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진짜 얼굴은 야경이라는 세간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특히 자연공원을 감상할 때처럼 멀리 떨어져서 그 대략적인 모습을 바라볼 경우에.

낮의 콘크리트 도시는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무덤이지만

저녁이후부터 슬쩍슬쩍 들어오기 시작하는 불빛을 보면 그래도 사람사는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인파를 피해 아침일찍 찾아오는 나같은 관광객을 위해 전망대 위에는 꽤나 큼지막한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

이곳의 야경을 대충 맛이라도 보여주려고 노력중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마 저녁에 한번 더 올라오고 싶겠지.

 

이번 여행에서는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 생각이지만, 다음에 도쿄에 오게 된다면 미리 예약하고 저녁에 올라가볼 예정이다.

스카이트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야경 정도 되어야만 돈값을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같은날 한국은 굉장한 한파에 폭설에 난리가 난듯 한데 도쿄는 위도가 좀 낮아서 화창하고 따뜻한 날이 계속된다.

여기서는 이것도 춥다고 기상예보에서 찡찡거리기는 하던데, 당시 서울은 영하 9도, 도쿄는 영상 13도였다.

 

물론 서울쪽을 급습한 한랭전선이 일본 중북부까지는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홋카이도 등에서는 폭설로 항공시설이 마비되기도 했다.

도쿄는 어쨌든 따뜻해서, 도시의 미세먼지가 강한 햇빛에 산란되어 아지랑이같은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진을 유심히 보면 빌딩들의 선이 꾸물거리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처음엔 카메라 불량인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아지랑이.

 

사막의 그것과 달리 덥다고는 할수없었지만, 시계가 넓고 유난히 맑았던 하늘에 도시의 미세먼지가 만들어내는 자연과 인류의 합작품.

 

 

 

시간이 지날수록 전망대에 사람이 많아진다.

이미 상당수의 인원은 1천엔 추가지불하면 올라갈 수 있는 100m 위의 전망대에 줄을 서 있다.

350m 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450m 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느정도의 차이가 있을런지.

 

만약 640m 최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면야 기꺼이 추가요금을 지불할 의향이 있지만, 1m 올라가는데 10엔이라는 등식에는 따르기 힘들다.

전망대가 '그들 나름대로는' 미어터지지 않도록 내부 인원을 꾸준히 체크해서 지상 엘리베이터를 가동시키고 있지만

개장 직후 방문했을때보다는 확실히 밀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슬슬 발을 뺄 때가 된듯 하다.

 

겨울이라 늦은 아침햇살의 역광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먼지에 뒤덮힌 회색빛의 도시마저도 잠깐동안이지만 친근감을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산으로 치면 정말 별것아닌 언덕이나 다름없는 높이인데

산행으로 거치는 모든 요소들을 싹 빼먹어 버리고, 홀로 우뚝 서있는 타워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인공물이 가지는 특징이란, 풍경의 우열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도 특정 몇 군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을

쉽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스카이트리 전망대의 의미를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도쿄라는 도시에 화장을 좀 더 시켜야 할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스카이트리의 그림자가 멋진 임팩트를 만들어준다.

유심히 내려다보니 학교로 보이는 건물에도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 한데

학생들에게는 재미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고, 전력회사에게는 그닥 유쾌한 광경이 아닐 듯.

 

전기를 가동하면 전력회사가 돈을 버는거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도쿄는 지금 돈주고도 전기를 추가 생산할 수 없다. 무조건 아껴야만 하는 상태.

 

 

 

렌즈별로 한 바퀴씩, 두 바퀴를 돌아보고 내려간다.

바로 하강 엘리베이터를 타는게 아니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있다.

관광객 분산을 위한 목적도 있고, 추가적인 수입을 기대하는 목적도 있다.

 

한층 밑에는 창문가에서 경치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이 없고, 기념품점과 까페 정도가 영업중.

카톨릭과는 전혀 관계없는 나라지만 어쨌든 12월이 되면 대대적인 홍보가 일어나는데

스카이트리에도 벌써 마스코트가 생긴건지, 산타옷 입고있는 캐릭터가 보인다.

 

이 타워의 이름이 스카이트리다 보니, 트리에 제대로 조명만 설치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겠는데

전력부족으로 절전중이라서, 은은한 빛깔 이상으로 화려해지기는 어려운 듯 하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쯤되니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무리를 이루어 돌아다니고 있다.

기념품점에도 학생들의 행렬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 기념품점은 아사쿠사의 그것과 달리 물건의 퀄리티가 예사롭지 않다.

 

상당한 요금과 긴 대기행렬을 뚫고 올라온 전망대이다 보니

이곳에서만 살 수 있다는 한정상품이 줄지어 서 있고, 그 한정상품은 고가일수록 가치가 있어보일 터.

아동용 볼펜이나 수첩, 손수건 같은 그럭저럭 저렴한 녀석들도 있지만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스카이트리 모형같은 수십만원짜리 기념품도 여기저기 보인다.

 

이곳에는 까페도 있는데, 형태상 전망대 층보다 더 작은 규모의 이곳에 이런 까페를 집어넣으니

아무래도 좀 복잡해 보인다는 인상이 든다. 묘하게 펜스를 쳐 놔서, 커피를 구입한 사람만

저 앞으로 지나가서 경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 놓은듯한 분위기가 미세하게 신경을 긁는다.

 

뭐, 그냥 스윽 지나가서 창가에 들어가도 괜찮을것 같지만, 제품 주문장소와

음료 받는 장소의 위치를 보면, 아무래도 흑심이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러나저러나, 야경도 아닌 도쿄 시내를 쳐다보면서 커피 마실만큼 매마르진 않았다.

 

 

 

고층 타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씨 스루 바닥.

토쿄타워에서도 볼 수 있었고, 별 감흥은 없었다.

 

이곳 스카이트리는 더더욱 감흥이 없을 수 밖에 없는것이

이 정도 높이라면 이미 사람의 높이감각은 그 의미를 상실하는게 당연하기 때문.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바람조차 느낄 수 없는 이 공간에서

밑의 개미같은 광경 조금 보인다고 겁나서 쉬야라도 해 버리는 사람이 있을것 같지는 않다.

 

학생들 중에는 '꺄~ 무서워' 하면서 우물쭈물거리는 부류도 있던데

지능이 높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가질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이 무의식중에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혹시나 싶어서 윈도우 위에서 바라보며 찍은 사진을 올려보는데

아무리 사진을 확대해도, 설사 저 자리에 서 있다고 해도 별로 무섭진 않을 것이다.

 

측면에 스카이트리의 기둥 일부가 보이는데, 이것만이 유일하게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정도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현실세계로 내려온다.

별 생각없이 일찍 나선 스카이트리 방문길이었는데, 지금와서 보니 정말 일찍오길 잘했다는 생각.

다시 올라가려면 최소 40~50분은 기다려야 할 법한 인파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스카이트리의 마스코트인듯 한데, 세계적인 인지도를 목표로 하는건지 의외로 일본색이 별로 들어가지 않은 느낌이다.

12월 초순인 지금부터도 TV 광고나 버라이어티 쇼 등에서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끊임이 없는데

한국도 그렇긴 하지만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뭘 그리 즐거워하는걸까.

 

기업들에게는 이유야 어쨌든 매상이 폭등하는 시기니, 거대 체인점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방송내 광고가 허용되는 수준이 아니라, 1시간 혹은 2시간짜리 방송 전체를 한 기업이 스폰서 할수 있는 일본이라서

황금시간대 방송을 보면 내가 지금 버라이어티 쇼를 보고 있는건지 1시간짜리 광고방송 보고 있는건지 햇갈릴 정도.

 

물론 그런 방송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준수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주로 음식관련 방송이 많아서 보고있으면 즐겁다)

그냥 보고 즐기기엔 나쁘지 않다. 거기 속아넘어가서 별것아닌 대량생산품을 굉장히 맛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뭐, 실제로 대량생산품이라도 일본의 먹거리들은 일정 이상의 품질은 통과하니 아예 맛없는건 아니다.

일본 편의점의 도시락은 그 돈주고 충분히 먹을만 하다는 느낌이니까.

한국 편의점의 도시락은... 자전거 여행 하는중이 아니라면 공짜로 줘도 안먹는다.

 

 

 

전망대에서 한층 내려오면 조그만 기념품점.

그리고 지상으로 내려오면 다시 나타나는 커다란 기념품점.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액면가로는 나하고 나이를 구분하기 힘든 학생들도 있긴 한데.

 

일본은 여행 다녀올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여행 선물을 돌리는게 예의의 일종으로 인식되어있기 때문에

학생들 수학여행때는 부모들이 선물용 용돈을 따로 챙겨주는게 일반적이다.

한국처럼 그냥 생각나면 사가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관계 서먹해지기 싫은 레벨이라면 무조건 줘야 하는 느낌.

 

덕분에 기념품점이 활성화되고, 좋은 품질의 아이디어 상품들이 계속 빛을 발하게 되는 좋은점도 있긴 하다.

일본, 특히 도쿄정도의 비정상적인 거대도시들은 활발한 소비활동이 없이는 절대로 유지될 수 없다.

아무리 불경기라도 워낙 저축량이 빵빵한 일본의 서민경제라서 아직까지는 눈에 띄지 않고

재미있게도 2012년부터 내수경제가 확연히 살아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서, 이곳 역시 활기가 넘치고 있는데

이는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 마지막 안간힘인지 정말 다시 살아나는 전조인지.

 

후쿠시마 대지진과 원전사고, 한국 기업의 군림과 자국 전자회사의 몰락 등 최악의 위기감이

이런 활발한 소비활동의 단초가 된 것만은 확실한 사실인데, 이게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보여줄지에 대해서는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개별적 원인 모두가 세계 역사상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

 

적어도 지금보다는 가난한 나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한국이 일본의 GDP 를 뛰어넘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부정적, 정도라는 레벨이랄까.

 

 

 

스카이트리를 나서자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보다, 밑에서 스카이트리 쳐다보는게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 풍경은 먼지로 자욱하지만

밑에서 바라보는 스카이트리는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매끄러운 인공물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기술이 워낙 발전하다보니, 에펠탑이나 도쿄타워처럼 다리 4개로 지탱되는게 아니라

카메라의 삼각대처럼 3개의 기둥으로 634m 나 되는 녀석이 지탱되고 있다.

기술적으로 진도 8.0 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예전같으면 한번 믿어보겠지만,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인간의 기술력이란건 아직 멀었구나 싶다.

 

매장 한달도 되지 않아서 강풍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사고가 두 번이나 일어났으니.

 

 

 

어찌됐든 인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급의 기술력으로 제작된 녀석이란 건 분명한 사실.

옆 빌딩에 비치는 스카이트리의 모습에서, SF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무언가를 느껴보기도 한다.

 

난시청 해소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송출용 타워이긴 한데

완공 후의 행보는 보면, 이미 주객은 전도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관광객이 모인다.

이런 랜드마크의 조그만 장점이라면 역시, 돈내고 올라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얼마든지 감상하며 사진 찍을수 있다는 점이겠지.

 

 

 

본인은 어디까지나 카메라들고 재미있는 모습이나 찾아다니는 평범한 관광객이니

이렇게 담은 사진은 사실 큰 감흥도 없고 별로 잘 찍은 녀석들도 아니지만

이 근처에서는 스카이트리가 완공되기 몇년 전부터 계속 이녀석의 모습을 꾸준히 촬영해오는 사진작가도 있다.

 

언젠가 뉴스에도 등장했는데, 어디서 찍으면 어떤 모습이 나온다는걸 속속들이 알고 있는 스카이트리의 프로.

그 사람의 촬영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시 제대로 사진 담으려면 준비도 철저해야 한다는 사실을 세삼 깨달았다.

 

이 스카이트리는 어쨌든 워낙 크고 도심 복판에 세워진 녀석이라, 모습 전체를 방해없이 담을 수 있는 장소가 의외로 많지 않다.

장소가 특정되어야 한다면 렌즈의 화각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담아내는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고.

전망대에서 내려와 하염없이 주위를 멤돌며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나로서도

원하는 그 느낌을 살리려면 삼각대와 TS 렌즈정도는 있어야 할것 같다. 원하는걸 얻기 위해서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지.

 

 

 

전망대에서 나와서 바로 찍은 사진에는 위치상 450m 전망대가 보이지 않았다.

소라마치로 가려고 걸어가는 사이에 사람들이 자꾸 뒤를 돌아보며 휴대폰을 꺼내길래

뭔가 싶어서 돌아봤더니, 거리가 멀어질수록 450m 전망대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천엔과 기다림이 아까워서 올라가진 않았지만, 그 형태가 독특하다는 것은 밖에서도 잘 보인다.

복층구조로 되어있는 450m 전망대는 타원형으로 유리 튜브같은 길을 따라 걸으며 360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350m 쪽 윈도우가 생각보다 좀 더러워서, 야경 찍을때는 450m 쪽이 좋으려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긴, 밖에서 창문청소할 수 있는 높이도 아니고 기대가 너무 큰 쪽이 잘못일지도.

 

 

 

스카이트리 옆의 거대 쇼핑몰 소라마치(空町)를 둘러보려고 이동하는데

문이 닫혀있는걸보고 잠시 당황했다. 알아보니 지상 7층까지는 오전 10시에 개장하고

30, 31층의 스카이트리 플로어는 오전 11시에 개장한다는 것. 8시 반쯤 전망대를 올라가서 맘껏 구경했는데

아직 10시까지는 15분쯤 남아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온 것 치고는 굉장히 효율적으로 구경한 셈.

 

지금부터 스카이트리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전망대 올라가는데도 많이 기다려야 하고

내려와도 소라마치의 인파에 휩쓸려 다녀야 할것이다. 새삼 생각하지만 참 다행.

야경 촬영할때는 미리 예약하는것 외엔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 다음엔 주의해야겠지만.

 

소라마치 내부는 아니고, 버스 승강장으로 가는 길 옆에 지브리 기념품점인 '도토리 공화국'이 있길래

저기나 들어가볼까 했지만, 이곳 역시 10시부터 개장이라서 실패.

눈에 반짝반짝 독기를 품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단단히 잡고 이 성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서

설사 개장하더라도 내가 들어가 구경할만한 공간은 없을것 같다. 지브리는 아이들에게 맡기자.

 

 

 

현재 도쿄 시내에서 사진찍는 사람이 제일 많이 보이는 장소라면 단연 이곳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것 같다.

제대로 된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사람도 많거니와, 정말 이곳에 오면 누구나 휴대폰 꺼내들고 셔터 누르기 바쁘다.

 

안으로 뜯어보면 나름 볼만하지만, 어쨌든 덩치에 비해서 좀 심심한 도시인 도쿄에

이렇게 세계적으로도 특징적인 녀석이 턱하니 들어섰으니 그 호기심이야 두말할 것 없겠지.

아침부터 쫓기는 마음으로 후다닥 둘러보고 빠져나왔지만, 그만큼 이곳 관광객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같은 사람한테는 정말 고역이다. 그래도 호기심으로 한번 보려고 찾아왔는데 성공적이라서 나름 뿌듯한 기분.