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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1.25  도쿄 산책 - 삿포로 라멘 스미레 18
  2. 2013.01.20  도쿄 산책 - 요코하마 라멘 박물관 20
  3. 2013.01.18  도쿄 산책 - 카모메식당의 고향 10
  4. 2013.01.12  도쿄 산책 - 진짜 여행괴짜들 18
  5. 2013.01.11  도쿄 산책 - 요코하마의 비밀 아지트 18

 

 

본인은 이런 추억에 젖을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릴적 아버지께 들었던 기억은 난다. 마을에서 누가 흑백 테레비 한대 샀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애들은 물론 마을사람 전체가 모여와서 함께 시청하곤 했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

 

지금도 서울역 안의 거대 TV 앞에서는 여전히 시대를 뛰어넘은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이곳의 이 TV는 과연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 건지 조금 궁금하다.

정말 오리지날 흑백 브라운관을 어떻게든 계속 사용하고 있는건지

요즘 TV에다가 겉만 저렇게 옛날 티나게 만들어 놓은건지.

 

영상이 반복재생 되는걸로 봐서 내부에 현대식 장치가 되어있다는 사실까지는 알겠는데

아무래도 LCD 모니터가 아닌 듯한 느낌때문에 묘하게 느껴진다. 어디까지가 오리지날일지.

 

그러고보니 시골의 작은할머니 댁에는 이만큼 낡은 TV도 있긴 했다.

프레임이 나무로 되어 있고, 양쪽 옆에 붙박이 여닫이문이 있던 TV.

없어진지 오래지만,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면 나름 가치가 있는 녀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청법이다 셧다운제다 하면서 물심양면 완벽한 독재와 겸열의 부활을 꿈꾸는 요즘 한국의 꼬라지를 생각하면

이런 저속한 옛 거리 모습의 재현이란 낯뜨겁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퇴폐적 풍경일텐데

이곳에서는 이런 풍경으로 돈 잘 벌고 있는듯 하다.

 

하긴 돈이 주머니에서 샘솟고 넘쳐서, 인터넷 따위 사용할 필요 없이

화려한 대구의 밤문화를 얼마든지 직접 즐길 수 있는 우리 국회의원 어르신들이야

자기 딸내미 나이의 여자들 껴안고 나뒹굴 수 있을테니, 이런 추한 옛 모습은 저속하게도 느껴지시겠지.

 

캬바레라는 말은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 일본은 이 단어 별로 안쓰는 것 같던데.

요즘엔 스낵바라는 말을 많이 쓰는듯 한데, 이쪽 방면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문에 붙은 찌라시는 칼립소 쇼라는걸 선전하고 있는데, 뭔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카리브해 부근의 경쾌한 전통 음악이란다.

1958년도의 허름한 캬바레라는건 의외로 국제화에 빨리도 눈을 떴나보다.

 

옆의 조그만 창문에 붙어있는 찌라시는, 호스티스 모집이라고 적혀있다.

그러고보니 청량리 롯데백화점 갈때, 그 뒤쪽의 그렇고 그런 거리를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2012년의 경험이지만, 생각해보니 1958년의 이 모습과 놀랄 정도로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역시 가장 기본적인 운동을 산업화한 업종이다보니, 50년쯤 지나도 별로 발전이 없는건가 싶기도 하고.

 

 

 

시간이 점점 흘러서, 더 지채하다간 폐점시간까지 정말 라멘 못 먹을 위험성이 있으니

서둘러 한그릇 먹으러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생각해 봤는데, 길을 잘못들어 지하 1층부터 시작한 탐험이니까

그건도 인연이다 생각해서 지하 1층에 위치한 라멘집으로 들어가 본다.

 

지난번 포스팅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라멘가게는 지하 2층에 빙 둘러서 영업중인데

좁디 좁은 1층 통로에도 영업중인 가게가 있다. 지하 2층이 왁자지껄한 시장 한복판이라면

지하 1층의 통로에 자리잡은 라멘가게는, 그 음침하고 어두운 조명만큼이나 훨씬 진득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침 팔짱끼고 즐겁게 돌아다니는 젊은 커플들과 달리 난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는 솔로니까 왠지 분위기에도 어울리는 듯 하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은 삿포로 라멘 전문점 '스미레'라는 곳.

삿포로 하면 역시 된장을 베이스로 한 미소라멘인데, 아무 생각없이 메뉴 자판기에서 미소라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순간적으로 옆에 있는 버튼에 눈길이 갔다. '옛날식 라멘(昔風ラーメン)' 이라는 메뉴가 눈에 보인 것.

 

이 옛날식 라멘이라는 이름은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자전거 여행의 여파도 있겠지만, 일본 중에서 홋카이도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단어인데, 이 단어를 다시 보는건 근 4년만이다.

 

'옛날식 라멘'이라는 건 오직 홋카이도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인데, 이것은 홋카이도가 라멘의 발상지이기 때문.

라멘이라는 이름이 정착되기 전에는 '중화 소바'라고 불린 이 음식은, 이름 그대로 중국에서 들여온 녀석.

메밀을 중심의 면문화가 발달했던 일본에서, 꼬들꼬들 쫄깃쫄깃한 중국식 면은 매우 생소하고 신기한 이미지로 다가왔었다.

 

중화소바가 가장 먼저 들어온 삿포로에서는, 생선육수 혹은 닭고기 육수에다가 간장으로 맛을 내麩고

돼지고기, 멘마, 계란, 나루토(저기 똥글똥글 말린 오뎅같은 녀석), 시금치, 후(麩) 를 넣는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사진에 나온 저 녀석이 최초의 일본 라멘의 모습이라는 뜻.

 

라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고개를 갸우뚱할수도 있겠는데,

쇼유라멘(간장라멘)과 뭐가 다른지 말이다.

 

사실 중화소바 = 쇼유라멘 이라고 생각해도 틀린게 없다. 그리고 삿포로에서만 이걸 '옛날식 라멘'이라고 부르고

다른곳에서는 그냥 중화소바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같은 라멘. 알고보면 조금 맥이 빠지는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라멘의 시작점은 홋카이도의 삿포로였고, 지금은 된장라멘으로 유명한 삿포로지만

라멘의 시대를 연 것은 간장라멘이었다는 조그마한 잡지식.

 

중화소바라고 부르는 라멘은 기본적으로 이 녀석과 거의 흡사하지만

'옛날식 라멘'이라고 따로 구분해서 부를때는 반드시 시금치와 '후'가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후(麩)는 사진의 라멘 중앙에 둥둥 떠있는 녀석. 얼핏 보면 오뎅 말린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부 말린것 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한국에서도 통용되던 때가 있었으니 먹어본 사람도 있을 듯 하다.

 

저 녀석은 밀기울, 즉 두부의 비지처럼 밀가루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에서 추출해낸 글루텐이라는 성분을 말려서

마쉬맬로처럼 만든 것이다. 단백질의 일종이고, 밀가루 가공 찌꺼기로 만들기 때문에 단가도 매우 저렴해서

전후 영양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에서 많이 사용되던 녀석. 단지 저렇게 추출해낸 글루텐 덩어리는 무미 무취였기 때문에

그냥 먹기는 좀 그렇고 해서, 저렇게 육수 위에 얹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유부덩어리처럼 국물을 흡수해서 맛이 생기니까.

 

우동위에 얹는 유부조각도 사실 저 '후'가 그 기원이다. 좀 먹고 살만해 지니 굳이 맛도 없는 글루텐 덩어리를 쓸 필요가 없었던 것.

하지만 일본의 어느 현 어느 마을에서는 아직 마을사람들 전체가 저 '후'를 국에 넣어서 맛있게 먹고 있다.

저런 조그만 녀석이 아니라, 물 빨아들이면 한국의 호빵만큼 커지는 녀석이라서, 국 안에 넣으면 거대한 건더기가 된다.

저게 복합성 단백질 덩어리라서, 물을 아무리 흡수해도 쭉 찢어지지 않고 여전히 질긴 습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국물을 잔뜩 흡수한 녀석을 쭉쭉 뜯어먹는 그 식감은 상당히 묘한 체험이다.

 

쓸데없는 콩알지식 이야기하느라 길어졌는데, 아무튼 오랜만에 옛날식 라멘이라는 이름을 듣고

비록 된장라멘이 더 맛있을지라도 후회없이 그 녀석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곳 요코하마 라멘박물관이 1958년의 모습을 이렇게도 멋지게 재현해 놨으니, 거기 어울리는 라멘은 당연히 옛날식 라멘이겠지.

 

사실 간장라멘은 모든 라멘의 베이스가 되는 모델이라서, 라멘박물관에서 굳이 이 녀석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긴 했다.

국물을 만들때 소금라멘이 가장 첨가되는게 적기 때문에 라멘의 기본은 소금라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금라멘은 간장 -> 된장 -> 돈코츠로 이어지는 일본 라멘 가계도와는 완전히 별개로 만들어진 녀석이다.

 

 

 

취향에 맞춰 후추를 조금 뿌리고 후루룩 면발을 들이삼킨 순간

혀가 뇌에 보내는 신뢰성높은 화학신호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보기에 정말 평범한 간장라멘인데, 놀랄 정도로 맛있다.

 

간장라멘이 제일 저렴한 편이라서, 자전거 여행중 380엔 정도 되는 저렴한 중화소바 참 많이도 먹었는데

이곳의 옛날식 라멘은 900엔이나 하는 고가니까, 뭔가 다르긴 다르겠지 하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되짚어봐도 이 라멘, 내가 이제껏 먹은 녀석중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맛있다.

 

면의 삶은 정도나 굵기 등을 개별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완벽한 식감에 제대로 우려난 닭육수의 가슴지리는 시원함이 나를 놀라게 한다.

사실 싫어하는 요리만 아니면 대강 맛있게 먹는 성격이라서 이런 표현은 잘 하지 않는데

이 라멘 정말 굉장히 맛있다. 간장라멘이 갖춰야 할 모든 기본기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레퍼런스 라멘이라 할 만하다.

 

챠슈의 상태, 멘마의 식감, 적당한 반숙계란, 아삭아삭 파조각과 딱 적당히 삶긴 시금치 등등...

평소 번개처럼 음식을 입안에 털어넣는 식습관을 가진 본인이라도,

이번엔 천천히 면을 빨아당기고 숟가락으로 한모금씩 국물을 떠먹으며 최대한 맛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요 근래 먹은 라멘중에 이렇게 단점을 생각해내기 어려운 녀석은 처음이다.

 

물론 간장라멘이라는 녀석의 범위도 정말 넓어서, 면의 굵기, 삶는 정도뿐 아니라 면의 구성 성분과 뽑는 방법에 따라

완전히 직선으로 뻗은 녀석, 꼬물꼬물한 파마같은 녀석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되고, 각각의 맛도 다르다.

간장 역시 무한대의 조합이 가능하다. 미림에 가까운 옅은 간장과 돼지뼈 육수의 조합도 있고

콜라만큼 시커먼 진한 흑간장과 닭육수의 조합 등등... 간장라멘의 바리에이션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 모든 바리에이션 앞에 이름을 댈 수 있는게 이 '옛날식 라멘'이라고 생각.

가장 맛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간장라멘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가이드같은 느낌에서.

 

 

 

라멘박물관에 입점한 가게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최고의 가게라는

이시다씨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확실히 사실인 듯 하다.

일단 이곳에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최상급 라멘이라는 평가는 기본으로 따 놓는 것이라고.

 

삿포로 라멘 '스미레' 에서 맛본 라멘을 생각해 볼때, 아무래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라멘의 짠맛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관광객들 입장에서야, 어디서 뭘 먹으나 그게 그거겠지만

본인은 적어도 일본 라멘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평가를 할수 있을만한 입맛을 가지고 있고

이 곳에서 먹은 한 그릇의 라멘 레벨은, 편의상 1~10 까지로 구분한다면 9 레벨 이상의 S급이라고 확신한다.

 

식사를 마친 후 지하 2층으로 내려와서, 1층과는 다른 시끌벅적한 번화가의 모습을 만끽한다.

어디 붙어있는 설명을 슬쩍 읽었는데, 이곳 2층은 1958년대 어느 역 앞에 들어선 거리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듯.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번성하긴 하지만, 어쨌든 역 앞의 에너지란 확실히 힘이 넘친다.

 

폐점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남은 시간으로 따지자면 라멘 한그릇 정도는 거뜬히 더 먹을수 있지만

스미레에서 라멘 먹은지 5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먹어봤자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다.

폐점시간이 3~4시간쯤 남았다면 느긋하게 배를 비운 다음 다른 라멘을 시험해 보겠지만.

 

여기는 또 친절하게도, 입장권 한번 끊으면 그 날은 박물관 밖을 나갔다 들어갔다 해도 관계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시다씨와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 결과, 한밤중에서야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폐점시간을 이렇게 앞두고서는 급하게 먹어봤자 라멘의 맛을 즐기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이것도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언젠가 요코하마에 제대로 숙소를 잡고 와서

한 이틀쯤 느긋하게 여유를 내서 이곳의 라멘을 차근차근히 격파해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만들게 해 주었으니 그걸로 만족.

 

어차피 오늘 아무리 용써봤자 안될일은 안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다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수 밖에.

요코하마엔 크루즈 여행 매니아분과도 안면을 텄고 해서, 다시 찾을 이유는 충분히 만들어 놨다.

 

전봇대 위에 걸린 테레비는 정말 오래된 녀석이다. 시간이 되면 누군가가 테레비를 끄고 저 문을 닫아잠궈 버리는 것일까.

당시엔 레슬링이 유행한 듯 하다. 시기상으로 역도산이 활약할 때는 아닌가, 당시 레슬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역도산이라는 사람이 한국사람이었다고 자랑스레 기억해야 할만한 인물이 아니라는것 쯤은 안다.

 

 

 

거의 끝물이라서 사람들이 적은 것 하나만큼은 참 기분좋은 일이다.

지하 2층은 1층보다는 좀 더 정리된 듯한 느낌이 들지만. 아무래도 타일이 너무 깨끗한 느낌인데.

 

타일고 그렇고 나무 벤치도 그렇고, 살짝살짝 예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녀석들이 나와서 약간 아쉽다.

자전거는 상당히 옛날 녀석이고, 뒤에 실은 녀석은 아마도 우편물인 듯.

 

지하 2층은 라멘가게들이 밀집해 있어서, 붐빌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붐비기 때문에

흐름을 위해서라도 저렇게 바닥에 표시를 해 놓을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간이 마냥 넓은건 아니기 때문에

시대 재현과 라멘가게의 원활한 흐름, 두 가지 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머리를 쓴 흔적이 보인다.

 

 

 

어디로 향하는 계단인가 싶어서 올라가 봤는데, 마지막까지 센스넘치는 표지판으로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그 위의 금간 듯한 모습은 물론 가짜겠지. 아무리 봐도 진짜 금간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설마 그러진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다음에는 정식 루트로 차근차근히 즐겨보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하다.

 

 

 

올라갈 때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마지막으로 셔터를 한번 더 누른다.

이거 한국에서 비슷한 사진 가져와 바꿔치기해도 모를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어릴때 제일 맛있었던 불량식품은 뭐였을까...

사실 학교 앞 불량식품은 엄니께서 워낙 강력하게 억압하시는 바람에 또래 아이들 치고는 별로 먹어본 기억이 없다.

 

흰색과 검은색 콩처럼 생긴 밀가루 과자가 달달하게 맛있었던 기억은 나는데.

어릴적 제일 맛있는 과자는, 당시의 나에게 혁명적인 맛을 선사해준 치토스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탄산캔디였다.

발바닥 모양의 사탕에 찍어먹던 톡톡캔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뭔가 위험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버린듯 하다.

가끔씩 혀가 얼얼할 정도로 퍽 거리면서 터지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으려나.

 

 

 

300엔이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여행도 즐거웠고

900엔짜리 '옛날식 라멘'은, 내가 왜 여태껏 이곳을 찾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코하마 방문의 원래 목적이던, 이시다씨와의 토크 라이브도 문제없이 멋지게 끝났고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여전히 어색하지만, 공감할 부분이 많은 즐거운 괴짜들과 인연도 만들고

정통 쉐프가 부지런지 만들어주는 멋진 요리도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으니

5일간에 달하는 이번 도쿄 여행은, 사실 이 이벤트 하나때문에 온 거나 마찬가지지만

오늘 하루만으로도 그 어떤 후회 한점 남지 않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것이나 마찬가지.

 

첫날부터 지금까지 별 생각과 의욕없이 터벅터벅 걸어다니기만 하던 내 컨디션을

일시에 흥분 상태로 각성시켜 준 듯한 기분이다.

 

특히 자전거 여행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는 요코하마라도

이렇게 찾아오니 여기저기 즐길거리가 산재한 곳으로 변모하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일면.

역시 어떤 형태의 여행이든 각자에게 맞는 즐길거리가 있는 법인가 보다.

 

신요코하마역 앞의 사거리는 교통량이 많아서인지, 이렇게 커다란 원형 고가도보가 만들어져 있는데

야간사진도 문제없겠다, 요코하마에는 좋은 추억도 남겼겠다, 높아진 텐션으로 여기저기 카메라에 담아본다.

 

 

 

이제 2년이나 지난 자전거 여행이라서, 정신차리지 않고 그냥 달려나간 곳의 기억은 애매해진다.

요코하마는 여행 거의 막바지에 슬쩍 통과했을 뿐이라, 기억에 남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자전거여행중이라면 어떨까 하고, 마음을 예전으로 살짝 돌린 후 육교위에서 주위를 바라보니

역시 자전거로 달리고 있었다면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콘크리트 숲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걸 보니

참 여행이란 녀석은 이렇게도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최악의 여행 타입으로 생각하고 있는 단체 투어도

뭔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굴려보는데,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무리.

 

국딩 5학년, 한달간의 미국 여행중 1주일쯤 여행사 따라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건 여행이 아니라 거의 고문이었다. 대놓고 요구하는 팁에 흔해빠진 말장난, 형편없는 중국식당으로의 안내 등등.

아무래도 어릴때의 트라우마가 인격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사실인 듯.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40분쯤. 일본 여행하면서 이렇게까지 늦게까지 돌아다닌건 오랜만이다.

오늘 잠은 잘오겠구나 싶어, 그것마저도 즐거운 기분. 오늘은 어쨌든 모든 경험이 다 만족스러웠으니까.

 

내일부터는 또 할일이 별로 없어서 대강 부탁받은 물건이나 사러가볼까 싶다.

보고싶은 것들을 하루에 한개씩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널널하다.

오늘 이벤트는 날짜가 고정된 바람에 다른 계획을 수정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냥 마음가는대로 뒹굴거리다가 어디 슬쩍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하면서도 이렇게까지 게을러질 수 있다는걸 온몸으로 보여줘야 할것 같다.

 

라멘 박물관의 구멍가게에서 구입한 100엔어치 추억의 과자들.

사탕이야 별로 변한게 없고, 중간의 저녀석은 사이다맛 가위바위보 젤리.

왼쪽은 담배모양을 한 코코아 사탕이다. 그러고보니 국딩때 애들이 저걸로 폼잡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본인은 엄니의 편집증적인 건강 염려로 인해 불량식품을 벌레보듯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냥 옆에서만 바라보던 과자였는데,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 드디어 처음으로 맛을 보게 된다.

 

일단 여행 중간중간에 천천히 먹기로 하고, 사탕 하나 빨면서 TV 보다가 새벽 2시쯤 취침.

 

 

원래는 붐볐을테지만, 9시가 다 되어가는 일요일 밤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다.

입구쪽도 옛날 방식이라 그런지 제대로 안내표시가 없어서,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는 바람에

되는대로 지하1층의 어느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예상하지 못한 골목이 나온다.

 

아마 이곳이 정식 루트는 아닌듯 한데, 그러나저러나 아무 관계없다. 여긴 그냥 구경하고 라멘먹으면 되는 곳이니까.

 

운이 좋았다고 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타나는 옛날 구멍가게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내가 어릴때는 이런 가게가 군데군데 있었는데, 정말 놀랄 정도로 재현도가 높다.

 

 

 

안에 들어가서 사진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마음껏 직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 추억과 상당부분 겹치는 이 가게 안에서 유일하게 별로 겹치지 않는 요소가 가게 주인.

이곳의 할아버지는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는 타입인데

내 기억에, 예전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렇게까지 친절한 표정을 지었던 적은 없었다.

 

이시다씨가 좀 전에 역에서 '그곳에 가면 자기도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든다'고 했었는데

과연 그럴만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학교앞 문구점에 아직 이런것들 팔고 있지 않으려나.

 

내 경우는 학교 문구점보다, 집 앞의 재래시장 귀퉁이 3~4평도 안되는 쪽방 가게에서 이런 것들 사먹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조립 로봇 장난감조차 50원짜리가 있었던 시절이니까. 500원짜리 프라모델은 각오 단단히 하고 사야 했다.

 

모양만 봐도 대충 한국의 소위 불량식품들과 다를게 없는 친근한 모습이다.

단지, 처음엔 참 정겹고 즐겁게 구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금 현실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트는 기분.

 

이 사람들의 추억과 나의 추억이 이토록 겹쳐지는 것은

결코 쌍방간의 호의나 순수한 의미에서의 교류로 인해 생성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방후 40년이 넘었던 그 시절조차 여전히 일제의 흔적은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형태로 사람들의 생활속에 녹아있었던 것이다.

 

이런 추억을 향유하는 그 감상적 즐거움조차 분노로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유년시절의 추억이고, 그저 맛있고 신기한 과자들을 싸게 먹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기억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난 지금 회상해본다면

그 정형화된 이미지의 근원에 훨씬 복잡한 역사의 흔적이 세겨져 있음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역시 내가 쓸데없이 네거티브에 꾸질꾸질한 성격인 걸까.

몇십년만에 다시 마주하는 추억의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한 켠에 침울해지는 마음이 자리잡는다.

 

 

 

얼굴은 냉정하게 유지하는데 일가견이 있지만

머릿속의 감정을 정리하는건 어쨌든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더 머리를 비우고, 그냥 순수하게 이곳 라멘 박물관의 옛 거리풍경을 즐기는데 집중하려 한다.

 

슬쩍 가게를 둘러보니, 그때 그 시절만큼 싼건 아니지만 그래도 동시대의 편의점보다는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가격대. 아무래도 입장료까지 받는 곳이다 보니 커버가 되는 듯.

추억의 불량식품에 사진빨도 잘 받고, 가격도 싸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입구에 비치된 바구니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집어갈만한 녀석을 찾아본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손이 가는대로 마구 사버리면 의외로 돈을 써버리게 되는 것이 이런 불량식품류.

이곳에 왔다는 기념 정도의 의미로 적당히 세 개 정도만 담는다.

정겨운 먹거리는 널리고 널렸는데, 가방에 넣고 갈 부피를 생각하니 좀 작은것들로만 챙기게 된다.

이런 류의 간식거리는 가격에 비해 양이 많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해서, 겉보기에 좀 큰것들이 많으니.

 

가게 할아버지는 '딱 100만엔!' 이라고 기운차게 계산해준다. 물론 100엔이라는 의미.

구입하고보니 확실히 예전처럼 싼 가격은 아니다. 요즘엔 일본 편의점에서 100엔으로도 팝콘 한봉지 사먹을 수 있을 정도니까.

 

밖에서 좀 더 주위 풍경을 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나와서 그걸로 기념사진 찍어줄까 하고 묻는다.

본인 사진은 별로 찍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완전한 수동렌즈라 촛점 맞추기가 쉬운편이 아닌 탓에

이리저리 설명을 해 드렸는데, 할아버지가 '비싼 녀석이니 맡기기 좀 그렇지?' 라고 짖궃은 말투로 장난을 친다.

 

 

 

시작부터 정해진 루트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아무렇게나 걸어다닌다.

원래 저 가게는 라멘 투어 신나게 마친 후 돌아가기전 기념품 대용으로 들러보는 곳이었으니까.

 

2층은 두 사람이 간신히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회상하며 만들어져 있다.

내가 어릴적에도 물론 여기저기 이런 좁은 골목이 있긴 했는데

어머니 연세쯤 되는 분들의 추억에 남겨져 있는 골목길은 정말 이런 느낌이었을 법 하다.

대구에 남아있는 몇몇 옛 골목들을 보며 어머니가 '예전엔 거리 곳곳에 이런 골목들이 빼곡했는데' 라고 말씀하신적이 있다.

 

방금 전 골목가게까지는 내 추억속에서 회상할 수 있는 범위지만

이 정도까지 가면 역시 나로서도 어딘가 이야기속에서만 들었던 법한 비현실감과 조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낮에 학교 가면서 이런 골목 분위기를 보지 못한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활동시기는 대부분 아침이나 대낮이었던 고로, 어둠속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이런 거리풍경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이런 박물관의 레벨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라면 뭐니뭐니해도 그 재현도를 들 수 있겠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곳 라멘 박물관의 레벨은 정말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다.

 

군데군데 불이 나간 전구, 너덜너덜해진 간판, 벗겨지고 녹물이 내려오는 콘크리트 벽 등등

지금 이 모든 요소요소들이 전부 철저한 계획아래 정교하게 재현된 녀석인지

아니면 정말 관리를 되는대로 해서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착각할 정도로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어찌보면 개장 당시엔 저 전구가 다 켜져있었는데, 개장 후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렇게 낡아버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현도가 뛰어난 이곳은, 계속 걸어다닐수록 점점 현실이라는 시공간에서 멀어져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현실과 망상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은, 망상이 현실만큼 현실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니까.

 

오른쪽 간판은 삿포로 미소라멘 '스미레' 라고 적혀있는데

그냥 옛날 거리 재현하기위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고, 진짜로 이곳에서 영업하는 라멘부스중 한곳이다.

마리화나 몇대 빨고 이곳에 들어오면 정말 과거로 훌쩍 넘어온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굉장한 리얼리티.

 

 

 

이곳의 시간대는 아무래도 늦은 저녁, 해가 거의 지면으로 넘어가며 어슴프레한 핏빛만이 지평선에 살짝 스며드는 그런 순간인 듯 하다.

거의 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어두운 곳이라서, 이때만큼은 새 카메라 갖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도 3200 까지 올리고 조리개를 F2.0 까지 개방해야 겨우 사진을 건질 수 있을 정도.

 

힘겹게 사진을 담으면서도 이 장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매번 감탄을 금할수가 없다.

이건 1950년대를 그럭저럭 흉내낸게 아니라, 정말 그 시절의 시공간을 뚝 잘라서 가져온 레벨.

건축법상 의무적으로 표기된 소화기 안내판만이 나를 2012년에 붙들어놓는 유일한 이정표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벽의 낙서, 흘러내린 물 흔적, 색바랜 나무 문과 벽보까지. 무서울 정도의 현실감에 기분이 묘해지는 느낌.

옆의 안내도는 폼으로 만들어 놓은게 아니고 진짜 지도다. 재미있는건 대부분의 가게들이 간판만 존재하는 이름뿐인 녀석들이지만

그중에는 색깔만 살짝 다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있는 진짜 라멘가게도 있다는 것.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에 잠깐 넋을 잃고 발걸음을 멈춘다.

좁은 골목길에서부터 시작한 터라 이 박물관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이곳은 지하 2층이 진짜 라멘가게였던 것. 지하 1층의 좁은 골목거리는 이 가게들의 2층 뒤에 나 있는 샛길이었다.

 

물론 폐점시간이 다가올 정도라서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고

이 정도라면 어느 가게라도 쉽게 들어가서 원하는걸 먹을 수 있을듯 하다.

 

 

 

이곳에서 제일 비현실적인 녀석이라고는 저 하늘그림 그려진 지붕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몇 번을 봐도 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인 재현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시다씨가 극찬을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국인인 내가 느끼는 완성도보다는

직접 이 시대 이 공간을 살아온 이시다씨 입장에서라면 이 정도로 완벽한 고증은 하나의 예술로 느껴질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이 곳의 시대 고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확하다.

내가 어릴 적에도, 경북 점촌이나 영천 시장골목 정도는 들어가야 간신히 남아있던 이런 담배가게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뽑아낸 듯이 재현해 놓았다. 물론 그 시절의 담배곽까지.

 

도쿄나 삿포로의 라멘 테마파크를 생각한 탓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라멘박물관이란 녀석은

실상을 알고보니 나머지 테마파크와는 비교하는게 어리석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녀석이다.

라멘을 팔아야 하는 공간에 '거만하게도' 입장료까지 받는 건가 싶었던 내 불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곳에서 친근함과 그리움을 느낄지도 모르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역사가 만들어온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흔적마저 다시 상기시키는 기분이 들 가능성 역시 있기 때문에

이곳과 마주치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런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복잡난해한 곳.

 

 

 

 

아직 지하 1층을 한바퀴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걸어본다.

원래 목적은 맛있는 라멘이었지만, 이제와서는 라멘은 그냥 마지막에 맛보면 되는, 그런 레벨로 내려가 버렸고

이곳의 풍경을 좀 더 담아보겠다는 일념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한국은 전후 일본보다 목조건물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기 때문에

이런 풍경만큼은 한국과 일본의 추억이 상반되는 결과를 도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문옆에 걸려있는 개량기 모습은 뭐, 예나 지금이나 추억거리가 되긴 하지만.

 

라멘 박물관 소개글을 보면, 1958년대 어린이들은 이런 골목길에서 이렇게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까지 놀곤 했었다고 한다.

인스턴트 라멘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쌀밥 대체음식으로 장려되는 녀석이었는데

라멘이라고 하면 딱 생각나는게 그 시절 이런 장소와 이런 시간대의 풍경이었다고.

 

 

 

정말 문열고 한번 들어가보고 싶을 정도라서 참는데 고생했다.

이 풍경이 진짜 현실이었다면, 아마 저 문 너머에서는 화려하지 않지만 맛있어 보이는 저녁이 준비되고 있겠지.

 

당시 일본은 고도성장시기에 한창 불을 붙이고 있던 시절이라

소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했지만 그래도 나라 전체가 희망에 넘치던 시절이긴 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것도 그런 이유에서일듯.

 

반대로 한국은 이런 풍경을 감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조금 더 늦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같은 젊은(?) 사람도 이런 거리의 풍경에서 조금씩이나마 향수를 느낄 수 있는것 아닌가 싶다.

 

 

 

디자인쪽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동감하겠지만

이런 식의 디테일을 살리는데 세심한 고증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다른 동식물의 차이점은 구별하기 어려워도, 같은 사람의 차이점은 손쉽게 구별해 내듯이

실제 존재했던 시대상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고증이 조금이라도 어색하다면 사람 눈에 단점으로 쉽게 들어오게 된다.

 

하늘에 홀로그램 쏴올려서 구름 만드는 하이테크까지는 구현하지 못했겠지만

정말 어디 하나 흡집을 잡고싶어도 도무지 찾을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성이다.

억지로 잡아내자면, 당시 이런 거리 곳곳에 널부러져 있던 각종 오물과, 지독한 냄새를 풍기던 절임반찬의 강렬한 인상 등등

후각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 정도일까. 그것까지 구현한다면 아마 라멘 입맛이 떨어져 버리겠지만.

 

심지어 이곳의 구멍가게나 간식파는 가게 등에서는, 맥주나 음료수마저 옛날 유리병에 담긴 녀석을 제공한다.

라멘 가게를 찾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적당히 꾸며놓은 테마 파크들, 도쿄나 삿포로의 가게들이 딱 그 정도 수준이라서

5분에서 10분정도 슬쩍 걸어다니다가 적당히 라멘집 찾아 들어가는게 전부였는데

이곳은 일본 굴지의 라멘가게들이 경합하며 내 놓은 특급 라멘의 맛에 결코 떨어지지 않을만큼

외적인 구경거리가 가득한 곳이라서, '라멘'과 '추억의 거리'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어느 한쪽에 편중되어서 나머지 한쪽을 지탱해주는, 손님 입장에서는 왠지 끼워팔기라는 느낌을 받는 그런 테마파크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시다씨를 만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요코하마에서

이런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건 개인적으로 큰 성과다.

자전거 여행때는 멈춰서기도 어려운 대도시여서 그냥 통과해 버렸는데, 그렇기에 더욱 이번 방문의 가치가 높다.

 

천천히 둘러보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보니 맨 처음 출발지였던 구멍가게 앞으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나 말고는 아무도 저 앞의 문을 들락날락 하는 사람이 없는걸 보니

혼자서 길을 완전히 잘못 든 것 같지만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좋다.

 

이제는 일본 최고라고 불리는 이곳의 라멘중 하나를 골라서 맛있게 음미해야 할 시간인데

편안하게 추억을 씹어먹으며 걸어다니던 이제까지와 달리 이건 중요하기 그지없는 선택이다.

 

 

이시다씨가 추천해준 요코하마의 관광지는 라멘박물관이라는 곳.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다. 자전거 여행때도 이곳에서 발을 멈췄다면 분명 그곳부터 들러봤을 듯.

하지만 자전거 여행 마지막에 들른 요코하마인데다, 며칠전 온천으로 유명한 아타미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뒤라서

이런 번화한 도시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그냥 통과한 후, 고양이들이 기다리는 느긋한 섬 에노시마에서 마지막 노숙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라멘박물관이란 건 확실히 군침이 돌긴 했는데, 그거 하나만을 위해서 요코하마까지 갈 필요가 있나 하는게 이전까지의 생각이었고

도쿄 오다이바의 라면국기관, 홋카이도 삿포로의 라면공화국 등등과 별로 다르지 않은 곳일거라는 판단도 들었다.

확실히 각 지역의 다양한 라멘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으로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지만

어설프게 옛날 마을 분위기를 흉내낸 그런 라멘전문점이란게, 관광 스팟으로 지정할 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시다씨가 너무나 흔들림없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라멘박물관을 추천해 주니

이건 내가 알고있던 다른 지역의 그렇고 그런 라멘가게 모음집과는 다르다는 예감이 든다.

이 사람이 오다이바의 라면국기관 같은 곳을 나한테 추천할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슬쩍 떠보는 말투로 라멘국기관 같은 곳이냐고 물어보자, 분위기는 그런 곳인데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일본에 존재하는 그런 류의 라멘판매점의 원류가 되는 곳이 이곳 요코하마의 라멘박물관이고

다른 곳과는 비교하는게 부끄러울 정도의 퀄리티라고. 볼거리도 많지만 입점해있는 라멘가게들의 실력 역시 전국 최상위권이란다.

라멘의 성지같은 곳이라서, 그곳에서 점포는 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맛을 인정받을 정도.

 

얼핏 관광가이드에서 봤을때는 라멘공화국 등등과 별로 다를것 없나 싶었는데

역시 가이드에서 선전용으로 떠드는것과는 차이가 있나보다.

 

일행들과 차례차례 헤어지고, 활기넘치는 여성 한분이 갈아타는 곳 가르쳐 주겠다며 함께 했는데

전광판에 적혀있는 단어로 보건데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요코하마 거주중인 사람이 가자는데로 따라갔다.

하지만 역시나 그쪽의 착각으로, 갈아타야 할 곳을 지나쳐서 한 정거장 더 와 버렸다.

아무리 요코하마 거주중이라도, 술의 위력에는 다들 계란 말이가 되는 법.

중간에 발이 휘청해서 내가 부축해주기까지 했으니. 결국 그 여성분은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별로 화난건 아니고.

그래도 이 사람들 딴엔 한국서 처음 오는 사람을 위해 최대한 가이드를 해 주려는 마음이었으니.

 

그 자리에서 내가 술을 제일 적게 마셨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그사람들 배웅가줘야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모두와 헤어지고나서 한정거장 돌아와 신요코하마역으로 이동한다.

일본의 적지 않은 대도시가 그렇듯, 도시 이름이 들어가는 역보다 '신' 이 앞에 붙은 역이 더 화려한 경우가 많다.

낮에 왔다면 이런 호화찬란한 쇼핑몰에서 시간 보내는것 역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오늘은 이시다씨 토크 라이브 듣는데 모든 시간을 다 할애했으니까. 물론 후회는 없다.

 

 

 

대강 신요코하마역에서 동서남북만 계산해서 무작정 걷는다.

 

혼자 여행할 때의 나쁜 버릇이라면 나쁜 버릇인데, 지도같은거 그냥 머릿속에 잠깐 그려볼 뿐이고

대강 목적지가 표시된 방향으로 그저 걷고 걸을뿐. 그래서 목적지를 지나치는 경우도 많고, 빙 둘러서 시간 걸릴때도 많다.

하지만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여행이기도 하고, 그렇게 의미없이 걸어다니며 그 지역의 분위기란걸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낄 수 있으니까.

목적지만을 향해 돌격 앞으로 하는 여행은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만으로 족하다.

 

그런고로, 이번에도 한바퀴 빙글 돌아서 라멘박물관에 도착. 마음먹고 찾으려고 했어도 그리 쉽게 찾을곳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냥 발걸음 가는대로 걸어가던 내 앞에서, 일가족들이 두리번거리며 라멘박불관 찾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까.

특히나 밤에 오게되면, 정말로 겉에서 봐서는 어디가 라멘박물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평범한 현대식 건물이다.

 

너무 평범해서 외부 사진 찍을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그냥 들어가 버렸으니까.

다른 지역의 라멘 테마파크와 달리 이곳은 입장료라는게 존재한다.

어차피 라멘도 돈내고 먹어야 하는데 어째서 입장료가 따로 필요한건지.

하지만 그건 도쿄나 삿포로의 라멘 파크에서나 통하는 말이고, 이곳은 입장료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이시다씨가 추천해 줬으니.

저녁 8시 30분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라면 대다수의 관광지는 폐점했을 시간대라서

휴일이지만 입장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정도면 라멘 먹을때 줄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을 듯 하다.

 

맛있는 라멘은 너무나 좋아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몇십분씩 기다려 식사하는것에는 큰 거부감을 느끼는 성격이라서

이런 곳에 올때면 항상 긴장하게 된다. 특히 점찍어놓은 라멘가게가 있다면, 그곳을 포기할것인가 줄서서 기다릴것인가에 대한 문제로까지 번지기도 하고.

 

박물관에 들어가자 라멘을 파는 가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 프라모델샾에 들어온거 아닌가 싶은 풍경이 펼쳐진다.

슬쩍 둘러보니 아무래도 1층은 그냥 출입구 + 기념품점 정도의 역할만 할 뿐이고, 본격적인 구경은 지하로 내려가서 시작하는 듯.

 

입구 앞의 거대한 대자보에는 카모메식당이라는 단어와, 그 주위를 무수히 감싸는 응원댓글이 빼곡히 적혀있다.

카모메식당이라는 단어만 봐서는, 어째서 이렇게 대자보에 붙어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바로 위를 보니 금새 이해가 된다. 이 카모메 식당은 미야기현 케센누마(気仙沼)의 대표로서 이곳 박물관에 입점한 것.

 

케센누마는 지난 후쿠시마 대지진때 가장 극심한 피해를 받은 곳이다.

지진 당일 자정무렵부터 방송되던,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케센누마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지옥이라는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는 모습. 오일 탱크가 터져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암흑과 불길 뿐.

인구 7만 5천의 아늑한 항구마을은, 인구의 80%인 6만명이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이곳 카모메 식당은 원래 케센누마에서 유명한 라멘집이었다는데

케센누마 복구를 위해 케센누마출신의 도쿄 라멘집 사장님이 이곳에 입점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카모메 식당을 응원하기 위해 한마디씩 힘을 보태고 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본 사람들도 많을거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훨씬 잔혹할 뿐이지만

그래도 역시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유대감 밖에 없다고 본다.

영어는 물론 아랍어인지 러시아어인지 모를 언어도 적혀있는걸 보니, 뭔가 굉장하다는 생각.

 

 

 

대자보 반대편에는 뭔가 다양하기 그지없는 라멘 소개가 벽면 가득히 펼쳐져 있다.

한국 역시 라면시장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스턴트 라면이고

이곳에서는 라멘도 하나의 요리에 들어가는터라, 기상천외한 비법과 조합을 가진 라멘이 수두룩하다.

 

맛이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치고, 일단 이 정도 다양한 라멘이라면 한번씩은 먹어봐야 평가라도 할수 있을텐데.

이 날은 이시다씨 토크 라이브가 목적이었고, 라멘박물관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여흥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본 최고를 자랑하는 지역 라멘들의 각축장인 이곳에 오니, 역시 아쉬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한그릇밖에 못먹을테니까. 아무래도 요코하마에 다시 가봐야할 이유가 생기는 듯 하다.

물론 아직 이곳 라멘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그냥 입소문 뿐인 곳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맛에 대해서 여행만큼이나 일가견이 있는 이시다씨가 적극 추천한 곳이니 맛없지는 않을거라 생각은 한다.

 

 

 

늦은 녀석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탓일까

루트를 완전히 거꾸로 잡아서, 라멘 다 먹고 다시 올라올 때 들러야 할 기념품점으로 들어가버렸다.

어차피 여기서 라멘 사갈 생각은 없으니 큰 문제는 없다.

 

지하에서 경합중인 라멘가게들의 면과 스프 등이 가지런히 포장되어 전시중이다.

일단 면과 스프 육수 등등, 모두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녀석들이라 확실히 인스턴트보다는 맛있겠지.

하지만 인스턴트가 아닌 고로, 한 봉지 8천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한다.

이렇게 되면 가게에서 다 만들어져 나오는 녀석과 가격차이가 거의 없다.

직접 집에서 만들기엔 너무나도 손이 많이 가는데, 거기다 가격까지 이 정도니...

물론 남에게 선물하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을듯 하다. 어쨌든 이곳 외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특산품이니까.

 

 

 

라멘박물관은 1994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라멘 테마파크로

세워진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1950년대 후반의 도쿄 거리를 매우 훌륭하게 재현해 놔서

라멘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 재현된 길거리 풍경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추억을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곳이라서 그런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어린시절 로망을 불태웠던 장난감 자동차 서킷이 1층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영업시간이 끝나서 레이스의 열기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어릴때 봤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큰 서킷이 인상적.

나 어릴때는 이런 서킷이 없어서 그냥 자동차나 조립해서 아파트 놀이터에서 달리곤 했었는데.

 

워낙 본격적인 서킷이라 그런지 상금이 걸린 대회도 벌어지는 듯 하다. 구경만큼은 한번 해보고 싶다.

 

 

 

라멘가게의 도구들. 실제로 1960년대에 쓰이던 것들이긴 한데

옛것을 바꾸길 싫어하는 일본의 특징답게, 사실 지금도 상당수의 라멘가게에서 당연한듯 사용중인 것들이다.

 

일본은 특히 음식가게 점원들의 목소리가 큰게 특징인데

주방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하러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찌렁찌렁 울리는 '어서옵쇼!' 가 고육지책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굳어져서, 접대 목소리가 작으면 매상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

 

물론 현대식 식당이나 고급 일식당, 양식당 등에서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규동이나 라멘등의 서민음식점에서의 이야기.

 

 

 

이곳 라멘박물관에 적혀있는 빼곡한 지역별 라멘 연대기를 다 읽어보려면

최소 몇시간은 걸릴 듯 해서 포기하고, 나도 알고있는 일본의 4대 라멘을 담아본다.

 

삿포로의 미소라멘, 도쿄의 쇼우라멘, 키타가타의 쇼유라멘, 큐슈의 돈코츠라멘.

키타가타는 도쿄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라 특색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아침식사로 라멘을 먹을 정도로 라멘매니아가 많기도 하고

곱슬머리에 가까운 꼬들꼬들한 면발을 유지하는게 그쪽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통 키타가타 라멘은 도쿄 라멘과 확실히 다르다.

 

2008년 자전거 여행때는 키타가타 라멘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우연히 그곳의 조그만 식당에서 먹었던 라멘과 교자의 맛은

내가 뭔가 숨겨진 맛집에 들어온건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맛있어서, 처음으로 키타가타 라멘의 위용을 실감하게 해 줬다.

 

글쎄, 한국사람 입맛에는 삿포로와 큐슈의 라멘이 들어맞지 않을까 생각은 해 보는데

짠걸 못먹는다는 사람은 일단 일본라멘이란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하니까.

본인 역시 기분같으면 하루 네 그릇 정도 라멘을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것 같지만

나트륨 덩어리인 일본 라멘을 그러게 먹다간 정말 죽어버릴것 같기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다.

 

여행 자전거 여행때는 별 걱정없이 하루 두 그릇 정도는 헤치웠다. 땀을 워낙 많이 흘렸으니까.

 

 

 

1층엔 대자보, 기념품점, 라멘의 역사, 레이싱 서킷 정도가 볼거리다.

사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서, 아직은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이 서킷만큼은 정말 굉장하다. 장난감 레이싱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국민학교때는 프라모델 조립으로 돈 꽤나 날렸던 역사를 갖고 있는 본인이라서

가끔 서킷을 갖춘 곳을 찾아가서 구경하곤 했는데, 이 서킷은 여지껏 본 녀석중에서 가장 큰 녀석이라 놀랐다.

 

8살~13살 정도의 나이에 이곳을 부모님과 함께 찾아오게 되었다면, 이 서킷에서 자기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서킷을 달리는 자동차보다, 색바랜 채로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프라모델이 더 눈길을 끈다.

대부분이 자동차 종류이긴 한데, 단순한 최신 제품이 아니라 분명 빈티지급으로 보이는 녀석들도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극히 평범한 건담류 프라모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 중심, 물론 RC 헬리콥터 같은 녀석들도 있다.

 

나이 들어도 이런 취미 가진다는거, 사실 꽤나 동경하는 성격이다. '어른이' 혹은 '키덜트'라는 표현도 칭찬으로 들린다.

나이 처먹어야 생기는 취미라는게 딱히 더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하게 보일 이유가 있나 싶으니까.

이런 걸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인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1층 구경을 대강 끝내고 본격적인 라멘 탐방을 위해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로 향하는 통로는, 마치 목욕탕 입구를 보는 듯한 타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할때는 몰라도 혼자서 이렇게 내려가고 있으니 괜히 부담된다.

영업시간은 확실히 확인하고 왔지만, 유명하다는 곳에 이렇게 사람이 없으니 그건 그거대로 겁이 나는 법.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 순간부터 과거로 시간여행하는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모두 철저하게 50~60년대풍을 연상시키는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때묻은 거울과 낡은 맥주 간판, 의도적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몇개 빠져있는 바탁 타일까지.

 

일단 여기까지만 봐도, 오다이바나 삿포로의 라멘 테마파크들과는 위용이 다르다는걸 실감할 수 있는데

과연 이시다씨가 극구 추천해 준 이곳의 본모습이 어느 정도일까 점점 기대가 고조되는 듯 하다.

 

 

30여명이 몰려서 혼잡스럽던 가게를 대충 정리하고 일반 고객들도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돌려놓는다.

8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자 이시다씨가 이곳 Mirai 의 주인장분을 소개해 주셨다.

 

이곳 주인장분은 남극의 오로라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빠져들어서

29세때 남극에 간 후, 호화여객선 '아스카'에 일식주방장으로 들어가, 배로 세계일주 9번, 반주 12번, 세계 70여개국을 돌아다니셨다고.

2년전에 이곳 요코하마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차리고, 여행 매니아나 여객선 매니아들이 모여들 수 있는 곳을 목표로 하고 계신단다.

 

좁은 레스토랑의 벽이란 벽은 주인장분이 타고 세계를 누볐던 아스카호의 모습과, 영롱한 남극의 야경사진이 빼곡히 걸려있다.

실제로 남극기지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고. 이건 뭐, 이시다씨 이야기 들으러 왔더니 가게 주인장부터 보통 인간이 아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여객선 셰프라는 직업상 요리는 상당한 수준급.

일식 주방장이었다고 하던데 특이하게도 일식과는 그닥 관계없어보이는 인터내셔널 푸드가 많다.

 

그중에서도 추천하는건 남극 드라이 카레라고 한다.

원래 일본에서 드라이 카레는 우편물을 우송하는 우편선에서 만들어먹기 시작한 것이 원류로

100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선박여행 식사메뉴중 전통있기로 유명한 녀석인데

주인장분의 경험을 살려서 개량, 남극 드라이 카레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사실 토크 라이브 중에도 드라이 카레를 주문해서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인장분도 마음껏 시켜먹어주시면 가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처음부터 뒤풀이 참가를 계획하고 왔고, 돈 아끼려고 조식을 마구 퍼먹고 온 터라 주문은 하지 못했다.

 

사실 왕복 교통비, 토크 참가비, 뒤풀이비, 필수 음료 주문비 등등...

여기 오기위해 투자한 금액을 전부 합치면 거진 10만원 정도는 나오기 때문에, 가난한 나로서는 무시하기 힘들다.

애초에 항공권조차 공짜인 여행이라서 6일간의 도쿄 체류 총비용이 40만원정도였고, 그 1/4 을 이곳에서 써버린 것이니.

제대로 된 요리는 인스턴트 풀어서 던져주는 싸구려 요리와는 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의 요리 수준을 보면, 가격이 비싼것도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볶음밥 위에 스팸을 구워서 김으로 살짝 싼 이곳의 인기메뉴 스팸초밥이 한국돈으로 2개 9천원이나 할 정도로

독특한 맛체험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에, 극빈여행중인 나로서는 선뜻 주문하기 힘든 곳이다.

 

다음엔 자금을 좀 넉넉히 들고 가서 (아무래도 여행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좋을텐데)

이곳에서 진득하게 세계 각지의 레어 맥주와 함께 식사를 즐기며 이야기를 좀 했으면 싶다.

 

뒤풀이 식사는 천천히 조금조금씩 메뉴가 코스로 나왔는데, 그중엔 드라이카레를 밀가루피에 싸서 튀겨낸 녀석도 있어서

다행히 이곳의 최고 인기메뉴 드라이카레를 잠깐 맛이라도 볼 수 있었다. 진한 향기가 콧속까지 확 퍼지는게 느껴진다.

 

 

 

일본은 일본이다보니 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메뉴가 차례차례 나오는 덕에

조금씩 조금씩 맛을 음미하는데는 더할 나위 없다. 혼자 와서 이런 메뉴를 전부 맛볼수는 없을텐데

뒤풀이 개념으로 단체식사를 하니 여러가지 맛 볼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단 이시다씨와 와이프분은 그러려니 하고 재쳐두더라도, 이곳에 남은 나머지 6명이라면

당연히 여행을 싫어할 리가 없는 매니아 계급이라서, 서먹서먹한 첫인상 역시 여행 이야기로 풀어나가는게 제일 쉽다.

가뜩이나 낯가림이 심한데, 일본인들 사이에 혼자 끼여있다보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는데

다행히도 맞은편의 청년이 스스럼없이 가볍게 말을 걸어줘서 혼자서 황야의 늑대 역할을 하지 않고 참가가 가능했다.

 

이야기의 중심은 이시다씨가 될 경우가 많았지만, 다들 한사람씩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서로에 대해 물어보고 하다보니 이시다씨도 그냥 평범한 동아리 회원같은 느낌으로 끼어들어온다.

세계일주에 대한 의문점에는 당연히 이시다씨가 이이기를 이끌어가지만, 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여행 초보자는 아니니까.

 

남성 5명, 여성 3명으로 이루어진 인원이었는데, 젊고 약간 수줍은듯한 여성분 외에 나어지 한 분은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남편마저 질질 끌려갈만한 행동력넘치는 분인듯 하다.

여행 별로 가본적 없는데~ 라는 식으로 운을 떼도, 막상 들어보면 남자 저리가랄 정도로 갈곳은 다 가보는 듯.

 

이시다씨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장분한테 그거 없냐고 물어본다.

한 명당 한 잔씩 돌리기엔 아무래도 가격이 가격이라서 불가능하고, 주인장분이 위스키로 보이는 술을 얼음과 함께 한잔 내놓는데

이 얼음이 1만 5천년전 만들어진 남극의 얼음이라고 한다. 다들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귀하신 몸의 행차에 주목한다.

 

단순히 남극의 얼음이라는 점 때문에 귀한게 아니고, 이 1만 5천년전의 얼음은 미네랄 워터와 달리 불순물이 거의 포함되어있지 않은

소위 자연발생한 증류수와 같은 얼음이라는 것. 그래서 위스키의 맛에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에 매니아들에게 호평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녀석은 눈이 내려 쌓이고 쌓인 압력으로 생성된 얼음이라 보통 얼음보다 기포가 훨씬 많다.

그래서 위스키에 이 얼음을 사용하면 그 구멍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기포덕에 맛이 부드러워진다고. 이름값이 아니라 진짜 고급얼음이란다.

 

 

 

다들 귀를 한번씩 대 보고 조금씩 마신 후 옆자리로 넘긴다. 나를 제외하면 다들 술 굉장히 좋아하는 듯 해서

음식 먹는 도중에도 각자 술을 마구마구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데, 이 녀석은 워낙 귀해서 그렇게 마실수는 없는 듯.

 

맞은편에서 가볍게 말걸어줘서 나를 도와주는 세이야 씨가 친절하게도 그 술을 들고 포즈를 취해 준다.

얼굴근육이 굳어버린 나와는 달리 표정이 아주 크게 변화해서 사진 찍는 맛이 난다.

나야 뭐 술맛을 잘 모르지만, 귓가에서 느껴지는 탄산소리와 함께 가볍게 넘어가는 위스키 맛이 훌륭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세이야 씨는 25살 쯤 되었나, 15살때부터 자위대에 들어가서 지금은 이곳 요코하마 근처의 해군기지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이시다씨 책을 읽고 팬이 되서 자주 만나다 보니, 이시다씨는 이분을 '고릴라'라고 부른다.

'세이야'라는 이름은 '聖夜' 라고 쓰는데, 감이 잡히는 분도 있을 듯.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사람의 쾌활함에는 부모도 한몫 한 것 같다.

 

얼핏 봐도 쾌활한 청년으로 보이는데, 실상을 파고들어가보니 쾌활한 정도가 아니라 좀 무서운 사람.

어느날 좀 심심해서 무단으로 자위대 빠져나와서 자전거로 신나게 무단여행중에

도랑에 크게 굴러떨어져서 무릎뼈가 깔끔 깨끗하게 살을 찢고 튀어나오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고.

그런데 병원 가면 무단 탈주한게 자위대 귀에 들어갈까봐 겁이 나서 그 튀어나온 뼈를 그냥 손으로 다시 집어넣고

거기다 스카치 테이프를 둘둘 두른 후에 그냥 복귀해 버렸단다.

 

그러고 몇주 지난 후에야 병원을 다시 찾아서 무릎에 철심 하나 박아버렸다는 기묘하고도 이상한 이야기.

사람들이 믿질 않으니 바지 걷어서 그 날의 상처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거 사람 맞나?

 

그만큼 활동력도 있고, 체력은 거의 괴물같은 사람이라서, 맘만 먹으면 세계일주같은건 그냥 취미활동으로도 끝내버릴 듯 하다.

오키나와 출신이라고 하는데, 역시 지역 특유의 쾌활함은 사람의 DNA 속에도 녹아있는 것일까.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자긴 바보라는 말을 쉽게쉽게 꺼내곤 하는데, 이런 건 바보가 아니라 순수하다고 표현하는게 나을것 같다.

내가 '일본에서 이렇게 주절거릴때, 뭔가 틀리게 말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무심결에 조심하게 된다' 고 말을 하니

'일본사람들도 다 틀리게 말해요' 라고 웃더라. 사실 내가 배운 문법을 적용시켜보면 그 말이 틀리진 않다.

 

하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 그 나라 말을 제일 잘못 사용하는건 언제나 그 나라 사람이다.

 

 

 

내 바로 옆에 앉은사람은 척 봐도 아티스트같아 보이는 사진가 신 씨.

주드 로 같은 살짝 벗겨진 머리에 가늘고 긴 체형, 머릿속에 그려지는 포토그래퍼의 전형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카메라 갖고 온 사람도 나와 신 씨밖에 없었다. 캐논의 5D Mark 2 를 들고 있다.

명함을 한장 받았는데, 뒷면은 자기가 찍은 흑백사진을 멋지게 인쇄해 놨다. 나도 이런 명함 하나 만들까 싶었는데

명함 뒤에 당당하게 내밀만한 작품이 없으니 좀 더 노력한 후에나 생각해 봐야 할듯.

 

이분도 여행을 좋아해서 자전거로 중국에서 시작해 인도까지 몇달 달려봤는데

좀 더 제대로 하고 싶어서 돌아온 후, 이시다씨같은 세계일주를 계획중이라고 한다.

다들 이렇고 그렇고 한 여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는걸 보니

혹시 나는 여기 낄만한 인간이 아닌건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 시작한다.

난 뼈가 튀어나왔다고 그걸 맨손으로 집어넣고 테이프 발라버릴만큼 호탕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뭐, 자기소개할때 일본일주 이야기와 사하라 마라톤 이야기 하니 다들 놀라주는 것 같아서

포장만 잘 하면 나도 대강 이 사람들하고 비슷한 레벨이라고 속여넘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이시다씨 옆엔 와이프분. 결혼하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혼여행은 아프리카로 갔다고. 반려자가 될 만한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풍경이 사막이라, 그거 진짜 공감간다.

 

사실 와이프분은 이시다씨와 결혼하기 전엔 한 번도 여행이란걸 해 본적이 없다고.

하지만 한번 맛들이고나서는 이시다씨보다 더 나가고싶어서 고생중이란다. 여행이란게 그렇긴 하다.

시모네타라고, 한국어로는 외설적인 농담이라는 의미인데, 이시다씨도 한 외설 하지만 와이프분은 그걸 쿨하게 받아넘겨서

아무런 데미지가 없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행복해 보이니까 그걸로 됐겠지.

 

일본일주한 경험으로 한번 물어봤는데, 이시다씨 말로는 일본이나 한국정도 지형은 난이도로 치면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일본이나 한국 일주할 정도면 전세계 못가는곳은 없을거라 하신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위안은 된다.

사실 세계일주 가는건 내가 아니고, 나침반님은 융프라우도 자전거로 오르신 분이라 별 의미가 없긴 한데.

 

세계일주의 힘든 점은, 지형의 난이도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노면상태가 많다는 것.

95000km 의 주행거리라고는 하는데, 사실 1만km 정도는 걸어서 간거라고 한다.

도중에 자전거 앞프레임이 완전히 박살나 버리는 바람에, 그 50kg 짐과 자전거를 짊어지고 15km 넘게 걸어간 적도 있다고.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는데, 나같으면 정말 때려치우지 않았을까 싶다.

 

 

 

제일 왼쪽분이 대장부(?) 여성분이고, 중간분은 이제 여행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

오른쪽의 훈남분은 역시 요코하마에 살고 있는 분으로, 카메라회사 캐논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내 옆의 신 씨가 캐논 카메라를 꺼내들자 눈이 빛을 발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나한테는 농담으로 캐논 써주세요라고 하는데, 사실 카메라쪽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부서라고.

신 씨가 카메라 좀 싸게 넘기라고 말했을때도 자기 구역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여기 남은 사람들은, 자전거로 1년간 여행하는 나 정도가 지극히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캐논훈남 역시 소싯적엔 어디나 훌떡훌떡 잘 돌아다녔고

여행 준비겸 해서 지금도 운동 꾸준히 하고 있으며, 옆의 자위대 세이야 씨 못지않은 괴물체력을 가지고 있다.

캐논 다니며 월급도 나이에 비해 안정적으로 잘 벌고 있는데 훗날을 위해 붓고 있는 보험금 때문에

생활이 빠듯하다는, 착실함의 표본을 보여주는듯한 생활력의 소유자.

 

외가 팔촌쯤 되는 친척이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친척 결혼식때 한국에 한번 가본적이 있다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요리도 차곡차곡 잘 나온다. 한국의 페이스에 비하면 좀 천천히 나오는 편.

먹는데 집중한다면 느린 페이스지만, 이야기를 중심으로 곁들여지는 느낌의 모임이니 이 정도 페이스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나온 피자는, 처음 외관만 봤을때는 좀 엉성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조각 집어먹어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다. 정말 맛있다.

바삭바삭한 대신 피골이 상접한 도우와 달리 씹는 감촉도 좋고, 토핑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역할을 다한다.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한조각 먹고나서 '어라? 맛있다!'를 연발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거 주인장분이 들으면 '그럼 먹기전엔 맛없어 보였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그런 리액션이라서 약간 긴장했다.

 

아무튼 조그만 가게의 수제 피자는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남아있다는 경험을 몇번 했던 나로서는

이만큼 완성도 높은 피자는 요 근래 처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짜 맛있었다.

그냥 먹으면 그렇게도 맛없던 아보카도를 이렇게 쓰는구나 감탄도 할 수 있었고.

 

주인장분의 심상치 않은 이력도 그렇고, 훌륭하게 구비해놓은 세계 각지의 술도 그렇고

어디가서 요리사라고 칭해도 결코 부끄러움 없는 실력으로 만들어내는 요리도 특색덩어리라

다음엔 누구하고 같이 가더라도 이곳을 꼭 찾아와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면

항상 그렇듯이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 언어회로는 1:1 대화에만 특화되어 있는 듯,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하는건 타이밍 잡기가 너무나 어렵다.

대신에 듣는건 어렵지 않아서, 갑자기 주제가 끼어들어와도 얼마든지 대처할 수는 있는데...

 

이름만 잘 가져다 붙이면 반사회성 장애의 일종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는데

본인 스스로는 별 신경쓰지 않고 있다. 병이라고 부른다면 뭐, 내가 병자라고 해서 바뀌는게 있나.

어렸을때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스퍼거에 근접하는 성격이었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정신과의사한테 진단서 한장쯤은 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세상은 살기 불편한 곳이고, 무차별 살인마가 되지 않을 자신쯤은 있으니 인생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

 

다행히도 다들 사진찍는데는 큰 저항감이 없는듯 해서 조금씩이나마 셔터를 눌렀다.

한국에서는 사진찍는데 워낙 경기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서 점점 소심해지는데

옆의 신 씨가 내 카메라 들고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이시다씨가 내 카메라로 내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물론 블로그 방침상 본인 얼굴은 올리지 않겠지만.

 

사진 너머로 보이는 점원 아가씨가 열심히 이리저리 뛰며 서빙중이었는데

그래도 12월이라고 산타복장을 하고 있는게 뭔가 대견해 보인다.

좀 더 용기있게 나갔다면 기념으로 저 분 사진도 한장 남길수 있었을 법 한데.

 

 

 

신 씨가 내 카메라로 찍은 사진.

수동렌즈긴 하지만, 이 사람한테야 내가 뭐라뭐라 필 입장이 아니다. 어쨌든 프로 사진가니까.

신 씨는 24-105 렌즈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내가 가진 렌즈가 35mm 단렌즈라는데 조금 놀란 듯.

단렌즈치고는 무식할 정도로 큰 녀석이기도 하고, 거기다가 모터가 없는 수동렌즈라서.

 

한국 렌즈 제작사 삼양이 만든 순수 한국렌즈라서 일본에서 본 적도 없을거다.

수동렌즈라서 불편하긴 하지만, 가격 저렴하면서도 화질은 수백만원짜리 렌즈보다도 더 뛰어난 녀석이라 애용중이다.

 

 

 

뒷풀이가 길어졌는지, 일반 손님들도 차례차례 들어오기 시작해서

더 이상 있으면 폐가 될까봐 다들 주섬주섬 일어난다.

 

일반 손님들 오기전에 레스토랑 풍경을 좀 더 여러장 남겼을면 좋았을텐데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그 생각을 하지 못한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심지어 1인용 조그만 화장실 안에도 빈틈없이 빡빡하게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구나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레스토랑의 풍경을 담는다.

저기 액자에 보이는 여객선이, 주인장분이 몸담았던 '아스카' 호. 지금은 2호도 나왔다고 한다.

 

배에서 인생을 보낸만큼 여객선 세계여행의 매력에 대해서도 한참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사실 저런 여객선말고 아주 싼 녀석으로도 세게일주는 할 수 있단다.

하지만 그런 곳은 대부분 공동 침실인데, 거기서 큰 문제가 생긴다고.

만에 하나 성격이 안맞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어버리면, 거기서 세계일주 끝날때까지 받는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저런 토의 끝에 '여객선 세계여행은 나이 좀 더 먹고 자금 여유있을때 해도 늦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

 

 

 

이시다 씨만 바라보고 달려온 요코하마인데, 막상 와보니 '끼리끼리 모인다'는 속담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나를 너무나도 초라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보이게 만드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으니

좀 더 멋대로 살아도 별 문제 없겠다는 위험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듯 하다.

 

나가기 전 주인장분께 사진 한장 부탁하고 인사 나눴다.

이제부터 도쿄든 요코하마든 근처 오기만 하면 이곳은 일순위로 찾아오겠다고.

본인도 이야기 나누고싶은거 많으니 꼭 찾아오라고 당부를 하셨다.

 

실제로 이곳엔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고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여행 좋아하는 대학 교수들마저 토크쇼를 하는 등 나름 단단한 매니아층을 지닌 곳이다.

일본 TV 에서는 1년에 8~9번 정도는 소개되는 곳이기도 하고. 어딜 뜯어봐도 내가 단골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취향에 맞는 곳.

 

원전사고만 아니었으면 지인들 많이 데리고 갈 텐데,

사실 이제 도쿄 부근은 누가 가고싶다고 요청하지 않는 이상은 나 혼자 가게 될것 같아서 아쉽긴 하다.

 

주인장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뒤풀이 팀은 밖으로 나와서 칸나이 역을 향해 걷는다.

사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은 요코하마 부근에 살고 있는듯. 나는 도쿄로 간다고 하니 이시다씨가 도쿄 어디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살짝 말이 엇나갔나 싶었는데, 도쿄는 며칠 전에 왔고 살기는 한국에서 산다고 하니 조금 놀라는 눈치다.

그럼 예전에 일본에서 산 적이 있구나 라고 말을 하는 이시다씨의 낌새로 봐서는, 맨날 하는 그 레퍼토리가 나오는 느낌.

일본에서는 산 적이 없다고 하니 그런데 왜 그렇게 일본어가 술술 나오는거냐고 다들 놀란다.

나머지 일행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시다씨는 내가 한국서 메일 보낸거 알텐데 왜 그러는지... 아마 사소한건 까먹었을지도.

 

지금까지 다들 내가 도쿄에 살고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이시다씨 보려고 한국서 비행기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

사실 이시다씨 때문에 도쿄 온것은 아니고, 조금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토크 라이브가 제일 큰 목적이긴 하다.

 

나는 기왕 요코하마까지 왔으니 뭐라도 유명한거 하나 둘러보고 가야겠다고 말하니

이시다씨가 그럼 라멘 박물관이지 라고 단언해 준다. 다행히도 밤 늦게까지 하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도 문제없다고.

어디로 향하든 일단 모두들 칸나이 역까지 가서 헤어지기로 하고 조금 싸늘해진 요코하마의 저녁거리를 걷는다.

 

 

아침 8시에 일어나 로비에서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먹는다.

아무리 인색하고 궁핍한 여행을 즐기는 타입이라고 해도,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는 행동 역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보니, 별로 맛없는 무료 조식은 간단히 배만 채우는 용도로 사용하곤 하는데

오늘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비엔나 소세지 한무더기와 주먹밥 6개씩이나 집어들고 테이블에 앉는다.

 

일본인들이라면 보통 많이먹어봤자 주먹밥 2개 정도, 나는 평균 3개, 많이먹으면 4개쯤 먹지만

이번엔 배가 빵빵해질만큼 입으로 집어넣는다. 그래도 싸구려 주먹밥이니 눈치보일일은 없다.

 

식사 끝내고 적당히 휴식을 취한 후 9시 30분쯤 로비로 나간다.

30분 간역으로 이곳에서 우에노(上野)역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하기 때문.

자동차로 가면 10분 남짓한 거리일 뿐이지만 걸어가기엔 상당히 먼 거리고, 전철타면 어쨌든 돈이 나가니까.

교통비가 만만치 않은 일본에서는 이런 셔틀버스를 최대한 이용하는게 이득이다.

 

승차중에 설문조사 응해달라고 하는데, 무료 이용이고 하니 흔쾌히 작성해줬다.

설문 항목중에 '운전 신호를 잘 지키고 정속으로 운행하던가요?' 라는 질문이 있는게 조금 특이했다.

셔틀버스 운행에 대한 적성검사라도 하는 듯한 내용이라서, 아무래도 이쪽 운전수일은 호텔 정규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굴은 되게 무뚝뚝하지만 지킬건 다 지키는 기사분이니 어쩄든 좋게 평가해줬다.

 

공짜로 우에노에 도착하니 기분도 상쾌하다. 일본의 교통비는 정말 무서워서.

하지만 오늘은 이제부터 상당한 금액의 교통비를 지출해야 하니 각오를 단단히 한다.

 

도쿄 여행의 기준점이라고 할 만한 우에노역. 주요 철도 노선 대부분이 이곳으로 모이고

근처에서 저렴한 숙박장소 찾기도 쉽기 때문에 중요도가 매우 높다.

물론 좀 더 편안하고 향락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도쿄역 중심으로 180도 빙글 돌려서 반대방향에 위치하는

시부야나 신쥬쿠 같은 곳에 숙소를 정하는게 낫기도 하다. 좀 비싸긴 해도 그곳 역시 교통의 요지중 요지이고,

그쪽에 자리잡으면 밤새도록 쇼핑이나 먹거리 즐기는데 교통비 들 필요가 없다. 온통 그런 곳 천지니까.

 

 

 

12월 초순이었지만, 벌써부터 크리스마스의 향기는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고출산 장려 기념일이라고 부르는게 더 알맞을듯 하지만

일본은 어쨌든 지진과 원전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터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기부의 의미가 강조되는듯 하다.

 

요 2년 가까운 기간동안 일본의 시민기부액수는 놀라울 정도로 폭증했는데

피해지역의 참상이 상상을 초월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다.

하지만 국회 감사에서 재해지역에 사용되어야 할 기금중 상당수가 어이없게도

어제 그 스카이트리 홍보비용으로 쓰여졌다는 내용이 나오는걸 보니, 이쪽 시민들은 열받지 않으려나.

 

정부가 그 꼬라지를 하고 있으면 정말 기부하려는 마음이 싹 사라질법도 한데

후쿠시마 대지진의 피해가 너무나도 커서 그런 정치불신마저도 하찮게 보일만큼 급박하기 때문에

여전히 개인 기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좀 낡긴 했지만 우에노역은 여전히 크고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역 앞에 유명한 재래시장 '아메요코'가 서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전후 초기부터 재건사업이 시작된 곳이라 개발이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이곳 우에노 역도 여기저기 추가 출입구 새로 뚫고, 내부를 조금조금 야금야금 증축하고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서 상가를 유치하고 해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역이 되어버렸다.

 

세련된 부티크 샵과 훌륭한 베이커리, 꽤나 맛이 괜찮은 커피전문점, 60~70년대 블루스바까지 공존하면서

공간이 워낙 구불구불하게 증축되다보니 위쪽 지붕이 2m가 채 되지않는 낮은 지역도 있어서 그거 높히려고 또 공사중이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호평받는 우에노 지역이니

이 난잡함도 그리 기분 나쁘진 않을듯 하다.

 

 

 

우에노가 출발역이기 때문에 느긋하게 앉아서 40분정도 달려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요코하마 역은 아니고, 몇 정거장 옆에 있는 칸나이(関内)역.

왕복 전철비가 2만원 가까이 깨지니, 평소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다.

 

예전 킨키지방의 코야산같은 곳이라면 기꺼이 2시간 버스타고 다녀오겠지만

요코하마는 도쿄와 그닥 다를바 없는 큰 도시라서, 내 취향이 아니다.

해변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그곳 야경도 괜찮은 편이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노력과 수고를 들여서 '도시'를 구경하는건 취향이 아니다.

 

나름 도쿄 부근에서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예전 자전거 여행때는 그냥 후다닥 지나쳐 버리고

그 앞의 에노시마에 들어가서 고양이들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엔 교통비를 감수해가며 도쿄에서 찾아올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아사쿠사 근처에 숙소를 잡은것부터 시작해서

이번 도쿄여행 전체가 이날 요코하마에 오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에노까지 무료 셔틀버스도 확인했고, 우에노에서 이곳 칸나이 역까지 직통으로 올수 있기 때문에.

 

이런 류의 도시에는 그닥 흥미가 동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화창한 날씨 아래서 도쿄보다 좀 더 시원하게 뚫린 다차선 도로를 마주해도

그냥 산은 산이요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조금 더 이동해서 미 해군기지 근처까지 가면 분위기가 좀 바뀐다고 하던데,

그리고 항구로 유명했던 지역이니만큼 일본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도 있어서

맛있는거 먹으러 가기에는 좋은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것 때문에 온 게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애초에 이만한 시간과 교통비 들여서 여기까지 오지도 않는다.

차라리 교통비 더 들여서 옛 사찰과 유적이 가득한 닛코(日光)에나 갔겠지.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일기예보를 너무 믿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어제가 내 여행기간중 가장 맑은 날이라고 몇번이고 일기예보를 확인했고

그래서 일부러 어제 스카이트리를 찾아간 것인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화창하다.

 

물론 오늘은 예정이 잡혀있으니 어차피 스카이트리 가진 않았겠지만

예보가 이렇다는 건 내일이나 모래 역시 어제보다 더 맑을수도 있다는 반증이 되니까.

아무튼 요코하마에 대해서는 당일치기 관광객보다도 아는게 없는 일자무식이니

그냥 역에서 나와서 아무곳이나 걸어다닌다. 아직 약속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날은 일요일이라서, 좀 번화한 상가골목으로 들어가자 인파가 밀물처럼 채워지기 시작한다.

요코하마가 이렇게 번잡했나 싶을 정도로, 하긴 이곳에 대해 하는건 하나도 없지만.

 

이제와서는 좀 촌티나는거 아닌가 싶을, 검은 가죽잠바와 타이트한 가죽바지, 번쩍번쩍하는 가죽구두를 신고

머리에 한껏 힘을 세운 젊은애들이 웃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의외로 아무 생각없이 찾아온 거리는 꽤나 번화가인 모양이다.

자동차는 원래부터 통행금지였고, 자전거도 타고 가는건 금지라서 나이먹은 경찰관이 길복판에 떡하니 서서

자전거 타고다니는 사람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만큼 인파가 심한 곳이라는 반증.

 

운좋게도 중고책 전문점 북오프가 바로 앞에 있어서 40분동안 책이나 읽었다.

북오프는, 따끈따끈한 신간은 별로 없지만 모든 책에 커버가 씌여있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서서 읽어도 뭐라하지 않는게 장점이다.

여름에 여행중엔 에어콘 바람 실컷 만끽한게 좀 미안해서, 가끔 저렴한 중고책을 일부러 사들고 나간 적도 있고.

 

 

 

약속시간까지 30분쯤 남았지만 장소를 도저히 찾을수가 없어서 결국 점장분한테 전화까지 때려야 했다.

애초에 요코하마에 한 번도 온적이 없는 내가 이곳을 찾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점장분도 처음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설명하기가 참 난감하다면서 힘들어하신다.

특히 왠만하면 스마트폰의 기능으로 찾아오는 일본 사람들과 달리, 난 로밍폰이라서 데이터를 쓰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하나하나 설명해준 덕에 어째 설명 한번만으로 잘 찾아왔다.

 

찾고보니 방금 전 책읽었던 북 오프점에서 딱 두 골목만 안으로 들어가면 위치했던 곳이지만

설명없이 이 좁은 골목을 찾아다닌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골목은 성인 두 사람만 나란히 서면 꽉 찰정도로 좁으니까.

 

'BAR de 남극요리인 MIRAI' 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인데

펭귄마크의 아이콘이 묘한 인상을 남긴다. 남극요리인이라는 타이틀과 펭귄이라니.

슬쩍 '쥔장이 남극에서 요리하다 왔나보군' 이라고 가볍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는데

사실은 그 말이 맞다.

 

관광 가이드북에 실려있는지는 모르겠는데, 2010년도에 개장해서 역사가 깊은 곳도 아니고

디지털 지도나 가이드북이 없다면 (이 곳이 실려있는 가이드북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지만)

정말로 찾아가기 힘든 외진 구석에 조그맣게 위치한 지하 음식점이다.

아마도 한국인이 이곳을 찾는건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객석이 내 방만한 작디작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한국에서도 꽤나 인기를 끈 '가보기전엔 죽지마라' 의 저자 이시다 유스케(石田ゆうすけ)씨의 토크 라이브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

 

사실 이번 도쿄 무료 항공권은 출발 2달 전에 미리 받아놓은 것이라서

도쿄서 뭘 할까 이리저리 생각하는 도중에 우연히 이시다씨의 토크 라이브가 열린다는 사실을 접하고

서둘러 이시다씨한테 연락해서 자리 하나 예약한 상황이었다.

 

여행 좋아하는, 특히 자전거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이시다 씨는

7년 반동안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며 95000km 를 달렸다.

원서 제목은 '行かずに死ねるか!' 이고, 직역하면 '안가보고 죽을쏘냐!' 라는 좀 강한 어조가 되는데

그래도 '가보기전엔 죽지마라' 라는 의역 역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책은 독자에게 말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책이라

남에게 명령형으로 들리는 제목으로 의역한 것만은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10평도 안되보이는 좁디좁은 바에 예약된 청중은 30명이 넘어서

서로서로 무릎의 온기를 느낄 정도로 바싹 붙어서 간신히 앉아있는다.

워낙 소규모 토크 라이브에, 이시다씨나 바 주인장분이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참가비 따로, 마실거 한잔 의무적으로 주문해야 하는 빡빡한 요금제이지만

그 정도야 부담하고서라도 이시다씨와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이 토크 라이브는 일본 각지를 도는 순회 강연이고

공교롭게도 오늘이 세계일주 토크의 마지막인 아시아편이었다.

가보기전엔~ 책에는 의외로 아시아쪽 루트에 대한 에피소드가 좀 적은편인데

토크를 시작하면서 이시다씨가 해명을 했다. 에피소드가 적어서 안쓴게 아니고 너무 많아서 쓸수가 없었다고.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야 별로 신기할 것도 없을 터.

하루하루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자 저뭄의 연속이고

인간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피부색, 머리색, 눈동자색, 체중, 키, 언어, 문화 등등 모든 것에서 다를수밖에 없는

타인들과의 접점과 접점이 끊임없이 겹쳐지며 만들어 지는게 여행이란 녀석이니까.

 

노트북에 프로젝터를 연결하고, 끝까지 나타나지 않은 예약손님 몇명을 좀 더 기다려보다가

결국 토크를 시작한다. 기분같아서는 취재기자처럼 토크 도중도중에 사진을 마구 날리고 싶었지만

당연히 해서는 안될 일이고, 책에 실리지 않은 귀중한 사진들도 맘대로 유출할 수는 없으니까.

 

맥주 한잔 마시며 위트 넘치는 이시다씨의 토크를 감상한다.

사실 아무리 말하고 말해도 그 7년 반의 여행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단지 몇천 분의 일이라도 그때 그가 느꼈던 기분을, 토크를 듣는 이곳의 사람들이 살짝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이 토크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시다씨와 비교하는건 택도 없지만, 어쨌든 1년동안 자전거로 일본일주 한 경험이 있다보니

이야기 중간중간에 감회에 젖은 묘사로 살짝 눈을 감는듯 마는듯 하며 빛의 속도로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는

이시다씨의 미묘한 표정 하나하나에 나 역시 스스로의 추억에 휩싸이는, 이상동몽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2시간 토크후 10분 휴식후, 또 2시간 토크라는 장거리 마라톤이었고

책에서 빠트릴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에피소드와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 등

풀어나가자면 이런 포스팅 몇 개는 채울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왔지만

이곳은 이시다씨의 정보 소개하는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몇가지만 남겨보자면, 이시다씨가 가장 감격에 겨웠던 아프리카 사막의 풍경사진 이벤트.

휴식시간동안 이시다씨는 사막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BGM 으로 틀어주었다.

나도 워낙 많이 듣는 곡이라서, 착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헤르베르트 카라얀이 지휘한 버전일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버전으로, 아마 아다지오 & 파헬벨 앨범에 있던 녀석일 듯.

 

파헬벨의 캐논은 대중적으로 300년동안 너무나도 사랑받아왔기 때문에

요즘 흔히 들리는 기타나 가야금,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등등의 베리에이션 외에도

시대의 흐름과 나라별 오케스트라, 그리고 지휘자별로도 그 음색이 굉장히 다르다.

나같은 클래식 생초보라도 너무나 쉽게 구별이 될 정도로 다양한 버전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시길.

 

 

 

카라얀이 쫌생이중의 쫌생이에다 비겁자이긴 해도 진짜 천재는 천재다.

 

이시다씨는 자전거 타면서 그 지역의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듣는데

사막의 풍경만큼은 그 어떤 음악보다 클래식이 어울렸다고 회상했다.

 

음악의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막에는 음악이 어울린다는 점 하나만은 극히 동감한다.

사하라 마라톤 때도, 야간 레이스 당시 사람은 커녕 빛 한줄기도 없는 광야 속에서 홀로 걷고 있으니

저절로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던 추억이 있으니까. 이시다씨의 사막은 나의 사막과 맞닿아 있다.

 

  

 

 

내가 참가한다고 미리 연락을 해서 그런지, 상식적으로 봤을때는 원래 일정에 들어가 있지 않을

한국에서의 이벤트를 마지막에 첨가해 주셨다. 시기적으로는 한국이 그의 7년반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이긴 했지만

본인 스스로도 한국은 살짝 거쳐가는 정도였기 때문에, 내가 아니었으면 일부러 이번 토크 라이브에 집어넣었을 리가 없다.

 

숯불갈비 사진을 보여주면서 참 맛있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이시다씨는 그 마른 몸과는 달리 먹는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으로

지금도 일본에서 전국 각지의 먹거리 이야기를 컬럼으로 연재중이다. 책도 냈다. 먹는건 여행만큼이나 중요하다.

사진에 찍힌 반찬들을 언급하면서 '이게 다 공짜에다가 리필도 된답니다' 라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다음으로 나온 사진이 홍어 삼합 사진이었다...

그걸 보는순간 난 머릿속으로 '어느 인정많고 장난끼넘치는 사람이 이시다씨를 골려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이시다씨와 내 눈이 슬쩍 마주치며 서로 씨익 미소를 짓는다.

 

이시다씨는 '오늘 한국분도 오셨으니까 그분한테 설명을 들어보죠' 라고 하고 발언대를 나한테 넘긴다.

사실 홍어를 일본어로 뭐라 하는지 몰랐다. 자주 먹는 생선은 둘째치고 난 한국에서도 홍어를 거의 안먹으니까.

한국사람들도 잘 안먹는다는 설명 곁들여서,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먹는 삼합에 대해서도 잠깐 설명했다.

이시다씨는 그때의 암모니아 입자가 아직도 콧속에 박혀있는듯, 이미 홍어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조사를 했고

세계에서 악취강한 음식 2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위는 먹어본적 없단다. 다행이로세.

 

홍어라는 음식은 평생 이시다씨의 머릿속에 남아있을테니 그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이시다씨는 이제까지 '이걸 자신한테 내준건 순수한 호의에서였을까, 장난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걸까' 고민해 왔다고 한다.

텍사스 주 사람한테 날계란 먹으라고 건내주는것도 이렇게 홍어 주는것만한 장난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문화에 대해 모르는 이시다씨라면 아마 머리 좀 아팠을 듯 하다. 진짜 맛있어서 권해준 거라면 의심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니까.

하지만 내가 장난이라고 확실히 못박아주니 시원한 표정으로 웃는다.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구나 싶다.

 

쉬는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책을 갖고 온다.

사인회 자체는 뭐 어디서든 하는 것이니 별 감흥이 없지만

인기는 있어도 메이저는 아닌 이런 이시다씨의 조그만 토크 라이브에 찾아와

가까이서 생생한 체험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상당히 부러운 점이다.

이 좁은 음식점에 들어와서 여행 좋아하는 작가와 토크 라이브를 스스럼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

이시다씨는 휴식시간에 벌써 맥주 한병 까서 마시고 있고... 사실 청중들도 다들 맥주정도는 마시면서 듣고 있다.

작가 사인회라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이벤트도 이곳에서 일어나니 친근해서 좋다.

 

이번 여행에는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이 소장중인 '가보기전에~' 책을 들고왔다.

사인 허락을 받지 않아서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혹시 싫어하시면 새책 구입해 드리는걸로 하고.

일본어로는 닉네임인 '나침반씨에게' 라고 적고, 이시다씨가 한글로도 적어준다고 해서 성함을 적어드렸다.

이시다씨는 '나침반 한자는 어려워요' 라고 난색을 표했다. 진짜 어려운 단어긴 하다.

 

물론 라이트룸으로 팍팍 찍어버렸기 때문에 실제 성함이 영영영 은 아니다.

밑의 저 '일일 일생' 이라는 단어는, 이제와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이미 위에 적어놨다.

 

4시간에 걸친 아시아편 토크는, 나에게는 물론이고, 이시다씨처럼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준비중인 나침반님에게도

흥미가 동할만한 정보나 감상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건 나침반님에게 필요한 정보니 여행후 나침반님 만나서 말씀드렸다.

 

토크가 끝나고 뒷풀이가 있다고 주인장분이 안내를 해 주신다.

물론 여기서부터는 제대로 식사를 하면서 놀아보는 시간이라 지불해야 할 금액이 꽤 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시다씨와 이야기하는데 돈이 아까워서 포기할수는 없다.

30명의 독자들중 6명이 남고, 이시다씨와 와이프분까지 해서 총 8명이 뒷풀이를 위해 바에 남는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