시작과 함께 훌륭한 질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도시의 밤길을 달리는 듯한 연출도 이어지고, 아이들과 함께 보면 먼 훗날 고객층이 0.1% 정도는 늘어날 듯한 느낌.

 

 

 

이번 눈축제에서 가장 큰 조형물 중 하나인 소치올림픽 기념 조각상.

여기는 특별히 색깔을 강조하는 조명이 설치되지 않았는데, 대신 꽤나 밝게 빛을 비추고 있어서 감상하긴 좋다.

 

어쨌든 일본의 눈축제라 그런지 이 조각상에 나와 있는 선수들은 전부 일본쪽에서 유명한 사람들인 듯.

 

 

 

 

실상 소치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이야기지만, 관심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여러 종목에서 기대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도 기대만큼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목에서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출전한 사람이 많아서

한국보다는 좀 더 즐기는 축제라는 인식이 들기 쉬운 대회였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으니 저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옷을 봐서는 아마도 아사마 마오 선수같은데, 가장 크고 박력있게 지어진 조각상과는 달리

김연아에게 밀리기도 했거니와 개똥같은 러시아의 조작질 때문에 스포츠 정신의 몰락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피규어 대회였기 때문에

지금 보면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이 드는 조각상이다.

 

반대로 마오 위에서 점프하고 있는 선수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는데

일본 스키점프 종목의 레전드인 카사이 노리아키(葛西 紀明) 선수를 형상화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당시는 아직 점프 대회 전이라, 훗날에서야 멋진 이야기가 만들어 졌지만

올해 41세의 백전노장인 카사이 선수는 이번이 자신의 올림픽 마지막 출장이었는데

쟁쟁한 유럽의 강호들을 누르고 은메달을 획득, 역대 최연장 메달리스트로 훌륭한 종지부를 찍었다.

 

마오의 캐릭터성 때문에 유독 부각이 되지만, 일본의 동계스포츠 수요는 상당히 큰 편이라 숨겨진 멋진 선수들이 많다.

 

 

 

오오도리 공원은 50% 정도밖에 보지 않았지만, 슬슬 라이트를 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어서 이 정도로 하고 돌아갈까 싶었는데

왠걸 스스키노 거리에서 열리고 있는 눈축제는 10시 넘어서까지도 계속된다는 방송이 나오는 바람에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한다.

 

몸은 무겁고 카메라는 조심스럽고 날씨는 매섭지만 일단 스스키노쪽의 밤풍경도 보기는 봐야 할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

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돌아올 때 꽤나 피곤하겠지만, 여행에서 피곤함이란 뿌뜻한 성취감과도 직결되는 것이니 뭐.

 

오오도리 공원을 벗어나도 삿포로의 밤은 여전히 싱싱하다.

전통 문화라는게 존재할 수가 없는 홋카이도이기 때문에 서양식 펍이 매우 활성화 된 곳이기도 하다.

옆구리에 같이 온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곳에 들어가 분위기를 즐기며 술 한잔 했겠지만.

 

 

 

도로의 높이가 눈 때문에 10cm 정도 올라와 있는 풍경 자체가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한국도 철원 정도쯤 되면 이 정도 눈이 우습게 보이겠지만, 인구 200만의 도시에서 이렇게 눈이 쌓이는 모습은 꽤나 이질적이다.

 

평범한 거리 모습도 나에게는 셔터를 누를 가치가 충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모습은 왠지 눈 보고 발광하는 개와 비슷하지 않았을려나.

 

 

 

일본 현지인들에게도 오키나와와 더불어 항상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는 홋카이도는

삿포로의 무한한 향략을 즐기면서도 동시에 아득하고 고풍스러운 주위의 도시, 조금만 더 나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야생림의 향연 등등

여러가지를 동시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가득한 섬이다.

 

도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곳 삿포로의 일본답지 않은 시원시원한 도로와 정방형의 시내 구조,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환락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을 듯 하다.

 

 

 

개척정신과 독립성이 강한 이주민들의 특성상 대형 브랜드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소규모 공예에 강점을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 최고의 예술 타투이스트들이 밀집해 있기도 하고, 본토에까지 명성을 떨치는 라멘 가게라던가

심지어 아이폰 케이스까지 해외구매 신청이 쇄도할 정도로 유명한 젊은 창작집단 등등. 둘러보면 재미있는 곳이다.

 

묵묵히 사진 찍으며 걸으니 어느세 스스키노 대로변으로 도착한다. 삿포로 최대의 번화가인 이곳은 도로가 정말 시원시원하다.

 

 

 

삿포로 올 때마다 사진은 담지만 한 번도 타 본적은 없는 관람차의 밤모습을 연례행사처럼 찍어본다.

밤에 타 보면 스스키노 거리의 화려한 불빛을 멋지게 담아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삿포로는 항상 혼자 오다 보니, 어쩐지 그냥 타기에는 흥미가 식어버리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다.

 

다음엔 혼자라도 타서 야경을 한번 담아볼까 싶다.

 

 

 

그러고보니 스스키노 거리 중앙에는 노면전차도 달리고 있다.

꽤나 옛날 맛이 살아있는 전차라서 사진 찍기엔 참 좋은데, 문제는 본인 루트상 저 전차를 탈 일이 전혀 없다는 것.

 

 

 

스스키노 거리의 눈축제 코스는 오오도리 공원에 비해 상당히 아담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오도리 공원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길쭉한 야외 정원이 마련되어 있지만

조형물이 전시된 이곳 스스키노 거리는 평소에 그냥 유흥가 골목거리나 마찬가지라서 그럴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오오도리 공원의 조형물들과 겹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즐기는데는 문제 없을 듯 하다.

오오도리 공원이 끝물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훨씬 많아서 편안하게 사진 담기에는 에로사항이 꽃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